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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일제하 대만총독부의 원주민 인구 파악과 인구 통계- 일제하 조선 인구 파악과의 비교를 겸하여

        문명기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2024 한국학논총 Vol.61 No.-

        조사와 통계 능력이라는 면에서 같은 시기의 조선총독부나 일본 중앙정부의 통계 능력을 넘어섰다고 평가되는 대만총독부라 하더라도 통치 초기 행정력의 미비와 국가권력 교체 과정에서의 정치사회적 혼란을 피할 수는 없었다. 때문에 통치 초기 약 10년간의 인구 통계는 온전히 신뢰하기 어려운 오류가 포함될 수밖에 없었다. 대만총독부의 실효적 지배가 훨씬 뒤늦은 번지(=특별행정구역)의 거주자인 생번의 인구 통계의 신뢰도는 훨씬 더 낮았다. 본고는 생번 인구 통계의 토대가 되는 생번 인구 파악과 관련한 제도적 변화를 추적한 후, 생번 인구 통계의 실태를 점검하고, 더 나아가 신뢰도나 정확도 면에서 문제가 있었던 통치 초기 약 20년간의 생번 인구 통계에 대한 보정을 시도하고자 했다. 생번 인구 파악은 1904년 번사대장 작성의 의무화, 1910년 번사대장의 대폭 개정, 1915년 번지의 실효적 지배에 따른 번사호구 통계 능력의 향상, 1922년 번인호구부의 도입에 따른 생번 인구 통계의 정밀화라는 단계를 밟은 것으로 관찰된다. 특히 1915년 번지에 대한 실효적 지배의 확립은 생번 인구 통계의 근본적인 장애를 제거함으로써 생번 인구의 인별/호별 파악 능력을 획기적으로 제고한 사건으로 기록될 만하다. 이에 따라 번사대장의 기록 역시 충실해질 수 있었다. 이 점은 1912년 이래 매년 발간된 『번사호구』의 통계가 1915년부터 『이번지고』에 그대로 게재된 사실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생번 인구 통계의 실태와 관련해서는, 『대만총독부통계서』에 드러난 통계 수치 이면의 문제, 특히 번지의 실효적 지배가 확립되기 이전에는 번지에 대한 실사가 가능했던 범위가 제한적이었다는 사실을 『공문유찬』이나 『이번개요』 등의 자료를 『대만총독부통계서』와 대조하면서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1915년 번지 실효 지배가 확립된 이후의 생번 인구 통계는 통계로서 신뢰할 만한 수준에 도달했다는 점도 아울러 확인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생번 인구 통계의 역사와 관련하여 1915년의 획기성을 확인한 위에, 상대적으로 신뢰할 만한 1915년 이래의 생번 인구 통계를 통하여 1915~42년 기간의 연평균 인구증가율을 구하고, 이를 1897~1914년에 적용하여 생번 인구 통계의 보정을 시도했다. 이러한 보정을 통해 적어도 생번 인구 통계에 관한 한 『통계서』의 초기 20년 정도의 오류를 일정하게 수정·보완할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이렇게 생번 인구 통계의 실태를 이해하고 보정하는 과정은, 대만 인구의 대다수가 거주했던 보통행정구역의 본도인(한인과 숙번) 인구 통계에 대한 재검토의 필요성을 환기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생번 인구의 보정 과정은, 통치 초기 10년간의 식민지 조선의 인구 통계와의 비교를 통하여, 식민지 조선의 인구에 관한 원시 통계와 추계의 상대적으로 큰 격차에 대한 원인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주기도 한다.

      • KCI등재

        근대 일본 식민지 통치모델의 轉移와 그 의미 ― ‘臺灣모델’의 關東州ㆍ朝鮮에의 적용 시도와 변용 ―

        문명기 중국근현대사학회 2012 중국근현대사연구 Vol.53 No.-

        作为‘殖民帝国’日本的最初殖民地, 台湾算是近代日本殖民统治之典范。日本统治台湾过程所形成的重要特质如下: 1) 总督(府)体制 2) 政治上的排除与经济上的从属 3) 以彻底的旧惯调查为基础的旧惯温存政策 4) 为了各种文明化措施所需的雄厚的财政供应。这些特质之综合, 可以称呼‘台湾模式’。日俄战争的结果, 日本获得关东州, 台湾模式的奠基者儿玉源太郎跟后藤新平也尝试移植台湾模式到关东州, 但内外条件不太足够, 结果台湾模式的移植遭到挫败。1910年韩国合并之后, 朝鲜总督府也尝试台湾模式在朝鲜的再现。但是, 为了朝鲜统治所支出的实际统治经费远不如台湾, 结果朝鲜统治之‘统治效果’还比不上台湾统治, 还有把朝鲜社会处于长期低级开发的状态。本研究可能显示, 过度强调近代性在朝鲜之形成的殖民地近代化论跟殖民地近代性论的实际论据比我们想象会更薄弱。作者认为, 殖民地朝鲜社会的近代性, 可说是‘具体而微’。

      • KCI등재
      • KCI우수등재

        연구 분야의 지속과 확장: 중국근대사 연구(2016~17)와 대만사 연구(2013~17)

        문명기 역사학회 2018 역사학보 Vol.0 No.239

        This review article attempts to give a rough outline of the research results done by Korean scholars during 2016~17 in the fields of Chinese modern history and Taiwan history. In the field of Chinese modern history, researches of ‘traditional’ fields continued and some researches are excellent in ideas and analyses, whereas some researches of quite ‘new’ fields like medical history and maritime history stands out. Although the history of Taiwan history research in Korea is relatively short, there have been a lot of noticeable researches, and Korean historians demonstrated their own academic advantages mainly derived from the similarities and differences of Korean history and Taiwan history. And also they revealed some points to be improved in that some of them are not able to utilize the research results made in Taiwan mainly because of their lack of Chinese languages. In sum, in spite that some inferior researches were published without thorough verification by academic societies, in general, we could find out more researches which let us anticipate fruitful and academically advanced publications in the future. 본고는 2016년과 2017년에 수행된 중국근대사 연구 및 2013년부터 2017년 사이에 수행된 대만사 연구에 대한 소개와 비평을 기본적인 목적으로 했다. 검토 결과는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었다. 중국 근대사 분야에서는 정치외교사나 사회경제사 등의 기존의 연구 테마에 대한 관심이 지속된 반면, 의료위생사나 해양사 분야에서의 연구가 상대적으로 활발해진 점이 눈에 띈다. 대만사 연구 분야에서는 중국학 연구자들에 의한 연구가 계속 강세를 보이기는 하지만, 중국학 이외 분야의 연구자들 역시 강한 관심을 가지고 대만사 연구에 적극 참여한 점이 두드러진다. 다만 대만(사) 연구의 경우 다양한 학문분야에서의 연구가 개별적으로 진행되고 있어서 협업이나 공동연구가 좀 더 활성화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중국 근대사 및 대만사 연구 분야의 향후 전망과 관련해서는, 세 가지 점을 제시했다. 우선 연구 논문으로서 자격 미달에 해당하는 논문이 일부 발견되었는데, 이는 관련 학회의 엄격하고 공정한 검증 체계가 좀 더 철저하게 작동함으로써 해결되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훨씬 많은 수의 논문들은 일차 자료와 연구 문헌을 충분히 장악한 위에 탄탄한 논증과 독창성 있는 주장을 갖추어서 해당 분야의 장래가 긍정적임을 제시했다. 셋째, 근대 중국이나 근현대 대만에 대한 개별 연구가 좀 더 의미가 있으려면, 최근 대두하고 있는 세계사 또는 지구사(global history) 연구와 개별 시대사·지역사를 서로 연결시키는 작업에 대한 고민이 좀 더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 KCI등재

        미곡을 통해 본 청대 중국사회의 시대상 ― 糧價 자료 정리 및 糧價 연구의 회고 ―

        문명기 중국근현대사학회 2011 중국근현대사연구 Vol.50 No.-

        本文通過關於淸代糧價及糧食流通之旣往硏究成果之分析, 探討淸代中國社會的時代像. 首先, 本文整理糧價資料之發掘及公刊情況, 而後擧要重要硏究成果(例如: 岸本美緖ㆍ吳承明ㆍ施堅納ㆍ王業鍵等). 作者發現旣往硏究之一些不足之處. 1) 有的硏究側重定量分析, 有的硏究側重定性分析, 硏究糧價變動最好的方法是結合定量分析與定性分析來描述出來該地域社會之比較完整的總體像. 2) 糧食問題是經濟問題, 也是社會問題. 不過一些美國學者之硏究側重經濟問題(特別運用計量經濟學方法論)而相對忽視記述史料, 從而硏究結果不是那麽理想的. 3) 糧食政策開展當中的國家角色問題. 米穀是最關乎民衆生計的商品, 政府官員也就對其特別重視. 不同於過去一些硏究, 最近硏究强調淸代官員理解市場供給與需求之間的基本關係, 同時也反對那種沮礙糧食進入本地市場以哄擡糧價的商人壟斷行爲. 關於市場整合問題, 作者通過旣往硏究之分析, 得到如下的暫定結論: 淸代中國之所謂大區域, 少於施堅納提出的八個大區域, 市場整合也沒有像吳承明ㆍ王業鍵描述那樣完整的. 値得特別提到的是日本學者山本進的硏究. 他主張, 在淸代前中期長江流域市場整合比較完整, 但到後期主要由於邊陲地域生産力提高, 長江上中流域開始走到經濟的自立化之路, 淸末民初的省域主義與軍閥割據狀態, 是淸代後期以來地域經濟自立化的反映. 他的主張與强調市場整合的硏究群背道而馳, 而且具有一定的合理性, 所以値得商榷.

      • KCI등재

        20세기 전반기 대만인과 조선인의 역외이주와 귀환 - 역외이주 및 귀환 규모의 추산을 중심으로 -

        문명기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2018 한국학논총 Vol.50 No.-

        My goal here is to estimate the scale of Taiwanese and Korean migrants in colonial period and Taiwanese and Korean returnees since 1945. To achieve these ends, on the part of Korean migrants and returnees, I relied on existing researches which are very abundant, and on the part of Taiwanese migrants and returnees, I discovered some new materials which had not been known yet and reconstructed them. This work is essential to characterize the patterns of two peoples’ migration, which will be probed by me later. The overall scale of Koreans’ migration is huge, about four million people (16% of total population) during the colonial Period, whereas that of Taiwanese migration is very small, below 0.1million(less than 1% of total population). But for a few years that followed the liberation in 1945, the two societies experienced rapid and huge population growth. Taiwan society came to have 23% additional population in 1952 compared to the population of 1946, which occurred mainly due to refugees from Mainland China. South Korea also experienced similar population growth, mainly due to large scale return from Japan Proper and Manchuria and additional refugees from North Korea. Through this study, I was able to set empirical foundation for more detailed and profound analyses on the phenomenon of Taiwanese and Korean migrayion and their historical causes. 본고는 식민지시대에 이루어진 대만인과 조선인의 역외이주 규모와 해방 직후 몇 년 간에 걸쳐 이루어진 귀환 규모를 추산하는 것을 일차적인 목적으로 했다. 이를 위해 조선인의 역외이주와 귀환에 관해서는 기존의 다양하고 풍부한 연구에 기대고, 대만인의 역외이주와 귀환에 관해서는 새롭게 자료를 발굴하고 재구성하여 최대한 조선쪽의 통계나 자료와 균형을 맞추고자 했다. 본고는 또한 필자가 구상하고 있는 식민지시대 대만인과 조선인의 역외이주 패턴에 있어서의 뚜렷한 차이와 그 원인에 대한 탐구를 위한 예비적 고찰 차원에서 일단 두 지역 식민지인의 역외이주와 귀환 규모에 대한 대체적인 윤곽을 그리고자 하는 것이다. 두 지역 식민지인의 역외이주와 귀환 규모를 어느 정도 확정하고 나면, 두 지역 식민지인의 역외이주의 패턴의 차이와 그 원인, 그리고 해방 직후의 대규모 귀환에 따른 다양한 사회경제적 문제의 발생과 그 해결 방향 등에 대한 이해에 관해서도 실마리를 찾아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본문의 검토를 통해 필자는 대만인과 조선인의 역외이주 규모, 그리고 해방 직후 대만인과 조선인의 귀환 규모에 대하여 기존 연구들이 제시한 수치들을 재확인함과 동시에 해당 수치들에 대한 보다 풍부한 근거를 얻을 수 있었다. 또한 식민지시대 대만인의 역외이주 전체 규모는 필자가 아는 한 본고에서 최초로 제시했다. 이러한 재검토의 결과 그동안 다소 막연하게 ‘500여 만 명’ 등으로 운위되던 해방 전후 역외이주 조선인의 규모에 대해서도 보다 분명한 근거를 제시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더하여 식민지시대 대만인의 역외이주 및 귀환 규모의 추산을 통하여 식민지시대 조선인의 역외이주 경험을 상대화하여 인식할 수 있는 토대를 일부나마 제공한 점도 나름대로 의미를 가진다고 판단된다.

      • KCI등재

        두통, 좌측 안검 하수, 시력 저하를 주소로 내원한 Tolosa-Hunt Syndrome 1례

        문명기,양병욱,홍석진,이경철 대한비과학회 2016 Journal of rhinology Vol.23 No.2

        Cavernous sinus syndrome (CSS) is defined as the involvement of two or more of the third, fourth, fifth (V1, V2) or sixth cranial nerves or involvement of only one of them in combination with a neuroimaging-confirmed lesion in the cavernous sinus. Some cases of CSS are attributed to Tolosa-Hunt syndrome (THS), an idiopathic inflammatory disease of the cavernous sinus. THS is characterized by painful ophthalmoplegia due to granulomatous inflammation in the cavernous sinus. THS is a diagnosis of exclusion that requires a vigorous series of differential diagnoses, and corticosteroid therapy is known to dramatically resolve clinical findings of THS. We report a case of a patient with painful ophthalmoplegia associated with vision loss, which was suspected to be THS. This patient followed a relatively typical clinical course of THS on steroid pulse therapy. We emphasize the differential diagnosis of THS, its presentation, and treat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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