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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겔의 시원론(始原論)과 주희(朱熹)의 태극론(太極論)에 관한 비교연구 -존재론적 관점의 차이를 중심으로-

        권기환 ( Kwon Ki-whan ) 한국하이데거학회 2013 존재론 연구 Vol.32 No.-

        이 글은 헤겔의 시원론과 주희의 태극론을 비교함으로써 존재론적 관점의 차이를 밝히는 데에 있다. 존재의 구조와 근거를 밝히는 이론으로서 존재론은 헤겔과 주희에 있어서도 각각의 철학체계를 완성하기 위해 필요한 이론이다. 헤겔의 시원론은 순수 존재의 이중적 구조를 통해 시원을 이루고 있는 것과 시원 자체가 구분되는 데에서 출발한다. 만일 시원을 이루고 있는 것이 존재와 무라면, 시원 자체는 존재와 무를 모두 포함하는 순수 존재 자체라고 이해된다. 그러나 시원 자체는 후진적 근거짓기를 통해 차후적으로 존재하는 제3의 존재, 즉 비존재다. 이것은 무전제적, 무규정적 존재로서 모든 규정성으로부터 벗어난 순수 형식을 지닌 존재 자체다. 이와 반대로 주희의 태극론은 처음부터 존재의 근거와 만물의 근원을 본체론적으로 재구성함으로써, 우주 생성론으로부터 벗어난다. 주희는 형이상자와 형이하자를 구분함으로써 형이하자인 음양의 근거를 형이상자인 태극으로 설명한다. 그런데 현상계의 만물이 리와 기를 서로 뒤섞일 수 없지만 그렇다고 서로 분리될 수 없기 때문에, 주희의 철학체계는 리기이원론적 리론이다. 결론적으로 헤겔의 시원론과 주희의 태극론의 관계에서는 존재론적 관점의 차이가 존재한다. 헤겔의 철학은 순수 사유와 순수 존재가 일치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하여 순수 사유의 체계인 논리학을 통해 형이상학을 해명하는데 있다. 헤겔의 시원론은 단초로부터 종결에 이르는 과정을 변증법적 운동을 통해 진리를 획득하는 이론이다. 이와 반대로 주희의 태극론은 우주생성론이 아니기 때문에, 본체론에 상응한다. 여기에서는 헤겔처럼 순수 사유의 차원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과 자연의 유기적 통합이 중요하다. 따라서 이것은 우주 및 자연의 이치와 인간의 가치가 서로 연관된다는 것을 뜻한다. Die vorliegende Arbeit beschäftigt sich mit der Differenz des ontologischen Ge sichtspunktes, indem sie die Theorie des Anfangs des Hegels einen Vergleich mit der des T‘ai-Chi Chu Hsiss anstellt. Die Ontologie als eine Lehre von Struktur und Grund des Seins ist eine nötige Theorie bei Hegel und Chu Hsi, um jedes philosophisches System zur Vollendung zu bringen. Die Theorie des Anfangs Hegels geht davon aus, dass das, was den Anfang macht, von Anfang selber unterschieden ist. Wenn das, was einen Anfang macht, Sein und Nichts ist, ist Anfang selber als reines Sein selbst. welches Sein und Nichts enthält, zu verstehen. Aber Anfang selber ist das dritte Sein, welches durch die zuruckgehende Begrundung nachfolgend vorhanden ist, d. h. Nichtsein. Dies ist Sein an sich, wel ches sich aus aller Bestimmtheiten herauszieht und reine Form hat, als ein unvorrausgesetztes, unbestimmtes Sein. Indem die Theorie des T‘ai-Chises Chu Hsiss dahingegen von Anfang den Seinsgrund und Universumsursprung ousiologisch rekonstruiert, zieht sich von der Kosmogonie oder Kosmologie heraus. In dem Chu Hsi das Metaphisches von Physisches unterscheidet, stellt den Grund fur Yun-Yang, nämlich das Physisches durch T‘ai-Chi, das Metaphysisches dar. Weil doch das Universum der Erscheinungswelt weder Li mit Ki mischen kann, noch Li von Ki untrennbar ist, heisst das philosophische System die Li-Ki-dual istische Li-Lehre. Zum Schuss besteht die Differenz des ontologischen Gesichts punktes im Verhältnis von der Theorie des Anfangs Hegels und T’ai-Chis Chu Hsiss. Die Philosophie Hegels geht von einer Voraussetzung aus, dass reines Denken mit reinem Sein vereinigt, und besteht darin, die Metaphysik durch die Logik, die das System des reinen Denkens heisst, zu darstellen. Die Theorie des Anfangs bei Hegel hat einen Prozess, der von ein em Ansatz bis zum Ende gelangt, und die Lehre, die zugleich durch die dialektische Bewegung Wahrheit bekommt, Weil dahingegen die Theorie des T‘ai-Chi Chu Hsis keine Kosmogonie oder Kosmologie ist, entspricht solche Theorie der Ousiologie. Hier wie Hegel die Dimension des reinen Seins nicht ist, sondern ist die organische Vereinig ung von dem Mensch und der Natur gewichtig. Also bedeutet dies, dass das Gesetz von Universum und Natur sich zu Geltung des Menschen verhä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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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히테와 셸링의 국가론에 관한 비교연구

        권기환 ( Kwon Ki-whan ) 서강대학교 철학연구소 2019 철학논집 Vol.56 No.-

        이 글은 피히테와 셸링에 있어 국가론에 관한 서로의 관점상의 차이를 비교하는데 있다. 피히테의 국가론이 상호인격성에 근거한 법적 관계에서 성립한다면, 셸링의 국가론은 국가의 기능에서 성립한다. 셸링도 피히테와 마찬가지로 개인과 타인들의 관계에서 생기는 비대칭성을 인정한다. 그리고 그와 같은 비대칭성으로 인해 국가의 필요성에는 의견이 서로 일치한다. 그러나 문제는 법에서 도덕으로 이행을 통해 마치 국가사회주의처럼 국가를 정당화하는 피히테와 이와 반대로 도덕에서 법으로 이행을 통해 국가의 필연성을 제시하는 셸링은 서로 구별된다. 셸링이 피히테적인 관점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는 것은 독재로 회귀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셸링이 국가의 기능을 진술한 것이 오히려 왕정복고를 옹호한 것처럼 보일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두 철학자의 국가론은 전제 군주제를 반대했지만 그 이후에 국가정체에 있어서 독일의 특수한 상황 속에서 왜곡된 결과를 초래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평가는 역사적-정치적 관점에 근거하는 것일 뿐 철학적 관점에 근거한 것은 아닐 것이다. Dieser Aufsatz beschaft sich mit der Vergleichung in Ansehung der Differenz der Staatslehre bei Fichte und Schelling. Wenn Fichtes Staatslehre in einem Rechtsver haltnis, das auf Interpersonalitat beruht, besteht, so ist Schellings Staatslehre in der Funktion des Staats. Ebenso Schelling wie Fichte kennt die Ungleichmaßigkeit an, aus der eine Person in der Bezug auf die anderen entspringt. Und solcher Un gleichmaßigkeit wegen es in Einklang steht mit der Unerlassigkeit des Staats. Aber das Problem, dass Fichte einen Staat wie Staatssozialismus rechtfertigt, durch ein en Ubergang vom Recht zu der Moral, ist vom Problem, dass chelling dagegen eine Notwendigkeit des Staats zeigt, durch den Ubergang von der Moral zum Recht unterschieden. Was Schelling sich einen kritische Ausgangspunkt uber Fichtes Aus gangspunkt verhalt, behaltet im Kopf die Möglichkeit, die auf die Despotie zuruck zufuhren ist. Im Ggenteil zu Schelling, es erscheint zu schutzen die Restauration, dass Schelling die Funktion des Staats ausgesagt hat. Schließlich haben zwei Philophen sich dem Mornachismus entgegensetzt, aber spaterhin hat das verdrehte Resultat der Staatsform, in der deutschen besonderen Situation herbeigefuhrt. Doch könnte solche Einschatzung nicht auf den geschichtlich-politischen Ausgangspunkt begrundet sein, sondern auf philosophischen Ausganspunkt beruh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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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논문 : 피히테에 있어서 시간,공간의 발생론적 연역 -"개요"에서 칸트와의 방법론적 차이를 중심으로-

        권기환 ( Ki Whan Kwon ) 한국헤겔학회 2012 헤겔연구 Vol.0 No.31

        이 글은 피히테에 있어서 시간·공간의 발생론적 연역이 방법론적 측면에서 어떻게 칸트와 차이가 있는지를 밝히는 데에 있다. 특히 "개요"는 시간·공간에 관한 피히테의 관점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이와 동시에 칸트의 시간·공간에 관한피히테의 비판적 시각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시간·공간의 직관형식들이 경험의 가능성을 위한 조건이 된다는 의미에서 칸트와 피히테는 의견을 같이한다. 그러나 칸트가 직관형식들을 선험적으로 주어진 것으로서 간주하는 반면에, 피히테는 직관형식을 바로 선험적 특징으로 간주한다. 칸트는 시간·공간에 관한 직관적 지식의 선험성과 직관형식들의 선험론적 관념성을 선험적 지식의 타당성에서 추론한다. 그러나 피히테는 직관형식들, 즉 시간·공간의 선험론적 관념성을 증명하고자했다. 이를 위한 방법론이 바로 발생론적 방법이며, 이러한 연역방법은 칸트처럼 사물 자체에 범주를 적용할 수 없는 한계를 극복할 뿐만 아니라 시간·공간의 기원과 발생을 해명하는 데에도 효과적이다. 발생론적 방법을 통해서 규정된 근원적반성은 결국 실행행위로 환원된다. 시간·공간을 근원적인 자아로부터 필연적으로 도출하기 위해서 생산적 자아는 자기직관을 우선적으로 규정해야만 한다. 자기직관은 시간·공간의 선험론적 관념성을 입증하는 데에 기초가 된다. 결론적으로 피히테에 있어서 시간·공간의 발생론적 연역은 시간·공간이 칸트처럼 지각을 위한 전제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입증하는 방법론적 절차가 되어야 한다. Dieser Aufsatz beschaft sich damit, wie die genetische Deduktion des Raums und der Zeit sich von der methodologischen Seite mit Kant zu differnzieren. Besonders zeigt "Grundriß" den Fichtes Standpunkt uber Raum und Zeit, und zugleich den Fichtes kritischen Standpunkt uber Raum und Zeit Kants uns liefert. Kant und Fichte stimmen im Sinne uberein, dass die Anschauungsformen von Raum und Zeit zur Bedingung der Erfahrungsmoglichkeit wird. Wahrend Kant aber die Anschauung sformen a priori als gegeben ansieht, gilt Fichte die Anschauungsforme gerade fur den aporitischen Charakter. Kant schließt die Transzentaltat des anschauentlichen Wissens und die transzendentale Idealitat der Anschauungsformen aus Gultigkeit des aprioritischen Wissens. Doch will Fichte die Anschauungsformen, d. i. die transzendentale Idealitat von Raum und Zeit beweisen. Dafur ist die Methodolgie gerade das genetische Verfahren, und dieses Deduktionsverfahren verwindet nicht nur die Grenze, die wie Kant die Kategorien auf das Ding an sich anwenden kann, sondern auch die genetische Deduktion wirksam ist, um den Ursprung und die Genese von Raum und Zeit zu erklaren. Durch die genetische Deduktion ist die bestimmte ursprungliche Reflexion zum Schluss auf Tathandlung reduziert. Um Raum und Zeit aus dem ursprunglichen Ich notwendig abzuleiten, muss das produktive Ich zuerst die Selbstanschauung bestimmen. Die Selbstanschauung legt den Grund dazu, die Idealitat von Raum und Zeit zu bewisen. Schlißlich muss die genetische Deduktion von Raum und Zeit bei Fichte bleibt nicht der Vorraussetzung, dass Raum und Zeit wie Kant zur Wahrnehmung wird, sondern diese Deduktion muss das methodologische Verfahren, welches sie bewe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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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히테에 있어서 실천적 자기의식의 실재론적 전화

        권기환(Ki-Whan Kwon) 한국현상학회 2011 철학과 현상학 연구 Vol.50 No.-

        이글은 피히테의 『새로운 방법에 의한 학론』에서 실천적 자기의식의 관점을 실재론적으로 접근하기 위해 재구성하고자 하는 데에 있다. 이러한 시도는 『기초』에서 진행된 방법이 이론적 지식과 실천적 지식을 단지 엄밀히 구분하는 것만으로 양자의 통일이란 불가능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다시 말해서 『기초』의 작업이 이론적 지식에서 실천적 지식으로의 이행이 필연적임을 보여주는 시도이지만, 그 결과는 양자의 분열에 머물고 만다. 따라서 피히테가 학론의 첫 번째 형태를 변형하는데, 그 방식은 이론적 자기의식에 의한 관념론이 아니라, 실천적 자기의식이 실재론으로 전화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이것은 실천적 자아가 이론적 자아보다 우위라는 피히테의 주장을 바로 경험계에 적용한 결과에서 밝혀진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 자아와 비아의 종합은 현실적이지 않는 절대적 자아에 의해 설정되는 것이 아니라, 감수성의 체계에 의한 신체로 규정된다. 신체에 의한 주체와 외부세계의 매개는 정신계와 경험계를 결합시켜주는 접합지점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순수의지도 이성적 존재의 특징을 규정해주는 영역에 머물러 있지 않게 된다. 오히려 순수의지는 감성화에 의한 지성의 순수한 힘으로 표현된다. 물론 이러한 힘은 자기한계로서 지성의 최고점에 도달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험적 주체가 인륜법칙에 상응하는 행위로서 지성계에 관여하는 한, 이러한 가능성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단지 당위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당위에서 지성의 능력이 종합적으로 증명되는 경우에만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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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히테에 있어서 관념론과 실재론의 논쟁

        권기환 ( Ki Whan Kwon ) 한국헤겔학회 2014 헤겔연구 Vol.0 No.36

        이 글은 피히테에 있어서 관념론과 실재론의 논쟁이 어떻게 비판적 관념론으로 종합되는지를 고찰하는 데에 있다. 칸트는 이 논쟁에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했지만 비판적 관념론을 완성하지 못했다. 피히테는 칸트의 유산을 물려받았음에도 거기에 머물지 않는다. 피히테가 자신의 고유한 방식을 통해 비판적 관념론을 완성시킬 수 있었던 것은 관념론-실재론, 혹은 실재론-관념론의 교호작용(교호규정)과 이념으로서의 절대 자아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특히, 피히테가 사용한 종합적 방법은 이 논쟁의 결과를 비판적 관념론으로 완성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피히테는 『전체 학론의 기초』에서 원칙론과 이론적 학론의 기초를 통해 이 논쟁을 질적 규정에서 양적 규정으로 이끌고 나갔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자아의 정립과 자아에 대한 비아의 정립, 즉 자아에 대한 비아의 반정립이 종합을 완전히 성취한다는 점이 아니라, 이 둘의 대립과 결합을 통해 종합을 점차적으로 만들어 가는 데에 있다. 그 마지막 지점은 절대 자아다. 그런데 이 논쟁이 비판적 관념론으로 종합되는 것은 단지 이론적으로만 타당할 뿐, 실천적으로는 인간의 성향과 관심에 의한 양자택일로 결정될 수밖에 없다. Diese vorliegende Arbeit beobachtet, wie die Auseinandersetzung von Idealismus und Realismus bei Fichte mit dem kritischen Idealismus synthesiert wird. Kant liefert diser Auseinandersetzung einen wichten Faden, aber er kann den kritischen Idealismus nicht zur Vollendung bringen. Trotz Fichte das Erde der Philosophie Kants angetretet hat, bleibt er hier nicht, Dass Fichte den kritischen Idealismus durch seine eigne Weise ausarbeiten kann, ist auf den Grund, die Wechselwirkung(Wechselbestimmung) vom Idealismus-Realismus, oder Realismus-Idealismus und absolutes Ich als eine Idee anzunehmen. Besonders, die synthetische Methode, die Fichte braucht, dient ein Resultat dieser Auseinandersetzung dazu, als den kritischen Idealismus zu vollenden. Fichte hat diese Auseinandersetzung durch die Grundsatzen und Grundlage der theoretischen Wissenschaftslehre in Grundalge der gesamten Wissenschaftslehre vor qualitativen Bestimmung zur qantitativen gefuhrt. Was wichtig ist hier, besteht darin dass das Setzen des Ich und Nicht-Ich, d.h. die Entgegensetzung des Nicht-Ich gegen das Ich nicht die Synthese vollzieht, sondern durch den Gegensatze und die Vereinigung vom Ich und Nicht-Ich die Synthese allmahlich macht. Der letzte Punkt ist absolutes Ich. Dass diese Auseinandersetzung mit dem kritischen Idealismus synthesiert wird, gilt nur theoretisch, aber praktisch kann nach der menschlichen Neinigung und Interesse mit einer Alternative entschiedet wer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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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히테에 있어서 도덕 감정과 양심

        권기환 ( Ki Whan Kwon ) 한국칸트학회 2010 칸트연구 Vol.26 No.-

        Dieser Aufsatz besteht darin, das Verhaltnis vom moralischen Gefuhl und Gewissen bei Fichte zu erklaren. Das Gewissen, welches das Gefuhl ist, setzt den ursprunglichen Charakter des Menschen voraus. Das Gewissen ist mit dem Gefuhl untrennbar und wird durch die praktische Handlung, welche das Gefuhl hat, bestimmt. Besonders das moralische Gefuhl besitzt praktisch eine gewichtige Stelle in allen Gefuhlen des Menschen, denn das moralische Gefuhl bestimmt das Verhaltnis zwischen dem Sittengesetz und dem Gefuhl der Achtung nicht nur im Maßstab der Sittlichkeit, sondern auch im Prinzip der Philosophie. Das Gefuhl der Achtung, welches die typische Gestaltung ist, geht vom einfachen Trieb des Subjekts in der “Sittenlehre” zur Sittlichkeit durch. Doch manifestiert dieses moralische Gefuhl sich durch das Gewissen als die Sittenlehre, dafur das Pflichtbewusstsein notwendig gefordert wird. Das Kriterium des Urteils der moralischen Handlung ist auf den Grund von Pflichtbewusstsein. Das Gewissen gilt fur dieses Kriterium, und die Erzeugung uber die moralische Handlung muss als das richtige Kriterium des Pflichtbewusstseins werden. Sonst konnen wir richteg oder unrichtg nie beurteilt werden. In diesem Sinne bedarf es kein Gewissen formell, keine abstrakte Allgemeinheit, nur das Urteil uber die konkrete moralische Handlung zu prufen. Sondern vielmehr muss das Gewissen als die sponautonome Handlung, welche sich unmittelbar bewusst bestimmt ist, das unmittelbare Bewusstsein oder Gefuhl der Pflichtsein. Dies gilt in der menschlichen Handlung dafur, dass das praktische Ich einen Primat mehr als theoretische Ich hat. Schließlich tragt Fichtes Gewissen dazu bei, die absolute Innerlichkeit maximal zu vergroßern, falls man richtig oder unrichtig in der menschlichen Handlung beurteilt. Dieses Gewissen wird durch die Verbindung mit dem moralischen Gefuhl zum sittlichen Trieb erhoben. Der sittliche Trieb ist gerade ein objektive Tatigkeit, ihrer Zweck realisiert absolute Freiheit von allen Tatigkei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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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몬에 있어서 회의주의와 인과성 -『선험론철학의 시도』에서 인과론에 관한 논의를 중심으로-

        권기환 ( Ki Whan Kwon ) 한국칸트학회 2013 칸트연구 Vol.31 No.-

        이 글은 마이몬에 있어서 회의주의와 인과성의 관계를 밝히는 데에 있다. 특히, 마이몬의 대표적 저작인 『선험론철학의 시도』는 인과론을 회의주의적 시각에서 설명한다. 마이몬의 회의주의는 근본적으로 ‘사실문제’를 통해 칸트에 대한 흄적인 반격을 시도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여기에서 회의주의는 바로 인과성개념을 통해 입증된다. 마이몬이 인과관계를 설명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흄처럼 습관을 기준으로서 설정하는 것이 아니라, 규정가능성과 근거-추론을 기준으로서 설정하는데에 있다. 인과관계, 특히 시간적 인과관계는 시간의 개념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의존한다. 시간개념을 통해 시간적 선후관계는 상이한 두 지각의 관계에서 성립한다. 연속과 변화는 상관개념들이므로 실체와 속성의 관계를 통해 이루어진다. 범주연역으로서 인과성은 선험론적 개념들로서 원인과 결과가 논리적 개념들인 근거와 추론을 일치시키는 데에 있다. 마이몬은 주관적 연역과 객관적 연역의 구분을 통해 무한오성에서 유한오성을 도출한다. 무한오성이 객관적 연역을 통해 객관적 질서를 산출하는 반면에, 유한오성은 주관적 연역을 통해 대상을 산출하지만 객관적 질서를 재산출할 뿐이다. 마이몬은 오성형식들의 사용과 객체들로부터 범주에 의한 관계의 불확실성을 해소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칸트의 순환논법을 해소하고 이와 동시에 흄적인 문제제기도 해결하기 때문이다. Dieser Aufsatz beschaftigt sich damit, das Verhatnis von Skeptizismus und Kausalitat bei Maimon zu erforschen. Besonders, ein typisches Buch von Maimon, Versuch uber Transzendentalphilosophie druckt seine Theorie der Kausalitat im skeptischen Gesichtssin aus. Maimons Skeptizismus geht ursprunglich durch quid facti davon aus, Humischen Angriff gegen Kant zu versuchen. Hiermit ist Skeptizismus gerade durch den Begriff der Kausalitat bewiesen, denn wir konnen einen logischen Irrtum von Ursache und Wirkung beghen. Was wichtig ist, indem Maimon die Ursache und Wirkung darstellt, ist die Gewohnlichkeit wie Hume nicht als ein Kriterium, sondern die Bestimmbarkeit und Grund-Folge aufzustellen. Ursache-Wirkung, besonders das zeitliches Verhaltnis in Ursache und Wirkung hangt davon ab, wie den Begriff der Zeit bestimmt. Durch den Begriff der Zeit bestehen das Vorhergehende und Folgende nach Zeit im Verhaltnis der zwei versiednen Wahrnehmmung. Da Dauer und Wechsel die Korrelate sind, macht die Synthesis von beiden durch die Beziehung auf Substanz der Akzidenzen aus. Die Kausalitat als die Kategoriendeduktion besteht darin, dass Ursache und Wirkung mit den logischen Begriffen, d. h. Grund und Folgen ubereinkommen. Maimon leitet durch die Unterscheidung der subjektiven und objektiven Deduktion den endlichen Verstand von unendlichen Verstand ab. Wahrend dieser durch den objektiven Deduktion die objektive Ordnung hervorbringt, produkziert jener durch die subjektive die Gegenstande, aber reprodukziert nur die objektive Ordung. Maimon lost die Ungewissenheit nach dem Verhaltnis von der Kategorie der Verstandsformen und Objekten auf. Weil es Kants Zirkelschluss auflost, zugleich den Humischen Einwand erheb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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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리드리히 슐레겔의 반피히테주의

        권기환 ( Ki Whan Kwon ) 한국헤겔학회 2016 헤겔연구 Vol.0 No.40

        이 글은 프리드리히 슐레겔의 철학적 특성을 반피히테주의로 규정하면서 그 근거와 타당성을 밝히는 데 있다. 반피히테주의자로서, 반토대주의자로서 프리드리히 슐레겔은 하나의 철학체계를 하나의 원칙으로 환원하고자 했던 피히테 철학을 비판한다. 이때 그와 같은 비판의 핵심은 첫째, 피히테가 선험적 관념론을 완결하기 위해 자아만을 원칙으로 설정한다는 데 있다. 둘째, 피히테가 하나의 방법만을 보편적 절차로 이해하는 데 있다. 이것은 토대주의, 즉 하나의 철학체계를 완성하기 위해 하나의 원칙과 하나의 방법만을 타당한 것으로 간주하는 하나의 이론에 지나지 않는다. 반피히테주의는 반토대주의일 뿐만 아니라, 철학을 하나의 체계로 그리고 하나의 원칙으로 환원하는 이론을 거부한다. 프리드리히 슐레겔은 다양한 방법과 각각의 고유한 철학들의 공존을 통해 서로의 유기적 관계를 중시한다. 그 때문에 프리드리히 슐레겔의 반피히테주의는 관념론과 실재론을 종합하는 절충주의 혹은 절대적 관념론으로 귀결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비판정신이며 이를 통해 진정한 철학의 철학도 가능하다. In this paper, Friedrich Schlegel`s philosophy is determined as anti-Fichteism, and the reasons and validity of such classification are clarified. As anti-Fichteirian and anti-foundationalist, Schlegel criticized Fichte for his attempt to reduce one philosophical system to one principle. The two essentials of Schlegel`s criticism are as follows. First, Fichte posited the “I” alone in the principle inn order to complete transcendental idealism. Second, one method was the only thing that he understood as the universal procedure. This position is nothing more than foundationalism, that is, mere theory that accepts only one principle and one method as legitimate constituents to complete one philosophical system. Anti-Fichteism is anti-foundationalism, and it also rejects every reductive theory that makes philosophy one system or one principle. However, Schlegel emphasized an organic relation between different methods and various philosophies, which is the consequence of their coexistence. For the reason, his anti-Fichteism resulted in absolute idealism or eclecticism, which combines idealism and realism. This most important thing is critical spirit. This is only thing that could bring out the philosophy of philoso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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