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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富山에서 釜山으로의 漢字名 變改와 避諱

          김성진(Kim, Sung Jin) 동양한문학회(구 부산한문학회) 2019 동양한문학연구 Vol.52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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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논문은 부산의 한자 표기가 왜 성종 말년을 전후해서 富山에서 釜山으로 변경되었는가를 살펴 본 것이다. 부산의 한자명은 [성종실록]1년 12월 15일조에 釜山이라는 한자 표기가 나타난 뒤 한동안 富山과 병용되다가 [동국여지승람]이 완성 발 간된 1486년 이후에는 釜山으로 정착되었다는 것이 정설화되어 있다. 하지만 본 논문에서는 부산의 한자명이 釜山으로 정착된 것은 1495년 4월 이후라고 보았다. 이는 [성종실록]의 기사는 실록청이 설치된 1495년 4월 당시의 정치외교적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재 통용되는 [신증동국여지승람]은 1486년에 간행된 것이 아니라, [동국여지승람]을 바탕으로 대폭 수정 증보한 후 1530년에 간행한 [신증동국여지승람]임을 감안해야 한다고 보았다. 부산은 富山이라는 지명이 처음으로 문헌에 나타난 당시부터 대일외교의 독점적 거점이었다. 따라서 富山에서 釜山으로의 漢字名 변경은 일본과 관련지어 살펴보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것이 본 논문의 출발점이다. 본 논문에서는 그 당시 일본 무 로마치막부의 실질적인 최고권력자가 日野富子였다는 사실에 주목하였다. 대일외교문서에서 ‘富'자를 피휘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日野富子에 의해 쇼군이 되었다가 다시 日野富子에 의해 쇼군직에서 밀려난 아시카가 요시키가 越中公方이라는 망명막부를 세운 곳이 지금의 富山縣이라는 사실에도 주목하였다. 요컨대 富山을 釜山으로 바꾼 것은 日野富子와 越中公 方이 있던 富山縣의 ‘富'를 피휘한 결과라는 것이 본 논문의 요지이다. This paper aims to discover the reason for the chracter change of busan from 富山to 釜山during King SungJong s later years. The widely accepted explanation of it is this: 釜山appeared in the Annals of SungJong in his first year Dec. 15th, and that name was used jointly with 富山for a while until it was settled as 釜山after 1481 when ‘Donggugyeoji -seungnam' was published. However, I argue that the establishment of 釜山was after April of 1495, since the article in the Annals of SungJong reflected the circumstances of political and diplomatic events of April, 1495. Another factor to consider is the fact that [Donggugyeojiseungnam] currently circulated was the ‘Newly Revised Version of Donggugyeoji- seungnam', which was finalized in 1530. Busan was the exclusive base of diplomacy toward Japan since it had been noted as 富山in the documented literature. Therefore, it is quite reasonable to see the name change from 富山to 釜山in diplomatic relationship with Japan. When the character change began, the highest authority in Japan s feudal government, Muromachi Shogunate, was practically 日野富子. Avoiding the chinese character ‘富' in the diplomatic documents was sensible. Asikaga Kiyosaki, who was crowned as shogun and later uncrowned by 日野富子went to seek political asylum in a place called 富山縣. Therefore, to avoid using 富was reasonable since the Japanese leader s name and the asylum chosen by his political opponent shared the character 富 and Busan s naming consequently was changed from 富山to 釜山.

        • KCI등재

          韩国语、朝鲜语、中国朝鲜语汉字词使用现状研究

          張曉曼(Zhang Xiaoman), 尙安新(Shang Anxin) 동양한문학회(구 부산한문학회) 2014 동양한문학연구 Vol.38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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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어, 조선어와 중국조선어는 비록 일정한 차이가 있지만 유형적 분류에 있어서 동일한 언어에 속하는 언어변종으로서 알타이어족에 속하며 교착어이다. 본 논문은 한국어와 조선어, 그리고 중국조선어에서의 한자어 사용 실태에 대해 분석하고 연구함으로써 한국어교육과 중국어교육에 일정한 도움을 주고자 한다. Although there are some differences between North Korean, South Korean and Chinese Korean internally, they are different variants of the same language and all belong to agglutinative language in Altaic language family according to typological classification. The paper discusses the current use of Chinese words in South Korean, North Korean and Chinese Korean and is expected to contribute to the Korean language teaching and Chinese language teaching.

        • KCI등재후보

          連文複音詞 “歡喜/喜歡” 研究

          胡玉華(Hu Yuhua) 동양한문학회(구 부산한문학회) 2019 동양한문학연구 Vol.52 No.-

          '스콜라' 이용 시 소속기관이 구독 중이 아닌 경우, 오후 4시부터 익일 오전 7시까지 원문보기가 가능합니다.

          “喜歡(희환)”과 “歡喜(환희)”는 동소역순어(同素逆序)어로서 모두 ‘희열, 기쁨'과 ‘좋아하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본 논고에서는 이 두 단어에 대한 통시적인 고찰을 통하여 그 의미 변화를 분석하고 사용빈도를 통계하였으며, 사용빈도에서 나타나는 차이 점의 원인을 분석하였다. 동시에 이 두 단어가 普通話(표준어)와 방언에서 어떻게 전승되어 왔는가를 고찰하였다. Xihuan and Huanxi“ are a pair of the inverse morphemes words with the semantics of “happy”and“like”. This study researches the two words by diachronic research method, describes their semantic changes, and analyzes the reasons why these two words is different in frequency when used in ancient literatures. At last, this study analyzes the inheritance of the two words in modern Chinese Mandarin and dialects.

        • KCI등재후보

          朝鮮初期 感興詩의 文明과 眞樂

          鄭景柱(Jung Kyung-Ju) 동양한문학회(구 부산한문학회) 2007 동양한문학연구 Vol.24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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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에서는 조선초기 건국에 참여한 하륜과 권근, 그리고 국가가 안정된 뒤 정치에서 소외된 김시습이 지은 「感興詩」의 내용을 검토하였다. 이들 감흥시는 모두 남송 시대 주자가 창작하여 도학 문학의 한 격조를 이룬 「齋居感興詩」의 意趣를 추종하여, 도학의 연원을 서술하고 이단의 배척하는 취지를 서술하였다. 이들 감흥시의 주제가 이단배척의 문제에 집중되어 있는 점은 조선중기 이후의 ?감흥시?가 도덕 함양의 眞樂에 집중하는 것과는 다른 면모이다. 이 점은 조선초기 사대부 문학에서 이단 배척이 불교문화에 젖어 있었던 구 시대의 관습을 청산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In this paper, I made clear meanings of several poets that three writers wrote on beginning of the Choson Dynasty. The poets that is called lyric of deep emotion[感興詩] stemed from Juhui[朱熹] who wrote it for the first time in Song [宋] dynasty. Some famous new-confucianist such as Haryun[河崙], Gwongeun[權近] and Gimsiseup[金時習], they criticize evil of Buddhism and praised Confucianism in this poets. But they did not refer seriously on the genuine pleasure[眞樂] in their lyric. They thought fixing of new Confucianism custom as urgent assignment first of all. Here, they untreated almost problem of morality fostering[道德涵養]. They were preoccupied with settlement of abuse of culture that weted deeply to Buddhism custom. When the new dynasty country is stabilized, they paid deeper attention gradually about genuine pleasure. This is one of the fact that represents well literary development process of the early Choson Dynasty.

        • KCI등재

          주변부에서 배후지로

          손숙경(Son Suk Kyung) 동양한문학회(구 부산한문학회) 2016 동양한문학연구 Vol.44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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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연구는 기장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연구 방법과 내용을 논의하는데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하여 기존의 연구 성과를 중심으로 문제 중심의 거시적인 구도 위에서 기장 지역 연구에 대한 방향을 제안하려는 것이다. 기장 지역은 조선시대 독립된 군현이었으나 한양에서 멀리 떨어진 연안지역으로 문과급제자를 한명도 배출하지 못한 주변적인 지역에 속한다. 그럼에도 이 지역에서 식민지기 이후 김약수나 김두봉, 이하영과 같은 역사적 인물이 배출되었다. 나아가 철마의 해주 오씨, 남평 문씨 등 오랜 역사를 가진 가문이 근대 이후 새롭게 변화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이같이 조선시대 두드러진 주변성과 근대 격동기 이후 중요 인물의 배출과 같은 새로운 변화를 기장 역사 문화의 단절과 지속성의 관계에 대한 논의의 중요구도로 설정하였다. 기장 지역에 대한 연구는 고고학적 자료와 관찬 자료를 편찬하여 사실을 축적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방식으로는 국가제도와 지역 속에서 여기에 대응하여 생활하고 역사를 만들어간 지역사회와 지역민의 모습을 보는 것은 힘들 것이다. 오래전부터 기장을 비롯하여 부산 경남 일원에 대한 조사 연구를 수행해온 필자를 포함함 고문서 조사 연구팀은 이러한 동향을 문제 삼아 왔다. 자료 발굴도 단순히 자료 수합이 아닌 중앙 중심의 역사 나아가 엘리트 중심의 한국사의 문제점을 해결한다는 구도 위에서 접근하였다. 그리하여 기장과 같은 주변부 지역의 향반 가문들의 사회적 지위 유지는 외부와의 연망과 양반들의 조직, 통혼권과 같은 문화적 자산이 적지 않게 작용한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은 기장 지역사회가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한국사회의 동질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근현대 이 후 이 지역에서 중요 인물이 배출된 것은 전근대 이전과 크게 대조된다. 중앙에서 멀리 떨어진 주변부에 속하는 기장 지역에서 근현대 한국을 만든 다수의 인물들이 배출되었다. 이렇듯 근대 이후 진출하는 양상은 개항 이후 부산이 급속히 성장하면서 기장이 그 배후지로서 급격한 변화를 겪은 것과 관련이 있다. 이는 근대 문물의 수용으로 더 넓은 곳으로의 진출을 가능하게 하였으며 이로 인해 근대 이후 중요한 인문들이 배출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던 것이다. 바로 이점에서 기장의 역사는 전근대와 근현대를 아우르는 지평 위에서 그 실체를 재현할 수 있을 것이며 주변부에서 배후지로의 변화를 논의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This study is to discuss what is an issue and how do we study on the history and culture of Gijang area. I would like to propose the future direction of area study around Gijang be studied with the big picture based on existing researches. Due to it's location as coastal area far from the capital city, Hanyang, which was independent county(郡), Gijang is known as the peripheral area where no one had not passed Monkwa-Examination. Nevertheless, throughout the colonial period, the important people in Korean history such as Kim yaksu(金若水), Kim dubong(金枓奉), Yi hayoung(李夏榮) came out in the perpheral area, Gijang. Many lineages like Haeju Oh Family(海州 吳氏), Nam-Pyoung Mun(南平 文氏) Family who were old family of Gijang had been also changed newly in modern society. Therefore I use remarkable marginality and new changes as a tool to discuss the relationship between continuation and discontinuation of historical culture of Gijang, which explains why many important people as politician appeared from this area throughout turbulent era, although Gijang had been paid little attention due to it's location during Choseon era. Researches on Gijang area so far have been limited on archeology and historiography of public records. They may make it invisible and trivial for the local community and its residents to cope with the government and find their own way. Therefore I think the approach for resolving some problems of korean history like stated-centered and elite-centered narratives is still required when discovering and using local data. On the other hand, the fact a few famous people in modern Korea came out from Gijang, known as the peripheral area, is connected to Busan's rapid growth and it's following change of Gijang from the periphery to the hinterland. It made local people go into the world through adoption of modern culture, and created the environment for the emergence of people who are historical important at the same time. Considering this aspect, the history of Gijang needs to be discussed with a wider perspectives covering pre-modern and modern Korea. That's why we will reveal the process of change to hinterland, and furthermore make it reproduction of the reality of Gij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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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韩语表对象副词格助词对译汉语介词的研究

          石堅(Shi Jian) 동양한문학회(구 부산한문학회) 2018 동양한문학연구 Vol.49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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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어 부사격 조사와 중국어 개사는 모두 허사(虛詞)에 속하는 것으로 많은 유사점을 가지고 있다. 본 논문에서는 대조언어학을 이론적 배경으로 하여, ‘대상 표지' 즉 ‘대상을 나타내는' 의미 기능에 있어 한국어 부사격 조 사에 상응하는 중국어 개사를 분석하고, 더 나아가 한국어 격조사와 중국어 개사에 대한 대조 연구를 진행하고자 한다. 본 논문에서는 우선 ‘대상 표지' 의미 기능을 ‘행위가 영향이 미치는 대상', ‘무엇을 받는 주체', ‘주어에 대해 행위를 미치는 주체', ‘관계를 맺거나 관련된 대상', ‘비교와 비유의 대상' 그리고 ‘행동이나 상태의 한정된 범위' 등 여섯 가지로 분류하여 각 의미기능에서 한국어 부사격 조사에 상응하는 중국어 표현을 살펴본 결과, 모든 경우에 한국어 부사격 조사가 중국어 개사에 상응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경우에는 개사 형식이 아닌 다른 요소로 표현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본 논문에서는 문장 중의 위치, 문장 구성, 어휘 변천 등 여러 면에서 한국어 부사격 조사와 중국어 개사에 대한 대조 분석을 통해 한국어 조사와 중국어 개사가 가진 양자의 특징을 살펴 볼 수 있었다. Both case auxiliaries in Korean and preposition in Chinese fall into the category of function words with many conceptual similarities. Based on the linguistic theory, the paper analyzes and compares the literal translation between adverbial case auxiliaries in Korean and preposition in Chinese in the category of object. The paper firstly further divides the “category of object” into the following six aspects: “object directly affected by action behavior”, “receiver”, “activity subject”, “related object”, “comparison or metaphor object” and “limited range”, and studies the Chinese translation of Korean adverbial case auxiliaries for each aspect. The paper finds that not all the adverbial case auxiliaries in Korean are equivalent to the preposition in Chinese. Base on the comparison result, the paper makes a comparative analysis about the adverbial case auxiliaries in Korean and preposition in Chinese from such aspects as sentential position, sentence composition and word development, therefore making a conclusion about the respective features of case auxiliaries in Korean and preposition in Chinese.

        • KCI등재

          부산 지역 신선 관련 지명의 형성에 대한 연구

          엄경흠(Eom, Gyeonghuem) 동양한문학회(구 부산한문학회) 2017 동양한문학연구 Vol.48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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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은 강과 바다와 산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경관 탓에 신선의 땅, 삼신산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사실 부산을 신선의 땅이라고 생각하는 인식은 다른 지역과 다를 바 없이 隱逸, 養生, 修道 등의 태도를 가진 전통적 신선사상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오래 전부터 지형이나 경관을 보고 신선의 땅으로 생각하는 시각적 인식 태도는 많지 않았다. 그 결과 신선과 관련된 오래된 지명들은 모두 은일, 양생, 수도 등 신선사상과 관련된 인물과의 관련성이 있는 곳, 그 가운데서도 산에 국한되었고, 막연한 신선과 관련된 지명은 나타나기가 어려웠다. 그러므로 동래를 ‘동쪽의 蓬萊'라는 지명의 유래로 설명할 수는 없다. 조선조 말은 전통적인 신선사상이 민족적인 신선, 산신사상으로 확대되면서 신선의 땅에 대한 인식 또한 확대되어 갔고, 이러한 인식에 삼신산의 환상이 더해져서 부산에서도 원래 제대로 된 행정적 지명이 없던 지역, 특히 바닷가에 신선 관련 지명이 많이 생겨나게 되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는 과정에서 일본식 지명으로 바뀌었던 지명은 해방 후 원래의 지명을 회복하거나 새로운 지명을 획득하게 되었다. 특히 일본인 들이 많이 생활하였던 해안가의 지명들은 조선조 말에 형성된 신선의 지명으로 회복되어 가거나, 새로운 신선의 땅으로 이름 지어지는 경향이 확대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조선조 말 형성되었던 민족주의적 신선, 산신사상에다 해방을 맞이한 상황에서 일본에 대한 반일의 감정까지 더해져 생겨난 현상에 기인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것이 부산의 남쪽 바닷가를 신선의 땅으로 이름지어가게 된 연유였다고 생각한다. Busan was thought of as a land of Sinseon(a Taoist hermit with supernatural powers) because of its beautiful scenery of the sea, rivers, and mountains in harmony. This conception of Busan as a land of Sinseon has arisen from the traditional thought of Sinseon having the attitudes of seclusion, regimen and discipline, not unlike other regions. Since long ago, not many attitudes of visual recognition of Sinseon land have been formed on the basis of topography and landscape. As a result, old place names related to Sinseon were limited to regions known for the Taoist hermit ideology of seclusion, regimen and discipline, and place names vaguely associated with Sinseon were rarely developed. Thus, Dongnae cannot be explained as the East Bongnae. Around the end of the Joseon Dynasty, as the traditional Taoist hermit ideology developed into the national ideology, the conception of Sinseon land also expanded. Following this trend, many names associated with Sinseon came into being in Busan places where no proper administrative names existed. Especially. those place names changed into Japanese ones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rule recovered their original names or obtained new ones. The trend was expanded that seaboard areas where many Japanese lived regained their Sinseon names formed in the end of Joseon or were given new Sinseon associated names. This phenomenon is considered arisen from the combination of the nationalist Taoist hermit ideology developed around the Joseon Kingdom and the anti-Japanese sentiment around the national liberation from Japan. This is the reason why the southern seaboard of Busan was named as the land of Sinseon.

        • KCI등재

          金寿恒的 诗文学 研究

          安末淑(An Mal-suk) 동양한문학회(구 부산한문학회) 2006 동양한문학연구 Vol.22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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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연구는 文谷 金壽恒(1629~1689)의 生涯와 詩世界의 實質 및 詩의 特性에 대해 고찰한 것이다.   文谷 金壽恒은 朝鮮 仁祖ㆍ孝宗ㆍ顯宗ㆍ肅宗 시대에 생존했던 인물로 當代를 대표하는 經世濟民의 顯官이자 文人이었다. 그는 두 차례에 걸친 禮訟 문제로 南人과 西人이 첨예한 대립을 보이며 朋黨政治의 末弊적 현상이 顯著하던 시기에 政丞을 맡아 政治的 浮沈을 함께 경험하였던 인물이다. 또한 그는 斥和派의 巨頭 淸陰 金尙憲의 손자이자 昌集ㆍ昌協ㆍ昌翕ㆍ昌業ㆍ昌楫ㆍ昌立 형제의 부친으로서 문명 높은 累代 名門巨族의 일원으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정치적 변혁과 바쁜 激務의 와중 속에서 남겨놓은 詩文이 그의 文集인《文谷集》에 전하고 있다. 《文谷集》은 叢28卷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詩는 卷1부터 卷7까지 叢1,030首가 수록되어 있다.   文谷 金壽恒의 詩는 일상생활에서 겪은 감회를 자연과 교감하면서 형상화 한 詩들과 관직에 임한 儒者로서 갖는 다짐 및 그 애환과 고충을 완화시켜 나가는 내용을 담은 詩들로 대별해볼 수 있다. 그의 시를 ‘生活의 閑情ㆍ景物의 觀照ㆍ官吏의 本分' 등의 항목으로 나누어 분석해본 결과 다음과 같은 작시상의 특성을 찾을 수 있었다.   첫째, 金壽恒은 詩에서 自然을 描寫하되 淡淡한 筆致로 寫景에 任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華麗한 色彩感이나 纖細한 묘사에 輜重하기보다 는 오히려 淡淡하고 平凡한 어조로서 ‘先景後情' ‘移情入景 景從情出'등의 詩作 方式을 빌어 자연을 시 속에 옮겨두고 있었다.   〈江村漫興〉에서는 강촌에서 맞은 한가로운 여유를 對偶의 妙를 잘 활용하여 水村의 겨울을 現場感 있게 묘사하고 있다. 특히 얼음 밑으로 쏟아져 내리는 물소리의 壯快함을 표현하여 시에 生氣를 불어넣고 있으며, 寫景 이후에 內面 情緖로 옮겨오는 先景後情의 방식을 취하여 겨울날의 고즈넉한 情趣를 느끼게 한다. 또한 〈五月卽事〉에서의 표현을 보면, 비 내리다 그친 오후의 정경에 작가의 생활면모가 녹아들도록 作詩하였다. 景物과 情意와 잘 어우러지도록 以景入情의 방식을 사용하여 描畵的 분위기를 創出하고 있다.   金壽恒은 이러한 시를 통해 平淡한 표현만으로 생활의 숨결을 含蓄하고 人生의 哲理를 설명하고 있으며, 말은 간결하나 뜻이 풍부하여 반복해서 음미할수록 끝없는 여운을 느끼게 하는 시문학적 특성을 보이고 있다.   둘째, 歷史的 사실이나 前代에 있었던 語句들의 활용을 통해 詩思를 이끌어가며 論理를 補完해 나가는 作詩法을 사용하였다.   〈乙未十月二十七日…〉에서 杜甫와 王勃의 故事를 빌려와서 兄弟間에 함께 한 나들이의 興趣가 倍加됨을 보이고 있다. 杜甫의 〈登?州城樓〉와 王勃의 〈?王閣序〉을 引用해 표현함으로써 勝景을 감상하면서 부모님의 정을 그리워하고 형제간의 情誼를 더욱 깊게 느껴지도록 하고 있다. 또한 〈詠盆梅〉에서도 典故를 활용해서 作詩하였다. 〈莊子〉 逍遙遊篇과 隋나라 趙師雄의 廣東省 羅浮山 梅花村에서의 故事를 引用하고 있다. 특히 이 시에서는 首尾相關하게 典故를 活用하고 있으며, 托物寓意를 적절히 펼치고 있다. 매화의 姿態를 形象化함에 있어 故事를 이끌어와 詩意를 더욱더 深化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遼陽客夜書懷〉에서는 荊軻의 故事, 〈初配原城 改竄朗州 自楊山轉就南路 次經曲阿韻〉에서는 屈原과 賈誼의 故事 등을 다루고 있다. 이러한 典故의 活用은 新意를 나타내기 어렵다고 단정하기보다 오히려 金壽恒 詩世界의 獨自性을 構築했다고 볼 수 있으며 아울러 詩意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셋째, 金壽恒의 詩世界에서 顯著하게 드러나는 또 하나의 특성은 館閣風의 典型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館閣 文臣들이 使行의 任務를 띠고 조정을 떠날 때나 歸養ㆍ左遷 등의 불우한 상황에서 쓴 시들에는 文臣으로서 기본적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 많은데 金壽恒의 詩에서 이와 같은 구절은 散見된다.   冬至使의 書狀官으로 燕行길에 올라 쓴 〈?州途中〉에서 使行의 임무를 맡은 관리로서 戀君의 심정과 자식으로 객지에서 부모를 그리는 孝心을 표출하면서 독자로 하여금 客愁를 더욱 共感하게 하였다. 또한, 〈人日〉에서는 他國에서 過歲를 맞이한 異邦人의 孤獨感과 임금계신 九重 宮闕을 생각하는 儒臣의 심정이 如實히 드러나고 있다. 결국 어떤 상황에서든 忠君의 자세로 돌아가는 것이야말로 관리들이 갖는 가장 기본적 자세였던 것이다. 그리고 〈次崔內翰錫鼎見寄韻〉에서는 國政에 대한 염려로 일관된 마음을 표출하고 있다. 당시 혼란했던 정국의 一面과 정치적 風霜을 이미 겪은 작자의 모습을 언급하였으며, 나라를 위해 충성   Mun-Gok Kim Su-hang(1629~1689) is one of the most famous scholars and officials in the middle period of Choseon, who experienced political rise and fall through the faction politics. Kim Su-hang, who was born in a renowned family, was taught by Cheong-Eum Kim Sang-heon, his grandfather, and was acknowledged as one of the greatest scholars from his young days. He became a prime minister in the political crisis. In this thesis, I classified Kim Su-hang"s poetry into several categories, such as poems of sightseeing tour, mission and exile and studied on the characteristics of his poetry.   Kim Su-hang wrote poems with a serene and graceful style without brilliant rhetorical techniques and excessive emotional exposure. His poetry give readers the impression that they watch paintings in Indian ink.   He had a profound knowledge of classics, because he was a scholarofficial who once held a post of Dae-je-hak. With his broad and deep knowledge on classics, he often cited phrases from classics on his poems. From his poetry, we can find his faith in keeping the basic attitudes as a civil minister. It makes him a typical literary man of Kwan-Gak, which means a literary man who held a post of Dae-je-hak.

        • KCI등재

          中韩“烈不烈女” 传说比较研究

          ?希佳 동양한문학회(구 부산한문학회) 2004 동양한문학연구 Vol.20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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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고는 한국 烈不烈女說話와 중국 水泡作證說話를 비교 연구했다. 이 유형의 설화는 세계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이를테면 독일의 ?밝은 태양이 진실을 밝힌다?라는 이야기는 ‘살인자가 자기 스스로 진상을 밝힌다'는 점에 핵심을 두고 있다.   양국 설화의 줄거리는 비슷하고, 한국 烈不烈女說話는 중국 설화의 영향을 받아서 생성되었다고 본다. 그러나 해당 설화를 놓고 볼 때 양국의 다른 문화와 민간에 유전되는 과정에서 각기 독특한 특징을 지니고 있음 을 찾을 수 있다.   한국 설화는 孫晋泰의 ?韓國民族說話硏究??(을유문화사, 1946)에 수록된 慶南 昌原郡 鎭東(현재의 행정구역은 馬山)에 전하는 烈不烈女說話(1927년 7월 採錄)와 張德順의 ??韓國說話文學硏究??에 수록된 忠北 永同郡 永同邑에 전하는 ?事二夫烈女譚?(1967년 8월 채록)에 대해서 고찰했다.   중국에서는 일찍이 유사한 口碑說話가 記錄傳承되고 있다. 즉 南宋 庄綽의 ??鷄肋編??(1133년)에 수록된 ?淮陰節婦?를 비롯하여 徐積의 ??節孝先 生文集??에 수록된 ?淮陰節婦?, 洪邁의 ?夷堅志??에 수록된 ?張客浮匯?, 明代의 無名氏雜劇과 西湖隱逸主人의 ?歡喜寃家?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전하고 있다. 본고에서는 南宋 庄綽의 ??鷄肋編??에 수록된 ?淮陰節婦?에 대해 살폈다. 손진태는 중국설화로 송나라 高文虎가 찬한 ??蓼花洲閑錄?? 의 ?회음절부?를 인용했다. 高文虎는 ??鷄肋編??의 ?淮陰節婦?를 그대로 옮겨놓았기 때문에 손진태가 인용한 것과 ??鷄肋編?? 所載 ?淮陰節婦?는 같은 내용이다.   중국 민간설화 중에는 사람을 죽이고 그 처를 빼앗고, 얼마 뒤 그 처가 고발하여 법에 따라 처단되는 유형의 설화가 전하는데 이를 奪妻敗露型 이라고 하고 그 亞流型으로 水泡作證型, 白羅型, 奸僧離間型 등이 있고,   이와 관련한 설화들이 많이 유포되어 있으나 본고에서는 다만 水泡作證 型에 대해서만 논하기로 했다.   韓中 양국의 문화교류 역사는 유구하다. 양국은 빈번하게 왕래, 이동, 혼인 등으로 인해 민간설화의 授受關係가 형성되었고, 중국 고전소설은 한반도에 대량으로 유입되어 한국 고전소설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   ?淮陰節婦?는 慶南 鎭東 열불열녀설화에 영향을 끼쳤지만, 그 전승과 정에서 韓國的인 文化와 習俗에 따라 한국적인 이야기로 정착하게 되었다. 두 설화간에는 유사점과 相異點을 지니고 있는데, 類似點을 들면 다음 과 같다.   1. 어떤 이가 사람을 죽이고 그 처를 빼앗았다. 죽을 때 그 사람은 水泡 [물거품]를 가리키면서 저것이 증명할 것이라고 했다.   2. 살인자는 殺害者의 처와 결혼하여 자녀를 낳았다.   3. 어느 날 살인자는 물거품을 보고 웃자, 그 처는 남편이 무엇 때문에 웃는지 물었다. 살인자는 사람[妻의 前夫]을 죽인 사실을 아내에게 말했다.   4. 그 처는 관청에 살인자[남편]를 고발했고, 살인자는 사형에 처해졌다.   5. 그 처도 자살했다. 한국 열불열녀설화는 구체적인 장소와 비석이 존재하기 때문에 설화의 진실성을 입증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비록 이야기 주인공의 이름, 발생시기, 장소 등이 밝혀져 있지만 설화의 특징이라 할만한 점을 찾기가 힘든다. 그리고 전통적인 한국인의 貞操觀은 烈不烈女說話의 주제를 매우 강조하고 여주인공에 대해 叱責하는 측면이 드러난다. 이는 주인공의 심적 갈등이나 ‘烈女이면서도 烈女가 아니라'는 모순적인 표현에서 찾을 수 있다. 중국에서는 역대로부터 여자는 貞節을 지켜야 한다고 했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여주인공이 겪는 고난에 대해 同情으로서만 충만되어 있고, 거의 ‘烈不烈女'라는 각도에서 그것을 평가하지 않는다. 단지 중국 민중은 이야기 중 罪人의 특수 심리에 대해 관심을 모으고 있으며, 죄인은 어떤 특수한 정경 속에서 자신을 어떻게 단속하였는지에 대해 강조한다.   한국 昌原 鎭東의 烈不烈女說話와 永同의 ?事二夫烈女譚?에서 보면, 전자는 前夫의 원수를 갚기 위해 살인자와 改嫁했고, 후자는 현 남편을 간호하여 더 오래 살도록 하기 위해 改嫁했는데, 이는 각 작품이 지니고 있는 특징이라 할 수 있다.

        • KCI등재

          近代漢語中的構式“待v不v”研究

          胡玉華(Hu Yu hua) 동양한문학회(구 부산한문학회) 2017 동양한문학연구 Vol.46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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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待V不V 는 명청시기에 사용되는 근대 중국어의 한 가지 구식이다. 이러한 구식은 원명시기의 待VP, ……;待不VP, …… 또한 待不VP, ……;待VP…… 과 같은 쌍층다복구(雙層多複句)에서 줄여서 형성되었다. “dai v bu v” is a common construction of modern Chinese which was used in the Ming and Qing dynasties , and has special semantic meaning.The construction is a compact structure derived from the complex sentence “dai vp……;dai bu vp, ……”or“dai bu vp, ……;dai v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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