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검색결과 좁혀 보기

      선택해제
      • 좁혀본 항목 보기순서

        • 원문유무
        • 원문제공처
        • 등재정보
        • 학술지명
        • 주제분류
        • 발행연도
          펼치기
        • 작성언어
        • 저자
          펼치기

      오늘 본 자료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더보기
      • 무료
      • 기관 내 무료
      • 유료
      • KCI등재

        한국정치사상 연구의 현황과 과제

        부남철(Pu Nam Chul)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 2002 한국동양정치사상사연구 Vol.1 No.1

        한국정치사상은 있는가? 그간 정치학계에서는 정치학의 현황과 과제를 논의할 때마다 한국정치사상 연구와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1970년대 이후 학자들의 개인적인 노력에 의해 한국정치사상 분야가 개척되었고 1980년대를 거쳐 1990년대 이후에는 한국정치사상을 전공하는 학자들이 급증했다. 이들에 의해 다수의 연구 논문이 각종 학술지에 게재되었고 전문 연구서도 활발하게 출판되었다. 현재 전문 학회가 설립되었을 정도로 한국정치사상 분야는 양적으로 성장했다. 그렇지만 그 연구대상이 주로 전통사상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아직도 한국정치사상 분야가 학문적으로 철학이나 역사학과 어떻게 다른지 그 차별성을 찾기 어렵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심지어는 이런 연구가 정치학이냐는 질문을 받기도 한다. 문제는 결국 한국정치사상 분야의 학문적 정체성에 관한 것인데, 학계에서는 지금까지 개별적으로는 한국정치사상 연구가 심도 있게 진행되었지만 그런 성과를 학문적으로 의미 있게 통합하는 공동의 노력은 부족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정치사상사 전공학자들 사이에서 공유하는 연구 대상, 범위, 방법 등에 대한 인식 형성이 미약했다. 한국정치사상의 연구 본령과 방법이 고정된 것은 아니지만, 현단계에서 한국정치사상의 연구현황과 방법에 관해 논의했던 글에서 제기되었던 쟁점을 살펴보면서 한국정치사상은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활발한 논의의 필요성을 제기해본다.

      • KCI등재
      • KCI등재

        동양정치사상에서의 진보

        김정호(Kim Jung Ho) 한국정치사상학회 2009 정치사상연구 Vol.15 No.2

        이 글은 한국의 전통적 진보사상의 특성을 규명하려는 것이다. 필자는 논문에서 한국정치사상에서의 진보란 ‘정치사회적 차별에 대한 저항’과 ‘평등적 정치사회공동체의 지향’을 내용으로 한 것이었음을 밝혔다. 구체적으로 기존의 정치체제가 차별과 위계를 기반으로 하는 봉건적 특성을 지닌 것이었기에 정치 목표상 그것을 고수하려는 모든 사상적 시도를 ‘보수’라고 본다면 그와 반대되는 ‘반봉건적’ 태도를 진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나 ‘반봉건적’이라고 할 때 그것은 기존의 정치체제적 유형, 즉 군주제의 완전한 타파를 통한 새로운 정치체제의 창출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최소한 19세기 후반 이전까지 한국정치사상에서 새로운 정치체제는 구상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단지 존재하는 정치구조 내에서 동아시아 전통의 평등적 공동체 구현의 가치를 창출하고 그것을 실현하려는 정치사상적 노력의 형태로서 존재했을 뿐이다. ‘평등적 공동체 관념의 정치적 현실화가 가능하지 못했지만 그것을 지속적으로 지향해 왔던 것’이 한국의 진보적 정치사상의 중요한 보편적 특성이었다. 실학사상(實學思想)-동학사상(東學思想)-개화사상(開化思想)으로 이어지는 한국적 진보사상의 흐름은 이러한 점을 잘 보여주는 것이었다. 한국의 진보적 정치이념은 비록 당시의 정치사회질서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는 못했지만 이후 서구 정치이념과의 만남을 통해 ‘봉건성’의 실질적 탈피를 가능케 하는 내적 요소로 작용했다. 거기에는 묵자와 노장사상과 같은 동아시아 전통의 진보사상, 서구 과학지식을 통한 인식의 확대, 근대 시민권 사상의 수용, 그리고 사상가들의 독창성이 토대가 되었다. This paper is to analyze the characteristics of the traditional progressive political thought in Korea. The term of 'progressive' in Korean political thought meant 'resistance to the existed socio-political discrimination' and ‘intention to construct an equal socio-political community.' If we think 'conservative' as 'feudal' in the modern period, it is right to say that an antifeudal attitude is progressive. However, the antifeudal attitude in Korean progressive political thought didn't direct to create a new political system through abolishing and replacing the existed monarchy. It was due to the fact that there had been no idea of a new political system till late 19th century in Korean political thought. There existed only thinkers' endeavor to create a equal and communal value and realize it against the exited huge and powerful discriminated system. It was an universal characteristic of the traditional progressive political thought in Korea. The characteristic was well shown from Silhak thought to Gaehwa thought via Donghak thought as Korean progressive thoughts. The Korean progressive thoughts acted as a main inner factor to break down the feudal monarchy after late 19th century although they couldn't have a power to fundamentally change the dominant conservative socio-political system at that time. And that was based on existence of the traditional East Asian progressive political thoughts such as Mohism and Taoism, enlargement of recognition through the Western knowledge, acceptance of the modern civil thoughts, and originality of the Korean progressive political thinkers.

      • KCI등재

        한국 사회과학의 정체성과 한국정치사상사 연구

        이택휘(LEE TAIKWHI)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 2004 한국동양정치사상사연구 Vol.3 No.1

        오늘날 한국 학계의 상황은 “기초학문의 위기”에 처해있다. 대학이 “실용성”위주의 상업주의적 실용주의 노선에 편향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한국을 대상으로 한 기초여구는 외면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사회과학적 인식의 존재구소성은 역사인식이라는 한계를 전제로 하지 않을 수 없다. 1950년대까지 한국 정치학의 중심은 주로 정치제도, 정치사상사, 정치사였으나, 1960년대 이후에는 “정치학의 과학화”를 표방하고 실증적ㆍ분석적 방법을 통한 과학적 이론체계의 구성에 노력해 왔다. 그러나 그 긍정적인 목적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가치관계적 연구대상들을 제외시킴으로써 정치학의 연구영역을 심각하게 축소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그런데 정치사상사 연구는 정치학에 기본적인 개념과 사색적 능력을 제고시켜 주는 것이다. 특히 한국정치사상사 연구는 한국 사회과학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 필요불가결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 KCI등재
      • KCI등재
      • KCI등재

        한국정치사상 연구를 위한 틀

        김한식(KIM HAN-SHIK)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 2004 한국동양정치사상사연구 Vol.3 No.1

        거의 불모지라고 할 수 있는 한국정치사상 연구가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우선 연구의 틀이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그동안 일부 연구의 대상과 방법에 관한 논의가 있었다. 이러한 성과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서양 근대적 학문방법론에만 매달리지 말고 우리의 상황에 맞는 접근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우선 관련되는 인문분야의 업적을 계속 쌓고, 자료의 정리보완에 깊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연구의 대상은, 인간관, 신관, 자연관에 함축된 정치적 상관관계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고학, 역사, 언어, 민속 그리고 종교 등 여러 분야에 깊은 관심이 필요하면, 토템이나 신화 등에 관한 연구는 고대의 정치사상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한국정치학 연구방법론을 설정할 수 있는 기준으로 시간의 문제, 주체의 문제 그리고 상황과 사상의 관련성 문제를 들 수 있으며, 이러한 기준에 따라 여러 가지 연구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이 중에서 사상가를 중심으로 하는 연구방법과 시대사 중심의 연구방법 그리고 주된 사상 중심의 연구방법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이들 연구방법은 각각 장단점이 있으므로 연구대상의 성격에 따라 적절히 혼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현대 서구중심의 사상의 흐름과 대비시켜 한국인의 자기 확인, 창의성의 제고, 자기발전의 동력제공이라는 정치사상의 바탕을 마련하는 지혜를 찾아야 할 것이다. 다양한 사고를 통해 자료의 부족에 따른 공백을 메우며 폭넓은 안목을 갖출 필요가 있다. 이러한 노력은 「한국 정치사상」 통권을 시도하는 하나의 길잡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 KCI등재

        孫中山과 中國 民主憲政의 發展

        邱榮擧(CHIU RONG-JEO)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 2002 한국동양정치사상사연구 Vol.1 No.2

        21세기 초를 살고 있는 우리가 동양 근대사와 정치지화에 대해 함께 토론한다는 것은 실로 그 의미가 크다. 과거 19. 20세기 동양 근대사에서 중요한 정치 변혁과 정치 변혁 중 중요한 역할을 한 정치지화의 정치적 성과의 중요성, 공헌 및 영향력이 어떠한 지를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현재 동양 각국의 정치 지도자들이 자신의 국가 발전을 추구함에 있어 과거 정치 선배들의 정치사상과 정치성과를 참고하고 그 당시 국가 발전사, 인류 발전사에서의 역사적 위치를 이해함으로써 지금의 국가발전 혹은 인류발전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근대중국은 내우외환 속에서 서방세력이 압력을 가하고 사상이 충돌하는 대변혁의 시기를 겪었다. 당시 중국의 조정과 재야 인사들은 중국 정치의 대변혁을 위해 중요한 정치적 영향력을 가졌던 정치운동을 펼쳐나갔다. 洋務運動(自强運動), 太平天國運動, 變法運動(維新運動), 立憲運動, 辛亥革命, 5ㆍ4運動등이 그것이다. 손중산(孫中山)은 이런 신구 정치사조와 정치변환의 대시대 속에서 혁명과 건국을 영도한 정치지다로서 전 중국의 국가발전을 어떻게 추진해야 할지를 항상 고민하였다. 그의 정치사상의 핵심은 간단히 말해서 三民主義(民族主義, 民權主義 및 民生主義)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三民主義와 五權憲法이며, 五權憲法은 바로 三民主義 특히 民權主義에 뿌리를 둔다. 五權憲法은 손중산의 三民主義가 정치제도에 대한 구체적 계획이라 할 수 있는데 그는 그 정치사상을 헌법 제정을 거쳐, 구체적인 정치제도로 실현시켜, 중국을 民主憲政 국가로 하루 빨리 발전시키고자 하였다. 때문에 손중산의 정치사상에는 民主憲政과 관련된 부분이 매우 중요하며 그 民主憲政 사상은 주로 三民主義의 民權主義와 五權憲法을 가리킨다. 아울러 혁명 건국 3단계(軍政, 訓政, 憲政)를 제기했는데, 특색 있었고 기여한 바가 많았다. 이는 현재 대만 즉 中華民國(1912년 건국, 1945년 10월 25일 대만 통치 시작. 1949년부터 현재까지 사실상 대만 통치)과 중국 대륙 즉 中華人民共和國(1949년 성립, 1949년부터 현재까지 대만을 통치하지 못함)의 국가발전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어 연구할 가치가 있다고 하겠다. 본문의 연구제목은 ‘손중산과 중국 民主憲政의 발전’으로 주된 연구동기는 손중산이 현재 대만인 중화민국과 중국 대륙인 중화인민공화국 모두에 중대한 정치적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주 연구목적은 손중산과 臺灣海崍兩岸의 民主憲政 발전의 관계 여부를 이해하기 위함이다. 연구 문제는 다음과 같다. 1.손중산의 民主憲政 사상은 무엇인가? 2.각종 유형의 五權憲法制를 어떻게 해석 할 것인가? 3.손중산과 兩岸의 民主憲政 발전에는 관계가 있는가? 이 연구 제목과 같은 문제를 다룬 연구 문헌이 상당히 많다. 중화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 모두 관련 연구에서 상당한 성과가 있었고 기타 대한민국, 일본, 미국 등과 같은 민주국가도 적지 않은 결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각 종 유형의 五權憲法制에 대해서는 줄곧 그 차이를 구별할 수 없고 심지어 五權憲法制를 總統制, 內閣制, 委員制, 雙首長制 등 중앙정부 체제와 같이 놓고 평가해 혼란과 오해를 낳았는데 이것이 가장 큰 결점이라 하겠다. 본문은 연구 접근(Approach)을 「외재적 연구 접근」(External Approach)과 「내재적 연구 접근」(Internal Approach)으로 나누었고 연구방법 (Method)은 문헌 분석법과 비교연구법을 채택하였다. 본문의 연구 성과는 다음과 같다. 1. 중국 근대정치 변혁 속의 수많은 저명한 정치지도자 중에서 손중산은 정치사상을 내놓고 정치활동을 펼쳤으며 나아가 정치제도에 중대한 변혁을 낳은 걸출한 정치지도자다. 2. 손중산의 民主憲政사상의 내용은 상당히 다양하고 풍부하며 특색을 갖추었고 공헌한 바가 크다. 3. 손중산이 창시한 五權憲法制와 그후 발전한 다른 유형의 五權憲法制는 다소 차이가 있다. 필자는 “五權憲法制의 原形과 變形”이라는 새로운 견해를 가지고 각종 유형의 五權憲法制를 효과적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소위 五權憲法制의 원형은 손중산이 구상한 五權分立 구도의 憲政體制만을 지칭한다. 그후 손중산의 五權憲法 구도를 참작하여 연구해 발전된 오권분립 구도의 헌정체제는 五權憲法制의 변형이라고 칭한다. 4. 정치학, 헌법학적으로 중앙정부 체제를 논할 때 五權憲法制를 總統制, 內閣制(혹은 議會內閣制), 委員制, 雙首長制(혹은 混合制나 半總統制)등과 혼동하면 안되나 五權憲法制와 三權憲法制는 같은 선상에 놓고 말할 수 있다. 5. 손중산의 民主憲政사상은 현재 대만해협 양안의 民主憲政 발전과는 뗄 수 없는 관계이며 특히 대만 즉 중화민국의 民主憲政 발전에는 더욱 큰 영향을 주었다. 손중산의 정치사상 중 民族主義, 民生主義, 國體論, 革命論, 黨軍論, 黨國體制 등도 현재 중화인민공화국에 의미와 영향이 크고 공헌한 바도 많지만, 民主憲政 사상과의 관련성은 적으므로 본문에서는 다루지 않았다. 한 국가가 君主 중심의 專制政治體制에서 國民 중심의 民主政治體制로의 전환은 쉽지 않은 상당히 어려운 과정이다. 손중산의 정치사상은 모든 大중국의 발전 혹은 華僑圈의 발전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고 특히 손중산의 民主憲政사상이 사실상 현재의 대만 즉 중화민국에 미친 영향은 절대적이다. 그 원인은 中國國民黨이 집권했던 중화민국은 대만을 반세기 이상 효율적으로 통치했는데 손중산은 중국국민당의 總理이자 중화민국의 國父였기 때문이다. 대만은 중국국민당이 집권하는 중화민국 통치 하에 있어 三民主義와 五權憲法을 대대적으로 선양하고 실천에 옮겼다. 비록 이론과 실제와는 거리가 있고, 중화민국이 실시했던 民主憲政과 오늘날 중화민국 헌법과 수정 조문 상의 규정에도 차이가 있지만 五權分立 구도의 헌정체제 및 威權政治體制에서 民主政治體制로의 전환은 현재의 중화민국이 진정한 민주국가가 되도록 만들었다. 대만이 民主憲政을 하게 된 것은 대만 국민과 수많은 대만 정치지도자들의 공헌이 컸던 것 외에도, 손중산의 民主憲政사상과民主憲政 발전에 영향을 끼치고 많은 공헌을 했기 때문이다. 고로 향후 대만해협 양안의 발전에 있어, 중국 대륙이 소위 社會主義國家 民主主義의 중화 인민공화국이든 대만의 소위 資本主義國家 民主主義의 중화민국이든 간에 民主憲政을 이루려면 각 민주주의 국가 정치 지도자들의 民主憲政에 관한 주장을 연구하고 참고해야한다. 여기에 손중산이 중국의 民主憲政 발전에 공헌한 바는 바로 우리가 고려하고 참고할 만한 가치가 있다.

      • KCI등재

        존 포칵(J.G.A. Pocock)의 정치사상사 연구에 대한 비판적 논의(Ⅰ)

        유종선(Ryu Jong Sun) 한국정치사상학회 2005 정치사상연구 Vol.11 No.2

        본 연구는 정치사상사 기술방식과 연구의 목적에 관한 존 포칵의 주장과, 그의 주장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들을 논구한 것이다. 그는 정치사상시를 연구하고 기술하는데 있어 소위 랑케주의라고 하는 순수 역사주의적 태도와 방법을 지향한다. 그의 이러한 입장은 스트라우스(Leo Strauss) 등이 주장하는 바 ‘정치사상사는 곧 정치철학’이라는 입장과 뚜렷이 구별된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사상사 연구의 목적에 관해 스트라우스 등이 주장하는 ‘철학주의’를 먼저 논의하고, 이를 전체적 논의의 배경으로 삼고자 했다. 본론에서는 소위 랑케주의적 정치사상사 기술의 의미, 목적, 현재적 합의, 역사와 철학의 대립성 등의 주제들에 대해 포칵과 그의 비판자들의 의견을 비교 검토하였다. 특히 순수한 랑케주의적 정치사상사 연구가 정치사상사라는 학문의 본래 목적에 비추어 볼 때 무슨 의미를 가지는가, 사상의 역사적 의미를 그가 주장하는 것처럼 배타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라는 두 가지 비판적 질문들을 제기하고, 이에 대한 포칵의 반론 및 이의 정당성을 검토하였다. 결론에서는 포칵의 역사철학이 정치사상사 연구 분야에 끼친 공헌과 한계, 그리고 한국에서의 정치사상사 연구에 주는 몇 가지 시사점들을 논의했다. This is a critical review on John Pocock's philosophy of the history of political thought, focusing on his discussion on the purposes of studying the history of political thought. Pocock insists upon a purely histocal - Rankean, as he calls it - attitude and methods of studying the history of political thought. His position sharply contrasts with that of . philosopher historians' like Leo Strauss. There are two critical questions involved: first, what is the point of studying the history of political thought in terms purely Rankean, considering the dominantly practical aspects of the discipline?; secondly, could it be justified that Pocock defines the meaning of historicity in such a way as to exclude other historiographies as pseudo-historical? Pocock's response to these questions and his own answers will be critically reviewed. Lastly, the contribution of his philosophy to the academic field of the history of political thought, its limitations, and its implications for the Korean historians and philosophers of political thought will be discussed as concluding remarks.

      • KCI등재

        신라 하대의 불교와 정치

        박희택(Park Hee-Taek)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 2008 한국동양정치사상사연구 Vol.7 No.2

        이 논문은 신라 하대의 불교와 정치의 관계를 다룬 것이다. 이를 위하여 신라 중대의 불교와 정치의 관계를 영향사적 맥락에서 먼저 검토하였다. 신라 중대의 전제 왕권을 뒷받침한 정치이데올로기는 화엄사상과 법상종 및 정토사상 등을 들 수 있다. 정토사상 가운데 미륵상생사상과 미타사상은 신라 중대의 귀족과 일반민중의 의지처로 기능하였다. 신라 하대의 불교와 정치의 관계는 이러한 영향사 아래 전개되었다. 진골귀족의 반대운동으로 전제왕권이 해체되고 귀족연합정치가 전개된 정치변동은, 화엄사상이나 법상종같은 복잡한 교리가 아닌 개인주의적 성격을 지니는 선종과 현세지향적인 미륵하생사상을 선호하게 하였다. 미륵하생사상은 법상종과 연결된 것이므로 법상종 또한 신라 하대의 정치이데올로기로 여전히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신라 하대의 불교와 정치의 관계에서 반드시 하나 더 주목해야 할 사상은 밀교(비로자나불사상)이라 할 것이다. 통일신라 9세기 이후 신라 전역에 조성된 비로자나 불상이 그 반증이 된다. 이것은, 1) 신라 하대의 무상한 정치현실을 넘어서 영원광명을 지향하는 측면에서 빛의 부처님인 비로자나불을 모셨다는 점, 2) 신라불교사상사의 전개상 신라 하대는 화염불교에서 밀교로 나아가고 있었다는 점, 3) 신라 하대의 사상계가 화염불교보다는 밀교에 친근성을 보였다는 점 등과 결부된다. 신라 하대의 신라인들은 스스로 빛의 부처님이 되어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였다. 분절된 정치를 사상적으로 통합한 변증은 선종이나 미륵하생사상, 법상종이 아닌 밀교의 비로자나불사상에 의해 이루어졌다. This paper treats of the relationship of Buddhism and politics of Silla Hadae(下代). In order to study this subject, I examine in advance that of Buddhism and politics of Silla Jungdae(中代). Political ideology that supporting despotic regime of Silla Jungdae is Hwaeomsasang(華嚴思想) and Beobsangjong(法相宗) and Jeongtosasang(淨土思想) and so on. Political change of Silla Hadae, that is, dissolution of despotic regime and development of aristocracy brought on the preference for Seonjong(禪宗) and Mireukhasaengsasang(彌勒下生思想). For all that, we should take notice of Esoteric Buddhism(Vairocana Buddha thought). Because, Vairocana Buddha of Esoteric Buddhism is Buddha of light who console people exhausted due to politics with rays, Main stream of Silla Hadae is not Hwaeomsasang but Esoteric Buddhism, Seonjong runs through Esoteric Buddhism. People of Silla Haedae had intention to get over the limit through being Buddha of light themselves. The dialectic of segment and integration of Silla Haedae could be realized by Vairocana Buddha thought of Esoteric Buddhism.

      연관 검색어 추천

      이 검색어로 많이 본 자료

      활용도 높은 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