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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삼국지』한전(韓傳)의 `삼한(三韓)` 인식

        문창로(Moon Changrho) 동북아역사재단 2017 東北亞歷史論叢 Vol.- No.55

        『삼국지』 한전은 서술 맥락상 찬술 당시 중국 군현의 삼한사회에 대한 정치적 통제력 확보와 전통적인 연고의식을 강조하려는 현실적인 입장이 반영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전에서는 고조선계 유이민 집단이 남하했던 곳을 한지(韓地) 또는 진국(辰國)으로 전한다. 지역성을 내포한 한지와 정치세력의 의미를 갖는 진국 모두 후대의 삼한과 관련된다. ‘진국’은 고조선의 남쪽에 위치하여 중국과의 교섭을 주도했던 정치세력으로, 위만조선에 비견되는 존재로 인식되었다. 진국은 삼한보다 앞선 시기에 존재했기 때문에, 그 역사적 실상은 뒷날 마한 목지국(目支國)과 같은 대국(大國)을 중심으로 주변 소국들이 결속했던 소국연맹체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기원전 2세기 말까지 문헌에 보이는 고조선 이남지역의 정치체는 진국뿐이며 같은 지역에서 한(韓)의 존재는 전한 말(前漢末) 이후에야 확인되므로, 삼한을 옛 진국으로 인식한 『후한서』 한전의 전승이 서술 맥락상 좀 더 수긍할 수 있는 면이 있다. 사실 『삼국지』 한전에서 진한이 옛 진국이라 했던 인식은 진한의 유래를 중국 이주민 세력에 두었던 전승과도 상치된다. 『삼국지』 한전에서 마한은 소속 제국(諸國)의 규모와 인구수가 진·변한의 그것보다 크며, 먼저 성립했던 것으로 전하는 등 전반적으로 마한이 주가 되고 진·변한은 부수적인 형세로 묘사했다. 반면 마한의 사회상, 특히 정치적 질서 및 문화적인 수준 등은 진·변한에 비해 후진적으로 서술했으며, 마한이 낙랑군에 속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진한의 성립에서 다수의 중국 이주민이 정착한 사실과 함께 진한을 ‘진한(秦韓)’이라 부른다고 언급한 것은 마한에 대한 서술과 비교할 때 이채롭다. 한전의 진한에 대한 친연의식은 진한과 낙랑의 상호 관련성을 알리는 ‘아잔(阿殘)’ 곧 ‘우리의 남은 무리’라는 전승에서도 엿볼 수 있다. 변진(弁辰)이 진한에 속했다는 후대의 전승 역시 진한에 우호적인 『삼국지』한전의 인식이 투영되었음을 엿볼 수 있다. 『삼국지』 한전에 확인되는 마한과 진·변한 인식의 이중적인 모습은 찬술 당시 중국의 삼한에 대한 통제력 확보라는 현실적 의도가 개입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공손씨 세력의 대방군 설치 이후 마한과 군현세력의 충돌이 심화되면서, 중국 군현의 대대적인 군사적 공격의 결과를 ‘마침내 한(韓)을 멸망시켰다’고 할 정도로 격한 표현으로 과장되게 서술했다. 이는 한전을 편찬할 당시 마한에 대한 고조된 불만과 함께, 중국 군현의 통제와 영향력에서 이탈하는 세력에 대한 위기감의 반영으로 볼 수 있다.

      • KCI등재

        후석 천관우의 고조선사ㆍ삼한사 연구

        문창로(Moon Changrho) 백산학회 2017 白山學報 Vol.- No.107

        본고에서는 후석 천관우가 거둔 고조선과 삼한 연구의 성과와 그 의미에 대해 살펴보았다. 천관우는 연구 활동 전반에 걸쳐 현실에 바탕을 둔 참여의식과 일반 대중을 위한 역사학을 중시하면서철저한실증과거시적통찰을추구했다. 또한민족주의사관에입각하되세계사와연계된 객관적인 입장의 역사교육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그의 학문적 관심은 조선후기 실학 연구에서 출발하여 여말선초의 군사ㆍ토지 제도사, 3ㆍ1운동과 해방 10년사등으로확장했으며, 1970년대 초 『신동아』에 연재한 「한국사의 조류」를 통해 본격적으로 고대사연구를 시작했다. 그는 『인물로 본 한국고대사』(1982)를 발간하여 새로운 한국고대사 체계를 제시했으며, 이 책은 고대사 분야의 일반 대중서로서 효시를 이룬 것으로 평가된다. 천관우가 고조선사ㆍ삼한사 연구에 집중한 것은 연구 외적으로 가택연금과 감시로 인한 활동제약 및 자료 활용의 한계에서 연유하지만, 근본적으로 일제의 식민사학 중에서도 특히 임나일본부설 왜곡을 극복하고 가야사 복원을 추구하는 데서 비롯한다. 그는 북삼한이 남삼한으로 정립되는 과정, 곧 고조선에서 삼한으로 이어지는 ‘한( )=조선계(朝鮮系)’의 전개과정과 역사적 실상을 추적했다. 실제로 단군 및 기자조선의 실체를 비롯한 위만조선의 국가적 성격, ‘삼한 이동설’에 입각한 삼한의 기원과 성립, 삼한 제국(諸國)의 위치 비정, 삼한-삼국의 고대국가 형성 문제 등 관련 주요 과제의 해명을 위해 노력했다. 천관우는 단군조선을 국가성립 이전의 단계로 상정했으며, 단군신화를 선주 어렵민(고아시아인)과 후래 농경민(북몽골인)의 동화 교체 사실을 반영한 것으로 보았다. 기자조선과 관련된 ‘은인(殷人) 기자동래설’은 서기전 12세기 후반에 전개되었던 동이계 기자족의 동방 이동 사실로 파악했다. 기자의 후손을 내세운 ‘조선후’의 칭왕 사실에 주목하고, 고조선-연나라의 각축이 전개되었던 서기전 4세기 후반을 한국사상 고대의 개막으로 설정했다. 그리하여 『사기』에 보이는 ‘조선ㆍ진번’의 실체는 ‘북삼한’이며, 이때 ‘조선’은 대동강 하류의 마한족, ‘(북)진번’은 요하하류의 진ㆍ변한족을 합칭한 것으로 보았다. 한편 ‘진국’은 삼한 총연맹체가 아니라 북진번계의 일부가 남하하여 한강 하류에 머물렀다가, 이후 부여계 백제에게 밀려 남하해서 사로국ㆍ구야국의 중심세력이 되었다고 했다. 『삼국지』 한전의 ‘진왕’은 진국과 무관한 존재로서 당시 유력했던 백제국과 사로국의 왕을 각각 칭하는 동명이체(同名異體)로 상정했다. 나아가 그는 ‘영역’ 확대를 국가형성의 중요 요소로 꼽아 ‘부족-성읍국가-영역국가’라는 발전단계를 제시하였고, 정복활동의 시작이라는 관점에서 고조선 및 삼국의 국가형성기를 종래의 통설보다 소급 적용했다. 그의 연구는 기자 전승의 재해석 문제를 비롯하여 목지국 위치 비정이나 삼한 토착사회의 실상에 대한 접근 등에서 일부 한계가 지적되기도 하지만, 광복 이후 고조선 및 삼한 연구가 한 단계 발전하는데 중요한 밑돌이 되었다고 본다. This article took a look at the fruition of Cheon Kwanwu’s studies on the history of Gojoseon and Samhan. He always emphasis on the awareness of participation, which based on reality, and historical sciences for general public. And he pursue a complete demonstration and macroscopic insight. He also emphasis on the importance of history education, which is objective position linked the world history and based on the nationalism view of history. His academic interest started from the study on Silhak in the late Joseon period and extended the history of military system, the land system and so on. And he started a study on the Korean ancient history in the early 1970s, when he published 「The current of Korean history」 on the 『Sindonga』. He presented the system of the Korean ancient history by publishing the 『The Korean ancient history in character』(1982). And this book is assessed to be achieved in the first as a general popular book. He focused on the history of Gojoseon and Samhan, because of the restriction of activity and lack of materials by house arrest and watching brief. However why he focused on the history of Gojoseon and Samhan was, fudamentally, from trying to overcome distorted of Japanese theory and restore the Gaya history. His research was generally tracing the established historical reality of the process of North Samhan to South Samhan, which means ‘Han(韓)=Joseon line(朝鮮系)’. In fact, he was a stab at an explanation of the major task, such as a location range of the Samhan’s states, the ancient nation building problems of Samhan-Samguk, the origin and establishment of Samhan- Samguk based on the theory of Samhan drift and so on. He thought the Dangunjoseon as a state before the establishment phase, and the myth of Dangun as a thing, which reflect the assimilation and replacement a matter of fact between ancient asians and north mongolians. He thought that the 4th Century B.C. was the curtain rises in the ancient history of Korea. He also thought that the reality of ‘JoseonㆍJinbeon’, which appeared in the 『Samkukji』’s Hanjeon. And he thought that ‘Joseon’ is Mahan tribe in the Daedong river downstream and ‘Jinbeon’ is JinㆍBeonhan tribe in the Yo river downstream. Meanwhile, he thought ‘Jinguk’ was not a total of Samnhan league but a part of North Jinbeon tribe, which stayed in Han river down stream, and they backed down by Bakjae, so they came to the central force of Saroguk and Guyaguk. And he thought ‘Jinwang’ as a same name and different things, which means each king of Silla and Baekjae states. Futhermore, he suggested theory of ‘tribe-city state-territorial state’ and the formative years of Gojoseon and Samguk were early, based on a viewpoint of the beginning of the conquest of activities, than old common 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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