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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 20년(1945~1965) 한국 경제학계와 연세대학교 상경대학의 경제학 교육

        정진아 ( Jin A Chung ) 연세대학교 경제연구소 2015 延世經濟硏究 Vol.22 No.3

        이 글에서는 해방 20년 한국 경제학계의 동향 속에서 연세대학교 상경대학의 경제학 교육을 살펴보았다. 해방후 연희전문학교 상과는 연희대학교상경대학의 경제학과, 상학과 체제로 전환되었다. 연희대학교 상경대학에서는 고전학파, 역사학파, 신고전파, 케인즈경제학과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이론적 탐색이 이루어졌고, 한국의 경제현실과 국제경제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6.25전쟁이 체제전의 성격을 띰으로써 많은 경제학자들이 월북, 납북 또는 사상적 이유로 대학을 떠났고, 교수진의 공백이 심각했다. 연세대학교 상경대학은 모교 출신 인재를 영입함으로써 교수진의 공백을 메꾸었고, 학생들은 상경연우회의 연구조사활동과 연구발표회를 통해 수업내용의 결손을 보완해나갔다. 연세대학교 상경대학은 1950년대 후반 상경대학 재편을 단행하면서 자기정체성을 분명히 정립하였다. 경제학과의 방향을 종래의 이론 중심에서 기업경영과 정책수립에 필요한 실천이론을 발전시키는 쪽으로 전환하고, 기업경영 실무를 집중적으로 연구할 상학과와 경영학과를 상경대학의 틀 속에서 함께 발전시키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후 연세대학교 상경대학은 워싱턴대학프로젝트를 통해 미국의 경영학 이론과 사례연구 중심의 커리큘럼, 토론식 교수법 등의 신사조를 전면적으로 수용함으로써 기업경영의 실무적 기반을 쌓고자 경영학과와 한국의 경제이론과 경제정책을 실증적,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한국적 실천경제학’을 추구한 경제학과의 양대 학풍으로 정립되었다. This study purposed to examine the trends of the circle of economics in Korea during the 20 years after the Liberation, focusing on Economics education in the College of Commerce and Economics of Yonsei University. After the Liberation, the Division of Commerce of Yonhee School was settled into the Department of Economics and Department of Commercial Science under the College of Commerce and Economics in 1950. With the outbreak of the Korean War, which was a collision between the two systems, many economists left the university as they went or were kidnapped to North Korea or for ideological reasons. The College of Commerce and Economics of Yonsei University filled the gap by inviting competent people among its alumni, and the students compensated the loss of class through research activities and seminars led by the Commerce and Economics Research Club Y.S.U. The College of Commerce and Economics of Yonsei University established its self identify clearly through the reorganization of the college in the late 1950s. As the Washington University Project was promoted in the late 1950s, the College of Commerce and Economics of Yonsei University was finally settled to have the Department of Business Administration that tried to establish the theoretical and practical foundation of business administration by accepting new trends such as American business administration theories, case study oriented curriculums, and discussion based teaching methods. And the Department of Economics that pursued “Korean style economics” from a subjective position by analyzing economic issues in Korea positively and critically and suggesting alternati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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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 전후 최호진(崔虎鎭)의 학문세계와 학술활동

        오진석 ( Jin Seok Oh ) 연세대학교 경제연구소 2014 延世經濟硏究 Vol.21 No.2

        본고는 권력과 금전의 유혹에 초연한 자세를 유지한 채 오로지 강단과 연구실을 지키며 후학 양성과 연구에 매진해 한국 경제학의 발달과정에서 큰업적을 남긴 崔虎鎭을 대상으로 그의 학문세계의 형성과 전개과정을 검토한 논문이다. 그는 집안의 내력과 관련하여 일찍부터 투철한 배일의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보성전문 법과에서 수학하면서 김광진과 백남운의 아시아적 생산양식론을 둘러싼 논쟁을 지켜보며 경제사연구에 뜻을 굳히고 나름의 연구방향을 모색하였다. 이후 구주제대에 유학하면서 전공을 경제학으로 바꾸고 당대 세계학계의 유력한 경제이론들을 비교적 균형 잡힌 시각에서 체계적으로 배웠다. 특히 자본론과 국부론 모두를 정독시키며 좌우에 치우치지 않은 균형 잡힌 경제학 연구를 강조했던 지도교수 波多野鼎에게 큰영향을 받았다. 유학시절 형성된 열성적인 학업태도의 결과 그는 1942년에 『근대조선경제사』를 발간하기에 이르렀다. 해방 이후 그는 백남운의 영향 아래 학문과 지식을 활용해 신국가건설에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해 조선학술원, 민족문화연구소 등에서 활약하고 신설된 경성대학 경제학과의 교수가 되어 이 학과를 한국 최고의 경제학 고등교육기관으로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한국어로 된 경제학 교과서 저술에 힘을 기울였고, 한국경제사연구에도 매진하여 『근대조선경제사연구 제1권』을 저술하였다. 그는 이 책에서 아시아적 생산양식론을 전면적으로 도입하여 한국사회의 ‘아시아적 정체성’을 해명하는 데에 연구의 목표를 두었다. 그러나 그의 ‘정체성론’은 ‘아시아적’이라는 특수성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특수성의 농도에 따라서는 보편적인 세계사적 발전법칙의 관철을 부정하는 이론으로 연결될 우려가 있었다. 이 때문에 1960년대에 들어서 신진 학자들에 의해 이른바 ‘내재적 발전론’에 입각한 연구들이 등장하면서 그의 연구는 극복대상으로 설정되었다. This paper examines the academic world and career of Choi Ho-chin, who had a profound effect on the development of both the field and the later scholars of Korean economics. Choi Ho-chin was well-known for keeping his research and lectures against the influence of both political power and money. Due to his family background, Choi had anti-Japanese sentiments from a young age and observed the debate between Kim Gwang-jin and Paik Nam-woon on the Asiatic mode of production while studying at Bosung College. He decided to study economic history and find his own research path. While studying at Kyushu Imperial University, he switched his major to economics and pursued a systematic, but comparatively balanced, study of the main economic theories of the day. Choi Ho-chin was particularly influenced by his academic adviser, Hatano Kanae, who required him to closely read The Wealth of Nations and Das Kapital, while maintaining a balanced perspective in his economic research. The results of his experience studying abroad were apparent in his work published in 1942, Modern Joseon Economic History. After Liberation in 1945, Choi was influenced by Paik Nam-woon to use his studies and knowledge in contributing to the establishment of the new nation. Choi Ho-chin participated in the Joseon Academy and the National Culture Research Institute, as well as becoming a professor in the department of economics at Gyeongseong University. He published various economics textbooks in Korean and continued with his research into Korean economic history, publishing volume one of his Studies of Modern Joseon Economic History. In this book, he used the Asiatic mode of production to explain the “Asian stagnation” of Korean society. However, his “stagnation theory” was based on a particularly Asian characteristic, which could be used to challenge the conventional perspective on the principles of global development. Consequently, his research influenced scholars in the 1960’s who advanced “internal development theory” in order to overcome his rese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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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본주의 경제윤리와 경제적 정의에 대한 고찰

        권영경 연세대학교 경제연구소 1997 延世經濟硏究 Vol.4 No.1

        일반적으로 오늘날 시장경제기구가 다른 경제기구에 비해 상대적인 탄력성과 유연성을 보이고 있는 것은 경제수행과정에 낮은 비용이 든다는 데서 주장되어지고 있다. 그러나 하나의 '제도', 경제기구로서의 시장의 상대적 우월성은 명령이나 권위, 억압, 관습 등 경제외적인 요소에 의존하지 않고도 경제질서를 가능케 하는 내적 기제를 담지하고 있다는 데서 찾아져야 할 것이다. 즉, 비경제적 근거에서 제시된 가치규범에 의존하지 않고도 "질서있는 경제시스템"을 구축한다는데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경제의 시장은 많은 경제관계의 왜곡과 불평등, 때로는 폭력적 현상까지도 관찰하게 한다. 이는 헨드릭 하우태커(Hendrik S. Houthakker)가 이야기하듯이 경제적 합리성 개념에는 기대욕망의 극대화 외에 타인 및 사회적 가치에 대한 배려가 포함되고 있어야 하며, '파레토최적'의 상태도 公同善이라는 가치가 내재되어 있음을 간과한 데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시장은 미시적 차원에서는 경제인들이 행위규준으로서의 경제윤리 덕목을 체현하고 있어야 하며, 거시적 차원에서는 경제적 정의의 문제가 모든 경제인들의 자발적 합의에 의해 수용되고 있어야 하나의 '사회질서(social order)로서 구축됨을 간과한 것이라 하겠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시장의 합리성은 윤리적 합리성까지 포함하는 것이며, 바로 여기에 시장기능의 우월성이 있다는 문제의식하에 윤리적 합리성의 내용을 미시적 및 거시적 차원에서 검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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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0년대와 1930년대의 한국경제학계 동향

        尹起重 연세대학교 경제연구소 1997 延世經濟硏究 Vol.4 No.2

        본고는 이순탁 교수가 교육과 연구활동을 하던 1920년대 한국경제학계의 동향을 분석하는 것이다. 1910년대 후반의 제1차세계대전과 휴전,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그리고 한일합방, 3.1만세운동 등 모두가 충격의 연속 끝에 1920년대를 맞는다. 1910년대부터 사립전문학교의 설립과 1920년대 사립과 관립 전문학교 그리고 대학이 설립되면서 한국에 경제학 연구가 일기 시작하였다. 경제학 연구는 연전과 보전 그리고 고상과 성대에서 알고 있었으나 경제학과는 없이 대개 상학의 보조과목으로 그리고 성대에서는 법학의 보조과목으로 개설되어 경제학 교수가 모이게 된다. 가장 활발한 곳이 연전과 보전이었다. 이들 교수들의 교육은 일본이 주축이었고 간혹 미국의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경제학계의 개화가 진행되던 1930년대 말 중.일전쟁과 1940년대의 태평양전쟁으로 경제학의 연구는 암흑기를 맞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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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적 자유와 사회정의: 신고전적 자유주의에 태한 비판적 검토

        황재홍 ( Jaehong Hwang ),조필규 ( Pil Kyoo Jo ) 연세대학교 경제연구소 2015 延世經濟硏究 Vol.22 No.2

        신고전적 자유주의는 고전적 자유주의와 평등주의적 자유주의를 통합하려는 자유주의 최근 조류이다. 이들은 고전적 자유주의와 마찬가지로 경제적자유가 기본적 자유로 인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고전적 자유주의와 달리 평등주의적 자유주의 관점에서 경제적 자유에 대한 도덕적 정당화를 시도하고 있다. 또한 신고전적 자유주의는 평등주의적 자유주의의 사회정의를 수용하면서도. 이는 시장을 통해서 가장 효과적으로 실현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광범위한 경제적 자유가 기본적 자유로 인정된다면, 사회 보장과 사회안전망 구축은 극히 제약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차등의 원칙이 만족된다는 보장이 없다. 또한 광범위한 경제적 자유를 기본적 자유로 격상시키는 것은 사실상 효율성 주장으로 환원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자유의 가치가 자율적 주체로서의 개인들의 도덕적 능력이라는 관점에서 인식될 수 있다면, 경제적 자유의 범위는 새롭게 정의될 수 있을 것이며, 경제적 자유와 사회정의가 소통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있다. Neoclassical liberalism refers to the recent movement of liberalism toward the integration of classical liberalism toward the integration of classical liberalism and egalitarian liberalism. While, Classical liberalism, neoclassical liberalism holds that economic liberties should be recognized as basic rights. It attempts to morally justify economic liberties in terms of egalitarian liberalism. Neoclassical liberalism emphasizes social justice and argues for the efficient achievement of social justice through market forces. However. It suffers some problems that, if thick economic liberties are accepted as basic liberties, the difference principle is not necessarily satisfied since social security systems and social safety net programs are limited, and neoclassical liberalism is reduced to the efficiency argument. Nevertheless, we believe that economic liberties and social justice might be successfully integrated if economic liberties are might be successfully integrated if economic liberties are identified with the moral power of responsible self-authorship thus the scope of economic liberties is newly interpre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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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0∼1930年代 韓國의 經濟學風과 經濟硏究의 動向 : 延專 商科 및 普專 商科를 중심으로

        李秀日 연세대학교 경제연구소 1997 延世經濟硏究 Vol.4 No.2

        본고는 1920~1930년대 延專 商科의 학풍의 검토함으로써 日帝下 韓國經濟學者들의 연구동향과 현대 한국경제학의 前史를 개략적으로 파악하고자 한 글이다. 이 시기 한국의 경제학풍은 일제강점이라는 시대적 조건상 그리고 경제학의 학문적 특성상 民族解放의 실천적 움직일과 불가분의 관련을 맺으면서 형성될 수밖에 없었다. 그에 따라 경제학풍은 대체로 자본주의 국가건설과 사회주의 국가건설의 이념적. 사상적 기반을 제공하는 '자본주의 경제학' 과 '사회주의 경제학'으로 분립외었다. 일제 강점기 열악한 학문연구의 환경 속에서 두 계통의 경제학풍을 선도했던 곳이 바로 延專 商科와 普專 商科였으며, 兩校의 경제학풍을 검토하는 일은 우리 나라 초기 경제학 발달사의 특질을 이해하는 기초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향후 이 방면의 연구는 韓國 近現代思想史.學術史의 차원에서 보다 정밀하게 연구되어야 할 것으르 생각된다.

      • KCI등재

        한국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와 경제발전 사이의 U자 관계 가설에 대한 실증분석

        김현지 ( Hyunji Kim ),최승문 ( Seungmoon Choi ),배준호 ( Junho Bae ) 연세대학교 경제연구소 2021 延世經濟硏究 Vol.28 No.1

        본 연구에서는 경제발전 단계에 따라 여성의 노동시장 참가율이 U자 형태의 모습을 보인다는 가설이 우리나라에도 적용되는지 실증 분석하였다. 이를 위해, 통계청의 인구 총조사, 지역 소득 그리고 경제활동인구조사 그리고 서민철(2018)의 자료들을 이용해 경제발전 정도를 나타내는 1인당 지역내총생산,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과 이에 영향을 주는 다른 통제 변수들에 대해, 우리나라의 15개 시·도 지역 단위 패널 자료를 구축했다. 분석 결과 우리나라에서는 U자 가설이 성립한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 본 연구는 여성의 노동시장 참가에 관한 U자 가설이 한국에서도 적용되는지 처음으로 고찰해보았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 We have conducted an empirical analysis to test the hypothesis that female labor force participation rate has a U-shaped relationship with economic development in Korea. We made a panel data of GRDP per capita, female labor force participation rate and other control variables for 15 provinces or metropolitan cities using data from Population Census, Regional Income and Economically Active Population Survey of Statistics Korea and Seo (2018). There was no evidence that the U-shaped hypothesis holds in Korea. This study is meaningful in that it is the first paper to examine whether the U-shaped hypothesis can be applied to Korea.

      • KCI등재

        "산출,산출모형"을 통한 새로운 대안적(代案的) 경제분석 방법에 관한 연구: 투입,산출모형과 비교분석을 중심으로

        김호언 ( Ho Un Gim ) 연세대학교 경제연구소 2010 延世經濟硏究 Vol.17 No.2

        본 연구의 목적은 ① 레온티에프 역행렬(Cf)의 요인별 분해를 통한 유발계수행렬과 유발효과 사이의 관계를 체계화하며, ② 투입·산출(IO)모형에 대한 대안적 경제분석 방법을 소개하고, ③ 대안적 방법에 대한 경제적 파급효과를 추계하는 식을 유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이를 활용한 경험적 사례연구를 통하여 개별 모형의 특성과 유용성에 대한 검정을 하는 것이다. Cf 역행렬은 I(단위행렬), A(투입계수행렬), T(기술적 간접행렬), R(연관적 간접행렬)로 요인별 분해가 되며, 이들 요인의 조합을 통하여 총 11가지 유발계수행렬과 그 경제적 의미가 밝혀지게 되었다. 유발계수행렬과 최종수요(f), 총산출(x), 최종산출(o) 사이의 새로운 생산순환체계를 통하여 IO모형, 산출·산출(OO)모형, 최종수요·최종산출 (FF)모형, 투입(I)모형에서의 인과관계와 경제적 파급효과가 규명되었다. 경험적 사례 연구에서는 최종수요와 총산출의 성장 전망은 균등성장률(k=7%)로 하여 위의 네 모형에 대한 각종 유발효과를 추계하였다. 본 연구 는 전통적인 IO모형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하여 다양한 대안모형들을 개발 하였다. 이들 모형들은 상호 배타적인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고 개별 연구 목적에 따라서 상호 보완적인 활용이 가능하다. On the basis of the latest research findings, the specific objectives of this paper can be summarized as follows. (1) We formulate a complete system between the varied requirements matrices and the induced economic effects through the decomposition by factors in the Leontief inverse. (2) We develop new alternative models to the traditional Input-Output (IO) model without having overestimation and consecutive connection problems. (3) We derive the cause-and-effect equations on the newly developed alternative models to compute the varied types of induced effects. (4) We perform the empirical case study to do a comparative analysis between the IO and alternative models based on raw data of 2007 Input-Output Tables compiled by the bank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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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하ㆍ미군정기 韓昇寅의 政治活動과 經濟認識

        吳鎭錫 연세대학교 경제연구소 2001 延世經濟硏究 Vol.8 No.1

        본고는 1920년대부터 1930년대 초반에 걸쳐 일본의 明治大學과 미국의 풀러톤, 미주리, 콜롬비아 대학 등에서 修學하였고, 미국유학중에는 興士團에서 그리고 귀국해서는 同友會에서 활약하였으며, 協成實業學校 敎師, 和信百貨店 社員을 거쳐, 解放後에는 美軍政의 商務部 商務局長에 발탁되어 남한의 資本主義 國家建設에 일조했던 韓昇寅 의 정치활동과 경제의식의 형성과정, 내용 등을 검토한 글이다. 그동안 이 시기의 經濟學者, 經濟評論家들을 대상으로 한 경제사상사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어 왔지만, 社會主義 經濟學者들과 이른바 中間派 진영 논자들의 경제사상해명에는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구미유학을 통해 근대 자본주의 경제학을 체득하고 귀국하여 민족ㆍ자본주의 진영에서 활동하면서 해방후 남한 자본주의 사회의 주역이 되었던 지식인들을 사례연구로서 검토한 작업은 드물었다. 그러한 점에서 본고는 그간의 연구사적 공백을 일부이나마 메울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 KCI등재

        일제하 延專商科의 經濟學風과 '經濟硏究會事件'

        洪性讚 延世大學校經濟硏究所 1994 延世經濟硏究 Vol.1 No.1

        본고는 일제하 한국에서 일어난 최대의 大學탄압·敎授탄압 사건이었던 1938년의 '經濟硏究會事件' 일명 '赤色敎授그룹事件'이 延專商科에서 발생한 學術史的 배경과 '사건'의 전모, 그리고 이 사건이 연전상과 經濟學風에 미친 영향과 의미를 일종의 大學史 서술방식을 원용하여 검토한 글이다. 한국 근·현대의 學術史,思想史를 체계화한다는 목표아래 이 시기 韓國經濟學史의 金體像을 정리하려면 同시대에 활동했던 경제학자 개개인에 대한 연구뿐만 아니라, 그들이 처했던 한국학계의 전체상황, 나아가 그들이 속했던 學術集團(大學)의 학문 경향과 知的 분위기까지 시야에 넣어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일제하 延專商科라는 학술집단에 분석의 초점을 맞추어 그 學問觀·學風의 변화를 추구한 본고와 같은 사례연구의 축적은 연구사적으로 일정한 의미를 지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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