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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과 물질의 통일성에 대하여

        라너(Karl Rahner),이영덕(번역자) 광주가톨릭대학교 신학연구소 2013 神學展望 Vol.- No.181

        칼 라너(Karl Rahner)는 1967년 잡지 Neues Forum의 제16권에 이 논문을 기고하면서 당대에 레스책 콜라코브스키(Leszek Kolakowski)의 “부정적 신비주의로서의 유물론”(“Materialismus als negative Mystik”, Neues Forum, Juni-September, 1965), 아르민 뷜더무트(Armin Wildermuth)의 “그리스도교적 유물론”(“Christlicher Materialismus”, Neues Forum, Marz 1966), 에른스트 블로흐(Ernst Bloch)의 “계시로서의 유물론”(“Materialismus als Enthullung”, Neues Forum, Januar 1967)에 의해 전개된 유물론 논쟁에 참여한다. 영과 물질의 관계는 철학과 신학 안에서 지속적으로 다루어져 왔던 주제이다. 육체를 영혼이 머물고 있는 장소로 보는 관점이 있었는가 하면, 육체가 영혼에 주어지는 것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또는 영을 그저 인간 상상력의 산물로 취급하면서 물질만을 강조하는 입장도 있었다. 이에 직면해 라너는 영과 물질이 두 개의 서로 완전히 구분되는 존재방식이 아니라 한 존재자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두 가지 접근방식이라는 입장을 취한다. 그러므로 라너에 따르면 창조물 중에 그 어느 것도 순수한 영으로서 또는 순수한 물질로서만 존재할 수 없다. 모든 존재자는 영적인 물질이며, 더욱더 영적인 물질로 발전하는 방향으로 정향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교가 말하는 육신의 부활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이 논문에 나타난 라너의 입장을 이해한 후 『세계 내의 영』(Geist in Welt)이나『말씀의 청자』 (Horer des Wortes)와 같은 그의 주요 저작들을 읽는다면 이 저작들이 다소 수월하게 읽혀질 수도 있으리라 여겨진다.

      • KCI등재

        죄인들의 교회

        라너(Karl Rahner),김태균(번역자) 광주가톨릭대학교 신학연구소 2015 神學展望 Vol.- No.189

        오늘날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사회 공동선 실현을 위한 자기 희생과 개인적인 편안하고 조용한 신앙생활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다. 교회는 한편으론 사회교리를 통하여 사회 정의와 공동선 구현을 위한 그리스도인들의 책임을 이야기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교회의 사회참여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교회의 사회참여에 대한 부정적 시선은 근본적으로 ‘세상은 악하고 교회는 거룩하다’는 성(聖)과 속(俗)을 인위적으로 구분하려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기인하고 있다. 이런 시각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 프란치스코 교종의 “자기 안위만을 신경 쓰고 폐쇄적이며 건강하지 못한 교회보다는 거리로 나와 다치고 상처 받고 더럽혀진 교회를 저는 더 좋아합니다”(??복음의 기쁨?? 49항)라는 고백은 무척 듣기에 거북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라너의 ‘죄인들의 교회’라는 글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성찰하고 묵상하도록 인도한다. 라너에 따르면 교회를 구성하는 구성원들은 죄를 짓는 나약한 인간(죄인)이기에 그들이 교회의 이름으로 (교회의 이름이라는 미명하에) 행하는 행위 역시 죄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교회의 구성원들이 짓는 죄는 바로 교회의 죄가 되는 것이다. 교회는 죄를 짓지 않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 없기 때문에 거룩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근원이 삼위일체 하느님의 거룩함에 있기 때문에 거룩한 것이다. 거룩함의 원천이신 하느님께로부터 파견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설립하시고 성령께서 교회 안에 함께 하시고 활동하시기에 교회는 본질적으로 거룩하다. 이것이 우리가 ‘거룩한 교회를 믿습니다’라고 고백하는 신앙의 근본 내용이다. 그러므로 라너에 의하면 ‘교회가,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세상의 일에 관여하여 행동하는 것은 거룩한 교회를 더럽히는 것이고 그래서 죄를 짓는 것이다’라는 사고는 결코 그리스도교적인 생각이 될 수 없다. 오히려 ‘불의가 판을 치는 세상을 뒤로 하고 교회라는 철옹성 안에 숨어서 천국만을 바라보며 조용히 신앙생활을 하라’는 생각이 비그리스도교적이다.

      • KCI등재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셨다

        라너(Karl Rahner),김태균(번역자) 광주가톨릭대학교 신학연구소 2020 神學展望 Vol.- No.211

        코로나19 사태로 시작한 2020년이 저물어 가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경제적 차이나 권력의 유무 등으로 인한 신분의 차이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또한 종교인과 비종교인,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 역시 평등하다는 사실도 증명해 주었다. 하지만 가난한 이들과 사회적 약자들에게 코로나19 사태는 견디기 힘든 삶의 후유증을 남기고 있다. 그런 가운데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이들 중에는 사람들로 하여금 종교를 시대의 소음으로 오해할 만한 모습들을 보여 주는 이들도 있었다. 올해의 성탄은 코로나 시대를 보내며 맞이하는 축제일이다. 과연 ‘사회인이면서 동시에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중의 감정’으로 성탄을 맞이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의 탄생은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칼 라너가 40여년 전에 행한 성탄 특강이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는 데 미약하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예수의 탄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라너는 다음의 네 가지 관점에서 성탄에 대한 묵상을 시도한다. 첫째, ‘아래로부터의 그리스도론’(Chritologie von unten)의 관점 아래에서 우리가 과연 ‘성탄절’을 예수의 탄생으로 믿으면서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 탄생(한 인간의 시작)을 예수의 삶에서부터 이해하고자 할 때 성찰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둘째, 라너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로부터 이해하는 성탄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그 이유는 ‘마침’(Ende)은 ‘시작’(Anfang)을 계시해 주기 때문이다. 셋째, 그렇다고 해서 이 묵상들이 역사 안으로 들어오신 영원하신 하느님 말씀의 강생에 대한 전통적이며 교도권적 성탄절 신학에 대해 침묵하거나 혼란스럽게 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라너는 우리가 스스로 고유한 실존을 완성해 가는 가운데 만나는 성탄절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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