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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상 : 대학 교양교육과 『논어』

        부남철 ( Nam Chul Bu ) 영산대학교 동양문화연구원 2012 동양문화연구 Vol.12 No.-

        이 논문은 동양고전인 논어를 교양필수 과목으로 지정하고 교육해온 영산대학교에서의 교육 사례를 분석한 것이다. 이것은 대학의 인문학 교육에 있어서 현재까지 국내에서 유일한 사례이며 전통적인 학습방법을 대학의 강의실에서 적용하려고 했던 그 교육 방법에 있어서 실험적인 시도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먼저 대학에서 왜 논어를 교양과목으로 교육해야하는지 그런 교육의 필요성에 대해서 먼저 2가지 이유를 말한다. 모두가 인문학고전 교육이 중요하다고 동의하지만 목록만 추천할 뿐 실제로 그런고전을 읽게 하는 실제적 교육에 있어서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상황에 대한 반성으로 시작되었고, 또한 논어 교육이 전통적 가치의 현대적 계승 발전을 중시하는 대학의 교육목적에서 설치되었다는 점도설명한다. 그러면서 논어 교육이 특히 인성 교육과 고전 학습을 통한지성의 함양이라는 목적이 있다는 점에 대해서 상술한다. 그러면서 논어가 위기지학의 인격수양을 강조하는 책이기에 그 교육에 있어서는 자율적인 인격 수양을 형성하는데 도움을 주는 점에 역점을 두어야하며 논어라는 책이 단지 진부한 고전이 아니라 현실의 삶 속에서 여전히 살아있는 지혜의 보고임을 학생들에게 이해시키는 작업이 중요함을 역설한다. 강의 방법에 있어서는 조선시대와 같이 논어 본문에 토를 붙여서 읽게 할 것인지, 집주까지 소개할 것인지와 같이 논어를 대학 강의실에서 학기단위로 강의할 때 고려해야 하는 문제들에 대해 서술한다. 그런 다 음에 논어 교육에 필요한 교재를 소개한다. 조선시대에 간행된 논어언해로부터 현대의 다양한 논어 역주서를 소개하고 논어 교육과 학습의 변천사를 설명하면서 이런 자료들을 논어 교육에 어떻게 참고할 것인지를 모색한다. 이어서 1997년부터논어를 교육해온 영산대학교에서의 교육과정과 교육 사례를 분석한다. 논어와 동양고전 관련 과목의 개설과 운영과 그 변천에 대해 서술하면서 현재 논어의 교육 비중은 개교 당시와 비교해서 절반으로 축소되었지만 그것이 동양고전 관련한 다양한 과목으로 분화되었다는 점을설명한다. 이런 논어에 대한 강의 평가가 교양필수과목이지만 결코 다른 과목에 비해서 낮지 않았다는 사실도 소개한다. 그러면서 논어강의가 영산대학교에서의 인문학 교육의 상징적 과목으로서 실제적인 교육성과를 거두었고, 대학에서의 동양고전 교육의 한 모범적 사례가 되었다고 평가한다. This is a case study of the liberal arts education at Youngsan University that has offered required courses on the Analects of Confucius to its undergraduate students. This program has been unique among Korean colleges and universities, and it represents an experimental effort to bring the traditional education approach to a modern classroom. Only a small number of traditional Confucian academies and institutes for East Asian Classics translation continue the traditional teaching program. Thus, the program at Youngsan University even sparked some controversy among some faculty and students. Here I first elucidate on the goals of teaching the Analects of Confucius in Youngsan University. They include "encouraging being an educated gentleman," providing timeless values from the East Asian classics, and basic knowledge of the Confucian classics and traditional culture of Korea. Other parts of the paper deal with the teaching methods of the Analects in the classrooms, and various editions of textbooks on the Analects. The Analects has been an integral part of the liberal art curriculum at Youngsan University since 1997, but its importance has declined somewhat as there are critics who opposed the teaching of the Analects as a requirement. On the other hand, we have been able to develop teaching methods on the Analects developed, and more courses are now offered on the related field of East Asian Classics. Although it was a requirement, course evaluations by students have been quite favorable. In the end, the teaching of the Analects can be considered a success, and it represents one of the exemplary humanities courses on the East Asian classics.

      • KCI등재

        한국에서 論語學의 생성과 발전에 관한 고찰

        안광호(AN, Gwang Ho) 순천향대학교 인문학연구소 2020 순천향 인문과학논총 Vol.39 No.2

        본고에서는 한국 사회에서 논어학이 출현하여 발전되어 온 과정을 역사적으로 고찰하였다. 본고는 이를 위하여 17세기 이전의 논어학과 17세기 이후의 논어학으로 구분하고, 아울러 20세기 이후의 논어학과 현대 한국 사회에서의 논어 교육에 관하여 고찰하였다. 본고에서 17세기를 기준으로 논어학의 발전 단계를 크게 두 시기로 구분한 이유는 전통기 한국 사회가 17세기를 기점으로 하여 성리학적인 사회로 바뀌게 되기 때문이다. 17세기 이전의 논어학에 관해서는 삼국 시기, 고려 시기, 성리학 전래 이후의 논어학으로 구분하여 고찰하였고, 17세기 이후의 논어학에 관해서는 17세기 논어 주석서와 연구자, 18세기 논어 주석서와 연구자, 그리고 19세기 논어 주석서와 연구자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또, 20세기 이후의 논어학에 관해서는 근대 문명이 처음으로 도입되기 시작한 20세기 초반의 논어학과 현대 문물이 본격적으로 유입되기 시작한 20세기 중반의 논어학으로 구분하였다. 그리고 현대 한국 사회에서의 논어 교육에 관해서는 논어에 대한 현대적인 연구 방식의 출현과 교육에 관해 고찰하였다. This study has historically examined the process of the development of Analects in Korean society. This study divided the age of Analects in Korean society in to four periods; he pre-17th century, post-17th century, post-20th century, and comtemporary period. The reason why the development stage of Analects studies was divided based on the 17th century is that the traditional Korean society had changed into a Neo-Confucian society starting from the 17th century.

      • KCI등재

        『논어(論語)』에 대한 정조(正祖)의 철학적 관점 분석 -『논어강의(論語講義)』 어제조문(御製條問)및 조대(條對)와 『노론하전(魯論夏箋)』 문답(問答)을 중심으로-

        백민정 ( Min Jeong Baek ) 동양철학연구회 2010 東洋哲學硏究 Vol.62 No.-

        본 논문은 정조 문집 가운데 『論語』 관계 토론서인 『論語講義』와 『魯論夏箋』을 중심으로 정조의 論語觀을 살펴본 것이다. 두 작품에는 정조가 다양한 학파의 文臣들과 『論語』 경문에 대해 질문하고 토론한 내용들이 수록되어 있다. 이곳에서 정조는 聖人으로서의 孔子의 처신 및 교육방법 등을 비판적으로 문제 삼았고, 주희의 경전해석 경향에 대해서도 강한 의문을 표명했다. 정치적 문제에서도 君師혹은 聖王으로서의 자신의 처지에 입각해 『논어』에 대한 독특한 정치적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정조가 『논어』와 이에 대한 주희 해석을 가장 권위 있는 학설로 인정한 것은 사실이지만, 당시 진행된 실제 講義내용을 보면 이미 聖人과 주희 학설에 대한 상당한 수준의 비판적 논의가 이루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This paper is intended to investigate into Jongjo`s philosophical viewpoints of Nono(論語) according to the analysis of Nonogangui(論語講義) and Nolonhajon(魯論夏箋). These two texts comprised dialogues between Jongjo passed judgement on Confucius` moral conducts and the method of teaching, and entertained a doubt as to Juja`s Neo-Confucian interpretations of Nono. Also he should propose new political interpretations of Nono, for he was actual king of Choson dynasty. Ostensibly he recognized Juja`s Neo-Confucian interpretations as an orthodox doctrine. However it was evident that he doubted the status of Confucius as a saint and the authority of Neo-Confucian interpretations of Nono.

      • KCI등재

        조선 논어학의 형성과 전개양상

        이영호 ( Young Ho Lee ) 동양철학연구회 2009 東洋哲學硏究 Vol.59 No.-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의 논어학은 『논어』의 경문을 습득하는 수준이었으며, 조선전기에 들어와서 『논어』의 국문번역과 『논어집주』의 출간이 이루어졌다. 그러다가 16세기 이황의 『논어석의』에 이르러 조선의 논어학은 주석학의 영역으로 들어서게 되는데, 이 시기 조선의 논어학은 주자학파의 논어학에 대한 심층적 이해와 정치한 분석이 핵심 내용을 이루고 있다. 한편 17세기는 송시열, 김창협 등에 의해 주자의 『논어』 주석의 권위가 확립되는 시기였으며, 동시에 박세당에 의해 주자학적 맥락을 벗어나서 『논어』를 해석하고자 하는 경향도 발생하였다. 그리고 18세기는 양명학파, 퇴계학파, 우암학파, 실학파 등에서 『논어』주석서를 발간함으로써 조선 논어학의 가장 다채로운 양상을 보여준 시기였으며, 19세기에는 실학파인 정약용에 의해 조선 논어학의 정점을 보여주는 『논어고금주』가 저술되었다. 이황에게서 출발한 조선의 논어학은 주자의 『논어』 주석학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를 가장 큰 특징으로 들 수 있다. 그리고 소수의 실학파에의해 중국의 고증학파, 일본의 고학파에 비견될 수 있는 『논어』 주석서가 저술됨으로써, 조선 논어학의 수준이 제고되었다고 할 수 있다. While understanding the body of Noneo was mainly undertaken in the period of the three kingdoms and the Goryeo dynasty, the publication of Noneojipju and the translation of Noneo into Korean were realized in the early Joseon dynasty. In the sixteenth century, Noneosukui, written by Yi, Hwang, raised the Noneohak (the study of Noneo) into an area of true scholarship. The Noneohak in this era focused on a deeper understanding and detailed analysis about the Noneohak as studied by the Chu Hsi School. Meanwhile, in the seventeenth century, the authority of Chu Hsi`s annotation of Noneo was established by scholars such as Song, Si-Yeol and Kim, Chang-Hyup. At the same time, there was the emergence of a new understanding of Noneo by Park, Se-Dang who tried to interpret it differently from that of the Chu Hsi School. The most diverse discussions of the Noneohak in the Joseon dynasty were shown in the publications of various annotations of Noneo from different schools such as the Yangming School, the Toegye School, the Wooam School, and the Silhak School in the eighteenth century. In the nineteenth century, Noneokogeumju, the scholarly pinnacle of the Noneohak, was written by Jeong, Yak-Yong from the Shihak School. Noneohak, which began with Yi, Hwang in the Joseon dynasty is distinguished by its detailed research of Chu Hsi`s study of the annotation of Noneo. Additionally, the standard of the Noneohak in the Joseon dynasty was enhanced by the publications of annotations of Noneo, developed by a small number of scholars from the Shilhak School, which can be compared to those of the School of Empirical Research in China and the School of Ancient Meaning in Japan.

      • KCI등재

        中國 歷代 『論語』註釋考

        金暎鎬 동양철학연구회 2003 東洋哲學硏究 Vol.34 No.-

        本考에서는 『논어』라는 문헌에 대하여 먼저 중국의 대표적인 주석서를 종합 정리 검토해보고자 한다. 이에 앞서 그 전 단계로서 『논어』의 名義와 編纂者 및 編纂時代, 『논어』의 種類와 眞僞, 『논어』의 傳承 및 중국의 역대주석을 개괄하고 이어서 대표적인 주석서(『論語集解』, 『論語集注』, 『論語正義』)의 내용과 특징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이에 이러한 접근을 바탕으로 이후 우리나라에서의 대표적인 『논어』연구주석서에 대한 고찰의 전단계로 삼고자 한다. 『논어』의 名義에는 諸說이 있으나 『한서』에서 ‘論撰’의 의미로 『논어』를 해석한 것이 가장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논어』의 편찬 년대는 대략 周나라 말에서 戰國시대로 하한선을 잡을 수 있으며 그 시기도 대략 3기로 나뉜다. 또 편찬자도 공자의 제자 또는 제자의 문인 등 여러 계층임을 알 수 있다. 논어의 종류로는 魯論, 齋論, 古論의 세 가지 종류가 있으며 현재 전해지는 것은 鄭玄의 편집본이다. 아울러 『논어』의 진위 문제는 크게 사실, 의리, 문체, 용어 사용 또는 上下論의 차이 등에 의해 고찰할 수 있다. 『논어』의 諸 注釋 中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何晏의 『論語集解』와 朱子의 『論語集注』, 劉寶楠의 『論語正義』인데 세 가지는 각기 그 시대를 대표하는 著作으로서(魏晉 및 兩漢, 宋明, 淸) 각각의 특징을 最古(『集解』), 最精(『集注』), 最博(『正義』)으로 定義할 수 있다. This essay generally surveys and reassesses meanings and limits of the annotation books to the Analects of Confucius(Lun Yu) garnered historically for many generations in China. Before working on this, my research goes on identifying titles of annotations, authors, the age of annotation, and kinds of the Analects, contesting whether many annotations to the Analects were annotated based on the genuine text. My article also surveys Chinese annotations to the Analects handed down historically in China as well as Lun Yu study in Chosun Dynasty including great scholars' annotations and interpretations. Some diverse views may go to for its name and meaning but it is thought of reasonable to take it as "to consult and compile" the Analects of Confucius as in History of the Former Han(Han Shu). Publications of Lun Yu by Confucian disciples and scholars may be considered in three periods going back to between Chou Dynasty and Warring States Period. In addition, problems concerning the verification of the genuine Lun Yu texts may be tackled in light of fact, probity, style, terms, and difference between two volumes, He Tan(何晏)'s Collected Annotations to the Analects(論語集解, Lun Yu Ji Jie) in Wei(魏) and Jin(晋) Han(漢), Zhuzi(朱子)'s Collected Annotations ?? the Analects(論語集注, Lun YuJi Zhu) in Song(宋), and Liu Bau Nan(劉寶楠)'s Lun Yu Zheng Yi(論語正義) in Qing(淸) are the greatest of all the annotations of the Analects written in each eta. These three pieces may be characterized to be 'the best annotated,' 'the best essential,' and 'the best informed' respectively.

      • KCI등재

        王夫之의 『논어(論語)』해석(解釋) -주자(朱子)의 해석(解釋)과의 비교(比較)를 中心으로-

        임옥균 동양철학연구회 2009 東洋哲學硏究 Vol.59 No.-

        주자는 도통설에 입각하여 공자를 성인으로, 증자, 자사, 맹자를 현인으로 보고 그들에 의해 유학의 도가 계승되었다고 생각하여 그들의 저술이라고 하는 『논어』, 『맹자』, 『대학』, 『중용』, 四書를 六經에 앞세웠다. 四書는 상호보완적인 성격을 갖는 글이고 우열을 갖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왕부지도 공자가 성인이며 논어가 성인의 말과 생각을 가장 잘 반영하고 있는 책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왕부지에 의하면 『논어』는 성인의 위로 통하고 아래로 통하는 말이다. 이에 비해 『맹자』, 『대학』, 『중용』은당시의 세상을 구하려는 시대에 국한된 책이다. 그러므로 왕부지가 『논어』를 읽는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독서법은 『논어』를 그 시대에 국한되는 말로 이해하지 말고 시대와 지역을 뛰어넘어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있는 말로 읽으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왕부지가 『논어』를 읽으면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으로 제시하는 독법은 그가 `藥病說`이라고 부르는 『논어』 읽기이다. 일정한병에 일정한 약을 쓰듯이 공자가 『논어』에서 제자들에게 한 말이 그 제자 각각의 어떤 병통을 바로잡아주기 위해 한 말이라고 해석하는 것이바로 藥病說이다. 주자와 그의 후학들의 경우 『논어』를 해석하면서 많은 부분을 이 약병설에 의거하여 해석하였다. 약병설을 비판하면서 왕부지는 공자가 한 말은 제자들의 병통을 바로잡아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상하에 통달하여 성인이 될 수 있도록 사람을 인도하는 보편적인 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성인이 하나의 일에 대해 말하면 여러 가지 일에 나누어 적용되도록 되어 있다는 것이다. 筆者在進行對王夫之經學思想的硏究中已經執筆了「王夫之的大學理解』和『王夫之的中庸解釋』(1), (2)的論文. 這次繼續『王夫之的論語解釋(1)』而檢討對王夫之論語解釋. 與以前的論文一樣, 通過與朱子對論語解釋的比較而顯出王夫之論語解釋的特徵. 這次論文分析的對象是論語中從學而到雍也, 以後的部分在『王夫之的論語解釋(2)』(假題)中再論. 朱子在道統說的見地下主張孔子是聖人, 曾子子思孟子是賢人, 他們繼承儒學之道, 而且把他們的著述, 卽是論語孟子大學中庸四書放下在六經之先. 朱子想四書是相互補完性的文而沒有他們中優劣. 王夫之也認定孔子是聖人, 論語反映聖人之言與思. 王夫之說論語是聖人之徹上徹下語, 孟子大學中庸是救當世之語. 所以他想論語的言語是超越時空的普遍言語, 而且批判藥病說. 主張藥病說的人說孔子對弟子的言語是爲治療弟子之病痛的治療藥. 朱子與他後學解釋論語的時候, 大槪用此說. 王夫之主張孔子對弟子的言語不是爲治療弟子之病痛的治療藥, 是使弟 子通達上下而爲聖人的普遍言語. 比如說聖人說一個事, 他可能適用于其他多的狀況. 敬是能適用于所有的人, 簡是旦能適用于天子諸侯, 而且孝道是能適用于所有的人, 幾諫是旦能適用于老百姓之子弟. 王夫之重視學問而主張所能區分人與動物正是學問. 他想在本能的側面人 劣等于動物而通過學問能過動物. 王夫之斷言沒有不通過學問而爲聖人者, 而且解釋論語的時候常常取重視學問的態度. 且解釋論語的時候常常取重視學問的態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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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어상설(論語詳說)』의 편찬 목적과 의의 - 『논어』 이해를 위한 주자서(朱子書) 재구성 -

        강경현 한림대학교 태동고전연구소 2019 泰東古典硏究 Vol.42 No.-

        『논어상설(論語詳說)』은 조선의 『논어집주(論語集註)』 해석사와 『주자대전(朱子大全)』 독해사라는 두 층위에서 조망될 수 있다. 우선 『논어상설』은 『주자대전』 수록 『논어』 관련 주자서(朱子書)를 집성한 책으로서, 주희의 『논어』 해석에 대한 완정한 이해로 나아가고자 하는 지향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다음으로 『논어상설』은 주자서를 『논어』라는 특정 주제에 따라 선별, 분류, 재배치한 문헌으로서, 『주자대전』에 대한 진일보한 독해 방식을 보여준다. 『논어집주대전(論語集註大全)』과 『주자대전』에 대한 이해의 어려움을 해소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 산출된 『논어상설』을 통해, 조선 주자학계가 『논어집주』 해석 차원에서는 『주자대전』으로까지 검토 자료의 외연을 확장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으며, 『주자대전』 독해 차원에서는 주희의 『논어』 해석이라는 선명한 접근 기준을 확보하였음을 살펴볼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논어상설』은 조선에서 진행된 주자학적 경전 해석의 깊이와 발전 정도를 가늠해볼 수 있는 문헌이다. Noneosangseol can be viewed on two levels, the history of Noneojibju interpretation and the history of reading about Jujadaejeon. First, Noneosangseol is a collection of Zhuxi's letters related Analects in Jujadaejeon. In this book, we can see the intention to fully understand Zhuxi's Noneojibju. Next, Noneosangseol is a work that recomposes Jujadaejeon by sorting and classifying Zhuxi's letters according to a specific subject, Analects. In some ways, it is a book that shows a better way of reading about Jujadaejeon. Noneosangseol is made in the process of eliminating the difficulties brought by Noneojibjudaejeon and Jujadaejeon to Joseon. We can see through Noneosangseol that the outline of the review material is extended to Jujadaejeon in the interpretation of Noneojibju by the Joseon confucian scholars, and that a clear approach standard of interpretation of Analects is provided in reading comprehension of Jujadaejeon. In this sense, Noneosangseol seems to be a book showing the depth and development level of Confucian Classical interpretation based on the Zhuxi Studies in Jo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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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어』 “오여회언(吾與回言)”장(章)에 대한 조선의 주자학적 접근

        강경현(姜卿显,) 한림대학교 태동고전연구소 2018 泰東古典硏究 Vol.40 No.-

        《论语·为政》篇第九章以“吾与回言”广为人知,而朱子有关这一章的定论 则收录于《论语集注》中。这一章节是一段十分有价值的资料,包含了孔子对 颜渊的评价,能看到颜渊理解的孔子的教导具体是什么。但与之相关的朱子 的解释最初与《朱子集注》并不一致。我们可以通过《延平问答》、《论语精义》、 《论语或问》、《朱子大全》和《朱子语类》,看到朱子对其解释的转变过程。 通过《论语集注大全》接触到“吾与回言”章的朝鲜学者们想立足于《论语集 注》对这一段进行阐释,但因在《论语集注大全》小注中片面地提出各自不同 时期朱子的解释,碰上了一些问题。为了解决这个问题,在朝鲜对朱子文献 进行了更加全面的研究。并且筛选了对于理解“吾与回言”章有帮助的句子, 使其系统化。由此,朝鲜更加准确地掌握了能够确认与≷论语集注≸相关的朱 子立场的文献。以这种方式,朝鲜建立了使朱子学的≷论语≸分析更加深化所 需的基础资料。 “오여회언(吾與回言)”장(章)으로 알려져 있는 『논어』「위정(爲政)」9장에 대한 주자의 정론은 『논어집주(論語集註)』에 수록되어 있다. 안회에 대한 공자의 평가가 담긴 이 구절은 안회가 이해한 공자의 가르침이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유의미한 자료이다. 그러나 이와 관련한 주자의 해석이 처음부터 『논어집주』와 동일했던 것은 아니다.『연평답문 (延平答問)과 『논어정의(論語精義)』, 『논어혹문(論語或問)』 그리고 『주자대전(朱子大全)』과 『주자어류(朱子語類)』를 통해 주자의 이 구절에 대한 해석의 변천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논어집주대전(論語集註大全)』을 통해 “오여회언”장을 접한 조선의 학자들은 『논어집주』에 입각하여 이 구절을 해석하고자 하였지만, 『논어집주대전』 소주(小註)에서 각기 다른 시기의 주자 해석을 단편적으로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야기된 몇몇 문제를 맞닥뜨렸다. 이를 해결 하기 위해 조선에서는 주자 문헌에 대한 추가적 검토를 진행해 나가면서 “오여회언”장을 이해 하는 데 도움이 되는 구절들을 선별하여 체계화하였다. 이러한 과정은『논어집주』와 관련된 주자의 입장을 확인할 수 있는 문헌의 장악을 동반함으로써 조선의 주자학적 『논어』해석을 심화시키는 토대 자료 구축의 의미를 갖는다.

      • KCI등재

        한국논어연구사시론 ― 16~17세기를 중심으로

        송갑준 대동철학회 2008 大同哲學 Vol.43 No.-

        한반도에서 「논어」는 7세기 후반부터 읽혀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주자학 도입이전(13세기)까지 「논어」는 군왕이나 학자들의 자질과 생활규범의 확립에 필수불가결한 경전이기는 하였지만 학문적 입장에서 심층적으로 연구한 것은 아니었다. 16세기 주자학 연구가 심화됨에 따라 16세기 후반에는 이황과 이이의 「논어석의」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석의」는 경문 전체에 대한 주석서가 아니었고 의난처(疑難處)를 적출하여 언해를 붙이는 방식으로 원문의 정확한 의미를 추구하려는 것이었다. 이어 이덕홍의 「논어질의」는 의난처를 적출하여 주희주에 대한 자신의 해설을 밝힘으로서 「논어」의 올바른 이해를 위한 방향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방향은 하나의 전통을 이루어 김장생의 「논어변의」, 김수인의 「논어차록」, 박지계의 「논어차록」, 이유태의 「논어답문」으로 이어지면서, 주희주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결코 거기에만 얽매이지 않고 독자적 견해를 표출하면서 공자의 본의를 밝히려고 하였다. 17세기 후반에는 주자학을 철저히 신봉하는 송시열의 「논어혹문정의통고」가 편수되는 한편 탈주자적 경향의 임영의 「논어차록」이 나오고 마침내는 반주자적 경향인 박세당의 「논어사변록」이 이루어진다. 「통고」와 「사변록」이 동시대에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조선조 전기의「논어」연구가 결코 주자학 일변도만은 아니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 KCI등재

        論語 木簡을 통해 본 東아시아 論語 傳播

        오택현(Oh, Taek-hyun) 한국고전번역원 2022 民族文化 Vol.60 No.-

        우리나라는 동아시아에 위치한 국가로, 중국에서 문화를 받아들여 일본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하였다. 고대 중국의 선진문화가 일본으로 전파되는 데 있어 한반도가 중간 역할을 하였음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어떤 문화가 어떻게 전달되었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확인한 사례는 드물다. 본고에서는 論語가 기록된 木簡을 통해 중국-한반도-일본으로의 論語 및 유교 사상 전파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論語는 儒學 사상의 요체를 담고 있어 儒敎的 소양을 쌓기 위해 반드시 익혀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論語의 수용은 곧 儒敎 수용의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古代 三國(高句麗 · 百濟 · 新羅)은 모두 儒敎를 일정 부분 통치의 기반으로 삼았으며, 이를 바탕으로 律令을 반포하고 국가체제를 정비했다. 이처럼 儒敎 사상은 古代 三國(高句麗 · 百濟 · 新羅)이 고대국가로 나아가고, 국가 통치의 핵심이 되는 文書 行政 시스템을 안착시키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또한 日本에서도 律令국가가 성립할 수 있도록 하였다. 古代의 論語 木簡 및 竹簡은 中國뿐만이 아니라 한반도, 日本에서도 발견된다. 韓 · 中 · 日에서 발견된 수십만 건의 古代 木簡 중 論語가 공통적으로 확인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를 통해 ‘동아시아 유교 문화권’의 실체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論語 木簡을 제작하는 방법은 각국에 따라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中國은 編綴簡 형식으로 論語 木簡을 제작하여 사용했다. 한반도는 樂浪郡이 존속했을 당시 그러한 양식의 論語 編綴簡을 받아들였고 나아가 儒敎 수용의 발판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후 한반도에서 論語 木簡은 보이지 않다가 6∼7세기에 들어 다시 발견되는데, 이때 그 모양에 있어 변화가 나타난다. 바로 編綴簡 형식이 아닌 130㎝ 정도의 크기의 多面 木簡으로 제작된 것이다. 이러한 형태의 論語 木簡은 시각적인 효과를 주고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일본에서도 큰 크기로 多面에 걸쳐 論語를 기록한 論語 木簡이 확인된다. 그 형태는 6∼7세기 한반도에서 제작된 論語 木簡과 같으며, 그 발견 지점이 관청 등의 관공서라는 점에서 그 역시 시각용 木簡으로 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즉 중국에서 등장한 論語 編綴簡이 한반도로 유입된 후 변용되었고 변용된 모습으로 다시 일본에 전파되었다고 볼 수 있다. The Korean peninsula is a country located in East Asia, and played an important role in spreading the Chinese culture to Japan after accepting it from China. No one doubts that Korea acted as messenger that spread the advanced Chinese culture to Japan. But they don’t understand what culture Koreans have spread and how they passed to Japan. Therefore, we would like to examine the process of the propagation from China, to Korean and Japan through Mokkan(木簡), or wooden tablets on which The Analects of Confucius(『論語』) was recorded. First, we looked at why The Analects of Confucius(『論語』) Mokkan(木簡) was spread from China to Korea and then to Jaapan. The meaning of The Analects of Confucius Mokkan(論語木簡) is special. The Analects of Confucius(『論語』) is a book written about the words and actions of Confucius(孔子) during his lifetime, and it contains the essence of his thoughts. In other words, learning about The Analects of Confucius(『論語』) was essential to acquiring Confucianism(儒敎) skills, so to accept The Analects of Confucius(『論語』) is the first stage in accepting Confucianism. The Analects of Confucius(『論語』) in ancient form is found not only in China, but also in the Korean peninsula in the form of ancient Mokkan(木簡), which allows us to examine the true nature of the Confucian culture of East Asia. Although simple, The Analects of Confucius(論語) Mokkan(木簡), is very significant in that it can help us to understand the flow of the culture and look at the process of spreading the culture as it is modified and transformed. The culture of The Analects of Confucius Mokkan(論語木簡) can be changed by social shape, but its essentials have no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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