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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논문 : 김동인에 의한 복합의 자연주의

        김시몽 ( Si Mon Kim ) 국제비교한국학회 2013 비교한국학 Comparative Korean Studies Vol.21 No.3

        김동인의 문학세계가 소개될 때 흔히 문학사조가 사용되지만, 일치된 정의가 없는 것이 주목할 만하다. 즉, 김동인은 자연주의, 사실주의, 민족주의, 탐미주의, 등과 같은 여러 사조에 동시에 속하는 작가로 되어 있다. 본 논문은 김동인의 문학세계를 다르게 접근하고자 한다. 여러 가지 문학 사조로 그의 세계를 둘러싸서 정의하는 것 보다 자연주의라는 사조 안에서 김동인이 어떻게 자연주의를 여러 가지로 해석하여 그만의 사조를 보여주는지에 대하여 말하고자 한다. 우선 김동인이 자연주의 작가로 불리울 때 여기서 말하는 자연주의란 대체로 프랑스 작가 에밀 졸라가 선립한 문학파와 사조를 뜻한다. 졸라가 당시에 과학 발달에 크게 감탄하며 과학의 실험정신을 문예창작에 끌어 들어오려고 한 것이 자연주의다. 따라서 자연주의라는 단어에 자연이란 자연과학을 뜻하는 것이다. 일정한 사람들을 어떠한 특정한 환경속에 빠뜨리면 그 사람들이 어떻게 변하거나 그 환경에 어떻게 적응하는 지를 관찰하며 보고하듯이 쓰는 것은 자연주의 문학창작론이 된다. 김동인의 대표작인 「감자」를 볼 때 작가의 태도가 비슷하다. 복녀라는 여자가 칠성문 밖에 있는 빈민가로 이사오게 됐을 때 복녀가 겪는 어떤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 이 소설의 압권이다. 문제는 「감자」가 졸라의 자연주의와 흡사한 점이 많지만 평론가들이 다른 소설을 다른 문학사조와 연결시켜 왔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배따라기」에도 자연주의의 요소를 발견할 수 있되 문학사조로 따질 때 낭만주의의 성향이 더 크다고들 한다. 여기서 김동인이 일본에서 문학을 공부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된다. 또한 김동인이 에밀 졸라의 자연주의 사상을 직접적으로 졸라의 작품을 통해서 알게 된 것 보다 일본이 그 사상을 수용한 상태로 발견했다는 것이다. 일본 문학사에 있어 자연주의라는 문학사조가 일본 근대문학에 큰 역할을 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일본에서 유통됐던 자연주의는 졸라의 자연주의와 상당히 다른 성격을 갖추고 있다. 일본 작가들에게는 자연주의의 ‘자연’은 졸라의 ‘자연과학’보다 ‘대자연’을 뜻했다. 그리고 자연 앞에서의 그들의 자세는 프랑스 자연주의 작가 보다 낭만주의 작가와 더 흡사했다. 자연 앞에 선 자기 자신을 보면서 자기 자신의 내면을 드러낸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 일본 자연주의의 특색이다. 이처럼 「배따라기」나 「대동강이 속삭인다」등과 같은 김동인의 수많은 작품속에 인물들은 자연속을 안식처로 삼는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일본 자연주의 작가들은 졸라가 말하는 현실을 관찰하여 보는 그대로 옮겨야한다는 말을 자기 자신을 관찰하여 그대로 옮겨야 한다 것으로 변형을 시켜 일본 근대 문학을 대표하는 私小說을 탄생시켰다. 김동인도 일본 私小說이 주장하는 고백체를 한국에 도입하여 자주 사용했다. 그러나 김동인이 졸라에 의한 자연주의나 일본 낭만주의적인 자연주의와 고백체의 자연주의를 다 같이 수용한 것은 김동인의 창작 수법상의 장치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김동인의 자연주의란 단순히 기법의 자연주의였다. 또한 김동인만의 자연주의 속의 ‘자연’은 ‘자연스럽다’라고 할 때의 ‘자연’이다. 프랑스 자연주의나 일본 자연주의는 사조이니만큼 그것을 뒷받침하는 사회학적, 심리학적, 시학적 등의 사상이 있었다면 김동인의 자연주의는 창작 장치로서 소설의 자연스러움을 보장하는 장치였다. When introducing Kim Tong-in`s Literary World, critics and historians usually use Literary Trends, and yet it is noteworthy that there is no consistent definition. In other words, Kim Tong-in is described as a writer belonging, at the same time, to very different trends such as naturalism, realism, nationalism, aestheticism, etc. This article proposes a different approach to the Literary World of Kim Tong-in. Instead of accumulating literary genres to grab his Literary World, we observe how, within one single trend - naturalism -, Kim Tong-in proposes and utilizes several interpretations of this one trend in order to achieve his own personal literary trend. First when Kim Tong-in is referred to as a naturalist writer, naturalism generally relates to the literary trend developed by French writer Emile Zola. Zola was greatly impressed and influenced by the development of sciences at his time, and Naturalism as he defined it aimed at bringing scientific experimentation into the field of creative writing. Thus, the term ‘nature’ in Naturalism refers to the natural sciences. The Naturalist Literature`s writing methodology can hence be described as follows: put an individual belonging to a certain type in a particular environment, then observe and record how this individual adapts to the environment changes. Kim Tong-in`s masterpiece Kamja shows a very similar attitude from its author: it records the changes undergone by a young woman as she is led to live in a poor neighborhood outside P`yeongyang. Though this particular story bares many similarities with Zola`s naturalism, literary critics connect other stories with other literary trends. For example, in another well-known story, Baettaragi, elements of such a Naturalism can also be found, but when attempting to link it to a literary trend, it is usually described as a romantic story. Here it should be reminded that Kim Tong-in studied Literature in Japan. It is also noteworthy to note that when Kim Tong-in came across Zola`s naturalism, it was not by reading directly Zola`s works but in a form that had been already processed and adapted by Japanese authors. Naturalism played a major role in the forging of modern Japanese Literature. However the Naturalism that developed in Japan is quite different from Zola`s Naturalism. Japanese authors understood the ‘nature’ in naturalism not as much as the ‘natural’ of Zola`s ‘natural sciences’ but rather as found in the expression ‘Mother Nature’. Therefore their posture in front of Nature was closer to Romanticism than to the French naturalist writers. In front of Nature`s greatness these authors saw their inner self emerge to the surface of consciousness and this became a characteristic of Japanese Naturalism. Thus, stories by Kim Tong-in such as Baettaragi or the Whispers of Taedong River in which a great emphasis is put on Nature as a shelter, that have often been described as Romantic works, have in fact much more to do with this Japanese interpretation of Naturalism. Furthermore, Japanese naturalist authors slightly transformed Zola`s motto to describe reality ‘as it is’ and advocated a truthful description of one`s personal reality, thus giving birth to a new Literary genre specific to Japanese Literature: the shishosetsu or “novel of the I (self)”. Kim Tong-in introduced in Korea and made frequent use of a similar type of ‘confessional novel’. However what differs from Japanese Naturalist authors of the shishosetsu genre is that Kim Tong-in uses the confession merely as a narrative device. And this is also true for his use of Zola`s Naturalism and Japan`s Romantic Naturalism; Naturalism is a tool, part of the creative techniques the writer has at hand. In other words, Kim Tong-in`s Naturalism is methodological. To him, the ‘nature’ in Naturalism refers to the adjective ‘natural’ we use when we ask someone to ‘act natural’. While French Naturalism as well as its various Japanese interpretations follow trends and ideas from Sociology, Psychology, Poetics, etc. Kim Tong-in`s Naturalism, as a narrative device, mostly acts as a tool ensuring that the story ‘feels natural’. By experimenting this manifold Naturalisms and the various narrative possibilities they offer, Kim Tong-in succeeded in laying the ground stones on which a modern Korean Literature could be bui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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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인의 문학창작관(觀)과 문학의 역할론(論)

        김시몽 ( Si Mon Kim ) 한국비교문학회 2015 比較文學 Vol.0 No.66

        김동인은 동시대 작가들과 함께 한국에 근대문학을 부여하고자 글을 쓴 사람이다. 권선징악을 주장하는 윗세대와 맞싸워 현실을 그대로 그려야된다는 문학관을 내세웠다. 그 당시의 현실이라함은 대부분이 일제 강점기의 가난한 평민의 삶이다보니, 그 젊은 작가들이 주장하는 사실주의 문학은 경제 측면에서 불공평한 사회구조를 반영했다. 그러나 이 가운데서 김동인의 문학관이 다소 달랐다. 예를 들면,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과 김동인의 ‘광염 소나타’를 비교해보면 그 차이점을 판히 볼 수 있다. ‘운수 좋은 날’의 주인공이 몸이 아픈 아내를 어쩔 수 없이 혼자 놔두고 돈을 벌러 나오는데 집에 들어올 때 자기 아내를 죽은체 발견한다. 이 얘기로 작가가 돈이 지배하는 세상이 인정사정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반면에 비슷한 이야기로 시작하는 ‘광염소나타’는 이 비극적인 상황이 결국 주인공 백성수의 천재성을 깨워주는 기회라고 보는 것으로, 김동인은 예술 앞에서 모든 희생이 용납된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있다. 이 예를 보면, 김동인이 현실을 접하는 태도는 이야기 즉 소설을 구성하기위한 서술적인 장치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김동인의 성격은 단순히 사회구조를 비판적으로 묘사하는 사실주의문학과는 거리가 있다. 김동인 작품세계에 대한 평론을 보면 김동인이 단순히 사실주의나 자연주의에만 몰입하지 않고 민족주의, 탐미주의, 예술지상주의, 낭만주의 등등 많은 문예사조에 관심을 기울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작품마다 문학성향이 달라진다고 할 수 있는데, 그럼에도 김동인 문학세계의 일관성을 찾을 수 있는 건지에 대하여 본 논문이 알아보고자 한다. 김동인의 문학세계는 그의 문학창작觀 속에 정의될 수 있다. 다시 말하여, 김동인이 작품마다 문예사조가 다르다는 것은 김동인이 한 문예사조에 속하지 않고 끊임없이, 매 작품마다, 그 작품에 적합한 사조를 추구하는 것이다. 김동인에 있어서 문예사조는 사조이기 전에 창작의 도구다. 사조에 따라 이야기하는 주제, 진행, 구조, 모든 요소들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한국문학의 근대성을 찾아가면서 김동인이 계속해서 문학을 실험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은 그의 문학의 일관성은 지속되는 그 실험에서 찾을 수 있다. 김동인에 의하면 작가가 새로운 글을 쉬지않고 시도하는 것이 문학작가의 진정한 태도이며, 결론적으로 그가 문학창작을 하면서 그리고자 하는 것은 한 시대에 한하는 사회적인 현실보다도 일제 강점기하에서도 지키려는 김동인 바로 그가 생각하는 한국의 본 정서다. Kim Tong-in belongs to the generation of writers who, in the early 1920s, thrived to give Korea a modern literature. Unlike writers from the West who built modernity against tradition, Korean literature had no tradition to build itself against, ancient literature being written in classical chinese. Therefore in order to achieve modernity, they had to create a whole new literature out of nothing, or so they said. The first steps had been made by the generation right above, with the so-called Enlightenment literature, led by Yi Kwangsu who thought of literature as a way to teach modernity to the people. Yet the (moral) modernity put forward by Yi Kwangsu and the (literary) modernity sought after by the young writers of the 1920 was quite different. Kim Tong-in set himself apart from other writers as he didn`t satisfy himself with the general view of what modern literature should be like. Whereas other writers leaned towards realism and naturalism, Kim Tong-in thought of these trends as mere tools to create a work of modern literature. In other words, to Kim Tong-in’s eyes, literary modernity could not be reduced to realism. This is why literary critics and historians of Korean literature have struggled to define in a coherent manner Kim Tong-in`s literary world. He seems to be all over the places, leaning towards realism, then switching to eastheticism, before getting into romanticism or even nationalism. Instead of trying to define Kim Tong-in literary world in terms of literary trends as it has been done up untill now, we should try to grasp it in a more comprehensive way in order to seize its coherence within all these apparent incoherence. This article proposes to view Kim Tong-in`s approach to writing as an experimental approach. And by experimental, we don`t refer to modernism and avant-garde literary experimentations as much as a general attitude towards the very act of writing. In his search for literary modernity, Kim Tong-in, we believe, experimented with various trends, various concepts, looking for an answer to what literary modernity should be and without getting ever satisfied with one single answer. In his quest, two elements remained throughout his literary journey: 1. the belief that writing is an art form and therefore subjected to certain skills and techniques; 2. the dedication to give his country the literature that could best represent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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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속에의 시체 묘사 -보들레르와 벤의 비교 고찰

        김시몽 ( Si Mon Kim ) 한국불어불문학회 2011 佛語佛文學硏究 Vol.0 No.85

        보들레르의 『악의 꽃』이 발간된 당시 큰 논란을 일으킨 이유 중에 하나는 이 시집의 불건전한 성향 때문이었는데, 이 불건전함을 대표하는 시가 시체를 적나라하게 묘사한 「한 시체Une charogne」이다. 이 시는 오랫동안 시집 『악의 꽃』전체를 상징하는 시로 평가받아왔고, 그것은 바로 보들레르가 『악의 꽃』속에서 다루는 테마들이 이 시를 통해서 극단적으로 표현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근대시의 방향을 잡아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악의 꽃』발간 당시, 다수의 프랑스 시인들은 물론 주변 유럽의 시인들이 보들레르의 시집에서, 특히 「한 시체」라는 시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20세기 초의 독일 표현주의 작가들의 초기 시들을 살펴보면 보들레르 풍의 시를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이 가운데, 『시체공시장. 기타』(1912)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고트프리트 벤의 시집은 보들레르에게서 받은 영향을 승화시켜 그의 근대성을 한 단계 더 높였다고 평가된다. 고트프리트 벤의 시집 『시체공시장. 기타』가 발간된 당시, 그의 시집은 『악의 꽃』에 버금가는 혹평과 비판을 받으면서 독일문학사의 한 획을 그었다. 본 논문에서는, 시체를 마치 의학적 보고서처럼 묘사 했던 벤과 보들레르의 시를 비교해 봄으로써 그들이 근대시에 미친 영향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보들레르와 벤이 시를 쓴 상황은, 그 역사적 시점은 다르지만 사회·문화적 조건은 흡사했다. 보들레르가 1848년 혁명의 실패로 인한 환멸과 낭만주의의 과도한 서정성에 거슬러 죽음의 현실을 꾸밈없이 드러내려 한 것과 마찬가지로, 벤은 빌헬름제국의 자본주의 속에서 흥행하고 있는 신낭만주의의 위선적 서정성에 대해 극단적으로 대응하려고 한다. 불건전한 주제에 객관성을 부여함으로써 낭만적 자아의 과시를 깨뜨리고자 한 벤은, 예를 들어 「아름다운 청춘Schone Jugend」이라는 시에서 사람의 시체는 인간의 흔적이 사라진 물건으로 그려지고 반면 그 시체를 뜯어먹는 쥐들은 오히려 생기 있게 그려져 있다. 마찬가지로 보들레르의 「한 시체」도 시인이 여인에게 너도 죽으면 한 시체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것으로 끝맺는다. 얼핏 보면 보들레르 시의 결말이 메멘토 모리의 전통을 이어준다고 할 수 있지만, 시체 앞에서 죽기 전에 삶을 즐기자는 이야기보다는 죽음의 실상을 확인할 뿐이다. 벤은 이보다 더 나아가 니체가 주장한 신의 죽음을 확인하는데, 바로 이 부분이 벤과 보들레르의 가장 핵심적인 차이점이다. 보들레르의 시집은 선과 악, 미와 추, 삶과 죽음의 문제를 제시하지만, 이 모든 문제들이 종교의 틀 안에서 제시된다. 보들레르가 사탄을 앞세울 때조차도 그는 기독교적 사고 속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벤의 경우는 신이 사라진 세상을 그리고 있다. 그렇지만 벤에게서 신의 죽음으로 인한 실존주의적인 허무를 견디기 위해 제시된 것은, 보들레르가 윤리적인 허무를 견디기 위해 제시한 것과 동일하다고 볼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바로 예술이다. 실존주의적 허무를 그린 『시체공시장. 기타』이후의 벤의 후기 창작 시들은 소위 절대시라는 이름으로 순수문학의 우월성을 주장한다. 이는 보들레르가 결국 예술[시]창작으로 인해 자신의 실존을 확인하고 절망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 이다. 결론적으로, 시의 근대성을 이룬 이 두 시인을 비교하면서 우리는 양차대전을 거친 20세기의 비극과 마주 칠 근대문학의 특징적인 성격, 즉 허무주의와 예술적 승화를 통한 극복이라는 특징들을 이들의 작품 속에서 미리 공통적으로 만나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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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을 향한 증오

        김시몽 ( Si Mon Kim ) 한국비교문학회 2011 比較文學 Vol.54 No.-

        Despite its provocative title, this paper aims at stressing the need for an awareness of the functioning of translation. If there is such a thing as a hatred towards translation, it is because, as Jacques Derrida reminds us in his essay "Des Tours de Babel", man is ``doomed`` to translation ever since he tried to build the biblical tower of Babel. Translation is unavoidable, and yet throughout its history it keeps telling its imperfection. The foremost outstanding testimony of translation`s imperfection can be found in the fact that, whereas a piece of literature, in its original language and form, never turns old and keeps - given its status of work of (literary) art - being new whatever the epoch it is read in, a translation, on the other hand, prevails only until another one reveals both its flaws and its obsolescence. Thus it is common practice to have one same text translated over and over. Instead of accepting this fact with a sense of fate - since we are ``doomed`` - we should acknowledge its various implications. First of all it brings on the question of the translator`s status. The usual trend is to promote what Lawrence Venuti calls the "translator`s invisibility", which means that when we read a translated text, we should not be aware nor feel the intermedium that is the translator. Thus, the translator should make himself as invisible as possible. The counterpart of the translator`s invisibility is what we have called the ``translational pact``, meaning that a reader in front of a translated text acknowledge the fact that he is reading not the original but a translation of the original, and yet pretends he is reading the original (for instance, when an english speaker reads a translation of Dostoievsky, he will say and believe that he is reading Dostoievsky). Yet, to achieve a genuine invisibility is only possible for a text that is not challenging both linguistically and intellectually (such as user`s manuals, etc.), but whenever a new translation of a text (especially literary) is published, it carries the idea that the other (older) translation(s) are not good anymore (if they ever were). It therefore casts a doubt on the trust one can have in a translator. How can I judge whose translation of a same text is better? Is such a question even pertinent or legitimate? This kind of questioning emerges when a translator is not invisible any more. Such cases happen every once in a while, from H?lderlin`s translation of Sophocles` Antigone, Nerval`s french rendering of Goethe`s Faust, Baudelaire and Mallarm?`s translation of Edgar Allan Poe`s works, etc. Since the 90s, a debate has started in France with the new translation of Dostoievsky`s complete novels by Andre Markowicz. Markowicz`s translations were so far from all the other existing translations that the question could not but be raised as whose translation in closer to the original russian text. And since there are obviously no objective criteria that are satisfying enough to establish what is a good translation, we are forced to reformulate the questioning on the status and functioning of literary translation. As soon as the translator is no longer invisible, he then becomes an author himself. In this sense, the translation of Dostoievsky by Markowicz becomes "Markowicz`s Dotoievsky translation" the same way we speak of Glenn Gould`s or Sviatoslav Richter`s Bach`s Well-tempered clavier in music. In conclusion, what this paper tries to say is that as long as translator try to remain invisible, he somehow lies to himself as well as to his/her readers since he ``pretends`` he is not here; but once we are aware of the translator`s presence (his/her visibility), the status and functioning of the act of translating should be deeply re-assessed, in the sense that the translator now stands next (even though he might wish to be beneath) the author of the original work. Hence the so-called hatred of translation is more about concerns (about what translators should or should not be) than actual hat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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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리다의 사상에는 번역이론이 있는가?

        김시몽 ( Si Mon Kim ) 한국불어불문학회 2009 佛語佛文學硏究 Vol.0 No.77

        J.데리다는 E.후설의 작품을 번역하면서 철학가의 길을 시작했고, 이것을 계기로 번역에 관한 논의는 대부분의 그의 작품들에서 계속되었다. 그러므로 본 논문은 J.데리다의 번역에 관한 논의에는 과연 어떤 특정한 번역이론이 존재하는지의 여부를 알아보고자 한다. 번역을 가장 먼저 본격적으로 다룬 그의 작품 『바벨탑』에서 J.데리다는 W.벤야민의 『번역가의 과제』를 해석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의 번역에 대한 관점은 우리가 생각하듯이 뜻을 전달하거나 옮기는것이 아니라 해석학과 디컨스트럭션 사이에 서 있는 듯하다. 『바벨탑』이라는 책은 J.데리다가 단순히 W.벤야민의 『번역가의 과제』를 해석하는데 그치지 않고, 바벨이라는 단어에 대한 고찰을 담고 있다. 바벨이라는 단어가 고유명사임과 동시에 단순명사이기도 함을 통하여, J.데리다는 번역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번역의 불가능성을 보여 준다. 하지만 여기서 새겨 봐야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생각이 번역과 성서의 밀접한 관계에 바탕을 두고 있고, 바로 그것이 이러한 생각의 한계라는 것이다. 특히 유대교의 전통에서 성서의 접근은 번역과 해석을 통해서 동시에 이루는 것이다. 따라서 J.데리다의 번역의 관점은 해석과 가깝다. 그리고 번역이 해석에 가까운 것은 M.하이데거의 해석학과 관계가 없지 아니하다. J.데리다가 존경한 하이데거의 모든 사상은 고전철학의 재번역/재해석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M.하이데거에게 있어서, 번역이란 뜻을 전달하는 행위로 여겨졌던 것과는 달리, J.데리다에게 있어서, 번역은 디컨스트럭션의 일부다. 그런 점에서, J.데리다의 사상은 번역에 대한 아주 깊은 고찰을 내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번역이론으로 까지는 완성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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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쇼닉의 시학

        김시몽 ( Si Mon Kim ) 한국불어불문학회 2012 佛語佛文學硏究 Vol.0 No.92

        메쇼닉은 언어학자이자, 번역가이자, 시인이었다. 그의 말로는 이 세 정체를 분리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에게 있어서는 언어의 고찰, 번역의 실행과 시의 창작은 똑같은 작업이었다. 예컨대, 언어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요소가 되어버린 리듬에 관한 개념은 성경을 번역하면서 발견을 했고 또한 시를 직접 창작했기에 성경의 번역전략을 세울 수 있었다고 한 바가 있다. 본 논문은 메쇼닉의 언어와 번역에 관한 연구 및 활동이 시 창작에 미친 영향을 살피고자 한다. 메쇼닉에게 가장 핵심적인 개념은 성경을 번역하면서 발견한 것이다. 우선기존의 성경 번역을 보면 번역의 본질을 의문하는 수밖에 없다. 종교적인 글이니만큼, 또한 소위 복음을 전파하자는 문서이니 만큼, 이 번역은 색깔을 입히기가 십상이다. 따라서 카톨릭에 의한 성경번역과 개신교나 유대교에 의한 성경 번역은 사뭇 다르다. 종교 이념을 뒤로 하고 문서로 성경을 접근하는 메쇼닉은 원문의 시적(詩的) 성격을 발견한다. 그 시적인 성격은 바로 언어의 리듬에 있다. 이에 이어 리듬의 시학을 성경번역에 머물지 않고, 모든 번역작업에 실행해야 한다는 메쇼닉의 번역이론은 리듬이란 단어 하나하나의 뜻을 넘어 한텍스트의 뜻과 미(美)를 규정해주는 것이다. 더 나아가 메쇼닉은 이런 `리듬의 시학`을 시창작에도 사용했다. 본 논문은 리듬의 시학이 시창작에 무슨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살피고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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