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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규보의 철학사상 - 고려시대 유불도 (儒佛道) 교섭과 관련하여 -

        노평규 동양철학연구회 1991 東洋哲學硏究 Vol.12 No.-

        이 논문은, 오늘날 우리사회의 종교내지 사상 간의 심각한 갈등, 대립을 해소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적 제시로서 이 문제와 관련하여 역사적 선구자의 위치에 놓여있는 고려시대의 저명한 유학자이면서 삼교조화론자인 이규보의 사상 전반과 그의 삼교조화의 구체적 내용을 고찰하고 있다. 서세동점에 의해 천주교 등의 서양종교나 사상이 동양에 정착하기 이전까지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중국도 대개는 儒, 佛, 道 三敎가 종교 내지 사상의 전반을 지배하였다. 그리고 이 삼교가 대립, 배척하는 속에서 서로 습합, 조화를 이루어왔다. 우리나라에서 이 같은 삼교교섭이 자장 활발하게 이루어진 시대는 고려시대이며, 특히 고려 중기 이후는 유, 불뿐만이 아니라 도교도 상당한 교단적 세력을 가지고 있어 三敎鼎足의 勢를 이루게 되었다. 바로 여기서 고려 중기 삼교 조화론자인 이규보는 위 물음과 관련하여 매우 주목된다 하겠다. 고려시대의 저명한 유자 중의 한사람 이었으면서도 삼교조화를 기했던 이규보에서, 다양한 종교와 사상이 혼재하며 대립하는 우리사회에 있어 이들 종교 내지 사상 간의 조화를 이루는 데에 많은 시사를 얻을 수 있으리 라고 생각한다.

      • 欽齋 崔秉心의 經世思想

        노평규 간재학회 2011 간재학논총 Vol.11 No.-

        본고는 금재 최병심에 대한 기존연구를 바탕으로 하여 그의 경세사상 부분에 한하여 연구를 한 걸음 더 내디디려한 것이다. 본고는 금재의 경세사상과 관련된 것으로 6가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첫째는 그의 경세에 관한 기본입장이 철저하게 주자학파의 그것을 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는 그가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국가의 통치형태는 왕정이었다는 점이다. 셋째는 그가 세계 속의 모든 나라들을 도의와 예제를 가지고 華와 夷 둘로 구분하여 조선을 유일한 華의 나라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넷째는 그는 국민 개개인으로서 국가를 위하는 길은 각자가 당면한 모든 일에 의리로 대처하는 것이라고 여겼다는 점이다. 다섯째는 그는 조선의 전통적 예제를 고수할 것을 주장했다는 점이다. 마지막은 그는 구체적인 정책 시행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反經의 입장을 취하지만 그렇다고 실학자들이 주장했던 것과 같은 그 시대에 맞는 개혁책을 부정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금재의 경세사상은 오늘날의 입장에서 볼 때 비판할 수 있는 요소들이 없지 않은 것이지만 본고는 가능한 한 금재의 논리를 추적하는 데만 그쳤다.

      • KCI등재후보

        현암 이을호의 국역『四書』에 대한 고찰

        노평규 한국공자학회 2010 공자학 Vol.18 No.-

        Hyeon-am Lee Eul-ho is one of the most prestigious persons in studying about Da-san Jeong Yak-yong among the Korean philosophers, and one of the masters in oriental classics, especially translation of Confucian Classics. This paper clarified the establishment process and characteristics of his Korean translation of Sa-seo, and the implication of the translated books in his whole philosophy. In short, he tried to do his best to translate the books to suit the part of the books’ name Han-geul, so that he chose Da-san interpretation style instead of the existing way of interpretation; Chu Hsi style. He translated Sa-seo into Han-geul Mencius Works, Han-geul Confucius Analects, the Doctrine of the Mean & the Great Learning consecutively, and put the Doctrine of the Mean before the Great Learning. This fact well shows his uniqueness. Han-geul Mencius was based on the Chu Hsi’s Annotation of Mencius Works as its original text, while keeping showing the reading of the Chinese characters in Han-geul and putting Chu Hsi’s preface of the Great Learning and the Doctrine of the Mean on his works, which may look contradictory but be almost a challenge against Chu Hsi’s interpretation. He believed that his new understanding of the Confucian Classics would show a right direction for the Confucianism, the way of ‘Innovative Confucianism’, in the contemporary society. 현암 이을호는 한국철학자 중 다산 연구에 있어 최고 권위자의 한 사람일 뿐 아니라 동양고전, 특히 유교경전 번역에 있어 대가의 반열에 있다. 본고는 그의 국역『사서』가 어떤 과정을 거쳐 성립되었고 어떤 특징을 지닌 것인지를 먼저 밝히고 그의 전체 사상 속에서 그 자신의 국역『사서』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요컨대 그는 ‘한글’이라는 책이름에 걸맞게 번역하려고 최대한 노력하였고 기존의 주자식 해석을 버리고 다산식 해석을 택하였다. 그가『한글맹자』, 『한글논어』,『중용・대학』순으로 번역한 것이나 특히 『대학』보다 『중용』을 앞에 둔 것은 그의 개성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한글맹자』의 경우, 주자의 『맹자집주』를 원문으로 삼되 시종 현토를 고집한 것과 『대학』, 『중용』의 주자 서문을 실은 것은 서로 상치되는 것 같아도 실은 모두 주자식 해석에 대한 도발에 가깝다. 그는 유교경전에 대한 이 같은 자신의 새로운 이해가 현대 사회 속에서 유교가 나아갈 올바른 방향, 곧 개신유학의 길을 제시한 것으로 여겼다.

      • KCI등재
      • KCI등재
      • 瑞巖 金熙鎭의 학문과 사상

        노평규 간재학회 2012 간재학논총 Vol.14 No.-

        본고는 간재학이 근현대에 어떻게 계승되었는지를 밝히는 작업의 일환에 속한다고 할 수 있는데 간재의 재전 제자 중 瑞巖을 택하여 그가 무슨 공부를 무슨 생각을 하였는지를 밝혀보려고 한 것인데 다만 선행 연구가 없으므로 극히 초보적인 연구만을 진행하였다. 서암은 西坪 金基尙을 통해 율곡을 유학의 정맥으로 알게 되었고 悳泉 成璣運과 陽齋 權純命의 인도로 간재학으로 들어갔다. 다만 덕천, 양재에게 배웠기에 간재학파의 2파중 敎學을 더욱 중시하는 학맥을 이었다. 서암은 간재 이래의 명덕심설을 견지하고 松潭 李柏淳의 명덕성론을 비판하였다. 서암은 夷狄禽獸인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은 性을 실현하는 정치라고 한다. 그는 서양의 유물론이나 유심론으로 나라나 세계를 바로 다스릴 수 없고 오직 유학의 惟性論으로만 가능하다고 한다. 서암의 생애에서 가장 두드러진 서당교육은 다분히 종교적, 유교적인 것이다. 하지만 현대적 관점에서 볼 때 극복해야 할 몇 가지 시대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서암은 본래 종교성이 강한 간재학이 현대에 서당교육을 통해 현실에 적응해간 좋은 실례이다. 현대 유교의 중흥책이 넓게는 간재학 안에서, 좁게는 간재의 재전세대인 서암 등의 세대 안에서 찾아질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 欽齋崔秉心의 經世思想

        魯平奎 간재학회 2010 간재학논총 Vol.11 No.-

        본고는 금재 최병심에 대한 기존연구를 바탕으로 하여 그의 경세사상 부분에 한하여 연구를 한 걸음 더 진행하려고 한 것이다. 본고는 금재의 경세사상과 관련된 것으로 6가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첫째는 그의 경세에 관한 기본입장이 철저하게 주자학파의 그것을 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는 그가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국가의 통치형태는 왕정이었다는 점이다. 셋째는 그가 세계 속의 모든 나라들을 도의와 예제를 가지고 華와 夷둘로 구분하여 조선을 유일한 華의 나라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넷째는 그는 국민 개개인으로서 국가를 위하는 길은 각자가 당면한 모든 일에 의리로 대처하는 것이라고 여겼다는 점이다. 다섯째는 그는 조선의 전통적 예제를 고수할 것을 주장했다는 점이다. 마지막은 그는 구체적인 정책 시행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反經의 입장을 취하지만 그렇다고 실학자들이 주장했던 것과 같은 그 시대에 맞는 개혁책을 부정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금재의 경세사상은 오늘날의 입장에서 볼 때 비판할 수 있는 요소들이 없지 않은 것이지만 본고는 가능한 한 금재의논리를 추적하는 것을 중심으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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