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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가의 범도덕주의에 대한 비판적 성찰 儒家의 文藝觀을 중심으로-

        황갑연 한국동서철학회 2013 동서철학연구 Vol.67 No.-

        유학철학의 발전사에서 문예와 도의 관계는 주종 흑은 본말로 설정되어 있다. 이러한 입장은 공자에서부터 시작되어 순자에 이르러 체계화되었고, 송대의 주희에 이르러 도기론(리기론) 과 연계되어 존재론적 근거까지 확보하게 된다. 필자는 도와 문예의 위상을 도기론을 근거로 규정하면, 도가 主· 木· 尊의 위치를 차지하고, 문예는 從· 末· 卑의 지위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필자의 견해는 문예활동에 대한 도학자 의 행적으로 근거로 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文以賁道 · 文以載道 · 文道合- 이라는 문도 론을 근거로 한 것이다. 이러한 양자의 위상 설정으로써는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문예관을 도출하기 어렵다. 필자는 문예와 도를 본말 혹은 주종의 관계가 아닌 상호 수평적인 위상’ 전제로 유기적 관계로 설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문과 도는 심미주체와 도덕주체라는 상이한 두 주체에 의하여 성취된다. 그러나 문이라는 통로가 전제되지 않으면 도는 표현될 수 없고, 또 도로부터 일탈한 문 (예) 흔 자칫 화려한 형식과 문사에만 치중하여 지적완응(知的玩弄)으로 흐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나치면 패덕(敗德) 의 문(예)으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에 양자의 유기적 연계가 요청된다. 따라서 필자는 이 논문에서 상호간의 독립성을 긍정하고서 상보적 입장에서 상호간의 연계성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在儒家哲學發展史, 文藝與道德之關系, 一直設定爲主從或本末或尊卑, 這種文藝與道德的位相, 則孔子爲始, 到荀子具備比較完整的理論體系, 再到宋代之朱熹, 與理氣論(道德淪)合成唯一, 則文道論便具有存在論的根據。 但如果把文與道之位相以道器論(理氣淪)來規定, 便道德上於主·本·尊之地位, 而文藝下於從·末·卑之地位。筆著的這種說法幷非以道學者之實際文藝活動爲根據, 乃是據於他們所指出的“文以貫通”(韓愈)。“文以載道”·“文道合一”(朱熹)來說的。 這種文道觀能否導出合於當代時代精神? 筆者認爲要指出合於當代的時代精神的文道觀, 把道與文藝的地位當設定爲非主從或本末, 而肯定兩種學術的平等地位, 幷且圖謀互相有機的關系, 文藝與道德之成就非同一主體的事, 文藝屬於審美主體的活動領域, 道德屬於道德主體的領域, 但無文則道無法實現自己, 而且離背道的文藝就易重於文辭的形式而流於知的玩弄之地步, 甚至落於敗德之文藝。 故當要請文與道的連擊之必要性, 因此筆者在此論文, 肯定文藝與道德的平等地位, 而就相補的立場來探究兩種主體的互相連繁之必要性。

      • KCI등재

        유가철학에서 인공지능로봇 지위 설정에 관한 試論

        황갑연 한국중국학회 2019 중국학보 Vol.88 No.-

        This study set out to raise an ontological question about artificial intelligence(AI) robots in the position of Confucian Philosophy, discuss its ethical status, and explore Confucian Philosophy's contributions to the establishment of ethical rules about AI robots. If ethical issues about AI robots are discussed only within the scope of moral considerations, all the concerned ethical and legal responsibilities will fall on human beings. A solution is to expand the application scope of the old ethical norms. If, however, people recognize the rights of AI robots and have room for recognizing them further as subjects, they should ask an ontological question, "What are AI robots?" Only after answering the question can they determine the rights and subject status of AI robots and establish dominant ethical principles and norms based on them to prepare future situations. Confucian Philosophy has a little bit unique regulations about the status of human beings. According to Confucian Philosophy, the superiority of human beings stems from the possession and realization of their self-consciousness ability for moral values. Then, where should the status of AI robots be set? Is their status between people and animals, between animals and plants, or between plants and inanimate objects? In Confucian philosophy, human beings are elevated to the status of lord of creation as it takes into first consideration only their moral perceptions and practical abilities and conducts no specific discussions about their superiority among perception, vital force, and ki. The academic circles should thus have enough discussions about the status of AI robots that are equipped with partial intelligence but have no perception of feelings or emotions and vital force. The investigator is confident that Confucian philosophy's ontological regulations about all things can serve as very persuasive alternatives to the ethics of AI robots currently in discussion. 필자는 이 논문에서 유가철학의 입장에서 인공지능로봇에 대한 존재론적 물음을 제시하여 그것의 윤리적 위상을 논의한 후에 인공지능로봇 윤리 제정에서 유가철학의 공헌을 모색할 것이다. 인공지능로봇에 관한 윤리적 문제가 단지 도덕실천 고려대상이라는 범주에서만 논의된다면 모든 윤리적 책임과 법적 책임은 인간에게 귀속되기 때문에 기존의 윤리규범을 확대 적용하면 된다. 그러나 인공지능로봇의 권리를 인정하고, 더 나아가 주체까지 인정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면, ‘인공지능로봇은 무엇인가’라는 존재론적 물음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그런 후에 인공지능로봇의 권리와 주체 자격 여부를 결정할 수 있고, 이를 근거로 윤리의 대원칙과 규범적 절목을 제정하여 미래의 사태에 대비할 수 있다. 인간존재 위상에 대한 유가의 규정은 조금은 특수하다. 유가철학에 의하면, 인간의 우월성은 인의의 도덕가치에 대한 자각능력의 소유이고 실현이다. 그렇다면 인공지능로봇이라는 존재의 지위는 어느 곳에 설정해야 하는가? 인간과 동물 사이에? 동물과 초목 사이에? 초목과 무생물 사이에? 유가철학에서는 인의예지에 대한 지각과 실천 능력만을 우선선적으로 고려하여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추대하였을 뿐 지각과 生意 그리고 氣 사이의 우월성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논의하지 않았다. 따라서 부분적인 지능을 갖추고 있지만, 감정의 지각 작용(희로애락과 사단지심을 포함한 감정)과 생의를 갖추지 않은 인공지능로봇의 지위를 어디에 놓아야하는가에 대한 학계의 충분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 필자는 유가철학에서 제시하고 있는 만물에 대한 존재론적 규정은 현재 논의되고 있는 인공지능로봇 윤리에 상당히 설득력을 갖춘 대안으로 제시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 KCI등재

        心學的東傳與創見 - 以王陽明與鄭霞谷爲中心 -

        황갑연 한국중국학회 2016 중국학보 Vol.77 No.-

        宋明理學發生在宋代, 到南宋出現朱子與陸象山這傑出的學者, 兩人之間所展開的朱陸之辨, 在中國 學術發展史, 占有非常重大的意義. 朱陸之辨之前, 在中國學術界爭論的主角是儒學與佛學, 但朱陸之辨 之後兩主角變成爲儒學(理學)與儒學(心學), 因此朱陸之辨,(理學與心學爭論之第一場) 可說是學術界的 一代公案. 到明代出現王陽明, 宋明儒學又面臨新的局面. 陽明龍場悟道之後, 提唱理不在心外, 幷且把孟 子所謂的良知這一槪念, 充實又擴張而提昇爲道德實體. 在陽明哲學, 良知是指孔子哲學的仁, 是指包含 良知良能與四端之心的道德主體, 是指象山的本心. 但陽明的致良知, 其結構?類似禪學, 因此受到當時 朱子學者的批評.(第二場) 陽明學傳入韓國之後, 其情況沒變, 韓國性理學者激烈地風激心學的骨幹義理, 而鄭霞谷却衛護陽明學, 與當時朱子學者展開論辨, 這可算是理學與心學爭論之第三場. 筆者在此論文, 以理氣論ㆍ心卽理ㆍ良知ㆍ知行合一這四個主劑來探索陽明與霞谷學術的異同. 筆者認爲霞谷的心學, 非但繼承了陽明心學的正傳, 某些地方有創見處.

      • 양명의 주자철학 비판의 적부에 관한 고찰

        황갑연 한국양명학회 2015 한국양명학회 학술대회 논문집 Vol.2015 No.10

        중국 남송 시기에 발생한 주자와 육구연 사이에 발생한 논쟁은 중국철학발전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차지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전까지 학술의 논쟁 주체가 유가와 불가였다면 주자와 육구연 논쟁이 시작한 후 불교가 논쟁의 주체에서 탈락하고 유가철학과 유가철학의 논쟁으로 변화되었기 때문이다. 주자철학에 대한 양명의 비판은 주자와 육구연 철학 논쟁(朱陸之辨)의 제 2막이라고 할 수 있다. 주륙지변과 명대에 발생한 양명과 주자학자 사이에 전개된 학술논쟁이 바로 지금까지 지속되어 온 理學과 心學논쟁의 근원이다. 이러한 논쟁은 학술발전사에서 매우 긍정적인 역할을 담당해왔지만, 그 역작용도 결코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것으로 상대방 학술의 정면적 가치를 긍정하지 않고 이단으로 규정하고 심지어 정치적 박해도가하였다. 지금까지 理學과 心學논쟁에서 理學이 다수를 차지하였기 때문에 일반적 현상은 理學이 공세를 취하고 心學이 방어적 자세를 취하는 형태였다. 그러나 명대 중말기에 등장한 왕양명은 오히려 理學에 대하여 공세적 자세를 취하면서 학술의 주도권을 장악하였다. 주자철학에 대한 그의 비판은 당시 주자철학자들을 경각시키기에 충분하였다. 그러나 그 역시 주자철학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말미암아 많은 곳에서 주자철학을 무고하고 있다. 이 논문에서는 바로 ‘비판의 올바르지 못함’에 초점을 두고서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The dispute between Zhuxi and Lujiuyioun, which occurred during Southern Song era, plays an important role in the historical development of Chinese philosophy. As is well known, before the dispute did the academic debates in Chinese philosophy mainly occurred between Confucianists and Buddhists. After the dispute, however, the mode of the debates entirely changed. That is, Buddhists did not take part in the academic and philosophical debates any longer, and the debates were led by only Confucianists. Yangming’s criticism on Zhuxi’s Philosophy can be regarded as a representative example. The criticism is often said to be the second act of the debate between Zhuxi and Lujiuyioun, and present a fundamental source of Lixue-Xinxue debate, which is lasting until now. Admittedly, we should recognize the debate’s academic contribution on Chinese philosophy. However, we should also identify and evaluate its adverse effects. For example, in the debate does each side rejected even the straightforward meanings, and prosecuted even politically its opposite side at the stake for heresy. Until now, the proponents of Lixue have been in the majority in the debate, and so the debate usually proceeded in the form of ‘the proponents of Lixue attack, the proponents of Xinxue defend’. In the middle and end of Ming dynasty, however, Yangming attempted to support Xinxue by pointing out severe problems of Lixue, and so he and his philosophy could seize academic initiative. In particular, Yangming’s argument leads the supporters of Zhuxi’s philosophy to reflect on their own philosophical theses. But, Yanming also made some mistakes and give some wrong arguments. This is partly because he misunderstood some features of Zhuzi’s philosophy. This paper aims to disclose Yanming’s incorrect understanding of Zhuzi’s philosophy.

      • KCI등재

        유가철학과 생태철학

        황갑연 대한철학회 2011 哲學硏究 Vol.120 No.-

        ‘환경윤리와 생태철학’은 출현 배경은 동일하다. 또한 환경윤리와 생태철학의 범위가 중첩되기도 하고, 목적 역시 동일한 점이 있다. 그러나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니다. 생태철학은 환경윤리의 형이상학적 근거를 탐구하는 것으로, 주요 연구 방향은 자연관과 세계관이다. 생태철학은 자연과 세계에 대한 인식을 근거로 인간과 자연의 존재 방식을 탐구하고, 자연에 대한 인간의 행위 방식, 즉 행위규범을 탐구하는 것이다. ‘생태철학에 대한 유가철학의 존재론적 입장’은 유가철학의 자연관과 세계관에 대한 해설이다. 필자는 이곳에서 『중용』의 天命之謂性과 주희철학의 理一分殊 및 氣의 유기적 관련성을 주요 소재로 하여 해설하였다. 『중용』의 ‘天命之謂性’과 주희의 ‘理一分殊’는 자연과 인간의 내재적 가치를 수평적으로 긍정한 표현이고, 氣는 개체와 개체, 개체와 자연, 인간과 자연의 유기적 관련성을 나타내는 주요 개념이다. 그러나 유가철학에서는 만물의 내재적 가치의 평등성과 一氣에 의한 유기적 관련성만을 강조하지 않았다. 만일 이것만을 강조하게 되면 자칫 인간 자체가 자연화되어 기계론적 세계관으로 전락할 수 있다. 따라서 유가철학에서는 인간과 자연의 동일성과 함께 차별성도 함께 긍정한다. 이 차별성이 바로 주체성의 근거이다. 필자는 이곳에서 인간 기품의 우월성과 『중용』의 成物 및 萬物一體觀을 중심으로 인간과 자연의 동일성과 차별성을 동시에 긍정하는 유가철학의 특색을 해설하였다.

      •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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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유가철학에 있어서 理性과 欲望의 관계 : 先秦儒家(孔孟荀과 中庸 및 樂器)를 중심으로

        황갑연 한국중국학회 2002 중국학보 Vol.45 No.-

        在儒家哲學, 道德理性與情欲之關係, 簡單地說, 則理欲關係. 理與欲的關係問題, 是中國傳統文化, 尤其是儒家倫理文化中的一個核心問題. 從孔子的‘克己復禮’到孟子的‘養心寡欲’與筍子的’節欲’, 再從漢儒的‘成性防欲’到唐儒的‘性善欲惡’, 最後從兩宋的‘存天理去人欲’到明淸的‘天理從人欲中見’, 無不是當時文化界之焦點問題. 筆者認爲儒家哲學的根本精神是調和. 因此在此論文, 要就調和這意義, 開展道德理性與情欲之關係. 理與欲之關係, 從整個儒家的基本脈絡看, 可說三種形態. 一爲‘以理爲本的理欲統一觀’. 二爲‘理欲對立觀’. 三爲‘以欲爲本的理欲統一觀’. 大致說來, 先秦儒家(孔孟筍與中庸以及樂記)竝不取理欲對立觀, 理取合理合情的理欲交融觀. 不過這理欲交融的統一觀中, 理與欲竝不是互相平等的交融, 乃是以理爲本或大體而以欲爲末或小體. 在先秦儒家的價値論, 情與欲竝不具有獨立的價値, 情與欲必依理顯現時, 才具有價値. 無論孔子的‘克己復禮’與孟子的‘養心寡欲’, 還是筍子的‘節欲觀’, 無一不是站在道德理性的立場上來對情欲加以認可. 然則, 我們生命中, 情與欲구能站有理性主導下之道具的價値??? 無法獨立於理性之支配??? 內聖外王代表先秦儒學的道德精神, 而詩書禮樂代表先秦儒學的藝術精神. 在藝術精神, 擔當主導的役割之主體, 就是情與欲. 情與欲是審美之主體, 卽是感性生命. 批除感性生命(情與欲), 不能談論文學學藝術. 在先秦儒家, 詩書禮樂擔任把莊嚴的人生提昇於藝術境地, 這是關於內聖之事. 竝且通過詩書禮樂而完成人文敎化, 這是關於外王之事. 除此之外, 在建立文明國家與維持共同體的秩序, 雖然情與欲容易 被視之爲克服或是節制之對象. 但人之生命可分爲社會與個人生命. 社會生命中, 社會優先於個人, 最高的價値是調和. 而個人生命中, 個人優先於社會, 嚴選好的價値不必是調和, 而可能是自由. 脫於社會而追求個人生命的自由之主體就是情與欲. 由此緣故, 筆者雖不能不肯認儒家的節欲主義, 但對於情與欲只肯定節欲, 則容易流於性善欲惡之立場. 這是在人的存在意義中, 只承認社會性而抹殺個人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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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서양철학 유사 개념의 인용을 통한 설명 방식의 득(得)과 실(失): 주희철학의 리기(理氣) 개념 설명 방편으로써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과 질료는 적합한 소재인가?

        황갑연 한국중국학회 2011 중국학보 Vol.64 No.-

        在大學, 敎東西方哲學思想時, 引用已所認知的類似槪念來說明某一思想的主要槪念, 此是一個普遍的現象. 雖然如此, 沒有人認爲屬於互相不同的系統的類似槪念之意味是完全相同的. 因此以타作爲方便來傳達意味有用, 誰也不會反對方便, 反而積極地同意此方式. 因爲用方便, 一邊能介紹兩槪念的類似意味, 同時亦能介紹兩槪念的差別意味之故. 然而, 假如由於所取方便的類似槪念之本身固有的意味, 有歪曲對方槪念的意味之可能性, 却會得少失多. 在朱熹哲學, 理氣兩槪念的意味本身是抽象的, 幷且理氣槪念所涉及範圍亦甚廣. 爲了更容易地說明朱熹所指出的理氣槪念, 許多的學者花不少的時間來조了類似槪念. 到目前爲止, 在亞裏斯多德的形而上學所出現的形相與質料兩槪念最爲適當. 筆者亦肯定亞裏斯多德哲學的形相與質料來解說朱熹哲學的理氣槪念, 的確有用. 但認爲危險性亦不少. 筆者在此論文, 雖介紹朱熹的理氣與亞裏斯多德的形相質料之類似性與非類似性, 但主要目的幷不在類似性, 却在非類似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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