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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생에서 ‘여배우’로(Ⅱ) : 1910년대 기생조직의 창극 공연과 대구기생 김남수의 창극 활동 연구 = From Gisaeng to Actress (Ⅱ) : A study on Changgeuk Performance of Gisaeng Organizations and Namsu Kim, a Gisaeng from Daegu, in the 191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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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본고는 1910년대 다동기생조합(茶洞妓生組合)과 한남권번(漢南券番)의 창극 활동과 김남수의 창극 활동을 중심으로 1910년대 정통 기생출신 창극 여성 연행자 등장의 배경과 창극사적 의미를 살피는 연구이다. 1890년 대구에서 태어난 승무와 남도잡가, 단가의 명인이자 다동기생조합과 한남권번 창극의 남역을 맡았던 김남수(金南壽)는 다동기생조합에서 영남기생의 창극공연을 주도하였고, 한남권번 초창기(1917-1919) 취체를 맡아 창극 공연을 주도하며 창극계의 대표적 ‘기생-배우’로 널리 알려졌다. 본고에서는 1914년의 <춘향가> 창극 공연으로 시작되어 1915년 순종어람창극 <춘향가>에서부터 경성구파배우조합의 협조를 통해 창극 구성의 완성도를 추구하기 시작하였던 영남기생의 창극 활동을 기생조직 내부에서 서도기생과 남도기생 간에 존재했던 예풍의 차이와 갈등, 영남기생을 중심으로 주도되었던 다동기생조합창극공연의 혁신적 측면, 한남권번 창설 이후 <구운몽연의>, <몽중가>, <춘향연의> 등으로 본격화된 기생조직의 창극 활동을 중심으로 조망하며, 1910년대 중반부터 후반까지 이루어졌던 기생조직을 통한 창극공연의 발전상과 ‘기생의 조’를 버리고 창극 여배우가 되기를 시도하였던 여성 예인들이 등장하는 1910년대 후반 한국 근대창극사의 흐름을 분석하였다.
    판소리를 지역의 특장으로 삼았던 영남기생은 어람창극의 자부심을 바탕으로 1910년대 전문구극집단과의 연대 속에서 1910년대 중‧후반 본격적인 창극 활동을 전개하였다. 김남수의 연기는 ‘기생의 조’를 강요하던 식민지 남성권력의 시야에서 기생의 추태이자 용납할 수 없는 일탈로 지탄받았으나, 창극 활동을 통해 ‘기생’이 아닌 1910년대 대표적인 창극계의 ‘기생-배우’로서 평가받기에 이르렀다. 기생조직의 창극 공연활동에서 시도된 창작 창극과 진일보한 무대표현은 1910년대 중‧후반 식민지 남성권력에 의해 허용된 섹슈얼리티를 넘어 다양한 자기표현을 시도하던 ‘기생-배우’ 출현의 양상을 보여주는데, 이는 이후 여배우와 여성 대중예술인의 물머리가 된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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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고는 1910년대 다동기생조합(茶洞妓生組合)과 한남권번(漢南券番)의 창극 활동과 김남수의 창극 활동을 중심으로 1910년대 정통 기생출신 창극 여성 연행자 등장의 배경과 창극사적 의미를 ...

    본고는 1910년대 다동기생조합(茶洞妓生組合)과 한남권번(漢南券番)의 창극 활동과 김남수의 창극 활동을 중심으로 1910년대 정통 기생출신 창극 여성 연행자 등장의 배경과 창극사적 의미를 살피는 연구이다. 1890년 대구에서 태어난 승무와 남도잡가, 단가의 명인이자 다동기생조합과 한남권번 창극의 남역을 맡았던 김남수(金南壽)는 다동기생조합에서 영남기생의 창극공연을 주도하였고, 한남권번 초창기(1917-1919) 취체를 맡아 창극 공연을 주도하며 창극계의 대표적 ‘기생-배우’로 널리 알려졌다. 본고에서는 1914년의 <춘향가> 창극 공연으로 시작되어 1915년 순종어람창극 <춘향가>에서부터 경성구파배우조합의 협조를 통해 창극 구성의 완성도를 추구하기 시작하였던 영남기생의 창극 활동을 기생조직 내부에서 서도기생과 남도기생 간에 존재했던 예풍의 차이와 갈등, 영남기생을 중심으로 주도되었던 다동기생조합창극공연의 혁신적 측면, 한남권번 창설 이후 <구운몽연의>, <몽중가>, <춘향연의> 등으로 본격화된 기생조직의 창극 활동을 중심으로 조망하며, 1910년대 중반부터 후반까지 이루어졌던 기생조직을 통한 창극공연의 발전상과 ‘기생의 조’를 버리고 창극 여배우가 되기를 시도하였던 여성 예인들이 등장하는 1910년대 후반 한국 근대창극사의 흐름을 분석하였다.
    판소리를 지역의 특장으로 삼았던 영남기생은 어람창극의 자부심을 바탕으로 1910년대 전문구극집단과의 연대 속에서 1910년대 중‧후반 본격적인 창극 활동을 전개하였다. 김남수의 연기는 ‘기생의 조’를 강요하던 식민지 남성권력의 시야에서 기생의 추태이자 용납할 수 없는 일탈로 지탄받았으나, 창극 활동을 통해 ‘기생’이 아닌 1910년대 대표적인 창극계의 ‘기생-배우’로서 평가받기에 이르렀다. 기생조직의 창극 공연활동에서 시도된 창작 창극과 진일보한 무대표현은 1910년대 중‧후반 식민지 남성권력에 의해 허용된 섹슈얼리티를 넘어 다양한 자기표현을 시도하던 ‘기생-배우’ 출현의 양상을 보여주는데, 이는 이후 여배우와 여성 대중예술인의 물머리가 된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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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This paper examines the background and the meaning of the appearance of female performers with the origin of authentic Gisaeng, focusing on Changgeuk activities of Dadong-Gisaeng union, Hannam-Gwonbeon, and Namsu Kim in the 1910s. Namsu Kim, born in 1890 at Daegu, a master ofSeungmu, Namdo-Jabga, and also Dan-ga, led the Yeongnam-Gisaengs' performance of Changgeuk at Dadong-Gisaeng union. She was widely known as 'Gisaeng-actress,' organizing Changgeuk performance as the director of Hannam-Gwonbeon and acting as a male role in the initial stage. The activities of Yeongnam-Gisaengs' Changgeuk performance started with the performance of Chunghyang-ga in 1914, and became to seek higher quality through the cooperation of Gyeongseong old school actress union from Chunghyang-ga, a Changgeuk watched by Sungjong in 1915. This paper surveys the difference and conflict between Seodo(Western province) Gisaeng and Namdo(Southern province) Gisaeng, innovations of Dadong-Gisaeng union's Changgeuk performance mainly driven by Yeongnam-Gisaeng, and Changgeuk performances fully-fledged by performing Guwunmong-yeonui, Mongjung-ga, and Chunhyang-yeonui after the foundation of Hannam-Gwonbeon. In so doing, this paper analyzes the development of Changgeuk performance through Gisaeng organizations from mid to late-1910s, and also modern Changgeuk's history of late-1910s when female artists who tried to become Changgeuk actresses throwing away the 'tone of Gisaeng' appeared.
    Yeongnam-Gisaeng, who had a strong point in Pansori from their origin, progressed the activity of Changgeuk in earnest in the mid and late-1910s. They banded together with a professional old school theatrical organization of the 1910s based on the pride of their show watched by the king. The acting of Namsu Kim faced criticism as 'shameful conduct and unpardonable deviation of Gisaeng' from the view of male authority of the colony who forced 'the tone of Gisaeng,' but finally stood high in estimation as the 'Gisaeng-actress' who represented Changgeuk of the 1910s with her activities, not as just a 'Gisaeng.' Gisaeng organizations' original Changgeuks and stage expression tried through their design and performance show the appearance of 'Gisaeng-actress,' who attempted for a variety of self-expression exceeding the sexuality permitted by the male authority of the mid and late-1910s' colony. It requires attention for its importance as a pathfinder for female performers and pop culture artists of the following gener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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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paper examines the background and the meaning of the appearance of female performers with the origin of authentic Gisaeng, focusing on Changgeuk activities of Dadong-Gisaeng union, Hannam-Gwonbeon, and Namsu Kim in the 1910s. Namsu Kim, born in 1...

    This paper examines the background and the meaning of the appearance of female performers with the origin of authentic Gisaeng, focusing on Changgeuk activities of Dadong-Gisaeng union, Hannam-Gwonbeon, and Namsu Kim in the 1910s. Namsu Kim, born in 1890 at Daegu, a master ofSeungmu, Namdo-Jabga, and also Dan-ga, led the Yeongnam-Gisaengs' performance of Changgeuk at Dadong-Gisaeng union. She was widely known as 'Gisaeng-actress,' organizing Changgeuk performance as the director of Hannam-Gwonbeon and acting as a male role in the initial stage. The activities of Yeongnam-Gisaengs' Changgeuk performance started with the performance of Chunghyang-ga in 1914, and became to seek higher quality through the cooperation of Gyeongseong old school actress union from Chunghyang-ga, a Changgeuk watched by Sungjong in 1915. This paper surveys the difference and conflict between Seodo(Western province) Gisaeng and Namdo(Southern province) Gisaeng, innovations of Dadong-Gisaeng union's Changgeuk performance mainly driven by Yeongnam-Gisaeng, and Changgeuk performances fully-fledged by performing Guwunmong-yeonui, Mongjung-ga, and Chunhyang-yeonui after the foundation of Hannam-Gwonbeon. In so doing, this paper analyzes the development of Changgeuk performance through Gisaeng organizations from mid to late-1910s, and also modern Changgeuk's history of late-1910s when female artists who tried to become Changgeuk actresses throwing away the 'tone of Gisaeng' appeared.
    Yeongnam-Gisaeng, who had a strong point in Pansori from their origin, progressed the activity of Changgeuk in earnest in the mid and late-1910s. They banded together with a professional old school theatrical organization of the 1910s based on the pride of their show watched by the king. The acting of Namsu Kim faced criticism as 'shameful conduct and unpardonable deviation of Gisaeng' from the view of male authority of the colony who forced 'the tone of Gisaeng,' but finally stood high in estimation as the 'Gisaeng-actress' who represented Changgeuk of the 1910s with her activities, not as just a 'Gisaeng.' Gisaeng organizations' original Changgeuks and stage expression tried through their design and performance show the appearance of 'Gisaeng-actress,' who attempted for a variety of self-expression exceeding the sexuality permitted by the male authority of the mid and late-1910s' colony. It requires attention for its importance as a pathfinder for female performers and pop culture artists of the following gener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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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백현미, "한국창극사 연구" 태학사 1997

    2 송방송, "한국근대음악사연구" 민속원 2003

    3 송방송, "한국근대음악사연구" 민속원 2003

    4 권도희, "한국 근대음악 사회사" 민속원 2004

    5 이상우, "토월회를 통해 본 근대 초창기의 여배우 인식 : 이월화, 복혜숙, 윤심덕의 경우를 중심으로" 한국어문학국제학술포럼 39 : 115-145, 2017

    6 김진영, "춘향가 : 명창 장자백 창본" 박이정출판사 1996

    7 박황, "창극사연구" 백록출판사 1976

    8 이능화, "조선해어화사" 동문선 1992

    9 김남석, "조선의 여배우들" 새미 2005

    10 淸柳綱太郎, "조선미인보감" 민속원 1918-, 2007

    1 백현미, "한국창극사 연구" 태학사 1997

    2 송방송, "한국근대음악사연구" 민속원 2003

    3 송방송, "한국근대음악사연구" 민속원 2003

    4 권도희, "한국 근대음악 사회사" 민속원 2004

    5 이상우, "토월회를 통해 본 근대 초창기의 여배우 인식 : 이월화, 복혜숙, 윤심덕의 경우를 중심으로" 한국어문학국제학술포럼 39 : 115-145, 2017

    6 김진영, "춘향가 : 명창 장자백 창본" 박이정출판사 1996

    7 박황, "창극사연구" 백록출판사 1976

    8 이능화, "조선해어화사" 동문선 1992

    9 김남석, "조선의 여배우들" 새미 2005

    10 淸柳綱太郎, "조선미인보감" 민속원 1918-, 2007

    11 이진원, "조선구파배우조합(朝鮮舊派俳優組合) 시정오년기념(始政五年紀念) 물산공진회(物産共進會) 참여의 음악사적 고찰" 한국고음반연구 (13) : 2003

    12 이진원, "조선구파배우조합 시정오년기념 물산공진회 참여의 음악사적 고찰" 한국고음반연구회 (13) : 2003

    13 송혜진, "장안사 및 장안사 소속 ‘일행’의 공연 활동 연구" 한국음악사학회 (53) : 261-290, 2014

    14 이태화, "일제강점기의 판소리 문화 연구" 고려대학교 대학원 2012

    15 김영희, "일제강점기 초반 기생의 창작춤에 대한 연구-1910년대를 중심으로-" 한국음악사학회 (33) : 197-235, 2004

    16 김영희, "일제강점 초기 기생제도에 관한 연구 : 일제의 왜곡과정을 중심으로" (7) : 2007

    17 이화진, "여배우의 등장 근대 극장의 신체와 섹슈얼리티" 한국여성문학학회 (28) : 517-550, 2012

    18 이진원, "박동실의 "창극이 걸어온 길을 더듬어"" 판소리학회 (18) : 309-329, 2004

    19 김석배, "대구지역의 판소리문화 연구" 판소리학회 (43) : 5-42, 2017

    20 신혜주, "단성사 공연 활동에 관한 예술사적 연구 - 1910년-1918년대까지의 전통공연예술을 중심으로 -" 한국음악사학회 (56) : 207-269, 2016

    21 서은숙,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1" 중앙일보사 1973

    22 김석배, "김해 김록주 명창 연구" 국어교육학회(since1969) (42) : 323-348, 2008

    23 권도희, "기생의 가창 활동을 통한 근대에의 대응" 한국시가학회 32 : 353-393, 2012

    24 백두산, "기생에서 ‘여배우’로 - 1910년대 김채란의 활동을 통해 본 ‘극장기생’의 존재양상" 한국현대문학회 (55) : 5-38, 2018

    25 박애경, "기생 : 가부장제의 경계에 선 여성들" (4) : 2001

    26 백현미, "근대극장의 여자들" 연극과 인간 79-83, 2016

    27 백두산, "근대 초기 서울지역 극장문화 형성과정 연구" 서울대학교 2017

    28 정병헌, "교주 조선창극사" 태학사 2015

    29 김영희, "개화기 대중예술의 꽃, 기생" 민속원 2006

    30 백두산, "강용환의 창극 활동 연구 - 가계자료 및 박황 기록의 재검토를 중심으로" 한국현대문학회 (52) : 189-219, 2017

    31 "『조광』『장한』"

    32 "『대한매일신보』『황성신문』『매일신보』『동아일보』『반도시론』『개벽』"

    33 이설희, "『朝鮮美人寶鑑』에 나타난 기생조합과 권번에 관한 고찰" 한예종예술전문사 2009

    34 서유경, "<춘향가> 중 ‘몽중가’의 소통적 특성과 기능" 판소리학회 9 : 1998

    35 김영희, "20세기 초 승무의 형성과정 고찰 - 1900, 1910년대를 중심으로" 국립국악원 (39) : 113-144, 2019

    36 김석배, "20세기 전반기의 경상도 지역의 판소리 문화 연구" 판소리학회 (33) : 35-66, 2012

    37 송미경, "1910년대 판소리 여성 연행주체의 형성과 성장" 고려대학교 대학원 2008

    38 김민수, "1910년대 중⋅후반 판소리와 창극의 전개양상-『매일신보』의 기사를 중심으로-" 국립국악원 (30) : 137-162, 2014

    39 최윤영, "1910년대 기생들의 춤 교육과 공연양상 연구" 중앙대학교 국악교육대학원 2009

    40 백두산, "1910년대 구극단체 ‘김재종 일행’의 공연활동 연구" 한국극예술학회 (61) : 67-103, 2018

    41 문순희, "18~19세기 경기의 활동 연구" 연세대학교 대학원 2007

    42 한국고전번역원, "(국역)진연의궤 2 : 고종 임인년" 한국고전번역원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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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8-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5-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3-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8-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6-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3-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2-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1998-07-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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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68 0.68 0.62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63 0.61 1.138 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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