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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과 실제 사이 : 1430년대 독일회화에 나타난 ‘사실성’에 대한 고찰

        전한호(Jeon Hanho) 한국미술사교육학회 2011 美術史學 Vol.- No.25

        15세기 아방가르드 미술은 토스카나와 플랑드르란 두 지역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이 시기의 미술을 지난 세기의 사조인 국제고딕양식과 비교해보면 변화의 흐름을 확연히 깨달을 수 있다. 소위 “아름다운 스타일”로 일컬어지는 국제고딕양식과 달리 15세기 전반기의 미술은 사실주의를 특징으로 한다. 이 글은 1430년대 독일 남서부에서 활동한 세 작가의 주요 작품을 분석하고 있다. 세 작가는 각기 고유한 방식으로 지난 세기의 중세적 전통을 극복하고 있다. 파노프스키에 의해 ‘아르스 노바’로 명명되는 15세기의 사실주의가 이 지역에서 태동한 것은 결코 우연이라 할 수 없다. 당시 이곳은 문화적, 종교적, 상업적 교류가 활발했던 곳으로 마치 용광로와 같은 역할을 담당했다. 세 화가의 작품은 사실성의 추구란 점에서 공통분모를 갖는다. 루카스 모저가 그린 티펜브론의 막달라 마리아 제단화에서 인간과 자연은 더 이상 상징이 아닌 존재하는 대상으로 다가온다. 모저의 화면에서 공간은 고딕식 첨두아치의 프레임에도 불구하고 일목요연한 풍경으로 묘사된다. 그림 속 공간이 실제 공간과 소통할 때 관람자는 그림이 묘사하는 사건에 더욱 몰입할 수 있게 된다. 한스 물처가 시도하는 관람자와의 소통은 개성적인 인물군을 통해서다. 물처의 인물은 대체로 투박하고 험상궂다. 물처의 거친 인물들은 고딕적 우아함과는 거리가 멀어 선들은 서로 부닥치거나 꺾이기 십상이다. 파렴치한 인물들은 알지 못한 채 예수를 죽음으로 내몬 시대적 무지를 표현한다. 때문에 물처가 창조한 인물의 스타일은 역사적 사실주의에 해당된다. 슈바벤 출신으로 바젤에서 활동한 화가 콘라트 비츠의 〈구원사 제단화〉는 1430년대 작품으로는 매우 혁신적이다. 무엇보다 비츠는 인물의 존재감표현을 위해 그림자를 즐겨 구사하는데, 이로 인해 인물들은 입체감은 물론 단순하게 표현된 공간 속에서 존재감을 부여받는다. 북유럽르네상스의 특징이 되는 사실주의가 태동하게 된 배경으로 여러 가지 시대적 정황이 설명되었다. 현실에 대한 새로운 관심은 사상사적으로 당시 대학에서 꽃을 피운 유명론의 영향을 간과할 수 없다. 하지만 그보다는 ‘사실주의의 발견자’로서 당시 성행했던 종교적 경건운동인 ‘데보티오 모데르나’를 들 수 있다. 새로운 헌신운동으로 해석되는 ‘데보티오 모데르나’는 궁극적으로 예수를 본받기 위하여 십자가상과 같은 극적인 주제를 강조하는데, 이러한 실제를 방불케 하는 묘사를 통해 신자들은 종교적 사건을 현실 속 사건이듯 보다 효과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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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러의 후기작품에 나타난 ‘단순양식(The Simple Style)’

        전한호(Jeon, Hanho),고종희(토론자) 서양미술사학회 2012 서양미술사학회논문집 Vol.36 No.-

        알브레히트 뒤러의 말년작품은 이전작품들과 달리 단순함을 형식적 특징으로 한다. 특히 〈대 십자가책형〉은 ‘단순양식’으로 명명될 만큼 이러한 경향이 두드러지는데, 그간 학계에서 소홀히 다룬 이 작품을 통해 작가 또는 그의 작품에 드러난 양식이 개인적인지 혹은 시대적인지 고찰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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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르네상스 미술의 ‘힘센 여인’

        전한호(Jeon, Hanho) 서양미술사학회 2021 서양미술사학회논문집 Vol.54 No.-

        ‘힘센 여인(Weibermacht)’은 남성에 대한 여성의 승리를 주제로 한다. 이는 특히 북유럽 르네상스 문학과 미술에서 토포스를 이룰 만큼 유행했다. ‘힘센 여인’은 역사와 신화, 성경으로부터 모티프를 얻어 영웅이나 현인들을 좌절된 욕망의 이미지로 다룬다. 몇몇 주제들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녀 역할의 반전이라는 점에서 코믹한 요소를 포함하기도 한다. 〈바지 싸움〉과 같은 작품에서 아내가 남편을 폭력으로 제압하기 위해 가정생활의 전통적인 상징인 실감개를 이용한다. 남편은 바닥에 떨어진 바지를 잡으려 안간힘을 쓰는데, 여기서 바지는 남성의 권위, 여성에 대한 우위를 상징한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필리스〉에서는 그리스의 철학자가 유혹적인 필리스에게 빠져 굴욕적인 봉사를 한다. 또 다른 역할의 반전을 이 작품에서 찾을 수 있는데, 아리스토텔레스가 말이 된 모습에서 유혹에 빠진 인간이 짐승이 된 은유를 발견하게 된다. ‘힘센 여인’이란 주제는 대체로 판화로 제작되어 유포되는데, 이를 통해 대중적 유행을 이룰 수 있었다. 수집가들을 위해 제작된 판화 외에도, 독일의 몇몇 시청사 벽에는 이와 같은 주제의 그림들로 장식된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들 또한 일반 대중의 계몽을 위한 것이었다. 사회적 문화적 격변기로 특정되는 16세기 초반에는 예술작품이 점차 사회적 도덕을 증진하는 기능을 수행하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사제를 공격하는 여인들〉과 같은 작품은 종교개혁 시대에 가톨릭에 대한 비판을 담아 사제의 독신주의에 대한 문제점을 폭로하고 있다. The image of ‘Weibermacht(Power of women)’, showing the triumph of women over men, is especially an artistic and literary topos in Northern Renaissance. This theme depicts images drawn from historical, mythological, and biblical sources that illustrated a frustrated desire of heroic or wise men. In some cases, these subjects contain a partially comical element of role reversal in a patriarchal society. In Battle for the Trousers, a wife dominates her husband with a distaff, which is a traditional symbol of the female side of a family. Her husband tries to grab his pants that are laid on the floor. In Aristotle and Phyllis the Greek philosopher allows himself to be humiliated by the seductive Phyllis. Another role reversal appears in this image. Aristotle’s posture like a horse metaphorically shows his transformation from man to beast. Besides woodcut printings that were created for collectors, paintings on the walls of several German town halls must have been designed for public audiences. The artworks gradually began to perform their functions of promoting social morality in the early 16th century and the following decades of social and cultural upheavals. For example, Women Attack Priests reveals the problem of the Catholic clerical celibacy in the age of Reformation.

      • KCI등재

        뒤러와 죽음

        全漢鎬(Jeon Hanho) 미술사연구회 2007 미술사연구 Vol.- No.21

        This paper deals with the transformation of the figure of Death in the works of Albrecht Durer(1471~1528). According to the Bible, death is a punishment for Adam's sin and mankind's fall. Therefore, the great majority of artists in the Medieval Ages personified Death as a negative figure such as a hunter and/or archer. The personification of Death as a hunter underscores Death's arbitrariness in seeking and chasing his victims among living beings. In this way, Death had been portrayed as a horse-rider since the fourteenth century. The mounted figure of Death stresses the swiftness with which death could overtake the living. It is assumed that the motif is based on a Biblical text, for example Revelation 6, 8:“And see, and I saw a white horse, and he who sat thereon his name was Death.” The motif of Death as an archer is significant in 'Durerzeit', especially in the Tucher window panels. The drawings show Death - a seemingly mummified corpse, but nonetheless a potent and sinister force - mounted on horseback, drawing his bow and looking carefully at the path of his arrow. Death is aiming his arrow at the scholarclergyman depicted on the opposite side. Self-contained, the cleric looks squarely at Death and gestures calmly as if they are engaged in conversation. Here, the role reversal is remarkable. In traditional representations of the Dance of Death, which proliferated in the visual arts and literatures of the fifteenth century, Death unrelentingly comes to claim the lives of his resisting victims. In these drawings, however, Death warns and the addressee accepts his destiny with contempt for the warning. Naturally, Death is identified with doom in other works of Durer, but the personified Death does not claim the lives of his victims; he no longer brings along his arrow or scythe, but an hourglass instead. In these works, man's answer to Death's warning is a self-assured affirmation of his confidence that death cannot hurt him, rather than a humble acknowledgement of the fragility of his earthly existence. This idea is closely related to the belief of the humanists. It was the humanists who considered the other dimension of death. For them Death was not the end of life, but the driving force of life, replacing the concern for the soul in the hereafter with the pursuit of lasting accomplishments in this world. “Sterbebild”by Celtis shows a clear exposition of humanist thought about death. Emphasizing life as an arena for humanity's interactive, individual, and intellectual achievement, the humanists set out on a quest for, and explored, the new meaning of death. In Durer's other works, he unmistakably depicted the warning character of the figure of Death with Death's hourglass and a horse's bell. Very different, however, was Durer's message. For example, in The Knight, Death and the Devil (engraving, 1513) the man on horseback is an outstanding figure, whereas the threat of Death is ignored. Above all, the personal conviction of the knight appears both physical and compositional in that work. Finally, the knight is livelier and stronger than Death and thus ultimately overpowers him. Likewise, the Epitaph for Durer by Willibald Pirckheimer, from the year 1528, bears the Latin motto ″QVICQVID ALBERTI DVRERI MORTALE FVIT / SVB HOC CONDITUR TVMVLO〃(What of Albrecht Durer mortal is, lies under this tomb). The Epitaph describes Death as neither an immediate threat nor a physical danger. Durer deals with Death, which has something to do with personal achievement in this world. Undoubtedly, Durer would overcome his death through his wor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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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쿠스〉-미켈란젤로적(的) 조각의 시작?

        전한호(Jeon, Hanho) 한국미술사교육학회 2014 美術史學 Vol.- No.28

        <바쿠스>는 미켈란젤로의 젊은 시절 작품이다(1496-1497, 현재 바르젤로소장). 원래는 로마의 리아리오(Riario) 추기경의 주문으로 제작되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완성된 조각상은 거절되고 만다. 추기경은 고대풍(all"antica)의 조각을 자신의 고대컬렉션에 포함시키고 싶었지만, 미켈란젤로의 <바쿠스>는 지나치게 모던(modern)하여 거부된 것으로 추정된다. 본 연구는 <바쿠스>에서 ‘미켈란젤로적 조각’의 새로움과 독창성에 대해 천착하였다. “술 취한 듯한 바쿠스”(Condivi)는 정면에서 보았을 때 뒤뚱거리는 모습이다. 하지만 조각상의 주위를 돌며 시점을 달리 했을 때의 <바쿠스>에서는 정지와 움직임이 번갈아가며 나타난다. 이러한 다양한 장면의 연속을 미켈란젤로는 피구라 세르펜티나타(figura serpentina)를 통해 실현해냈다. 피구라 세르텐티나타는 일반적으로 매너리즘의 특징으로 여겨지나 이미 레오나르도와 같은 콰트로첸토 화가들도 움직임의 표현을 위해 사용하였다. 고대 이래 전해진 콘트라포스토가 인물의 자연스러움을 정지의 동작으로 보여준다면, 피구라 세르펜티나타는 하나의 시점이 아닌 다시점을 통해 연속적인 장면, 곧 유기체적인 움직임을 보여준다. 이때 각각의 장면들은 다른 장면들에 지배적이 아닌 저마다 고유의 역할을 갖는다. 예를 들면, 정면에서 바라볼 때 느껴지는 불안정적인 자세는 옆이나 뒤에서 바라볼 때 사라지고, 오히려 안정적인 모습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미켈란젤로의 <바쿠스>는 전통적인 콘트라포스와 달리 하중의 분배가 대각선으로 교차되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동일선상에 위치시켜 불안정한 모습을 띤다. 따라서 불안정적 자세를 극복하기 위해 생겨나는 움직임이란 필연적인 것이며, 이를 통해 조각상은 생동감을 부여받는다. 종래의 균형 잡힌 조각상이 아니라 불안한 자세 속에서 균형감을 회복하려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는 데 미켈란젤로적 조각의 독창성이 있다. 미켈란젤로는 조각이란 재료로부터 덩어리들을 떼어내는 것(per forza di levare)으로 정의한다. 그에게 조각가의 임무란 돌 속에 갇힌 형상을 자유롭게 해주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하나의 작품을 만든다는 것은 단순히 자연을 재현하는 것 이상으로 존재하는 형상을 재료라는 구속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주는 것, 원래 상태로 되돌리는 것, 되살리는 것이었다. 이러한 실재에 대한 믿음은 대상을 묘사하는 차원이 아닌 존재를 구현 또는 실현한다는 차원으로 승화된다. 따라서 미켈란젤로는 <바쿠스>를 단순히 주신이 아니라 술 취함을 극복한 존재로 묘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고대에 따라 이름과 형태만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넓은 가슴과 풍만한 신체”를 가진 포도주의 신 그리고 그의 속성에 맞는 풍요로운 삶과 소생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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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울리지 않는 사랑 - 16세기 초 북유럽미술의 토포스

        전한호(Jeon, Hanho) 한국미술사교육학회 2016 美術史學 Vol.- No.32

        “어울리지 않는 사랑”은 1500년경 북유럽에서 하나의 토포스를 이룰 만큼 유행했던 주제이다. 원래 이 주제는 고대의 플라우투스로부터 16세기 한스 작스에 이르기까지 많은 매체와 해석을 통해 다루어졌다. “어울리지 않는 사랑”은 젊음과 노년의 대조를 통해 부도덕한 사랑에 대해 경고한다. 이들 모티프는 이미 고대의 ‘아리스토텔레스와 필리스’, 성경의 ‘롯과 딸들’, ‘수산나와 장로들’ 등을 통해 널리 알려졌던 것들이기도 하다. 미술작품에서는 대체로 노인은 호색한으로, 젊은이는 그의 거짓스런 파트너로 묘사되어, 노년은 젊음을, 젊음은 돈을 탐하는 인물로 극화된다. 그러나 둘 사이에 진정한 사랑이 부재하는 이러한 관계는 종국에 비극적 결말을 맞이할 것이란 예고가 함께 나타난다. 1500년경 이러한 주제가 유행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본 글은 무엇보다 16세기 초반 독일지역의 미술작품을 통해 이러한 의문에 대한 답을 구하고자 하였다. 일반적으로 본 주제에 대한 기원은 이탈리아로 추정하지만, 이와 달리 독일 전통, 특히 중세기사도적 사랑을 다룬 민네에서 그 기원을 찾았다. 궁정풍 사랑을 그린 민네는 그 쇠락과 함께 패러디되기 시작하는데 그에 대한 결과로 “어울리지 않는 사랑”이 태동했음을 밝히고자 하였다. 16세기 전반기 루카스 크라나흐는 이 주제에 심취하여 40여점을 남긴 화가인데, 새로운 번안을 시도하여 가히 선구자라 불릴만하다. 그의 “어울리지 않는 사랑”은 이전과 달리 드라마틱한 요소가 가미되었다는 특징이 있고 비단 판화만이 아니라 유채를 이용해 작품을 완성했다는 점에서 독보적이다. 이는 주제 자체가 마치 하나의 풍속화이듯 독립적 영역을 구축하기 시작했고 다른 한편 제후나 귀족 등 고급스런 취향을 위한 주제로서 넓은 향유층을 확보했다는 의미가 된다. 이밖에도 당시 성직자나 인문주의자들에 의해 강조되었던 남녀 간의 결혼의 중요성에 대한 교훈적 의미도 주제의 유행에 큰 역할을 하였다. 이로써 1500년경 많은 화가들이 이 주제에 열광한 이유가 설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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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러의 말, 발둥의 말

        전한호(Jeon, Hanho) 서양미술사학회 2017 서양미술사학회논문집 Vol.46 No.-

        중세의 미술작품에서 말은 주로 ‘말 탄 군주’의 어트리뷰트로서 주로 신분과 권위의 상징이었다. 16세기 이탈리아에서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북유럽에서는 뒤러와 발둥에게 이르러 중세의 전통은 극복되며, 비로소 객관적, 미적 대상이 된다. 뒤러는 고대 비례론의 영향을 받아 주로 수학적 구성에 주력하여 우아한 말을 그린다. 뒤러가 비례로 사용하는 “Maße”란 말은 비단 치수나 규격뿐 아니라 내적 절제로서 도덕적 의미를 포함한다는 점에서 새롭다. 뒤러에게 말의 묘사에 있어서 비례란 단순히 외형적 아름다움이 아닌 말이 갖는 본능적 속성의 조절이라는 말이 된다. 발둥에게서 말을 주제로 한 독창적 스타일은 1515년경부터 시작한다. 처음에는 말의 전체적 윤곽과 자연적 묘사에 치중하지만, 점차 인간의 심리적 맥락과 결부시켜 주제의 외연을 확장한다. 발둥의 작품에서도 성난 말은 인간적 욕망으로 비유되나, 점차 독자적인 의미의 담지체가 되어 도덕적 교훈을 전한다. 후기 작품에서 말은 사람 없이 등장하여 부수적 존재가 아닌 주체적 존재로서 작품의 중심을 이룬다. <야생마 연작>에서 말은 그 본능적 속성, 행위, 모습, 표정만으로 정서적 상태를 전달하여 발둥 작품의 독창성이 드러난다. 이러한 특징은 뒤러의 작품과 비교된다. 뒤러가 말의 비례를 중시하여 우아한 형태와 아름다운 모습으로 묘사했다면, 발둥은 고삐와 재갈을 벗어난 자유로운 상태의 말을 다뤘다. 이는 두 화가의 예술론과 결부된다. 뒤러가 배우고 습득하는 기술(비례론)을 이용해 길들여진 말을 묘사했다면, 발둥은 자유로운 예술가적 열정을 야생마의 본성과 충동으로 그렸다. It is the merit of Albrecht Dürer and Hans Baldung, who have solved the symbolic meaning of horse from the medieval tradition, in which the horse was usually presented as an attribute of his rider. Dürer, who was inspired by Italian models, attempted to construct a mathematical representation of the horse. According to its proportioning scheme, the horse is inserted into the square net so that the animal shows itself in elegant form and in the greatest possible beauty. Dürer does not take the word “Maße(measure)” for the proportion unintentionally, which involves in the design of a horse not only a construction aid, but also an ethical meaning. Baldung developed his own horse picture since about 1515. In his first phase, Baldung sought a natural appearance of the horse in relation to the psychological context, while the taming of the horses compare with the inner desire of man. In his second phase, Baldung’s horse appeared as an independent being without his participation in human events, as shown by the Widen Horses series. In this sense, Baldung’s pictorial invention is regarded as peculiar and original, especially in comparison to Dürer, whose horse, by means of proportion, takes the lead for a beautiful and noble fo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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