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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계만록(松溪漫錄)』의 이본(異本)과 그 자료적 가치

        문정우 ( Jung Woo Moon ) 영주어문학회 2010 영주어문 Vol.20 No.-

        『Songgyemanrok』 is a collection of poetry and historical tales created by Songgye Kweon, Eung-Ihn (1517- ? ). 『Songgyemanrok』 is a valuable resource that portrays the ideal and reality of poetry in the 16th century and highlights the works of Songgye. 『Songgyemanrok』 has three alternative versions: what is included in 『Songgyejip』, what is in 『Daedongyaseung』, and what is in 『Hangogwanoesa』. 『Daedongyaseung』 version has the same arrangement of pieces with 『Hangogwanoesa』 version, but it lacks the last 10 pieces of the first volume. 『Songgyemanrok』 in 『Songgyejip』 is quite different from the other two versions as they were subjectively compiled by compilers. 『Hangogwanoesa』 version is similar to the original, whereas 『Songgyemanrok』 in 『Songgyejip』 The study of different versions must be done before the study of topics. it is hoped that various pieces in 『Songgyemanrok』 are interpreted and shared with th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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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주제 : 19~20세기 江右(강우) 지역 艮齋(간재) 門人(문인)의 文藝(문예) 창작과 內含(내함)

        문정우 ( Jung Woo Moon ) 동방한문학회 2014 東方漢文學 Vol.0 No.61

        강우 지역 간재 문인들이 스승 간재가 견지한 守道의 정신을 어떻게 계승해왔는지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문예 창작의 특정한 유형에 심혈을 기울였음을 알 수 있었다. 이는 문예 작품으로 자신들의 의도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므로 그 속에는 일정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들의 문예 창작에 내재되어 있는 의미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간재가 강학에 심혈을 기울인 만큼, 강우 지역 간재 문인들은 스승의 정신을 계승하여 결연한 결집을 위해 契를 결성하였다. 계의 활동 또한 강학을 중심으로 잡았으며, 서로가 성장하는 방향으로서 觀善과 輔仁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내용은 계안의 서문에 드러나 있다. 또한 그들은 인물의 傳記的 자료가 되는 묘갈명, 묘표, 행장, 제문 등을 상대적으로 다수 창작하였다. 인물의 호와 사람됨을 결부시켜 인상 깊게 묘사하거나, 생전 행적의 진실된 면을 포착하거나, 역사적 인물에 비유하기도 하였다. 이는 인물의 행의를 본받고 그들의 정신이 전해지기를 바라였기 때문이었다. 끝으로 그들은 문집과 족보, 파보 등 출판 간행을 시급한 사안으로 여겼다. 선현들의 문집과 유문을 정리하여 간행하는 일과 개인의 문집 간행 사업에 적극적이었다. 인물의 신실한 행의를 중시하여 분량이나 문장의 유려함과 인물의 지명도에 상관없이 출간을 장려하였다. 이것은 정신문화의 기록과 보존을 당대와 후대를 위한 자신들의 책무라 여긴 것이다. Literary men of Ganjae school had been fully kept Ganjae’s asceticism. They had been kept Ganjae’s thoughts in creative arts and writings earnestly and intensively. The significances summarized as following ; They had been made mutual financing association and preserved for the spirits of teacher and progressing the learning. And they had made many creative writings of biographic materials and expected their behaviour’s and spirits transmission and resemblance. Lastly they had been importantly attached to publication of their anthologies and pedigree text. they had thought their duty the preservation of the spiritual and cultural record for descend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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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논문-의령의 인물과 학문 (2) : 退休(퇴휴) 姜獻之(강헌지)의 生涯(생애)와 志趣(지취)

        문정우 ( Jung Woo Moon )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2013 남명학연구 Vol.37 No.-

        退休 姜獻之는 肅宗 대에 仕宦한 宜寧의 인물이다. 출처의 대절에 돈독하여 당시 권력 장악의 다툼 속에서 결연히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당호를 退休라 짓고 「漁樵問答」을 지어 자신의 뜻을 표출하였다. 본고는 퇴휴가 혼란한 정국에서 居官하면서도 禍를 입지 않고 온전하게 생애를 마칠 수 있었던 점에 착안하여 그의 남다른 지취에 주목하였다. 그 핵심 요인은 바로 퇴휴가 자신의 호로 삼은 退休라는 의미 속에서 찾을 수 있었다. 퇴휴가 忽忽히 퇴처할 수 있었던 이유는 출사하여 유자로서의 포부는 웅대하였으나 功績과 職位에는 마음을 두지 않고 언제든 퇴휴할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즉 인생을 관조하면서 삶의 한 지표였던 퇴휴의 의미가 마음에 각인되어 있었기 때문에 물러날 때를 알고 퇴처할 수 있었다. 퇴휴는 어버이를 天地와 같은 존재로 여기며 부모님께 事親의 예와 자신의 愛敬을 다하고자 하였다. 학문에 뜻을 두었을 때 역사서를 탐독하여 작자의 법도를 터득하고 사리판단을 하는 분별력을 키웠다. 논의가 直截하였고 大義를 우선하여 쉽게 남을 따르지 않았다는 후인의 평가는 史書에서 받은 영향의 일면이다. 퇴휴의 지취를 살펴보면 첫째 일상을 중시한 면모가 드러난다. 訓蒙을 위해 『小學』을 표준으로 내용을 절취하여 실천이 실제에 번거롭지 않도록 「擊蒙家訓」을 지었다. 고원한 이치의 탐구가 아닌 언행을 단속하며 예로써 자신에게 엄격하였던 퇴휴의 일상이 엿보였다. 둘째 지나친 욕심을 경계하면서 閑居하는 삶을 보여주었다. 벼슬살이에서 퇴처하지 않아 재앙을 당한 역사적 인물을 당대 관료들에게 견주며 만족과 知止를 명심하였다. 따라서 만년에 인생을 반추하고 자연과 더불어 한거하며 自足할 수 있었다. 셋째 靜慮를 통해 마음을 수양하며 樂志하는 삶을 추구하였다. 퇴휴는 본디부터 맑고 밝은 본심을 깨닫기 위해 생각을 고요히 하는 것을 우선하였다. 이러한 과정의 수양을 통하여 정신적 지표를 확고히 해 진정으로 즐기는 삶을 추구할 수 있었다. 퇴휴는 어디에 있든 마음의 가짐에 따라 자신이 있는 곳이 桃源이라고 하여 무한한 정신 경계와 은일한 삶을 지향한 자취를 남겼다. Toehyu Gang-heonji was a governmental officer and scholar who had lived in Sukjong dynasty born in Uiryeong. He had given up official post in a state of struggling for power and retired to his native place, made himself Toehyu, his pen name, expressed his mentality through Eochomundap(漁樵問答). His resigning reason was his provision to retire immediate throwing the official post and his meritorious deed. He had esteemed his parent as the heaven and earth. He had brought up his logical and reasonable senses through his exertion to historical books reading. His argument points were severe and clear not following others. Toehyu`s mentality would be simplified as following. The 1st is the respect of normal livings. As he had written Gyeokmonggahun(擊蒙家訓) from the theory of Sohak(小學), he had not thought much of profound truth but daily living, saying, action and practice. The 2nd is his keeping away of avarice but leading quiet living, in his late year he had enjoyed the nature, stop and ceased life. The 3rd is his mind cultivation, self-possessed calm and cool living to perceive his real intention. He had enjoyed and pursued his mental indi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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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논문-의령의 인물과 학문(1) : 飛泉(비천) 田璣鎭(전기진)의 생애와 詩世界(시세계)

        문정우 ( Jung Woo Moon )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2012 남명학연구 Vol.33 No.-

        飛泉 田璣鎭은 江右 地域 宜寧에 세거해 온 艮齋學派 문도이다. 부친에게서 行己와 孝를 몸소 익혔으며 부친의 명으로 艮齋 田愚에게 집지하였다. 간재가 학문의 바탕을 갖추라는 뜻을 함축하는 비천이라는 호를 지어주어 篤學에 대해 큰 가르침을 받았다. 배움 뒤의 行誼를 배우고자하는 마음에서 불의에 행동하였던 心石 宋秉珣에게도 가르침을 청하였다. 배움을 가벼이 취하지 않고 학문을 실제에 부응하고자 노력하였으므로 篤學懿行의 생애를 살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비천은 간재학파로서 여러 활동을 하였다. 간재에게 학문의 여러 난해한 문제를 질문하고 답변을 받았다. 학문적 연대를 확장하고 학문에 생기를 불어넣기 위해서는 강론으로 벗을 권면하는 일이 우선이라고 생각하여 간재 문인과 노론에게 시대적 책임을 갖고 소명을 함께 하자는 강론의 자리를 마련하여 참여를 촉구하였다. 간재 문집의 간행에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간재의 ‘性尊心卑’의 학설을 따라 尊性의 요체를 窮究하였다. 학계의 관심사였던 明德에 관한 논의에서도 尊性에 힘을 기울였다. 비천은 명덕을 體와 用으로 나누어 명덕의 體는 性이며, 명덕의 用은 心이라고 하였다. 명덕에 대하여 한쪽으로 치우쳐 이름 붙이지 않고 性을 중심축으로 보아 원리로 여겨 心에게 방향성을 제공하는 해석을 하고 있다. 이것은 간재가 心性은 一物이며 心은 性의 선함을 본받아야한다고 주장한 것에 대하여 충실하게 계승한 것이다. 비천의 시세계는 다음과 같다. 먼저 시대적 혼란에 士意識을 堅持하여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선비의 책무를 다하고자 하였으며 尊周攘夷의 정신과 華夷의 분변에 주력하여 간재 학문의 수호 의지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학문에 임하는 자세로 立志를 우선으로 여기며 입지가 곧 결실로 이어질 수 있는 중요한 대목이라는 견해를 작품에 표현하였다. 강론을 중시하였음을 알 수 있는 시작품을 확인할 수 있다. 진실한 致知를 통해 참된 실천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학문에 대한 믿음과 함께 침체된 분위기를 쇄신하고 학문적 교류와 성장을 위해서 강론의 자리를 중시하는 학구적 열의를 보였다. 그것은 실천적 학행으로 귀의하고자 함이었다. 비천은 인품과 글을 동일시하며 높은 학문과 함께 義行을 겸비한 선비의 글을 훌륭하다고 여겼다. 따라서 비천 자신 또한 공부를 위한 공부가 아닌 실천하여 얻은 학문을 이루고자 하였다. Beacheon Jeon-gijin who had lived in Uiryeong, Gang-woo area, was a disciple member belong to Ganjae school. He had been practised filial duty by his father, had studied under Ganjae Jeon-woo and Sim-seock Song byeong-soon. He had studied earnestly and practiced and well spoken through the devotion to his scholarly living. Beacheon had much vividly lived as a member of Ganjae school, he had earnestly prepared lecture opportunities and urged attendance and publication of anthologies. He had honestly followed and investigated Ganjae`s theory-SEONGJONSIMBEA(性尊心卑) and MYEONGDEOCK(明德) focused on JONSEONG(尊性)Beacheon`s poetry world is epitomized as follows;He had kept scholastic consciousness in his heart deeply, not infected with egoistic realism but doing his best learned scholarship. He had well expressed in his poetry as having a fixed purpose in life and bearing the fruits were the best things in his lifetime. He had asserted frequent academic meetings or symposia for innovating stagnant school mood refreshing, and had respected noble learning, humane and honorable writings of the scholars who had practiced academic theory into actual liv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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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0세기 강우(江右) 문인(文人)의 김강산(金剛山) 유람(遊覽)과 한시(漢詩)

        문정우 ( Jung Woo Moon ) 동방한문학회 2011 東方漢文學 Vol.0 No.48

        본 연구에서는 19~20세기 강우 문인의 금강산 유람의 목적과 금강산 한시의 情景 표출양상을 살펴보았다. 19~20세기 강우 지역 문인에게 금강산 유람은 흥취와 풍류의 목적이 아니라 계획을 세우고 결단하여 찾아가는 소중한 경험의 국토 순례였다. 금강산 유람의 또 다른 의미는 遊山과 함께 서남쪽 바다가 아닌 망망대해의 동해 바다를 함께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觀海의 결과 정신 경계를 드넓혀 우주적 이치를 탐험하고자 하는 지적자극까지 받았다. 금강산을 유람하고 지은 한시의 정경 표출 양상은 다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금강산의 아름다움과 웅대한 규모 앞에 인간의 왜소함, 슬픔과 상실, 선계에 대한 동경, 탈속지향적 정신세계보다는 바탕과 문식의 조화를 떠 올리며 자연의 이치에 몰입하여 순수하게 감탄하는 감상법을 취하고 있었다. 둘째 금강산 한시가 동적 심상이 주조를 이루는 반면 19~20세기 강우 문인의 금강산 한시에는 靜寂의 요소가 근저에 자리 잡고 있었다. 靜的인 기반 위에 動的 심상을 사용하여 비애의 감정으로 흐르거나 격한 표현에 그치지 않았다. 셋째 19~20세기 강우 문인의 금강산 한시에는 자아성찰과 反求諸己의 정신이 담겨 있었다. 그 이유는 강우 문인이 금강산을 찾아 나선 것은 결국 금강산이 아니라 자신을 탐험하고 바탕을 마련하기 위해 떠난 여행이었기 때문이었다. 본 연구를 통하여 성취한 문학적 의의는 다음과 같다. 19~20세기 강우 문인의 한시의 정경 표출은 금강산이라는 객체에 치우친 것이 아니라 창작 주체에 초점이 맞추어져 표출되어 있는 점을 확인하였다는 것이다. 또한 금강산 한시의 표출 양상에서 일정한 전형을 발견할 수 있었으며 그러한 특색은 강우 문인 사이에 상호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있었다. 이 점은 19~20세기 강우 문인의 금강산 한시가 가지는 중요한 국면이라고 할 수 있다. The purpose of Gangwoo scholar`s Mt. Geumgang sightseeing tour in 19~20th centuries is not for enjoying the scenery but for having the important expeditionary experiences of majestic feature of East-sea. They are encouraged finally great reality of universe and grand psychical world. The main descriptions of their poetry from Mt. Geumgang sightseeing are summarized as following 3 contents; The first is the genuine self-effacement from the scanty human being, disappointment and despair of living, yearning utopia, feeling natural harmony and reality as meeting with the holly and wonderful Mt. Geumgang scenery. The second is in general the image of Gangwoo scholar`s poetry standing upon the silent, emotional passion but not falling into mournful and violent expressions. The third is the self-reflection spirit in their poetry of the Gangwoo scholar`s Mt. Geumgang sightseeing planning for the purpose of intensive self exploring pro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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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산(愚山) 한유(韓愉)의 『분양악부(汾陽樂府)』에 드러난 현실인식(現實認識)과 사의식(士意識)의 지향(志向)

        문정우 ( Jung Woo Moon ) 영주어문학회 2011 영주어문 Vol.21 No.-

        『Bunyangakboo』 is Youngsaakboo written by Woo-san Hanyoo based on the historic stories in Jin-ju area. This study has researched the recognition of realities and scholarly attitude in 『Bunyangakboo』. 『Bunyangakboo』 expresses Woo-san`s the recognition of realities. It was aimed at emulating the good points and reflecting the undesirable things. It criticized a mere show without reality. And it shows Woo-san`s the scholarly attitude. Woo-san considerably modeled and was proud of feat and the person who did not desire wealth and honor. It summarized and got the core of scholarship and achievement of Nam-myong Jo Shik and his disciples. 『Bunyangakboo』 is somewhat different with Youngsaakboo of other areas in that it expresses the scholarly attitude which stimulates the duty of scholars in the time of a crisis and per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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