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검색결과 좁혀 보기

      선택해제
      • 좁혀본 항목 보기순서

        • 원문유무
        • 원문제공처
          펼치기
        • 등재정보
        • 학술지명
          펼치기
        • 주제분류
          펼치기
        • 발행연도
          펼치기
        • 작성언어
          펼치기
        • 저자
          펼치기

      오늘 본 자료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더보기
      • 무료
      • 기관 내 무료
      • 유료
      • 제1장 3주기 교원양성기관 평가 준비의 실무적 진단과 시사점: 경상대학교를 중심으로

        윤대원 ( Dae Won Yoon ),박균열 ( Gyun Yeol Park ),김복정 ( Bok Jeong Kim ),김수진 ( Su Jin Kim ) 경상대학교 중등교육연구소 2010 중등교육연구 Vol.22 No.-

        이 연구는 교육과학기술부의 3주기 교원양성기관평가에 대해 실무적으로 진단하고, 향후 평가대비 시사점을 제시하는 데 그 목적을 둔다. 3주기 평가는 경영 및 여건 영역, 프로그램 영역, 성과 영역 등 3개 영역으로 진행되었다. 경상대학교는 평가를 위해 사전준비 조치로 사범대학의 경우 인성, 전문성, 창의성이라는 교육목표를 설정하고 각 평가지표별로 사전에 준비할 수 있는 요건 구비 노력을 했다. 실제 자체평가준비를 위해, 기획위원회와 실무위원회를 구성했다. 기획위원회는 교과별 경륜이 풍부하고 전력수립 경험이 많은 교수들로 구성했다. 실무위원회는 주로 사범대학의 각 교과별 교육평가경험이 있는 소장교수들로 구성했으며, 일반대학 교직과정 준비를 위해 자연대학과 인문대학의 교수를 각 1명씩 포함해서 구성했다. 자체평가를 실제 준비하는 중에도 학과장 및 전공주임 교수회의 개최, 조교회의 개최, 상황실 설치, 그리고 실시간 정보공유를 위해 학교 웹하드를 활용하여 사이버공동체를 수립했다. 자체평가보고서의 주요내용은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이미 양식을 제시해주었기 때문에, 제시된 안의 범위내에서 작성되었다. 이를 위해서는 증빙할 수 있는 비치자료를 잘 선별해서 제시해야 되는데, 서류철 정리에서부터 지표영역별 우수 사례 선정, 최종보고서 인쇄에 이르기까지 세심한 준비를 해야 한다. 경상대학교는 이와 같은 절차를 거쳐 사범대학은 B등급, 교육대학원은 C등급, 일반대학 교직과정은 D등급을 받았다. 사범대학과 교육대학원의 경우 다른 국립대학, 즉 서울대학, 경북대학, 전남대학, 전북대학 등과 같은 수준의 결과를 얻었지만, 교직과정의 경우 다른 인접 국립대학과 같이 낮은 등급을 받았다. 교원양성의 주요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사범대학의 평가결과는 컴퓨터교육과, 음악교육과, 미술교육과 등 학과내부의 특수사정이 개선된다면 추후 평가에서는 전국적으로 월등한 평가결과를 얻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했다. This paper diagnoses on 3rd period evaluation of teacher training institutes and shows some implications. As main indicators, there are three perspectives: management and environment, program, and product etc. As preconditional preparation, Gyeongsang National University (GNU) made objective of the education: personality, expert, creativity for teacher. Based on this objective, GNU has collected and prepared for indicator relating data. For more efficiency, two committees were organized. Those were strategic planning committee and practical committee. As a result, GNU got B grade at the level of Teachers College, C grade at Graduate School of Education, and D grade at Subsidiary Course for Teachers Training (Gyozikgwajeong) which has concerned about students not in Teachers College. Comparing with neighboring some national universities, GNU did show not so bad result through this sequential evaluation process.

      • KCI등재

        포스트 코로나 시대, 한국 대학의 기업화

        한형성(Hyung Sung Han) 경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마르크스주의 연구) 2021 마르크스주의 연구 Vol.18 No.2

        코로나 이후 한국에서는 자본, 국가권력, 대학 본부로 이루어진 ‘삼각동맹’이 코로나를 빌미로 고등교육의 ‘혁신’을 내세우며 ‘대학의 기업화’를 더욱 강력하게 추진할 것이다. 그러나 ‘대학의 기업화’야말로 한국의 대학들을 지금의 위기 상황에 놓이게 한 원인 가운데 하나이다. 이 연구는 ‘대학의 기업화’를 막기 위해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한국의 교수와 연구자들이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는다면 코로나 이후 한국의 대학은 자본에 의한, 자본을 위한, 자본의 대학이 될 수 있다는 위기감으로 시작하였다. 연구는 먼저 현재 한국의 4년제 사립대학에서 기업화가 어느 정도 진행되었는지를 사립대학의 법인이사회 구성과 산학협력의 현황 그리고 비정년계열 전임교원의 상황을 통해서 분석한다. 다음으로, 한국 대학의 위기 극복 방안과 관련해 지금까지 나왔던 여러 제안들의 긍정적인 점과 부족한 점을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대학의 기업화’를 막기 위해서는 무엇으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에 대한 필자의 생각을 밝힌다. 이 연구를 통해서 ‘대학의 기업화’를 막기 위한 주체와 방법의 마련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After the Corona pandemic, the Triangle Alliance, which consists of capital, state power and university administrations will push more strongly for the corporatization of universities in South Korea. Yet this corporatization has been going on since the 2000s and has put Korean universities into crisis. This study begins with the concern that, post-covid-19, Korean universities could operate for the benefit of capital if professors and researchers do not seriously consider what to do right now to prevent the corporatization. The study first analyzes how much corporatization has progressed in Korea"s four-year-degree private universities by examining the composition of their board of directors, industry-academic cooperation, and the employment circumstances of full-time non-tenure track facult. Next, the study examines the positives and deficiencies of various proposals made so far regarding how to overcome the corporatization of the Korean universities. Finally, this article suggests how to start preventing acorporatization.

      • KCI등재

        기획논문 : 冥學硏究(명학연구)의 發展史(발전사)

        강동욱 ( Dong Uk Kang )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2012 남명학연구 Vol.35 No.-

        본 논문은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개소 주년을 맞아 남명학연구소를 중 20심으로 지금까지의 남명학 연구에 대해 시기별로 발전 양상을 살펴본 것이다. 1990년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설립을 기준으로 1990년 이전과 남명학연구소 설립 후인 1990년부터 2011년까지를 남명선생 탄신 500주년이 되는 2001년을 기점으로 삼아 전후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우리나라에서 남명 조식 선생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점은 1980년대 후반이다. 1980년대 후반 김충렬 교수에 의해 학계에 알려지기 시작한 남명학은 1990년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설립을 기점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해왔다. 남명 중심의 연구에서 범위를 확대해 남명 제자들을 통해 남명사상의 계승 양상을 구명해 남명 정신이 우리나라 선비 정신의 본보기로 인식하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001년 남명탄신 500주년을 맞아 남명학과 다른 학파와의 비교를 통해 16세기 유학사에서 남명학의 특징을 학계에 널리 알렸으며, 외국 학자들과의 교류를 통해 남명학의 국제화에도 많은 기여를 했다. 지금껏 경상대학교 남명학 연구소를 중심으로 남명과 남명학파에 대한 연구는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남명학 연구의 발전 과제도 적지 않다. 20여년 동안 ‘남명’ 이란 주제로 수많은 연구 성과물들을 세상에 내놓았지만 아직 남명 선생에 대한 일반 대중들의 인지도는 적어도 경남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굳이 퇴계선생과 비교하지 않더라고 남명의 정신과 학문이 우리나라 대표적인 선비정신의 표상으로 전 국민들이 인식할 때 까지 관계자들의 꾸준한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In Korea, Nammyeong Josik teacher research began in earnest on the point is in the late 1980s. In the late 1980s, Nammyeonghak known in academia for the first time by Professor gimchungryeol has been a breakthrough, nammyeonghak Institute of Gyeongsang National University, founded in 1990 to begin. Nammyeong center to broaden the scope of the study, so Succession patterns of Nammyeong thought revealed by his disciples, so the spirit nammyeong Korea as an example of the scholar to recognize the spirit which played a crucial role. In 2001, at 500 anniversary of the birth of nammyeong, nammyeonghak and by comparison with other schools in the 16th century, yuhaksa nammyeonghak widely in academia have been notified of the feature, through exchanges with foreign scholars contributed much to the internationalization of nammyeonghak. So far as R & D Center, Gyeongsang National University nammyeonghak nammyeonghak nammyeong and steps are being par for the study. Nammyeonghak development challenges, but also myriad of research. Over 20 years ``nammyeong`` as the subject of numerous research results released to the world, but still nammyeong teacher awareness of the general public does not seem to be at least in Gyeongnam is terrible. Compared with the teacher, even if you do not bother Toegye, nammyeong the spirit of the country, and leading academic scholars in the spirit of former officials until people recognize that you need constant attention and looks. Nammyeong for teachers identify academic efforts of the past 20 years has been recognized in academic circles. But for the disciples of nammyeong research, research on nammyeonghak par soon have a lot yet further support. A study of some of his disciples as revealed Naeam actively progressed, but, for many students, including suwoodang research is the beginning stage. Study of young researchers to improve conditions there is an urgent task. Nammyeonghak Institute, focusing on hanmunhak and their emissions, but many young researchers, nammyeonghak personnel involved in the research that is just a few. Different circumstances, but the active support of school authorities to create conditions through research and young researchers to concentrate on their studies nammyeonghak also think it`s important to create an atmosphere.

      • 대학 경영에 있어 교육원가정보의 활용 방안

        이동규 충남대학교 경상대학부설 경영경제연구소 1998 경영논집 Vol.14 No.1

        경쟁의 심화 및 경영난이라는 이중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립대학이 상대적 경쟁우위를 확보하려면, 대학교육원가정보를 최대한 활용하여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림으로써 자원의 효율성을 극대화시켜야 한다. 본 논문은 대학교육원가의 개념, 특성, 중요성, 교육원가정보의 산정방법, 원가정보의 활용방안 등을 제시한다. 특히, 자원획득의 어려움, 고원가구조, 등록금의 수입 격감 등에 대응하고, 대학의 고객만족 경영에 따른 시간제학생제도, 다전공제도, 다학기제도, 사이버 대학(Cyber University)제도 등 새로운 학사 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등록금 책정, 학점단위 원가의 산정, 그리고 종합대학의 효율화를 위한 각종 구조조정(대학의 폐지와 학부제 도입, 대학간의 빅딜 및 전략적 제휴)과 관련된 원가문제 등을 논의한다.

      • KCI등재

        진주성전투에 있어서 경상우도관찰사 김성일의 역할

        하태규 경상대학교 경남문화연구원 2018 남명학연구 Vol.57 No.-

        This study's purpose is to investigate the role of Kim Seong-il as a governor of Gyeongsang-u-do in the 1st Jinjuseong battle. As you know, the Jinjuseong battle is known as a great victory of war in which people like Jinju minister, Kim Si-min spread the bloody battle and kept the Jinjuseong. At that time, Kim Seong-il led the battle to victory by directing people like Kim si-min as a governor of Gyeongsang-u-do Province. Kim Seong-il, who was acting as Choyusa, was appointed to the governor of Gyeongsang Jwa-do and stepped down from the Choyusa's office and left for a while. Then, Kim Seong-il was appointed again as an governor of Gyeongsang-u-do. In the meantime, the forces stationed in Gaeryung and Sungju area threatened the Geochang area, and at the same time, Japanese invaders attacked the Jinju area from Busan and Changwon area. Kim Seong-il, who was appointed to the governor of Gyeongsang-u-do, played a major role in maintaining the Jinjuseong with excellent ability and tactical management as the best commander. Kim Seong-il established the defense tactic system of castle centered on the government forces with Jinju minister, Kim si-min as the main axis and he deployed government forces and righteous armies on the outskirts of Jinjuseong to make them rescue, and strengthened the Jinjuseong defense by operating a strategy that allowed them to attack the Jinjuseong. In addition, Kim Seong-il induced the best battle and weakened the power of attack of Japanese invaders about Jinjuseong, and relieved the burden of soldiers guarding the Jinjuseong. In addition, he provided supplies of arrows and other materials to the surrounded Jinjuseong, thereby maintained the combat power and enhanced the morale of the military. Immediately after the Jinjuseong battle, he ran to Samga to cope with the Japanese invaders coming from the direction of Geochang and he blocked the Japanese invaders along with the patriotic army leader Kim Myeon and Jeong In-hong with leading the government forces in the surrounding area. Since then, the patriotic army leader Kim Myeon and Jeong In-hong and others have continuously attacked the Japanese invaders of Sungju and Gaeryung area together with Choi Gyong-hoi and Im Gye-yeong, and finally restored Sungju and Gaeryung areas in February of the following year. In this case, Kim Seong-il's role as governor seems to have played a major role. In conclusion, the victory of the Jinjuseong battle was the result of Kim Seong-il's strategy, which was the supreme commander of Gyeongsang-u-do, and the exquisite tactical operation of Kim Si-min, who was the general guarding the Jinjuseong, and the best battle of the various generals and soldiers who took part in the battle in every battle. The victory in the Jinjuseong battle saved the lives of tens of thousands of people in the Jinjuseong by keeping Jinjuseong, prevented Gyeongsang-u-do into the hands of Japanese invaders, and furthermore, it was able to block the way in which the Japanese invaders could advance into Honam. 이글은 제1차 진주성전투에 있어서 경상우도관찰사 김성일의 역할을 구명하기 위한 논고이다. 주지하다시피, 진주성전투는 진주목사 김시민 등이 혈투를 전개하여 진주성을 지켰던 승첩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때 김성일은 경상우도관찰사로사 김시민 등을 지휘하여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초유사로 활동하던 김성일은 경상좌도 관찰사에 임명되어 초유사직에 물러나 잠시 경상우도를 떠났다가 다시 경상우도관찰사로 부임하였다. 그 사이에 개령, 성주에 주둔하고 있는 일본군이 거창 방면을 위협하고 있는 가운데, 부산 창원 방면으로부터 일본군이 진주성을 공격해 왔다. 경상우도 관찰사로 부임한 김성일은 최고의 지휘관으로서 탁월한 역량과 전술운용으로 진주성을 지키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김성일은 진주목사 김시민 등을 주축으로 관군 중심의 수성체계를 구축하고, 진주성 외곽에 관군과 의병을 배치하여 구원하게 함으로써 진주성을 공격하도록하는 전략을 운영하여 진주성 방어력을 강화함은 물론, 분산전을 유도하여 일본군의 진주성 공격의 전력을 약화시켜 진주 수성군의 부담을 덜어 주었다. 아울러 포위된 진주성에 화살 등의 물자를 공급하여 줌으로써 전투력을 유지하고 군사의 사기를 높여주었다. 진주성 전투 직후 그는 거창 방면으로 쳐들어 오는 일본군에 대응하기 위하여 삼가로 달려가, 주변 지역의 관군을 거느리고 의병장 김면, 정인홍 등을 도와 이를 막아내었다. 이후 의병장 김면, 정인홍 등은 전라도 의병장인 최경회 임계영 등이 성주, 개령 지역의 일본군을 지속적으로 공격하여, 마침내대 다음해 2월 성주, 개령지역을 수복하였는데, 여기에도 관찰사로서 김성일의 역할이 크게 작용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결론적으로 진주성전투의 승리는 경상우도의 최고 지휘관이었던 김성일의 전략과 진주성의 수성장이었던 김시민의 절묘한 전술운용, 그리고 각 전투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전투를 수행했던 제장과 사졸의 분전이 어우러진 값진 결과였다. 진주성 전투에서의 승리는 진주성을 지킴으로써 수만의 성내 관민의 목숨을 구한 것은 물론이고, 경상우도가 일본군의 수중에 들어가지 않게 하였으며, 나아가 일본군이 호남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길목을 차단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 자연계열 대학생들의 전공역량에 영향을 미치는 자기보고형 창의성 요인

        정찬기오 ( Chang Gi Ho Chuang ),박신렬 ( Sin Yeol Park ),김훈희 ( Hoon Hee Kim ) 경상대학교 중등교육연구소 2013 중등교육연구 Vol.25 No.-

        본 연구의 목적은 자연계열 대학생들의 과거, 현재, 미래의 전공역량에 대한 자기보고형 창의성 용인의 영향력을 분석하여 제시하는 것이다. 설문조사 대상은 경상남도 소재 2개 국립대학에 재학 중인 2학년 학생 275명으로 교육대학교(수학교육과, 과학교육과) 2학년 학생과 사범대학(수학교육과, 생물교육과) 2학년 학생, 그리고 자연과학대학(수학과, 생물학과) 2학년 학생과, 공과대학(반도체공학과, 토목공학과) 2학년 학생들이었다. 본 연구에 사용된 설문조사 도구는 박병기(1998: 36-39)의 MAPS 4A 모형 중에서 ‘창의적 능력’ 부분만을 발췌하여 부분적인 자구수정을 하여 제작하였다. 본 연구는 자연계 대학생들의 전공 역량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3개의 요인으로 상정하였다. 과거 역량으로는 직전학기 학점, 현재 역량은 설문조사 도구의 전공만족도, 미래 역량으로는 전공에 기반을 둔 비전 창 출 각오를 상정하였다. 연구결과, 자연계 대학생들의 자기보고형 창의성 요인에 대한 인식 평균값의 순위는 지식>융통성>민감성>정교성>상상력>유창성 순으로 나타났다. 전체 전공 역량의 평균은 3.49였으며, 과거 전공 역량의 평균은 3.26, 현재 전공 역량의 평균은 3.55, 미래 전공 역량의 평균은 3.66안 바, 자신의 전공에 대한 역량은 점점 강화되는 것을 나타난 것이 특징이다. 자기보고형 창의성 요인의 하위요인 간에는 정적 상관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전공 역량에서도 정적 상관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기보고형 창의성 요인과 전공 역량 간에는 비교적 낮은 정적 상관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론적으로, 자연과학계열 대학생들의 전공 역량을 형성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지식’과 ‘융통성’이다. 하지만 보다 세부적인 요인을 구체적으로 찾아내는 연구나 더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 KCI등재

        旅軒 張顯光의 『大學』 해석 연구

        최석기 경상대학교 경남문화연구원 2018 남명학연구 Vol.57 No.-

        이 글은 張顯光(1554-1637)의 『대학』 해석에 대해 기왕의 연구가 문집에 수록된 「錄疑竢質」만을 분석해 논한 것을 반성하고, 『역학도설』에 수록된 「大學圖」·「大學改正之圖」를 함께 분석하여 그의 『대학』 해석의 성취과정 및 특징을 밝힌 것이다. 장현광의 『대학』 해석은 세 단계로 성취되었다. 제1단계는 주자의 『대학장구』에 따라 해석하면서 權近·李滉 등의 설을 비판적으로 수용한 것으로, 그의 「大學圖」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 「대학도」는 주자의 「대학도」를 따르지 않고 권근·이황의 대학도를 수용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데 이황의 대학도보다는 권근의 대학도에 가깝다. 제2단계의 해석은 선유들의 『대학장구』개정설을 보고서 다시 「大學改正之圖」를 작성한 것이다. 이 「대학개정지도」는 권근·이황의 대학도와 완전히 다른 시각에서 만든 것이다. 특히 명명덕·신민 밑에 팔조목의 공부를 배열하고, 지어지선 밑에 팔조목의 공효를 나누어 배열한 것, 전 제4장의 청송장을 경문 맨 뒤로 옮기고, 경문 제2절·제3절을 뒤로 옮겨 순서를 바꾸어서 격물치지장으로 삼은 것, 전 제4장을 없앰으로써 전체를 經一章·傳九章으로 파악한 것이 특징적이다. 이러한 설은 이언적의 설과 유사하지만, 지어지선 밑에 팔조목의 공효를 배열한 것과 전 제1장·제2장의 논리구조를 端(本)-事-極으로 파악한 것 등은 그만의 독특한 설이다. 제3단계는 자신의 개정설을 다시 수정하여 『대학장구』개정설을 제기한 것으로, 「錄疑竢質」에 수록되어 있는 설이 그것이다. 이 설의 핵심은 격물치지장을 재구성한 데 있는데, 채청·이언적의 설을 수용하여 맨 앞에 ‘所謂致知在格物者’ 8자를 보충하고, 그 다음에 경문 제3절, 청송장, 경문 제2절을 배열하고 ‘此謂知本’을 ‘此謂物格’의 오자로 보아 수정하여 ‘此謂知之至也’와 함께 격물치지의 공효로 삼은 것이 특징이다. 장현광은 『대학』을 해석하면서 내용에 대해서도 심도 있는 탐구를 하였는데, 誠意章 ‘誠於中’을 주자 및 쌍봉요씨의 설과는 달리 선이 마음속에 가득 찬 것으로 해석한 것이 독특하다. 이러한 장현광의 설은 경학사적으로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첫째, 선유의 설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문제의식을 키웠고 독자적인 시각으로 『대학장구』개정설을 제기하였다. 둘째, 「대학도」·「대학개정지도」 등을 작성하여 삼경령·팔조목의 공부와 공효에 대한 연관성을 보다 정밀하게 밝혔다. 셋째, 傳文은 經文을 해석한 것이라는 傳文釋經之法의 논리를 개발하여 전문의 논리적 흠결을 보완하였다. 넷째, 격물치지의 개념을 주자와는 다르게 정의하여 격물치지장의 논리적 정합성을 선명하게 하였다. 다섯째, 경문 제2절(知止而后有定……)의 知止·定·靜·安·慮·得을 새롭게 해석하여 팔조목과 연관시킴으로써 삼강령의 공효로 막연히 이해하던 해석을 명료하게 하였다. 여섯째, 誠意章의 ‘誠於中’을 善이 마음속에 가득한 것으로 해석하여 해석의 다양성을 제시하였다. This study reflected upon the fact that previous studies on the interpretations of Great Learning by Jang Hyeon-gwang(1554-1637) analyzed only his Nokuisajil in his collection of works and included his Daehakdo and Daehakgaejeongjido in his Yeokhakdoseol in analysis, as well, thus finding out that his interpretations of Great Learning underwent three stages and shedding light on each of their characteristics. Jang interpreted Great Learning in three stages. In Stage 1, he interpreted according to Zhu Xi's Great Learning Divided by Chapters and Sentences and critically accepted theories of Gwon Geun and Lee Hwang. It can be checked in his Daehakdo, which holds its significance in that it accepted the Daehakdo of Joseon's scholars such as Gwon Geun and Lee Hwang instead of Zhu Xi's Daehakdo. It is closer to Gwon Geun's Daehakdo than Lee Hwang's Daehakdo· In Stage 2, he rewrote his Daehakgaejeongjido based the revision theories about Great Learning Divided by Chapters and Sentences by some Confucian scholars before him. This diagram was made from a different perspective from the Daehakdo of Gwon Geun and Lee Hwang. Its characteristics include putting the Gongbu of Paljomok under Myeongmyeongdeok and Sinmin, placing the Gonghyo of Paljomok under Jieojiseon, moving the Cheongsongjang of the old Chapter 4 to the end of Gyeongmun, moving Passages 2 and 3 of Gyeongmun to the back, changing their order, and taking them as Gyeokmulchijijang by placing them before "Chawuijibon Chawuijijijiya," and figuring the whole work out in Gyeongiljang and Jeongujang by getting rid of the old Chapter 4. Jang's theory is similar to that of Lee Eon-jeok, but it is unique in that it places the Gonghyo of Paljomok under Jieojiseon. In Stage 3, Jang raised a revision theory about Great Learning Divided by Chapters and Sentences by revising his own revision theory, and it can be found in his Nokuisajil· The core of his theory was the reorganization of Gyeokmulchijijang. His theory is characterized by adding eight letters of ‘所謂致知在格物者’ to the front by accepting the theories of Chae Cheong and Lee Eon-jeok, placing Passage 3 of Gyeongmun, Cheongsongjang, and Passage 2 of Gyeongmun behind them, taking "Chawuijibon" as the misspelling of "Chawuimulgyeok," and making it the Gonghyo of Gyeokmulchiji along with "Chawuijijijiya" after revision. Jang made an in-depth inquiry into the content of Great Learning, as well. Unlike Zhu Xi and 雙峰饒氏, he made a unique interpretation of Seonguijang "Seongeojung" by stating that good filled the heart up. Those theories of Jang Hyeon-gwang have the following significance in the history of Chinese classics study: first, he developed his problematic consciousness by critically accepting the theories of Confucian scholars before him and raised a revision theory about Great Learning Divided by Chapters and Sentences with a unique viewpoint; second, he examined the connections between the Gongbu and Gonghyo of Samgyeongryeong and Paljomok in more details by writing Daehakdo and Daehakgaejeongjido; third, he developed the logic of Jeonmunseokgyeongjibeop, which argues that Jeonmun is the interpretation of Gyeongmun, and supplemented the logical shortcomings of Jeonmun; fourth, he defined the concept of Gyeokmulchiji different from Zhu Xi and made the logical consistency of Gyeokmulchijijang clear; fifth, he interpreted the 知止·定·靜·安·慮·得 of Passage 2 of Gyeongmun(知止而后有定……) anew, connected them to Paljomok, and made the vague interpretation understood as the Gonghyo of Samgangryeong clear; finally, he interpreted the "Seongeojung" of Seonguijang as the heart full of good, thus proposing the diversity of interpretations.

      • KCI등재

        김성일(金誠一) 초유(招諭) 활동의 배경과 경상우도 의병(義兵) 봉기의 함의

        허태구 ( Tae Koo Huh )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2014 남명학연구 Vol.41 No.-

        이 논문은 慶尙右道 義兵 봉기의 배경, 金誠一이 작성한 招諭文의 역사적 특징, 招諭 활동의 정치적 함의와 기여를 중앙과 지방의 갈등이라는 거시적 관점에서 재고찰한 연구이다. 그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임진왜란 初戰의 무력한 패배를 초래하는 데 일조한 경상도 지역 민심 이반의 근본적 원인은 수령들의 무능과 비겁 때문이라기보다는 전쟁 이전 적극적 군비 확충을 시도한 중앙 朝廷에 대한 지역민의 반발 때문이었다. 초반 전황이 극도로 불리한 상황 속에서 조정은 탄탄한 지역 기반을 가진 재지 사족층(在地士族層)에게 손을 내밀지 않을 수 없었다. 역설적이었던 것은, 조정이 적극적으로 활용하려고 한 경상도 재지 사족층의 잠재력에는 그들이 불법으로 탈점한 토지, 노비로 위장하여 거느린 농민, 마땅히 수행해야 할 軍役을 회피하는 데 성공한 사족 일부가 포함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것들은 임진왜란 敗因의 하나로 흔히 언급되는 軍政 문란을 포함한 失政의 결과물이었다. 둘째, 김성일의 초유문은 지역민을 결집하고 의병 활동을 장려하기 위한 목적으로 작성되었다. 따라서 초유의 대상인 경상도 지역의 士와 民을 가장 적절하게 설득하기 위한 논리와 내용으로 구성되었는데, 여기에는 階序的 신분 구조와 華夷觀과 같은 당대인들의 특징적인 心性이 반영되어 있었다. 초유문은 크게 보아 義理와 利害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지역민을 설득하고자 하였다. 셋째, 중앙 조정은 안동 출신의 명망 있는 前職 高官이자 南冥學派와 긴밀한 유대가 있는 김성일에게 招諭使의 職名을 제수하여 경상우도에 파견하였다. 김성일은 의병의 봉기를 장려·보장함으로써 武裝 起義할 경우 반란 세력으로 오인 받을 수 있다는 재지 사족의 우려를 拂拭시켰고, 도주·관망 상태에 있던 지방관과 지역민을 결집하여 저항의 장으로 이끌어 내는 데 성공하였다. 나아가, 그는 전쟁 발발 이전부터 누적된 갈등의 연장선상에 있던 관군과 의병의 충돌을 적절히 타협·조정하였다. 경상우도 의병의 봉기는 지역의 방어뿐만 아니라, 이반된 민심을 돌이키는 데 성공함으로써 일본군의 宣撫 공작과 원활한 현지 조달을 저지하는 데 기여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Examined in this article is first how a righteous militia movement was formed in the Gyeongsang Wu-do(慶尙右道, Western Gyeongsang) province, then what was the historical significance of the “call for troops” document (Cho`yu-mun, 招諭文) written by the renowned scholar-official Kim Seong-il(金誠一). Contemplated in this study are the political meaning as well as aspects of contribution displayed by such Cho`yu(招諭) efforts, amidst a situation in which conflicts were continuing between the central region and local areas. The results are as follow. First, the fundamental reason for the population of the Gyeongsang- do region refusing to cooperate with the Joseon government`s war effort which led to dismal defeats for the Joseon troops in the early stage of the war, was actually not the incompetence and cowardice of the local prefects but was rather the local population`s resistance to the central government`s pre-war efforts designed to increase revenue so that the government would have more funding for national defense. When the Joseon forces continued losing, the government had no other choice but to ask the wealthy local gentry class for financial support. The potentials of the local gentry class that the central government wanted to exploit ironically included land units obtained illegally, peasants disguised as slaves, and some Sajok figures who evaded military drafting, which were all part of the government`s failure to maintain a level of integrity, and also why the Joseon forces found themselves so helpless in an enemy invasion. Second, Kim Seong-il drafted the Cho`yu-mun document to mobilize the local population, and encourage them to join the righteous militia movement. The document is filled with comments designed to persuade the population either high and low in the Gyeongsang-do region. The reality of the society, as well as the people`s perception of the ‘civilized’ and the ‘barbarians’ are well reflected in the document. Kim Seong-il tried to enlist the cooperation of the public by citing two things: the preservation of the cause(義理) and the prospect of interest(利害). Third, the central government appointed Kim Seong-il, who was from Andong and also an ex-governmental official that had quite a reputation and also a connection with the Nam`myeong School(南冥學派), as the Cho`yu-sa(招諭使) official and dispatched him to the Gyeongsang Wu-do region. Kim Seong-il assured that the local gentry members who joined the righteous militia would not be accused or misunderstood as a faction of armed insurrection, and finally he succeeded in mobilizing local officials and local residents who were either on the run or merely standing by. He was also successful in mediating and resolving the years worth of conflict and dissension between the Joseon official army and the righteous militia, which had been rising since even before the war. The rise of the Gyeongsang Wu-do righteous militia not only elevated the level of defense in local regions but also succeeded to evoke the public`s loyalty, which later prevented the Japanese troops from seducing the local population and securing provisions from Korean regions.

      • KCI등재

        安德文의 三山書院 位相鼎立과 그 의미

        최석기 경상대학교 경남문화연구원 2013 남명학연구 Vol.40 No.-

        This paper focuses on Ahn Deok-mun establishing the title and status of Samsan Seowon in Uiryeong, Gyeongsangwoodo in the 18th century and his combining the science of Yeongnam Jwado and Woodo by worshiping three masters, that is, Hoijae, Toigye, and Nammyeong. Ahn placed importance of body and mind cultivation and maintained his academic tendency of practicing it in daily life, which was based on Nammyeong’s practice-centric academic style. Instead of learning under certain master, Ahn tried to emulate three masters representing Yeongnam and combine their science and virtuous acts. In an attempt to practice what he sought after, he commissioned a painter to paint Oksan, Dosan, and Deoksan Seowon that held a religious service for the three masters, respectively. He would turn the painting titled Samsanseowondo into a folding screen, set it up at Jungdang, and admire the learning and virtue of the three masters all the time. He also tried to experience the learning and virtue of the three masters first-hand by visiting their respective Seowons. He would carry Samsanseowondo and Samsandomyeong on his way to Oksan and Dosan Seowon and stop by renowned scholars during his journey to show them Samsanseowondo and ask for their comments. The scholars of Toigye School in Gyeongsang Jwado mostly agreed on the title and status of Samsan Seowon thanks to his efforts. In the process, he put Deokcheon Seowon, which held a religious service for Nammyeong in Gyeongsang Woodo where study was in stagnation, on the equal status as Dosan and Oksan Seowon, which were the headquarters of Yeongnam School. He also made people reconsider Nammyeong as a moralist on the same level as Hoijae and Toigye. Those efforts made by him led to the commendation of the learning and virtue of the three masters as well as Samsan Seowon and the increased recognition that the three masters should be admired and respected together who turned Yeongnam into Churojihyang. The old academic style of observing the editorials only written by the disciples that studied under certain masters was replaced with a new study of integration to inherit the sciences of the three masters as one. The scholars of Gyeongsang Woodo especially sought after the study of integration, engaged in active academic exchanges in the following years regardless of partisan and academic parties, and built a foundation for the revival of study. It is the significance of Ahn admiring and respecting the three masters together as well as Samsan Seowon. 이 글은 18세기 경상우도 의령에 살던 安德文이 三山書院이라는 명칭과 위상을 정립하고, 이를 통해 晦齋ㆍ退溪ㆍ南冥 세 선생을 나란히 追崇하고 表章한 것에 초점을 두고 살펴본 것이다. 안덕문은 심성수양을 중시하며 일상에서 이를 실천하는 학문성향을 견지하였는데, 이는 그가 살던 지역에 전승된 남명의 실천적 학풍을 기반으로 한 것이었다. 그는 어느 특정 스승에게 나아가 수학하지 않고 영남을 대표하는 세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사숙하여 융합하려 하였다. 그는 이를 실천하기 위해 畵工에게 명하여 세 선생을 제향하는 玉山書院ㆍ陶山書院ㆍ德山書院을 그려 오게 해서 三山書院圖를 병풍으로 만들어 中堂에 펼쳐놓고 늘 세 선생의 학덕을 흠모하였다. 그는 또 삼산서원을 직접 찾아가 세 선생의 학덕을 몸소 체험하려 하였는데, 그가 살던 지역의 덕산서원은 전에 찾아간 적이 있었으므로 가보지 못한 경상좌도의 옥산서원과 도산서원을 찾아가 배알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그는 삼산서원도ㆍ三山圖銘 등을 준비해 가지고 옥산서원ㆍ도산서원을 찾아가 배알하였으며, 도중에 저명한 학자들을 방문하여 삼산서원도 등을 보여주며 논평을 요청하였다. 이러한 그의 노력에 의해 경상좌도 퇴계학파 학자들도 삼산서원이라는 명칭과 위상에 대해 동의하였다. 그럼으로써 그가 살고 있던 경상우도의 덕산서원을 조선후기 영남학파의 본산으로 인식된 경상좌도의 도산서원ㆍ옥산서원과 동등한 지위에 올려놓는 성과를 이룩했으며, 덕산서원에 제향된 남명을 회재ㆍ퇴계와 같은 반열의 도학자로 재인식하게 했다. 안덕문의 이러한 노력을 통해 三山書院 및 세 선생의 학덕이 나란히 表章되었으며, 영남을 鄒魯之鄕으로 만든 이 세 선생을 함께 존모해야 한다는 인식을 제고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특정 문하의 師說만을 준수하는 학풍에서 벗어나 세 선생의 학문을 하나로 아울러 계승하고자 하는 새로운 융합의 학문을 제시하게 되었다. 특히 경상우도 학자들은 이런 융합의 학문을 지향해 그 다음 시대 당색과 학파에 구애되지 않고 활발히 학술교류를 하여 학문이 울흥하는 터전을 만들었다. 여기에서 안덕문이 삼산서원의 위상을 정립하고 세 선생을 나란히 추숭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 KCI등재

        고등교육과 교육공공성의 확장

        임재홍 경상대학교 법학연구소 2012 法學硏究 Vol.20 No.1

        헌법과 교육기본법에 의하면 대학교육기관은 학교이며 공공성을 갖는 공교육기관임을 적시하고 있다. 고등교육에도 공공성이 보장된다면 그 핵심이 되는 것은 교육비용의 공적 부담원리를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학 등록금 수준은 세계 2위로 미국 다음이다. 우리나라에서 고등교육비용이 높은 이유는 사립대학의 비중이 과도하기 때문이다. 즉 국가의 재정보조를 받는 국·공립대학의 비중이 적다는 말이다. 2010년 기준으로 고등교육기관중 국공립대학의 비율은 13%로 사립대학의 비중이 87%에 달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우리나라 사립대학의 수준이 공교육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대부분 등록금에 의존하여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심지어 학교법인이 부담해야하는 법정부담금도 거의 등록금에 의존하고 있는 학교가 상당수이다. 우리나라 국공립대학의 등록금은 사립대학 등록금의 57% 수준이다. 따라서 교육비의 공적 부담원리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국공립대학의 비중을 높여야 한다. 외국의 경우에 비교해보더라도 한국의 국공립대학 재학생 비율은 22%에 불과하다. 이는 국공립대학 재학생 비율이 80%에서 100%에 이르는 유럽 각국과 호주, 72%에 이르는 미국 등과 비교하기 힘든 세계 최저 수준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사립대학위주의 고등교육공급정책을 지양할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국공립대학의 신설이나 확충은 매우 필요하다. 그러나 이 방법은 고등교육의 과잉공급 상황을 고려할 때 합리적이지 못하다. 따라서 사립대학의 준국공립화 정책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 정부책임형 사립대학이란 법률이 정하는 고등교육의 인적·물적 조건을 재정적 문제로 충족하지 못하는 사립대학중 발전가능성이 있는 일부 대학에 정부지원을 하되, 해당 사립대학의 법적 지위를 반(半)공립, 반(半)사립의 지위를 갖도록 전환시킨 대학을 말한다. The term Public Education is not synonymous with the term "publicly funded education", but Public education refers to education that is funded through taxation rather than tuition fees. In Korea students have to pay fees to colleges or universities. Pay increases have caused chronic controversy. Data from the statistics office and the Bank of Korea show that schools have been gouging parents in the past few years by raising tuition faster than inflation. Household spending on higher education has been rising inexorably over the past few years, aside from a temporary dip during the financial crisis. According to the OECD``s "Education at a Glance 2011" report, the average tuition at public Korean universities was $5,315 using purchasing power parity, which was higher than any other OECD nation aside from the United States ($6,312). The yearly average tuition at the country``s private universities and graduate schools was at $9,586, higher than the OECD average. Some argue that the numbers show Korean university students shoulder a heavier burden than those of any OECD country as the country``s public schools account for just 13 percent of its universities, the lowest proportion among OECD nations. Tuition has become a sensitive political subject. College students and citizens hold a candlelit vigil to call for the government to halve tuition fees. Most students (and their families) who pay for tuition and other education costs don``t have enough savings to pay in full while they are in school. Some students must work and/or borrow money to afford an education. Developed countries have adopted a scheme for higher education to be supported by taxes rather than tuition. After World War II, an enhanced standard of living and the existence of free university education in many countries enabled more working-class youths to receive a degree, resulting in the inflation of education and enlarged middle classes. Significant progress is necessary in the Restructuring of Higher Education in Korea. Korean higher Education shows several distinctive features when compared with other countries. First of all, the majority of higher education institutions are private. About 87% of Higher Education institutions are private. About 78% of university students and 96% of professional school students enrol in private institutions. As private institutions rely heavily on tuition revenue, their fees are relatively high. Even public universities in Korea charge substantial tuition, because government support for higher education in Korea is relatively small. Public financial expenditures on higher education as a percentage of GDP are very low at 0.3%. The net result is that, the household sector bears the bulk of the financial burden for higher education. The proportion of government subsidies was limited to 22.3%, much lower than the OECD average(68.9%). Partly the rapid expansion of higher education supply has started to exceed demand. In spite of outward goal i. e., Strengthening the Global Competitiveness of Universities, the policy of Ministry of Educations, Science And Technology has focused on shutdown of private institutions. The government has launched a campaign to restructure universities by weeding out financially-week private schools and merging state-run ones. The government``s move to weed out underperforming schools is tied to its tuition-cut drive. Korea needs to reform the universities before reviewing ways to lower tuition. But the proper way of higher education reform should begin to subsidizing higher education institution. The government needs financial subsidy rather than weeding out substandard schools to upgrade the quality of higher education.

      연관 검색어 추천

      이 검색어로 많이 본 자료

      활용도 높은 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