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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정보해석학에서의 의미구성과 해체

        병렬(Yun Byeong-Yeol) 한국현상학회 2006 철학과 현상학 연구 Vol.29 No.-

        정보사회를 인류문명의 발전사에서 하나의 신기원으로 보는 이가 많다 (A. 토플러 등). 정보사회와 매체문화에 대한 포괄적인 인문학적 접근은 “정보해석학”이라고 할 수 있다. 본 소고(小考)는 정보해석학에서 주체의미의 복권과 의미구성 및 의미생산의 문제를 주요 과제로 보고 그 가능성을 타진해본다. 논의의 전개과정에는 해체주의와의 논쟁과 또 정보사회와 매체문화에 깔려있는 무의미의 문제도 어려운 난관으로 나타난다. 포스트모던에 의해 수난당한 ‘주체’는 그러나 정보해석학에서 근세의 권력화된 주체가 아니라 의미구성의 당사자로 드러난다. “의미의 상실”과 “의미의 파괴” 및 “의미의 죽음”이 매체문화에 깔려 있지만 (J. 보드리야르),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미구성과 의미생산은 가능하며, 또 그렇게 함으로써 정보사회와 인류의 미래가 유의미하다는 것을 밝히는 것이 본 소고(小考)의 주된 목적이다. 의미구성과 의미생산 및 의미창조는 정보해석학의 주요 과제이다.

      • KCI등재

        시인은 신의 성스러운 사제인가?

        병렬(Byeong-Yeol Yun) 한국현상학회 2009 철학과 현상학 연구 Vol.43 No.-

        하이데거와 횔덜린에게서 시인의 위상은 오늘날 현대인이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시인이 “신의 성스러운 사제”가 되고 신과 인간의 중간자이며 “사이-존재”이고 중매자와 신의 사자(使者)가 된다는 얘기는 퍽 생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인에게 칭해진 용어들은 고대 그리스적 세계관에서는 일반적인 현상이었는데, 이렇게 칭해진 용어들의 예를 플라톤의 『이온』(Ion)과 『파이드로스』(Phaidros)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횔덜린의 시-정신은 철저하게 고대 그리스의 신화와 세계관에 바탕을 두고 있고, 이러한 횔덜린의 시-정신은 “존재의 진리”와 시원적 사유를 전개하는 하이데거의 철학에 하나의 이정표 역할을 한다. “시원적인 것”과 “존재의 진리”가 생기하는 곳에로의 귀향은 하이데거가 그의 생애 끝까지 추적한 철학적 노력이다. “궁핍한 시대”에서의 시인은 이러한 귀향을 안내하는 각별한 사명과 소명을 갖고 있다. 논의의 전개는 우선 하이데거에게 각별한 위상을 갖는 횔덜린의 시작(詩作)세계(들어가는 말)이고, 그 다음으로 존재개현으로서의 시작(詩作), “궁핍한 시대”에 신의 사제로서의 시인, “신의 성스러운 사제”로서의 시인의 사명과 소명, 고대 그리스적 기원에서 헤르메스적 사자(使者)로서의 시인 순이다.

      • KCI등재

        고대 그리스와 후설 현상학에서의 세계개념

        병렬(Byeong-Yeol Yun) 한국현상학회 2004 철학과 현상학 연구 Vol.23 No.-

        고대 그리스인들의 코스모스는 하나와 다수로부터의, 존재와 생성으로부터의 통일체이다. 코스모스 속에서 만물은 생성하고 또 소멸한다, 그러나 코스모스자신은 생성하지도 소멸하지도 않는다. 뿐만 아니라 이 코스모스는 결코 단편적인 자연이 아니라, ‘자연과 정신’(Geist)이며 총체(to Holon)이고, 원초적인 하나(Ur-enie: Hen)이며 전체(ta Panta)이다. 그래서 그것은 모든 근거들의 근거가 되고 모든 근원들의 근원(Ursprung)이라서 개방되고 지시하는 (verweisenden) 지평을 형성한다. 이 마크로코스모스(Makrokosmos)는 무한하여서 다 포착될 수 없으며, 고갈될 수 없고 꿰뚫을 수 없다. 오히려 유한한 사물은 그의 지평과 광채 속에서 비춰진다. 그러나 중세의 ‘세계’(Mundus)나 근세의 ‘세계’는 고대 그리스에 있었던 대우주로서의 세계를 상실하고 사물들의 집합체라거나 물리학적인 ‘세계’로 이해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물리학적이고 사물적인 세계개념은 아직 우리시대를 지배하고 떠도는 개념이다. 세계를 사물존재론적으로(dingontologisch), 자연적인 객체로, 또 이들 객체들의 총합으로 보았다면, 이러한 세계는 영혼이 없고 응고되어 있으며, 계산되어지는 것이다. 세계의 대상화는 근세의 철학적 사유에 하나의 숙명이 되고 말았다. 이에 비해 후설의 세계개념은 현상학적 특이성을 갖추고서 우리 인류의 정신사가 오랫동안 잊어버린 마크로코스모스로서의 ‘세계총체’를 다시 획득한다. 특히 후설은 그의 후기사유에서 ‘생활세계’의 개념을 폭넓게 논의하는 가운데 ‘보편지평’과 ‘총체’로서의 세계개념을 밟히는데, 이는 고대 그리스의 원초적 세계개념을 복권시키는 일이기도 하고, 더욱이 독특하게 현상학적 의미를 부가하여 그 의미를 되찾았다고 할 수 있다.

      • KCI등재

        21세기 사고모형으로서의 주체개념

        병렬(Byeong-Yeol Yun) 한국현상학회 2010 철학과 현상학 연구 Vol.46 No.-

        21세기에 이르러 세계화 내지 지구촌화 현상으로의 변화된 세계상은 뚜렷하며 그 수용여부의 물음도 개의치 않을 정도로 가속화되어 가고 있다. 그러기에 이러한 변화된 세계상에 적합하고 또 창조적 리드를 할 수 있는 인간의 사고모형을 찾아내는 것이야말로 중요한 과제로 주어진다. 세계문화의 흐름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정보사회에 능란하게 상응하며 새로운 세기의 문화를 창조해 가는 주체는 그러나 근대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그런 주체는 아니다. 이성을 등에 업고서 주체중심주의를 형성한 근대의 주체, 즉 절대화되고 권력화된 주체는 분명 문제가 많다. 그러나 모든 주체개념이 결코 다 근대적인 것은 아니다! 모든 주체가 다 주체중심주의를 형성하고 권력행세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아니다. 구조주의와 후기 구조주의 및 포스트모더니즘은 지나치게 주체에 대해 가학증세를 드러냈다. 그들은 습관처럼 “주체의 죽음”과 “주체에 대한 사망선고”를 외쳤다. 그러나 이러한 사망선고는 지나치게 무모하며 결코 정당성을 갖지 못하는 자기모순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주체에 대한 사망선고를 뒤로하고 정보사회에서 살아 생동하며 필연적으로 전제되는 그런 주체개념을 목격한다. 정보사회를 “제3의 물결”(A. 토플러)이라고 하든 또는 “대변혁”(J. 네이스비트)이라고 하든 혹은 “새로운 유토피아”라거나 “암울한 디스토피아”라고 규명하든 정보사회와 매체문화를 이끌어가는 당사자는 인간 주체들이고, 그 승패의 여부도 매체나 정보통신기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이용해 정보사회를 일구어가는 인간주체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정보사회의 주체개념과 함께 오늘날 문화의 세기와 또 그 앞 세기로 전개되리라고 예상되는 세계사의 흐름에서 중요한 역량을 발휘하게 될 것으로 여겨지는 기연적 사고와 기연적 주체 및 헤르메스적 문화와 헤르메스적 주체에 관해 논의를 집중한다. 이러한 주체개념들은 세계화와 새로운 문화의 세기에 적합한 주역으로 떠오르며, 질주하는 시대적 흐름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또 창조적으로 리드해갈 것으로 여겨진다. 철학사의 흐름에서 근대의 이성중심주의에 억눌린 ‘기연주의’와 헤르메틱은 오늘날 재발견ㆍ재음미되고 있으며, 21세기의 세계화 시대와 정보사회 및 문화적 세기에 상응하는 주체개념으로 다가오고 있다.

      • KCI등재후보

        플라톤과 하이데거 및 고구려의 고분 벽화가 표명한 ‘사방’으로서의 코스모스

        병렬 한국하이데거학회 2004 현대유럽철학연구 Vol.0 No.10

        Diese Abhandlung handelt es sich um das Denken des Kosmos bei Platon, Heidegger und alttuemlichen Kogureanern. Alttuemliche Kogurea hat aber dieses Denken in dem Freskobild der alten Graeber(UNESCO registrierte weltliche Kultur-Erbguetter) geaeussert. Der Kosmos ist bei diesen drei Positionen das Totale(to Holon) und das Ganze(ta Panta), und zwar ist er als "Geviert"(Himmel und Erde, Goetter und Mensch) dargestellt. Dazu ist dieser Kosmos nicht ein blosses Ding(oder gesamelte Dinge), sondern ein organisches Lebewesen(vor allem wurde er bei den alten Griechen fuer goetterlich gehalten). Als das "Geviert" spielt der Kosmos miteinander das Spiegel-spiel. Das Spiegel-spiel des Kosmos bei alttuemlichen Kogureanern ist fuer unendlich eingehalten. Der Mensch muesse dabei auch unsterlich sein, insofern er ein Partner dieses "Gevierts" ist. Die Kogureaner hatten den Menschen als unsterblich aufgefasst. Der Mensch wird nach dem irdischen Tode ein Shin-sun(神仙: ein uebernatuerliches unsterbliches Lebewesen) und kehrt zurueck zu dem himmelischen Heimatland. Dadurch haelt der Mensch seine Topologie als ein Partner des uebrigen "Gevierts". Die Unsterblichkeit des Menschen, das Leben des Menschen auf dem ewigen himmelischen Heimatland ist in dem Freskobild der alten kogureanischen Graeber so lebendig dargestellt. Die Unsterblichkeit des Menschen ist dabei wie bei den meisterhaften Philosophen(Platon, Kant usw.) eine der "Grundprobleme der Philosophie". 이 글의 목적은 플라톤과 하이데거의 철학 및 고구려 고분 벽화에 드러난 코스모스에 대한 사유를 파악하는 것이다. 동서양에서 코스모스를 총체로 이해하고 ‘사방’의 거울-놀이로 표현한 것에 주목한다. 고대 한국인이 파악한 코스모스의 영원한 ‘거울-놀이’에는 인간의 위상이 크게 부각된 데에서 하이데거의 논의와는 다소 차이를 드러낸다. 이 외에도 고분 벽화에 내포된 불멸사상을 통해 한국의 고대 철학을 조명해보려는 시도도 들어있다.

      • KCI등재후보

        ‘거주함’의 철학적 지평―하이데거의 사유와 고구려의 고분벽화를 중심으로

        병렬 한국하이데거학회 2005 현대유럽철학연구 Vol.0 No.11

        Diese Abhandlung behandelt das Denken über das Wohnen bei Heidegger und den Menschen der alttümlichen Kogurea, wie es in dem Freskobild Kogurea zum Ausdruck kommt. Das Freskobild der alttümlichen Kogurea ist nicht ein einfaches Kunstwerk, sondern eröffnet es darüber hinaus den philosophischen Horizont, auf dem das Wohnen und Lebenswelt des Menschen, die tiefliegende überhimmelische Welt und die endgültige Probleme des Menschen zum Ausdruck bringt. Heidegger hat das Wohnen des Menschen auf den philosophischen Horizont erhoben. Die Weise des Menschlichseins ist nach Heidegger das Wohnen. Indem die alttümlichen Kogureaner gerade dieses Wohnen des Menschen in dem Freskobild der alten Gräber geäußert, wo der beschränkte und ernsthafte Ort ist, haben sie dann das Wohnen des Menschen als den Grundzug des Menschseins aufgefasst. Bei Heidegger und den alttümlichen Kogureanern ist sodann das Wohnen vollends eine Wesensbestimmung des Menschen. 이 글의 목적은 고구려의 고분벽화에 드러난 사상적 의미, 특히 하이데거가 인간의 ‘거주함’(Wohnen)을 철학적 지평에서 성찰한 것과 궤를 함께 하는 고구려인들의 거주함에 대한 세계관을 파악하는데 있다. 고구려의 고분벽화는 단순한 예술작품의 차원을 넘어 인간의 심층세계, 거주와 생활세계, 인간의 궁극적인 문제 등을 드러내고 있다. 하이데거는 여느 철학자와는 달리 바로 이러한 “거주함”을 철학의 지평 위로 올렸다. 인간적인 방식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곧 하이데거에 의하면 거주하는 것이다. 그런데 고대 고구려인들은 바로 이 “거주함”을 고분벽화의 엄밀한 장소 속에 담음으로 말미암아 인간존재의 가장 기본적인 토대임을 드러내보였다. 그 협소하고 엄숙한 장소에, 그것도 어떤 비장하고 원대한 이상만을 그린 것이 아니라, 인간의 생생한 삶의 모습과 거주형태를 표현한 것이다. 고대 고구려인들이 바로 이러한 “거주함”을 인간의 본질적 요소로 삼았기에, 그 철학적인 혜안을 읽을 수 있다. 인간은 거주하는 자로서 존재한다. 그러기에 이 거주함은 곧 인간의 본질을 규명해주는 한 요인이다. 하이데거도 거주함이야말로 “존재의 근본특성”(der Grundzug des Seins)이라고 했다.

      • KCI등재후보

        고대 그리스와 하이데거의 사유에서선포와 개시의 해석학

        병렬 한국하이데거학회 2005 현대유럽철학연구 Vol.0 No.12

        Die Abhandlung geht es um die altgriechischen und hei- deggerschen Hermeneutik. Diese Hermeneutik behält aber die Funktion der Verkündigung und Eröffnung. Die altgrie- chische hermeneutike kann man aber heutzutage weder verwirklichen noch erleben, weil man heutzutage weder Hermes noch Götterspruch(bzw. Orakelspruch) erfahren. Die Hermeneutik, die verkündende und eröffnende Funktion hat, hat aber Heidegger durch sein Seinsdenken wieder auf die Bühne gehoben und lebendig gemacht. Den Boden dieser Hermeneutik findet Heidegger in der Welt der Dichtung, Sprachphilosophie, und dem Kunstwerk. Auf dem Wege zur verkündene hermeneutike, insofern darin phonetischer Cha- rakter der Sprache inbesessen ist, schauen wir Derridas Kritik gegen den Phonozentrismus. Aber Verkündigung ist keineswegs eine blosse phone. 이 글은 인류의 철학적 유산이라고 할 만큼 소중한 고대 그리스의 선포와 개시의 헤르메노이티케(hermeneutike)를 하이데거가 자신의 존재사유를 통하여 재발견하고 재창조한 사실을 밝힌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적 헤르메노이티케를 오늘날 구현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것은 헤르메스의 개시도 신탁의 선포도 들려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이데거는 존재사유를 통하여 선포와 개시의 ‘헤르메노이에인’을 되살리고 있는데, 이러한 ‘헤르메노이에인’의 재발견과 재창조를 통하여 그의 심원한 해석학과 존재론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이러한 하이데거의 해석학에 이르는 과정에는 헤르메노이에인의 ‘선포’에 음성언어적 요소가 있음을 검토한다. 그러나 이러한 선포가 데리다의 “음성중심주의”에 대한 비판과는 별개의 것임을, 더욱이 이를 문자중심주의로 대체하려는 데리다의 주장이 온당하지 않음을 고찰해보았다.

      • KCI등재

        레비나스의 하이데거 윤리학 비판과 하이데거의 존재사유에 드러난 윤리학

        병렬(Yun Byeong-Yeol) 한국현상학회 2004 철학과 현상학 연구 Vol.22 No.-

        레비나스는 제일철학으로 승화된 이타주의 윤리학을 통해 주체중심주의와 이기주의, 물질주의에 경도된 문화에 경종을 울리면서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다. 이러한 이타주의 윤리학을 전개하면서 주체와 존재가 중심으로 된 사유에 대해선 근본적인 비판을 가했다. 본 논문은 레비나스의 하이데거 윤리학 비판을 추적하고 그의 비판에 대한 반론으로서 하이데거 윤리학을 검토한다. 하이데거는 비록 『윤리학』이란 타이틀 아래에서 체계적인 윤리학을 전개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의 존재사유에는 독특하고 심오한 윤리적 성찰(실존의 윤리학, 귀향의 윤리학, 거시윤리학)이 내포되어 있음을 본고는 하이데거 사유에 입각하여 밝혀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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