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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혁 한경직목사기념사업회 2008 한경직목사기념사업회 세미나 Vol.2008 No.2
나는 지난 한 달여 동안 한경직 목사의 인간과 목회자의 면모를 살피고 나서 무한한 감동과 은혜를 받았음과 아울러 처절한 고뇌와 부끄러움을 느꼈다. 한경직 목사는 분명히 “한국교회에 내리신 하나님의 귀한 선물”(손봉호 교수)이었고 “20세기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성자’(정진경 목사)였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는 너무나 그분과는 거리가 멀고 너무나 그분과는 정 반대의 방향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부끄러움을 무릅쓰면서도 감사하고 또 감사한다. 주기철, 손양원, 박윤선, 한경직 목사님들과 같은 분들을 우리들의 사표로 아니 우리들의 ‘양식’으로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또 감사할 따름이다. 40여 페이지(A4)에 담은 내용을 여기 한 페이지 반으로 줄여본다. 목회자는 하늘에서 내려오지 않고 이 땅의 역사 안에서 만들어진다. 수많은 고난과 약함과 실패와 좌절을 경험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 안에서, 그리고 한 인간의 진솔한 참회와 자기 부정과 헌신의 과정안에서 하나의 목회자로 만들어진다. 목회자는 재능도 기술도 학문도 아니다. 목회자는 역사 안에서 하나님의 손길 안에서 그리고 자기 부정과 헌신의 결단 안에서 만들어진 하나의 인간이요 하나의 인격이다. 인감 됨과 인격 됨이 없는 목회자는 참된 목회자는 아니다. 종교인이나 연설가는 될 수 있고 사업가나 연출가는 될 수 있지만 진정한 목회자는 될 수 없다. 우리는 20세기 한국의 가장 위대한 목회자요 설교자인 한경직 목사의 인간의 면모와 목회자의 면모를 살펴본다. 그는 첫째, 고난과 약함의 사람이었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한 평생 수많은 고난을 겪으면서 인간의 연약함과 무력함을 절감한 분이었고 또 자기 자신이 얼마나 연약하고 무력한 존재임을 체험한 분이었다. 그는 두려워하고 절망했으며 때로는 넘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연약함이 오히려 그를 진정한 목회자로 만든 비결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둘째, 참회와 회개의 사람이었다. 그는 평생 죄를 고백하는 참회와 회개의 사람으로 살았다. 자기의 죄는 물론 다른 사람들의 죄까지 젊어지고 고백하는 참회자로 살았다. 그는 셋째, 기도와 눈물의 사람이었다. 그는 평생 울었다. 그는 자신과 민족의 고난과 약함과 아픔과 절망을 느끼면서 처절한 눈물의 기도를 드렸다. 이제 목회자 한경직의 면모를 살펴본다. 목회자 한경직을 논할 때 목회의 방법이나 기술이나 업적이나 성공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목회자 한경직의 삶의 자세와 인격과 비전에 관심을 두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는 목회를 성공이나 실패의 개념으로 판단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하며 목회자는 충성된 예수님의 종이요 그의 성품을 닮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첫째, 설교와 전도를 쉬지 않은 복음전파의 목회자였다. 그는 설교하기 위해서 그리고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처럼 한 평생 설교하며 복음을 전파한 말씀과 복음의 목회자였다. 그는 둘째, 돌봄을 쉬지 않은 사랑과 봉사의 목회자였다. 그에게 있어서 봉사는 복음의 생활화요 신학의 실천이었다. 그는 가난하고 약한 자 그리고 원수들에게까지 사랑을 베풀며 시는 것이 인간의 가장 가치 있고 보람된 삶이라고 강조하며 그렇게 살았다. 그는 세째, 화평을 추구한 협력의 목회자였다. 그는 교회 안과 밖에서 온유와 겸손을 바탕으로 화평을 이루어간 화평과 협력의 목회자였다. 그는 넷째, 민족과 세계를 품은 역사의식의 목회자였다. 그는 다양성 기운데서 조회를 이루는 역사적 안목의 비결을 지니고 폭 넓은 사고와 비전을 가지고 세계를 그의 활동 무대로 세계를 품으며 살았다. 결국 한경직 목사는 삶이 깨끗한 청빈의 사람으로 살았다. 한경직 목사가 2000년 4월 19일 오후 1시 15분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우리 곁을 떠났을 때 세상은 입을 모아 그를 가리켜 “청빈의 사람”이었다고 말하며 그를 칭송했다. 나는 한경직 목사의 삶을 살피고 나서 처절한 고뇌를 느낀다. 위대한 참목자 한경직 목사를 존경하고 예찬하고 흠모하는 것이 도대체 나와는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진실도 없고 겸손도 없고 청빈도 없고 참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