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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淵泉翁遊山錄」懸板을 통해 본 松廣寺 역사의 一面 : 懸板의 사료적 가치 照明을 위한 일고찰
申大鉉 위덕대학교 박물관 2004 佛敎考古學 Vol.- No.4
佛敎史, 또는 寺刹史 硏究에 있어서 懸板(plaque)은 重要한 價値를 지니고 있다. 懸板에는 殿閣(halls)의 建立 또는 重修, 佛象·佛畵 등의 造成과 修理 等 寺中의 重要한 事實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淵泉翁遊山錄」懸板은 朝鮮時代 後期의 代表的 文人이자 官僚 가운데 한 사람인 洪奭周(1774~1842)가 1828年 全羅南道 順天 松廣寺를 다녀와 著述한 것으로, 一種의 紀行文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여기에는 當時 松廣寺의 寺刹規莫와 伽藍配置, 그리고 歷史와 傳說 및 文化財 等이 包含되어 있어 松廣寺 歷史硏究에 좋은 資料가 된다. 따라서 이 懸板을 通해 그 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19世紀 初中葉의 松廣寺 歷史의 一面을 考察할 수 있다. 特히 이 懸板은 作者가 佛敎 또는 松廣寺와 直接的 關聯이 없는 著名한 文人이라는 點에서 이 懸板의 客觀性을 提高시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單純한 紀行文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史料的 價値가 높은 것이다. 이 「淵泉翁遊山錄」를 通하여 寺刹에 傳해지는 懸板이라는 資料는 寺刹史 硏究에 貴重한 것임을 알 수 있다. 現在 寺刹 懸板의 保有現況이라든지 統計 等이 거의 全無한 現實에서 이러한 寺刹 懸板에 對한 注目이 반드시 必要한 理由가 여기에 있다. In studying a history of Buddhism or Buddhist temple, the plaque possesses great value. Because the plaque comprises the important facts of the temple such as construction, repairing, making Buddhist image and so on. The plaque, "Yeoncheonongyusannok" written by Hong, Seokju(1774-1842) who was a renowned Confucian scholar and official during the late Joseon period after visiting Songgwangsa in Suncheon, Jeollanam-do, is a kind of travel comprising the size and arrangement of Songgwangsa, its history and legend, and its cultural properties. In conclusion, the plaque is a very important material for studying a history of Buddhist temple.
申大鉉 위덕대학교 박물관 2005 佛敎考古學 Vol.- No.5
眞影이란 승려의 초상화를 말한다. 진영의 辭典的 定義는 '사람의 얼굴을 주로 나타낸 사진 또는 그림'으로, 반드시 승려의 초상화에 국한되는 단어는 아니다. 하지만 眞影이 숭려의 초상화만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 것은 이미 고려시대부터이며, 적어도 현재는 현실적으로 승려의 초상화만을 뜻하는 그 자체의 語義를 이미 획득했다고도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승려가 아닌 일반인의 그림은 그저 肖像畵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이 글은 진영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필요한 여러 가지 요소를 짚어보는데 중점을 두고 이루어졌다. 진영을 보는 데는 두 가지 측면이 있는데, 하나는 진영을 회화 작품의 하나로써 보아 그 제작기법과 양식 등을 연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진영에서 나타내고자 하는 진리의 편린들을 탐구하는 것이다. 특히 後者의 경우, 진영이 단순히 초상화의 한 부류에 지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우리 불교 전통의 師資相承을 증표하는 信物로써, 또는 그 안에 주인공의 업적을 표현한 상징과 그가 깨우친 진리의 精髓를 확인하는 場으로써 그 造成이 이루어졌던 것을 볼 때 그러한 흔적을 좇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영정 주인공이 깨달은 진리는 영정의 讚文 등에 含意되어 있는 바, 찬문의 연구 또한 진영의 종합적 이해에 있어서 필요한 부분임은 물론이다. 앞으로 시대별 양식의 정립, 僧職에 따른 구도의 차이, 근세 영정의 전통성 등의 문제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영정 연구의 기본은 사실 상징성과 찬문에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This study is composed of focusing on several elements for understanding a portrait of the priest of high virtue. There are two ways of studying a portrait of the priest of high virtue. One is to study the production technique and style on a portrait of the priest of high virtue as a pictorial art, the other is to study a portrait of the priest of high virtue to get a glimpse of its truth. A portrait of the priest of high virtue is not a simple portrait but a thing of faith to symbolize a Buddhist tradition, "the followers living according to his master's teachings". That is, it is a symbol to reveal his achievement and enlightened truth. And studies on the phrases of homage to the priest of high virtue occupy a very important ground in the comprehensive understanding of a portrait of the priest of high virtue. So I maintain that studies on the phrases of homage to the priest of high virtue and its symbolization are essential.
眞身舍利의 한국 내 전파 과정에 대하여(I) : 신라의 覺德 및 慈藏이 傳來한 眞身舍利를 중심으로
申大鉉 위덕대학교 박물관 2006 佛敎考古學 Vol.- No.6
석가모니의 遺骨인 진신사리는 사리장엄이라는 극도의 정교하고 심미적인 공예품에 안치하여 봉안하므로 진신사리에 대한 기록은 곧 사리장엄의 존재를 떠올릴 수 있는 불교공예적 자료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에 대한 조사와 정리는 당시 불교 신앙의 형태뿐만 아니라 불교미술사를 보다 풍부하게 하는 자료의 원천인 셈이다. 특히 삼국시대에 慈藏이 중국에서 진신사리를 구해 온 이래 진신사리의 전파는 분명한 문헌적 근거를 지닌 역사적 사실이었음은 여러 자료를 통해 확인될 수 있다. 또 慈藏 외에도 여러 차례 진신사리가 한국에 전래되었던 내용이 보인다. 진신사리 전래의 과정을 연구하는 것은 불사리신앙뿐만 아니라 불교공예사에서도 반드시 정리해야 할 과제임은 물론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신사리가 언제 어떻게 누구에 의해서 전래되고 봉안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그 동안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던 것이 현실이며, 더러는 荒誕한 내용으로 취급되기도 한다. 이것은 기록에 散見되는 진신사리 봉안의 과정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지 않고 소홀하게 대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따리서 本稿에서는 {三國遺事} 등 문헌에 나오는 진신사리 將來의 기록을 취합, 정리하여 그 경로 및 봉안 과정을 밝힘으로써 설화로까지 치부되는 역사적 사실을 闡明하려고 한다. 이를 통하여 사리신앙의 역사성과 사리장엄의 실재성을 인정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本稿에서는 한국의 초기 불교사에 있어서 사리신앙에 관련된 사리 傳來의 역사적 사실을 들어 삼국시대 중심으로 그 전파과정을 서술했다. 그 과정에서 {三國史記}·{三國遺事} 외에 그 동안 학계에서 충분히 심도 있게 다루지 않았던 몇몇 사료들을 例擧하며 역사적 사실들을 보완했다. 하지만 중국에서의 傳來사항만이 아니라 초기 불교사에 보이는 사리 봉안의 사실들도 함에 살핀다면 불교사에 매우 의미 있는 사실들을 밝힐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The records of the introduction of Buddhist Sarira into Korea are important cultural properties because they attest to the flowering of Buddhist art and culture. Therefore, the study of these records plays as an important role of elucidating Buddhism as a religion and the history of Buddhist art. It is a historical fact that Jajang introduced Buddhist Sarira into Korea from China in the Three Kingdoms. So the aim of this study is to elucidate the introduction of Buddhist Sariras into Korea as a historical fact but not a legend on the basis of the historical sources such as Samgukyusa and Samguksagi. In conclusion, the introduction of Buddhist Sarira into Korea Played as an important role of the flowering of Buddhist art and cul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