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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논문-의령의 인물과 학문(1) : 飛泉(비천) 田璣鎭(전기진)의 생애와 詩世界(시세계)

        문정우 ( Jung Woo Moon )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2012 남명학연구 Vol.33 No.-

        飛泉 田璣鎭은 江右 地域 宜寧에 세거해 온 艮齋學派 문도이다. 부친에게서 行己와 孝를 몸소 익혔으며 부친의 명으로 艮齋 田愚에게 집지하였다. 간재가 학문의 바탕을 갖추라는 뜻을 함축하는 비천이라는 호를 지어주어 篤學에 대해 큰 가르침을 받았다. 배움 뒤의 行誼를 배우고자하는 마음에서 불의에 행동하였던 心石 宋秉珣에게도 가르침을 청하였다. 배움을 가벼이 취하지 않고 학문을 실제에 부응하고자 노력하였으므로 篤學懿行의 생애를 살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비천은 간재학파로서 여러 활동을 하였다. 간재에게 학문의 여러 난해한 문제를 질문하고 답변을 받았다. 학문적 연대를 확장하고 학문에 생기를 불어넣기 위해서는 강론으로 벗을 권면하는 일이 우선이라고 생각하여 간재 문인과 노론에게 시대적 책임을 갖고 소명을 함께 하자는 강론의 자리를 마련하여 참여를 촉구하였다. 간재 문집의 간행에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간재의 ‘性尊心卑’의 학설을 따라 尊性의 요체를 窮究하였다. 학계의 관심사였던 明德에 관한 논의에서도 尊性에 힘을 기울였다. 비천은 명덕을 體와 用으로 나누어 명덕의 體는 性이며, 명덕의 用은 心이라고 하였다. 명덕에 대하여 한쪽으로 치우쳐 이름 붙이지 않고 性을 중심축으로 보아 원리로 여겨 心에게 방향성을 제공하는 해석을 하고 있다. 이것은 간재가 心性은 一物이며 心은 性의 선함을 본받아야한다고 주장한 것에 대하여 충실하게 계승한 것이다. 비천의 시세계는 다음과 같다. 먼저 시대적 혼란에 士意識을 堅持하여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선비의 책무를 다하고자 하였으며 尊周攘夷의 정신과 華夷의 분변에 주력하여 간재 학문의 수호 의지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학문에 임하는 자세로 立志를 우선으로 여기며 입지가 곧 결실로 이어질 수 있는 중요한 대목이라는 견해를 작품에 표현하였다. 강론을 중시하였음을 알 수 있는 시작품을 확인할 수 있다. 진실한 致知를 통해 참된 실천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학문에 대한 믿음과 함께 침체된 분위기를 쇄신하고 학문적 교류와 성장을 위해서 강론의 자리를 중시하는 학구적 열의를 보였다. 그것은 실천적 학행으로 귀의하고자 함이었다. 비천은 인품과 글을 동일시하며 높은 학문과 함께 義行을 겸비한 선비의 글을 훌륭하다고 여겼다. 따라서 비천 자신 또한 공부를 위한 공부가 아닌 실천하여 얻은 학문을 이루고자 하였다. Beacheon Jeon-gijin who had lived in Uiryeong, Gang-woo area, was a disciple member belong to Ganjae school. He had been practised filial duty by his father, had studied under Ganjae Jeon-woo and Sim-seock Song byeong-soon. He had studied earnestly and practiced and well spoken through the devotion to his scholarly living. Beacheon had much vividly lived as a member of Ganjae school, he had earnestly prepared lecture opportunities and urged attendance and publication of anthologies. He had honestly followed and investigated Ganjae`s theory-SEONGJONSIMBEA(性尊心卑) and MYEONGDEOCK(明德) focused on JONSEONG(尊性)Beacheon`s poetry world is epitomized as follows;He had kept scholastic consciousness in his heart deeply, not infected with egoistic realism but doing his best learned scholarship. He had well expressed in his poetry as having a fixed purpose in life and bearing the fruits were the best things in his lifetime. He had asserted frequent academic meetings or symposia for innovating stagnant school mood refreshing, and had respected noble learning, humane and honorable writings of the scholars who had practiced academic theory into actual living.

      • KCI등재

        자유주제 : 19~20세기 江右(강우) 지역 艮齋(간재) 門人(문인)의 文藝(문예) 창작과 內含(내함)

        문정우 ( Jung Woo Moon ) 동방한문학회 2014 東方漢文學 Vol.0 No.61

        강우 지역 간재 문인들이 스승 간재가 견지한 守道의 정신을 어떻게 계승해왔는지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문예 창작의 특정한 유형에 심혈을 기울였음을 알 수 있었다. 이는 문예 작품으로 자신들의 의도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므로 그 속에는 일정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들의 문예 창작에 내재되어 있는 의미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간재가 강학에 심혈을 기울인 만큼, 강우 지역 간재 문인들은 스승의 정신을 계승하여 결연한 결집을 위해 契를 결성하였다. 계의 활동 또한 강학을 중심으로 잡았으며, 서로가 성장하는 방향으로서 觀善과 輔仁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내용은 계안의 서문에 드러나 있다. 또한 그들은 인물의 傳記的 자료가 되는 묘갈명, 묘표, 행장, 제문 등을 상대적으로 다수 창작하였다. 인물의 호와 사람됨을 결부시켜 인상 깊게 묘사하거나, 생전 행적의 진실된 면을 포착하거나, 역사적 인물에 비유하기도 하였다. 이는 인물의 행의를 본받고 그들의 정신이 전해지기를 바라였기 때문이었다. 끝으로 그들은 문집과 족보, 파보 등 출판 간행을 시급한 사안으로 여겼다. 선현들의 문집과 유문을 정리하여 간행하는 일과 개인의 문집 간행 사업에 적극적이었다. 인물의 신실한 행의를 중시하여 분량이나 문장의 유려함과 인물의 지명도에 상관없이 출간을 장려하였다. 이것은 정신문화의 기록과 보존을 당대와 후대를 위한 자신들의 책무라 여긴 것이다. Literary men of Ganjae school had been fully kept Ganjae’s asceticism. They had been kept Ganjae’s thoughts in creative arts and writings earnestly and intensively. The significances summarized as following ; They had been made mutual financing association and preserved for the spirits of teacher and progressing the learning. And they had made many creative writings of biographic materials and expected their behaviour’s and spirits transmission and resemblance. Lastly they had been importantly attached to publication of their anthologies and pedigree text. they had thought their duty the preservation of the spiritual and cultural record for descendant.

      • KCI등재

        飛泉 田璣鎭의 생애와 詩世界

        문정우 경상국립대학교 경남문화연구원 2012 남명학연구 Vol.33 No.-

        Beacheon Jeon-gijin who had lived in Uiryeong, Gang-woo area, was a disciple member belong to Ganjae school. He had been practised filial duty by his father, had studied under Ganjae Jeon-woo and Sim-seock Song byeong-soon. He had studied earnestly and practiced and well spoken through the devotion to his scholarly living. Beacheon had much vividly lived as a member of Ganjae school, he had earnestly prepared lecture opportunities and urged attendance and publication of anthologies. He had honestly followed and investigated Ganjae's theory-SEONGJONSIMBEA(性尊心卑) and MYEONGDEOCK(明德) focused on JONSEONG(尊性)Beacheon's poetry world is epitomized as follows;He had kept scholastic consciousness in his heart deeply, not infected with egoistic realism but doing his best learned scholarship. He had well expressed in his poetry as having a fixed purpose in life and bearing the fruits were the best things in his lifetime. He had asserted frequent academic meetings or symposia for innovating stagnant school mood refreshing, and had respected noble learning, humane and honorable writings of the scholars who had practiced academic theory into actual living. 飛泉 田璣鎭은 江右 地域 宜寧에 세거해 온 艮齋學派 문도이다. 부친에게서 行己와 孝를 몸소 익혔으며 부친의 명으로 艮齋 田愚에게 집지하였다. 간재가 학문의 바탕을 갖추라는 뜻을 함축하는 비천이라는 호를 지어주어 篤學에 대해 큰 가르침을 받았다. 배움 뒤의 行誼를 배우고자하는 마음에서 불의에 행동하였던 心石 宋秉珣에게도 가르침을 청하였다. 배움을 가벼이 취하지 않고 학문을 실제에 부응하고자 노력하였으므로 篤學懿行의 생애를 살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비천은 간재학파로서 여러 활동을 하였다. 간재에게 학문의 여러 난해한 문제를 질문하고 답변을 받았다. 학문적 연대를 확장하고 학문에 생기를 불어넣기 위해서는 강론으로 벗을 권면하는 일이 우선이라고 생각하여 간재 문인과 노론에게 시대적 책임을 갖고 소명을 함께 하자는 강론의 자리를 마련하여 참여를 촉구하였다. 간재 문집의 간행에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간재의 ‘性尊心卑’의 학설을 따라 尊性의 요체를 窮究하였다. 학계의 관심사였던 明德에 관한 논의에서도 尊性에 힘을 기울였다. 비천은 명덕을 體와 用으로 나누어 명덕의 體는 性이며, 명덕의 用은 心이라고 하였다. 명덕에 대하여 한쪽으로 치우쳐 이름 붙이지 않고 性을 중심축으로 보아 원리로 여겨 心에게 방향성을 제공하는 해석을 하고 있다. 이것은 간재가 心性은 一物이며 心은 性의 선함을 본받아야한다고 주장한 것에 대하여 충실하게 계승한 것이다. 비천의 시세계는 다음과 같다. 먼저 시대적 혼란에 士意識을 堅持하여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선비의 책무를 다하고자 하였으며 尊周攘夷의 정신과 華夷의 분변에 주력하여 간재 학문의 수호 의지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학문에 임하는 자세로 立志를 우선으로 여기며 입지가 곧 결실로 이어질 수 있는 중요한 대목이라는 견해를 작품에 표현하였다. 강론을 중시하였음을 알 수 있는 시작품을 확인할 수 있다. 진실한 致知를 통해 참된 실천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학문에 대한 믿음과 함께 침체된 분위기를 쇄신하고 학문적 교류와 성장을 위해서 강론의 자리를 중시하는 학구적 열의를 보였다. 그것은 실천적 학행으로 귀의하고자 함이었다. 비천은 인품과 글을 동일시하며 높은 학문과 함께 義行을 겸비한 선비의 글을 훌륭하다고 여겼다. 따라서 비천 자신 또한 공부를 위한 공부가 아닌 실천하여 얻은 학문을 이루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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