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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mporary Art in a Neoliberal Climate

        Julian Stallabrass(줄리안 스탈라브라스) 현대미술사학회 2006 현대미술사연구 Vol.20 No.-

        자유무역이라는 이상에 기반을 둔 글로벌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는 부와 권력의 계급화를 가져왔다. 그 경제체제는 세계인에게 기계적으로 노동하는 삶을 강요하는 한편, 그들을 달래 주는 도구로 다양한 볼거리들을 제공하기도 한다. 미술은 기계적 재생산에 저항하는 유일하고 진기한 생산물이라는 점에서 도구화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를테면 미술가와 딜러들은 재생산 가능한 매체로 만든 작품의 생산까지도 제한하는 전략을 사용한다. 구매자의 적합성을 판단하는 딜러나 판매가격의 하한선을 정해 놓고 조정하는 경매회사의 판매방식에서 알 수 있듯이 미술시장은 자유경제체제와 대중문화시장에서 벗어나 있다. 미술가라는 직업이 불안정함에도 불구하고 인기가 있다면, 그 이유는 그들이 소외되지 않는 노동을 통해 자신만의 의미를 예술과 삶에 부여할 수 있다는 전망 때문일 것이다. 또한 미술 감상자는 아이디어와 형태의 무목적적인 유희를 즐길 자유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자유무역과 자유로운 미술이 겉보기처럼 대립하는지는 의심스럽다. 미술경제란 자본경제를 매우 정확히 반영하기 때문이다. 세계 자본의 중심 국가는 곧 미술품 판매의 중심이다. 그런데 미술과 자본이 그렇게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면, 1990년대 미술을 대표하는 두 가지 특정, 즉 글로벌 비엔날레와 근본적으로 판매에 저항하는 성격을 갖고 있는 설치미술의 발전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미술 글로벌화의 한계를 지적하는 작품들은 비엔날레를 글로벌한 경쟁을 벌이는 하나의 수단으로 생각해 보게 한다. 다른 한편 비엔날레는 두 가지 장점이 있다. 대중에게 미술이 평범한 문화ㆍ오락ㆍ보편성을 초월한 명예를 갖고 있다는 점을 알린다는 것, 그리고 글로벌화라는 덕목을 구현하고 선전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야기되는 모순은 만일 글로벌화와 글로벌경제 질서의 요구가 미술에 가해진다면 미술이 가치 있게 여겨 온 것들을 파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비엔날레의 주요 관람자 층을 국제적인 엘리트로 맞춘다면 지역적 이해관계는 무시될 수도 있다. 설치미술도 두 가지 이점을 가지고 있다. 먼저 그것은 대중문화의 스펙터클과 경쟁하며 관람객을 미술관으로 이끈다. 그 경쟁을 위해 미술가와 미술관은 새로운 테크놀러지를 이용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 두번째로 특정한 장소를 위한 작품을 의뢰한다는 것은 관람자를 그곳으로 오게 만들고, 중요한 작가의 작품을 수집함으로써 미술계의 주목을 끌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설치미술은 그 밖의 다른 요소들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데, 글로벌한 혼성, 권력의 공평한 분배, 자유 소비주의,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지역적인 특색이 그것이다. 즉, 설치미술이 대중매체를 활용하는 등의 특성은 곧 미술 분야로의 기업의 참여를 뜻함과 동시에 박물관의 상업화를 의미한다. 미술이 이렇게 실제의 삶과 대중매체가 강조되는 상황에서 그 기본 구조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문화적인 상품과는 구별되게 미술의 자율성을 끊임없이 보여주어야 한다. 종종 미술작품들은 겉으로는 애매하고 아무런 위안도 주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종국에 가서는 자연스럽게 그것이 자본주의 시스템에 의해 유지되고 있음을 드러내게 된다. 오염되지 않는 문화적 자유라는 이상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때, 이렇게 자유무역과 자유로운 미술을 대립항이 아닌 지배적인 하나의 영역을 형성하는 것으로 보는 시각은 분명 그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 같은 대중문화의 상품들에서는 형태와 기호들이 믹스 앤 매치되어 마치 모든 문화적 요소들이 언제든 대체할 수 있는 것인 양 보이고, 심지어 그것의 전통과의 단절은 단지 확실성을 잃어 가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회사나 정부가 미술에 어떠한 효용성을 요구함으로써 자유무역의 부족함을 보충하려는 것을 볼 때 자유로운 미술의 보충하려는 경향은 더욱 명백히 드러난다. 우선 회사의 경우, 그들은 표적 시장을 겨냥하고 대중매체를 이용함으로써 문화적인 아젠다를 스스로 설정하려 한다. 그것의 상업적인 성격을 빼고 본다면, 이는 분명 다양한 관람객이 미술로 접근하는 것을 용이하게 하고, 진보적인 사회적 동기를 유발한다는 이점을 지니고 있다. 한편 정부의 경우에는, 미술을 경제적 부흥의 도구로 삼기도 하고, 또는 다양한 층을 끌어들임으로써 계층간의 간극을 좁히고자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동기부여에는, 미술의 수단적 성격을 드러냄과 동시에 미술과 회사 또는 정부와의 관계를 너무 명백하게 드러내게 될 위험성이 존재한다. 오늘날의 글로벌한 미술은 지방적 특색을 몰아내고 세계의 문화들을 믹스하고 변형시켜 더 큰 통합체로 나아가려는 시도들을 계속한다. 하지만 미술이 신자유주의로 나아가는 양상은, 그것의 특정적이고, 개인적이고, 수단적이지 않으려는 본유적인 시각에 거스르는 것이다. 게다가 미술이 정부나 회사의 필요에 의해 물들여지는 상황에서도 긴장관계와 모순은 존재하는데, 예를 들어 회사의 입장에서는 엘리트주의를 옹호하지만 정부의 입장에서는 그것의 배타적인 성격을 지양하려 한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이러한 긴장관계의 결과로, 전통과의 단절, 미술에서의 명백한 정치적 행동주의, 미술체계를 회피하기 위한 기술적 수단의 이용, 그리고 미술에의 용도 부여 등의 특징들이 나타난다. 미술의 용도의 문제는 자연스레 우리를 미술의 해방의 문제로 데려간다. 플로베르의 미술의 해방에 대한 보르도의 분석을 살펴보면, 미술에는 그 어떤 제한도 없으며, 따라서 플로베르의 해방은 경제와의 단절을 포기하고서야 얻어지는 것이라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술의 자유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으며 작품들은 단지 대중에게 아첨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보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아도르노는 이에 대해, “절대적인 자유는 비자유와 영원히 모순적인 관계에 놓여 있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따라서 자유로운 미술의 보충적인 자율성을 깨뜨리기 위해서는 자유무역의 가면을 벗겨내야 하고, 또한 자유무역의 글로벌한 발달 모델로서의 역할이 포기되어야 한다면 보충적인, 자유로운 미술 역시 포기되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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