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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베소서의 교회론 : 엡 1:15-23을 중심으로

        박광현 감리교신학대학교 대학원 2006 국내석사

        RANK : 247807

        교회란 무엇인가? “교회의 일치”의 성서적 근거는 무엇인가? 이런 질문들과 함께 우리는 앞에서 에베소서1장15-23절의 주석을 통해, 특히23절 “교회는 그의 몸, 곧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분의 충만입니다”를 관심하여 교회의 두 정의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몸”과 “충만”에 관련된 문법적, 신학적 문제들의 논의를 통해,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자 “그리스도의 충만”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를 뜻하는 지에 대해 살펴보았다.그것은 다음과 같다. 저자는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정의한다. 이것은 “머리/몸”의 은유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교회가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 아닌 그리스도가 교회를 위해 일하는 사실을 알려준다. 즉 교회를 위한 그리스도의 역할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몸-교회론을 통해 저자는 머리인 그리스도와 몸인 교회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강조한다. 이 밀접한 연합의 관계를 통해 머리의 몸 지배와 몸의 머리에 대한 절대 순종을 강조하며, 교회의 본질과 사명 또한 이것과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그리고 머리와 몸은 유기체적인 연합과 일치를 이룬다. 이를 통하여 몸인 교회는 머리에 이르기까지 곧 그리스도의 생명의 힘이 완전한 데까지 성장한다. 따라서 교회의 일치와 성장은 에베소서의 몸-교회론의 핵심적인 주제로 제기되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교회를 “그리스도의 충만”이라고 정의한다. 이 “충만”은 먼저 언급된 “몸”과 동격으로 볼 수 있으며, 이는 곧 “그리스도의 충만”이라는 교회 이해는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교회 이해와의 관계 속에서만 바르게 파악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교회=그리스도의 몸=그리스도의 충만이라는 공식이 성립되는 것이다. 많은 학자들의 논란이 되었던 πληρωμα와 πληρουμεν ου의 의미에 대해, πληρωμα는 수동적(충만케 된 것), πληρουμενου는 능동적인 의미로(충만케 하시는)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교회는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그리스도]의 충만[충만케 된 것]이다. 이 충만 개념은 그리스도의 생명력으로 채워진 우주적인 주권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모든 영적인 세력들을 이기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능력, 더 정확하게 말해서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일으키시고 만물의 머리가 되게 하셔서 자신의 오른 편에 앉게 하신 하나님의 권능의 온전한 실현을 ‘충만’ 이라고 한다. 충만 교회론은 이러한 사실을 아직 모르는 만물에게 이 사실을 선포해야 할 사명을 강조한다. 또한 에베소서의 전체에 언급된 교회에 대한 진술들을 함께 살펴보았다. 그것은 건물-교회론과 새 사람-교회론인데, 이 역시 몸-교회론과 충만-교회론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건물-교회론을 통해 교회의 시작과 끝이 그리스도라는 사실과 끝(오메가 포인트)인 그리스도를 향해 끊임없이 성장하는 건물이 바로 교회임을 알 수 있다.그리고 새 사람-교회론을 통해 교회는 새롭게 창조된 하나의 완전한 사람, 새로운 인류이며, 그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한 화해와 연합의 공동체인 것을 확인했다. 이로써 교회는 연합하는 삶을 통하여 세상에게 다가가야 한다. 이러한 교회의 선교 도구는 삶, 윤리와 무관하지 않다. 마지막으로 몸-교회론과 충만-교회론이 에베소서의 중요한 신학적 주제인 “교회의 일치”를 더욱 강조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결국 “교회의 일치”는 몸-교회론과 충만-교회론을 떼어놓고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에베소서의 교회에 대한 언급과 “교회의 일치”라는 신학적 주제라는 맥락에서 교회의 본질과 사명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교회는 하나님의 구원을 전달하는 매체요, 구원을 경험하는 장이며, 이러한 교회는 우주적이며, 보편적이다. 그러나 동시에 역사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교회의 사명은 본질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내적으로 교회의 일치를 이루며, 외적으로는 일치를 선포함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에베소서의 “그리스도의 몸, 그리스도의 충만이라는 교회론은 신약성서 전체 중에서도 교회를 가장 높이, 가장 이상적으로 그리고 있다.”192) 그에 따르면 교회는 유일하게 그리스도의 주권이 인정되고, 그 능력의 역사, 곧 구원 사역이 일어나는 장이다. 때문에 지상의 교회가 아무리 초라해 보일지라도 교회는 하나님의 지혜의 결정체이자 영광스러운 새 창조의 실체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또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세상에서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대리자 역할을 수행한다. 하지만 교회 자신의 일치를 이루지 못하고는 세상을 향하여 일치를 외칠 수 없다. 교회는 자신의 일치를 보존함으로써 평화이신 그리스도를 세상에 선포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일치된 교회는“평화의 전시장이자 도구”(E.Schweizer)이다.193) 즉“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2:14)라는 기독론적 고백을 교회 안에서 실천하고 또 이러한 실천을 통하여 세상을 향해 증언하는 것이다. 때문에 교회는 교회내적 일치를 고수해야 하는 중요한 책임을 완수해야 한다. 이는 바로 머리되신 그리스도께 그의 몸으로서의 철저한 복종을 다하는 것이며, 이것이 교회의 사명이다. 이런 측면에서 에베소서의 교회론은 매우 중요하다.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의 본질을 상기시키며,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도록 가르치기 때문이다. 이것은 개체교회로서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의 기회가 될 것이며, 전체교회의 한 부분으로서 다른 교회와의 연합(교단이나 교파를 초월한)을 도모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나아가 모든 만물을 교회되게 하는 만물의 충만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교회의 본질과 사명을 확실히 인식하고 실천한다면, 모든 만물이 그리스도의 몸이 되어 하나님의 영광이 온 세상이 넘실거리는 그 날을 곧 볼 수 있을 것이다.

      • 헤르만 바빙크의 교회론

        김동섭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2010 국내석사

        RANK : 247807

        교회론은 시대의 변화에 따른 요구에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에 그것의 연구는 가치를 갖기 마련이다. 특별히 바빙크의 교회론은 개혁파 내에서 활발히 진행되지 않았기에 본 논고의 의의가 있다. 이를 위해서 필자는 바빙크의 교회론이 전통적인 개혁파의 흐름에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서 칼빈의 교회론과 비교하여 살폈고, 또한 개혁파 신학의 차이점들을 발견하기 위하여 그와 동시대에 살았던 카이퍼의 교회론을 논의했다. 칼빈과 비교했을 때 바빙크는 분명히 전통적인 개혁파의 흐름 속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교회의 본질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파악하고, 그 기원을 구약으로 시작해서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이해한다. 뿐만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으로 교회를 이해하고자 함을 엿볼 수 있었다. 그러나 카이퍼와는 다소 대조되는 면을 발견하게 된다. 특히 교회의 유기체와 제도를 논의하면서 그것은 분명히 드러난다. 카이퍼는 교회의 유기체를 강조함으로써 교회의 제도를 약화시키는 반면에, 바빙크는 성경에 기초했기에 균형있는 관점을 우리들이 볼 수 있었다. 그는 교회의 유기체와 제도를 간과하거나 축소하지 않으며, 동시에 강조하면서 둘을 구분되나 분리할 수 없는 성격으로 이해했다. 결론적으로, 바빙크는 전통적인 개혁파 신학의 교회론을 분명히 계승하고 있지만 단순히 답습(踏襲)하는 차원에 머문 것이 아니라 성경과 그것을 바탕으로 역사와 전통을 살핌으로써 비판적인 차원에서 교회론을 서술했다. 특별히 본질과 형태의 이중적인 차원을 균형있게 바빙크는 보고자 노력했다고 할 수 있다. .

      • 선교적 교회론의 관점으로 본 WCC, 로잔 문서 연구 : 지역교회의 선교적 역할을 중심으로

        이요한 장로회신학대학교 대학원 2017 국내석사

        RANK : 247807

        한국교회는 과거에 놀라운 성장을 이루었으나, 현재는 여러 가지 문제에 직면해있다. 교회의 대사회적 이미지는 부정적이며, 교회중심적인 구조로 인하여 세상과 단절된 폐쇄성을 추구하고 있는 교회가 많다. 또한 한국교회는 통전적인 복음의 이해의 부족으로 교회나 교파적으로 혹은 신학적으로 갈등과 대립의 문제가 심각한 수준이다. 이러한 한국교회의 현실을 새롭게 변화시킬 방법을 찾고자 한국교회는 선교적 교회론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활발하게 논의되어지고 있는 선교적 교회론 논의는 뉴비긴과 북미 GOCN으로부터 출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재고해 보아야 하는 것은‘선교적 교회’라는 개념은 이미 오래 전부터 논의되고 발전되어 왔고, 세계 선교의 두 중심축인 에큐메니칼 진영의 WCC와 복음주의의 로잔운동에서도 그 의미를 발전시켜 왔다는 것이다. 특별히 한국교회 에큐메니칼 진영과 복음주의 진영 사이에서서 통전적인 공통의 이해가 진행되었다고 하지만 현실은 신학적인 대립관계가 지속되어 오고 있는 현실 가운데 두 진영의 문서 속에서 선교적 교회론의 의미를 살펴보고 그 속에서 한국교회의 선교적 역할을 찾아보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WCC와 로잔문서는 각자 신학적인 입장의 차이를 가지고 선교적 교회론의 의미를 발전시켜왔다. WCC는 지역교회의 선교적 역할을 하나님의 선교의 급진적인 관점인 인간화로 치우쳐 바라보았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님의 선교의 통전적인 입장에서 선교적 교회론을 전개하였다. 로잔은 처음에는 지역교회의 역할에 중요성이 부각되지 않았고, 복음전도의 우선성안에서 선교를 이해하였으나 점점 하나님의 선교의 풍성한 관점을 수용하였고, 지역교회의 정체성과 역할에 대하여 심도 있게 논의 되었다. 신학적인 입장의 차이가 있겠으나 중요한 것은 WCC와 로잔문서는 서로의 관점으로 점점 수렴되고 있다는 것이다. 두 진영의 공통의 인식을 담은 한국 지역교회의 선교적 역할은 다음과 같다. 첫째, 지역교회는 하나님의 선교의 도구로 인식해야 한다. 둘째, 지역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범을 보이신 통전적인 선교를 추구할 것을 요청한다. 셋째, 지역교회는 교회중심적인 신앙에서 벗어나 지역사회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해야 한다. 넷째, 지역의 교회들은 다른 교회들을 경쟁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함께 일구어가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인식하고 연합하고 협력한다. 다섯째, 지역교회는 목회자 중심 교회구조를 벗어나 평신도들이 선교적 역할을 발견하고 감당할 수 있도록 한다. 한국교회가 이와 같은 모습으로 한 걸음씩 나아갈 때, 지역교회는 교회의 본질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며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가 온전하게 드러나게 될 것이다.

      • 요한복음 10장의 교회론

        송상훈 베뢰아국제대학원대학교 2007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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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년까지 요한복음에 교회론이 존재하는가 하지 않는가 하는 문제로 학자들의 논의는 계속되어 왔으나 대략 1970년 이후에는 요한 교회론에 교회론적 개념이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 긍정적인 견해를 갖게 되었다. 요한복음에 교회론이 존재하느냐 안하느냐는 교회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달려 있다. 교회라는 말을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나라, 그리스도의 몸과 같은 용어만으로 표출되는 것으로 가정하면 우리는 요한복음에서 그러한 용어를 발견할 수 없다. 하지만 교회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자들의 무리와 연관된 공동체적 본질이라고 정의한다면 우리는 요한복음에서 교회론을 논할 수 있다. 본 논문은 요한복음 10장의 '목자와 양'의 표상을 관계론적으로 조명한 교회론에 관한 것이다. 김동수는 요한은 구약에서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의 관계로 묘사된 목자와 양의 상징을 예수와 그의 제자들의 관계에 적용하였고, 따라서 양떼라는 말은 요한이 사용하지 않은 'έκκλεσία'(교회)라는 말을 대신하게 되었다고 한다. 본 논문에서는 요한복음 10장의 목자와 양의 비유에서 나타난 이들의 관계를 중심으로 교회론을 연구하였다. 본 연구는 예수와 그를 그리스도라 믿는 사람들의 관계를 다루면서 더 나아가 그 관계의 원형이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기초한다는 것을 밝혔고 그 관계를 일치라는 관점과 예수의 죽음으로 인해 이방인이 이스라엘과 하나 되는 선교지향적 관점으로 조명하였다. 그래서 본문도 기존의 목자강화 연구에서 다룬 본문인 요한복음 10장 1-18절을 기초로 하되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더욱 구체적으로 나타난 42절까지 확장하였다. 본 논문은 첫째로는 요한복음 10장을 관계론적 교회론으로 조명하였다. 예수께서 타락한 양들인 인간에게 생명을 주러 오신 것은 태초부터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생명을 아들이 아버지로부터 부여받으셨기 때문이다. 또한 예수께서 양들을 아는 것은 아버지가 아들을 아는 것과 같고, 아들이 목숨을 버리기까지 양들을 사랑하셔서 양들이 목자를 따르는 사랑과 순종의 관계는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과 순종의 관계에 기초한 것이다. 둘째로는 아버지와 아들과 교회의 관계를 일치라는 교회론적 관점에서 조명하였다. 신자들이 예수 안에서 서로 하나가 되는 것은 예수의 생명과 말씀이 그들 안에 거하기 때문인데 이것 역시 아버지와 아들이 생명과 말씀으로 하나된 것이 예수로 대속의 죽음으로 신자들에게까지 확대된 것이다. 셋째로는 우리에 들지 않은 양무리까지 예수의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될 것이라는 선교지향적인 교회론적 관심을 표출하였다. 예수가 양들을 위해 대속의 죽음을 죽으심으로써 구원론적 지평이 유대인에서 이방인을 포함한 온 인류로 확장된다. 이를 위해 예수는 그 누구도 흠모할 수 없는 처절한 십자가의 형벌에에 의해 죽임을 당하시는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인해 양들에게 생명을 주신다. 실상 창세전의 하나님의 의도 안에서 예수의 죽음은 피 흘리실 필요 없는 죽음을 맛보는 인자의 죽음이었는데(히2:9), 아담이 마귀의 유혹으로 타락하자 예수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의 직분인 그리스도의 죽음을 아버지의 뜻대로 받아들이시고 고독한 십자가의 길을 가시게 된다. 창세전에 인자로서 자신을 낮추셔서 보통의 죽음으로 죽으시고자 하신 예수가 인류를 위하여 아들을 피 흘려 죽는 데까지 내어주시기로 하신 아버지의 뜻에 복종하신 것이다(마 26:39). 인류의 선교를 위해서 아들은 온갖 핍박과 고통과 십자가의 고난까지 담당하셨으나 이것은 비단 아들의 고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아브라함이 100세에 나은 아들을 번제로 드리는 고통이상이나 아들을 피 흘리는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내어주시는 아버지의 고통도 큰 것이라고 김기동은 말한다. 성령도 이를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증거하신다(롬 8:26). 이렇게 인류의 선교를 위해서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해산의 수고를 하셔야 했고 성삼위 하나님의 열심히 필요했다(고후11:2). 이와 같이 선교는 아버지와 아들의 뜻이요 성령의 뜻이다. 위의 내용으로 볼 때 요한복음의 10장의 교회론은 관계성에 근거한 것인데 아들과 교회와의 관계는 아버지와 아들의 영원한 관계에 기초하고 있고 그 관계는 일치의 관계이며 거기에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선교 지향적 관심이 농도 짙게 드러나 있다. Until 1970 scholars had argued about whether there is Ecclesiology in Gospel John or not, approximately after 1970 they had positive opinion that there is concept of Ecclesiology in Gospel John. It depends on how we define church to mention whether there is Ecclesiology in Gospel John or not. If we presume that church should have the concept of people of God, kingdom of God, Body of Christ, we can not find them in Gospel John. However If we define church ecclesiastical essence related a flock who believes Jesus as their savior, we can talk about Ecclesiology in Gospel John. This research about Ecclesiology studies the image of "The Shepherd and the sheep" from the viewpoint of relationship. According Dong Soo Kim, John applied the image of "The shepherd and the sheep", which is described as the relationship between God and His people in old testament, to the relationship Jesus and his disciples, so that the word 'a flock' replaces 'έκκλεσία'(church) which John has not mentioned in the Gospel John. The research is dealing with the relationship between Jesus and a flock who believes him as their savior and in addition to it, it is dealing with that the Prototype is based on the relationship with the Father and the son. It researches from the viewpoint of oneness and mission-oriented. That's why it deals with until verse 42 where the relationship with the Father and the Son is revealed more concretely. However it is based on Gospel John chapter 10 verse 1 through 18 which used to be dealt in the previous researches. Firstly this research deals with the Ecclesiology from the viewpoint of relationship. Jesus could give life to humans who are corrupted flock because he had been given life from the Father which he had shared before the world began. Jesus know his sheep and his sheep know him is just as the Father knows the Son and the Son knows his Father, so that the relationship of love and obedience between Jesus and the flock of the sheep, which caused Jesus to lay his life on the cross, is based of the relationship of love and obedience between the Father and the son. Secondly, it examines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Father and the Son and the church from the viewpoint of oneness. The believers could be one because the life and the word of Jesus abides in them. This also is based on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Father and the Son. The oneness of the Father and the Son with life and the word expanded into the believers through the sacrificial death of Jesus Christ Thirdly, it reveals mission-oriented concerns about the sheep that are not of his sheep Pen but will be one flock and one shepherd after they listen his voice. Salvation could enlarge from the Jews to the Gentiles through the redeemable death of the Christ. For this, Jesus was killed miserably on the cross and gave life to the sheep. There would be no Person who wants this kind of death. In fact, he had not been supposed to die bleeding on the cross but to taste death as every man dies a normal death before the world began according to the Picture of God's Will(Heb 2:9), however since Adam was seduced by the devil and fell, Jesus accepted from the Father the Christ death which was the charge of Lamb of God, taking away the sin of the world and experienced the way to the cross according to the Father's will. Jesus willed to lower himself and die a normal death as the son of Man but was submissive to the Father who willed to give His Son to the world as a ransom(Mat 26:39). For world mission Jesus underwent various kinds of persecution and agony of the cross but this was not his agony alone. Ki Dong Kim mentions the agony of the Father was not less than the Son like the agony of Abraham who had to give his son whom he had at the age of 100 as a burnt offering to God. The Spirit also intercedes with groans for this. For mission of the world, not only the Son but also the Father and the Spirit made efforts in giving birth. Likewise mission is the Will of the Father, the Son and the Holy Spirit. According to all mentioned above, since the Ecclesiology of Gospel John chapter 10 is based on relationship,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Son and the church is based on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Father and the Son and it is related with oneness. Futhermore the concern of the Father, the Son and the Spirit about mission is revealed deeply.

      • 敎會論과 敎會成長의 關係에 대한 硏究

        박충용 總神大學校 神學大學院 2004 국내석사

        RANK : 247807

        필자는 본 논문에서 교회론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특히 교회의 정의에 대해서 비중을 많이 두어서 설명을 하였다. 교회의 어원에 대한 연구와 교회론의 정의에 대해서 살펴보면서 어원속에서 나타나는 유기체적인 교회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할수 있게 되었다. 바른 교회론은 유기적인 면과 제도적인 면에서의 조화를 이룬 교회라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서 교회에 대한 역사적 이해에 대해서 다루면서 교부시대, 중세시대, 종교개혁시대에 그들이 갖는 교회론이 입장을 표명했고 그 뿐만 아니라 교회에 대한 현대적 이해를 다루면서 이론과 실천을 결부해서 다루면서 이론적인 면에서는 자유주의 자들이 갖은 교회론에 대해서 쉴라이어 마허와 리츨의 교회관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했고, 벌콥, 박형룡, 김길성의 교회론을 다루면서 제도적인면과 유기체적인면의 조화를 강조했다. 실천적인 면에서는 사랑의 교회와 중국에 있는 왕청교회를 간단히 소개함으로 교회론이 정립이 필요성을 재 인식시키려했고 이러한 바른 교회론의 정립이 결과적으로는 교회의 성장에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려고 시도해 보았다. 그뿐 아니라 바른 교회론 정립으로 인한 교회의 성장에 있어서 특별히 교회의 성장에 대한 정의에 대해서도 간단하게 정리해 보았다. 그리고 교회의 성장원리와 바른 교회론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살펴보면서 교회의 성장원리와 바른 교회론이 교회성장에 미치는 영향과 필자자신의 인식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 하나님 나라 실현을 위한 선교적 교회론

        김청곤 장로회신학대학교 대학원 2012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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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의 시작이며 복음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사역의 주제는 하나님 나라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회적 약자와 가난한 자들과 죄인들을 향한 세상의 냉대와 차별의 벽을, 율법이 정한 유대인과 이방인의 경계를,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의 벽을 사랑으로 모두 허무셨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개인의 영혼 구원에만 매여 있는 복음을 선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세계인 세상을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대로 새롭게 하는 온전한 복음을 선포하셨다. 곧 하나님 나라를 실현시킨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사역의 무대는 세상이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여 있는 가시적 공동체로 세상 속에 존재하고 있다. 세상 속에 있는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사역의 무대가 세상이었음을 기억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적 삶으로 선교적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그런데 오늘의 세상 속에 있는 교회는 세속화와 다원주의의 영향으로 하나님의 선교의 참여자로서 선교적 위치와 사명을 찾지 못하고 방황함과 동시에 세상을 밝게 비추어 할 진리의 등불을 높이 들지 못한 채사회 속에서 영향력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 이는 21세기, 오늘의 시대 교회의 위기인 것이다. 교회 성도 개인의 영적성장과 교회 건축과 재정을 통한 교회 안에서의 부흥을 위한 양육과 훈련, 목회사역적 구조와 노력은 개방과 공유와 참여를 원하는 포스트모던 사회를 살아가는 세상의 사람들과 소통을 위한 공간을 전혀 창출해 내지 못하고 있다. 또한 삶의 총체적 해방과 자유와 기쁨으로서의 복음을 교회 울타리 안에서만 가두어 둔 채 세상의 일에 무관심한 교회를 향하여 세상의 사람들은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며 교회로부터 등을 돌리고 있다. 이런 오늘의 시대 세상 속에 있는 교회의 현실을 보며 필자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세상에서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안을 찾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교회의 본질에 대한 탐구와 함께 교회를 하나님 나라와 세상에 빛에 비추어 해석하는 교회론에 대한 연구를 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교회를 하나님 나라의 실현을 위한 하나님의 선교의 도구로서 부름 받아 세상으로 파송 받은 공동체로 인식하는 선교론적 관점에서 교회론을 해석하는 선교적 교회론에 관한 연구를 하게 되었다. 본 연구는 하나님 나라와 복음에 대한 성서적 이해와 함께 이를 실현시켜 나가야 할 교회에 대한 선교적 이해를 토대로 교회를 하나님 나라와 세상의 빛에 비추어 해석하며 세상 속에 있는 교회의 선교적 사명으로 태동하게 된 선교적 교회론에 관한 연구를 통하여 오늘의 시대 선교적 교회의 모델을 찾고자 함에 그 목적을 두고 있다. 필자는 오늘의 시대를 개방과 공유와 참여를 원하는 시대로 보며 이 시대의 선교적 교회론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교회와 지역사회와 더불어 사는 교회의 두 가지 모델로 구체적 접근을 하였다. 세상과 소통하는 교회로서 선교적 교회는 세상의 모든 장벽과 경계를 허무신 예수 그리스도의 개방의 정신으로 교회의 문턱을 낮추며 세상과의 거룩한 키스를 할 수 있는 교회, 목회자와 당회 중심의 교회 사역의 구조가 아닌 교회의 모든 성도 개개인이 함께 사역을 공유하는 교회, 지역사회의 일에 적극적인 참여를 통하여 세상과의 소통의 공간을 창출해가는 교회를 말한다. 지역사회와 더불어 사는 교회로서 선교적 교회는 교회 내적인 성장과 문제에만 매여 있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의 가난한 자들을 도우며 함께 할 수 있는 교회, 지역사회의 다양한 문제에 관한 적극적인 참여를 위해 로컬 거버넌스(Local Governance)에 참여하는 교회를 말한다. 이처럼 하나님의 선교의 도구로서 세상 속에 복음의 능력을 나르는 수레가 되어 세상과의 공간을 창출해 나가는 선교적 교회가 될 때 세상은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냄새 맡고 하나님 나라를 만지며 하나님 나라를 보게 될 것이다.

      • 본회퍼의 교회론 연구 : 통전적 선교 관점에서

        이영록 장로회신학대학교 대학원 2010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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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우리는 본회퍼의 교회론을 통전적 선교 관점에서 연구하고 분석하였다. 먼저 본회퍼의 교회론을 바라볼 안경으로써 통전적 선교관에 대해 연구하였고, 그 다음으로 본회퍼의 교회론의 발단과 전개과정을 살핌으로써 본회퍼의 교회론을 연구하였다. 그리고 본회퍼의 교회론을 한국교회의 상황에 적용하여 한국교회에 필요한 교회상을 제시하였다. 가장 먼저 Ⅰ장에서는 한국교회 선교의 위기적 상황을 진단하며 한국교회의 문제점과 과제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리고 21세기 한국과 비슷한 어려움에 있었던 제2차 대전 당시 독일과 독일 교회의 상황에서 해성처럼 등장한 본회퍼라는 신학자의 몸부림 특히 그의 교회론을 통하여 한국교회의 대안으로 제시하면서 논문의 연구 방법과 범위를 제시하였다. 다음 Ⅱ장에서는 본회퍼의 교회론을 통전적 선교 관점에서 다루기 위하여, 통전성(Holism)의 이해를 어원을 분석을 통하여 살펴보고 여기서 나타난 의미를 가지고 후에 통전적 선교에를 언급하였다. 통전적 선교신학을 접근하는 방법으로는 신학적 방법, 역사적 방법, 주석적 방법, 해석학적 방법 등의 여러 방법이 있지만 본 논문은 우선 주석적 방법으로 어원을 분석하고, 통전적 선교가 나오게 된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았다. 그 다음 통전적 선교신학이 나오게 된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복음주의와 WCC의 갈등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갈등 이전에서 양자의 공통의 기원을 통해 통전적 선교신학의 가능성을 설명하고, 갈등 이후의 화해의 시기로 양진영의 화합의 역사를 소개하였다. 다시 말하면 어원 분석을 통하여 정립된 통전성이라는 개념을 알아보고, 역사적 방법론으로 분석한 통전적 선교관을 통하여 통전적 선교신학을 제시하였다. 이는 본회퍼의 교회론을 통전적 선교신학의 입장에서 재해석하여 본회퍼의 선교적 교회론을 연구하기 위한 작업이다. Ⅲ장에서는 본회퍼의 교회론의 발단과 전개 과정을 살펴보았다. 먼저 본회퍼의 사상에 대한 학자들의 입장을 살펴봄으로써 본회퍼를 단면이 아닌 입체적으로 접근하였다. 그 다음으로는 본회퍼의 생애와 사상의 흐름을 알아봄으로써 그와 그의 교회론의 배경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본회퍼의 실제 삶속에서 에큐메니칼 운동과 활동에 대해 연구 하였다. 그 다음으로는 본회퍼의 교회론을 통전적 선교 입장에서에 관하여 연구하고 재조명 하였다. 특히 본회퍼의 교회론 중에서 통전적 선교와 관련이 있는 부분을 연구하였다. 본회퍼의 교회론을 세상과의 관계에서 크게 두 가지 나누어 살펴보았다. 그 두 가지란 첫째 세상과 대립하는 교회로써 세상을 변화시키고 개혁시키는 교회의 모습을 말한다. 두 번째로는 세상 안에서 타인을 위해 고난 받는 교회로써 종교화된 교회가 아니라 타인을 위해 고난 받은 그리스도의 모습으로의 교회를 연구하였다. Ⅳ장에서는 지금까지 살펴본 본회퍼의 교회론을 바탕으로 한국교회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통전적 선교 관점에서 제시하였다. 위기에 직면해 있는 한국교회가 개교회주의를 탈피하고 우주 공동체로서의 교회의 모습을 회복하고, 타자를 위해 존재하는 교회로 자기정체성을 재정립하고, 섬김과 디아코니아를 위한 교회로 다시 태어날 때 세상에서 긍정적인 선교적 영향력을 끼치는 교회로 거듭날 것임을 강조하였다. 또한 한국교회가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니라 세상과 함께하면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교회가 될 때에 사회에서 섬으로 고립되지 않으면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빛과 소금 같은 교회가 될 것이다.

      • 선교적 교회론 적용을 통한 지역교회 갱신 연구 : 영은교회 2천 에배자 운동을 중심으로

        고일호 장로회신학대학교 목회전문대학원 2012 국내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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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바른 목회, 올바른 교회가 되려면 올바른 교회론이 정립되어야 한다. 올바른 교회론을 바탕으로 하여 지역교회가 갱신될 때 한국교회에 새로운 소망이 있다. 필자는 이 시대에 적합한 교회론으로 선교적 교회론을 제시하고자 한다. 선교적 교회론은 교회와 예배의 상관관계를 매우 중요시한다. 예배의 갱신은 선교적 교회론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며, 선교적 교회를 세우기 위한 핵심적 과제이다. 필자는 영은교회 2천 예배자 운동을 모델로 하여 이 사실을 증명했다.

      • 개혁주의 교회론에 관한 연구 : 기독교 강요에 나타난 교회의 본질과 표지에 대한 이해를 중심으로

        김기현 안양대학교 신학대학원 2004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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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혁신학에 대한 칼빈의 영향력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칼빈의 기독교강요에 있는 교회론을 읽어보면 매우 실천적인 면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칼빈은 성경을 통하여 이것이 교회의 참된 모습이라는 것을 전개해 나가면서도 로마 카톨릭의 잘못된 모습을 예리하게 지적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그 만큼 칼빈의 이 지상에 있는 교회의 순결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칼빈의 교회론은 예정론에 근거한다. 교회가 예정에 근거한다는 사실은 눈에 보이는 성도들을 함부로 판단할 수가 없음을 생각할 수가 있다. 또한 칼빈의 교회론은 성도를 양육하는 교회의 기능을 표현하기 위해서 어머니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어머니인 교회의 품으로 성도들을 모으고, 이들을 그리스도의 한 몸으로 자라도록 양육하신다. 즉 어머니라는 교회의 이름은 교회의 기능적인 측면을 두고 한 말이다. 이렇게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한 몸을 이룬다. 이때 신자들의 연합의 기초는 하나님의 영원한 선택이다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한 몸을 이루며, 서로간에 형제애로 연합된다. 그리고 신자 개개인들은 교회안에서 각자가 받은 은사대로 지체 상호간을 섬긴다. 또 칼빈의 교회론은 본질적인 모습과 교회의 표지에 의해서 크게 구별해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칼빈은 교회의 본질적인 모습을 생각할 때에 이 하나님의 참된 교회가 지상에 존재할 때, 즉 교회가 사람들의 눈에 드러나는 방식으로 나타날 때 이곳에 교회가 존재한다는 표징을 어떻게 알 수 있을 까할 때 교회의 표지를 등장시켰다. 즉 교회의 표지가 있는 곳에 하나님의 교회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상에 존재하는 교회는 이 표지에 따라서 즉 성경이 제시하는 선까지 교회 조직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렇게 칼빈이 제시하는 교회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칼빈의 교회론에 비추어서, 즉 개혁주의 교회론에 비추어서 현대의 교회를 평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칼빈의 교회론에 비추어서 현대 교회를 평가할 때 교회의 본질적인 면과 교회의 표지를 나누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땅에 기독교가 전래된지 100여년의 짧은 시간이지만 이 짧은 시간동안에 하나님의 은혜로 한국의 교회는 크게 성장하였다. 물론 지금은 한국의 교회의 성장이 멈추고, 교회가 하강곡선을 걷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의 교회에 하나님이 주신 축복은 크다고 할 수 있겠다. 칼빈의 교회론에 비추어서 현대교회를 평가할 때 두 가지를 고려해 보아야 할 것 같다. 첫째, 지금의 한국 교회는 대부분이 복음주의 교회이며 복음주의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한국의 복음주의는 특히 미국의 복음주의 교회의 영향을 크게 받았고, 지금도 받고 있다는 점이다. 1) 교회의 본질적인 면-칼빈은 예정론에 근거하여 교회를 판단한다. 즉 하나님만이 아시는 교회이기 때문에 어떤 성토라도 교회에서 오용될 수 없으며, 함부로 대할 수 없다라는 점이다. 칼빈은 교회는 택자들의 전체수로 정의하였다. 현대교회의 특징은 본질적인 차원보다 실용적이고 기능적인 차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따라서 보통 전통적인 교회와 자신들을 대조한다. 그 예로 메타교회란 것이 있다. 메타교회는 목회, 행정, 헌금, 전도, 예배 등 모든 분야에서 전통적인 교회가 가지는 한계성을 극복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메타교회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미래를 향하여 계속 계획해 나간다. 성도에게 초점을 맞춘다. 불변하시는 주님을 변해가는 사역의 내용 속에서 계속 제시한다. 새로운 성도가 오면 친절하게 맞이한다. 우리 교회에서 무엇이 잘되고 있는가에 항상 초점을 맞춘다. 전 교인이 다함께 참여하는 예배를 추구한다. 축제 분위기의 예배를 추구한다. 교회 예산을 전도와 선교에 추구한다. 예배 시에는 일반성도 전체가 다 같이 잘 부를 수 있는 쉽고 은혜로운 찬양으로 진행한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에만 초점을 맞추고 앞으로 나아간다." 이와 같이 현대교회는 교회의 본질적인 면보다는 기능적이고 실용적인 차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교회의 시스템과 설비에는 많은 시간과 물질을 투자하면서도, 신자 개개인을 어떤 시각에서 바라보고, 그들을 어떤 차원에서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반문해 보아야 한다. 즉 신자 개개인들을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로서 대하고 있는가? 이 부분은 깊이 생각해 볼 문제이다. 또 하나는 교회의 본질에서 어머니로서의 교회는 상도들을 양육하는 기능이다. 앞의 메타교회의 특징에서 보았지만 현재의 교회들도 성도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초점은 사실상 성도 자신보다도 신자들을 교회에 끌어들이는 데 더 초점이 있다. 그렇다면 성도의 양육이라는 차원에서, 즉 어머니처럼 낳고 기르는 그런 차원의 사역이 약하다는 말이 된다. 하지만 교회의 본질적인 모습을 생각할 때 하나님의 자녀로서 잘 자라서 그리스도의 한 몸으로 서로 자라가야 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이 점은 교육에서 뿐만 아니라, 외면보다도 내면에도 많은 시간을 써야 할 것을 의미한다. 또 현대교회는 성도의 교제의 차원을 많은 신경을 쓴다. 그러나 그 성도의 교제가 참된 성도의 교제인지 생각해 볼 여지는 있다. 과연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서 서로의 필요를 채워질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교회의 본질을 생각하는 가운데 현대 교회의 특징 가운데 하나인 교회성장운동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교회 성장 운동은 짧은 시간 안에 극대화된 숫자적 성장을 추구한다. 이것은 대형교회운동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결국 대형교회운동은 교회 성장을 극대화하기 위한 방법으로 일반경영기법이나, 마케팅 원리를 교회에 도입하게 된다. 이와 같이 숫자가 성장하는 교회는 특징은 첫째, 교단의 호징을 떼어버리는 특징이 있다. 이들은 교단이름 대신 공동체(community)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두 번째 특징은 설교자와 목회자가 경영적 기술과 인간관계가 뛰어나서 대중적으로 뛰어난 매력을 지닌다. 셋 번째 특징은 그 교회를 참석하는 사람들의 배경이 다양하다라는 점이다. 카톨릭, 감리교, 침례교, 장로교등 배경이 다양하다 쉬게 이야기하면 교회성장운동은 교회의 기능적인 측면을 생각한 나머지 교회의 본질적인 측면을 약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교회의 본질을 중요시하여 신자들을 바라본다면 하나님의 택하신 신자들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 그 누구도 차별할 수가 없으며, 믿는자 서로간에 참다운 위로와 교제가 있어야 한다. 즉 외적인 것보다도 먼저 교회의 본질을 중심으로 하여 사람들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2) 교회의 표지-칼빈에 의하면 지상의 교회는 표지가 중요하다. 즉 말씀이 순수하게 선포되며, 성례가 집례되고, 말씀을 중심으로 하여 교회 조직이 이루어지고, 말씀의 원리에 비추어서 예배가 진행되어야 한다. 문제는 교회가 기능적인 것을 추구한다면 교회의 표지부분이 상당히 약화될 것이라는 것이다. 약화될 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 변질을 가져올 수도 있다. 예를 들면 현대적인 예배는 성경에서 제시하는 원리보다도 사람들의 취향을 먼저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현대적인 예배는 간편한 예배를 추구하며, 예배 가운데서 무엇인가를 느끼는 것을 추구하고, 보여주는 것을 추구한다. 특히 전도의 목적으로 열린 예배를 도입하기도 한다. 그러나 과연 불신자들 전도목적을 위한 목적으로 열린예배를 도입하는 것이 가능한가?의 문제는 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특히 열린예배를 옹호하는 자들은 교회의 전통을 완전히 배제한다. 그리고 열린예배에는 드라마 같은 수 많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그렇다면 말씀에서 제시하는 예배의 원리는 어떠한가? 예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불신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릴 수 없다. 또한 앞의 메타교회의 특징에서 보았듯이 교회에서 다양한 방법론을 찾는다면, 잘못하면 칼빈이 이해하는 교회의 표지에 따른 교회 조직도 무너지게 되고 만다. 그리고 목회자는 설교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수종. 하는 직분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현대교회의 목회자중에 지나치게 카리스마적인 목회자가 있다. 너무 카리스마적이면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을 집중하는 것 보다 목회자 자신에게 관심을 집중시킬 수 있다. 또한 교회의 성례에서 세례를 통하여 죄 용서와 주님과 연합하여 주님의 죽으심에 동참하고 주님의 부활하심에 동참한다는 사실과 성찬을 통하여서는 주님이 우리에게 제시되고 주님에게 동참함으로써 주님께서 주시는 모든 영적 혜택들에 참여한다는 사실을 잘 깨닫도록 그 의미를 분명하게 제시해 주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세례나 성례가 미신적으로 흐르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칼빈의 교회론의 모습에 비추어본 현대교회의 모습은 그렇게 밝은 편만은 아니다. 그러나 교회는 역시 교회이다. 또 수많은 사역자들 모두가 자신들을 위하여 사역하지는 않을 것이다. 순수한 마음으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현대교회의 패턴을 무비판적으로 따라갈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칼빈이 제시하는 것처럼 교회의 본질에 관심을 가지면서도 교회의 표지에 따른 교회의 사역이 잘 제시되어서 교회의 표지가 잘 드러나도록 해야 할 것이다. 특히 말씀의 바른 선포와 성례가 신실하게 집례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참으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교회로서 교회론의 바른 모습을 찾아 힘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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