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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후보

          경영적 관점에서 살펴 본 우리나라 문화산업 경쟁력 제고방안

          김광규(Kim Gwang-gyu) 한국문화산업학회 2010 문화산업연구 Vol.10 No.1

          This study is to analyze the industrial characteristics of Korea culture, and to suggest directions for the sustained growth of the industry. (1) The culture industry should be recognized as an important source of growth, and given due policy consideration. (2) Simply assisting all businesses in the industry indifferently will jeopardize policy effectiveness. The Government should consider strengthening the overall industry competitiveness. (3) The development policy should better take the characteristics as analyzed in this study to be effective. (4) Private, not the public, should be given initiatives for the long-term growth of the culture industry. (5) More effective organization is urgently in need which develops policies, conducts various research and in-depth studies. This organization should be represented by all interest parties: government, business groups, think-tanks, and individual specialist. This study is to analyze the industrial characteristics of Korea culture, and to suggest directions for the sustained growth of the industry. (1) The culture industry should be recognized as an important source of growth, and given due policy consideration. (2) Simply assisting all businesses in the industry indifferently will jeopardize policy effectiveness. The Government should consider strengthening the overall industry competitiveness. (3) The development policy should better take the characteristics as analyzed in this study to be effective. (4) Private, not the public, should be given initiatives for the long-term growth of the culture industry. (5) More effective organization is urgently in need which develops policies, conducts various research and in-depth studies. This organization should be represented by all interest parties: government, business groups, think-tanks, and individual specialist.

        • 대기보전정책과 에너지정책의 조화에 대한 小考

          김광규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1998 환경포럼 Vol.2 No.11

          대기오염의 대부분이 에너지소비에 기인함에도 불구하고 대기보전정책과 에너지정책은 그동안 조화롭게 추진되지 못하였다. 각각의 정책이 대기질 보전과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 및 저에너지가격에 근거한 산업의 경쟁력 제고라는 개별정책의 목표 달성에만 집착할뿐 社會的 厚生 극대화라는 공동목표 이행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가오는 21세기에는 시대의 패러다임이 경제정책의 경우 성장 위주에서 지속가능한 개발로, 에너지정책의 경우 안정적 공급에서 수요관리 강화로 바뀌는 추세에 있다. 大氣保全과 에너지의 개별정책이 가지는 한계점을 극복하고 변화하는 시대의 패러다임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후생의 극대화라는 공동목표아래 두 정책이 조화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책조화는 에너지소비가 초래하는 대기오염의 사회적 비용을 內在化하는 것으로 부터 출발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공동목표인 사회적 후생의 극대화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 KCI등재

          개별 교직력을 통해 본 일제강점기 여교원 양성과 인사 실태 - 경성여자사범학교 출신 여교원을 중심으로 -

          김광규 ( Kim Kwangkyu ) 한국교육사학회 2016 한국교육사학 Vol.38 No.4

          본 논문은 근대 여교원의 역사를 서술하는 데 필요한 자료를 집성·정리하는 방법 중 하나로 개별 여교원의 교직력 작성 방법을 제시하고, 교직력을 활용한 여교원 양성 및 인사제도 연구의 실례를 제시하였다. 개별 교원의 교직력 작성이 여교원 연구에만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지만, 여교원은 남교원에 비해 사적 기록물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특히 유용한 자료가 된다. 교직력은 개별 교원의 생애를 대상으로 하여 현재 자료 사정에서 확보 가능한 모든 자료를 집성·정리한, 교원의 평생에 걸친 이력서라고 할 수 있다. 즉 교원 개개인에 대한 실증된 정보의 총합인 것이다. 교직력은 교원양성기관 입학생 또는 졸업생의 실명을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신문 기사 검색사이트 등 여러 웹사이트에서 일일이 검색하여 얻은 결과를 집성·정리하는 방식으로 작성한다. 실명 검색이라는 방법의 특성상, 자료 검증을 거쳐 다양한 자료를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무한대로 열려 있으며, 자료 사정의 변화에 따라 얼마든지 수정·보완이 가능하다. 교직력 작성 과정에서 공문서 상에 수많은 교원 중 1명으로만 기재되어 있는 개별 교원의 삶의 이야기를 수집할 수 있고, 당시의 교직 생활과 학교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또한 개별 교원의 교직력과 그 총합에 대한 해석을 통해 조선총독부 교원정책의 실제와 본질적 성격을 규명할 수 있다. 그리고 본 논문은 여교원 양성기관 입학생 또는 졸업생의 교직력을 활용한 여교원 양성·인사 연구의 실례를 제시하였다. 교직력 작성을 통해 각 양성기관의 매년 입학생 또는 졸업생 수와 민족 비율, 졸업생의 실제 임용율, 초임 발령지, 근속 기간 등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고, 이에 기반하여 여교원 양성제도의 특성과 초임 발령의 실제, 여교원을 둘러싼 사회적 조건·인식 등을 실증적으로 규명할 수 있음을 제시하였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suggest the way of collecting materials for writing history of the modern female teachers. That is to make the collection of individual personal history of every individual teachers in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To do this, We can use the website `http://db.history.go.kr/`, and several websites that can retrieve some newspaper articles in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Individual personal history of all teachers is the collection of historical material about an every individual teacher. This gives us lots of data for study of teachers. And this paper is to study the trait of the Female teachers` training, the first place of appointment, and length of female teachers` service from Gyeongseong Girl`s Normal School through the Individual personal history of teachers.

        • KCI등재

          1910년대 재조선 일본인 교원의 양성과 인사

          김광규 ( Kim Kwangkyu ) 한국교육사학회 2017 한국교육사학 Vol.39 No.3

          본 논문은 1910년대에 한정하여 재조선 일본인 교원의 양성과 인사 실태를 밝힌 것이다. 1910년대는 원칙적으로 조선인·일본인 분리 교육이 이루어진 시기로 일본인 교원도 조선인 학생이 다니는 보통학교, 일본인 학생이 다니는 소학교 교원이 각각 따로 양성·임용되었다. 1910년대 설립·운영되었던 일본인 교원 양성기관에는 소학교 교원을 양성하는 중학교 부속 임시소학교교원양성소, 보통학교 교원을 양성하는 경성고보 부설 임시교원양성소, 경성여고보 부설 임시여자교원양성소가 있었다. 3기관 모두 교육기간 1년의 단기 속성 양성기관이었다. 이러한 단기 속성 양성교육을 받고 보통학교에 부임하는 일본인 교원은 조선어 능력이나 조선사회에 대한 이해 정도가 낮아 조선인 학생을 교육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조선총독부는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양성기관 졸업생만을 대상으로 하는 교원강습회를 개최하고 강습회 참가를 독려하였다. 일본인 교원은 지배 민족이자 판임관 관료신분으로서 지역민 위에 군림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조선인 교원에 비해, 또한 일본의 소학교 교원에 비해서도 높은 수준의 급여를 받을 수 있었다. 교장으로의 승진 기회도 조선인 교원에 비해 훨씬 많았다. 이러한 조건들은 일본인이 조선의 교원양성기관에 입학하는 데 충분한 유인 조건이 되었으며, 근속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또한 임시소학교교원양성소, 임시교원양성소 출신 일본인 교원은 조선인 교원의 경우에 비해 사직 후 고등교육기관에 진학하였다가, 조선의 중등학교 교유가 된 경우가 많았다. 즉 일본인 교원은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 진학이나 전직 등 새로운 진로를 개척할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하는 데 조선인 교원보다 유리했다. 다만, 이러한 내용들은 임시여자교원양성소 출신 일본인 여교원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일본인 여교원은 남교원과 같은 판임관 관료 신분으로서 정해진 봉급과 일본인 교원으로서 가봉 등 추가 급여를 받을 수 있다는 경제적인 면을 제외하면 교원강습회와 같은 재교육 기회, 승진 기회, 중등학교 교유가 될 수 있는 기회 등에서 소외되어 있었다. 근속 기간도 남교원에 비해 매우 짧았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study the public elementary school Japanese teachers` training and personnel in Choson 1910`s. In the 1910s, Korean schools and Japanese schools were run separately, teacher education institute, too. The Japanese teacher education institutes that were established and operated in the 1910s, were three. One was for elementary school that Japanese children go, the other two were for the one where Korean students. The second one is for men and the other for women. All three institutions were short-term property training institutions with an one-year education period. Because of the short duration of education, teachers who were not fluent in Korean had difficulty in working at school.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used the reeducation of teachers to improve their ability. The social and economic status of Japanese teachers were better than those of Korean teachers in Choson and Japanese teachers in Japan. And Japanese teachers were more advantageous than Korean teachers in promotion. So the tenure of Japanese teachers was similar to that of Korean teachers, long. In conclusion, the job of elementary school teacher in Choson was a good one for Japanese people in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 KCI등재

          조선의 ‘문검' 합격자들

          김광규 한국교육사학회 2019 한국교육사학 Vol.41 No.2

          본 논문은 일제강점기인 1910-1943년 간 중등교원검정시험인 ‘문검'에 합격한 조선인과 재조선 일본인의 면면을 살펴보고, 당시 ‘문검'의 역할과 교육사적 의미를 탐색해 본 것이다. 조선인, 재조선 일본인 모두 ‘문검' 합격자의 대다수는 초등교원이었다. 당시 조선의 관공립초등학교 교원이 일본의 초등교원에 비해 더 나은 사회경제적 지위를 누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문검'에 응시한 중요 동기는 초등교원과 중등교원 사이에 존재했던 학력의 차이, 임용시 대우의 차이, 사회적 지위와 인식의 차이였다고 할 수 있다. ‘문검'은 고등교육기관으로 진학하지 못한 자가 중등교원 자격을 취득할 수 있는 길이었고 고등교육기관 졸업과 동등한 학력을 갖추었음을 공인받을 수 있는 기회였다. 결과적으로 ‘문검'은 당시 교육제도가 갖고 있던 한계를 개인 차원으로 전가시키고 그것을 개인의 노력과 수고의 결과라고 정당화하는 기능을 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합격자 중 조선인의 비율, 실제 중등교원 임용율이 일본인에 비해 매우 낮았다는 점에서 일제강점기 엄연히 존재했던 교육에서의 민족 차별의 일단을 확인할 수 있다. This paper examines the aspects of the Korean and Japanese who passed the National Qualifying Examination for Secondary school(‘MunGeom') and explores the role and the meaning of the educational history of this exam in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The majority of successful applicants were elementary teachers. Although the teachers of public elementary schools in Chosun were able to enjoy a better socio-economic status than elementary teachers in Japan, they took ‘MunGeom' to gain status and status as a secondary teacher. ‘MunGeom' was an opportunity for those who did not advance to higher education institutions to acquire the qualification of secondary teacher and to be recognized as having the same level of education as graduated from higher education institutions. As a result, ‘MunGeom' functioned to justify the defects of the educational system at the time and to justify it as a result of individual effort and effort. And the percentage of Koreans among the successful applicants and the actual rate of secondary teacher recruitment were very low compared to those of the Japanese. This was due to national discrimination in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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