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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역본의』의 성리적 성격에 관한 연구

        주광호(朱光镐,) 한국동양철학회 2015 동양철학 Vol.0 No.43

        주자의 『주역본의』는 의리역인가? 그래서 성리적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의리를 ‘의미’와 ‘이치’ 즉 ‘규범’이라고 한다면 『주역본의』는 의리역이다. 그러나 그런 정도의 의리역은 단전ㆍ계사전을 비롯하여 왕필과 한강백도 마찬가지이다. 때문에 의리역이기 때문에 ‘성리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런데 더 나아가서 『주역본의』를 일방적으로 의리역이라고 할 수는 없다. 주자는 『주역』의 ‘본의’가 의리만은 아니라고 했기 때문이다. 『역경』의 筮詞는 물론이고 「계사전」의 ‘易有太極’이나 ‘天地大衍’에 이르기까지 대량으로 출현하는 河洛說과 先天易說을 단지 의리라고만 규정할 수는 없다. 주자의 역학은 따라서 정이천의 것을 계승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때문에 정주이학에 필적하는 程朱易學도 성립할 수 없고 따라서 주자의 역학이 정이천을 계승했기 때문에 성리적이라고 할 수도 없다. 실제 『주역본의』 주석을 꼼꼼이 들여다보아도 성리적 주석은 그다지 많지 않다. 필자가 동의할 수 있는 성리적 주석은 ①‘繼之者善也, 成之者性也.’ ② ‘生生之謂易’ ③‘原始反終’그리고 ④‘一陰一陽之謂道’ 정도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주자의 역학과 그의 성리학이 무관하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주자의 역학은 그의 성리설을 지탱해주는 확고한 기둥이다. 그러나 그것은 몇 개의 개념어나 명제의 차용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주자 역학의 체계 전체가 주자의 성리학적 세계관을 수립하기 위한 과정이었다고 볼 수 있으며, 이것이 바로 주자 역학의 성리적 성격이다. 朱子的《周易本义》是不是义理学?故它的注释中诚然固有理学的成分?如果把‘义理’理解为‘意义’和‘道理’,那么《周易本义》乃是义理易学。不过,以意义 和道理来解释《周易》的态度则亦在《彖专》、《系辞传》、王弼和韩康伯的注 释中也能找到。因此,不能说道义理就是理学成分。再进一步说,《周易本义》 一概是义理学。因为朱子本人说《周易》的本义并不单纯的义理。《易经》中的筮词以及对“易有太极”或“天地大衍”的注释中所出现的大量的河洛说及先天易说等等则不能单纯地评为义理学。 故也不能说朱子易学继承了程颐易学。因而既不能定说为“程朱理学”也不能定说为“程朱易学”。当然,也不能说因为朱子易学继承程颐易学故朱子易学中固有理学成分。实际分析《周易本义》时确实难找理学成分的注释。笔者可以同意的部分则只不过是“繼之者善也, 成之者性也.”、“生生之謂易”、“‘原始反終”和“一陰一陽之謂道”而已。 但是,这并不意味着朱子易学与他的理学无关。反而,朱子易学是支撑理学的主干。不过,这种关系并不能成立在于朱子理学借用易学方面的种种概念或命题的情况之上。更重要的是贯通卜筮和义理的易理就是性理的事实,这就是太极。作为易理的太极意味着几何学和大数学中所说的均衡和秩序。这种均衡和秩序在于性理的阶段中变为中和或喜怒哀乐未发状态的“中”。那样,朱子易学给他的理学实际的内容。这就是朱子易学中的理学成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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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朝鮮正祖朱子選本編纂與中國文獻關係芻論 ——以佚本《朱子選統》爲中心

        LINYU YI 성균관대학교 유교문화연구소 2019 儒敎文化硏究(中文版) Vol.0 No.31

        In this paper, I examined the source and compilation method of collected works of Zhu Xi by King Jeongjo through the articles in the Gunseo pyogi 群書標記 written by King Jeongjo. I found that King Jeongjo used to refer to many previous collected works of Zhu Xi by Joseon scholars, instead of using the original source of Zhuzi daquan 朱子大全 and Zhuzi yulei 朱子語類 directly when he compiled collected works of Zhu Xi. Among the collected works of Zhu Xi compiled by King Jeongjo, the Juja seontong 朱子選統 was lost but the preface remains in the Gunseo pyogi. By this article, the contents can be confirmed. By comparing the contents of Jujaseontong with the previous collected works of Zhu Xi, which are remaining in Korea and China, I found out the Juja seontong by King Jeongjo and the Yuzuan Zhuzi quanshu 御纂朱子全書 by Emperor Kangxi both share exactly the same table of contents. This paper argues that King Jeongjo found out Emperor Kangxi already completed Zhu Xi’s works, Zhuzi daquan 朱子大全 and Zhuzi yulei 朱子語類, after the Yuzuan Zhuzi quanshu was brought into Joseon. King Jeongjo planned to compile the Juja seontong based on this book as a trial to compile the most perfectly collected works of Zhu Xi for Joseon scholars. The analysis of the new relationship between the historical data can provide us with new material for the study of Neo-Confucianism by King Jeongjo. 自朝鮮王朝建立以來,大力推行“崇儒抑佛”政策,儒學發展進入前所未有的全盛期。十八世紀後,被譽爲朝鮮王朝文藝復興君王的正祖,尤其推崇朱子學作爲儒學的重要一環,並親自進行朱子選本的編纂,自世孫時期至1800年辭世的27年間,共編纂十冊朱子選本。 本文就正祖文集《弘齋全書》所收《群書標記》中,正祖對各朱子選本親撰的解題,考察正祖朱子選本的文獻來源與編纂方式,可知正祖並非直接就《朱子大全》、《朱子語類》摘錄成書,而是多以前人選輯成果爲基礎,參校《朱子大全》、《朱子語類》二書,進行重新編排與刪削增補的作業。其中《朱子選統》一書雖已亡佚,然而藉由《群書標記》中〈朱子選統三卷〉一文目次,對比中國現存朱子選本,發現正祖《朱子選統》與康熙《御纂朱子全書》二書目次幾乎一致。康熙《御纂朱子全書》一書的編纂動機,乃欲編成一部富國安民、統一學術的重要典籍,與正祖完成“一通之書”,以朱子學教化天下的心願頗爲吻合。本文認爲,在《御纂朱子全書》傳入朝鮮後,正祖見康熙已完成一部“朱子全書”,興起效尤之心,乃以此書爲本進行《朱子選統》的編纂。通過本文新發現的史料關聯,將可提供正祖朱子學研究一項新的資料。

      • KCI등재

        주자와 다산의 미발설과 수양론적 특징

        전병욱 고려대학교 철학연구소 2012 철학연구 Vol.0 No.46

        이 논문은 주자와 다산의 미발설과 그 수양론의 특징에 대한 연구이다. 주자와 다산은 자신의 시대적 문제의식으로 철학이론을 정립하였지만 거기에는 공유되는 부분도 적지 않았다. 주자와 다산은 모두 기존 유학의 분위기를 일신하기 위하여 외부의 새로운 사상 속에 담긴 긍정적인 면이 오히려 유학의 본래 면목과 일치한다고 주장하며 적극적으로 참조하는 자세를 보였다. 주자(朱子)의 미발설(未發說)은 복잡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거기에는 성(性)으로 미발(未發)과 심(心)으로 미발(未發)이 있으며 후자는 다시 일반 의식으로서 미발(未發)과 이상화 된 의식으로서 미발(未發)과 수양의 의미가 내포된 미발(未發)이 있었다. 그 세가지 미발(未發) 중에서 성(性)으로서 미발(未發)과 가장 근접한 것은 이상화된 의식으로 미발(未發)일 것이다. 이 논문에서 다루는 주자의 미발설은 주로 이 의미의 미발에 대한 것이다. 이런 의미의 미발은 불교의 본심(本心)개념과 상통하는 점이 있다. 말하자면 사려(思慮)가 싹트기 전에 모든 가능성을 가진 마음으로서 본심(本心)을 상정한 것이다. 다산(茶山)에게 있어 미발(未發)이란 희노애락이라는 대인적(對人的) 감정이 표출되지 않는 혼자만의 순간을 의미하는데, 이 순간에도 사람의 의식은 도덕적 욕구와 기질적 욕구가 충돌하고 있다. 미발(未發)은 실존의 한 장면으로서 내면적인 사유 활동이 활발히 일어나고 있는 상태일 뿐이므로 그 자체가 인간의 본질적 상태를 지시하지는 않는다. 미발(未發)의 의식도 已發의 의식과 마찬가지로 도심(道心)과 인심(人心)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으며 마음의 한켠에서는 또 이 두 마음 사이의 是非를 헤아리고 판단을 내리는 자주지권(自主之權)이 발동하고 있다. 주자는 인간 심성에 대한 철학적 고민 끝에 이상화된 마음을 상정하는 이론을 정립하였고 그것이 인간의 도덕적 본성에 대한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도덕수양의 길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였다. 반면 다산은 이상화된 마음을 상정하는 것은 마음의 실존적 상황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가져올 수 있다고 여겨 반대하였다. 주자는 함양(涵養)공부를 통해 미발(未發)의 중(中)을 정립하려고 하였지만 다산은 진지한 이성적 사려를 통해서만 미발 상태의 마음을 선하게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주자가 미발(未發)의 함양(涵養)을 강조하여 그것을 격물치지(格物致知)라는 이성적 인식활동이 온전히 펼쳐질 수 있는 기반으로 간주한 반면, 다산은 이성적 판단은 적극적인 사려활동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고 여겼다는 점에서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 하지만 주자와 다산은 두 마음을 주재(主宰)로 설정하여 이성주의적 철학체계를 세우려고 노력하였다는 점에서 일치하는 점이 없지 않다. 這篇文章是硏究朱子和茶山的未發說與其修養論的. 朱子和茶山的哲學有不少分技,但也有欣多的共同點, 未發說是其典型的例子. 朱子以爲. 未發是思慮未萌的狀態:"但有能知覺者而未有所知覺. "茶山反對朱子的說法. 他以爲,未發不是思慮未萌狀態, 而是思慮明淅的時刻,是人的實存情況. 但是他們的未發說裏面有個共同點, 是他們都要排斥一些神秘主義的說法. 朱子雖然認爲未發是思慮未萌, 但他不主張要除掉思慮作用; 茶山雖然强調上帝的存在, 但他不認爲要依拷上帝. 朱子主張心統性情, 而茶山主張心是自作主宰. 朱子的修養論强調, 戒愼恐懼和愼獨的區別. 戒愼恐懼的未發工夫是,以性善論爲前提的, 只要維持戒愼恐懼的態度, 本善的人性自然顯現出來. 只不過,對大部分人來說. 其顯現的分數不多而已. 茶山徹底否定"性"的實體性. 他主張, 人的所有道德性是都要由"心"的自主之權來落實. 不然,世界沒有什麻道德性. 總而言之, 朱子和茶山的未發說的具體內容有不少差異, 而他們的理論裏有個共同的志向. 他們都以爲,作爲現實經驗意識的"心"要得當成認識和實踐的主題. 他們是爲了實現這個指向, 各自提出自己所能提出的理論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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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자학 속에 숨은 양명학: 노수신의 주자학과 그의 인심도심 해석

        최진덕 ( Choi Jin Duk ) 한국사상사학회 2015 韓國思想史學 Vol.0 No.51

        노수신은 16세기 당시부터 양명학을 한다고 비판받아 왔다. 오늘날에도 신향림은 그를 “최초의 양명학자”로 지목한다. 하지만 노수신의 산문은 매우 주자학적이다. 그의 시에서 간혹 양명학적 소신이 드러날뿐이다. 간혹 보이는 그의 양명학은 그의 주자학과 모순이라 보기 어렵다. 주자학적 본체론의 깊이에는 “이는 하나(理一)”라는 진리가 있다. 이 진리는 왕양명의 만물일체설과 다르지 않다. 주자학적 본체론의 깊은 곳에 양명학이 숨어있다. 그러므로 모든 주자학자는 잠재적으로 양명학자일 수 있다. 노수신은 주자학적 본체론의 깊이에 침잠함으로써 양명학과 만난다. 그의 『인심도심변』은 주희의 인심도심 해석이 주자학적 본체론과 공부론의 체와 용을 겸비하지 못하고 용의 차원에 그치고 있음을 안타깝게 여겨 16자 전심결을 주자학적으로 완전하게 해석한다. 『중용장구서』 에서의 주희의 인심도심 해석보다 더 주자학적인 노수신의 인심도심 해석은 나정암의 그것과 흡사하다. 그런데 노수신은 주자학적 본체론의 깊이에서 하나(一)과 무(無)를 말하면서 양명학과 만나는 반면, 나정암은 하나와 무를 말하지 않으면서 양명학과는 반대 방향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노수신은 양명학을 하더라도 극단으로 가지는 않는다. 그에겐 강렬한 깨달음의 체험도 없고 광자기상도없다. 주자학과 양명학은 근본적으로 연속적이지만 주자학이 권력화되던 시절에 양명학적 소신을 피력하기란 쉽지 않기도 했다. Noh Susin(盧守愼, 1515-1590) had been accused of his inclination to Yangming``s Learnning by the fundamentalist scholars of Chuhsi``s Learning in Chosun Dynasty. However, in his proses discussing the themes of Chuhsi``s Learning, we cannot find out any evidence that he was a scholar of Yangming``s Learning as opposed to Chuhsi``s Learning. On the contrary he seems to be faithful to the authenticity of Chuhsi``s Learning more than any other scholar of Chuhsi``s Learning. Only in his poems we can find out some phrases showing his inclination to Yangming``s Learning. Is there any discontinuity between Chuhsi``s Learning in his proses and Yangming``s Learning in his poems? At first we must know that Yangming``s Learning has the same theory of ontology as Chuhsi``s Learning, and that Yangming``s Learning is different from Chuhsi``s Learning only in the theory of self-cultivation. According to the ontology of Chuhsi``s Learning, all different things in this changing world are flowing into one thing while interacting with each other. This oneness of all things is the ontological depth of Chuhsi``s Learning, but Chuhsi``s Learning cannot provide any efficient method of self-cultivation to arrive at the ontological depth and to become a sage. The sudden enlightenment theory of self-cultivation proposed by Wang Yangming is more appropriate than the moral and intellectual theory of self-cultivation in Chuhsi``s Learning. We can say that the ontological depth of Chuhsi``s learning calls for Yangming``s Learning. The inclination to Yangming``s Learning of Noh Susin seemed to be due to his experience of the ontological depth of Chuhsi``s Learning, which was the result of his arduous study of Chuhsi``s Learning. He became inclined to Yangming``s Learning because he was faithful to Chuhsi``s Learning. Also his new interpretation of Men``s mind and Tao``s mind was to revive the ontological depth of Chuhsi``s Learning omitted in the interpretation of Chuhsi himself which considers the two minds as the two desires of the psychological le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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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朱子『易學啓蒙』의 體系的 理解

        徐根植 동양고전학회 2011 東洋古典硏究 Vol.43 No.-

        본 논문은 朱子의 『易學啓蒙』에 관한 것이다. 朱子易學의 형성과정에 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易學啓蒙』은 그 이후 30종의 연구서가 나 온 것에 비하면 연구성과를 4편으로 매우 적다. 이 글은 朱子의 『易學啓蒙』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서가 되고자 한다. 朱子는 「河圖」와 「洛書」를 수용함으로써 『周易』 해석에 있어 象數易 學의 의미를 다시 드러낸다. 『周易』에 있어 義理易學은 王弼의 ‘得意忘 象論’으로 해서 새로운 힘을 얻었듯이 朱子는 『易學啓蒙』을 통해 象數 易學의 의미를 되새기려고 노력으로 『周易』을 해석하는 방법은 나날이 발전하게 된다. This paper is about Zhuzi(朱子) writings entitled Yixueqimeng(『易學啓蒙』). There are only four research articles on Yixueqimeng(『易學啓蒙』), although it had taken important role in the process of formation of Zhuzi(朱子) study of changes, comparing with 30 different kinds of research on his works after this Yixueqimeng(『易學啓蒙』). In line with this, the author intends to make this paper as a full-scale research article on Zhuzi(朱子) work - Yixueqimeng(『易學啓蒙』). Zhuzi(朱子) exposes the meaning of the Xiangshuyixue(象數易學), to wit, the emblem and numerology of Emblem and Numerology in interpreting Zhouyi(『周易』) again by accepting Hetu(「河圖」) and Luoshu(「洛書」). When discussing the Zhouyi(『周易』), Yiliyixue(義理易學) had drawn supports from Wangbi(王弼) Deyiwangxianglun(得意忘象論). Likewise, Zhuzi(朱子) tried to ruminate upon the meaning of the Hetu(「河圖」) and Luoshu(「洛書」) through the Yixueqimeng(『易學啓蒙』). As he interprets all things through Hetu(「河圖」) and Luoshu(「洛書」), these two systems of emblem have become essential. Even in Shifa(筮法), he elicited Dayanzhishu(大衍之數) from Hetu(「河圖」) and Luoshu(「洛書」) so that he related the divination rule to Hetu(「河圖」) and Luoshu(「洛書」). By doing so, Zhuzi(朱子) concatenates Dayanzhishu(大衍之數) to Hetu(「河圖」) and Luoshu(「洛書」) too. Furthermore, by interpreting Yongjiu(用九) and Yongliu(用六), which belong to Qiangua(乾卦) and Kungua(坤卦) as prognostication that will be referred to when all six-line symbols are changed, he had made a great contribution to the history of Zhouyi(『周易』) study. Zhuzi(朱子) is responsible for a sizable part of the history of Zhouyi(『周易』) study as much as Wangbi(王弼) and Chengyi(程頤). Of course, there are some parts where efforts were made in vain, however, the method to interpret the Zhouyi(『周易』) have developed day by day owing to the efforts of Zhuzi(朱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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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朱子易學評議

        서대원(徐大源) 한국동양철학회 2012 동양철학 Vol.0 No.37

        본 논문은 주자 역학의 공로에 대한 평가와 주자 역학 연구자들이 풀어야 할 문제들에 대한 논의이다. 이와 같은 문제를 고찰하기 위해 본 논문에서는 주자 역학을 다음과 같은 세 시기로 나누어 분석하였다. ①『周易本羲』 및 이 시기의 역학 자료 ②『易學啟蒙』 및 이 시기의 역학 자료 ③『朱子語類』에 보이는 역학 관련 자료 및 이 시기의 여타 자료에 보이는 역학 사상. 우선 주자 역학의 공로에 대한 살펴보자. 주자는『周易』의 본래면목을 회복시켰으며, 協韻說을 활용하여 구두와 훈구에 대하 상당한 공로를 세웠다. 이런 부분들은 부정할수 없는 역학상의 공로이다. 주자는‘『易』本是卜筮之書  ’를 주장한다. 그리고 伏羲 ㆍ文王 ㆍ周公 ㆍ孔子 의 易觀이 다름을 주장하며 “伏羲自是伏羲易; 文王自是文王易; 孔于自是孔子易.”라고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은 주자의 설명은 나름대로의 설득력을 가지고 있지만 또한 다음 문제에 대한 해명이 요청된다고 생각한다. 즉 ① 理ㆍ 數ㆍ象ㆍ 占의 관계에 대한 문제 ② 聖聖異揍의 문제 이 이외 ③『周易本義』 入選之由도 보다 명료하게 밝혀져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문제들이 밝혀지면 주자 역학은 보다 명료하게 해명될 것이다. 本稿之嵐的令一以評價朱子之經學貢獻二以討論朱于易學所當解朗的街區問題。為分析之便將朱于易學分成三個時期而進行探究。三個時期 :①『周易本義』及此時期的易學文獻 ②『易學啟蒙』及此時期的易學文獻 ③『朱于語類』及此時期的易學文獻 先論朱于的貢獻。朱于力求恢復『周易』的本來面目,且讓協韻說 釐正句讀L 發明割!詰。還是不可磨誠的朱子易學貢獻。 朱于聲稱『易』本是卜笈之書又主張伏羲﹒ 文王﹒ 周公﹒ 孔于各有不同之易。其云“伏羲自是伏羲易,文王白是文王易,孔子自是引L于易。"朱于此說雖然不無垠擾, 亦有相當的說服力。但為深入朱子易學思路, 或為朱于易學之春山安立, 做 乎必須解明幾個閑適: ①理﹒ 數﹒ 象﹒ 占之間的關係 ② 如何解決聖聖異的問題③何為r周易本義」入選之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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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자언론동이고』에 대한 시론적 고찰-『서경』의 인심 도심에 관한 논의를 중심으로-

        윤상수 한림대학교 태동고전연구소 2023 泰東古典硏究 Vol.51 No.-

        이 논문에서는 한원진의 『주자언론동이고(朱子言論同異攷)』에서 『서경(書經)』의 인심 도심(人心道心)을 다룬 부분을 대상으로 하여, 이 책의 서문에서 밝히고 있는 세 가지 방법, 즉 저술 연대의 고증, 관련 자료의 비교, 의리적 정합성의 판단이 주자 만년 정론의 확정이라는 이 책의 목적을 성공적으로 달성하고 있는지 검토해 보았다. 대단히 상투적이기는 하지만 이 책 역시 성과와 한계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인심 도심에 있어서 주자의 초년설과 만년설을 구별한 것, 「답정자상(答鄭子上)」을 가지고 「답채계통(答蔡季通)」을 부정한 것, 그리고 「답진안경(答陳安卿)」 등을 근거로 「중용장구서(中庸章句序)」에서 말하는 ‘형기(形氣)’를 몸으로 보는 것이 주자의 만년 정론임을 논증한 것 등은 분명히 이 책의 성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의리적 정합성을 기준으로 주자의 만년 정론을 확정하는 데는 일정한 한계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 점은 한원진 자신도 의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만년의 저술임에도 불구하고 초년설을 말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으로 보이기도 한다. 더욱이 이것을 자신의 주장의 근거로 삼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효과적인 비판을 전개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초년설과 만년설을 구분하여 자신과 자신이 속한 학파의 학설이 주자의 만년 정론과 일치함을 입증하려 했던 이 책의 목적 역시 성공적으로 실현했다고 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 그래서 한원진은 이 책에서 무엇을 취하고 버릴지는 독자의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다고 말하기도 했던 것이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객관적인 논증이나 고증보다는 자설의 정당성을 입증하려는 주관적인 목적의식이 강했던 점도 하나의 원인이 되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In this paper, I have examined whether the three methods elucidated by Han Won-jin in the preface of Jujaeonrondongeego(朱子言論同異攷)—namely, the verification of the time of writings, mutual comparison of relevant remarks, and judgment based on theoretical consistency—successfully achieve the purpose of this book, which aims to confirm the final conclusion of Zhu Xi(朱熹), especially focused on the part of dealing with Ren Xin Dao Xin (人心道心) of Shujing(書經). Although it may sound somewhat conventional, it seems inevitable to acknowledge that this book also has both achievements and limitations. In ‘Ren Xin Dao Xin(人心道心)’, the distinction between the early theory and the final conclusion of Zhu Xi, the rejection of 「Answer to Cai Ji-tong(答蔡季通)」 in favor of 「Answer to Zheng Zi-shang(答鄭子上)」, and the demonstration that the ‘Xing Qi(形氣)’ mentioned in the preface of Zhong Yong Zhang Ju(中庸章句) refers to the body, based on 「Answer to Chen An-qing(答陳安卿)」 and others, undoubtedly represent the achievements of this book. On the other hand, it is also true that there were certain limitations in establishing Zhu Xi's final conclusion based on theoretical consistency. Han Won-jin seems to have been aware of these limitations himself. And he appears helpless when confronted with remarks expressing the early theory despite his later writings. Moreover, he might not have been able to effectively criticize those who used this as the basis for their arguments. In this regard, it is difficult to say that the purpose of this book, which was to distinguish between the early theory and the final conclusion and to demonstrate that his own and his school's doctrines are consistent with Zhu Xi's final conclusion, has also been successfully realized. As Han Won-jin mentioned, the decisions regarding what to accept and what to reject from this book will ultimately be left to the reader's judgment.

      • KCI등재

        주자의 풍수이론과 제례문화의 연관성 -산릉의장을 중심으로-

        김기학 동아시아고대학회 2020 동아시아고대학 Vol.0 No.59

        This paper will shed light on the Feng Shui Thought and ritual culture of the intellectuals in Song Dynasty according to the Feng Shui Thought of Chu Hsi inherent in San Reung Ui Jang(山陵議狀). In addition, it will take a look at Chu Hsi’s viewpoint and the stance of contemporary intellectuals regarding the Li-Gi Theory(理氣論) and Hyoung-Gi Theory(形氣論) of Feng Shui which have been always considered problems in Feng Shui geography and will keep track of what is the interrelationship between the Feng Shui Thought and the ritual culture. In the case of Chu Hsi’s stance on Feng Shui, Hyoung-Gi Theory(形氣論) prevails over Li-Gi Theory(理氣論). And, he put more importance on Hyeol(穴), a kind of natural pathways for the energy, in Hyoung-Gi Theory(形氣論) and placed emphasis on Hyeol-Jeung Method(穴證法) accordingly while using Do-Jang Method(倒杖法) according to the mountain range(龍脈). The Do-Jang Method is about “will the grave site, that is to say the body and soul, be located in higher, lower, or middle places, or on the side according to vein?”. On the other hand, in the case of Chu Hsi’s Hyeol-Jeung Method, it is about “whether there is water in the grave site, the soil of the grave site is solid or fragile?, or will you dig in the grave site deeply or not?” Chu Hsi actually experienced them by actually digging the grave yard. Therefore, it has been found that Chu Hsi sought phenomena and empirical factors. The Chu Hsi also asserted the sympathized relation. However, for him, the sympathized relation is the selective sympathized relation. The sympathized relation presented in general Feng Shui asserted that if you worship the body and spirit of your ancestors in good land, it will bring all descendents good luck. But, the Chu Hsi said that the sympathized relation occurs, but it depends on the selective choice. This paper will follow the track of what is the basis for the Chu Hsi’s opinion. This paper will also examine the Chu Hsi’s viewpoint on the ritual culture. For him, the ritual culture is an important factor towards the completion of personality and becomes a special matter that forms an inseparable relationship regarding the ancestors’ safety and the prosperity of descendants. Furthermore, the ritual culture is not just about respecting ancestors for him. The Chu Hsi’s Feng Shui Thought had a great influence on the Feng Shui Thought and ritual culture in the Joseon Dynasty period. Where King HyunJong talked to Song Siyeol about the procedure of moving the royal tombs, recorded in the Annals of the Joseon Dynasty, known as Joseon Wangjo Sillok, Song Siyeol responded to it based on the ritual and Chu Hsi Theory. This is the case that the Chu Hsi’s Feng Shui Thought had a great influence on the Feng Shui Thought and ritual culture in the Joseon Dynasty period. Understanding the Chu Hsi’s Feng Shui Thought is also a way of understanding the Feng Shui Thought and ritual culture in the Joseon Dynasty period. 본고에서는 「산릉의장」에 내재한 주자의 풍수사상에 의거하여 그 시대(송나라) 지식인들의 풍수사상과 제례문화를 조명해 볼 것이다. 또 풍수지리에서 항상 문제점으로 남아있는 풍수 이기론과 형기론에 관하여 주자의 시각과 동시대 지식인들의 입장을 살펴보고, 이러한 풍수사상이 제례문화와 어떤 연관성을 갖는지 추적할 것이다. 주자의 풍수에 관한 입장은 이기론(理氣論)보다 형기론(形氣論)과 기감론(氣感論)을 우선한다. 그리고 형기론 중에서 혈(穴)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용맥(龍脈)에 따른 도장법(倒杖法)을 사용하고, 또한 혈증법(穴證法)을 중요시 한다. 도장법은 맥(脈)에 따라서 묘택(墓宅), 즉 형신(形神)을 높은 곳에 모실 것인가? 낮은 곳에 모실 것인가? 용맥의 가운데로 모실 것인가? 한쪽으로 모실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주자의 혈증법은 묘택에 물이 있는가? 없는가? 묘택의 흙이 단단한가? 부서지는가? 묘택을 깊게 팔 것인가? 낮게 팔 것인가를 실증하는 문제이다. 주자는 실제로 땅을 파면서 이것들을 직접 경험하였다. 이로 볼 때 주자는 현상과 실증적인 것을 추구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자는 또한 기감(氣感)에 따른 동기감응도 주장한다. 그러나 주자에 있어서 동기감응이란 선택적인 동기감응이다. 일반 풍수설에서 제시하는 동기감응은, 조상의 형신을 좋은 땅에 모시면 모든 자손이 발복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주자는 동기감응은 일어나지만, 그런 현상은 제례를 통한 제한적 선택에 의한다고 말한다. 본고에서는 주자의 이러한 주장이 어디에 근거하는가를 추적하겠다. 본고에서는 주자의 제례에 대한 입장도 살펴 볼 것이다. 주자에 있어서 제례는 인격의 완성으로 가는 중요한 요소이며, 조상의 안위와 자손의 번창에 관련하여 불가분의 관계를 형성하는 특별한 기제가 된다. 주자에 있어서 제례는 단순히 조상 공경에 머무는 것이 아닌 것이다. 주자의 풍수사상은 조선시대 풍수사상과 제례문화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조선왕조실록에 현종이 천릉의 절차를 송시열에게 의논한 기록에서 송시열은 의례와 주자설에 입각하여 답변한다. 이것은 주자의 풍수사상이 조선의 풍수와 제례문화에 영향을 준 사례이다. 그러므로 주자의 풍수사상을 이해하는 일은 조선의 풍수사상과 제례문화를 알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 KCI등재

        일본의「주자어류」역주 간행 프로젝트 현황

        온다 히로마사(Hiromasa ONDA) 한국동양철학회 2010 동양철학 Vol.0 No.34

        이 글은 『주자어류(朱子語類)』의 전권 일본어 역주 간행 사업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며, 이 간행 사업에 참가한 학자들의 활동을 소개하고자 한다. 주자학은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 세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고, 그 역사 또한 오래고 풍성하였다. 일본은 기본적으로 서양학문에 대한 번역국가로 불리고 있듯이 서양 문헌에 대해서는 고전시대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일본어 번역을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중국 고전의 경우 일본어 번역은 폭넓게 유포되었고 쉽게 접근할 수가 있다. 그러나 주자학 저술들은 이전에 일본어로 번역되지 않았기 때문에 쉽게 접근하기가 어려웠다. 현재 이 저작들에 대한 현대 일본어 번역이 적은 이유 중의 하나는 그것이 이전에 훈독 방식으로 읽혔기 때문일 것이다. 오랫동안 이러한 방식으로 읽을 수 있었기 때문에 텍스트의 일본어 번역이 반드시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잘 교육받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전문가가 아닌 이상 훈독의 방식으로 중국 고전을 읽을 수는 없었다. 비전문가들에게 주자학 저술들을 제공하는 일은 이전에 시도된 적이 없었다. 유감스럽게도 읽고 이해하고 번역할 능력을 가진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다.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도쿄대학의 미조구치 유조 교수는 1987년 송명연구회를 조직하여 현재의 『주자어류』 번역 프로젝트를 완수할 목표를 세웠다. 이 연구회는 정기모임을 통해 번역물을 교환하고 큐코(汲古) 잡지에 번역을 실었다. 이 작업은 지속되었고 이 간행물들에 기초하여 『주자어류』역주 권 1~3이 큐코서원(汲古書院)에서 출판되었다. 그러나 이 연구회의 회원은 많지 않아서 앞으로 새로운 참여자가 충원되지 않는다면 완주해 낼 수가 없을 것이다. 일본에는 교토대학의 히로시 코젠 교수, 그리고 도호쿠대학의 주자어류연구회와 같이 독립적으로 『주자어류』를 역주하는 연구자 그룹들이 있으며, 성과 또한 대단하다. 그러나 그들이 이 작업을 수행하고자 노력하고는 있으나 협동작업을 통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작고 독립적인 연구회가 그들의 활동을 지속할 수가 없을 것이다. 미조구치 교수는 『주자어류』 역주의 완간을 목표로 하였고 독립적인 연구자들을 규합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주자어류역주간행회를 설립했는데 이미 비슷한 연구회들이 역주작업을 시작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과 함께한 『주자어류』 역주간행회의 첫 번째 모임이 2007년 8월 도쿄대학에서 개최되었고, 여기에서 『주자어류』 역주간행회가 조직되었다. 이 모임은 『주자어류』 역주에 관심을 가진 학자와 연구회를 순조롭게 연결하여 협동할 수 있도록 하는 느슨한 네트워크로서 기능하고 있다. This project provides an introduction to the publication of an entire volume translated and annotated in Japanese from Zhuziyulei. Currently, I would like to introduce the activities of the group that has provided this publication. The Zhu Xi School of Neo-Confucianism has had a great effect on the East Asian world, including Japan, and its history has been long and fruitful. As Japan is said to be a “translation country” for basic academic literature of the West, the Japanese translation of academic works from the classical era to the present is easily accessible. As for the Chinese classics, we can say that Japanese translations are widely circulated and easily obtained. However, since the literature of the Zhu Xi School of Neo-Confucianism has not previously been translated into Japanese, such works as not easy to access. Nowadays, one reason there are few modern Japanese translations of this literature is that it has previously been accessed through the kun-doku reading of the text. For along time, since we have been able to read in this way, it wasn't absolutely necessary to have the text translated into Japanese. However, this is not presently the case. Even though a person is well-educated, he or she can not read Chinese classics in this way if they are not a specialist. The offering of literature of the Zhu Xi School for non-specialists has not previously been attempted. Sad to say, there are few people who have the ability to read, understand, and translate this material. In order to improve this situation, Professor Yuzo Mizoguchi, of the University of Tokyo, organized the Song-Ming Research Society in 1987, and has had the goal of completing the current translation project from Zhuziyulei. This society has held regular meetings, taking turns at translating, and has published their work in the Kyuko Journal. It is continuing to work in this way. Based on these publications, a translation and annotation from Zhuziyulei Volume 1-3 was published by Kyukoshoin. However, considering the small number of people in this society, it will be difficult for future translations to be completed without more participants. There exist some groups in Japan who are independently translating from Zhuziyulei, such as Professor Hiroshi Kozen of the Kyoto University, and the Tohoku University's Zhuziyulei Research Society, who have both produced excellent results. Small, independent groups cannot continue their activities even though they are attempting to do so, since their work is not coordinated, and thus creates duplication of effort. Professor Mizoguchi has completed an entire publication with translation and annotation from Zhuziyulei, and has succeeded in integrating some independent groups. He has established the Zhuziyulei Translation and Annotation Society. Similar groups are already beginning their work of translation and annotation. The first publication and translation committee meeting was held at the University of Tokyo in August 2007, and the Zhuziyulei Society was established. This society functions as a loose network with the aim of smoothly providing contact and coordination of scholars and interested groups with the purpose of completing Zhuziyulei translation and annotation.

      • KCI등재

        특집 : 송명유학 수양론에서 "미발"(未發) 설의 형성과 전개 ; 주자(朱子)의 미발설(未發說)과 거경격물(居敬格物)의 수양론

        전병욱 고려대학교 철학연구소 2009 철학연구 Vol.0 No.38

        이 글은 주자 수양론 체계를 未發說에 대한 분석을 통해 천착하였다. 그동안 주자의 수양론과 관련하여 `主靜`적인 성격을 지적하는 비판이 많이 있었다. 王陽明과 淸代 학자들은 已發 공부 이외에 未發 공부의 단계를 별도로 설정했다고 비판하였고, 牟宗三은 逆覺體認이 아닌 格物窮理를 공부 방법으로 택했다고 비판하였다. 이런 비판들은 주자의 未發說에 담긴 다양한 의미 맥락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발생한 것이며 주자의 공부론이 `求仁`이라는 목표 위에 정초되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지 않은 것이다. 한 개체의 主宰로서 마음은 세계에 대응해가는 주체인데, 이 개체는 세계에 대응해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 주자의 未發說은 이 문제에 대한 주자의 대답을 담고 있다. 말하자면, 누구나 세계에 대응하기 전에는 올바로 세계에 대응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대답하는 것이 未發에 담긴 철학적 의미이다. 하지만 이 가능성은 잠재적 형태여서 현실적 가능성과는 다르다. 현실적 가능성은 세계에 올바로 대응할 수 있는 준비태세를 갖추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그에 반해 잠재적 가능성은 그런 준비태세를 기를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것이다. 性으로서 未發은 잠재적 가능성에 대한 논의와 관련된 것이고, 心으로서 未發은 준비태세를 올바로 갖추는 방법에 대한 논의와 관련된 것이다. 性의 차원에서 말할 때 모든 사람의 未發은 세계에 올바로 대응할 수 있는 잠재적 가능성을 갖추고 있다. 반면 心의 차원에서 말할 때는 모든 사람의 未發이 세계에 올바로 대응할 수 있는 준비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性으로서의 未發에 대한 논의에서 주자는 性을 心으로부터 독립된 또 하나의 실체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心으로서 未發에 대한 논의에서는 心을 바람직한 어떤 상태로 기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性은 독립된 실체가 아니기 때문에 `逆覺體認`과 같은 방법으로는 性의 전모를 인식할 수 없고 반드시 格物窮理의 과정을 밟아야 한다. 그리고 心은 현재 올바른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未發體認`과 같은 방법으로는 心의 바람직한 모습을 형성해낼 수 없고 반드시 居敬涵養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렇게 주자의 수양론이 주체를 정립해가는 과정인 居敬涵養과 그 주체가 세계와 소통해가는 방식을 모색해가는 格物窮理로 구성되게 된 것은 바로 이런 다양한 의미 맥락 속에서 전개된 그의 未發說에서 이론적 근거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這篇文章是通過對朱子未發說的分析而穿鑿了他的修養論的。到今天, 許多硏究者對朱子修養論的"主靜"性格有反感。早日, 王陽明和淸朝學者們責怪朱子設定了一個근已發工夫不一樣的未發工夫。還有, 當代學者牟宗三就責怪朱子只知道居敬格物而不憧逆覺體認。這樣的批評都是出於對朱子未發說的誤解。他們沒注意到朱子未發說是個別語境裏有個別含義。還有, 他們沒注意到朱子修養論的終極目的是"求仁"。作爲一身主宰的"心"是有沒有對付天下萬的能力? 朱子的未發說是對這個問題的回答。他覺得, 人人都有對付好天下萬物的潛能, 而且"未發"是關於這個潛能的。但是, 他以爲, 這個潛能畢竟근現成能力不一樣。潛能是人人是一樣, 而現成能力是人人不一樣。作爲"性的"未發"是?人的潛能有關系的, 而作爲"心"的"未發"是근人的現成能力有關系的。如果說"性"的"未發"的話, 人人都會正確的對付天下萬物。可是, 如果說"心"的"未發"的話, 人對付天下萬物的能力都不一樣。對作爲"性"的"未發"的討論, 朱子强調"性"不是一個근"心"分開的一個實體, 而在對作爲"心"的"未發"的討論, 他强調"心"是需要一系列的培養過程。"性"旣然不是獨立的實體, 通過"逆覺體認"這樣的方法不能認識"性"的全體, 而須要格物窮理的工夫過程。還有, "心"旣然不是現成能力, 通過"未發體認"這樣的方法不能挺立完善主宰, 而須要居敬涵養的得工夫過程。這樣, 朱子的修養論是由作爲挺立主宰過程的居敬涵養工夫和作爲근世界溝通過程的格物窮理工夫構成的, 而他的未發說是說明其內在邏輯的理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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