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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영 육군군사연구소 2010 군사연구 Vol.- No.129
Jung Geun Ahn was a militia leader operating in Yunhae Province of Russia, who punished the mastermind of Japanese Invasion of Korea, Ito Hirobumi, in Harbin on October 26, 1909. He advanced to Hambook Province with his 200 militiamen to engage in violent battles against the Japanese force. Then he cut the left ring finger with 11 fellow comrades and organized Donguidanjihoe on February 26, 1909. The organization was established to strive for national independence and Asian peace through solidarity of public support succeeding purports and spirits of Society of Shared Will (DongEuiHwaei) even in the circumstances unfavorable to continuation of the struggle. Donguidanjihoe was organized by Ahn as head and his 11 comrades. Of the 12 members stated by leader Ahn, 8 figures were identified with the real name, including Gyu Sam Baek, Gi Ryung Kim, Soon Gi Kang, Yeung Soon Cho, Byung Gil Hwang, Chang Doo Kang, and Hwa Chun Gal; it is currently difficult to confirm real names of the rest 4 members, Won Joo Jeong, Bong Seok Park, Chi Hong Yoo, and Baek Choon Kim. Ahn organized the society in order to present corroborative evidence for solidarity and unity he had advocated while visiting Korean communities in Yunhae Province and furthermore to demonstrate proof of his devotion to cause of Korean Independence. Donguidanjihoe was therefore a society established to declare adamant determination to achieve national independence,not to carry out vehement struggles against Japan. It can be evaluated that self-sacrificial volition demonstrated in the organization of Dongeuidanjeehwae functioned as motivation to perform the Assassination in Harbin.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에서 대한침략의 원흉 이등박문을 처단한 안중근은러시아 연해주에서 활약한 의병 지도자였다. 그는 1908년 휘하 의병 200명을이끌고 함북지방으로 진출하여 일본군과 수십 차례 혈투를 벌였다. 이어 그는1909년 2월 26일 동지 11명과 함께 왼손 무명지를 끊고 동의단지회를 결성하였다. 이 결사는 투쟁여건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의병결사인 동의회의 취지와 정신을계승하여 인심단합을 통해 조국독립과 동양평화에 더욱 매진할 목적으로 결성한단체였다. 동의단지회는 맹주 안중근이 나머지 11명의 동지들과 함께 결성한 것이다. 안중근이 진술한 동의단지회 12명 회원 가운데 실명으로 확인되는 인물로는 맹주안중근을 비롯하여 백규삼(白圭三)․김기룡(金起龍)․강순기(姜舜璣)․조응순(趙應順)․황병길(黃炳吉)․강창두(姜昌斗)․갈화천(葛化天) 등 8명이며, 나머지정원주(鄭元柱[周])․박봉석(朴鳳錫)․유치홍(柳致弘)․김백춘(金伯[海]春) 등 4명은현재로서는 실명을 확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안중근이 동의단지회를 결성한 것은 연해주 한인사회를 순방하면서 자신이역설한 단결과 화합의 증좌(證左)를 제시하기 위해, 나아가 한국독립을 이룩하는데 헌신한다는 빙거(憑據)를 보이기 위한 것이었다. 곧 동의단지회는 의열투쟁을결행할 목적하에서 결성된 단체가 아니라, 조국독립을 이룩하기 위한 굳은 결심을나타내기 위해 결성한 단체였다고 할 수 있다. 결국, 동의단지회에서 보여준 자기희생적 실천의지는 곧 하얼빈의거를 결행할 수 있게 한 동력으로 작용하게 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