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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환 호남고고학회 2019 湖南考古學報 Vol.61 No.-
이 논문은 9세기 말부터 10세기 전반까지 거의 50여 년 유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소위 ‘나말여초’라는 애매모호한 시기로 지칭되어 왔던 후백제기 문화 양상을 밝히는 것에 그 목적이 있다. 이렇게 후백제 고유의 문화적 특성을밝히기 위해, 그동안 필자가 꾸준히 제기해왔던 후백제로 비정할 수 있는 불교미술품과 더불어 후백제의 것임을 뒷받침할 만한 고고자료를 함께 살펴봄으로써 그 공통요소를 밝히는데 주력하였다. 이를 위해 우선 후백제 불교미술품을 금동불, 석불, 석탑, 석등, 승탑 등으로 나누어 어떤 것들이 있고, 발원 계층에 따라 각각 어떠한 특징을 보이는가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왕실 발원 불교미술품은 왕궁리 오층석탑과 금동불, 봉림사지 불교미술품, 나주 철천리 석불입상 등이고, 호족 발원의 것은 남원 신계리 석불좌상, 보성 유신리 마애불좌상 등이 있다. 아울러 民 주도 향도결사가 발원한 불교미술품은 남원 호기리 마애불이 있다. 후백제 불교미술품은 9세기 후반 통일신라 불교미술 양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특별히 경북 북부지역 장인들의 수용 등 직접적인 방법으로 경북 북부지역의 불교미술품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파악된다. 다만,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일부분이기는 하지만 백제를 계승한 국가라는 정체성을 드러내거나 발원 계층에 따른 다양한 조형의지를표출하려 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특징들이 더해져 분명히 동시대 신라는 물론이고 태봉과 고려와도 다른‘후백제 불교미술’이라고 하는 독자적인 ‘양식’을 형성하였던 것이다. 이와 더불어, 최근 새롭게 해석되고 발굴된 왕궁리유적과 봉림사지의 고고자료는 미술사적 분석과 정황만으로후백제의 불교미술품으로 비정했던, 왕궁리 오층석탑과 봉림사지 석조미술품들의 조성시기를 규명하는 단서를 제공하고 있음을 확인하였으며, 후백제 유적 출토 명문와와 와당에도 불교미술품에 투영된 후백제의 조형의지가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편, 소위 나말여초 유적 출토 청자는, 향후 도통리 청자 가마가 후백제의 것으로 판명된다면, 도통리 청자 가마 출토품과의 비교를 통해 유적의 조성시기를 비정할 수 있는 표준자료가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