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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타비아누스/아우구스투스와 아폴로 숭배

        안재은 ( Ahn Jae-eun ) 한국서양고대역사문화학회 ( 구 한국서양고대사학회 ) 2016 서양고대사연구 Vol.47 No.-

        본고는 옥타비아누스와 아폴로 숭배의 관계를 살펴봄으로써 원수정의 성격을 문화 및 종교사적인 측면에서 정의하려는 시도이다. 기원전 1세기, 끊임없는 내전으로 혼란스러웠던 로마에서 자신을 지키고 권력을 탈취하기 위해 많은 유력자들은 수호신을 내세웠다. 이것은 로마사에서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옥타비아누스가 아폴로를 자신의 수호신으로 택했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는 정적들과의 싸움을 통해 수호신을 활용하는 방법을 배워갔고, 정적들과의 싸움에서 얻은 것들은 자연스레 그의 전략에 스며들었다. 본디 로마인들에게 치유의 신으로 알려져 있던 아폴로는 옥타비아누스를 통해 승리의 신으로 거듭났다. 특히 내전을 종식시킨 악티움 해전에서의 승리로 아폴로는 승리의 수호신임이 확실해졌다. 아폴로는 가장 중요한 신, 그리고 승리를 상징하는 신으로 부상했고, 이러한 프로파간다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악티움 해전의 승리 이후에도 아우구스투스의 권력은 완전히 안정된 것이 아니었기에 그는 일단 자신의 권력의 정당성을 선전하고 그 입지를 확고히 할 필요가 있었다. 그의 체제에는 사적인 근거와 공화정적 전통이 모호하게 뒤섞여 있었고, 아폴로 숭배 또한 이러한 맥락 안에 있었다. 아우구스투스는 로마인들의 불안을 잠재우고 자신이 펼쳐나갈 새로운 시대의 비전을 보여주어야 했다. 그래서 아우구스투스는 잊혀져있던 국가종교를 되살리고, 전통 풍속들을 복원하고자 했다. 아우구스투스는 종교와 문화, 행정, 군대 등 전 분야를 아우르는 대대적인 개혁에 나섰다. 이러한 사회적, 종교적 개혁이 시작되면서부터는 그의 행보는 점차 공적인 것들에 국한되었고, 아폴로 숭배와 같이 아우구스투스 자신과 관련된 사적인 일들은 차츰 입지가 좁아지게 되었다. 아폴로는 어디까지나 옥타비아누스 개인의 수호신으로 그의 개인 권력을 정당화시켜주는 존재였다. 아폴로와 같이 특정화된 신이 수호신이라는 개념은 로마인들에게 매우 낯선 것이었고, 로마인들에게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효력을 가질 수 없었다. 자신의 권력이 불안정할 때에는 내전에서의 승리를 가져다 준 수호신을 내세우며 자신의 공적을 선전해야 했지만, 1인 지배 체제가 확고히 정립되자 아우구스투스는 이제 더 이상 자신의 수호신 아폴로와, 그가 가져다 준 승리에 의존할 필요가 없어졌다. 결국 아폴로는 내전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만 부각될 수 있었던 존재였으며, 내전기에 나타났던 수호신의 개념 또한 몹시 예외적인 현상이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형태의 수호신이 다시 등장하게 되는 것은 로마가 또다시 혼란을 겪게 되는 3세기 무렵이다. 황위 싸움이 치열하게 이어지고 끊임없는 전쟁이 이어지던 이때, 황제들은 ‘무적의 태양신(Sol Invictus)’라는, 자신을 지켜주고 전쟁의 승리를 가져다 줄 수 있는 존재를 수호신으로 삼았다. 결국 옥타비아누스/아우구스투스의 아폴로 숭배는 그리스적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던 외래의 신이 어떻게 로마의 1인자의 수호신이 되어 숭배되고 선전되었는지를 보여줌과 동시에, 아우구스투스의 권력의 특성과 로마인들의 종교관을 알 수 있게 해준다. 그와 더불어 로마 종교사의 큰 맥락에서 보면 이러한 현상은 내전, 혹은 잇단 전쟁이라는 혼란스러운 상황 하에 나타났던 매우 특수한 현상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This thesis aims to examine the relationship between Octavian and Apollo, and to define the nature of the principate from cultural and religious perspectives. During the civil war in BCE 1C, influential people used patron gods to protect themselves and to usurp the power of Rome. Through the civil war and by quarreling with other competitors who had also claimed patron gods, Octavian began to learn how to make good use of his patron god. Other competitors’ propaganda became part of Octavian’s. Apollo, who was the god of medicine to the Romans before being Octavian’s patron god, became the god of victory. In particular, after Octavian’s victory at the battle of Actium, it seemed evident that Apollo was the god who could guarantee victory.Apollo consequently became one of the most important gods in Rome, and this propaganda using Apollo quite successfully influenced the Roman people. However, even after the victory at Actium, Augustus’ regime was still unstable. He had to stabilize his power and authority, and to propagandize. His authority was intermingled with the tradition of the Roman republic and his own power. The Apollo cult was also a part of this context. Apollo could justify Augustus’ private power, but it was not regarded as public. He was merely an individual’s patron god, and his divine protection was limited to only Augustus. Apollo was no longer a god for the Romans. To them, the idea of a specific divinity regarded as one’s patron god was a very unnatural and unfamiliar thing, and the idea of a patron god could not last for long. When his power became unstable, Augustus had to claim that it was his patron god who made him terminate the disastrous civil war. However, when his reign had become secure, he had no more reason to rely on the patron god and propagandize through him. Eventually, Apollo, Octavian’s patron god, could only be spotlighted in the special situation of civil war, and the idea of a patron god was also a very exceptional phenomenon. Yet, when Rome fell into a chaotic state of affairs in the 3rd century CE, the idea of a patron god rose again. Continuous quarrels to gain the sovereign power of Rome had lasted for a long period, and the emperors needed more protection than before. At that time, the “Sol Invictus” had become the patron god who could protect the emperor and guarantee his victory. Concerning the history of the religion of the Romans, this kind of phenomenon was a very exceptional situation that occurred alongside a long-lasting civil war and a chaotic st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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