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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Democracy, Political Activism and the Expansion of Rights for International Migrant Workers in South Korea and Japan : A Comparative Perspective

        Timothy C. Lim(티모시 ) 고려대학교 일민국제관계연구원 2006 국제관계연구 Vol.11 No.1,2

        이민은 국제적 현상으로서 전세계적으로 큰 파급효과를 미치고 있다. 이민에 대해 충분한 내성을 가지고 있던 것으로 보였던 국가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과 일본이 대표적 사례다. 양국은 오랫동안 민족적 순수성과 동질성을 유지해 온 국가로서, 국내로의 대규모 이민에 대한 혐오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다른 산업화된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한국과 일본 모두 경제적 성장을 위한 필수요소를 무시할 수 없었다. 1980년 후반의 고도성장과 산업화, 급진적 사회변혁 끝에 대규모의 이민자 문제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1990년대 중반에 이르러, 두 국가는 국제적 이민 노동자의 주요한 목적지가 되었다. 특히 노동을 위한 이민은 이제 자연스러울 뿐만 아니라 예측 가능한 경제 지표로까지 변하게 되었다. 이제 이와 같은 “예측가능성”은 국제적 이민의 기본 전제가 동질의 효과를 가지도록 만들고 있다. 바로 두 국가로의 “이주 과정”이 상당한 유사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본 연구의 목적은 이주 노동자들의 권리와 특별히 관계가 있다. 직관적으로도 두 국가의 이주 노동자들은 심각한 인권 침해를 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두 국가는 자국의 윤리적 배경과는 관계없이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편협한 자세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두 국가에서 나타난 결과는 달랐다. 권리의 제한보다는 상당한 확장이 진행되었다. 이와 같은 결과는 많은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오랫동안 “이방인”에 대한 혐오감을 가지고 있었던 한국과 일본은 어떻게 외국인 노동자들의 권리를 제한하지 않고 확장하게 되었는가? 어떤 요인이 권리확장에 기여하는가? 일본과 한국은 예외적 사례인가, 아니면 국제 이민의 경향을 대표하는 일반적 사례인가? 이와 같은 일련의 질문들은 “이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특히 국가의 주권과 통치권과 관련하여 중요한 질문이 아닐 수 없다. 이 질문에 대한 필자의 간단명료한 대답은, 일본과 한국에서 보여지는 외국인 이민자의 권리확대가 일반적 추이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Christian Joppke가 말한 “Self-limited sovereignty”를 전제로 한다. Selflimited sovereignty의 개념은 외국인 노동자들의 권리 확보가 필수적으로 국내적 절차를 통해서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본다. 권리의 확대를 국가 주권에 대한 증가하는 외부적 제한으로 여기는 “지구화”와는 엄밀히 대비된다. 그러나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든, 국가의 정치적 목표를 위한 행위가 갖가지 활동들과 기구에 의해 제한된다는 것은 사실이다. 또한 이해해야 할 사실은, 권리의 신장이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자신과 타인을 위한 더 큰 권리를 수호하려는 명백한 의도를 가진 국내적 행위자가 의도적으로 힘과 조직을 활용할 때에만 가능하다.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행위의 주체가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국제 이주 노동자, 종교나(노동조합을 포함한) 시민단체, 심지어 지방 정부 또한 변화를 위한 잠재적 행위자일 수 있다. 국내 행위자의 힘의 원천 또한 굳이 국내적일 필요가 없다. 노동인권에 대한 국제 조약이나 인권에 대한 초국적 규범과 같이 국제적이거나 초국가적 원천 또한 활용 가능한 것이다.

      • KCI등재

        Ideas, Discourse, and the Microfoundations of South Korea’s Diasporic Engagement: Explaining the Institutional Embrace of Ethnic Koreans Since the 1990s

        Timothy C. Lim(티모시 ),Changzoo Song(송창주) 고려대학교 한국사연구소 2021 International Journal of Korean History Vol.26 No.2

        이 글은 한국사회가 1990년대에 들어 해외 한인들에 대한 그때까지의 상대적 무관심 대신 “디아스포라 포용정책”을 채택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고자 한다. 언뜻 보면 이런 정책적 변화는 한국 정부가 도구주의적 계산에서 - 즉, 해외에 거주하는 한인들의 인적, 물적 자원을 “이용”하겠다는 계산 - 비롯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도구주의적 계산이나 관심은, 비록 중요하기도 하고, 또 실제요인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런 정책상의 변화에 절대적으로 필요하거나 또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아니다. 저자들은 담론으로 시작되는 제도화와 마이크로 파운데이션 접근에 의거하여, 1990년대 들어와 한국 사회가 디아스포라 포용정책을 채택한 배경에는 의도적인 요인도 있었고, 동시에 또 해외의 한인들을 “동포”와 “민족 자산”으로 재규정하는 (이는 아주 강력한 담론적 결합이다) 우연한 상황도 있었다는 것을 주장한다. 해외의 한인들을 이런 방식으로 재 규정하는 것은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고, 그 배경에는 정주영 (현대그룹 전회장) 같은 비즈니스맨이나 서울대 교수로서 후에 재외동포재단의 제3대 단장을 역임한 이광규 교수같은 의식적 행위자나 담론적 행위자가 있었다. 그리고 그 후에는 언론인, 시민사회의 운동가들, 종교 지도자들, 그리고 해외 한인 자신들이라는 행위자들이 나와, 이들도 해외 한인들을 담론적으로 “재규정”하는 과정에서 일정한 역할을 했다. 우리는 담론적 제도화와 마이크로 파운데이션 접근방식에 의거하여 아이디어와 담론이 결국은 실제 제도를 변경시키는데 중심적 역할을 한다는 것을 주장한다. 그리고 이것이 1990년대에들어 한국 사회가 해외 한인들에 대해 그 때까지의 상대적 무관심을 버리고 “디아스포라 포용정책”으로 변화하게된 배경이라고 생각한다. This article endeavors to explain South Korea’s institutional turn to “diaspora engagement,” which began in earnest in the late 1990s. This shift can easily be attributed to instrumentalist calculations on the part of the South Korean state, i.e., as an effort to “tap into” or exploit the human and capital resources of ethnic Koreans living outside of the country. But instrumental calculations and interests, while significant and clearly proximate, were not the only nor necessarily the most important (causal) factors at play. Using a discursive institutional and microfoundational approach, we argue that underlying the institutional shift to diaspora engagement, was both an intentional and unintentional reframing of the Korean diaspora as “brethren” and “national assets,” a powerful discursive combination. This reframing did not come about automatically but was instead pushed forward by sentient or discursive agents, including Chŏng Chu-yŏng (the founder of Hyundai) and Yi Kwang-gyu, who was a Seoul National University professor and later the third president of the Overseas Koreans Foundation. Journalists, religious leaders and other activists within South Korea’s NGO community, as well as ethnic Koreans themselves, also played key roles as discursive agents in this reframing process. Central to our discursive institutional and microfoundational approach is the assertion that ideas and discourse were key causal factors in the institutional shift to South Korea’s engagement with the Korean diaspo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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