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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학대학원의 실천적 교육과정 개발에 관한 연구 :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중심으로

        신동호 장로회신학대학교 대학원 2008 국내석사

        RANK : 249711

        이 논문은 한국교회의 문제는 목회자의 문제에서 시작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구조적으로 볼 때, 목회자가 중심이 되어 교회를 이끌어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목회자 후보생은 목회자로 나서기 전에 목회자에게 필요한 훈련이 충분히 제공되어야 하고 교육되어야 한다. 목회자의 영성, 신학, 인격 등에 영향을 줄 수 있으면서 실제 사역 속에서 요구되며 필요한 내용으로 교육과정이 편성되어야 한다. 한국교회의 문제를 극복하고 한국교회가 변화를 이끌려면 목회자를 교육하는 신학교육부터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여 2004년 이후 전국 주요 신학대학이 모여 신학교육개선공동연구협의회를 두고 공동연구를 하고 있다는 것은 기쁜 소식이다. 그러나 이것이 협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각 분과별로 전문적인 연구와 조사를 통해 한국교회를 살리는 연구가 되어야 할 것이다. 타일러의 논리는 명시적 교육과정으로서 목적 중심의 교육과정을 추구하는 것으로 모든 교육 논리의 기본이다. 이 논문은 일반교육학에 널리 알려진 이론인 타일러논리(Tyler Rationale)를 이용하여 신학교육에 적용한다. 또한 잠재적 교육과정을 통해서 타일러 논리가 놓치고 있는 교육적 요소를 살펴본다. 교육목표를 세우는 방법에서부터 학습경험을 선정하여 조직하고 평가한다는 과학적 원리를 찾아 신학대학원 교역학 과정(M. Div)에 적용하여 교육과정 작성의 원리를 찾았다. 찾아진 원리로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육과정을 분석하여 비판하였고, 여기서 살핀 내용을 중심으로 신학대학원 교육과정의 대안적 모델을 제시하였다. 이 연구 과정 속에서 찾아진 학문적 성과는 몇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교육과정에는 명시적 교육과정과 잠재적 교육과정이 모두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교육과정을 말할 때 명시적 교육과정만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명시적 교육과정을 운영할 때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잠재적 교육과정이 나타나게 되어 있다. 교육과정 설계에 있어 잠재적 교육과정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교육과정 설계자가 원하는 교육과정이 구현될 수 없다. 본 논문에서는 이 두 이론을 수렴하여 보완적 입장에서 제안하였다. 둘째, 목회학 과정 속에 왜 신학적 요소를 줄어들고 목회학 관련 학문이 교육과정으로 편성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였다. 이 연구 과정 속에서 교육목적 및 교육 목표를 세우기 위해 다루어져야 하는 요소들을 찾을 수 있었고, 학습경험을 선정하고 조직하기 위해 필요한 원리들을 찾을 수 있었다. 목회학 연구를 행함에 있어 ‘사회적 요구에 대한 연구’가 더욱 필요함을 알 수 있었고, 신학생에게 진행되는 과정 속에서 목회자를 세우기 위해 꼭 필요한 교육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한 깊은 연구가 더욱 필요함을 알게 되었다. 셋째,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의 교육목표 및 교육목적, 교육과정을 분석하여 비판하였다.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의 교육과정은 목회자를 양성한다기보다는 신학자를 양성하는 데에 더 비중이 있는 교육과정이라는 것을 지적하였다. 신학이 목회자에게 비중있게 다루어져함에도 불구하고 신학은 학부나 대학원 과정의 몫으로 돌려야 할 것이다. 현재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의 교육과정은 타과정과 중복됨으로 해서 목회학의 특성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 목회학의 전문성을 기하는 과정으로 바뀌어 전문 목회자 양성에 초점을 맞추는 쪽으로 방향을 정해야 할 것이다. 넷째, 신학대학원 교육과정에 대한 대안적 모델을 제시할 수 있었다. 현재의 신학대학원의 교육과정이 신학에 치우쳐 있으며 교육목적에 부합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방향을 잡아야 할지에 대한 대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였다. 목회자 양성에 집중할 수 있는 교육목적과 교육목표를 제안하였고, 교육과정의 선정 및 조직에 대한 이론을 적용하여 교육과정의 필수 과목을 제시했다. 대안적 모델은 각 영역에 대해 관계로서 설명될 수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목회자가 개인적 삶에서나 목회에서 부딪히는 모든 영역을 관계 속에서 설명할 수 있었다. 다섯째, 잠재적 교육과정도 교육과정 설계자가 교육내용 속에 의도적으로 편성할 수 있다는 점을 발견하였다. 그동안 잠재적 교육과정은 의도될 수 없는 것으로 인식되었지만, 교육과정 설계자가 자신의 교육적 의도에 따라 주제를 선정하고 그에 따른 교육과정 혹은 프로그램 도입을 제안할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잠재적 교육과정에 대한 연구를 더욱 함으로서 완전한 교육과정 편성이 가능하게 된다.

      •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생들의 정치의식과 영성의 관계에 관한 연구

        배성훈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2012 국내석사

        RANK : 249679

        본 연구는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정치의식과 영성의 상관관계에 대하여 사회과학 척도를 사용하여 검증해보고자 하였다. 특별히 우리의 정치 의식이 영성의 수직적 측면인 종교적 안녕과 수평적 측면인 실존적 안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밝히는데 그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하여 본 연구에서는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생들의 인구사회학적 변수에 따라 영성의 정도를 살펴보았다. 다음으로 신학대학원생들의 인구사회학적 변수와 정치의식의 관계를 살펴보았다. 마지막으로 정치의식이 영성에 미치는 영향력을 파악하기 위하여 인구사회학적 변수들과 정치 의식을 단계적으로 투입하여 다중회귀분석을 실시한 후 정치 의식이 영성과의 관계에 미치는 설명력을 살펴봄으로써 정치의식과 영성과의 관계를 확인하였다.

      • 신학생들의 영적성숙도가 자아존중감, 스트레스대처, 진로결정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

        김두만 장로회신학대학교 목회전문대학원 2022 국내박사

        RANK : 249663

        국문초록 및 주제어 본 연구는 신학생들의 영적 성숙도가 신학생들의 자아존중감과 스트레스대처와 진로결정에 어떤 영향이 미치는지를 알아보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서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 산하 전국 7개 신학대학교 가운데 6개 신학대학교에 재학 중인 1-4학년 신학생 371명이 설문 조사에 참여하였다. 설문지 내용으로는 신앙생활 설문지, 영적성숙도 척도, 자아존중감 척도, 스트레스대처 척도, 진로결정능력 척도를 사용하였다. 본 연구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성별에 따른 영적성숙도, 자아존중감, 스트레스대처, 진로결정에는 남녀 사이에는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으나, 다만 남성이 여성보다 자아존중감에서 영적 성숙도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반면에 여성은 남성보다 스트레스대처의 방법에 있어서 영적성숙도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둘째, 학년에 따른 영적성숙도, 자아존중감, 스트레스대처, 진로결정에는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셋째, 나이에 따른 영적성숙도, 자아존중감, 스트레스대처, 진로결정에는 41세 이상의 신학생들이 다른 나이의 학생들보다 영적성숙도와 스트레스대처에 더 큰 영향이 있었다. 단, 자아존중감과 진로결정에는 영향이 없었다. 넷째, 결혼상태에 따라 영적성숙도, 자아존중감, 스트레스대처, 진로결정에는 결혼한 신학생이 미혼의 신학생보다 영적성숙도와 스트레스대처, 진로결정에 더욱 영향을 끼쳤다. 단, 자아존중감과 사회적지지 추구에서는 의미가 나타나지 않았다. 다섯째, 교회출석 시기에 따른 영적성숙도, 자아존중감, 스트레스대처, 진로결정에는 중학교 시기에 교회를 출석한 신학생들이 모태신앙의 신학생들보다 영적성숙도, 스트레스대처, 진로결정 능력에 더 큰 영향력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여섯째, 가족들의 신앙유무에 따라 영적성숙도, 자아존중감, 스트레스대처, 진로결정에는 온 가족이 신앙이 있는 신학생이 그렇지 않은 신학생들보다 자아존중감에서 더 유의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곱째, 신학교 입학 이유에 따른 영적성숙도, 자아존중감, 스트레스대처, 진로결정 에는 모든 부분에서 영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담임목사의 권유가 부모의 권유보다 신학생들에게 영적성숙도와 스트레스대처와 진로결정에 더 유의미한 결과가 나왔다. 여덟째, 영적교육 유무에 따라 영적성숙도, 자아존중감, 스트레스대처, 진로결정에는 교육을 받은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과의 차이는 없는 것으로 조사 되었다. 아홉째, 진로 방향에 따른 영적성숙도, 자아존중감, 스트레스대처, 진로결정 능력에는 특수사역자가 그렇지 않은 신학생들보다 영적성숙, 영적건강, 자아존중감, 진로결정에서도 의미가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열 번째, 신학생들의 영적성숙도와 자아존중감은 서로 깊은 관계가 있으며, 영적성숙도가 높을수록 자아존중감도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열한 번째, 신학생들의 영적성숙도와 스트레스대처의 관계에서도 상관관계를 가지며, 영적성숙도가 높을수록 스트레스에 대한 대처가 적절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열두 번째, 신학생들의 영적성숙도와 진로결정에서는 영적성숙도가 높을수록 진로결정에 의미를 가지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본 연구는 신학생들의 영적성숙도가 자아존중감과 스트레스대처와 진로결정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신학생들은 소명을 받아 신학대학교에 입학한 학생들이다. 이들이 가진 소명의식은 신학생들의 영적성숙도가 높을수록 그들의 정체성이 분명해지는 결과가 나타났다. 그러므로 신학생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을 위해서는 영적성숙에 대한 훈련을 받아야 하며, 이를 위해서 신학생들이 속해 있는 기관은 신학생들에 관한 통합적인 연구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재 신학생들에 관한 연구가 쉽지 않은 이유는 신학대학교에서 신학생들에 대한 기초적인 자료를 수집하는데 어려움이 있으며, 자료수집에 대한 관심을 가지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학생들의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기 위해서는 제도적인 개선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 연구에 대한 자료는 각 학교마다 서로 연계하여서 상호보완적으로 신학생들에 대한 자료 축적과 공유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신학생들에 대한 정보 축적은 신학대학생 이외에 다른 비교 대상군을 넓혀 비교 연구할 필요성을 가진다. 그리고 교단적으로는 신학생들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며, 교단에 맞는 신학생들에 대한 다양한 척도의 개발이 필요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결과는 신학생들의 현재 상황을 면밀하게 점검하여서 한국교회와 신학대학교와 개교회 사역의 현장을 건강하게 세워나갈 영적성숙도가 높은 신학생들을 배출하는데 공헌할 것으로 보인다. [주제어]: 신학생, 영적성숙도, 자아존중감, 스트레스, 진로결정

      • 장로회신학대학교 최초의 선교동아리 선교사파송연구회 역사(1974-2021) : 설립 과정과 주요 인물을 중심으로

        조요셉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2022 국내석사

        RANK : 249663

        본 논문의 제목은 “장로회신학대학교 최초의 선교동아리 선교사파송연구회 역사(1974-2021)”이며 부제목은 “설립 과정과 주요 인물을 중심으로”이다. 본 논문 연구의 목적은 선교사파송연구회(이하 ‘선파’)의 47년 간의 역사를 조사하고 추적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선파가 한국교회와 교단의 선교에 공헌하고 기여한 내용을 정리하는 데 있다. 그리고 선교의 열정을 갖고 앞서 활동한 선배들의 이야기를 소개함으로써 향후 선교사로 쓰임 받기를 원하는 선파 회원들과 독자에게 역사 속에서 교훈과 실마리를 얻게끔 하기 위함이다. 연구방법은 선교사들의 전기와 같은 관련 도서와 선파 동아리실에 보관 중인 역대 기수별 자료집, 선파 동문회 자료 등을 정리하고 분석하는 것이다. 부족한 자료는 관련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정보를 수집한다. 인터뷰는 코로나 상황을 고려해 가급적 통화, 카카오톡, 메일, Zoom과 같은 비대면 인터뷰를 활용하되 필요한 경우 직접 방문하여 인터뷰한다. 본 논문의 연구내용은 1) 선파의 설립취지와 과정을 살펴보고, 2) 선파의 역사를 초기, 중기, 현재로 구분하고 각 시기별 주요사건과 인물을 연구한다. 또한 3) 선파 출신 선교사와 목회자 그리고 선교지망생 중 선교사역을 하다가 먼저 하늘나라로 간 분들의 생애와 사역을 조명한다. 끝으로 4) 선파 역대 회장과 주요 임원들의 명단을 정리한다. 연구성과로는,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과 이야기를 발굴하여 소개한 것이다. 그리고 주요 인물들의 최측근과의 인터뷰를 통해 알려지지 않은 생생한 이야기들을 수집한 것이다. 선파의 위기를 한눈에 정리했으며 각각의 해결방안이 기도라는 것을 도출하였다. 주제어: 장신대, 선교사파송연구회(선파), 선교, 정오기도회, 정성균, 이준재, 홍익표

      •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생들의 의식변화 : 1989년에서 2009년까지, 신학춘추를 중심으로

        김승환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2011 국내석사

        RANK : 249663

        신학춘추는 장로회신학대학교 신문이다. 1965년에 창간된 이후로 46년을 지내오면서 장신대의 안과 밖에서 논의되는 신학적 담론과 목회 현장에서 접하는 다양한 관심들을 학생들의 시선과 이해를 바탕으로 기록하여 왔다. 또한 동시대에 일어났던 사회적 이슈들에도 성실히 응답해왔으며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신학의 틀로 재해석하고 실천하였다. 이번 연구에서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춘추의 역사를 살피는 목적은 먼저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생들의 의식의 형성과정을 살피고 그 흐름이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지 밝히고자 함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신학춘추를 한국기독교 현대사의 흐름과 함께 한 중요한 언론으로서 그 역할을 감당해왔음을 알리고자 함이다.

      • 목회자의 리더십 평가를 위한 목회분석 설문지에 관한 연구 : 장로회신학대학교 목회전문대학원 박사과정을 대상으로

        배성훈 장로회신학대학교 목회전문대학원 2014 국내석사

        RANK : 249663

        21세기인 오늘날, 시중에는 목회자의 리더십과 교회 리더의 자질에 관한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고, 관련 논문과 세미나들도 여기저기 넘쳐나고 있다. 이들 많은 저작과 연구물은 목회자의 리더십은 다루지만, 목회자의 리더십 평가를 다루지는 않는다. 먼저 나서서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상황은 변했다. 한국교회가 위기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위기의 한국교회를 이끌 새로운 리더십을 발견하고 계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목회자의 리더십을 평가하여야 한다. 객관적인 평가를 바탕으로 발견과 계발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 신학생의 다면성별의식과 성역할정체감에 관한 연구 :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신학과 학생들을 중심으로

        황성결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2014 국내석사

        RANK : 249663

        본 연구는 신학생의 양성평등의식 수준을 알아보기 위해 신학생의 다면성별의식과 성역할정체감을 조사하였다. 이와 더불어 신학생이 교육받고 있는 현장인 신학교 교육과 다면성별의식과 성역할정체감의 상관성을 밝힘으로 신학교 교육이 성평등적 교육을 지향하는지 점검하였다. 이를 통하여 양성평등적 학교 문화 형성의 도움이 되는 기초 자료를 제시하는데 본 연구의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하여 본 연구에서 다룬 연구 문제는 신학생의 적대적 성별의식과 온정적 성별의식 그리고 성역할정체감을 조사하고, 다면성별의식과 성역할정체감의 관계를 밝히고 양성평등교육 경험에 따른 다면성별의식과 성역할정체감의 변화가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다. 또한 신학교 교육이 다면성별의식과 성역할정체감의 변화를 일으키는지와 신학생들은 양성평등교육을 얼마나 필요로 하는지 밝히는 것이다. 본 연구는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신학과 학생 381명을 대상으로 설문지를 통해 자료를 수집하였다. 설문지는 다면성별의식검사와 한국 성역할검사로 구성되었다. 본 연구를 통해 나타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신학생의 적대적 성별의식과 온정적 성별의식은 남학생이 여학생보다 높았다. 적대적 성별의식의 성별 차가 온정적 성별의식의 성별 차보다 컸다. 연령에 따른 차이는 적대적 성별의식에서만 유의미하였는데, 20대가 가장 낮은 평균점수를 보였다. 양성평등교육 필요도에 따른 차이는 적대적 성별의식에서만 유의미하였으며, 양성평등교육이 불필요하다는 집단에서 적대적 성별의식이 높게 측정되었다. 둘째, 성역할정체감은 미분화 > 양성성 > 남성성 > 여성성 정체감으로 순으로 나타났다. 성별에 따른 차이는 남성은 미분화 유형이, 여성은 양성성 정체감이 가장 많았다. 학년에 따른 차이는 통계적으로 무의미하였으나, 학년이 높아질수록 미분화 유형도 늘어나는 모습을 보였다. 20대, 30대는 미분화 유형이, 40,50대는 양성성 정체감이 많았다. 셋째, 다면성별의식과 성역할정체감의 관계는 온정적 성별의식, 보완적 성역할 분화, 친밀한 이성애에서 유의미하였다. 양성성 정체감 집단이 온정적 성별의식, 보완적 성역할 분화, 친밀한 이성애를 지지하였다. 넷째, 신학교 교과목 중 다면성별의식과 성역할정체감의 의미 있는 변화를 주는 과목은 없었다. 다섯째, 신학생 73.6%가 양성평등교육이 신학교 안에 필요하다고 보았다. 이러한 연구 결과를 토대로 본 연구의 의의와 제한점, 추후 연구를 위한 제언을 하였다.

      • 교회의 본질에 관한 성서적, 역사적 고찰과 바람직한 교회상 모색

        정주득 장로회신학대학교 대학원 2008 국내석사

        RANK : 249647

        오늘날 개혁교회의 본질에 대한 모호성을 볼 때 과연 예수께서 지금과 같은 형태의 교회를 세우기를 원하셨는가를 질문하게 된다. 왜냐하면 현실교회의 본질이 너무나 다양하게 표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복음은 생명과 관련된 것인데 재테크와 관련지어서 말하고, 교육은 교리를 설명하는 것인데 대학입시와 관련짓고 있으며, 부유함과 화려함 그리고 부의 가치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는 증거로써 선포되고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 개혁교회의 현실이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은 규약 상 종교로 세상에 들어오지 않았던 복음에 형태와 형식를 부여하고 외적으로 완성시켜서 종교적으로 만든 제도적 교회와 복음과 하나님을 통제하려는 축소주의(Reductionism)와 그리고 무엇보다 교회의 본질에 대한 모호성에서 비롯된 결과로 보여 진다. 이러한 제도적 교회와 축소주의의 속성은 지키려하는 것과 안주하려는 경향 때문에 교회의 존재 목적이라고 할 수 있는 선교사역은 교회의 한 요소 혹은 한 기능정도로 축소되는 것이다. 그것은 2006년 통계청 발표에서 개신교인 수가 14만4천명 감소한 수치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고 보여진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성서적인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고 실천하기 위해서는 먼저 교회란 무엇인가에 대한 본질 규명이 확립되어야 할 것이다 어원적인 의미에서 교회란 용어는 70인 역과 관련성을 가지므로 교회를 본질을 정의하기 위해서는 구약성서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구약교회에서 교회란 원 의미는 하나님에 의해 소집된 이스라엘 백성을 지칭하며, 언어적인 변천과정을 거쳐 신약교회에서는 성도들의 모임으로 정의된다. 하지만 교회가 실제로 하나님이 세상으로부터 불러낸 사람들로 이루어 졌다고 말할 때 이 단어는 언어학적인 고려보다는 실제적인 고려에 의한 성격이 더 강하다는 것이 어원적인 연구의 결론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실존에서 본질의 변질을 차단하고 바른 교회의 상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교회스스로 모인 목적에 대한 의미부여를 반복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헬라세계의 일상적인 모임과 다를 바 없게 되는 것이다. 또한 교회는 하나님의 구속사에서 그 기원을 가지기 때문에 구원에 대한 자기 인식을 망각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처음 구약의 원시교회는 가정교회의 모습을 띠고 출발하여 회막, 성전, 회당교회의 모습으로 변천해 왔는데 그 중에서 현실교회가 가장 선호하는 솔로몬 성전이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는 교회의 상이라는 것이 성서적인 증언이다. 하나님은 솔로몬의 성전에서 행해졌던 웅장하고 화려한 외면적인 모습이 아니라 말씀에 순종하는 내면적인 신앙의 외연(外延)을 원하고 계신 것이다. 이런 사실은 신명기서와 에스겔서의 반성전적, 반제도적인 사상과 계시에서 확인되고 있다. 신약교회 또한 원시교회와 같은 가정교회의 형태로 출발하였다. 현실교회가 가장 모델로 삼고자 하는 교회는 사도행전 2장의 교회인데 처음에는 전도하는 교회, 종말론적인 교회였다. 선교를 위해 존재하는 교회였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재림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지면서 제도적 교회의 형태로 변해 갔으며 지역적인 교회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세계선교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한 것이다. 반면 그러나 사도 바울이 사역했던 이방교회는 제도적 교회를 지양하고 선교적 교회를 지향하므로 해서 로마는 물론 유럽까지 복음을 전하는 교회가 되었다. 현실교회가 본받아야 할 교회는 종교적인 행위로 만족하는 솔로몬 성전이 아니며 유대인과 담을 쌓고 구별된 교회로 남은 예루살렘 교회도 아니다. 문제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선교를 실천한 이방인교회인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본질을 어떻게 해석하고 이해하느냐에 따라 교회는 얼마든지 다른 형태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역사적 교회의 증언이다. 교회사에 영향을 끼친 교부들과 중세신학자들 그리고 종교개혁자들의 교회이해를 살펴보면 이는 정론적이기는 하니만 대부분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정행에서는 해석에 많은 차이점이 보이고 있었다. 예컨대 아퀴나스는 교회의 표지에 교황 권을 첨가 시키는가 하면 유세비우스는 콘스탄틴의 국가와 하나님의 나라를 동일시하여 교회의 종말론적 긴장을 해소시키는데 일조했다. 그 결과 교황을 교회의 표지로 추가시킨 아퀴나스는 진리를 외곡한 대가로 성 아퀴나스로 추앙되었고, 유세비우스는 왕의 측근으로써 부귀영화를 누렸다. 이러한 문제는 교회를 정의 할 때 정론만으로는 정의하지 못하게 하는 정당성을 입증 받게 되는 것이다. 참으로 김명용 교수의 말대로 “하나님의 교회라기보다는 사탄의 공회당이라고 하는 편이 훨씬 더 합당한 교회도 있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인간들이 세울 수 있는 그 무엇으로 보았는데, 그것은 인간이 도덕적으로 완전해지는 것이라고 했다. 그 결과 교회 종말론적인 긴장은 완전히 해소되었으며, 교회는 더 이상 하나님 나라를 대망하지 않게 되었다. 따라서 교회의 본질은 역사적 변천과정을 거치면서 다양하게 표현되고 적용되어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비본질적인 사변을 제거하는 일도 교회의 사명이요 과제인 것이다. 그러나 또한 신학적인 정론이 확립되었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교회의 본질을 정의 할 수 없다. 어원적 의미에서 교회는 부름 받은 자들의 모임과 선택받은 자들의 모임으로 요약된다. 부름 받은 자들의 모임(coetus vocatorum)으로 정의하면, 이는 유형적인 본질을 보여주며, 외적인 표식, 즉 세례, 성찬 등의 표식을 가지고 있으나, 이것으로 참된 구원의 증거를 가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많은 사람이 부름을 받았으나 다 선택되었다고는 말 할 수 없으며, 많은 사람이 세례를 받았다고 하여 다 믿는 것도 아니며, 이스라엘 출신이라고 다 이스라엘이 아니기 때문이다. 선택받은 자들의 모임(coetus electorum)으로 정의를 하면, 교회가 전적으로 하나의 관념(idea)에 머물며, 실재(實在) 속에는 완전히 나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선택을 받았지만 아직 교회의 회원이 되지 못한 사람들도 있을 수 있으며, 선택은 받았으나 아직 믿지 않고 하나님의 의중이나, 하나님의 결정 속에만 있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며, 그들은 잠정적으로 교회 회원으로 존재한다고 말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아직은 교회회원이라고 말 할 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개념은 완성될 교회에만 적용이 가능하며, 현재 경험될 수 있는 실재로서의 교회는 될 수 없으므로 불가시적인 교회라고 말 할 수 있다. 이러한 어원적 정의는 너무 관념적인 정의가 될 수밖에 없으므로 이 두 가지 요약만으로 는 교회의 본질을 모두 대변할 수 없다. 교회는 신학적으로 정의하면, 웨스트민스트 신앙고백에 의하면 교회는 무형교회와 유형교회로 나누어 표현되고 있다. 전체적인 혹은 우주적인 교회는 무형교회로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총망라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하나로 모인 선택 받은 자 전체의 수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것은 그리스도의 신부요 몸이며 만유 안에서 충만케 하시는 충만이다. 유형 교회도 역시 복음 아래서 전체적이요 우주적이며, 온 세계에 퍼져서 참된 신앙을 고백하는 모든 사람들과 그의 자녀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은 하나님의 집이요 가족이며 그 교회를 떠나서는 구원 받을 어떤 규정된 가능성도 없다. 요약하면 선택 받고, 신앙을 고백하는 무리가 참 교회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을 실천하지 않으면 교회의 본질은 구현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의 본질을 규정함에는 정론과 함께 정행을 중요한 요소로 취급해야 한다. 비록 예배당 건물에 이 세계의 검정된 모든 신학적인 정의들로 가득 채워 놓는다고 해도, 그것이 빛을 발하지 못하고, 소금으로 녹아지지 못한다면(마5:1-48), 참교회로 정의 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제도적 교회를 지양하고, 사도행전 2장의 초기 예루살렘 교회의 증인공동체를 지향하며, 이를 교회의 궁극적인 존재 목적으로 삼고 실천한 이방인 교회의 선교적 교회와 개혁자들이 정의한 축소하지 않은 교회의 정론(orthodox)과 정행(orthopraxis)을 근간으로 하는 가운데, 디다케에서 교회사역자들에게 적용된 목회 윤리를 실천하는 교회가 참교회의 상이라고 본다. 교회의 본질 규명(糾明)과 규정(規程)을 위한 어원적인 고찰 결과 구약교회의 원 의미는 하나님에 의해 소집된 이스라엘 백성을 지칭하였으며 언어적인 변천과정을 거쳐 신약교회에서는 성도들의 모임으로 정의되었다.하지만 교회가 실제로 하나님이 세상으로부터 불러낸 사람들로 이루어 졌다고 말할 때 이 단어는 언어학적인 고려보다는 실제적인 고려에 의한 성격이 더 강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러므로 교회는 실존에서 본질의 변질을 차단하고 바른 교회의 상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교회스스로 모인 목적에 대한 의미부여를 반복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헬라세계의 일상적인 모임과 다를 바 없게 된다. 둘째,교회의 기원은 하나님의 구속사의 기원으로서 교회에 희망과 소망을 안겨준 사건이다.처음 원시교회는 가정교회의 모습을 띠고 출발하여 회막, 성전,회당교회의 모습으로 변천해 갔다.그러나 원래 하나님께서 원하셨던 교회는 솔로몬의 성전에서 행해졌던 웅장하고 화려한 외면적인 모습이 아니라 말씀에 순종하는 내면적인 신앙의 외연(外延)이었다.이런 사실은 신명기서와 에스겔서의 반성전적,반제도적인 사상과 계시에서 확인되고 있다.신약교회 역시 원시교회와 같은 가정교회의 형태로 출발하였다.그러나 현실교회가 가장 모델로 삼고자 하는 사도행전 2장의 교회는 처음의 전도하는 교회,종말론적인 교회의 상을 지속하지 못하고 시간이 흐를수록 제도적 교회의 형태로 변해 갔다.그러나 사도바울이 사역한 이방교회는 문제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제도적 교회로 나가지 않고 선교지향 적이며,종말론적인 형태를 띠었다.이는 현재 정체되어 있는 현실교회에 선택과 방향성을 제시해 주고 있다고 본다. 셋째, 교회사에 영향을 끼친 교부들과 중세신학자들 그리고 종교개혁자들의 교회이해를 살펴본 결과,그들 대부분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이해하였다.차이점이 있다면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가 유기적 인가,아니면 관계적인가 하는 것이었다.하지만 이런 교리적인 해석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신학 하는 사람의 정신이라고 본다.아퀴나스는 교회의 표지에 교황 권을 첨가 했으며, 유세비우스는 콘스탄틴의 국가와 하나님의 나라를 동일시하여 교회의 종말론적 긴장을 해소시켰다.교황을 교회의 표지로 추가시킨 아퀴나스는 진리를 외곡한 대가로 성 아퀴나스로 추앙되었고,유세비우스는 왕의 측근으로써 부귀영화를 누렸다.이러한 문제는 교회를 정의 할 때 정론만으로는 정의하지 못하게 하는 정당성을 입증 받게 된다.참으로 김명용 교수의 말대로 “하나님의 교회라기보다는 사탄의 공회당이라고 하는 편이 훨씬 더 합당한 교회도 있다.”271)는 말에 동의한다. 넷째,교회와 하나님 나라와의 관계를 신학적으로 살펴보았다.19세기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인간들이 세울 수 있는 그 무엇으로 보았는데 그것은 인간이 도덕적으로 완전해지는 것이라고 했다.그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자유를 한없이 남용(濫用)하고 오용(誤用)했다.그 결과 교회의 종말론적인 긴장은 완전히 해소되었으며 교회는 더 이상 하나님 나라를 대망하지 않게 되었다.비제도적 교회를 고찰한 결과,예수께서 교회를 제정하셨지만 그러나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제도적 교회는 원하시지 않았다는 근거를 사도바울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서 확인 할 수 있었다.그러므로 개혁교회가 제도적 교회를 지양하는 것은 구약교회로부터 신약교회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은 하나님의 뜻임을 확신할 수 있게 되었다. 다섯 번째,교회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교회의 표지와 속성 등을 종합하여 교회의 정의를 내려 보았다.신학적인 의미에서 무형교회가 본래적 의미를 가진 선택받은 자들이라면,유형교회는 수단적 의미의 교회이다.이 두 개념의 교회를 271) 김명용,『열린 신학 바른 교회관』(서울: 장로회신학대학교출판부, 2005), 20쪽. 어원적인 의미로 특징지으면,선택받은 자들의 모임(coetuselectorum)과 부름 받은 자들의 모임(coetusvocatorum)으로 요약된다.문제는 어떤 교회를 기준하여 정의 하느냐 이다.그러나 오늘 현실교회에서 요구되는 교회는 이러한 교리를 담은 정론만으로는 온전한 교회로 정의될 수 없음을 인식하고,정론과 함께 정행을 실천하는 교회를 참교회로 정의하였다.그러나 그 정의를 지키는 데는 종말론적인 신앙이 언제나 전제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교회의 본질을 고찰한 결과 역사속의 교회는 언제나 완전히 부패해 버릴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원래 복음은 규약 상 종교로 세상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종말에 대한 긴장감이 해소되면서 종교적,제도적이 되어버린 까닭도 교회를 부패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이러한 문제는 교회로 하여금 계속 개혁되어야할 당위성을 제공하게 된다.또한 반동(反動)으로 나온 사상도 언제나 진리의 전체성을 보지 못하게 하는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그리고 상황적 요인이나 시대사조의 영향 아래 교회는 항상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교회의 본질이 상황적으로 해석되고 외곡 되어 복음에 근본적으로 모순되게 하는 일도 있었다.이렇게 교회의 본질은 역사적 변천과정을 거치면서 다양하게 표현되고 적용되었지만 그나마 다행스러웠던 점은 그러한 역사 속에서 유기적인 면과 제도적인 면 사이에 간헐적인 긴장관계가 있어 왔다는 사실이다.그러나 오늘 날 개혁교회는 이 두 가지 모두를 수용하여 균형을 이루고자 했지만,결국 제도 쪽으로 기울어지고 만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람직한 교회의 상은 마치 구원의 효과처럼 변함없이 성서와 역사를 통하여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본 논문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었다.그것은 제도적 교회를 지양하고,사도행전 2장의 초기 예루살렘 교회의 증인공동체를 지향하며,이를 교회의 궁극적인 존재 목적으로 삼고 실천한 이방인 교회의 선교적 교회와 종말론적인 교회를 목표하며, 개혁자들이 정의한 축소하지 않은 교회의 정론(orthodox)과 정행(orthopraxis)을 근간으로 하는 가운데,현실교회의 불완전성을 고려하여 항상 개혁을 지향하는 정신을 가지고 실천하며,디다케에서 교회사역자들에게 적용된 목회 윤리를 실천하는 교회이다.

      • 역대기와 에스라서 어떻게 읽을 것인가? : 역대하 36:22-23절, 에스라 1장 1-3절을 중심으로

        안성환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2015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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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로기 시대, 구약 역사서에 대한 연구에서 오랫동안 전반적으로 받아들여졌던 견해는 역대기 상, 하권과 에스라서, 느헤미야서를 본디 한 저자로 서로 연결된 한 작품을 보는 주장이다. 즉 이른바 역대기 역사서이다. 이러한 주장은 최근까지도 이 분야의 지배적인 이론이 되어왔다. 이 견해는 준즈(Junz)로부터 주장되었는데 에스라서의 1/8만이 에스라 자신에 의해 집필되었고 나머지는 다른 이의 작품임을 설득한 이후에 그 다른 이가 역대기 저자라는 사실을 밝혔다. 이 이론은 드라이버(S.R Driver)와 루돌프(W.Rudolph), 노트(M.Note)를 거치면서 신학적으로 다듬어지고 체계화 되었다. 그 중 오늘 논문에서 제기될 역대하 36장 22-23절과 에스라서 1장 1-3절이 역대기 역사서의 통일성을 주장하는 중요한 근거 중 하나이다. 이뿐 아니라 역대기 역사서의 통일성을 주장하는 견해는 더 있다. 역대하의 35장이 바로 에스라서로 연결된다는 에스드라 1서의 증거, 문체나 어휘의 설정에 있어 유사성, 전체적 조망, 관심, 신학에 있어서의 유사성과 같은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역대기 역사서의 통일성에 대한 주장은 1968년 당시 대학원 석사과정 학생이었던 사라 야펫(Sara Japhet)의 ‘언어적’ 유사성에 근거한 논증이 취약하다는 점을 들어 준즈 이후 거의 140여 년 가량 학계의 정설로 받아들여져 온 이 이론을 공격하였다. 그리고 윌리암슨(H.G.M Williamson)은 자신의 케임브리지 박사학위 논문에서 동일저자론의 근거가 된 네 가지 논증을 총체적으로 검토한 후 에스라-느헤미야서는 역대기와 별개의 책으로 다른 저자에 의해 집필되었다는 ‘분리저자론’(thesis of separate authorship)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탈리쉬(Talshir)는 일반적으로 제기 되고 있던 언어학적 논구, 어휘, 어형, 통사론에 대한 분석 연구를 통해 이 두 작품이 히브리어 발전 과정에서 동일한 시기에 속한다는 주장을 반대하면서 이를 토대로는 역대기 저자가 동일인인지 아닌지 판별할 수 없다 주장하고 있다. 이와 같은 분리저자론은 오늘날 특히 영미권을 중심으로 점점 많은 학자들이 수용하고 있는 추세에 있다. 하지만 다른 일군의 학자들은 동일저자론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즉 이들은 준즈와 노트의 가설에 대해 이런저런 수정을 가하면서도 에스라-느헤미야가 역대기의 저자와 무관하게 형성된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다. 그래서 역대기와 에스라-느헤미야서의 저작권 문제를 둘러싼 최근의 논쟁을 검토한 베킹(Bob Becking)은 자신은 분리 저작설이 더 설득력이 있다고 보지만 동일저자설 역시 여전히 강하게 옹호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결론지었다. 이처럼 역대기 역사서의 통일성에 대한 주장과 이를 반박하는 주장은 역대기 역사서의 최종 편집자를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논의이기 때문에 현재까지 서로 팽팽히 맞서고 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요구되는 문제는 상반된 견해에 대한 우리의 태도이다. 다시 말해 결정되지 않은 주장들 속에서 역대기 역사서를 어떻게 읽고 이해할 것인가 하는 물음이다. 이러한 물음에 대한 대답은 상반된 주장을 충분히 그리고 분명히 이해해야만 답할 수 있을 것이다.

      • 후기자유주의 설교학에 대한 연구 : Charles L. Campbell을 중심으로

        김영규 장로회신학대학교 대학원 2010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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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지금까지 찰스 캠벨의 설교 신학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찰스 캠벨의 신학을 구체적으로 고찰하기 위해서 먼저 연구 동기와 목적, 그리고 범위와 방법론을 밝혔다. 급변하는 한국의 시대 상황에 따른 교회와 설교 강단의 커다란 변화의 흐름 속에서 전통적인 방법만을 고수하는 한국 교회의 현황을 이야기하였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작된 ‘새로운 설교학 운동’은 이러한 전통적인 방법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새로운 방법론적인 틀로 등장하였지만, 이 방법도 설교에 대한 신학적인 분석이 약하고 설교의 외적인 형식에 관심을 기울였다고 보는 비판적인 시각으로 분석하였다. 그리고 설교의 현장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선포되지 않고 세상의 방법들과 지식들과 기복적 요소들이 가득한 작금의 설교 현황을 보면서 본 논고를 시작하였다. 설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핵심이 빠져버린 설교에 대해 비판하면서 찰스 캠벨은 설교에 있어서 예수를 선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어서 찰스 캠벨의 신학적 토대가 되는 후기자유주의 신학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살펴보았다. 먼저는 미국의 예일대 신학부를 중심으로 해석 일어난 신학 운동인 후기자유주의의 역사적 배경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자유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시작된 후기자유주의 신학은 기독교의 정체성에 있어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강조한다. 다음으로 후기자유주의 신학의 신학적 특성과 의의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았다. 후기자유주의 신학은 성경 서사의 중요성을 다시 회복시켰고, 해석 공동체인 교회에 대한 강조를 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그 다음으로 찰스 캠벨의 후기자유주의 설교 신학에 대해서 구체적 항목들을 가지고 분석하였다. 먼저는 그의 설교 신학적인 토대인 후기자유주의 설교 신학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후기자유주의 신학자이자 찰스 캠벨의 설교 신학의 토대가 되는 한스 프라이의 관점을 살펴보면서 복음서의 서사에 내재되어 있는 독특한 귀착적 논리와 그 중심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다음으로 새로운 설교학 운동을 설명하였다. 찰스 캠벨은 새로운 설교학 이라는 단어 자체를 비판하면서, 새로운 설교학 운동이 말하는 개인적이고 체험적인 사건으로서의 설교를 비판하면서 ‘경험’의 한계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경험’이 아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이야기의 관점에서 성경이 읽혀져야 한다고 말한다. 중요한 그의 신학적 토대인 공적신학에 대한 그의 접근은 교회가 공적 공동체로서 기독교적 관점에서 윤리적 가치관을 다른 전통이나 학문과의 대화를 통하여 제시하고 기여하는 것으로 발전시켰다. 이어서 찰스 캠벨이 말하는 설교학이 논점이 네 가지로 제시되고 있다. 첫 번째로 설교에 있어서 이야기의 활용이다. 캠벨이 말하는 이야기는 새로운 설교학 운동의 이야기와는 다르다. 새로운 설교학 운동의 주된 관심이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청중의 삶에 이해시킬 것인가?”였다면, 캠벨의 관심은 “예수가 누구인가?” 그 자체이다. 여기서 예수의 서사적 삶(삶-죽음-부활)은 그 어느 것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그분의 독특한 정체성을 선포한다. 캠벨은 새로운 설교학 운동의 중요한 설교 신학자들에 대한 비판을 하면서, 그의 설교학에 있어서의 이야기의 활용에 대해서 설명해주고 있다. 둘째로, 캠벨의 설교신학에 있어서 핵심인 교회를 세우는 설교에 대한 내용을 다루었다. 찰스 캠벨의 설교 신학에서 설교의 궁극적 목적은 청중 개개인에게 경험적인 사건을 느끼도록 해주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세우는 것”(building the church)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공동체로서의 교회를 강조할 수 있는 설교를 진행함에 있어서 교회를 매개로 청중들과 본문을 연결시킬 것을 제안하고 있다. 이렇게 설교가 개인적이고 체험적인 사건을 넘어서서 교회를 세워가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찰스 캠벨은 그의 설교 신학을 개진하고 있다. 셋째로, 설교의 윤리성에 대해서 설명하였다. 설교가 선포된 내용을 그들의 삶의 현장에서 살아내는 것을 포함하는 것을 말하면서, 기독교의 윤리는 율법과 복음 사이의 차이로 지배받는 것이 아니라 창조, 죄, 구속, 부활이라는 성경의 내러티브의 지배를 받음을 말했다. 캠벨은 교회를 세우는 설교에 있어서 신학적 비전과 윤리적 실천이라는 특별한 차원을 말하고 있는데, 바울 서신과 산상 수훈을 설교를 예로 들면서, 공동체의 비전을 구현하고 지속하기 위해 윤리적 실천이 필요하고, 그것은 공동체적이고 구체적이여 함을 강조하고 있다. 마지막으로는 권세에 저항하는 설교에 대해서 많은 내용을 할애하여 설명하였다. 설교의 실행으로서의 차원을 캠벨은 “세상을 향한 비폭력적 저항”으로 규정한다. 설교는 세상의 정사와 권세에 저항을 추구하고 세상의 권세가 가지는 죽음의 방식을 ‘폭로하는’ 특성을 가진고 말했다. 그리고 그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서 가장 강하게 드러난다고 말하면서, 설교는 죽음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로부터 사람들을 해방시키며, 죽음의 권세를 향하여 승리를 선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더 나아가 캠벨은 설교는 세상의 모든 권세와의 극적인 대결이며, 설교의 가장 중심적인 목적은 “영적 전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죄악의 권세로부터, 세상의 모든 권세로부터,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백성답지 못하고, 교회를 교회답지 못하게 하는 모든 억눌림의 세력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영적전쟁이 바로 설교여야 한다고 그는 강조하고 있다. 위와 같은 찰스 캠벨의 설교 신학을 근거로 하여 찰스 캠벨이 내한하여 2007년 10월 11일 장로회신학대학교 한경직 기념 예배당에서 선포했던 “십자가의 어리석음”이라는 설교의 전문을 싣고, 그의 설교 신학을 토대로 하여 그의 설교를 분석해 보았다. 다음으로 찰스 캠벨의 설교 신학에 대한 평가를 하였는데, 그의 설교 신학의 공헌과 더불어 한계점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한계점은 주로 그의 설교 신학에 대한 한계와 더불어, 그의 설교 신학의 토대인 후기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한계를 제시하였고, 복음주의 신학에서 바라보는 찰스 캠벨의 설교 신학에 대한 비판과 한계도 제시하였다. 그 다음으로 찰스 캠벨의 신학을 통하여 본 한국교회의 설교에 대한 평가를 분석해보았다. 한국 교회의 ‘뒤틀려진’ 모습들은 반 기독교적 정서를 심화시켰고, 본래의 모습에서 왜곡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모습을 설교사역과 관련하여 네 가지로 정리하였는데, 그것은 스타주의와 소비자 중심주의, 번영신학, 그리고 설교의 복제와 표절의 문제이다. 이렇게 설교 현장에서 경계해야 할 요소들을 지적하면서 한국 교회를 위한 설교 신학적인 제안을 하였다. 기독교의 설교는 교회를 세우는 설교가 되어야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새롭게 들려줌으로 세상과 교회, 사람들을 말씀을 통해 재창조의 역사를 일으키는 설교가 되어야 하며,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구체적으로 삶 속에 구현하고 수행하는 실천을 필요로 하고, 설교는 세상에 대해 저항과 영적 전투의 특성을 가진다고 정리하였다. 마지막으로 찰스 캠벨의 설교 신학을 요약하고, 정리하며, 한국교회 강단을 위한 필자의 제언을 함으로 본 논고를 마친다. 한 사람의 설교 신학이 시대의 모든 흐름과 문제를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이 될 수는 없지만, 설교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가 사라져버리는 것만 같은 한국 교회의 설교 강단에서 찰스 캠벨의 설교 신학은 그 의의와 중요성이 크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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