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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 ( Choe Jae Hyeog ) 영남중국어문학회 2003 중국어문학 Vol.0 No.42
蘇軾은 詩文書畵에 두루 능통했던 대작가이면서 다방면에 걸쳐 많은 文論들을 내놓았다. 게다가 그 개인 문집이 여러 학자들의 노력에 힘입어 오늘날 상당히 완비되었다. 이러한 점들이 소식의 문예창작이론을 연구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소식의 문예이론에 대해 연구한 대표 논저로는 張健 선생이 쓴 ≪蘇軾的 文學批評硏究≫(1973년), 游信利 선생이 쓴 ≪蘇東坡的文學理論≫(1981년), 王世德 선생이 쓴 ≪儒道佛美學的融合蘇軾文藝美學思想硏究≫(1993년), 曾棗莊 선생이 쓴 ≪三蘇文藝思想≫(1995년) 등의 전문서적이 있다. 이 책들은 소식의 문예이론을 고찰하는 데 매우 큰 도움을 주었다. 이외에도 현재까지 많은 학자들의 저술을 통해 蘇軾의 文藝理論을 연구하여 가치 있는 연구가 많이 있어왔다. 그래서 본 연구를 통해 새로운 이론을 찾는다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본인이 기존연구결과를 살펴보면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기존 연구가 개별적인 이론의 나열에 불과하여 그 개별 이론을 하나의 문예이론의 틀 안에서 집약 시키지 못한 점과 이전의 연구가 개별적인 이론에 치우쳐 그 이론의 사작 시기를 통해 그 理論의 성숙을 살펴보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이에 본고는 그 사작 시기를 통해 그의 문예이론 변화와 추이를 다음과 같이 살펴보았다. 蘇軾은 젊은 시기에 蘇洵의 `風水相遭`說을 이어받았는데, 이제 막 관직생활을 시작할 무렵인 24(1059년)세때 <南行前集敍>와 <염여堆賦>에서 隨物賦形, 自然成文의 초보적 관념을 제기했다. 그 후 45세(1080년) 黃州시기에 <획수기>와 65세(1100년 11월) 만년의 北歸時期에 <與謝民師推官書>에서 이러한 관념은 확고해졌다. 蘇軾은 46세(1081년) 黃州에서 쓴 <書@@氏六家書後>와 50세(1085년 11월) 登州에서 쓴 <傳神記>에서 `傳神`論을 주장하였다. 게다가 논획이형사, 견여아동린······ 邊鸞雀寫生, 趙昌花傳神이라 한 詩句의 作詩시기 또한 52세(1087년)로 역시 黃州시기였던 점으로 미루어보아 黃州시기에 `傳神`과 `神似`를 제기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蘇軾은 59세(1094년 8월) 定州에서 惠州로 가는 도중에 쓴 <답건졸유괄일수>와 60세(1095년) 惠州에서 쓴 <與王庠書>에서 孔子의 辭達說을 제기하였고, 65세(1100년 11월) 海南島에서 사면을 받아 북으로 돌아오던 도중에 쓴 <與謝民師推官書>에서 孔子의 辭達說을 새로이 해석하여 발전시켰다. 이를 통해 蘇軾은 黃州시기에 회획의 傳神理論을 詩文에 결부시켜 새로운 形神理論을 개진하였고, 말년시기에 孔子의 辭達說을 수용하여 그 의미를 확대 발전시켰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