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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민선생의 『한국한문학사(韓國漢文學史)』 중국어 번역 출판

        리우창 연민학회 2013 淵民學志 Vol.20 No.-

        10여 년 전 지도교수인 조계(趙季) 선생님께서 한국에서 우연히 연민(淵民) 이가원(李家源) 선생님의 『한국한문학사(韓國漢文學史)』를 보시고 즉시 번역에 착수하셔서 몇 년 만에 초고를 완성하셨다. 그리고 작년 5월에 허권수 교수님과 허경진교수님께서 이 번역작업을 힘껏 도와주셔서, 중국어로 번역한 『한국한문학사』가 중국 강소성(江蘇省) 봉황출판사(鳳凰出版社)에서 출판되었다. 필자는 이번 번역에서 교열을 맡았다. 본 발표에서는 필자가 지도교수와 함께 이 책의 번역, 교열작업을 하면서 중점을 두었던 사항과 느꼈던 점을 정리하고자 하였다. 『한국한문학사』를 펼쳐보면 우선 연민선생이 시대에 따른 문학사조의 변천을 중요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매 장 안에서 한 시기의 문학 상황을 개괄하면서 해당 시기의 사조를 강조해 서술하고 있다. 연민선생은 특히 민족사관을 갖고서 문학사의 흐름을 파악했으며, 어릴 때부터 가학(家學)을 통해 체득한 한문학의 ‘배경’을 이 책에서 충실히 설명하였다. 또 이 책은 연민선생이 직접 수집한 다양한 한문학 자료들이 인용되어 내용이 매우 풍부하다. 인용문에 잘못된 부분이 꽤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연민선생이 인용하신 책들을 최대한 많이 찾아 해당 인용문을 교정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하였다. 또 각 인용문을 중국어로 번역할 때 어떤 문체를 선택할지에 대해서도 주의를 기울였다. 한문소설 등을 한국어로 요약한 부분 같은 경우에는 원전을 직접 찾아 읽고 최대한 내용을 정확히 이해한 후, 원전의 용어를 활용하여 중국어로 요약, 소개하였다. 이번 번역, 교열 작업을 통해 필자는 연민선생이 이 책에서 강조하신 두 가지점을 실감하게 되었다. 하나는 한국문학에서 한문학이 차지하는 비중과 가치가 매우 크고 중요하다는 점이며, 다른 하나는 한국한문학이 단순히 중국을 모방한 것이 아니라 민족성이 담긴 자주적인 문학이라는 것이다. 또한 『한국한문학사』에서 연민선생이 제기한 한문학 연구의 과제는 여전히 우리 앞에 놓여 있으며, 필자 역시 여기에 매진하여 연민선생의 뜻을 계승하고자 한다. 淵民李家源先生韓國漢文學史是韓國漢文學史研究方面最重要研究成果之 一。 以淵民先生作者家學深厚, 熟諳中韓古代漢學經典, 其漢文學史, 亦尤其突出 民族特性、 文學思潮對於文學之影響, 以及對於原書作品原文之大段引用。 結合該書上述特點, 筆者與導師在儘量蒐集書中所引原作, 校對原文, 保證譯稿 中引文之正確性, 並在漢字標記文學之翻譯過程中, 亦儘量考慮文體特點進行翻 譯。 此外, 為更準確表現原書內容, 筆者亦力爭閱讀淵民先生所引之原典, 結合原 典, 以期對於淵民先生之概括分析, 進行更恰當之翻譯。 十餘年前, 筆者導師趙季先生來韓講學, 得該書於書肆, 即着手翻譯, 形成初稿。 去年五月, 導師出席淵民學會, 旋即命筆者對初稿進行校訂, 重寫撰寫譯文。 幸蒙 許捲洙、 許敬震兩位教授在學力、 物力雙方面大力支持, 中譯本 ≪韓國漢文學史≫ 最終得在江蘇鳳凰出版社出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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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ind-body Relationship in Chinese Martial Arts

        리우창,정경원,변정균 한국스포츠학회 2020 한국스포츠학회지 Vol.18 No.3

        Mind-body dualism and body-mind monism are striking differences between the Western and the Eastern in sports culture. There are various types of martial arts in east Asia such as Japanese budo, Korean taekwondo and Chinese martial arts. During the past dozen years, many efforts have been focused on budo or taekwondo. However, what seems to be lacking is little attention has been given to Chinese martial arts. By analyzing Chinese martial arts books, such as Ji xiao xin shu (紀効新書), Taiji quanpu (太極拳譜, text book of taiji), Chinese classics, such as Mencius (孟子), Guan zi(管子), as well as other related materials, this study aims to clarify how body-mind relationship is presented in Chinese martial arts. The result are as follows: (1) Chinese martial arts focuses on both internal and external training (内外兼修). Such phenomenon is affected by the unification of man and nature (天人合一). (2) The unification of man and nature in Chinese martial arts mainly appears in two ways, the outer approaches (manipulating the "body” to learn, to adapt or to imitate nature) and inner approaches (emphasizing the importance of “mind”). (3) Mind has received more attention as an important prerequisite for affecting body, while, in order to training mind, we have to enter from the body. The relationship of body and mind are circulated and unifi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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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풍을 크게 갖춘(唐風大備)` 정지상 - 고려 한시사 상의 첫 고봉-

        리우창 ( Liu Chang ) 연민학회 2016 淵民學志 Vol.25 No.-

        고려 왕조는 개국 200년 후 문화 발전의 전성기에 들어섰다. 이 기간에 작성된 시는 여러 가지 원인으로 대부분 산실되었는데, 오늘까지 전하는 시들은 거의 송시의 영향을 받아 송시의 품격을 보이고 있다. 시인들은 대부분 교제를 위해 시를 썼기 때문에 경치를 묘사하는데 심력을 쏟은 시인은 많지 않았다. 이에 당풍을 담은 작품으로 이름을 날린 시인이 이전에는 그다지 없었지만 한반도의 땅에서 당시풍도 지속적으로 발전해나갔다. 결과적으로 12세기 초에 이르러 정지상으로 인해 시풍이 바뀌게 되었다. 정지상은 시 자체에 집중하는 당시풍의 영향을 받아 세밀한 관찰을 통하여 밝은 경치와 여운을 담은 의경(意經)을 그려냈다. 이로 인하여 정지상의 시는 매우 높은 경지를 이루었으며 “고려 시 발전사 상 최초의 고봉”이라는 평가를 가할 수 있게 되었다. The cultural undertaking of Koryo Dynasty almost achieved a crest at 200 years of accumulation. The poems written at that time had nearly already ceased to exist, and most of the remainders were look like the poems of Song Dynasty. Compared to the scenery-description, these poems were mostly written for communication. The impact of Tang Dynasty on the Korean Peninsula was continuous, but there was no one famous for writing poems with the style of Tang. Until 12 century, Jeong Ji-sang emerged and things had changed. He became the first famous poet of Koryo Dynasty and one of the best poets in Korea history because of meticulous observation, bright scene and artistic conception

      • KCI우수등재

        1949년-1980년대 초기 시범을 통한 우슈의 국제화

        리우창(LiuChang),정경원(JungKyungwon) 한국체육학회 2019 한국체육학회지 Vol.58 No.5

        이 연구는 중국무술인 우슈의 국제화 기간(1949년-1980년초기)에 초점을 맞추어 어떠한 방법으로 해외에 전파되었는지 언론매체를 살펴보고, 발생한 사건에 대하여 분석하는데 목적이 있다. 특히 중국정부와 관련단체들은 중국 우슈를 국제화시키기 위한 전략으로 우슈 사범의 교육 및 파견, 해외시범공연, 우슈영화 제작 등 국제적인 소통을 통해 대외홍보를 시행했다. 이러한 관련사항을 중국의 인민일보, 미국의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스, 일본의 마이니치 신문 매체를 통해 수집·분석하여 다음과 같은 결과를 확인 할 수 있었다.첫째. 중화인민공화국의 설립(1949년) 이후, 첫 번째 우슈의 국제교류는 1959년 李天驥(li tianji)이 일본 방문객들(마츠무라 겐조(松村謙三), 후루이 요시미 (古井喜實))에게 태극권을 가르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후 1960년 6월 중국무술팀의 체코슬로바키아방문(7일간)과 2차 프라하(스파르타키아)의 공연, 같은 해 12월에는 무술팀의 40일간의 미얀마 방문이 확인되었다. 둘째, 1961년부터 1965년까지는 해외 손님의 중국 방문 시 공연을 통해 국제교류가 빈번히 이루어졌으며, 당시 베이징스포츠협회(Beijing Sport Institute) 무술팀의 11번의 공연이 이루어졌다. 셋째. 문화혁명 기간(1966-1976) 동안, 특히 5년간은 다수의 무술가가 지방으로 분산되고 우슈 관련 서적과 무기가 말살되었으며, 일반적인 우슈의 활동조차도 금지되었다. 넷째. 1974년 이후, 전문적인 교육을 수료한 우슈 해외대표단(delegation) 32명이 멕시코, 미국, 홍콩, 일본으로 방문을 하면서 우슈의 국제적 소통이 재개되었다. 이후 1975년부터 1981년까지 5개 대륙, 47개국의 국가와 지역을 방문하는 등 활발한 해외 전파 활동이 이루어졌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This research aims to analyze how the Wushu became well-known to the world by looking at its internationalization process from 1949 to the early 1980.Chinese government and the related organizations, such as Chinese Wushu association, tried to promote Wushu to the world by strategically sending off Wushu teachers and education materials, promoting overseas demonstrations, and even creating Wushu movies, especially after 1978 when the Reform and opening policy adopted. While the details of international communication of Wushu before 1978 are not yet clear. Therefore, this study collected the related material from People’s Daily, the memoirs that were written by Wushu pioneers and the books of Wushu history. Also interviews and foreign newspapers were referred to understand the influences of the international communications of Wushu delegation as well as the foreigner’s attitude towards Wushu performance. The results are as follows.1. After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was founded in 1949, the first international communication of Wushu was took place when Li Tianji taught Tai Chi to the Japanese politics (Matsumura Kenzo and Furui Yoshimi) in 1959. A year later, in 1960, the Wushu team performed in Prague (the second Spartakiad) in June and also visited Myanmar in December. 2. Wushu international communication was frequently done when foreign visitors came to China from 1961 to 1965. Wushu team in Beijing Sports Institute performed at least 11 times for the foreign guests during this period. 3. During the Cultural revolution (1966-1976), especially for the former 5 years, Wushu suffered great damage. Large number of martial artists were distributed to the rural area, normal Wushu activities were prohibited, weapons and books of Wushu were destroyed. 4. It was not until 1974 that international communication of Wushu started again when the delegation visited Mexico, United States, Hong Kong, and Japan. After that, from 1975 to 1981, Wushu delegation kept their active interactions by visiting 47 countries and areas in 5 contin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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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논문 : 조선왕조에서 신하에게 시호를 내리는 제도에 대하여

        리우창 ( Chang Liu ) 연민학회 2014 淵民學志 Vol.22 No.-

        시호(諡號)는 죽은 사람의 일생에 대한 평가이다. 조선시대 신하들이 시호를 받는 제도에는 대체로 시법(諡法), 시호를 의논하고 정하는 절차, 시호를 받는 자격 등이 포함되었다. 조선시대 시법 제정은 중국의 시법 문헌과 기타 관련된 문헌을 많이 참조하고 그것을 기초로 본국의 재료를 결합해서 취사선택하였다. 본국의 특징도 있고 중국과 깊은 관련도 있었다. 신하들의 시호를 의논하고 정하는 절차는 크게 두 차례개정(改定)되면서 더 복잡하고 세분화되었다. 이것은 관제(官制)의 변경과 관계가 있다. 조선왕조는 시호를 의론하는 날짜를 매우 중시하였고, 관련된 인원들이 반드시 참여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렇게 하다 보니 시호를 내려주는 과정에서 시호가 시호를 받은 사람의 언행과 잘 어울리는지의 여부, 즉 공정성을 확보하기 어려웠다. 시호를 의론한 사람의 주관적인 요소와 당시 정치 상황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밖에 조선에서는 시호를 받는 자격이 한정되었으니, 관원의 품계(品階)를 토대로 품행(品行)을 참고해 융통성이 있었으며, 시정(時政)과의 연관성도 반영하였다. 요컨대 조선시대 신하들이 시호를 받는 제도는 고대 중국의 제도를 바탕으로 하고 본국의 구체적인 사정을 고려하여 새로운 특징을 형성한 것이다. 조선시대와 중국 고대의 시호제도를 비교하여 연구하면 두 나라 시호의 성격이 더 잘 드러나리라고 생각된다. Siho (諡號, 시호), or posthumous names, were evaluations of the lives of the deceased. During the Choson Dynasty, the system was generally defined by three aspects: sipop (諡法, 시법), or posthumous naming laws, the process of deliberating and deciding names, and the eligibility of posthumous naming. The development of sipop in the Choson Dynasty was based on the comprehensive Chinese posthumous naming laws and related literature in combination with Korean sources, and therefore had unique Korean characteristics as well as deep ties with China. There were two major stages of revision for the procedure of deciding names, reflecting a trend from the simple to the complex, and were linked to reforms in organizing the government. The Choson Dynasty was highly concerned with the dates of debating names, and required that related government personnel participate. As such, the process of granting posthumous names made it difficult to guarantee fairness, i.e. whether or not the posthumous name matched with the actions of the deceased. This was because the contemporary political situation and subjectivity of those debating influenced the posthumous naming process. In addition, although eligibility in receiving a posthumous name was limited, naming had some flexibility as government official were granted names based on their civil service grade and conduct, and also reflected the politics of that time. In sum, the posthumous naming system for Choson Dynasty subjects was based on that of ancient China’s, and was made with in consideration to Choson’s specific circumstances, creating a system with new characteristics. This study will discuss these three aspects of the posthumous naming system and attempt to clarify its Korean characteristics and its deep links to China’s posthumous naming sys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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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민 선생의 <화도음주시(和陶飮酒詩)>에 담긴 사상 고찰

        리우창 ( Liu Chang ) 연민학회 2017 淵民學志 Vol.28 No.-

        연민(淵民) 이가원 선생과 도연명(陶淵明)의 ‘음주(飮酒)’는 모두 국가와 사회의 현실과 연관되어 있다. 그들은 술을 마시고 취함으로써 더러운 세속에 동화되거나 영합하지 않으려는 굳은 절개를 보이고자 하였다. 도연명의 음주는 우주, 자연, 인생에 대한 깊은 고민을 담고 있으며, 그의 은거 또한 인간사회에 대한 극도의 실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연민 선생은 어린 시절부터 조선의 주자학 사조를 받아들이고 퇴계 이래 가학(家學)의 영향도 있어 한결같이 현실에 관심을 두고 조국과 사회에 대한 정을 쉽게 끊어내지 못했다. 퇴계가 도연명을 경모한 것은 도연명의 초연한 절개와 유유자적한 즐거움을 중시한 것이다. 반면 소식(蘇軾)이 도연명을 흠모한 것은 오로지 '적(適)'을 중요시하는 것으로, 후자에 더 치중한 것이다. 한편 연민 선생은 도연명을 ‘홀로 자신을 닦아 선하게 하는’[獨善] 유사(儒士)이자 은사(隱士)로 여겨 그의 초연한 절개를 특히 높게 평가하였다. 이는 연민 선생의 도연명 이해가 소식의 그것과 차별화되는 중요한 지점이다. 주자학 및 퇴계 가학의 영향 이외에 어린 시절 조국의 패망을 경험한 것 또한 연민 선생이 도연명의 초연한 절개를 중시하고 창화시에서 거듭 애국의 정과 사회 현실에 대한 우려를 강조하게 된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Yi Kawon and Tao Yuanming’s “drinking” were linked to the nation and the state of society, as their drinking and becoming inebriated derived from an unyielding integrity refusing to cater or accommodate the filth of the secular world. Tao’s drinking contained his intense agonies over the universe, nature, and life while his life as a recluse originated from his utmost disappointment with human society. Yi, a descendant of Yi Toegye and initiated into Neo-Confucianism since youth, never ceased worrying the current state of things and was always concerned about his fatherland and society. Toegye admired Tao Yuanming for his steadfast integrity and emphasis in enjoying a free and easy life. Su Shi, on the other hand, admired Tao Yuanming mostly for the latter quality as he solely emphasized “suitability,” while Yi especially lauded Tao’s integrity as a Confucian and recluse that “practiced self-cultivation by himself.” This was an important difference between Su and Yi’s understanding of Tao. Aside from the influence of Neo-Confucianism and being a descendant of Yi Toegye, Yi Kawon’s experience of seeing his fatherland fall in his youth was a probable factor in the emphasis on his patriotism and concerns about the state of things in his response to Tao’s drinking poems and on Tao’s resolute integr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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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균 시의 율격(律格) 분석

        리우창 ( Liu Chang ) 연민학회 2018 淵民學志 Vol.30 No.-

        《학산초담(鶴山樵談)》에서 허균은 《어가오(漁家傲)》에 대해 “전 편이 음률과 맞으나 다만 한 글자가 맞지 않는다.”고 평가하면서, ‘주(朱)’자의 청탁(淸濁) 문제를 제기했다. 필자는 청음(淸音)과 탁음(濁音)의 문제는 글의 평측 및 압운과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압운과 평측에 입각하여 허균의 시를 고찰하고, 또 이에 기초하여 허균의 《어가오》에 쓰인 글자의 성모와 사보(詞譜)에 수록된 글자의 성모를 비교 분석하여, 허균이 제기한 ‘주(朱)’자의 청탁 문제를 재고해볼 것이다. 허균은 상당한 수량의 고체시를 지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그는 근체시 창작에 더욱 치중한 시인이다. 근체시 창작에 있어서 허균은 대체로 평성운(平聲韻)을 사용했고 환운(換韻)하지 않았지만, 간혹 통압(通押)하고 출운(出韻)한 경우도 찾아볼 수 있다. 평측(平仄)에 있어서 허균은 “삼요사구(三拗四救)” 형식을 자주 사용하였고, 간혹“고평자구(孤平自救)”와 “대구요구(對句拗救)”의 형식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평측을 지키지 않은, 이른바 실점(失粘)하였거나 실대(失對)한 경우가 더러 보인다. 사(詞) 창작에 있어서, 허균은 성모(聲母)의 청탁 문제를 중요시할 것을 주장하면서 난설헌(蘭雪軒)이 사를 지을 때 글자마다 성모의 청탁을 검사하여 사보와 일치시켰던 것을 칭찬하였다. 그러나 《어가오》를 구체적으로 분석해 보았을 때, 그가 말한 ‘주(朱)’자의 청탁은 물론이고 기타 글자의 청탁 역시 사보와 어긋나는 것이 많다. 다시 말해 사의 창작에 있어서 허균의 주장은 실제 창작과 부합하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옛 사람들이 사를 지을 때 사용한 한자의 청탁을 참고하여 사의 창작 수준을 높일 것을 주장한 허균의 견해는 나름대로 상당한 가치가 있다. Hur Gyun had discussed on the topic about a Ci-poem (詞) named Yu jia ao (漁家傲), and said that ‘all the melody of characters used in this Ci-poems are right except one (一篇總合音律而一字不合)’. Then he provided a problem about the initial's voice-voiceless (淸濁) of the character ‘Zhu (朱)’. I think there is a relationship between the initial's voice-voiceless, the level and oblique tones, and the rhyme. So in this paper, I will analyze the rhyme and the level and oblique tones of Hur Gyun’s poems. On this basis, I will compare the initial consonant of example provided by Hur Gyun and the example on the collection of ci-poems. Through that I will discuss the initial's voice-voiceless of the character ‘Zhu (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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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슈 투로와 태권도 품새의 경기규칙 비교분석을 통한 품새경기의 발전 방향에 관한 연구

        정경원,리우창 국기원 2019 국기원태권도연구 Vol.10 No.3

        The significance of this study is to be helpful for seeking for the future direction of Taekwondo Poomsae competition by analyzing the competition rules of Taekwondo Poomsae and Wushu Taoru, and then considering the raised problems. To achieve this objective, by using the literary research method, the data was collected and analyzed through the Taekwondo Poomsae Competition Rules(2005-2019) and the Taoru Competition Rules(1958-2019) while referring to theses, journals, books, magazines, and related-people’s interview records in relation to Poomsae and Taoru. In the results of considering the problems of each competition and seeking for the development direction of Poomsae competition, the conclusions were obtained as follows. First, the competition rules of Poomsae and Taoru were similar to each other in the aspect of scoring standards(accuracy, presentation, technical skills) for deciding the results, players’ competition efficiency, and stadium regulations for safety(lighting, standard, mark). However, in case of competition method, Poomsae was segmentalized into eight divisions in accordance with age while Taoru was divided into four divisions, so that mostly young players participated in it. In case of referee, Poomsae was based on the seven-referee system, and each referee screened the whole scoring standards while Taoru based on the 12-referee system screened each scoring standard more objectively. Second, in the consideration in accordance with changes in competition rules of Poomsae and Taoru, the declined characteristics of martial arts(real fight), lack of fairness of score judgment, biased training method in accordance with scoring standards, and risk of injuries were revealed as problems. Regarding the improvement measures for Poomsae, in case of the declined characteristics of martial arts, it would be necessary to develop/allow diverse hand-techniques besides Jeongkwon. To increase the fairness of referees’ scoring, the number of referee, scoring of each field, artistry of other competitions, and education of the scoring system for technical skills would be needed. As the reverse effects of the revision of rules, the high-score movement-centered training as a part of victory-centered strategy caused the decline of martial arts characteristics and techniques, on top of the risk of injuries caused by the high-level technique-centered training. 본 연구는 태권도 품새와 우슈 투로의 경기규칙을 분석하고 제기된 문제점들을 고찰하여 태권도 품새 경기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 모색에 보탬이 되는데 본 연구의 의의가 있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문헌적 연구방법을 사용하여 태권도 품새 경기규칙(2005-2019년)과 투로 경기규칙(1958-2019년)을 통해 자료를 수집 분석하고 품새, 투로와 관련 있는 학위논문과 학술지, 서적, 잡지, 관련 인사들의 인터뷰기록 등을 참고하였다. 각 경기의 문제점들을 고찰하고 품새 경기의 발전 방향을 모색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첫째, 품새와 투로의 경기규칙은 승부를 판정하는 채점 기준(정확성, 연기성, 기술성)과 선수들의 경기 효율, 안전을 위한 경기장 규정(조명, 규격, 표시) 면에서 유사한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경기방식의 경우 연령별 8부로 세분화 되어 있는 품새와는 달리 투로는 4부로서 주로 젊은 층의 선수들이 참여하는 면에서 차이가 있었다. 심판원의 경우 품새가 7심제로 각각의 심판이 채점기준을 전부 심사하는 반면 투로는 12심제로 각 채점 기준별로 나누어 보다 객관적으로 심사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둘째, 품새와 투로의 경기규칙의 변화의 따른 고찰에서는 무술성(실전성)의 쇠퇴와 점수판정에 대한 공정성의 부족, 득점기준에 따른 편중된 수련방법과 부상의 위험이 문제점으로 드러났다. 품새의 개선방안으로는 무술성의 저하에서는 정권 외에 다양한 손기술의 개발 및 허용이 필요하며, 심판 채점의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심판원의 수와 부문별 채점, 타 경기의 예술성, 기술성 채점시스템의 교육도 필요한 것으로 사료된다. 규칙개정에 따른 역효과로는 승부 중심의 전략적 일환으로 고배점 동작 중심의 훈련이 무술성과 기술의 질 쇠퇴를 가져왔고 더불어 고난도 중심 훈련으로 인한 부상의 위험성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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