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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논문(硏究論文) : 한국에서 고려(高麗)-몽골(원,元) 관계사(關係史) 인식과 북방민족사(北方民族史) 연구

          김장구 ( Jang Goo Kim ) 동국역사문화연구소(구 동국사학회) 2015 동국사학 Vol.59 No.-

          이 글의 목적은 지난 20세기에 저술된 대표적인 한국사와 동양사 개설서, 고려-몽골(元) 관계사 논문 등에 보이는 몽골 인식과, 1990년대 이후 한국 역사학계와 관련학회, 관련기관의 북방민족사 연구 성과를 살펴봄으로써 성찰과 전망의 기회로 삼기 위함이다. 20세기 중후반(1945~1989년)에 선학들은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뛰어난 연구 업적을 발표하였다. 일부 저서와 논문에서 북방민족에 대한 편견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당시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었다. 특히 선학들의 우수한 연구 성과는 이후 한국 북방민족사학계와 알타이학계에 초석을 놓았다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한국알타이학회, (사)중앙아시아학회, (사)한국몽골학회 등이 성립되어 중추적인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관련 기관으로는 동북아역사재단, 국립중앙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국립문화재연구소 등이 관련 연구를 진행하는 한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경기도 박물관, 예술의 전당 등도 관련 전시회를 열고, 전시도록과 연구서 등을 발간하여 일반인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이외에도 동국대학교, 단국대학교, 서울대학교, 부경대학교, 계명대학교 등에서 북아시아와 중앙아시아, 실크로드의 역사와 문화에 관련한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 글에서 살펴보는 바와 같이 한국 역사학계에서 고려-몽골(元) 관계 연구와 북방민족사 연구는 지난 20세기부터 2015년까지 괄목할 만한 연구 성과를 거두었다. 이번 발표에서 다루지 못한 관련 연구서와 논문 등을 계산에 넣는다면, 아마도 양적인 면에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성장을 보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비판적으로 성찰해보면, 과연 모든 연구 성과가 질적으로도 만족할만한 수준에 이르렀는가라는 질문에는 어느 누구도 선뜻 그렇다고 대답하기 힘들 것이다. 또한 고려-몽골(元) 관계사와 북방민족사 연구에서 반드시 필요한 주제 등 부족한 부분이 아직도 많다.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심각한 문제는 연구자들이 상호 성과 인용과 건전한 비판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특히 연구자 층이 엷고 축적된 학문성과가 부족한 한국 중앙유라시아학계에서 지양하고 반성해야 할 점이다. This article aims to examine the research results of history of Northern Peoples by a history circle including related academic societies and organizations after 1990's and the perception of Mongol revealed in Korean history books, Oriental history books and treatises on the relation between Goryo and Mongol. Furthermore, I hope that the examination could be an opportunity for introspection and prospect to advance. In the second half of 20th century(1945~1989), many scholars accomplished outstanding research achievements even in unfavourable research environment. Some works and treatises have a bias on Northern Peoples, however, it appears unavoidable considering a lot of barriers against research in this field at that time. Nevertheless, it can be said that those research achievements laid the foundation for Northern People studies and Altai Studies from then on. As a result, The Altaic Society of Korea, The Korean Association for Central Asian Studies, The Korean Association for Mongolian Studies were established and played a key role in studying Northern peoples. As related research institutes, Northeast Asian History Foundation, National Museum of Korea, National Folk Museum of Korea and 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have also spared no support, carrying out relevant researches. Gyeonggi Provincial Museum, Seoul Arts Center held exhibitions on related themes and published research books and pictorial books to help the public with understanding. Besides, Dongguk Univ., Dankook Univ., Seoul National Univ., Pukyong National Univ., and Keimyung Univ. are conducting researches on history and culture of Northern and Central Asia and Silk road. As is examined in this article, the academic circle of Korean history has made outstanding achievements in researches on relation between Goryo and Mongol and history of Northern peoples since last mid-twentieth century. To take treatises and books not covered in this article into consideration, it can be said to make the rapidest growth in quantitative aspect in the world. However, introspecting critically, no one could not be convinced whether all research achievements are wholly satisfactory in qualitative aspects. In addition, it is a current situation that integral researches on this field are still insufficient. Finally, a lack of mutual exchange of research finds and evolutive academic commentaries is pointed as the most serious problem. It should be reflected and rejected for academic improvement under the situation of thin researchers base and little accumulated academic results in Central eurasian studies circle i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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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서 高麗-몽골(元) 關係史 인식과 北方民族史 연구

          金壯求 동국사학회 2015 동국사학 Vol.59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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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의 목적은 지난 20세기에 저술된 대표적인 한국사와 동양사 개설 서, 고려-몽골(元) 관계사 논문 등에 보이는 몽골 인식과, 1990년대 이후 한국 역사학계와 관련학회, 관련기관의 북방민족사 연구 성과를 살펴봄으 로써 성찰과 전망의 기회로 삼기 위함이다. 20세기 중후반(1945~1989년)에 선학들은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뛰어난 연구 업적을 발표하였다. 일부 저서와 논문에서 북방민족 에 대한 편견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당시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었다. 특히 선학들의 우수한 연구 성과는 이후 한국 북방민족사학계와 알타이학계에 초석을 놓았다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한국알타이학회, (사) 중앙아시아학회, (사)한국몽골학회 등이 성립되어 중추적인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관련 기관으로는 동북아역사재단, 국립중앙박물관, 국립민속박물 관, 국립문화재연구소 등이 관련 연구를 진행하는 한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경기도 박물관, 예술의 전당 등도 관련 전시회를 열고, 전시도록과 연 구서 등을 발간하여 일반인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이외에도 동국대학교, 단국대학교, 서울대학교, 부경대학교, 계명대학교 등에서 북아시아와 중앙 아시아, 실크로드의 역사와 문화에 관련한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 글에서 살펴보는 바와 같이 한국 역사학계에서 고려-몽골(元) 관계 연구와 북방민족사 연구는 지난 20세기부터 2015년까지 괄목할 만한 연구 성과를 거두었다. 이번 발표에서 다루지 못한 관련 연구서와 논문 등을 계산에 넣는다면, 아마도 양적인 면에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성장을 보였 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비판적으로 성찰해보면, 과연 모든 연구 성과가 질적으로도 만족할만한 수준에 이르렀는가라는 질문에는 어느 누 구도 선뜻 그렇다고 대답하기 힘들 것이다. 또한 고려-몽골(元) 관계사와 북방민족사 연구에서 반드시 필요한 주제 등 부족한 부분이 아직도 많다.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심각한 문제는 연구자들이 상호 성과 인용과 건전한 비판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특히 연구자 층이 엷고 축적된 학문성 과가 부족한 한국 중앙유라시아학계에서 지양하고 반성해야 할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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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세기 후반 申箕善의 현실 인식과 사상적 변화

          노대환 동국사학회 2012 동국사학 Vol.53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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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도서기론은 개방론과 척사론이 첨예하게 대립되던 1880년대 초반에 등장한 사상적 조류였다. 동도서기론을 처음으로 주장한 인물은 申箕善이다. 본고에서는 1890년대 이후 신기선의 행적을 보충하여 신기선의 생애 전반을 재검토하면서 그의 사고가 시기별로 어떻게 변화되었는가를 살펴보았다. 신기선은 산림 문하에서 수업을 받다가 1880년대 초반 동도서기론자로 전신하였다. 1880년대 초반 신기선의 동도서기론은 보수적 유자들을 설득하기 위한 논리로 제기된 것이었다. 신기선은 개화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 참여하여 활동했지만 갑신정변에 연루되면서 삶에 큰 변화를 맞았다. 정변파와 친분이 깊었던 탓에 그는 유배에 처해졌으며 이를 계기로 점차 보수적인 면모를 띠게 되었다. 1880년대 후반 그의 사상적 면모는 ?儒學經緯?를 통해 확인되는데 1880년대 초반과는 달리 儒道의 가치를 확인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갑오개혁과 을미개혁을 목도하면서 그의 보수적 색채는 더욱 짙어졌다. 그는 개혁이 자주적으로 추진되지 못하고 개혁 내용이 급진적이라는점 때문에 당시의 개혁에 비판적이었다. 이제 그의 관심은 급진적인 문명 개화론자들로부터 유도를 보위하는 데 있었다. 그로 인해 신기선은 독립협회로 대표되는 문명개화론 계열로부터 신랄한 비판을 받았다. 신기선은 1900년대 후반에는 新?舊學折衷論을 제시하였다. 그의 신?구학절충론은 신학으로부터 구학을 보호하는 데 기본적인 목적이 있었다. 하지만 신기선의 주장은 별다른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였고 그 보수적 성격 때문에 신학 계열의 비판을 받았다. 대동학회 활동시 일본의 지원을 받은 탓에 만년에는 일본의 三忠奴가운데 한 사람으로 지목을 받기까지 하였다. 신기선은 한때 진보 계열에 속해 전통 유자들에게 비판을 받았지만 1890년대 중반 이후 문명개화 계열로부터 수구로 지목되었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신기선이 보여준 행보는 동도서기론의 시대적 추이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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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東國史學 第七輯 附錄一 : 高麗史의 佛敎關係資料(四)

          安啓賢 동국사학회 1964 동국사학 Vol.7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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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說林] 19세기 초엽 그리스의 解放과 유럽의 外交狀況

          Stephanos,Papadopoulos 동국사학회 1984 동국사학 Vol.18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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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세기 初期에 있어서 그리스의 ?立戰爭과 그리스 ?立國家의 탄생은 발칸 역사의 劃記的인 사실일 뿐 아니라 유럽 전체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당시 「그리스 문제」는 오리엔트 전체 문제와 직결되어 있었고 또한 나폴레옹 戰爭 후 유럽 國?社會의 外交문제와도 깊이 연결되어 있었고 따라서 神聖同盟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는데 그 역사적 意義가 있다 하겠다. 1983년 7월 28일부터 31일까지 4일간 「元明?期에 있어서 國家”支配”와 民家像의 재검토 支配 의 中國的 특질」이라는 제목의 심포지엄이 九州大學東洋史 주최로 九州大分縣九重山 筋渴은 천에서 열렸다. 마침 京部大學人交科學硏究所의 招聘敎授로 일년간 체제중이던 필자는 기회만 닿으면 해보리라던 九州地万의 여행도 겸하여 이번 학회에 참가 할 수 있게 된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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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국대학교 사학과 창립 60주년 기념 학술대회 발표논문 : 동국사학 60년의 성과

          임영정 동국사학회 2006 동국사학 Vol.42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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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논문 : 19세기 후반 신기선(申箕善)의 현실 인식과 사상적 변화

          노대환 ( Dae Hwan Noh ) 동국사학회 2012 동국사학 Vol.53 No.-

          동도서기론은 개방론과 척사론이 첨예하게 대립되던 1880년대 초반에 등장한 사상적 조류였다. 동도서기론을 처음으로 주장한 인물은 申箕善이다. 본고에서는 1890년대 이후 신기선의 행적을 보충하여 신기선의 생애 전반을 재검토하면서 그의 사고가 시기별로 어떻게 변화되었는가를 살펴 보았다. 신기선은 산림 문하에서 수업을 받다가 1880년대 초반 동도서기론자로 전신하였다. 1880년대 초반 신기선의 동도서기론은 보수적 유자들을 설득하기 위한 논리로 제기된 것이엇다. 신기선은 개화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 참여하여 활동했지만 갑신정변에 연루되면서 삶에 큰 변화를 맞았다. 정변파에 친분이 깊었던 탓에 그는 유배에 처해졌으며 이를 계기를 점차 보수적인 면모를 띠게 되엇다. 1880년대 후반 그의 사상적 면모는 『儒學經緯』를 통해 확인되는데 1800년대 초반과는 달리 儒道의 가치를 확인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갑오개혁과 을미개혁을 목도하면서 그의 보수적 색채는 더욱 짙어졌다. 그는 개혁이 자주적으로 추진되지 못하고 개혁 내용이 급진적이라는 점 때문에 당시의 개혁에 비판적이었다. 이제 그의 관심은 급진적인 문명 개화론자들로부터 유도를 보위하는 데 있었다. 그로 인해 신기선은 독립협회로 대표되는 문명개화론 계열로부터 신랄한 비판을 받았다. 신기선은 1900년대 후반에는 新·舊學折衷論을 제시하였다. 그의 신·구학절충론은 신학으로부터 구학을 보호하는 데 기본적인 목적이 있었다. 하지만 신기선의 주장은 별다른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였고 그 보수적셩격 때문에 신학 계열의 비판을 받았다. 대동학회 활동시 일본의 지원을 받은 탓에 만년에는 일본의 三忠奴 가운데 한 사람으로 지목을 받기까지하엿다. 신기선은 한때 진보 계열에 속해 전통 유자들에게 비판을 받았지만 1890년대 중반 이후 문명개화 계열로부터 수구로 지목되었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신기선이 보여준 행보는 동도서기론의 시대적 추이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였다. The theory of Dongdoseogi (東道西器, Eastern Ways and Western Machines, shortened as Dongdoseogiron hereafter) was a new current of thought introduced in the early 1880s when a severe argument of the open-door theory and the doctrine of rejecting heterodoxy in defense of orthodoxy was is at its peak. Sin Gi-seon was the very person who suggested Dongdoseoginom for the first time. This study aims to elucidate traces of his life 1890s and review his entire career. It is anticipated that the periodical shifts of his thoughts would be revealed during saidprocess He used to study under the guidance of rustic literati(山林, sallim), however, in the early 1880s, he was fascinated to the idea of Dongdoseoginm. Ar that time, he suggested the new theory to convince conservative Confucian scholars. He also participated in the open-door movement, but, snce he got involved in Coup d`Etat of 1884, he had to experience a huge transition of life. Because he had a close relationship with revolutionaries, he was sent into exile and, ever since this point, he gradually became conservative. His new thoughts in the late 1880s can be found from Yubakgyeongui (儒學經緯, Warp and Woof [circumstances] of Confucianism) and it aimed, unlike his old ideas from the early 1880s, to re-secure the significance of Confucian teachings. Witnessing the Reforms of Gdoo (1894) and Eulmi(1895), made him even more conservative. He was critical abot the reform movements since he regarded the reform as dependent and radical. At this point his only interest was to protect Confucian ways from the radical reformists. Therefore, he had to face a severe criticism from the enlightenment parties represented by the Independence Club. In the late 1900s he suggested the compromising theory of the old and new studies. This suggestion was rnainly for the protection of old studies from newer academic trends. But his argument failed to evoke a significant response and, instead, he received a severe denumciation from groups of new academia. Sin Gi-seon once belonged to a progressive groip and , thus, was criticized by orthodox Confucian scholars. But after the middle of 1890s he was marked as a conservative by the reformist groups. Shifts of his thoughts from the late 19th century to early 20th century also show the periodical transition of Dongdoseogir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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