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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장 3주기 교원양성기관 평가 준비의 실무적 진단과 시사점: 경상대학교를 중심으로

          윤대원 ( Dae Won Yoon ),박균열 ( Gyun Yeol Park ),김복정 ( Bok Jeong Kim ),김수진 ( Su Jin Kim ) 경상대학교 중등교육연구소 2010 중등교육연구 Vol.22 No.-

          이 연구는 교육과학기술부의 3주기 교원양성기관평가에 대해 실무적으로 진단하고, 향후 평가대비 시사점을 제시하는 데 그 목적을 둔다. 3주기 평가는 경영 및 여건 영역, 프로그램 영역, 성과 영역 등 3개 영역으로 진행되었다. 경상대학교는 평가를 위해 사전준비 조치로 사범대학의 경우 인성, 전문성, 창의성이라는 교육목표를 설정하고 각 평가지표별로 사전에 준비할 수 있는 요건 구비 노력을 했다. 실제 자체평가준비를 위해, 기획위원회와 실무위원회를 구성했다. 기획위원회는 교과별 경륜이 풍부하고 전력수립 경험이 많은 교수들로 구성했다. 실무위원회는 주로 사범대학의 각 교과별 교육평가경험이 있는 소장교수들로 구성했으며, 일반대학 교직과정 준비를 위해 자연대학과 인문대학의 교수를 각 1명씩 포함해서 구성했다. 자체평가를 실제 준비하는 중에도 학과장 및 전공주임 교수회의 개최, 조교회의 개최, 상황실 설치, 그리고 실시간 정보공유를 위해 학교 웹하드를 활용하여 사이버공동체를 수립했다. 자체평가보고서의 주요내용은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이미 양식을 제시해주었기 때문에, 제시된 안의 범위내에서 작성되었다. 이를 위해서는 증빙할 수 있는 비치자료를 잘 선별해서 제시해야 되는데, 서류철 정리에서부터 지표영역별 우수 사례 선정, 최종보고서 인쇄에 이르기까지 세심한 준비를 해야 한다. 경상대학교는 이와 같은 절차를 거쳐 사범대학은 B등급, 교육대학원은 C등급, 일반대학 교직과정은 D등급을 받았다. 사범대학과 교육대학원의 경우 다른 국립대학, 즉 서울대학, 경북대학, 전남대학, 전북대학 등과 같은 수준의 결과를 얻었지만, 교직과정의 경우 다른 인접 국립대학과 같이 낮은 등급을 받았다. 교원양성의 주요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사범대학의 평가결과는 컴퓨터교육과, 음악교육과, 미술교육과 등 학과내부의 특수사정이 개선된다면 추후 평가에서는 전국적으로 월등한 평가결과를 얻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했다. This paper diagnoses on 3rd period evaluation of teacher training institutes and shows some implications. As main indicators, there are three perspectives: management and environment, program, and product etc. As preconditional preparation, Gyeongsang National University (GNU) made objective of the education: personality, expert, creativity for teacher. Based on this objective, GNU has collected and prepared for indicator relating data. For more efficiency, two committees were organized. Those were strategic planning committee and practical committee. As a result, GNU got B grade at the level of Teachers College, C grade at Graduate School of Education, and D grade at Subsidiary Course for Teachers Training (Gyozikgwajeong) which has concerned about students not in Teachers College. Comparing with neighboring some national universities, GNU did show not so bad result through this sequential evaluation process.

        • KCI등재

          대학의 경제화와 대학의 자치

          곽상진 경상대학교 법학연구소 2019 法學硏究 Vol.27 No.4

          1990년대부터 시작된 우리나라의 신자유주의적 대학개혁 정책은, 신자유주의적 시장경제질서에 기초하여 대학의 운영방식을 효율화하여, 경쟁력을 높이려는데 목표를 둔 것이다. 즉 대학운영에 경제화의 개념을 도입하는 것에 그 핵심이 있다. 따라서 대학운영을 기업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시장경제적인 개방을 교육제도의 영역까지 확장하여, 교육을 서비스산업화 함으로써 자본시장의 원리에 합당한 경쟁과 이윤창출을 유도하려는 것이다. 이렇듯 대학개혁은 그 내용에 있어서 대학을 경제화하는 것이 필수적 사항이 된 것이다. 국립대학의 법인화도 이러한 대학의 경제화 정책으로서의 대학개혁에 해당한다. 국립대학은 국가가 제공하는 중요한 공공서비스 중의 하나로서, 그 유지와 운영에 많은 국가예산이 소요된다는 점에서, 대학을 법인으로 독립시켜 성과에 따른 재정만을 지원하고자 하는 것이다. 국립대학의 법인화는 국가가 여전히 재정지원을 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는 없다. 다만 대학경영의 성과를 평가하여 그에 따른 재정지원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학이 독립법인으로서 재정에 대하여 책임지도록 한 것이다. 이러한 신자유주의 교육개혁정책 추진의 결과, 법인화 대학과 비법인 대학 모두에서 대학지도부의 권한강화로 나타난다. 그리고 이에 반비례하여 대학구성원의 자치기구는 권한축소로 이어진다. 독일에서는 대학개혁을 통하여 대학의 지배구조를 바꾸기 위해서, 대학이사회를 새로운 기구로 만들어 의사결정기관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는 대학과 국가 간의 대립을 완화하기 위한 목적도 있는데, 그 구성에 있어 대학외부인으로 과반수를 채운다. 이점에서 대학자치와 민주적 정당성이 문제로 되고 있다. 이는 많은 부분 평의회와의 협력하여 운영되고 있다. 이렇게 대학이 경제화 되면서, 대학의 내부조직에도 변화가 생긴 것이다. 그러나 전통적인 대학운영과는 차이가 있어서 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대학을 경제화해 나가는 개혁정책 추진에도 일정한 한계가 있다고 보지 않으면 안 된다. 즉 학문의 자유와 대학의 자치의 본질적인 내용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는 대학에 대하여 학문의 자유와 대학자치의 기본권 주체성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국립대학은 국가시설인 영조물의 지위에 있으므로, 학문의 자유의 기본권의 주체라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독립성은 인정되더라도 대학의 자치가 거의 인정되고 있지 않다. 더욱이 신자유주의적 교육정책으로 인하여, 대학자치의 폭은 더욱 축소되었다. 즉 정부는 2017년의 고등교육법 개정으로 대학평의회를 제도화하고, 교수의 대학평의회의 참여비율을 1/2이 넘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교수의 참여비율을 축소시켰다. 이는 대학운영에서 교수의 지위와 의견반영을 현저히 낮추고, 대신 총장을 중심으로 한 대학지도부의 권한을 강화시킴으로써, 대학경영의 효율성과 경쟁력을 높이려는 것이다. 그러나 대학이 곧 기업으로 운영될 수는 없다. 대학은 제품 생산성과 수익성이 없거나 기업생산품과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학에서 학문연구와 강학을 담당하는 교수의 중추적인 역할을 감안할 때, 대학평의회에서 구성원집단 간에 획일적인 기준으로 참여비율을 정하는 것은 평등의 원칙에 위반된다. 즉 대학에서의 교수의 역할과 기능에 따른 참여비율을 직능에 따라 배분... Damit sich die individuelle Wissenschaftsfreiheit der Hochschulangehörigen entfalten kann, bedarf es einer freiheitsfördernden Organisation der Hochschulen mit partizipatorischen Strkturen im Innern und gewisser Autonomie nach außen gegenüber dem Staat, dies alles im Gewande einer wissenschaftsadäquaten Rechtsform. Verfassungsrecht Art.22 Abs.1 Abs.4 kommt insoweit als wertentscheidende Grundsatznorm für das Verhältnis des Staates zur Wissenschaft oder, präziser noch, als Organisationsgrundrecht zum Tragen. Die Staatliche Hochschulen ist im Wandel. Nunmehr ist allenhalben von Autonomie und Wettbewerb von Universitäten die Rede. Diese Ursache verbreite sich die Einsicht, daß Bildung und Wissen in der globalen Dienstleistungs- und Wissensgesellscaft von entscheidender Bedeutung im internationalen Wirtschafts- und Standortwettbewerb sind. Vor diesem Hintergrund ist mit den Schlagworten “Ökonomisierung” die Richtung einer Vielzahl von Veränderungen gekennzeichnet, mit denen sich die Universitäten seit einigen Jahren konfrontiert sehen. * Professor, Gyeongsang National University, College of Law Ökonomiesierung der Universitäten schlagen sich nieder in Änderungen bezüglich der Finanzierung, in veränderten Handlungs-, Rechts- und Organisationsformen. Das Problem der Freiheits- und Autonomiesicherung im Verhältnis der Universitäten zum Staat stellt sich in besonderer Weise, Weil die nationale Universität, stets ein Zwittergebilde mit Anteilen beider Sphären war. Er klärtes Ziel der Reformen ist es, die Autonomie der Hochschulen zu steigern. Gibt man dem Begriff der Autonomie gegenüber dem organisationsrechtlichen Gehalt der Wissenschaftsfreiheit eine spezifische Bedeutung, so betrifft er nicht die universitäre Binnenorganisation, sondern als Garantie wissenschaftsgeforderter Selbstverwaltung die Verteilung der Zuständigkeiten zwischen Universität und Staat. Da die Organisation einer Hochschule als Staatsanstalt mangels hinreichender Autonomie ausscheiden muss, kommt als öffentlich-rechtliche Alternative zur Körperschaft vor allem die Rechtsform der Stiftung des öffentlichen Rechts in Betracht. Aber das faktische Substrat für echte Selbständigkeit fehlt, solange die Stiftung finanziell von jährlichen staatlichen Zuwendungen abhängig bleibt und nicht über ein eigenes und ausreichendes Stiftungskapital verfügt. Rechtlich konstruierte Selbständigkeit lässt sich aber gleichermaßen im Rahmen der herkömmlichen Organisationsform der Körperschaft herstellen. Hand in Hand mit der Einführung des neuen Finanzierungsmodells erfolgten Änderungen in der Organisation der Universitäten mit dem Ziel, diese zu effektiver und effizienter Aufgabenerfüllung zu befähigen. Die Aufmerksamkeit ist deshalb von der Rechtsform auf die praktisch bedeutsameren Veränderungen in der Binnen- organisation der Universität zu richten. Die mit dem neuen Finanzierungsmodell notwendig gewordenen Entscheidungen über die Mittelverwendung, die Schwer- punktsetzung mit Folgen für Berufungen oder die Verwirklichung von Berichts- pflichten sind organisatorisch den Leitungsorganen der Universität zugeordnet worden. Die Gremien werden vielfach auf Kontroll- und Informationsrechte beschränkt. Bestrebungen zur Stärkung der Rolle der Dekane und Rektoren (Vorstandsmodell), zur Bildung von Hochschulräten (Aufsichtsratsmodell) mit komple -mentärer Teilentmachtung der traditionellen Hochschulselbstverwaltungsgremien (Tendenz zum bloßen Mitbestimmungsmodell) nähern die Selbstverwaltungskörperschaft Hochschule einem mitbestimmten Wirtschaftsunternehmen an. Zur Kompensation für die verlorengehenden direkten mitgestaltungsmöglichkeiten müssen den Gremien aber adäquat verstärkte und effektive Kontrollrechte gegenüber der Leitungsebene eingeräumt werden. Im Lichte des Autonomierkriteriums zeigt sich das Problem in der Weise, daß die Übertragung von bisher staatlichen Entscheidungsbefugnissen auf einen mit Externe...

        • 대학생들의 자아존중감과 가족건강성 연구

          최정혜 경상대학교 중등교육연구소 2015 중등교육연구 Vol.27 No.-

          본 연구는 대학생들의 자아존중감과 가족건강성을 규명하는 연구이다. 본 연구의 조사대상자는 경상대학교 12개 단대에서 각 10%이상이 되도록 유의추출 표집을 한 1,727명의 학생들이다. SPSS 20.0을 사용하여 대학생 자료를 분석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결과를얻었다. 첫째, 대학생들의 자아존중감은 5점 만점에 전체 평균 4.07로 나타나 대학생들의 자아존중감이 높게 나타났다. 또한 사회인구학적 변인에 따른 대학생들의 자아존중감은 성별, 아버지의 양육태도, 어머니의 양육태도 등이 유의한 변인으로 나타났다. 둘째, 대학생들의 가족건강성은 5점 만점에 평균 3.79점으로 나타나 양호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가족건강성을 영역별로 보았을 때, 가족유대가 상대적으로 가장 높고, 다음으로 문제해결 수행능력, 가족간 의사소통, 가치체계 공유 순으로 나타났다. 대학생들의 가족건강성 관련변인은, 성별, 단대별, 종교, 아버지의 직업, 어머니의 직업, 아버지의 양육태도, 어머니의 양육태도, 경제수준 등으로 밝혀졌다. 본 연구는 경상대학교 재학생들의 자아존중감 및 가족건강성 향상에 유용한 자료로 활용될 것으로 기대한다. Purpose of this study is to investigate the self-esteem and familial strength of the university students. For this study, 1,727 Gyeongsang National University students are selected as subjects in this research. Using the SPSS WIN 20.0 program, the data including the percentage, average standard, t-test, one-way ANOVA, Tukey test are analyzed and obtain the results as follows; First, average self-esteem score of the students is marked as 4.07 comparing to the maximum score of 5.0. It suggests that most of the students in this university positively perceive their self-esteem. And it is found that self-esteem of the students is dependent on their sex distinction and fostering attitude of their parents. Second, the average score of their familial strength is ranked to 3.79, which also indicates their familial strength is quite strong. When the familial healthiness is further divided into several sections and analyzed them in detail, the familial strength is marked as the highest and sharing the same goal is scored at the lowest. The familial soundness is relied upon the orders of sex, difference in their major college, religion, parent’s job, rearing attitudes of parents and level of home economics, respectively.

        • 대학입시제도의 변화과정과 수시-정시 전형의 주요내용 분석

          이재태 ( Jae Tae Lee ),문승한 ( Sung Han Moon ) 경상대학교 중등교육연구소 2015 중등교육연구 Vol.27 No.-

          본 연구의 목적은 우리나라 대학입시제도의 변화과정과 수시-정시 전형의 주요내용을 분석하는 것이다. 그리고 대학입시에 관심이 많은 학생-학부모-교사 등에게 입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기초자료를 제공하는 것이다. 본 연구의 연구문제는 첫째, 1945년 이전의 입시제도와 이후의 입시제도는 본질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는가? 둘째, 대학수학능력시험과 입학사정관제에 의한 입시제도는 본질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는가? 셋째, 2015학년도의 수시전형과 정시전형은 본질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는가? 본 연구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대학입시제도는 개인의 능력을 판단하여 그 시대의 요구와 대학 자체의 요구를 동시에 만족할 수 있는 방법이 바람직하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은 학생 개개인을 판단할 수 있는 차별화된 평가방법의 모색이 필요하다. 입학사정관제는 평가 과정상의 공정성이 중요하며, 학생-학부모-교사들에게 입시의 수월성 제공이 중요하다. 수시 전형과 정시 전형은 시기-모집단위-평가방법 등 학생들의 여건에 맞는 입학기회가 주어져야 하며, 지원자격의 제약조건을 최소화 하는 방법이 제시되어야 한다. The objective of this study is to analyze change process of University Entrance Examination System and major contents of occasional and regular admissions along with providing basic resources that can help parents, students and admissions officers to understand University Entrance Examination System. Specific research problems are what fundamental differences there are in University Entrance Examination System before 1945 and after 1945, how different College Scholastic Ability Test is from Admission Officer System, and what differences there are between occasional admission and regular admission in 2015. Based on the above analysis resources, the following conclusions can be suggested. University Entrance Examination System should be performed with the methods that can judge individual``s ability and can satisfy both demands of the times and demands of the university. Regarding College Scholastic Ability Test, differentiated evaluation methods that can judge each student need to be sought. Regarding Admission Officer System, fairness during the process of evaluation is important, along with providing students, parents and teachers with convenience of college admission. For occasional and regular admissions, college admission opportunities that suit students`` situations should be given to students in period, unit of recruitment and evaluation method, and methods that minimize constraint condition of qualification for application should be suggested.

        • KCI등재

          기획논문 : 冥學硏究(명학연구)의 發展史(발전사)

          강동욱 ( Dong Uk Kang )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2012 남명학연구 Vol.35 No.-

          본 논문은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개소 주년을 맞아 남명학연구소를 중 20심으로 지금까지의 남명학 연구에 대해 시기별로 발전 양상을 살펴본 것이다. 1990년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설립을 기준으로 1990년 이전과 남명학연구소 설립 후인 1990년부터 2011년까지를 남명선생 탄신 500주년이 되는 2001년을 기점으로 삼아 전후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우리나라에서 남명 조식 선생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점은 1980년대 후반이다. 1980년대 후반 김충렬 교수에 의해 학계에 알려지기 시작한 남명학은 1990년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설립을 기점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해왔다. 남명 중심의 연구에서 범위를 확대해 남명 제자들을 통해 남명사상의 계승 양상을 구명해 남명 정신이 우리나라 선비 정신의 본보기로 인식하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001년 남명탄신 500주년을 맞아 남명학과 다른 학파와의 비교를 통해 16세기 유학사에서 남명학의 특징을 학계에 널리 알렸으며, 외국 학자들과의 교류를 통해 남명학의 국제화에도 많은 기여를 했다. 지금껏 경상대학교 남명학 연구소를 중심으로 남명과 남명학파에 대한 연구는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남명학 연구의 발전 과제도 적지 않다. 20여년 동안 ‘남명’ 이란 주제로 수많은 연구 성과물들을 세상에 내놓았지만 아직 남명 선생에 대한 일반 대중들의 인지도는 적어도 경남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굳이 퇴계선생과 비교하지 않더라고 남명의 정신과 학문이 우리나라 대표적인 선비정신의 표상으로 전 국민들이 인식할 때 까지 관계자들의 꾸준한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In Korea, Nammyeong Josik teacher research began in earnest on the point is in the late 1980s. In the late 1980s, Nammyeonghak known in academia for the first time by Professor gimchungryeol has been a breakthrough, nammyeonghak Institute of Gyeongsang National University, founded in 1990 to begin. Nammyeong center to broaden the scope of the study, so Succession patterns of Nammyeong thought revealed by his disciples, so the spirit nammyeong Korea as an example of the scholar to recognize the spirit which played a crucial role. In 2001, at 500 anniversary of the birth of nammyeong, nammyeonghak and by comparison with other schools in the 16th century, yuhaksa nammyeonghak widely in academia have been notified of the feature, through exchanges with foreign scholars contributed much to the internationalization of nammyeonghak. So far as R & D Center, Gyeongsang National University nammyeonghak nammyeonghak nammyeong and steps are being par for the study. Nammyeonghak development challenges, but also myriad of research. Over 20 years ``nammyeong`` as the subject of numerous research results released to the world, but still nammyeong teacher awareness of the general public does not seem to be at least in Gyeongnam is terrible. Compared with the teacher, even if you do not bother Toegye, nammyeong the spirit of the country, and leading academic scholars in the spirit of former officials until people recognize that you need constant attention and looks. Nammyeong for teachers identify academic efforts of the past 20 years has been recognized in academic circles. But for the disciples of nammyeong research, research on nammyeonghak par soon have a lot yet further support. A study of some of his disciples as revealed Naeam actively progressed, but, for many students, including suwoodang research is the beginning stage. Study of young researchers to improve conditions there is an urgent task. Nammyeonghak Institute, focusing on hanmunhak and their emissions, but many young researchers, nammyeonghak personnel involved in the research that is just a few. Different circumstances, but the active support of school authorities to create conditions through research and young researchers to concentrate on their studies nammyeonghak also think it`s important to create an atmosphere.

        • KCI등재

          안덕문(安德文)의 삼산서원 위상정립 (三山書院 位相鼎立)과 그 의미

          ( Choi Seok Ki )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2013 남명학연구 Vol.40 No.-

          이 글은 18세기 경상우도 의령에 살던 安德文이 三山書院이라는 명칭과 위상을 정립하고, 이를 통해 晦齋ㆍ退溪ㆍ南冥 세 선생을 나란히 追崇하고 表章한 것에 초점을 두고 살펴본 것이다. 안덕문은 심성수양을 중시하며 일상에서 이를 실천하는 학문성향을 견지하였는데, 이는 그가 살던 지역에 전승된 남명의 실천적 학풍을 기반으로 한 것이었다. 그는 어느 특정 스승에게 나아가 수학하지 않고 영남을 대표하는 세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사숙하여 융합하려 하였다. 그는 이를 실천하기 위해 畵工에게 명하여 세 선생을 제향하는 玉山書院ㆍ陶山書院ㆍ德山書院을 그려 오게 해서 三山書院圖를 병풍으로 만들어 中堂에 펼쳐놓고 늘 세 선생의 학덕을 흠모하였다. 그는 또 삼산서원을 직접 찾아가 세 선생의 학덕을 몸소 체험하려 하였는데, 그가 살던 지역의 덕산서원은 전에 찾아간 적이 있었으므로 가보지 못한 경상좌도의 옥산서원과 도산서원을 찾아가 배알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그는 삼산서원도ㆍ三山圖銘 등을 준비해 가지고 옥산서원ㆍ도산서원을 찾아가 배알하였으며, 도중에 저명한 학자들을 방문하여 삼산서원도 등을 보여주며 논평을 요청하였다. 이러한 그의 노력에 의해 경상좌도 퇴계학파 학자들도 삼산서원이라는 명칭과 위상에 대해 동의하였다. 그럼으로써 그가 살고 있던 경상우도의 덕산서원을 조선후기 영남학파의 본산으로 인식된 경상좌도의 도산서원ㆍ옥산서 원과 동등한 지위에 올려놓는 성과를 이룩했으며, 덕산서원에 제향된 남명을 회재ㆍ퇴계와 같은 반열의 도학자로 재인식하게 했다. 안덕문의 이러한 노력을 통해 三山書院 및 세 선생의 학덕이 나란히 表章되었으며, 영남을 鄒魯之鄕으로 만든 이 세 선생을 함께 존모해야 한다는 인식을 제고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특정 문하의 師說만을 준수하는 학풍에서 벗어나 세 선생의 학문을 하나로 아울러 계승하고자 하는 새로운 융합의 학문을 제시하게 되었다. 특히 경상우도 학자들은 이런 융합의 학문을 지향해 그 다음 시대 당색과 학파에 구애되지 않고 활발히 학술교류를 하여 학문이 울흥하는 터전을 만들었다. 여기에서 안덕문이 삼산서원의 위상을 정립하고 세 선생을 나란히 추숭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This paper focuses on Ahn Deok-mun establishing the title and status of Samsan Seowon in Uiryeong, Gyeongsangwoodo in the 18th century and his combining the science of Yeongnam Jwado and Woodo by worshiping three masters, that is, Hoijae, Toigye, and Nammyeong. Ahn placed importance of body and mind cultivation and maintained his academic tendency of practicing it in daily life, which was based on Nammyeong`s practice-centric academic style. Instead of learning under certain master, Ahn tried to emulate three masters representing Yeongnam and combine their science and virtuous acts. In an attempt to practice what he sought after, he commissioned a painter to paint Oksan, Dosan, and Deoksan Seowon that held a religious service for the three masters, respectively. He would turn the painting titled Samsanseowondo into a folding screen, set it up at Jungdang, and admire the learning and virtue of the three masters all the time. He also tried to experience the learning and virtue of the three masters first-hand by visiting their respective Seowons. He would carry Samsanseowondo and Samsandomyeong on his way to Oksan and Dosan Seowon and stop by renowned scholars during his journey to show them Samsanseowondo and ask for their comments. The scholars of Toigye School in Gyeongsang Jwado mostly agreed on the title and status of Samsan Seowon thanks to his efforts. In the process, he put Deokcheon Seowon, which held a religious service for Nammyeong in Gyeongsang Woodo where study was in stagnation, on the equal status as Dosan and Oksan Seowon, which were the headquarters of Yeongnam School. He also made people reconsider Nammyeong as a moralist on the same level as Hoijae and Toigye. Those efforts made by him led to the commendation of the learning and virtue of the three masters as well as Samsan Seowon and the increased recognition that the three masters should be admired and respected together who turned Yeongnam into Churojihyang. The old academic style of observing the editorials only written by the disciples that studied under certain masters was replaced with a new study of integration to inherit the sciences of the three masters as one. The scholars of Gyeongsang Woodo especially sought after the study of integration, engaged in active academic exchanges in the following years regardless of partisan and academic parties, and built a foundation for the revival of study. It is the significance of Ahn admiring and respecting the three masters together as well as Samsan Seowon.

        • KCI등재

          기획논문 : <남명학고문헌시스템> 개발과 그 성과

          이정희 ( Jeong Hee Lee )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2012 남명학연구 Vol.36 No.-

          경상대학교 도서관은 1989년부터 고서실을 설치하여 운영해오다가 2001년 10월 지역민의 도움으로 대학 내에 南冥學館이 건립되자, 고서실을 남명학관으로 이관하고 ‘文泉閣’으로 명명하여 재개관하였다. 문천각에서는 남명학 연구의 기초자료가 되는 경남지역 민간소장 고문헌을 다년간에 걸쳐 체계적으로 수집하였다. 문천각에서는 이렇게 수집된 고문헌의 원본은 영구보존하고 활용성은 획기적으로 개선하기 위하여 고문헌 디지털화 계획을 수립하였다. 경상대학교 도서관은 2004년부터 행정안전부 <국가DB 구축사업>을 유치, 2011년 남명학 관련 고문헌을 디지털화한 <남명학고문헌시스템> 개발을 완료하였다. <남명학고문헌시스템>은 남명학 관련 문헌, 유학자 문집, 기록류, 고서 해제, 고문서, 책판 등을 디지털화여 인터넷을 통하여 대국민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남명학고문헌시스템>을 개발함으로써 남명학 연구의 시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절감할 수 있게 되었고, 나아가 남명학 연구가 전국화·세계화 될 수 있는 될 수 있는 기반을 갖추게 되었다. 경상대학교 도서관은 이 사업을 통하여 2010년 교육과학기술부 대학 도서관 특성화 평가에서 우수상을 수상하였고, 2011년 교수신문·국가브랜드위원회·교육과학기술부가 공동 주관한 <대학의 유산, 한국의 미래다>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Gyeongsang National University Library has been collecting old books and local archival materials since 1989 when it established the Department of Archives and Special Collections, which was then housed in the university library building. In 2001, the department was renamed ``Moon Cheon Gak(文泉閣)`` and moved to Nammyong(南冥) Hall, a building newly erected in memory of a leading scholar of the Choseon Dynasty. Moon Cheon Gak consists of the Preservation Division and the General Division. The Preservation Division preserves old thread­bound books, engraved wood blocks, and archives. The General Division houses modern photocopies of old books, genealogical data, and has rooms for exhibitions. The Department of Archives and Special Collection, Moon Cheon Gak, has now started to digitalize various kinds of old materials as part of a nationwide data base digitalization project supported by the Ministry of Public Administration and Security. The aim is to promote the history and culture of Western Gyeongsang. The digitalized materials include collections of Confucian scholars` writings, documents, exhibition of important old books, and engraved wood blocks. The data base uses high resolution color imaging and replicates the experience of looking at the authentic document You can search the data base by using advanced search terms such as family name, last name, adult name, nom de plume, ancestral home, residential place, and birth date and year. Original images allow you to check or compare whether there are any missing letters or misprints in modern versions. The Nammyong collections are housed in Nammyong Hall and managed by Moon Cheon Gak. The books, documents, and archival materials made accessible online were selected among the materials in the Department. The collections form a unique research resource for the study of Master Jo Sik(1501-1527), whose most well-known nom de plume was ``Nammyong`` or ``the Great Southern Ocean``. Nammyong was a well-known scholar from the mid Joseon Dynasty, who had a profound influence in scholarly circles west of the Nakdong River in the Gyeongsang reg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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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논문 : 경상우도 노사학단(蘆沙學團) 조성가(趙性家),최숙민(崔琡民)을 중심으로 ; 조성가(趙性家)와 최숙민(崔琡民)을 통해서 본 경상우도 지역에서의 노사학(蘆沙學)의 전개양상

          김봉곤 ( Bong Gon Kim )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2010 남명학연구 Vol.30 No.-

          본고는 19세기 경상우도 학풍 속에서 趙性家(1824-1903) 와 崔琡民(1837-1905)의 활동을 분석하여 노사학이 어떻게 전개되어갔는가를 살펴본 것이다. 경상우도 지역은 19세기에 새로운 성관집단이 성장하면서 학파를 비교적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었고, 각 가문에서는 과거 급제나 학행에 뛰어난 인물 배출을 위해 노력한 결과 진주 일대의 학문 수준은 그 이전시기보다 훨씬 높아지는 결과를 갖게 되었다. 각 가문에서는 書齋를 지어 학문에 몰두하였으며, 지리산과 덕천강의 풍경이 뛰어난 곳에는 樓亭을 지어 문장을 통해 당색을 뛰어넘어 교제하였다. 문장 외에도 경학이나 성리학에 뜻을 둔 학자들은 호남의 기정진과 같은 저명한 학자 들에게 나아가 수학하였다. 경상우도의 기정진의 문인들은 섬진강과 지리산을 따라 이어진 길을 따라 호남으로 나아갔는데, 곳곳에 숙박할 수 있는 객점과 시문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족들이 분포되어 있어서 여행이 용이하였다. 또한 장성의 김인후나 함양의 정여창의 후손 등 영,호남을 대표하는 사족들 간에 혼인도 이루어지고 있어서 호남 지역을 왕래하는데 정서적으로 큰 어려움이 없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기정진의 명성이 높아지자 많은 학자들이 기정진을 찾아와서 수학하게 된 것이다. 조성가와 최숙민은 19세기에 성장한 가문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경상우도에서 두각을 나타낸 인물들이다. 그들은 河達弘(1809-1877)등에 의해 전개된 시단에 참여하여 다수의 시를 남겼으며, 장성의 기정진을 찾아가서 주리론에 바탕을 둔 성리학에 잠심하였다. 조성가는 호남지역 문인들과 깊은 관계를 맺고 하달홍 이후 이 지역의 시단을 이끌었으며 영, 호남간의 노사학파의 가교 역할을 하였다. 그는 崔益鉉이나 宋秉璿, 李震相 등이 찾아올 정도로 명망이 높았으며, 관찰사나 목사 등 지방관과 함께 향약을 실시하여 향촌질서를 수립하고자 하였다. 또한 남계서원의 원장이 되어 강규를 새롭게 정하거나 조식의 신도비의 일에 주도적으로 관여하였다. 또한 최숙민은 남인 출신이지만 기정진에게 수학한 인물로서 이항로나 이진상의 문인들과도 교제하면서 기정진의 학설을 심즉리로 이해하였다. 그는 기정진에게서 성리학을 수학한 이후 동문들과 강회를 자주 개최하였으며, 조식을 숭상하여 山川齋에서 德山講約의 강규를 정하는 등 강학에 힘써 산청과 단성, 진주 일대에 다수의 문인을 배출하였다. 그의 학문은 기정진의 학설을 추종하여 매사에 천명 즉 천리를 구현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삼강오륜의 도덕적 질서를 중시하고, 의리나 도리에 어긋나는 일체 행동을 배격하고자 하였다. 이 때문에 그는 1895년 단발령이 내리자 도에 어긋난다고 반발하여 직접 언문을 지어 단성의 吏民들을 효유하여 결국 단발령을 철회하게 하였다. 이처럼 조성가와 최숙민은 각각 이 지역의 문단과 학계를 주도하면서 경상 우도 지역에 의리에 바탕을 둔 노사학파의 학설이 굳게 뿌리내리게 하였던 것이다. This paper attempts to trace the advancement of Nohsahak studies within the Gyeongsangwudo`s academic tradition during the 19th century by focusing on the activities of Jo Seong Ga(1824-1903) and Choi Suk Min(1837-1905). In the 19th century in the Gyeongsangwudo region, relatively tolerant environment began to take shape owing to the rise of the newly established clans. It became possible to pursue a doctrinal faction of one`s own choosing. With every family clan vying to produce their own promising prodigy, who would make a name for themselves by passing the state examination or becoming a respected scholar, academic standards of the Jinju region rose higher than ever before. Every clan would set up their own "Seojae(study hall)" to dedicate themselves to learning. While building "Rujeong(pavilion)" in scenic spots, mostly in the Jirisan mountains or along the Deokcheongang river, to promote wide-ranging exchange of opinions through "Munjang(handwritten manuscripts)" even to the point of transcending political affiliations. Those keen on "Gyeonghak(study of Confucian classics)" or "Seonglihak(Neo-Confucianism)" would study under renowned scholars like Gi Jeong Jin in the Honam region. Followers of Gi Jeong Jin living in the Gyeongsangwudo region would make their way to the Honam region taking the trail winding through the Seomjingang river and the Jirisan mountains. Along these paths, lodging facilities like "Gaekjeom," and "Sajok(distinguished family`s household)" where you can exchange "Shimun(literary writings)," would be found scattered about, making traveling less of a chore. Furthermore, as in the case of Kim In Hu of Jangseong or the descendants of Jeong Yeo Chang of Hamyang, marriage between the leading families of the two regions was not an uncommon practice, thus canceling out any concerns of cultural disparity between the two regions. All of these factors contributed to scholars flocking to study under Gi Jeong Jin as his reputation continued to grow. Jo Seong Ga and Choi Suk Min, who had the financial backings of the newly-risen clan in the 19th century, became notable figures among Gyeongsangwudo scholars. They had been closely involved in a poetry group fostered by Ha Dal Hong(1809-1877), contributing many compositions. They also went to Gi Jung Jin in Jangseong region delving into Seonglihak based on Ju-Ri philosophy. Jo Seong Ga kept close ties with literati of the Honam region, and eventually took over the reins from Ha Dal Hong to lead his poetry group, effectively acting as a mediator between the Nohsa scholars` faction of the Yeongnam and the Honam region. Jo was held in such high esteem that scholars like Choi Ik Hyeon, Song Byeong Seon, and Lee Jin Sang sought him out. Working closely with governors and local officials, Jo would implement "Hyang-Yak(Confucianist village code)," as a means of establishing order in provincial districts. Later, he was to head "Namgye Seowon(lecture hall)," exercising his influence in newly enacting academic code of conduct and erecting a stone monument dedicated to Jo Shik. Choi Suk Min though he was from the Namin faction, chose to study under Gi Jeong Jin establishing close ties with the likes of Lee Hang Ro and Lee Jin Sang. He was to interpret Gi Jeong Jin`s theories in terms of "Shim-Jeuk-Lee(心卽理)" philosophy`s perspective. After studying "Seonglihak" under Gi Jeong Jin, he would regularly hold lectures with his alumni. As a sign of utmost reverence for Jo Shik, Choi would institute academic code of conduct called "Deoksangangyak" in Sancheonjae. His commitment to education has turned out many scholars from Sancheong, Danseong, and Jinju region. Choi`s philosophy, which follows in the footstep of Gi Jeong Jin`s theories, is in realizing the truth in everything. In line with this logic is to place the utmost importance on ethical order according to "Sam-Gang-Oh-Ryun(The Three Bonds and Five Relationships in Confucianism)" and denouncing any behavior contrary to righteousness and reason. On this account, when "Danbalryeong(ordinance prohibiting topknots)" was proclaimed in 1895, Choi personally wrote a written protest using Korean alphabets in opposition, asserting that it ran counter to reason. This incited the citizens of Danseong, and Danbalryeong was soon called off. Jo Seong Ga and Choi Suk Min, while leading the learned circles of this region, made doctrines of Nohsa scholar`s faction based on righteousness take root in the Gyeongsangwudo reg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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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旅軒 張顯光의 『大學』 해석 연구

          최석기 경상대학교 경남문화연구원 2018 남명학연구 Vol.57 No.-

          이 글은 張顯光(1554-1637)의 『대학』 해석에 대해 기왕의 연구가 문집에 수록된 「錄疑竢質」만을 분석해 논한 것을 반성하고, 『역학도설』에 수록된 「大學圖」·「大學改正之圖」를 함께 분석하여 그의 『대학』 해석의 성취과정 및 특징을 밝힌 것이다. 장현광의 『대학』 해석은 세 단계로 성취되었다. 제1단계는 주자의 『대학장구』에 따라 해석하면서 權近·李滉 등의 설을 비판적으로 수용한 것으로, 그의 「大學圖」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 「대학도」는 주자의 「대학도」를 따르지 않고 권근·이황의 대학도를 수용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데 이황의 대학도보다는 권근의 대학도에 가깝다. 제2단계의 해석은 선유들의 『대학장구』개정설을 보고서 다시 「大學改正之圖」를 작성한 것이다. 이 「대학개정지도」는 권근·이황의 대학도와 완전히 다른 시각에서 만든 것이다. 특히 명명덕·신민 밑에 팔조목의 공부를 배열하고, 지어지선 밑에 팔조목의 공효를 나누어 배열한 것, 전 제4장의 청송장을 경문 맨 뒤로 옮기고, 경문 제2절·제3절을 뒤로 옮겨 순서를 바꾸어서 격물치지장으로 삼은 것, 전 제4장을 없앰으로써 전체를 經一章·傳九章으로 파악한 것이 특징적이다. 이러한 설은 이언적의 설과 유사하지만, 지어지선 밑에 팔조목의 공효를 배열한 것과 전 제1장·제2장의 논리구조를 端(本)-事-極으로 파악한 것 등은 그만의 독특한 설이다. 제3단계는 자신의 개정설을 다시 수정하여 『대학장구』개정설을 제기한 것으로, 「錄疑竢質」에 수록되어 있는 설이 그것이다. 이 설의 핵심은 격물치지장을 재구성한 데 있는데, 채청·이언적의 설을 수용하여 맨 앞에 ‘所謂致知在格物者’ 8자를 보충하고, 그 다음에 경문 제3절, 청송장, 경문 제2절을 배열하고 ‘此謂知本’을 ‘此謂物格’의 오자로 보아 수정하여 ‘此謂知之至也’와 함께 격물치지의 공효로 삼은 것이 특징이다. 장현광은 『대학』을 해석하면서 내용에 대해서도 심도 있는 탐구를 하였는데, 誠意章 ‘誠於中’을 주자 및 쌍봉요씨의 설과는 달리 선이 마음속에 가득 찬 것으로 해석한 것이 독특하다. 이러한 장현광의 설은 경학사적으로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첫째, 선유의 설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문제의식을 키웠고 독자적인 시각으로 『대학장구』개정설을 제기하였다. 둘째, 「대학도」·「대학개정지도」 등을 작성하여 삼경령·팔조목의 공부와 공효에 대한 연관성을 보다 정밀하게 밝혔다. 셋째, 傳文은 經文을 해석한 것이라는 傳文釋經之法의 논리를 개발하여 전문의 논리적 흠결을 보완하였다. 넷째, 격물치지의 개념을 주자와는 다르게 정의하여 격물치지장의 논리적 정합성을 선명하게 하였다. 다섯째, 경문 제2절(知止而后有定……)의 知止·定·靜·安·慮·得을 새롭게 해석하여 팔조목과 연관시킴으로써 삼강령의 공효로 막연히 이해하던 해석을 명료하게 하였다. 여섯째, 誠意章의 ‘誠於中’을 善이 마음속에 가득한 것으로 해석하여 해석의 다양성을 제시하였다. This study reflected upon the fact that previous studies on the interpretations of Great Learning by Jang Hyeon-gwang(1554-1637) analyzed only his Nokuisajil in his collection of works and included his Daehakdo and Daehakgaejeongjido in his Yeokhakdoseol in analysis, as well, thus finding out that his interpretations of Great Learning underwent three stages and shedding light on each of their characteristics. Jang interpreted Great Learning in three stages. In Stage 1, he interpreted according to Zhu Xi's Great Learning Divided by Chapters and Sentences and critically accepted theories of Gwon Geun and Lee Hwang. It can be checked in his Daehakdo, which holds its significance in that it accepted the Daehakdo of Joseon's scholars such as Gwon Geun and Lee Hwang instead of Zhu Xi's Daehakdo. It is closer to Gwon Geun's Daehakdo than Lee Hwang's Daehakdo· In Stage 2, he rewrote his Daehakgaejeongjido based the revision theories about Great Learning Divided by Chapters and Sentences by some Confucian scholars before him. This diagram was made from a different perspective from the Daehakdo of Gwon Geun and Lee Hwang. Its characteristics include putting the Gongbu of Paljomok under Myeongmyeongdeok and Sinmin, placing the Gonghyo of Paljomok under Jieojiseon, moving the Cheongsongjang of the old Chapter 4 to the end of Gyeongmun, moving Passages 2 and 3 of Gyeongmun to the back, changing their order, and taking them as Gyeokmulchijijang by placing them before "Chawuijibon Chawuijijijiya," and figuring the whole work out in Gyeongiljang and Jeongujang by getting rid of the old Chapter 4. Jang's theory is similar to that of Lee Eon-jeok, but it is unique in that it places the Gonghyo of Paljomok under Jieojiseon. In Stage 3, Jang raised a revision theory about Great Learning Divided by Chapters and Sentences by revising his own revision theory, and it can be found in his Nokuisajil· The core of his theory was the reorganization of Gyeokmulchijijang. His theory is characterized by adding eight letters of ‘所謂致知在格物者’ to the front by accepting the theories of Chae Cheong and Lee Eon-jeok, placing Passage 3 of Gyeongmun, Cheongsongjang, and Passage 2 of Gyeongmun behind them, taking "Chawuijibon" as the misspelling of "Chawuimulgyeok," and making it the Gonghyo of Gyeokmulchiji along with "Chawuijijijiya" after revision. Jang made an in-depth inquiry into the content of Great Learning, as well. Unlike Zhu Xi and 雙峰饒氏, he made a unique interpretation of Seonguijang "Seongeojung" by stating that good filled the heart up. Those theories of Jang Hyeon-gwang have the following significance in the history of Chinese classics study: first, he developed his problematic consciousness by critically accepting the theories of Confucian scholars before him and raised a revision theory about Great Learning Divided by Chapters and Sentences with a unique viewpoint; second, he examined the connections between the Gongbu and Gonghyo of Samgyeongryeong and Paljomok in more details by writing Daehakdo and Daehakgaejeongjido; third, he developed the logic of Jeonmunseokgyeongjibeop, which argues that Jeonmun is the interpretation of Gyeongmun, and supplemented the logical shortcomings of Jeonmun; fourth, he defined the concept of Gyeokmulchiji different from Zhu Xi and made the logical consistency of Gyeokmulchijijang clear; fifth, he interpreted the 知止·定·靜·安·慮·得 of Passage 2 of Gyeongmun(知止而后有定……) anew, connected them to Paljomok, and made the vague interpretation understood as the Gonghyo of Samgangryeong clear; finally, he interpreted the "Seongeojung" of Seonguijang as the heart full of good, thus proposing the diversity of interpret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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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대학평의원회에 아테네 직접민주주의와 파리코뮌의 원리는 적용가능한가?

          최상한(Choi, Sanghan),김봉준(Kim, Bongjun) 경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마르크스주의 연구) 2018 마르크스주의 연구 Vol.15 No.1

          개정된 고등교육법 제19조의2(대학평의원회의 설치 등)에 대해 교수 및 교수단체가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의 재개정 서명운동에 돌입함으로써 대학 사회에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제19조의2 조항은 그동안 국립대학에서 자율적으로 운영되어 왔던 대학평의원회를 법적 필수기구로 규정한다. 하지만 이 조항은 기존 대학평의원회의 기능과 권한을 상당히 축소시켜, 대학평의원회가 대학자치 기구로서 대학총장과 집행부를 견제하기에는 상당한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 본 연구는 국립대학 평의원회의 운영방향에 대해 직접민주주의와 파리코뮌의 원리가 적용 가능한지를 탐색하고자 한다. 파리코뮌은 인민주권에 의한 인민과 노동자 중심의 자치정부이며, 인민주권의 주체는 인민이다. 이에 따라 본 연구는 ‘대학자치 기구인 대학평의원회의 주체와 중심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를 위해 본 연구는 21개 국립대학 대학평의원회의 설문조사 결과와 아테네 직접민주주의와 파리코뮌의 원리를 바탕으로 대학평의원회 운영방향에 대한 이의 적용 가능성을 논의할 것이다. Professors and faculty organizations are pointing out the problems of Article 19-2 of the amended Higher Education Act, and they are starting a campaign for its revision. The Act stipulates that the university council, which has been operating autonomously at national universities, is a mandatory legal institution. However, the article significantly reduces the functions and powers of the existing university council which, as an autonomous body, has considerable limits on its ability to check the power of the president and executive departments of the national university. This paper aims to seek the desirable direction for the university council by applying to it the direct democracy of Athens and the principle of the Paris Commune. The Commune embodied the autonomous government of the people and workers, and was ruled by the people. This paper will propose that the direction of the university council be based on the results of the questionnaires of 21 national university councils, and the aforementioned principles of direct democra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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