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검색결과 좁혀 보기

      • 좁혀본 항목

      • 좁혀본 항목 보기순서

        • 원문유무
        • 음성지원유무
          • 원문제공처
          • 등재정보
          • 학술지명
          • 주제분류
          • 발행연도
          • 작성언어
          • 저자

        오늘 본 자료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더보기
        • 무료
        • 기관 내 무료
        • 유료
        • KCI등재후보
        • KCI등재

          해방 후 재일대한기독교회(KCCJ)의 사회운동 :1970~80년대의 활동을 중심으로

          정계향(Jung, Gyehyang) 역사학연구소 2021 역사연구 Vol.0 No.40

          재일본대한기독교회(KCCJ)는 해방 직후 설립된 재일조선인교회의 중앙교단이다. KCCJ는 1968년 이후 선교 방향의 변화를 모색하며, 재일한국인문제연구소(RAIK)와 재일한국인기독교회관(KCC)을 설립했다. 1970~80년대 차별철폐운동과 생활개선운동을 주도하고, 신앙공동체, 생활공동체, 사회운동공동체로서의 역할을 재정립했다. 이러한 활동의 배경에는 일본사회와 재일조선인 커뮤니티의 변화, 에큐메니칼 운동의 영향 등이 자리 잡고 있었다. KCCJ는 재일조선인의 문제를 보편적 인권, 마이너리티 문제로 치환하고 전 세계의 마이너리티와의 연대를 도모하는 한편 남북의 평화통일운동에도 참여하며 이념 갈등의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담당했다. 여기에는 종교조직이면서 동시에 재일조선인 조직이었던 KCCJ의 복합적 성격이 반영되어 있었고, 이러한 복합성은 KCCJ의 사회운동의 중요한 동력이 되었다. The Korean Christian Church in Japan (KCCJ) is the central church of the Korean residents in Japan established shortly after liberation. The KCCJ has established the Research Action Institute for the Korean In Japan(RAIK) and the Korean Christian Center (KCC) since 1968 in search of a change in the direction of missionary work. KCCJ led the anti-discrimination and life improvement movement in the 1970s and 1980s, and reorganized its role as a religious community, living community, and social movement community. Behind these activities were changes in Japanese society, the Korean community in Japan, and the impact of the Ecumenical Movement. KCCJ replaced the issue of Korean residents in Japan with universal human rights and minorities, sought solidarity with minorities around the world, participated in peaceful reunification of the two Koreas, and played a role as a mediator in ideological conflict. This reflected the complex nature of KCCJ, a religious organization and also a Korean residents in Japan organization, which served as an important driving force for KCCJ"s social movement.

        • KCI등재

          최근 북한의 동학농민전쟁에 대한 연구 현황

          유바다 역사학연구소 2019 역사연구 Vol.0 No.36

          For the past 10 years since 2007, the perception and understanding of DongHak Peasants War in North Korea has not changed much compared to the past. For example, the North Korean historians recently continue to use the existing term, “Gabo Peasants War” instead of DongHak Peasants War. Perception also did not deviate much from the viewpoint of the “anti‐feudal anti‐aggression struggle”. And in the specific narrative, there is no description of the Peasants War in the Hwanghae ‐do region including the present North Korea region, showing the perception that is limited to the existing Samnam area. Nevertheless, DongHak Peasants Movement in 1893 and Gabo Peasants War in 1894 were distinguished from the redress movement of false accusation of founder in 1893 and the DongHak Peasants War in 1894 respectively, broadening the extension of DongHak Peasants War. The width of use of materials such as the “Foreign Ministry Records”, which is included in the diplomacy historical records of the Ministry of Foreign Affairs of Japan, has expanded. There is room left to argue with South Korean historians in that the cause of DongHak Peasants War was not the imbalance of land ownership, but the tax abduction. In addition, they paid attention to the Czech Peasant War, and also explored the significance of DongHak Peasants War in the view of the world history. This clearly goes beyond the existing trend of thought that emphasized only the German Peasants war. 2007년 이후 지난 10여 년 간 북한의 동학농민전쟁 인식과 이해가 그 이전과 비교 해 볼 때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이를테면 최근 북한 역사학계는 동학농민전쟁을 두고 “갑오농민전쟁”이라는 기존의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인식 또한 “반봉건 반침략투쟁”이라는 관점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 그리고 구체적인 서술에서도 지금의 북한 지역을 포함하는 황해도 지역의 농민전쟁에 대한 서술이 없어 기존 삼남 지역에만 국한된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893년의 교조신원운동과 1894년 동학농민전쟁을 각각 1893년 동학농민운동, 1894년 갑오농민전쟁으로 구분하여 동학농민전쟁의 외연을 넓혔다. 일본 외무성 외교사료관에 수록되어 있는 『외무성기록』을 활용하는 등 자료의 활용 폭도 넓어졌다. 동학농민전쟁의 원인을 토지소유의 불균형이 아니라 조세수탈로 본 점에서 남한 역사학계와 논쟁할 여지도 남겼다. 그밖에 체코농민전쟁에 관심을 기울여 동학농민전쟁의 세계사적 의미를 고찰하기도 하다. 이는 기존 독일농민전쟁만을 강조하던 사조를 분명히 뛰어넘는 것이다.

        • KCI등재
        • KCI등재후보
        • KCI등재
        • KCI등재

          일반논문 :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도입된 역사과 핵심역량 설정의 현황과 모순

          백은진 ( Eunjin Baek ) 고려대학교 역사연구소(구 역사학연구회) 2015 사총 Vol.86 No.-

          역사수업에서 무엇을 가르치는 것이 중요한지의 문제에 관해, 역사 학계와 역사교육계에서는 역사교과서 내용에 대한 연구뿐 아니라 역사학습 내용 선정의 원리, 역사교육 목적과 목표에 관한 논의, 그 가운데 특히 역사의식과 역사적 사고력에 대한 논의들을 발전시켜 왔다. 또한, 최근에는 역사 문해력이라는 개념에도 주목해 왔다. 그러나 2015 개정교육과정의 개발 과정에서 등장한 역사과 핵심역량이라는 개념에는, 앞서 말한 역사학계와 역사교육계의 논의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내용들이 핵심역량으로 강조되었다. 핵심역량이라는 개념은 국가교육과정의 총론 차원에 우선적으로 도입이 시도된 개념이다. 애초에는 노동시장에 필요한 능력을 가진 인력을 양성하는 데 목적이 있는 직업교육의 맥락에서 연구되어 왔다. OECD의 DeSeCo 프로젝트를 통해 확산된 역량 중심 교육과정 경향은 교육의 내재적 가치를 소홀히 할 수 있고, 역량이 발현되는 복잡한 메커니즘을 간과하며, 이론적 지식보다 실제적 지식을 강조함으로써 이론적 지식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며, 교육을 직업훈련교육으로 전락시킨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는다. 그간 많은 연구가 국가교육과정의 개발 과정이 총론 우위의 하향식 개발임을 지적해 왔듯, 이번 2015 개정 교육과정 개발도 예외는 아니었다. 총론에 핵심역량이라는 개념을 도입하고 이에 맞춰 역사과 핵심역량을 설정하려는 시도는, 역사학계와 역사교육계가 ‘역사수업에서 무엇을 가르치는 것이 중요한가'의 문제를 다뤄온 맥락과 별다른 접점을 이루지 못하였다. 게다가 핵심역량, 핵심 성취기준, 핵심개념 등이 왜핵심적인가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고 있지 못하다. 역사수업에서 무엇을 가르치는 것이 왜 중요한가? 이에 대한 물음에 대해 의미 있는 견해들을 내놓으려 하는 연구들은 계속되고 있다. 그럼에도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이 이러한 기존 연구들과의 접점과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채, 역사교사가 가르칠 내용과 방법을, 학생들이 배워야할 필수적이고 핵심적인 지식과 능력을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선별한다면, 이 자체는 가르칠 내용과 방법에 대한 제약으로 작용할 수 있다. What ought to be the crucial goals of teaching history? This question demands collaboration of historical studies and pedagoy. There are plenty of issues whose satisfactory solutions cannot be achieved with one-sided approach: Which historical knowledge should students acquire? What should be learned from these historical facts? How to train students to practice the methods of historical research? How to guide students to fair understanding of historical texts? How to apply these lessons from the classes to students`` real life? In light of these questions, General Guideline of 2015 National Curriculum of History and the introduction of the concept of Key Competencies seems to have less common ground with the inquiries of history researchers and teachers than the needs of labor market. Moreover the Key Competencies of the history curriculum proposed by the draft of 2015 National Curriculum of History merely follows that of General Guideline without bearing the context of recent discussions and researches in historical studies and pedagogy. What ought to be taught, and why? Researchers and educators have always sought meaningful answers to these questions. What kind of abilities should middle school students obtain through the curriculum? How history teaching is helpful to students`` practical life? What can be learned in the history and cannot be learned in the subjects other than history such as language arts, foreign language training or art class? Without interfacing with these endeavors, the national curriculum and its detailed classification of knowledge and abilities will constrict the content and methods of history education.

        • KCI등재

          북한의 역사 교육체계 확립과 민족해방운동사 인식

          김재웅 ( Kim Jae-woong ) 고려대학교 역사연구소(구 역사학연구회) 2021 사총 Vol.102 No.-

          신생 국가들 대부분이 그렇듯 북한에서도 역사는 자신의 정체성을 기억하고 계승해야 할 과제와 직결된 중대 관심사였다. 북한의 정치인들은 자국의 역사적 정체성과 관련해 그들이 직접 참여한 항일투쟁의 경험에 주목했다. 그것은 그들의 새로운 전통으로 자리매김 될 수 있는 영예로운 소재였다. 따라서 어느 시기의 역사보다도 민족해방운동사를 비롯한 최근사가 중시되는 경향을 보였다. 이 연구는 해방 직후 북한에서 역사 교육체계가 재건되는 과정과 민족해방운동을 둘러싼 사관이 변모해가는 과정을 살피고자 한다. 그 과정을 추적하는 작업은 북한 역사학이 발원하고 그 성격이 형성되는 양상을 드러낼 수 있다. 오늘날 독자적 학문 영역에 위치하기보다 정치적 목표에 봉사하는 경향이 있는 북한 역사학의 성격 형성이 언제 어떤 과정을 거쳐 이루어졌는지 그 시원을 추적하는 일은 현시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작업이다. After liberation from colonial rule by Japanese Imperialism, Korean schools focused on Korean language and history education. Like Hangeul education, history education tended to be emphasized in terms of nationality recovery. Like most emerging countries, history in North Korea was a major concern, directly connected to the task of remembering and inheriting its identity. North Korean politicians paid attention to the experiences of the anti-Japanese Imperialism struggle in which they directly participated in relation to their own historical identity. It was an honorable subject that could be taken pride in as their new tradition. Therefore, the recent histories including the history of the national liberation movements tended to be regarded more important than the histories of any period. This study aims to examine the process of establishment of the history education system in North Korea immediately after liberation and the transformation of historical view surrounding the national liberation movements. The work of tracing the process can reveal the aspect in which North Korean history originated and its characters were formed. It is a very meaningful work to trace the origin of the character formation of North Korea's history, which tends to serve political goals rather than being positioned in its own academic field today. In short, this study intends to examine how the historical science and the history education system in North Korea were born immediately after liberation, and how North Korea's historical science created a new tradition and its own identity.

        맨 위로 스크롤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