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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논문 : 허응 보우의 불교사적 위상 재검토

        손성필 ( Seong Phil Sohn ) 한국사상사학회 2014 韓國思想史學 Vol.0 No.46

        허응 보우(虛應普雨)는 조선 명종대에 불교를 중흥하고자 한 승려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의 승정(僧政) 활동과 불교 사상은 각각 이례적이고 독립적인 것으로 평가되어, 불교사적 위상이 제대로 평가받아 오지 못했다. 이는 일반적인 조선시대 불교 역사상(歷史像)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조선시대에 불교가 탄압 받았다는 이미지와 대비돼 보우의 활동이 단지 불교 부흥을 위한 것으로 부각된 반면, 중종대에 단절되다시피 한 불교 전통이 임진왜란 이후 부흥하였다는 불교사 인식에 따라 보우의 사상이 전·후대의 그것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거의 주목 받지 못했다. 근래에 조선시대 불교에 대한 실증적 연구가 진전됨에 따라 기존의 역사상에 오류가 적지 않음이 밝혀지고 있는데, 명종대의 불교정책은 문정왕후의 신앙에 따른 불교 부흥운동이었다거나 훈척세력의 파행적 정치행태였다고만 평가할 수 없으며, 15세기의 불교정책을 계승한 보수적인 정책이자 당대의 정치·사회적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현실적인 정책이기도 했다. 선교양종 승정체제의 최고위관료이자 정권의 실력자였던 보우는 정치세력 간의 투쟁으로 희생되었고, 이는 이후 훈척세력에 대한 사림세력의 승리로 기억되었다. 그러나 보우가 주도한 명종대의 여러 불교정책들은 조선후기 불교를 여는 단초를 제공하였다. 보우는 사상적으로 선교일치와 유불일치를 지향하였다. 화엄을 중시하고, 염불을 권장하였으며, 수륙재와 같은 불교의례도 중시하였다. 이러한 사상 경향은 조선후기 불교의 성격과 상당히 유사하나, 그는 조선후기 불교계에서 중시된 법통 계보 상의 승려가 아니었기 때문에, 법통설에 따른 불교사 인식이 강화되어 갈수록 그 역사적 입지는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의 사상은 고려 중기의 지눌, 조선 초의 기화 등 기존 사상 전통을 토대로 형성된 것이자, 조선 중종·명종대의 시대적 과제에 대한 부응이었다. 그의 사상 지향은 휴정을 통해 구체화되었고, 휴정의 문도를 통해 조선후기 불교계의 보편적 강학체계인 이력과정, 수행체계인 삼문수학 등으로 계승된 것으로 보인다. Heoeung Bowoo (虛應普雨) is well known as a Buddhist monk who tried to restore Buddhism during the era of King Meongjong in Joseon. However his Buddhist political activities were extraordinary and it has been argued that his Buddhist thought was not related to Buddhist thoughts before and after his period. It seems that this appraisal is based on an incorrect understanding of Buddhism in Joseon. However thanks to recent empirical research on Buddhism, it is possible to revalue his activities and thoughts. The Buddhist policy in the King Meongjong`s period led by Bowoo which succeeded 15th century`s Buddhist policy was not only conservative but also very realistic and practical to cope with political and social problems. He, who was the highest ranked bureaucrat, was sacrificed by political struggle between huncheok (勳戚) and sarim (士林), but various Buddhist policies led by him became the basis of Buddhist policies in the Late Joseon Period. His thought aimed to create Seon-Kyo congruity (禪敎一致) and Yu-Bul congruity (儒彿一致), and took the views of hwaeom (華嚴), yeombul (念佛) and suryukjae (水陸齋) serious. His thoughts were formed based on existing ideologies such as that of Jinul (知訥) in the middle of Koryeo dynasty, or that of Kihwa (己和) in the early Joseon dynasty, and were a sort of response to challenges of the era in the King Jungjong`s and Myeongjong`s period. They were made more concrete by Cheongheo Hewjeong (淸虛休靜) and were succeeded by the Buddhism in the Late Jo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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