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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해(空海)의 생애(生涯)와 진언밀교(眞言密敎)의 부법상승(付法相承)

            박준석 ( Park Jun-seok ) 위덕대학교 밀교문화연구원 2015 密敎學報 Vol.16 No.-

            공해(774-835)는 서력 774년 6월 15일생으로, 讚岐國 多度郡에서 태어났다. 부친의 속성은 사에키아타이노 타기미(佐伯直田公)였 고 모친은 아토(阿刀)씨였으며, 그의 어릴 적 이름은 사에키노 마오 (佐伯眞魚)였다. 그는 15세의 나이에 從五位下의 문학박사였던 외 숙부 아토노 오오타리 (阿刀大足) 밑에서 論語ㆍ孝經이나 史傳 등을 배우고 문장을 습득한 뒤 18세에 이르러 長岡의 대학에 들어가 본 격적인 공부를 시작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일설에 공해는 관의 허가를 얻지 않고 몰래 출가한 ‘私度僧’의 자격으로 입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그는 천황의 명에 따라 견 당사의 一員으로서 승선의 기회를 부여받은 정식 유학승으로서, 원래는 20년간의 체류가 예정되어 있었다. 그는 장안의 고승대덕을 歷 訪한 끝에 결국 靑龍寺 東塔院의 惠果阿闍梨(746-805)와 조우하게 된다. 國師로서 존경 받던 惠果는 금ㆍ태 양부밀교의 전수자로서, 자바의 辨弘이나 新羅의 惠日ㆍ悟眞과 같은 외국인 제자에게 법을 전수 하는 등, 密敎의 동아시아 전파에 주력 했던 인물로 잘 알려 져 있다. 스승의 입적으로 인해 공해는 1년도 채 안되는 짧은 기간에 양부밀교를 전수받게 된다. 그가 들여온 밀교는 일본 국내에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았던 데다가 남천철탑설 등의 전설적 기술이나 口傳 등에 의존하는 부분이 컸기 때문에 일각으로부터 진언종의 정통성을 증명할만한 문헌적 증거가 없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이러한 비판에 대하여 공해는 밀교의 付法相承을 명확히 설명하기 위한 나름의 해석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金剛頂經義訣』에 기재된 이름 未詳의 대덕을 ‘龍猛’이라고 과감하게 규정함과 동시에 그를 대승불교의 거장인 龍樹와 동일 인물로 취급하고 있는 점이나, 『玄奘三藏行狀』에 언급된 700세의 바라문을 ‘龍智’라 하여 유명한 현장삼장 역시 그의 제자였다고 주장하 고 있는 점, 또한 바라문의 住處로 명시된 磔迦國의 위치를 남인도로 수정하여 언급하고 있는 점 등은 여러 가지 면에서 모순이 없지 않다. 이러한 설정은 금강정경계의 밀교 상승에 일종의 권위를 부여하려 했던 것으로 보이며, 조사들의 부법상승을 둘러싼 수백세상승설 등의 전설은 용맹의 世壽를 수백세로 간주하는『대당서역기』의 기술에 의거하는 바가 큰 것으로 살펴진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investigate life and thoughts of Ku- kai(空海) who opened Mantra Order in Japan. Compared to his fame, theses introduced in Korea are poor so it was inevitable to investigate focusing on studies in Japan than Korea. As for his life, the author described focusing on practice of Esoteric Buddhism mainly in Tang from historical viewpoint. In aspect of thoughts, the study identified their ground, raising various descriptions about transmission of Esoteric Buddhism shown on his writings. And the author investigated how to overcome differences in some literatures in establishing orthodoxy of the Esoteric Buddhism of Mantra (眞言密敎). The study is limited to legend and historical materials related to transmission of the Vajrasekhara-Sutra(金剛頂經). And the author focused on how problem of transmission of Esoteric Buddhism in learning of doctrine of master Kukai has been understood and constructed in aspect of thoughts. The purpose of entering Tang by Kukai was to learn teachings and practice of Esoteric Buddhism which had been partially transmitted to Japan. Although the Mahavairocana-Sutra(大曰經) was already spreaded to Japan, fractional elements could be obtained. Accordingly, he could not fully learn Esoteric Buddhism, so he could not be satisfied with simply reading or writing sutra. He overcame many difficulties and reached China in his age at 31. He ran a risk of losing life to go to Tang in the age when half whole life passed as then times. His master Hekwa(惠果) was already at old age of 60 and had mild and sincere character. For short time of three months, Konghae completed Coronation of the Vajradhatu and the Garbhadhatu. So before his master’s death, he felt complex mind. Kukai looked back upon the past and said, ‘I came here far from Japan but it seemed that mysterious power led me not my own power’. It is clear that he is a person who 'returned to Japan with hands fully filled though he came to China with empty hands'. This is because he met only one master and obtained more things than he sought.

          • 보로부두르 주악도와 백제 불교문화

            윤소희 ( Yoon So-hee ) 위덕대학교 밀교문화연구원 2018 密敎學報 Vol.19 No.-

            본고는 동남아 지역의 전반적인 문화지도 가운데 인도네시아 보로부두르가 갖는 불교문화적 성격을 고찰하고 이를 한국의 백제 불교와 문화유적에 견주어 고찰하였다. 이를 위해 관련 문헌을 비롯하여 보로부두르를 촬영 조사하였고, 오늘날 인도네시아의 이슬람문화에 대한 현지조사도 함께 이루어졌다. 그 결과 보로부두르 원형단에 설치된 鐘모양의 원형탑의 벽돌 무늬가 층별로 차이가 있고, 그 위에 조각된 원뿔이 일정한 숫자의 각을 이루고 있음을 새로이 발견하였다. 이들은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인식 체계와 더불어 4성제, 6바라밀, 8정도를 상징하는 숫자를 나타내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어서 보로부두르에 숨어 있는 보다 많은 秘意와 상징 체계에 대한 미시연구의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충남 연기군의 비암사 3층 석탑에 있는 아미타불 3존 석상의 8주악상에 나타나는 무릎 위의 북과 백제금동대향로에 나타나는 긴 타원형의 공명통을 지닌 현악기는 고구려와 신라에는 없고, 백제의 유물에서만 발견되는 특이한 악기이다. 중국을 비롯한 대륙 루트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악기가 보로부두르의 부조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은 백제와 인도네시아 샤일렌드라 왕조가 지니는 인도문화의 연결고리가 있기 때문이다. 보로부두르의 완성과 함께 쇠퇴한 샤일렌드라왕조의 불교는 힌두교와 상호 관용의 관계를 유지하며 존속하였고, 오늘날 인도네시아 문화의 뿌리이자 정신적 자양분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오늘날 인도네시아는 이슬람국가이지만 다변화된 동남아 양상 중 라마야나 문화가 공유되고 있음을 파악하였다. 여기에는 인도로부터 유입된 문화적 뿌리가 깊은데 비해 이슬람이 전 국민적으로 확산된 역사가 그리 길지 않고, 이슬람 중에서도 유연성을 지닌 수니파를 받아들인 것이 주효하였다. 인도네시아에 불교를 전한 꾸란 讀經師들은 힌두 및 불교 신행을 문화현상으로 여겨 힌두·밀교의 주술의식에 무슬림 독경사들이 동참하며 기도하는 등, 불교와 힌두가 융합된 문화적 뿌리 위에 독특한 이슬람문화를 형성해 가고 있음을 파악하였다. I have researched in the field the religious and Buddhist culture of Indonesia through the musical iconography of Borobudur and today’s society. There are many kinds of musical instruments which belong to India or Indonesia, performers being either court or folk musicians. Contemporary south-east Asian Indonesia has a broad religious heritage. Most of the population is Muslim, but the culture and customs are rooted in Indian culture especially with Ramayana. I discovered, for example, the same percussion instruments played on a person’s knees. I also came across similar string instruments with long and elliptical resonance casks on the iconography of the Incense Burner and Byam temple stone pagoda of Beakje dynasty in Korea and in Borobudur in Indonesia. The two musical instruments can not be found in other countries, such as Silla, Koguryŏ, China or the silk road area, but only Indonesia or India. This suggests that Beakje Buddhism is from the southern regions rather than China. Through this research I found a symbolic world of a circular tower and a cone of Borobudur. For example, I have found quadrangular columns as ārya-satya, hexagonal columns as Six Pāramitās and octagonal columns as ashtangika-mārga. Today, Indonesia has only 1% of the population to be Buddhist, but their lives lie in the soil of Buddhist spirit and culture. Therefore, the affinity between Indonesia and Korean culture is attributed to the same root of Indian Buddhism and culture.

          • 불공삼장의 생애와 밀교관

            김영덕 ( Kim Young-duk ) 위덕대학교 밀교문화연구원 2015 密敎學報 Vol.16 No.-

            善無畏와 金剛智 두 삼장에 의해서 중국으로 정순밀교가 전해졌으나 그 밀교를 계승하고 더욱 빛나게 하며 중국 불교계에서 밀교 의 황금시대를 열었던 고승이 바로 불공삼장이다. 앞선 두 스승의 밀교가 인도의 밀교였다면 불공의 밀교는 中國이라는 대지에 녹아 든 밀교로서 확연히 차이가 난다. 그것은 그의 번역목록을 통해서도 충분히 살필 수 있다. 그의 주된 영역인 금강정경 계통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있는 것만이 아니라, 역경목록에는 밀교가 대승의 제사상 및 국가수호,중국의 재래사상 등과 섞여서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不空과 그의 법을 계승한 不空系의 밀교가 앞서 善無畏와 金剛智가 가져온 인도의 밀교에서 중국으로 토착화되기 위해 했었던 부단한 노력을 알려 준다. 이미 불공시대부터 밀교에는 인도에서 수용된 그대로가 아니라, 인도밀교에 중국사상이 유입되어 보다 중국적인 개성이 더해진 것이다. 이를 통해서 인도와 서역계의 전통을 한 몸으로 받고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일생동안 2번이나 밀교경전을 구하려 인도행을 다녀온 국제적인 인물 불공삼장을 그려볼 수 있으며, 금강정경계통의 밀교만을 고집하지 않고 호국사상 및 대승의 제사상과 중국의 재래신앙까지 포용한 점을 통해서 어느 하나에 얽매이지 않고 원융한 그의 밀교관을 살필 수 있을 것이다. Amoghavajra-acarya(不空)was bom in the family of Brahmana in North India. He was a acarya(阿闍梨)in Esoteric sect of Buddhism who succeeded two acaryas―SubhakarasMia(善無畏)and Vajrabo (顧金剛智)-propagated Esoteric Buddhism to China. There was a person who cherished Esoteric Buddhism and opened golden age of Esoteric Buddhism in China. He was the very Guru Amogavajra- acarya. If Esoteric Buddhism of the two monks was Indian one, Eso teric Buddhism of Amogavajra-acarya was Chinese one. Thus there was clear difference. It can be identified enough through his translation list. His role is known from his main translations. His translation list shows that Esoteric Buddhism is in harmony with many thoughts of Mahayana Buddhism, its national defence idea, Chinese traditional thoughts etc. This can be seen in Esoteric Buddhism of Amogavajra-acarya and his disciples. And this also shows their endless efforts for Indian Esoteric Buddhism spreaded by Subhakarasimha and Vajrabodhi to become rooted in China. From era of Amogavajra-acarya, Esoteric Buddhism was not same as one when it was propagated from India. Chinese thoughts were added to India Esoteric Buddhism so that Chinese color appeared. Amogavajra-acarya cherished tradition of India and Western China, and was faithful to teachings of his masters. And he visited India two times during his lifetime to bring Sutras of Esoteric Bud dhism. Thus he was international. He did not stick to Esoteric Bud dhism. He accepted national defence thoughts, Mahayana Buddhism, even Chinese traditional religion. His Esoteric Buddhism was free from everything and in harmony with them.

          • 명랑(明朗)의 문두루법과 진호국가밀교

            장익 ( Jang Ik ) 위덕대학교 밀교문화연구원 2015 密敎學報 Vol.16 No.-

            明朗은 신라에 본격적으로 초기밀교를 수용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문두루(Mudra)법을 設壇하여 唐兵을 퇴치하는 삼국통일의 정신적인 기반을 만들었다. 이후 사천왕사를 세우고 神印法을 전하여 신라에 밀교가 정착하는 계기가 되었다. 명랑 이전에도 신라 불교수용 과정에서 나타나는 阿道와 墨胡子 등의 治病의 행적과 圓光과 安弘의 활약에서도 초기밀교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안홍은 초기 밀교 경 전으로 보이는『전단향화 성광묘녀경』을 역출하였고,사천왕사의 건립을 예언한 선구적인 密 敎家로 보인다. 안홍의 예언에 부합하여 명랑의 문두루법은 기존의 치병을 위주로 한 개인적인 영역을 넘어 진호국가밀교의 정신으로 확대되었다. 문두루법의 경전근거는 『관정경』 제7권에서 作法의 이름과 내용을 발견할 수 있지만 경전 내용이 그대로 진행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金光明經』의 사천왕 신앙을 중심에 두고,기존의 고대신앙을 수용한 『관정경』 제7권의 내용을 함께 활용하여 밀교의 례를 집행한 것으로 보인다. 본 연구에서는 명랑의 문두루법의 배경이 되는 당시 신라사회의 밀교 수용의 과정과 안흥을 통한 초기 밀교의 사상적인 영향을 알아 보았다. 또한 명랑의 문두루법의 작법의례와 관련한 『관정경』의 내용과 사상ㆍ적인 배경이 되는 사천왕 신앙과의 관련성에 대하여 알아 보고,현존하는 사천왕사의 유적 중에서 밀교의례에 활용된 것으로 보이는 鎭函壇의 의미와 활용 등에 대하여 정리하였다. It is known that Meungrang actively accepted Early Esoteric Buddhism in Silla dynasty. Meungrang founded mental base for unification of The three countries to defeat Tang army(唐兵), building stage for the first time in Silla and conducting Mudra ceremony. And he founded Sachunwang Temple and spreaded Sinin Teaching(神印法) so that this became an opportunity to establish Esoteric Buddhism in Silla. Before Meungrang, there was record that masters Ado(阿道) and Mukhoja(墨胡子) etc. cured a disease in the process of accepting Buddhism in Silla. Traces of Early Esoteric Buddhism cab be found in the life of master Wonkwang(圓光) and master Anhong(安弘). Especially, Anhong translated sutras of Early Esoteric Buddhism. It seems that he was a pioneer master of Esoteric Buddhism(密敎家) who predicted foundation of Sachunwang Temple. Like prophecy of master Anhong, Mudra ceremony of Meungrang expanded to a spirit to defend the nation going beyond existing personal category to cure a disease. As for ground in sutra of Mudra ceremony, name and content of ceremony can be found on the 7th volume of Sutra of Coronation(灌頂經). But ceremony was not conducted according to content in the sutra by hundred percent. Rather, the ceremony was progressed focusing on religion depending on Lokapala in the Suvanaprabhasottamaraja-Sutra (金光明經). Ceremony of Esoteric Buddhism was made, using content in the 7th volume of Sutra of Coronation which accepted existing ancient religion together. The study looked into process of accepting Esoteric Buddhism in Silla society in then times which is background of Mudra ceremony of Meungrang, and influences in thoughts of Esoteric Buddhism through master Anhong. The author also studied relationship between content of Sutra of Coronation related to Mudra ceremony of Meungrang and Lokapala faith which is background in thoughts. And the study summarized meaning and use of stage for defending nation which seems to be used in ceremony of Esoteric Buddhism among extant relics of Sachunwang Temple.

          • 진각밀교의 성립과 특징

            김치온 ( Kim Chi-on ) 위덕대학교 밀교문화연구원 2018 密敎學報 Vol.19 No.-

            본 논문은 대한불교진각종의 정체성에 대한 논의로서 ‘진각밀교’라는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먼저 ‘대한불교진각종과 진각밀교’라는 장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표면적인 진각종의 여러 모습에서 밀교적의 요소들을 논하였다. 그것은 종요와 종지, 소의경론, 공식불사에서 사용하고 있는 진각교전, 공식불사의 내용 등에서 살펴본 것이다. 두 번째로 ‘진각밀교의 성립’이라는 장에서는 회당대종사가 육자진언 염송을 통해 깨달음을 얻은 후 참회불교 심인불교 진각불교로 나아가면서 밀교의 교리와 그 요소들이 녹아들어가는 과정들을 살펴보았다. 세번째는 ‘진각밀교의 특징’이라는 장으로, 이는 회당대종사가 『법불교』와 『응화방편문』 등을 중심으로 종단의 불사를 위해 편집한 『진각교전』과 회당대종사의 말씀을 모은 『실행론』을 중심으로 진각밀교의 특징을 살펴본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밝혀진 진각밀교의 특징으로는 첫째 교화이념의 하나인 ‘육자심인’ 속에 방향이 제시되었다는 것, 둘째 『보살회헌법』에서 현교와 밀교의 2교를 하나의 교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는 것, 셋째는 종사의 흐름속에 참회, 심인, 진각으로 흘러온 내용들은 진각밀교의 특징적인 것으로 여겨져야 한다는 것, 넷째 진각밀교는 심인불교, 진각의 개념속에 밀교의 교리 내용이 녹아들어간 것이라는 점, 다섯째 표면적인 것은 심인불교 진각인 것이며 교리적 실천적인 밑받침으로써 밀교가 수용된 것이라는 점, 여섯째 심인불교 진각불교의 법계진각님, 심인 즉 불심인, 육자진언염송, 육자관념도, 본각 시각 구경각과 진각, 당체설법 등은 법신비로자나불, 보리심, 삼밀관행, 해인원경, 상향문과 하향문, 즉사이진 등으로 배대된다는 점, 일곱째 진각밀교의 의례의식은 전통밀교의 의궤에 따른 것이라기보다는 밀교의 의미를 담지한 간명하고 실천적인 형태라는 점, 여덟째 수행실천적인 부분에서 ‘내 허물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든다든가, 진각으로 나아가는 과정에 육자진언을 염송을 통해 자기의 심체(心體)를 관하여 즉신성불에 이르는 점에서 선밀쌍수(禪密雙修)의 모습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 등이다. 이러한 특징적인 내용으로 본다면 진각밀교에 대한 정의는 경정정사가 ‘회당대종사에 의해 진각종을 통해 재편된 밀교’라는 넓은 정의에 ‘진각인 밀교’라는 정의를 포함시켜야 한다고 생각된다. 이것은 오히려 최징이 천태와 밀교는 모순이 없다고 하여 원밀일치(圓密一致)를 설하며 천태밀교를 수립한 것과 같이, 진각과밀교는 둘이 아니라는 점에서 ‘진각밀교’라 할 수 있다고 본다. This thesis is to examine the identification of Jingak Buddhist Order based on the point of view of Jingak Esoteric Buddhism. Under the chapter one entitled “Jingak Buddhist Order and Esoteric Jingak”, the elements of Esoteric Buddhism in various aspects of the Jingak has been discussed. It consists of the core doctrines, theories, basic Buddhist texts of Jingak Buddhist Order and formal Buddhist rituals based on the holy book of Jingak and the Buddhist rituals. On the chapter two “Establishment of Jingak Esoteric Buddhism”, it describes, after the Great Master Hoedang attained enlightenment through the Six Syllable Mantra, the process of development from Chamhoebulgyo, Siminbulgyo, Jingakbulgyo to Jingak Esoteric Buddhism where the doctrines and elements of esoteric Buddhism had been permeated. The title of the 3rd chapter is ‘Characteristics of the Jingak esoteric Buddhism’. It focused, firstly, on the “Jin-gak-gyo-jeon”, the holy book of Jingak for the Buddhist rituals, what originated from Beob-bul-gyo and Eung-hwa-bang-pyeon-mun wrote and edited by the Great Master Hoedang, secondly, on the “Sil-haeng-lon (Practical Theory)” which is the collecting of the words of the Great Master Hoedang focusing the characteristic of the Jingak Esoteric Buddhism. The characteristics of the Jingak Esoteric Buddhism are, after examination, as follows: 1. “Yug-ja-sim-in”, one of the main ideology of edification, was presented. 2. “Constitutions of Bosal-hoe”, the early constitution of Jingak Order prescribes that Both Paramita Buddhism and Esoteric Buddhism are one. 3. The contents of penance, Sim-in, and Jingak which go through the flow of history of Jingak Order should be regarded as characteristic of the Jingak Esoteric Buddhism. 4. Jingak Esoteric Buddhism is Sim-in Buddhism which means the doctrine of the esoteric Buddhism has been incorporated into the concept of Jingak. 5. On the surface level, Jin-gak is the Sim-in Buddhism and esoteric Buddhism, additionally, is embraced as doctrinal and practical foundation. 6. Jingak Dharmadhatu of Jingak Buddhism; Sim-in as Bul-sim-in; practice of the Six-syllables Mantra; diagram of the Six-syllables Mantra; Bon-gak, Si-gak, Gugyeong- gak and Jin-gak; Dangche Preaching are explained as Dharmakaya, Bodhicitta, practice of three secret, Haein-wongyeong, gate for Upward and downward, and idea of identifing secularity with reality. 7. The ritual ceremony of Jingak Esoteric Buddhism is a form of simplicity and practice that carries the meaning of esoteric Buddhism rather than rituals of the traditional Esoteric Buddhism. 8. In the practical part of the exercise, it discusses about what our faults are, or one can attain enlightenment during this life through the practice of Six-syllables matra and show the features of both characters of Zen and Esoteric Buddhist practice. Looking upon these characteristics, Jingak as Esoteric Buddhism should be included with thoughts by Ven. Gyeong jeong, in the broad sense, that, Jingak is the Esoteric Buddhism reshaped by the Great Master Hoedang. Just like the thought of Choe jeon in Japan that there is no inconsistency between Tiantai(Cheon-tae) and Esoteric Buddhism, it is not possible to distinguish between Jingak and Esotericism.

          • 삼척지역 전통 사찰(寺刹)의 창건 설화와 사명(寺名) 변화 연구

            김도현 ( Kim Do-hyun ) 위덕대학교 밀교문화연구원 2016 密敎學報 Vol.17 No.-

            본 논문은 삼척지역 전통 寺刹의 창건설화와 寺名 변화에 관한 연구이다. 각종 자료와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삼척지역의 전통 사찰인 천은사ㆍ영은사ㆍ신흥사의 창건 설화와 寺名의 변화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삼척지역 불교문화의 형성 시기와 변화 과정, 그리고 그 歷史性을 고찰한 내용이다. 먼저 삼척지역 불교문화의 성립 과정을 정리하기 위해 창건설화와 연대,그리고 관련 유물ㆍ유적을 검토했다. 그 결과 현재까지 존재하는 천은사ㆍ영은사ㆍ신흥사와 동해시에 있는 삼화사는 공통적으로 신라 하대에 사굴산파를 형성하였다. 이 사찰들 은 영동지역 불교문화를 이끌었던 범일국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각종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신라 하대에 조성된 것으로 알려진 각종의 불교 유물들과 불상들을 고려할 때 이 지역에서도 불교문화가 융성하였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또한 경상북도 내륙과 태백산을 연결하는 백두대간을 따라 북상한 불교문화가 태백산과 함백산 권역을 경계로 일부 세력이 삼척지역을 거쳐 동해안을 따라 북상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불교문화의 전통이 고려 시대에 와서도 계속되었음은 이승휴와 간장사, 임원리사지 석불, 대평 리사지 석탑재 등을 통해 알 수 있다. 조선시대 삼척지역의 불교문화 는 각종 기록과 불상ㆍ탱화ㆍ전각등을 통해 확인 할 수 있다. 천은사 불상에서 발견된 「중수기」와 조선시대에 제작된 각종 사적기 등을 종합해 보면 이 지역의 전통사찰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것은 창건설화와 각종 불사에서 서로 협조한 기록, 주로 월정사나 금강산에서 활동한 書師들이 이 지역 사찰의 각종 탱화를 그렸다는 사실에서 나타난다. 이외에도 최근까지 서예가인 김규진의 글씨가 남아 있으며, 탄허스님이 주석하여 공부를 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이와 같은 문화재는 이들 전통 사찰이 이 지역을 대표하는 사찰임과 동시에 불교문화의 중심지였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지속적으로 전통 사찰과 폐사지에 대한 정밀 조사와 자료 수집,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연구를 통해 삼척지역 불교문화에 대한 종합 적인 정리와 이해가 필요하다. 이러한 작업을 통하여 이 지역의 불교 문화가 다른 지역과 구별되는 특징을 찾을 수 있으며, 이는 삼척지역 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This study is involved in changes in the legends of establishment and the names of the traditional Buddhist temples in Samcheok area. By examining the process of changes in the legends of establishment and the names of Cheoneun Temple, Yeongeun Temple and Sinheung Temple, the traditional Buddhist temples in the Samcheok area based on the various data and research results, this study investigated the time of formation, the process of change and the historicity of Buddhist culture in the Samcheok area. First, in order to sum up the process of the establishment of Buddhist culture in the Samcheok area, this study reviewed the legends and periods of establishment, and related relics and remains. As a result, Cheoneun Temple, Yeongeun Temple and Sinheung Temple and Samhwa Temple in Donghae-si commonly formed the Sect of Mt. Sagul in the later Silla. Through various records, it is found that these Buddhist temples were founded by National Master of Beumil, who led Buddhist culture in the Yeongdong region. Considering various Buddhist relics and Buddha statues produced during the later Silla dynasty, it is empirically shown that Buddhist culture prospered in this area, too. In addition, it is noted that of Buddhist culture that moved north along the Baekdudaegan connecting the inland area of Gyeongsangbuk-do to Mt. Taebaek, some influence moved north along the eastern coast, passing the Samcheok area with Mt. Taebaek and Mt. Hambaek area as the border. It is noted that this tradition of Buddhist culture continued till the Goryeo dynasty period through Lee Sung-hyu, Ganjang Temple, Stone Buddha statue in Imwon-ri ruins and remains of stupa in Taepyeong-ri ruins. Buddhist culture in the Samcheok area during the Joseon dynasty can be found through various records, Buddha statues, Buddhist paintings and temple structures. By summing up, the “Repairing Record for Buddha Statue” found in the Buddha statue in Cheoneun Temple and various records on the history of temples produced during the Joseon dynasty period, it is noted that the traditional Buddhist temples in this area were organically connected. This is shown in the legends of establishment, the records of cooperation among various Buddhist temples and the fact that painters active at Woljeong Temple or Mt. Keumgang drew various Buddhist paintings in Buddhist temples in this area. In addition, Calligrapher Kim Gyu-jin’s handwriting remains until recently, and it is famous as a place where Master Tanhue stayed and studied. Cultural assets like these clearly show that the traditional Buddhist temples are Buddhist temples representing this area and the center of Buddhist culture in the area. The researcher investigated the legends of establishment, the processes of change and the historicity of the traditional Buddhist temples in this area, and it is very regrettable that it has insufficient descriptions about the remains and relics based on an in-depth survey and research. Therefore, it would be necessary to conduct a close survey and collect data on the traditional Buddhist temples and ruins of the temples continuously, and to summarize and understand Buddhist culture in the Samcheok area comprehensively through a study based on this. Through this work, the distinguishing features of Buddhist culture in this area from other areas could be found, which would give a great help in establishing the identity of the culture in the Samcheok area.

          • 불교 경전에 나타난 인도 불교음악 연구

            권기현 ( Kwon Gi-hyun ) 위덕대학교 밀교문화연구원 2017 密敎學報 Vol.18 No.-

            본 연구는 불교 초기 경전에 나타난 음악적 요소를 시대적 입장에서 불교문학적 의미와 의례적 내용 및 승가의 활용성에 대한 고찰이다. 인도 불교음악에 대한 시대구분은 첫 번째 시기로 부처님의 탄생에서 열반까지, 두 번째는 열반에서 제 3차 결집시기, 세 번째는 밀교 시대로 나누었다. 첫 번째 시기 동안 부처님은 승려와 비구니들이 음악을 연주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기에 불교음악이 발전할 수 있는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포교적 차원에서 약간은 인정되었는데 특히 재가신자들을 위해서는 완전하게 금지한 것은 아니었다. 두 번째 시기 동안은 불교 음악에 대한 많은 고고학적 증거들과 더불어 찬불, 찬탄 등 송영 문학적 측면들이 경전을 통해서 많이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시기는 실제적인 불교 의례 음악의 가치가 중요시 되기 시작하고 경전 낭송 시 암기와 문해력에 음악이 중요한 것으로 강조되고 있다. 그리고 각 부파들도 불교음악과 의례에 깊은 관심과 활동을 보이고 있는 시기로 볼 수 있다. 이를 뒷받침 하는 고고학적 증거로 불탑이나 문헌들에 묘사된 몇몇 악기들과 그 특징들에 대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세 번째 시기의 특징은 인도의 불교음악이 밀교의 전파와 더불어 국경 밖 많은 불교국가들에게 전파되면서 현재 남아 있는 차르야 음악으로 대표된다. 이는 12-13세기에 네팔과 티벳, 중국으로 이동했던 진정한 불교적인 의식 음악으로 간주된다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 또한 한국 불교음악이 특정 시대에 이 3시기의 불교 음악이 한국에 소개되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 인도의 상례문화

            권기현 ( Kwon Gi-hyun ) 위덕대학교 밀교문화연구원 2015 密敎學報 Vol.16 No.-

            인도는 어느 문화권보다 역사적으로 긴 시간을 갖고 있고, 더불어 지리적으로도 다른 나라에 비교할 수 없는 넓은 공간을 가진 나라이다. 인도문화를 설명할 때 가장 먼저 등장하는 말이 多樣性이다. 여기에 調和라는 말을 붙여 ‘다양성의 조화’라는 개념이 인도라는 문화체를 설명하는 알파와 오메가이다. 인도에도 많은 통과의례가 있다. 단순히 ‘많다’라는 표현만으로는 불충분하다. 각각의 사상이나 종교마다 다르고, 시대와 지역적으로 도 다르다. 따라서 여기서는 인도의 대표종교인 힌두교와 대표지역인 북인도로 제한한다. 인도의 통과의례 중에서 최후의 통과의례에 해당하는 장례의례에 관해 그 절차와 의미를 구분해 살펴보았다. 힌두교도들의 통과 의례 중에서 가장 마지막에 해당하는 장례식을 그 절차와 내용에 따라 贖罪儀式, 火葬儀式, 拾骨儀式, 遷度儀式 구분해 그 절차와 의미를 분석했다. 힌두교도들은 죽음과 죽음 이후의 삶은 현생과의 영원한 단절이 아니라 한 생에서 다른 생으로 옮겨 가는 전이 과정과도 같다. 삶과 죽음이 끊임없이 연결되는 순환으로 받아들인다. 존재는 五大으로 구성되어 있는 육신과 윤회의 매체가 되는 微細身 그리고 영원성을 지니는 변화하지 않는 영혼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을 구성하는 이 요소들 가운데 물질이 아닌 영혼을 제외하고 나머지 모든 것들이 변형된다. 사후의 삶이란 영혼이 거치는 중간 정거장일 뿐이다. 따라서 죽음 이후의 육신에서는 무의미를 갖지 않는다. 따라서 힌두교도들은 상례는 고대부터 내려오는 업과 윤회에 근거한 종교적 믿음에서 나온 장례절차임을 확인했다. 火葬은 그들이 종교적으로 영원히 사는 또 하나의 방법이며 희생제의 일종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India has a long history than other cultural areas and is very wide geographically. An word first appeared to explain Indian culture is diversity. Here, the word harmony is added so that concept called ‘harmony of diversity,would be alpha and omega to explain Indian culture. Like other countries, there are many Rites of Passage (samskara) in India. Expression that says simply ‘much’ is not enough. India is complex cultural area where even though same name is used, its content is outstandingly different. Rites of Passage are same case. Rites of Passage are different according to thoughts or religion. They are also different according to era and region. Accordingly, here, representative religion and region are restricted to Hinduism and Northern India respectively. Among Rites of Passage in India, this writing reviewed procedure and meaning of funeral ceremony which is last Rites of Passage. The author investigated funeral ceremony of Hindus dividing its procedure and content into Atonement(贖罪儀式), Cremation(火葬儀式), Bones Collection(拾骨儀式), Trophonius(遷度儀式). To Hindus, death and life after death is not eternal separation from present life but it is only transition process from this life to another life. Life and death is accepted as an endless cycle. They think that existence is composed of physical body made by Five matters(五大), suksmasarlra(微細身) which is medium of samsara, and unchangeable spirit with eternity. Everything besides spirit among the elements composing of human changes. When human dies and is cremated, human body returns to Five matters and is reborn to variable living beings according to karma. So to Hindus who believe in karma and samsara, death is not complete extinction but state of non-physical existence and is a way to another life. Life after death is only intermediate station where a spirit passes by. Accordingly, body after death has no meaning. It was identified as funeral procedure come from religious bdief based on karma and samsara originated from ancient times. Cremation is another method with which they have eternal life in rdigious way.

          • 밀교(密敎)의 지옥관(地獄觀)

            김영덕 ( Kim Young-deuk ) 위덕대학교 밀교문화연구원 2016 密敎學報 Vol.17 No.-

            밀교에서 지옥은 일반적인 대승경전에 설해 있는 대로 唯心의 지옥을 설하는 것이나 지옥에 가게 될 행위가 교훈적으로 금지되어 설해지고 있는 것은 차별이 없으나 지옥고의 세세한 부분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다. 그러면서 墮地獄의 원인으로 일반 소ㆍ대승경전 에서 설하는 五逆罪나 인륜을 해치는 행위와는 달리 밀교에서는 아사리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비밀법을 엄수하지 않으며, 삼매에서 물러나는 것 등 성불을 장애하는 것을 금지하고자 여기에 중점적으로 墮地獄을 설하고 있다. 더욱이 종자와 진언, 인계,因果의 성품이 공함을 관찰함에 의해 모든 죄장을 제거하는 방향으로 역점을 두는 破地獄의 묘사가 두드러지게 설해지고 있다. 이것은 석존의 대기설 법이 그러하듯이 미혹한 중생들을 교화하기 위한 방편적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할 것이다. 즉 밀교의 지옥관에 있어서 중요한 것 은보리심이 최대의 목적이 되며 올바른수행의 길로 이끄는 指導의 성격을 지닌다는 것이다. 밀교에서 설하는 지옥은 방편이기에 불보살의 깨달음을 표현한 만다라의 세계에 포함될 수 있다. 비로자나불을 중핵으로 한 만다라에 불보살의 불국토를 위시하여 지옥중생을 위한 外曼茶羅의 공간까지 있는 이유는 大悲로써 중생들을 성숙시키는 차제의 의미가 있음을 말한다. 부처의 청정한 만다라세계는 중생들의 생사세계와 아무런 접점이 없는 것이 아니라, 중생들의 미혹세계에 구제작용을 펼치는 세계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Hell in esoteric Buddhism has a characteristic that it is developed thoroughly as the mind itself (yusim) by the principle of conditioned arising. As described in the general Mahayana Sutras, Hell that appears in one’s mind is described. However, there is no difference between esoteric Buddhism and the Mahayana Sutras in the description that the acts that condemn one to Hell are described instructively. In addition, concerning the detailed parts of the pains in Hell, esoteric Buddhism does not mention in particular. There is a big difference in the reason for going to Hell. Unlike in the Mahayana Sutras, doing bad things or behavior harming the human race makes one go to Hell, in esoteric Buddhism, it is explained that one goes to Hell if one does an act that is an obstacle against enlightenment, e.g. If one does not follow the teacher's teaching, does not keep the secret Dharma, or recedes from Samadhi (concentration). In other words, what is important in view of Hell in esoteric Buddhism is that asceticism is the greatest purpose, which has a character of a guide that leads to the right asceticism. This is part of efforts to teach foolish people like Buddha’s method of teaching in conformity with the mental capacity of the thought. Hell described in esoteric Buddhism is an expedient means, which can be included in the world of Mandala that expresses enlightenment. Buddha’s pure world of Mandala can be seen as a world that is engaged in helping the foolish world of beings, instead of not having any point of contact with the world of their life and death.

          • 19세기 화사(畵師) 원담내원(圓潭乃圓)과 해운익찬(海雲益贊)의 밀교(密敎)이해에 대한 연구(硏究)

            최성규 ( Choi Sung-goo ) 위덕대학교 밀교문화연구원 2016 密敎學報 Vol.17 No.-

            다양한 밀교적 도상과 색채를 통해 한국의 金剛界 37尊 만다라 전개의 결정체라 할 「大芚寺 法身中圍會 37尊幀」을 그린 圓譚乃圓과 海 雲益贊 두 佛母의 佛書 양식을 살펴보는 것은 韓國의 金剛界 37尊 도상의 특징을 규명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또한 행장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은 단순히 기능적 역할만 한 것이 아니라 일반미술에 대한 기량과 밀교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하고 있다. 원담내원과 해운익찬 佛畵의 특징은 차분하고 절제된 분위기의 필선과 그러한 필선에 적절하게 잘 어울리는 채색법이나, 의습 표현이 힘차고 과감하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또한 수묵 禪書에서나 가능할 것 같은 대범한 기법이 채색으로 그려지는 본격 佛畵에 사용되고 있는 점은 중요한 특징이라고 하겠으며 필선의 장점을 살린 홍탱화도 주목된다. 그리고 이들 佛書에 전반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은 瑞雲의 표현과 관련된 하늘의 표현이다. 주색과 녹청색을 주조색으로 하여 변화 풍부하게 그려 주고 하늘은 거의 검정에 가까운 짙은 청색으로 처리하여 다양한 색감을 통일시키면서 화면에 안정감을 주고 있다. 이와 같이 원담내원과 해운익찬 佛書의 실험성과 독자성은 당시 淸나라로부터 유입하는 洋靑의 적절한 사용과 함께 일반미술에 이해와 외래사조의 수용에도 선구적이었기에 「大芚寺 法身中圍會 37尊幀」과 같은 한국형 금강계만다라가 그려 질 수 있었다고 하겠다. “37 Sacred Images Tanga Painting of the Daedun Temple” is a master piece of 37 sacred images of the Vajradhatu Mandala drawn through various esoteric Buddhist paintings and colors. This study analyzes the styles of Buddhist paintings of Naiwon and Ikchan, the two painters who drew these pictures. Based on this, this study consists of the contents that would investigate the characteristics of 37 sacred images of the Vajradhatu Mandala of South Korea. In addition, the following can be found through the two painters’ lives. This study noted that they did not simply play a functional role, but they also presuppose the ability of general art and the understanding of the Esoteric Buddhism in these pictures. The characteristic of Naiwon and Ikchan Buddhist paintings is their drawing lines in a calm and restrained atmosphere, which suit appropriately with the paintings. Also, the coloring method appears forcibly and resolutely as compared to other Buddhist paintings. For example, the fact that the bold technique, which might be possible in the black and white drawings of Zen, is used for the first time in Buddhist paintings drawn in the form of color paintings, which is an important characteristic. In addition, attention is paid to the red tanga paintings, too, which utilized the strengths of the drawing lines. The overall characteristic of these Buddhist paintings is the expression of the sky related to the expression of auspicious clouds. They drew changes richly, using the red and green colors as core colors, while they used the dark blue color, almost like the black color in the sky to unite various colors and give stability to the pictures. Like this, the experimental nature and unique characteristic of Naiwon and Ikchan Buddhist paintings used the dark blue color (Indigo) imported from the Qing dynasty. This means that they pioneered in accepting foreign trends on the base of a sufficient understanding of traditional general art. Thus, it was the background in which Korean-style 37-Honoured Ones within the Diamond World Mandala like “37 Sacred Images Tanga Painting of the Daedun Temple” could be dra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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