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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0년대 기생들의 춤교육과 공연양상연구 = Study on education and performance of dance of gisaeng in 191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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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본 논문의 연구 목적은 1910년대에 전통춤을 추었던 기생조합이나 권번들의 춤 교육과 공연형태를 연구하는데 있다. 곧, 1910년부터 1919년까지 기생조직의 변화와 운영, 조합과 권번의 설립과 사업내용을 비롯하여 기생학교의 춤 종목의 교육과정과 공연형태 등을 연차별로 비교하여 그 공연형태를 연구하였다.
    연구범위와 방법은 1910년대 만을 그 범위로 삼았으며, 연구방법은 1910년대 유일한 국문지로서 조선총독부가 관리한 『매일신보』와 그 밖의『기생 창기에 관한 서류철』등의 보고서나 잡지류를 중심으로 문헌연구를 하였다.
    조합이나 권번은 공식, 비공식적인 기생학교를 운영하였다. 1916년 조선총독부의 경무총감의 총감부령(總監部令)으로 일본인측 예기권번과 달리 조선인측의 기생조합들이 1917년부터 주식회사 형태의 권번으로 전환하였다.
    평양의 ‘기성 기생권번’의 경우는 청일전쟁 직후부터 조합사무를 1개월에 기생 1인마다 5원을 거출하는 조합형태를 운영하면서부터 평양기생조합은 기생을 양성하는 서당을 두고 가무와 음악, 그리고 언어를 교육하였다. 기생학교는 성악과 기악분야 그리고 한문과 일본어 등 다양한 교과목과 함께 춤 교과인 「검무」와 「예상우의무」 중심으로 여러 춤 종목을 3년간 교육하였다. 또, 1914년의 다동조합도 가곡과 영산회상 이이에도 「춘향무」·「장상보연지무」·「무고」·「사고무」·「무산향」 등 춤의 기초 교과목으로 학습했다. 1910년대 후반의 조선·한성·종로·평양기성·광주·진주·대구달성·동래 등의 권번에서 소개된 춤 종목은 「봉래의」·「선유락」·「포구락」·「검무」·「항장무」·「가인전목단」 등 궁중정재와 민속무로서 「한량무」와 「쌍승무」·「부채춤」·「산조춤」, 그리고 창작무로서「남무」·「정방별곡」·「사고무」, 외국춤으로「서양댄스」와「일본춤」 등이었다. 이것으로 1910년대에 기생조합이나 권번의 주요 춤 종목은 정재로서 「검무」와 민속무로서「승무」가 중심이었으며, 다른 한편으로 서양과 일본춤이 동시에 교육과 공연이 동시에 이루어진 것이 그 특징이다.
    연차별 특징은 먼저 1910년-1912년에는 정재무보다 승무 공연을 가장 많이 공연하였다. 1913년-1914년에는 ‘이화’라는 기생이 승무공연을 총 18회로 가장 많이 하였으며, 1인무보다는 2인무를 많이 추었다. 2인무의 대표적인 「한량무」를 광무대에서 산옥과 옥엽이 가장 많이 공연하였다. 1915년-1916년에는 공진회에 궁중 춤인 정재 33종목을 일반인을 상대로 공연되었다. 일제하에 「시정오년기념성택무」,「철도축하무」 등 창작춤이 무대에 올랐다.
    기생조합에서 권번으로 전환하는 시기에 다동(대정권번), 광교(한성권번), 한남(한남예기권번), 신창(경화권번) 등이 중심이 되어 공연하였다. 다동기생조합-대정권번은 「사고무」와 「서양무」를 광교기생조합-한성권번은 「항장무」와 「전기춤」, 한남기생조합-한남예기권번은 「구운몽연의」와 「홍문연연의」, 신창조합-경화권번은 「검무」를 중심적으로 부각시켜 공연하였다.
    네(4) 기생조합이 권번으로 전환하였어도 ‘온습회’로 정기적인 발표회를 가졌으며, 공진회 등 박람회 출연으로 전통적인 문화와 춤을 이어가는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1910년대의 기생조합과 권번의 학교를 통하여 정재와 민속춤 교과로 학습한 기생들은 이 시기가 무단정치시기인데도 예술종목, 특히 한국의 춤종목을 전문화시켜 온습회와 자선공연회 그리고 박람회 등을 통하여 전통계승과 일반화 시키는 큰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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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논문의 연구 목적은 1910년대에 전통춤을 추었던 기생조합이나 권번들의 춤 교육과 공연형태를 연구하는데 있다. 곧, 1910년부터 1919년까지 기생조직의 변화와 운영, 조합과 권번의 설립과 ...

    본 논문의 연구 목적은 1910년대에 전통춤을 추었던 기생조합이나 권번들의 춤 교육과 공연형태를 연구하는데 있다. 곧, 1910년부터 1919년까지 기생조직의 변화와 운영, 조합과 권번의 설립과 사업내용을 비롯하여 기생학교의 춤 종목의 교육과정과 공연형태 등을 연차별로 비교하여 그 공연형태를 연구하였다.
    연구범위와 방법은 1910년대 만을 그 범위로 삼았으며, 연구방법은 1910년대 유일한 국문지로서 조선총독부가 관리한 『매일신보』와 그 밖의『기생 창기에 관한 서류철』등의 보고서나 잡지류를 중심으로 문헌연구를 하였다.
    조합이나 권번은 공식, 비공식적인 기생학교를 운영하였다. 1916년 조선총독부의 경무총감의 총감부령(總監部令)으로 일본인측 예기권번과 달리 조선인측의 기생조합들이 1917년부터 주식회사 형태의 권번으로 전환하였다.
    평양의 ‘기성 기생권번’의 경우는 청일전쟁 직후부터 조합사무를 1개월에 기생 1인마다 5원을 거출하는 조합형태를 운영하면서부터 평양기생조합은 기생을 양성하는 서당을 두고 가무와 음악, 그리고 언어를 교육하였다. 기생학교는 성악과 기악분야 그리고 한문과 일본어 등 다양한 교과목과 함께 춤 교과인 「검무」와 「예상우의무」 중심으로 여러 춤 종목을 3년간 교육하였다. 또, 1914년의 다동조합도 가곡과 영산회상 이이에도 「춘향무」·「장상보연지무」·「무고」·「사고무」·「무산향」 등 춤의 기초 교과목으로 학습했다. 1910년대 후반의 조선·한성·종로·평양기성·광주·진주·대구달성·동래 등의 권번에서 소개된 춤 종목은 「봉래의」·「선유락」·「포구락」·「검무」·「항장무」·「가인전목단」 등 궁중정재와 민속무로서 「한량무」와 「쌍승무」·「부채춤」·「산조춤」, 그리고 창작무로서「남무」·「정방별곡」·「사고무」, 외국춤으로「서양댄스」와「일본춤」 등이었다. 이것으로 1910년대에 기생조합이나 권번의 주요 춤 종목은 정재로서 「검무」와 민속무로서「승무」가 중심이었으며, 다른 한편으로 서양과 일본춤이 동시에 교육과 공연이 동시에 이루어진 것이 그 특징이다.
    연차별 특징은 먼저 1910년-1912년에는 정재무보다 승무 공연을 가장 많이 공연하였다. 1913년-1914년에는 ‘이화’라는 기생이 승무공연을 총 18회로 가장 많이 하였으며, 1인무보다는 2인무를 많이 추었다. 2인무의 대표적인 「한량무」를 광무대에서 산옥과 옥엽이 가장 많이 공연하였다. 1915년-1916년에는 공진회에 궁중 춤인 정재 33종목을 일반인을 상대로 공연되었다. 일제하에 「시정오년기념성택무」,「철도축하무」 등 창작춤이 무대에 올랐다.
    기생조합에서 권번으로 전환하는 시기에 다동(대정권번), 광교(한성권번), 한남(한남예기권번), 신창(경화권번) 등이 중심이 되어 공연하였다. 다동기생조합-대정권번은 「사고무」와 「서양무」를 광교기생조합-한성권번은 「항장무」와 「전기춤」, 한남기생조합-한남예기권번은 「구운몽연의」와 「홍문연연의」, 신창조합-경화권번은 「검무」를 중심적으로 부각시켜 공연하였다.
    네(4) 기생조합이 권번으로 전환하였어도 ‘온습회’로 정기적인 발표회를 가졌으며, 공진회 등 박람회 출연으로 전통적인 문화와 춤을 이어가는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1910년대의 기생조합과 권번의 학교를 통하여 정재와 민속춤 교과로 학습한 기생들은 이 시기가 무단정치시기인데도 예술종목, 특히 한국의 춤종목을 전문화시켜 온습회와 자선공연회 그리고 박람회 등을 통하여 전통계승과 일반화 시키는 큰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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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The purpose of this dissertation is to study educational and performance of dance by Gisaeng(妓生) unions or Gwonbeon(券番) who danced traditional dances in 1910s. From changes and operation in Gisaeng organizations through establishment and pursuits to curriculum of dance-related subjects and performance from 1910 to 1919 were all compared and studied.
    In case of Giseong Gisaeng Gwonbeon(箕城妓生券番), they started to manage general office affairs right after the First Sino-Japanese War and also ran a Gisaeng school to teach music, dance, song and language.
    In late 1910s, Gwonbeons of Chosun(朝鮮), Hanseong(漢城), Jongro(鐘路), Pyeongyang Giseong(平壤箕城), Gwangju(光州), Jinju(晉州), Daegudalseong(大邱 達成), Dongrae(東萊) etc. introduced as dance-related subjects formal palatial dance, folk dance, creative dance and foreign dance such as 'Western dance' and 'Japanese dance.'
    The yearly characteristics are as follows. In the 1910-1912 period, the ‘Buddhist dance’(僧舞) was performed more than palatial dance. In the 1913-1914 period, a Gisaeng called 'Yi Hwa'(梨花) held the Buddhist dance performance 18 times, which was the most. In the 1915-1916 period, 33 types of the palatial dance were performed in Gongjin Organization for civilians. Under the Japanese ruling, creative dances such as 'Seongtaek dance dedicated to 5 years of governing'(施政五年紀念聖澤舞) and 'Congratulatory dance on railways' (鐵道祝賀舞).
    During the period when Gisaeng unions were transformed to Gwonbeons, Dadong(Daejeong Gwonbeon), Gwanggyo(Hanseong Gwonbeon), Hannam(Han- namyegi Gwonbeon) and Sinchang(Gyeonghwa Gwonboen) were the major performers. Although the four Gisaeng unions turned into Gwonbeons, they still held performances as and under the name of a study group. The birth of a fair such as Gongjinhoi(共進會) became a milestone of passing traditional culture and dance to the descend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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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purpose of this dissertation is to study educational and performance of dance by Gisaeng(妓生) unions or Gwonbeon(券番) who danced traditional dances in 1910s. From changes and operation in Gisaeng organizations through establishment and pursu...

    The purpose of this dissertation is to study educational and performance of dance by Gisaeng(妓生) unions or Gwonbeon(券番) who danced traditional dances in 1910s. From changes and operation in Gisaeng organizations through establishment and pursuits to curriculum of dance-related subjects and performance from 1910 to 1919 were all compared and studied.
    In case of Giseong Gisaeng Gwonbeon(箕城妓生券番), they started to manage general office affairs right after the First Sino-Japanese War and also ran a Gisaeng school to teach music, dance, song and language.
    In late 1910s, Gwonbeons of Chosun(朝鮮), Hanseong(漢城), Jongro(鐘路), Pyeongyang Giseong(平壤箕城), Gwangju(光州), Jinju(晉州), Daegudalseong(大邱 達成), Dongrae(東萊) etc. introduced as dance-related subjects formal palatial dance, folk dance, creative dance and foreign dance such as 'Western dance' and 'Japanese dance.'
    The yearly characteristics are as follows. In the 1910-1912 period, the ‘Buddhist dance’(僧舞) was performed more than palatial dance. In the 1913-1914 period, a Gisaeng called 'Yi Hwa'(梨花) held the Buddhist dance performance 18 times, which was the most. In the 1915-1916 period, 33 types of the palatial dance were performed in Gongjin Organization for civilians. Under the Japanese ruling, creative dances such as 'Seongtaek dance dedicated to 5 years of governing'(施政五年紀念聖澤舞) and 'Congratulatory dance on railways' (鐵道祝賀舞).
    During the period when Gisaeng unions were transformed to Gwonbeons, Dadong(Daejeong Gwonbeon), Gwanggyo(Hanseong Gwonbeon), Hannam(Han- namyegi Gwonbeon) and Sinchang(Gyeonghwa Gwonboen) were the major performers. Although the four Gisaeng unions turned into Gwonbeons, they still held performances as and under the name of a study group. The birth of a fair such as Gongjinhoi(共進會) became a milestone of passing traditional culture and dance to the descend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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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Ⅰ. 서론 = 1
    • 1. 기존연구상황과 연구목적 = 1
    • 2. 연구범위와 연구방법 = 3
    • 3. 자료의 실태 = 4
    • Ⅱ. 1910년대 기생조직과 사회화 = 6
    • Ⅰ. 서론 = 1
    • 1. 기존연구상황과 연구목적 = 1
    • 2. 연구범위와 연구방법 = 3
    • 3. 자료의 실태 = 4
    • Ⅱ. 1910년대 기생조직과 사회화 = 6
    • 1. 기생의 조직과 운영 = 6
    • (1) 기생과 예기 및 창기의 구분 = 6
    • (2) 조합과 권번의 설립과 사업내용 = 7
    • 2. 기생학교의 설립 = 12
    • 3. 기생들의 공연형태 = 17
    • Ⅲ. 1910년대 기생의 춤 교육과정 = 23
    • 1. 기생학교의 교육과정 = 23
    • 2. 춤 교육과정 = 25
    • Ⅳ. 1910년대 연도별 춤 공연전개 = 29
    • 1. 1910년 춤공연 전개 = 29
    • 2. 1911년 춤공연 전개 = 30
    • 3. 1912년 춤공연 전개 = 30
    • 4. 1913년 춤공연 전개 = 36
    • 5. 1914년 춤공연 전개 = 40
    • 6. 1915년 춤공연 전개 = 46
    • 7. 1916년 춤공연 전개 = 52
    • 8. 1917년 춤공연 전개 = 54
    • 9. 1918년 춤공연 전개 = 59
    • 10. 1919년 춤공연 전개 = 62
    • Ⅴ. 1910년대 춤 공연의 분석 = 66
    • 1. 연도별 공연양태와 비율 = 66
    • (1) 1910-1912년의 춤 공연양태와 비율 = 66
    • (2) 1913-1916년의 춤 공연양태와 비율 = 68
    • (3) 1917-1919년의 춤 공연양태와 비율 = 73
    • 2.조합과 권번별 춤 공연양태와 비율 = 74
    • Ⅵ. 결론 = 77
    • 참고문헌 = 79
    • ABSTRACT = 83
    • 국문초록 = 84
    • 부록 =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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