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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사부와 우산국 복속에 의한 독도의 고유영토론 검토

        김명기 한국이사부학회 2011 이사부와 동해 Vol.3 No.-

        국가의 영토는 ‘고유영토’(inherent territory)와 ‘취득영토’(acquired territory)로 구 분된다. 전자는 국가가 국가로써 성립할 당시에 그 국가의 성립의 기초인 영토를 말하며, 후자는 국가가 국가로써 성립한 이후에 선점 할량-시효 정복 등에 의해 취득한 영토를 말한다. 국제판례는 본원적 권원(original title), 고전적 권원(ancient title), 봉건적 권원 (fend이 title) 등에 기초한 영토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으나 ‘고유영토’라는 용어 는 사용하고 있지 아니한다. 한국정부와 일본정부도 각기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 면서 ‘고유영토’라는 표현은 외교 문서상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있지 않다. 독도는 한국의 고유영토인가? 아니면 독도는 한국의 취득영토인가? 한국의 대부분의 사학자들은 ‘독도는 신라 지증왕 13년(512년)에 이사부가 우 산국을 정복하여 취득한 고유영토이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는 명백히 자기모순 적 표현이다. 이 자기모순적 표현은 한국이사부학회가 정리 해결하여야 할 과제 이다. 한국이사부학회는 이 첫째의 과제 이외에 이사부의 우산국 정복이 합법적이냐 의 둘째 과제, 우산국 정복에 의한 역사적 권원은 언제 현대국제법상 권원으로 대 체되었느냐의 셋째 과제, 그리고 역사적 권원이 대체된 이 후 역사적 권원은 무의 미한 것으로 되었느냐의 넷째 과제를 해결하여야 할 역사적 의무를 지니고 있다. 이 과제를 한국이사부학회가 주도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정부 당국의 적극적 지원이 요청된다. The international judicial precedents have not used the term ‘inherent territory’ while using terms of territorial claims such as ‘original title,’ ‘ancient title,’ or ‘feudal title.’ Neither the Korean government nor the Japanese government is officially using the term, ‘inherent territory’ in diplomaticdocuments when arguing for the sovereignty over Dokdo. Most of the Korean historians describe that “Dokdo is Korea’s inherent territory which Isabu acquired by subjugating Usan-guk in the 13th year of Silla King Jijeung (A.D. 512).” This is clearly self-contradictory. This kind of description is what Korean Isabu Society should correct and settle. In addition, the Korean Isabu Society has other tasks as well, such as proving the legitimacy of Isabu’s subjugation of Dokdo, the time when Korea’s historical title over Dokdo was replaced by a title in terms of the contemporary international law, and if this historical title became meaningless after the replacement. Active support by the Korean government is required for Korea Isabu Society to take the lead to settle these matters.

      • 이사부, 삼척 출항의 재조명

        이효웅 한국이사부학회 2016 이사부와 동해 Vol.11 No.-

        이사부 장군은 신라의 옛 영토를 탈환하기 위하여 육로로 진격하였고, 실직성을 탈환하여 지증왕 6년(505) 실직군주가 되었다. 실직군주로서 신라의 숙원을 해결하기 위하여 북진을 잠시 멈추고 실직에서 이사부 함대를 제작하였다. 이사부 함 대는 실직의 오십천 하류 정라진에 만들어졌는데, 당시 동해안 전체를 보아도 이만한 조건을 갖춘 자연항은 없었다. 정라진 건너불은 우산국과 거리가 가깝고 정 동방향이며 송림으로 싸여있어 파도와 외부의 적으로부터 안전하였다. 또한 인근에서 선박재료를 오십천 강물을 이용하여 쉽게 옮길 수 있으며 배후도시인 실직 성과 실직 제일의 갑자평야가 있었다. 이런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이사부 장군은 북진정책을 잠시 멈추고 왜구의 피해를 막고 동해의 제해권을 확보하기 위하여 우산국 정벌을 먼저 계획하였다. 이 계획은 지증왕의 명령이었는지 아니면 이사부장군의 전략인지 알 수 없지만, 우산국을 복속시켜 공물을 바치게 하였고 신라의 숙원인 왜구의 피해도 막을 수 있었으며 동해의 제해권을 확보하여 신라 가 북진정책을 수행할 수 있는 중요한 단초가 되었다. 1500년 전 울릉도로 간다는 것은 명령과 유망, 표류 셋 중 하나일 것이다. 이사부가 지혜 많은 젊은이고, 우산국 정복이 신라의 숙원사업이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추론해 본다. 삼국시대의 선박 발달에 대한 자료가 부족하여 확인하기 어렵지만, 과연 이사부 전선은 어떻게 생겼을까? 전선에는 돛을 달았을까? 이사부 장군도 이 문제로 선박 기술자들과 많은 토론을 하였으리라 생각된다. 당시 신라 전선은 돛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이사부 전선은 신라 전선 최초로 돛을 달았을 것으로 예측된다. 목우사자를 계획할 이사부 장군이라면 당연히 비밀병기인 전선 제작에 다른 나라의 최신정보를 수집하였을 것으로 예상된다. 우산국을 정벌하기 까지 6~7년이라는 오랜 기간이 걸렸는데 여기에는 전선을 만들기 위하여 여러 번의 시행착오도 있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사부 장군은 실직에서 전선을 만든 후, 하슬라를 탈환하여 국경을 넓히고 하슬라 군주가 되었다. 그 후 군사와 군비를 보충하여 실직의 군사와 함께 512년 6월, 이사부 전선에 목우사자를 싣고 가서 우산국을 정벌하였다. 이사부 장군의 우산국 정벌은 우산국을 복속하여 공물을 얻는 것 보다, 동해의 제해권을 확보하고 신라의 숙원인 왜구들의 침략을 근절 시켰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 남해의 이순신 장군이 23전 23승의 불패 신화와 거북선의 신화가 있다면, 동해의 이사부장군은 한 번의 승전으로 200년간 신라를 평온케 한 목우사자의 신화를 창조하였다. 이사부 장군의 현명한 판단과 지략이 오늘날 울릉도의 부속 도서인 독도와 함께 12해리의 영토와 200 해리의 경제수역을 갖게 되었다. 우리는 이 영토를 한 치의 어긋남 없이 우리의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Commander Isabu’s troops made an attack through an overland route to retake the Shilla’s territory which had been captured by the enemy, Gogureo. He bdcame the ruler of the Siljik province after retaking the province during the king Jijeung’s year in 505. While his army halted attacking for northern territory for a short time, he built fleets of warships to solve a deep-rooted enmity of the Shilla dynasty. Isabu’s fleets were stationed in Jeonglajin which was located in the lower reaches of the Oship river. After searching all over the east coast, he realized no natural port was better than Jeonglajin. The Jeonglajin sand field which faced the east sea and is located near Usan-guk, was safe form enemies and waves because it was surrounded by pine trees. And behind it, there was Siljik’s castle and the fertile Gapja field. In addition, troops were capable of carrying materials for warships by making use of the Oship river. Commander Isabu planned to subjugate Usna-guk at first to defeat the Japanese raiders and make of securing the command of the sea. Because of this condition, he halted his policy for attacking the north for a while. Even though it is not exactly known whether king Jijeung ordered this plan or Isabu made this strategy, it was an important factor to march for the northern border of Shilla kingdom. As a result, Shilla dynasty governed Usan-guk, defended from Japanese invasion, made sure of control on the East sea. It would be one of three things, that is order, drifting, flight from his own country to go to Uleung-do 1500 years ago. Isabu was supposed to be one of the intelligent youths, and conquer of Usan-guk was a long-cherished desire of the Shilla kingdom. Though it cannot be confirmed whether the fleets of the warship was put a sail or not, because lack of historical records, Admiral Isabu would have discussed about sailing with technical experts. Even though it is recorded that the Shilla warships did not set sails, the Isabu’s fleets were supposed to set their sails. Isabu was supposed to gather new informations about foreign countries’s weapon to make wooden lions. It took 6~7 years to conquer Usan-guk. While he was preparing building warships, it was supposed to undergo reaped trial and error. Isabu built the fleets of warships at Siljik, he was appointed the ruler of Haseula after retaking the province. He conquered Usna-guk loading wooden lions on the warships with his navy forces and military preparedness in June in lunar calendar of 512. The subjugation of Usan-guk by Isabu was more meaningful to make sure of ruling the East Sea and got rid of the Japanese raiders than to take a tribute from the island country. One thing was the Turtle Ship myth that admiral Lee Sun-shin had a succession of victories 23 times in the South Sea, the other was Isabu creating the Wooden lion myth that he made the Shilla kingdom a peaceful country for 2 centuries. We now have Uleung-do and Dok-do which is and adjunctive island of Uleung-do. We have a 12 nautical mile territory and 200-mile economic water zone due to the wisdom and strategy of Isabu. We must preserve it and then pass it down to our descendants without ceding and inch of territory.

      • 삼척 ‘이사부(異斯夫) 테마파크’ 조성 기본구상

        김태수 한국이사부학회 2011 이사부와 동해 Vol.3 No.-

        이사부 테마파크의 기본 구상은 독도라는 우리의 해양영토와 동해(東海)에 대한 범국민적인 교육현장이어야 한다는 전제를 가지고 출발한다. 이 시대 우리는 왜 이사부를 깨워 동해바다에 우뚝 세우고 있는가. 이사부의 영정을 왜 20대 후반에 서 30대 초반의 청년 장군 이사부의 모습으로 되살렸는가. 그것은 끊임없이 자행 되고 있는 일본의 ‘독도와 동해’ 침탈야욕을 분쇄하기 위함이다. 이사부가 우산국 정벌을 통해 울릉도와 독도를 우리 영토로 편입한 이래 오늘날까지 지속적으로 실효적 지배를 해오고 있다는 역사성을 강조해야 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 이다. 이사부 테마파크도 그러한 시대정신과 국민여망을 반영하여 주제를 ‘이사부 와 동해’로 하고, 소주제를 1)이사부와 고대해양활동 2)울릉도 독도 수호의 역사 3)독도의 생태와 수중자원 4)동해(東海) 자료관 5)한국의 해양영웅 등 5개로 설정 했다. 이사부테마파크의 위치는 이사부장군이 우산국 정벌의 출항지로 삼았던 삼척시 오분항 일대로 설정했다. 오분리 고성(古城)과 그 아래의 오분항 지역, 그리고 오 십천 하구와 건너편 부지까지 주 사업대상으로 하고, 인근 맹방 장호 갈남 고포 증산 추암까지 보조사업지로 포함시켜 해양체험효과를 극대화시킨다는 구상이다. 이사부테마파크의 공간구성은 진입공간, 주제공간, 체험공간, 놀이공간, 숙박공간, 휴게공간, 주차공간, 다목적공간, 관리공간 등으로 구분했다. 진입공간에는 상징조 형물 등 주제부각 및 감동적인 경관을 연출하고, 주제공간에는 이사부의 국가표준 영정을 모시는 사당(祠堂) 주제관(전시공간) 공연장 해양영웅관 야외공연장 등을 배치하며, 체험공간은 실내와 실외로 나누어 실외의 오십천 하구와 바다에서 이사 부뱃길체험을 하고, 실내에서는 삼척-울릉도-독도 뱃길 답사 외에 다양한 가상현 실체험을 하도록 했다. 놀이공간도 실내외로 구분하여 남녀노소 누구나 이용이 가 능하도록 하고, 숙박공간은 수학여행단 또는 여러 동아리 등 단체관람객들이 사용 하는 공간으로 했으며, 휴게공간에는 기념품점, 음식점, 찻집 등을, 다목적공간은 심포지엄 강의 소규모 그룹활동과 이벤트를 겸할 수 있게 했다. 테마파크는 놀이시설과 같은 하드웨어적인 요소와 함께 소프트웨어적 부분인 쇼이벤트로 구성되는데, 테마파크는 사실상 ‘이벤트랜드’라고 불릴 만큼 이벤트에 대한 의존도가 상당히 높다. 주제에 충실하면서도 관람객들에게 다른 곳에서 맛볼 수 없는 특별한 재미와 감동을 줄 수 있는 요소가 이벤트 프로그램이므로 삼척시 에서는 이벤트의 소재가 되는 이사부와 동해, 해양영웅 관련한 학술적인 성과물과 함께 다양한 콘텐츠 개발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 이사부의 해양개척정신을 이어받아 우리의 해양영토주권을 보다 확고히 하고 신 해양시대를 주도하는 국민교육의 장이요 인재양성의 보고(寶庫)가 될 이사부 테마파크는 마땅히 국책사업으로 추진해야 한다. 오분항과 산성(山城) 일대의 발굴 과 복원, 그리고 이사부 테마파크 조성 사업을 중앙정부에서 직접 주관하고, 건립 후 운영까지 직접 수행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안이라고 본다. The basic concepts of Leesabu begin with the premise that it should be the pan-national site foreducation pertaining to our maritime territory called Dokdo and the East Sea. Why should we awake and erect Leesabu along the East Sea atthis particular time? Why did we resuscitate the portrait of Leesabu to appear as a general in his late 20s to early 30s? That is to defeat Japan’s ceaseless ambition to invade ‘Dokdo and East Sea’. That is exactly why we should emphasizethe historic evidence that Korea has maintained actual control over Dokdo since Leesabu’s subjugation of Usanguk to incorporate Ulleungdo Dokdo. Reflecting the spirit of the time and the national desire, Leesabu theme park established fives themes: ‘Leesabu and East Sea’ with sub-themes: 1) Leesabu and ancient maritime activities; 2) Ulleungdo, the history of the protection of Dokdo; 3) The ecology and aquatic resources of Dokdo; 4) East Sea materials; 5) Maritime heroes of Korea. The location of Leesabu Theme Park was around Obun port, Samcheock-si, where General Leesabu launched his conquest of Usanguk. The main project area covers the ancient castle in Obun-ri, Obun Port area underneath, Osipcheon Estuary and the opposite land while the subsidiary project area includes neighboring Mangbang, Jangho, Galnam, Gopo, Jeungsan, Chuam to maximize the effect of the maritime experience. The spatial organization of Leesabu Theme Park is divided into: access area, theme area, experience area, play area, accommodation area, rest area, parking area, multi-purpose area andadministrative area, etc. The access area will feature theme-highlighting elements and emotional sights such as symbolic sculptures, etc. In the theme area, there will be a shrine dedicated to the standard national portrait scroll of General Leesabu, theme galleries (exhibition space), performance hall, maritime hero gallery, outdoor theater, etc. The experience area will be divided into indoor and outdoor spaces to house: Leesabu ship's course along the Osipcheon estuary and the wider sea; various indoor virtual reality experiences including the ship's course and visit to Samcheock-Ullengdo-Dokdo. The play area will also be divided into indoorsand outdoorsto allow everyone to enjoy, while the accommodation area is dedicated to group visitors including school excursion groups and various societies, etc. The rest area accommodates a souvenir shop, restaurants and cafes, whereas the multi-purpose area is designed to hold symposiums, lectures, small group activities, and events. The theme park is composed of hardware elements such as entertainment facilities as well as software parts like show events. In fact, a theme park is highly dependent upon events to the degree it is also called 'event land'. Event programs are elements that willoffer special fun and excitement that are appropriate to the theme and are unique to the place. Thus Samcheock si should strive to provide academic fruits on the key subjects of events including Leesabu, East Sea and maritime heroes, while striving to develop a range of contents. Succeeding the pioneering spirit of Leesabu, the Leesabu Theme Park will help to reinforce Korea’s maritime sovereignty and be a platform of national education to lead the era of the ocean, therefore it must be executed as a national project. I think it is ideal for central government not only to directly organize excavation and restoration around Obun Port and Mountain castle, and the Leesabu Theme Park establishment project but also to conductits operation upon completion of the theme park.

      • 이사부의 날 어떻게 기릴 것인가?

        전영철 한국이사부학회 2012 이사부와 동해 Vol.4 No.-

        이사부의 우산국 편입 1500주년은 우리에게 있어 동북아시대 해양국가로서 한 반도의 역할이 기대되는 시기에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남해안을 호령했던 충무 공 이순신장군과 서해안과 남해안을 기점으로 해상무역을 개척한 장보고에 비해 동해안의 이사부장군의 국가적인 인물선양은 초보적인 수준에 이르고 있다. 이순신 장군에 대한 선양사업은 국가적인 정책으로 추진되어왔다. 축제만 하더 라도 통영의 한산대첩축제, 진도의 명랑해전축제, 여수의 거북선축제, 출생지인 충 남 아산의 성웅 이순신축제 등 많은 축제들이 있어왔다. 현재 삼척에서의 이사부의 선양사업은 단기적인 1회성 축제에만 머무르고 있어 상시적으로 만날 수 있는 공간의 조성과 프로그램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 이사부 기념관의 조성 등 의미 있는 선양사업이 준비되고 있지만 상시성에 초점을 두고 준비해야 할 것이다. 이사부에 대한 접근에 있어서도 전형적인 문화콘텐츠의 접근방법인 이야기 (story), 상징(symbol), 스펙터클(spectacle)의 3요소를 적절하게 유기적으로 연계하 여 개발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사부의 날을 어떻게 기릴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기억과 추모를 넘어서 미래 지향적인 방향을 가져야 할 것이며 기념사업에 대한 제도화 및 법제화를 통해 지 자체와 정부에서 이사부 정신의 전국화 및 기념사업의 안정화도 동시에 가져와야 할 것이다. 특정일이 아닌 이사부 출항의 근거지였던 삼척에 오면 상시 이사부를 만날 수 있는 공간과 시설,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할 것이며 될 수 있으면 이사부의 날을 전후로 한 축제시기를 조정하여 기념사업에 대한 파급효과를 극대화하는 방안도 마련해야 할 것이다. The 1,500 years since Isabu’s Usan country was incorporated is very meaningful at the moment when the role of the Korean peninsula is very highly expected as a marine country in the Northeastern era. Compared to admiral Yi Sunshin, Chungmugong having ruled over the South Coast and Jang Bogo who pioneered the maritime trade in the bases of the West Coast and the South Coast, admiral Isabu in the East Coast has been honored in the beginning level as a national figure. Honoring admiral Yi Sunshin has been proceeded as a national project. As for the festivals honoring him, there arefestival of Great Battle of Hansan in Tongyoung, festival of Naval Battle of Myungryang in Jindo, Geobuksun festival in Yeosu, and Great Admiral Yi Sunshin festival in Asan, Chungnam, his hometown, and so on. Currently, the honoring project of Isabu in Samcheok is limited as a one-time festivaland there is a need to expand the space and programs for the permanent meeting. Some meaningfulprojects such as founding a memorial hall of Isabu have been prepared but the focus should be on thepermanency. In terms of the approach to Isabu, the three factors as the conventional approach of cultural contents, story, symbol, and spectacle should be organically connected and developed. The issue of how to commemorate Day of Isabu should have a future-oriented approach beyond the memory and tribute and through the systematization and legalization of the honoring project, the nationalization of Isabu’s spirit and the stabilization of his honoring project at the local & central governments should be achieved at the same time. Not limited on a special day, but any time when visiting Samcheok, space, facility and programsto meet Isabu should be provided and if possible, by adjusting the festival period around the Day of Isabu, maximizing the ripple effect on the honoring project should be planned.

      • 해류병 실험을 통해 본 이사부함대의 동해 항로

        이효웅 한국이사부학회 2020 이사부와 동해 Vol.16 No.-

        우리나라에서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수산시험장에서 1932년 동해 해양조사에 따른 해류도를 사용하였다. 80여년이 지난 오늘날에 지구 온난화로 동해의 해류도 바뀌었을 것으로 예상하였다. 이사부함대의 항로를 중심으로 동해의 해류를 알아보고자 직접 고안한 해류병에 이사부해류병이라 명명하고, 2014년부터 2020년까지 해류병 2,020개를 투하하여 57개를 회수하여 동해 해류의 흐름을 알아보았다. 이사부 장군이 505년 실직 군주로 부임하여 ‘왜 7년 동안이나 실직에 있었을까?’ 이사부 장군은 하슬라에 입성하려고 하였으나 고구려의 잔존 세력들이 남아있어 하슬라로 갈 수 없어 적의 후방을 급습하는 수륙양동작전을 계획하면서 전선을 만들었다. 이사부함대는 실직항에서 만들어져 강릉 안인으로 이동하여 상륙작전으로 고구려 군사를 물리치고 우산국 정벌 준비를 하였다. 이사부 장군은 목우사자의 계책으로 우산국을 정벌하고, 이사부함대는 우산국 복속으로 동해의 제해권을 확보하고 신라 수군 진영인 울산항으로 가서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였다. 본고에서 해류병 실험을 통하여 이사부항로에서 해류가 어떻게 이동하는지와 이사부가 수륙양동작전을 감행한 흔적들을 찾아보고, 이사부함대가 이동한 경로를 알아보고자 하였다. 그리고 대한민국 국토 균형 발전과 해양력 강화 차원에서 동해의 중심인 삼척에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동해문화재과 신설과 동해해양유물전시관 건립을 추진해야 한다. In Korea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the current chart according to the Oceanographic Investigation of the East Sea was used in the Japanese Fisheries Experiment Station in 1932. After 80 years, it is expected that the oceanic current of the East Sea today might have been changed due to the global warming. To examine the oceanic current of the East Sea by focusing on the East Sea Route of Isabu’s Fleet, a drift bottle invented by myself was named as Isabu Drift Bottle, and 2,020 drift bottles were thrown into the sea from 2014 to 2020, from which 57 drift bottles were collected. 'Why General Isabu stayed in Siljik for 7 years' after he was appointed as the governor of Siljik in 505? General Isabu tried to enter Haseulla, but he could not go Haseulla because there were lingering threats of Goguryeo. So, he made the front line while planning a feint operation on land and water to carry out a surprise attack on the enemy from behind. Isabu’s fleet was made in the Siljik Port, moved to Gangneung Anin, conducted landing operation to defeat the Goguryeo military, and prepared to conquer Usan-guk. General Isabu conquered Usan-guk with the wooden lions, secured the command of the East Sea after subjugating Usan-guk, and moved to the Ulsan Port, which served as the naval forces camp in Silla, to prepare for the invasion of Japanese raiders. In this paper, how the oceanic current in Isabu’s fleet moved was examined through the drift bottle experiment, the traces of Isabu’s feint operation on land and water and the route of Isabu’s fleet were investigated. Then, new establishment of Donghae Cultural Heritage Division and construction of Maritime Museum in the 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Maritime Cultural Heritage in Samcheok, the center of the East Sea, were proposed for Korea to have the balanced territorial development and strengthen its sea power.

      • 삼척 이사부 축제의 현대적 창출과정 - 이사부의 목사자와 사자 연행예술을 중심으로

        이재완 한국이사부학회 2012 이사부와 동해 Vol.4 No.-

        삼척의 이사부 축제는 지역적 연고가 있던 이사부라는 역사인물을 현대의 축제 의 소재로 활용함으로써 대내적으로는 지역을 대표하는 인물임을 부각시켰으며, 대외적으로는 독도를 비롯한 영토수호의 역사인물임을 드러냄으로써 범지역적 축 제로 확산시키는 효과를 창출해 내었다. 이 연구의 결과 다음과 같은 결과를 도출 할 수 있었다. 첫째, 우륵의 12기에 나타난 사자연행과 이사부의 목사자 전투는 진흥왕 이전 신라사회에 사자문화의 유입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신라의 통용된 사자연행예술은 전쟁에서 강력한 무기로 존재했다. 따라서 이사부가 우산국 정벌에서 사용한 목사 자는 당대에 신라에 유통된 외래문화였으며, 이후 사자는 여러 연행예술로 발전된 것이다. 둘째, 이사부의 우산국 정벌에서는 사자탈과 같은 이동형 목각양식이 이용되었 다. 이것은 이사부의 해군부대가 우산국 전투에서 목사자의 전술을 추구하기 위해 서는 근거리에 접근하여야 했기 때문에, 고정형 목각양식으로는 우산국 사람들을 속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사부의 목사자는 고정형 목각양식이 아니라, 탈과 같은 이동형 목각양식을 추구했음을 알 수 있다. 셋째, 이사부는 삼척 강릉지방의 지역사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과거 강릉단오제에 모셔졌을 뿐만 아니라 현재 삼척 오분동 마을에서도 모 셔지고 있다. 이렇듯 1500년 전 역사인물 이사부는 지금까지 삼척 지역에서 신격화 되어 숭앙받는 역사적 인물인 것이다. 따 라서 이사부 축제는 삼척 지역의 지 역사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이는 축제의 이념적기반 위에서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넷째, 삼척시는 이사부 축제를 국가의 외교문제와 연관시킴으로써 국가와 연계 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하였다. 이사부의 우산국 정벌은 울릉도를 생활권으로 하 고 있는 독도를 포함하는 것으로서 2005년 일본의 다케시마(독도)의 날 재정으로 고조된 한 일 외교문제와 연관된다. 따라서 삼척시는 축제에서 이사부의 소재를 독 도 및 해양에 확장시킴으로써 축제향유 계층을 국민으로 확장시켰으며, 더불어 국 가차원의 지원 계기를 마련함으로써 축제의 경제적 기반을 구축하고자 하였다. 이렇듯 삼척시의 이사부 축제는 기존의 지역 역사인물을 발굴하여 연결시킨 결 과물이다. 이 과정에서 투영된 자치단체의 축제화는 이사부를 포장하는 데 그친 것이 아니라, 지역 경제 활성화라는 취지 아래 다양한 국가사업과 연계함으로써 지역의 문화기반을 마련하게 된 모범 사례라 할 수 있다. Isabu festival of Samcheok has used a historical figure named Isabu from the regionas the subject material of the modern festival and highlighted him internally as the regionally representative figure and presented him externally as a historical hero of preserving the territory including Dokdo. Eventually, these efforts have generated the effects to extendthe event beyond the region. The result of the research on this festival is as follows; First, the lion performance and Isabu’s wooden lion battle appearing in the 12thperiod of Ureuk revealed that the introduction of lion culture into Shilla society occurred prior to King Jinheung. In addition, the directed lion performance popular in Shilla servedas a strong weapon in a battle. Therefore, the wooden lion that Isabuused in the conquest of Usan country was a foreign culture circulated in Shilla at that time and since then, lion has been developed as various directed performances. Second, in Isabu’s conquest of Usan country, mobile wooden forms such as lion masks were used. It was because Isabu’s navy forces had to be close in the battle in Usan country to exercise the wooden lion strategy and could not trick the people in Usan country with fixed wooden forms. Therefore, it can be presumed that Isabu’s wooden lion is not a fixed type wooden form but a mobile wooden form such as a mask. Third, Isabu is a figure that has a very close relationship with the local histories of Samcheok and Gangreung. He was commemorated in the Gangreung Dano festival in the past as well as in obun-dong village, Samcheok currently. Like this, the historical figure, Isabu has been deified in Samcheokarea for 1,500 years and respected as a historical figure. Therefore, Isabu festival has a ground with the regional history of Samcheokarea and this has formed the conceptual ground of the festival. Fourth, SamcheokCity has an opportunity to connect Isabu festival to the country by connecting it to the country’s diplomatic issue. Isabu’s conquest of Usan country included Dokdo whose living zone was ulreungdo and is related to the diplomatic issue between Korea and Japan that was on the upsurge with Japan’s legislation of Day of Dakeshima (Dokdo) in 2005. Therefore, SamcheokCity extended the subject matter of Isabu to Dokdo and the sea in the festivaland extended the enjoying party of the festival to the nationwide people and also intended to establish the economic basis of the festival by preparing the opportunity to receive the national support. Isabu festival in SamcheokCity is a result of exploring a regional historical figure and connecting it. The local government’s efforts to make this as a festival in this process is not only displaying Isabu but also preparing the local cultural basis by ideally connecting to various national projects with the goal of activating the regional economy. It is a model example.

      • 이사부 해양정신과 리더십

        정진술 한국이사부학회 2014 이사부와 동해 Vol.8 No.-

        The naval force of Shilla has been gradually fortified during the defense against Japanese invasion and Isabu conquered Usanguk at the beginning of 6th century by leading the fortified naval force of Shilla. The battleships of Isabu left the port of Samcheok in the afternoon and went towards Ulleungdo Island following the normal direction ocean navigation, which was safe ocean navigation in the primitive ocean navigation ages.The first aspect of maritime spirit of Isabu is the adventurous challenge spirit. The reason why young people of Shilla were not afraid of going out to the ocean is based on the navigation leading to conquest of Usanguk by Isabu, which was an adventure that needed a very special courage at that time. The second aspect of Isabu's maritime spirit is the pioneer spirit. Shilla developed rapidly during the reign of King Jijeung, Beopheung, Jinheung in the 6th century, annexed Usanguk with Gaya, and gained control of Hangang River basin. Isabu played the central role in this territorial expansion. The third aspect of Isabu's maritime spirit is the spirit of great commander of the ocean. The great commanders of the ocean who had an important influence on the direction of development of our country's history include Yi Sun-Shin, Jang Bogo and Isabu. Isabu can be the first great commander of the ocean in our country. The first aspect of Isabu's leadership is establishment of the base of Shilla's naval force. The naval force of Shilla strengthened its base during Usanguk conquest, and repeated its development to demonstrate its ability during the battles that led to the unification of Three Kingdoms. The second aspect of Isabu's leadership is management of state based on "Chuljangipsang", which means that one becomes a general in battleground, and the prime minister in Royal Court. Isabu, who was good at both literary and military arts, laid the foundation of Shilla development through "Chuljangipsang" spirit during more than 60 years of service. 신라 수군은 왜의 침입에 대한 방어과정에서 점차 강화되었고, 이사부는 강화된 신라 수군을 거느리고 6세기 초에 우산국을 정벌하였다. 이사부의 전선들은 삼척포구를 오후에 출항하여 원시항해술시대의 안전한 대양항해술인 정방향 대양항해술에 따라 울릉도로 향했다. 이사부 해양정신의 첫째는 해양 진취적 도전정신이다. 신라 청년들이 바다로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배경에는 이사부의 우산국 정벌 항해가 있었다. 우산국 정벌 항해는 당시로서는 모험이었고 매우 특별한 용기를 필요로 했다. 이사부 해양정신의 둘째는 선구적 영토 개척정신이다. 신라는 6세기 지증٠법흥٠진흥왕 때에 비약적으로 성장하여 우산국과 가야를 병합하고 한강 유역을 장악했다. 이사부는 이러한 영토 확장의 중심에서 활약했다. 이사부 해양정신의 셋째는 계보를 잇는 수군 명장의 정신이다. 우리나라 역사의 전개방향에 큰 영향을 끼쳤던 수군 명장은 이순신, 왕건, 장보고, 이사부라 할 수있다. 이사부는 우리나라 최초의 수군 명장으로 자리매김 될 수 있다. 이사부 리더십의 첫째는 신라 수군의 기반 구축이다. 신라 수군은 이사부의 우산국 정벌작전에서 그 기반이 다져지고, 이후 발전을 거듭해 삼국통일전쟁기에 그 실력이 크게 발휘되었다. 이사부 리더십의 둘째는 출장입상의 국가운영 리더십이다. 출장입상은 전쟁터에 나가면 장수로, 조정에 들어오면 재상으로 활약한다는 뜻이다. 이사부는 문무를 겸전한 인물로 60여 년간 관직에 있으면서 출장입상하며 신라 발전의 초석을 쌓았다.

      • 이사부, 우산국 복속과 그 역사적 의미

        손승철 한국이사부학회 2020 이사부와 동해 Vol.16 No.-

        서기 500년 왕위에 오른 지증왕은 왕의 칭호를 마립간에서 왕으로 바꾸고, 지방 행정구역을 주 · 군 체제로 정비하며, 국호를 ‘덕업일신(德業日新), 망라사방(網羅四方)’의 ‘신라(新羅)’로 정했다. 망라사방이란 신라의 국력을 사방으로 확대해 나간다는 의미이다. 신라는 망라사방의 국가비전을 가지고 사방으로 영토를 확장했고, 특히 동해안으로 진출하면서 우산국과 충돌하였으나, 512년 우산국을 복속함으로서 동해의 제해 권을 확립하게 된다. 그러한 사실은 《삼국사기》 신라본기의 왜 관계 기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현재 한국에서는 이사부(異斯夫)의 우산국 복속 기사를 가지고, ‘한국의 독도영유 권에 대한 역사적 권원(歷史的 權原)’을 주장한다. 역사적 권원이란 역사적으로 권리의 원천이 된다는 의미이다. 즉 이사부가 우산국을 신라의 영토에 편입했다는 것 (fact)이 한국영토라는 권리주장의 시작이며 증거라는 것이다. 우산국 복속에 성공한 이사부는 그 후 병부령이 되어 한강유역과 대가야 정벌을 주도했고, 국사를 편찬하는 등의 과업을 수행하며, 신라가 사방으로 발전하여 삼국 통일의 기반을 다지는데 지대한 업적을 남겼다. 결론적으로 이사부는 독도가 우리 영토라는 역사적 사실을 고증하는 인물이며, 남해의 이순신, 서해의 장보고와 함께 동해의 이사부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한국의 3대 해양영웅이다. King Jijeung who ascended the throne in 500 AD changed title of the king from Maripgan to King, improved local administrative division to state · county system, and set country name to Deokeopilsin, Mangrasabang of Silla, in which Mangrasabang means Silla is expanding its power in all directions. Silla having its vision of Mangrasabang expanded its territory in all directions and as it landed at the Eastern Coast, it clashed with Usan-guk. However, it subjugated Usan-guk in 512 and secured the command of the East Sea. This fact is found in the Wa-related entries in the Silla-bongi of the 《Samguk Sagi》. Currently, Korea claims ‘Historic Title of Korea’s Territorial Sovereignty over Dokdo’ based on the entries about Isabu’s subjugation of Usan-guk. Historic title means it can be the source of the right historically. In other words, the fact that Isabu incorporated Usan-guk into Silla is the proof for the claim of the right that it is Korean territory. Isabu who successfully subjugated Usan-guk gained supreme military power since then, destroyed Han River region and Daegaya, accomplished tasks including compilation of Korean history, expanded Silla in all directions, and resulted in the great accomplishment to the foundation for the unification of the Three Kingdoms. In conclusion, Isabu is the figure who ascertains historical fact that he incorporated Dokdo into our territory and is one of the Korea’s three ocean heroes as Isabu of the East Sea together with Yi Sun-sin of the South Sea and Jang Bogo of the West Sea.

      • 고지도에 나타난 삼척과 우산국

        이상태 한국이사부학회 2011 이사부와 동해 Vol.3 No.-

        삼척군은 본래 실직국(悉直國)이었는데, 신라 파사왕(婆娑王)23년(102)에 신라에 항복하였다. 그 후 지증왕(智證王) 6년(505)에 실직 군주(軍主)를 설치하고 김이사 부(金異斯夫)를 군주로 삼았다. 경덕왕(景德王)16년(757)에 삼척군으로 고쳤다. 고 려 성종(成宗)이 척주 단련사(陟州團練使)로 고쳤고, 현종(顯宗)이 현령으로 강등시 켰으며, 우왕3년(177)에는 지군사(知郡事)로 승격하였다. 조선 태조 2년(1398)에는 목조(穆祖)의 외가 고을이었으므로 삼척부로 승격하였고, 태종 13년(1413)에 삼척 도호부로 고쳤다. 독도가 우리나라의 영토가 된 것은 신라 지증왕 13년(512)에 이사부를 시켜 우 산국을 병합한 1500년 전부터이다. 삼국사기 의 기록에 의하면, 신라 지증왕 13 년(512) 여름 6월에 우산국(于山國))이 귀순 복종하여 해마다 토산물을 바치기로 했다. 우산국은 명주(溟州)(현재 강릉)의 정동쪽 바다에 있는 섬으로 울릉도라고도 한다. 그 섬의 크기는 1백 리인데, 땅이 험준하여 그곳 사람들이 이를 믿고 신라 에 복종하지 않았다. 지증왕은 이찬 이사부를 하슬라주의 군주로 삼아 우산국 사 람들을 꾀로써 굴복시키도록 하였다. 이사부는 왕명을 받고 나무 사자를 많이 만 들어서 배에 싣고 그 나라 해안에 이르러 거짓으로, ‘너희가 만약 항복하지 않으 면 이 사나운 짐승을 놓아서 너희들을 밟아 죽이겠다.’고 하니 우산국 사람들이 무서워서 곧 항복하였다. 독도는 우리나라에서 간행 된 많은 지도를 통하여 살펴 본 것처럼 512년에 신라의 영토로 편입한 이래 우산도(于山島)라는 이름으로 불리어 온 한국의 영토였 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서양의 포경선들이 출몰하여 독도를 마치 무주지인 것 처럼 오인하고 리앙쿠르 암이나 호넷트 섬 등으로 명명하여 혼란을 가져왔다. 일 본은 오랫동안 울릉도를 죽도, 독도를 송도라고 부르며 한국의 영토로 인정하였 다. 그러다가 갑자기 울릉도를 송도라고 부르고 독도는 리앙코島라고 불렀다. 1905년에는 독도를 불법적으로 그들의 영토로 편입하고는 독도를 죽도(竹島)라고 칭하였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많은 지도들이 증명하는 것처럼 독도는 엄연한 한국 땅이다. 일본에서 간행된 공식지도에도 독도를 한국의 영토로 인정하였으며, 19세기 들어 와 제작된 80여종의 일본지도에서도 독도는 한국 땅으로 인정하였다. 일본이 제 국주의 정책을 쓰면서부터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우기기 시작하여 오늘날까지도 억지를 부르고 있다. 그 외에도 서양에서 제작된 많은 지도에서도 독도는 한국 땅 으로 인정하고 있다. 6세기부터 우산도라고 불러 온 독도는 그 명칭이 어떠하던 간에 변함없는 우리 의 영토이다. Samcheok-gun was originally Siljik-guk (“guk” means “state”) but surrendered to King Pasa of Silla Kingdom (one of the three ancient kingdoms of Korea) in year 102. After that, King Jijeung established Siljik-gunju and assigned Kim lsabu as the governor in 505. King Gyeongdeok renamed as Samcheok in 757. Goryeo’s King Seongjong renamed as Cheokju-dallyonsa and King Hyeonjong degraded as hyeollyeong and again upgraded by King Uwang (1377) as Jigunsa. In the 2nd year of King Taejo (1398) in Joseon Dynasty, Samcheok was upgraded to Samcheok-bu and King Taejong changed to Samcheok-dohobu in 1413. Dokdo became a part of Korean territory 1500 years age when Silla’s King Jijeung ordered Isabu to subjugate Usan-guk. According to the record of Samguk Sagi (History of the Three Kingdoms), Usanguk submitted to and obeyed Silla in June, the 13rd year of King Jijeung (512), so as to offer its local products. Usanguk is the island located in due east sea of Myeongju (present-day Gangneung) and also called as Ulleungdo. People of the island would not obey Silla since the size of island is 100 ri (400km) and rough. However, King Jijeung assigned Isabu as the governor of Haseula-ju (renamed from Siljik) to make Usanguk to surrender by employing a stratagem. Isabu received the King’s order and loaded a ship with wooden lions. Isabu reached to Usanguk’s coast and said, “If you do not surrender, I will let these wild beasts loose so that they may kill all of you.” Usanguk People were so scared and surrendered immediately. Dokdo, as examined from many maps published in Korea, was a part of Korean territory which had been called as Usando since its incorporation into Silla in 512. In the 20th century, with emergence of Western whaling ships, Dokdo was misunderstood as an ownerless island and was called Liancourt Rocks or Hornet Island, which has caused confusion. Japan has also called Ulleungdo as Jukdo (Bamboo Island, Takeshima in Japanese) and Dokdo as Songdo (Pine Tree Island, Matsushima in Japanese) and recognized them as Korean territory. But all of sudden, they called Ulleungdo as Songdo (Matsushima) and Dokdo as Riyangko (Japanese name for the French whaling ship “Liancourt,” that had first discovered Dokdo with Western eyes and given rise to the name “Liancourt Rocks”). By 1905, they illegally registered Dokdo as their territory and named Dokdo as Jukdo (Takeshima). However, as lots of Korean maps prove, Dokdo is clearly Korean territory. Official maps published in Japan also recognized Dokdo as Korean territory and 80 different kinds of map published in the 19th century also shows Dokdo as Korean territory. Since Japan used imperialism policy, they have insisted Dokdo as Japanese land and it continues till today. Aside from this, many Western maps also recognize Dokdo as Korean territory. Dokdo called as Usando Island from 6th century will forever Korean territory whatever the name is.

      • 이사부와 장보고의 해양활동과 국가발전

        강봉룡 한국이사부학회 2011 이사부와 동해 Vol.3 No.-

        이사부는 왕족 출신의 신라 최고 귀족으로서 신라의 대외팽창과 국가체제 정비 에 앞장 선 국가의 동량이었다. 그가 살았던 6세기 전반은 신라가 크게 융성하고 뻗어가는 시기였다. 그는 국사 편찬을 건의함으로써 내치의 기틀을 마련하는데 큰 획을 그었고, 동해안 진출과 남해안의 가야 진출을 주도함으로써, 동남해 연안항 로에 대한 주도권 확립을 가능하게 하였다. 이는 이후 신라의 국가 발전에 절대적 원동력이 되었다. 이사부의 우산국 정벌은 동해안 패권을 확립한 것을 의미하고, 금관국의 복속은 김유신 가문을 영입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신라의 삼국통 일이 이사부와 김유신의 연장선에서 이루어진 것이라 할 수 있으니, 이것이 이사 부가 성취한 해양진출의 큰 의의이다. 장보고는 섬 출신의 일개 평민 신분으로 이사부와는 신분적으로 대조적이다. 그 가 살았던 9세기 전반은 국가가 주도하는 공무역보다는 개인 능력자가 주도하는 사무역이 발전하는 시기였다. 바로 이 시기에 장보고는 당으로 건너가 군인으로 출세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해양무역의 최고 거상으로 성장하였다. 828년에는 신 라에 돌아와서 흥덕왕의 지지를 얻어내 완도에 청해진을 건설하여 동아시아 해상 무역을 주도하는 기지로 활용했다. 그는 단순한 무역업에 그치지 않고 서남해지역에 대규모 청자생산단지를 건설 하여 신라를 중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자기를 생산하는 나라가 되게 했으 며, 한 중 일의 바닷길을 잇는 이른바 ‘장보고항로’를 활성화시켰다. 청자생산단지는 이후 고려청자로 이어져 전성기에 이르렀고, ‘장보고항로’는 고려시대에도 핵심 항 로로 지속 발전해 갔다. 결국 이사부는 ‘원조 해양진출의 영웅’, 장보고는 ‘본격 해양진출의 영웅’이라 평 가할 수 있겠다. Isabu, a high nobility from royal family, was the pillar of Silla who led the foreign expansion and the organization of the national system. The time of Isabu’s life, the early sixth century, was when Silla was thriving and expanding. Isabu established the base of home administration by suggesting the compilation ofnational history while enabling Silla to establish the hegemony over the south and east coastal sea routeby leading the advancement to the East Sea and the conquest of Gaya on the South Coast. These achievements became the driving force of Silla’s later national development. Isabu’s subjugation of Usan-guk means that Silla gained supremacy over the east coast, and the subjugation of Geumgwan Gaya means that the family from which Kim yu-shin would later be born now entered Silla. This is the significance of Isabu’s overseas advancement since the unification of three kingdoms by Silla was achieved by Kim Yu-shin. Unlike Isabu, Jang Bo-go was a commoner from an island. The time of Jang Bo-go’s life, the early ninth century, was when private trade was growing rather than public trade led by the government. It was under that historical circumstance that Jang Bo-go went to the Tang Dynasty where he became successful as a military man, and, with that basis, grew to be a business magnate. He came back to Silla in 828. With the support of King Heungdeok, he established Cheonghaejin in Wando Island to use it as a base for leading the overseas trade within the East Asia. Beyond simply being a trading businessman, Jang Bo-go made Silla the second best country in the world, next to China, in porcelain, by constructing a large-scale celadon production site in the southwest coast region. Moreover, he activated the so-called “Jang Bo-go sea route,” which connected Korea, China, and Japan. The celadon production site became the place where the famous Goryeo Celadon was produced, and the “Jang Bo-go Sea Route” kept being developed even throughout the Goryeo Period as an important sea route. In conclusion, we can evaluate Isabu as “the hero of original overseas expansion” and Jang Bo-go as “the hero of overseas expansion in earn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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