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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IS지역 고려인 임차 농업에 내재된 양면성 = The ambivalence inherent in the rental agriculture of Koreans in the CIS a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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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79998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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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1920년대 말 러시아 혁명세력은 농지의 사유제(赦宥制)를 폐지하고 농민들을 대규모의 집단농장으로 강제 개편시킨다. 당시 러시아에는 1863년부터 이주하기 시작한 한인들이 한민족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었지만, 소련 당국의 강압적 조치에 기인한 집단농장화는 이주 한인들의 삶에 큰 변수로 작용했다. 더욱이 소련 당국의 강권으로 1937년 강제이주를 당해야했던 고려인들에게 있어 집단농장은 생존과 직결되는 공간으로 인식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집단농장체재는 강제 이주 이전과 이후를 분기점으로 상당한 차이가 발생한다. 연해주 시절의 집단농장은 빈농 출신 한인들의 토지 소유에 대한 욕망으로 인한 자발적 참여로 형성되었다면, 강제이주 이후 조직된 집단농장은 농업집단화에 반대한 부농(토호)이나 집단화에 적극적이었던 빈농을 구별할 것 없이 소련 당국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강제로 만들어진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강제이주 이후 조직된 집단농장은 같은 민족끼리 공유되는 독특한 정서가 우선시 되기보다는 소비에트 사회가 이상으로 삼는 일반적인 노동의 현장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스탈린 사후 거주지 이동 제한이 해제되고 적성민족이라는 꼬리표를 떼면서부터 그동안 집단농장의 비효율적 운영체제에 회의를 품은 고려인들은 다른 민족들은 감히 엄두도 못내는 새로운 농경방식으로 전환하기 시작한다. 즉 집단농장인 꼴호즈를 떠나 사적으로 경제적 기반을 다질 수 있는 강력한 생산방식이며 계절적 이동농업방식인 ‘고본질’이다. 고본질은 투기성(投機性)이 강하고 장시간 집을 비워야 한다는 점에서 가족생활에 해체의 한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중앙아시아 지역 자본주의의 형성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평가할 수 있다. 따라서 본 연구의 목적은 강제이주 이후 소련이 강압적으로 조직한 집단농장 운영체제의 비효율적 실태와 이에 대한 고려인들의 생존전략인 ‘고본질’의 이면을 살펴봄으로써, 소련의 몰락과 함께 독립한 현지 민족들의 자민족 중심주의의 배타적 압력 하에서도 여전히 독립적으로 살아올 수 있었던 고려인들의 민족 정체성이 형성되는 과정을 짚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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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0년대 말 러시아 혁명세력은 농지의 사유제(赦宥制)를 폐지하고 농민들을 대규모의 집단농장으로 강제 개편시킨다. 당시 러시아에는 1863년부터 이주하기 시작한 한인들이 한민족의 정체...

    1920년대 말 러시아 혁명세력은 농지의 사유제(赦宥制)를 폐지하고 농민들을 대규모의 집단농장으로 강제 개편시킨다. 당시 러시아에는 1863년부터 이주하기 시작한 한인들이 한민족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었지만, 소련 당국의 강압적 조치에 기인한 집단농장화는 이주 한인들의 삶에 큰 변수로 작용했다. 더욱이 소련 당국의 강권으로 1937년 강제이주를 당해야했던 고려인들에게 있어 집단농장은 생존과 직결되는 공간으로 인식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집단농장체재는 강제 이주 이전과 이후를 분기점으로 상당한 차이가 발생한다. 연해주 시절의 집단농장은 빈농 출신 한인들의 토지 소유에 대한 욕망으로 인한 자발적 참여로 형성되었다면, 강제이주 이후 조직된 집단농장은 농업집단화에 반대한 부농(토호)이나 집단화에 적극적이었던 빈농을 구별할 것 없이 소련 당국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강제로 만들어진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강제이주 이후 조직된 집단농장은 같은 민족끼리 공유되는 독특한 정서가 우선시 되기보다는 소비에트 사회가 이상으로 삼는 일반적인 노동의 현장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스탈린 사후 거주지 이동 제한이 해제되고 적성민족이라는 꼬리표를 떼면서부터 그동안 집단농장의 비효율적 운영체제에 회의를 품은 고려인들은 다른 민족들은 감히 엄두도 못내는 새로운 농경방식으로 전환하기 시작한다. 즉 집단농장인 꼴호즈를 떠나 사적으로 경제적 기반을 다질 수 있는 강력한 생산방식이며 계절적 이동농업방식인 ‘고본질’이다. 고본질은 투기성(投機性)이 강하고 장시간 집을 비워야 한다는 점에서 가족생활에 해체의 한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중앙아시아 지역 자본주의의 형성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평가할 수 있다. 따라서 본 연구의 목적은 강제이주 이후 소련이 강압적으로 조직한 집단농장 운영체제의 비효율적 실태와 이에 대한 고려인들의 생존전략인 ‘고본질’의 이면을 살펴봄으로써, 소련의 몰락과 함께 독립한 현지 민족들의 자민족 중심주의의 배타적 압력 하에서도 여전히 독립적으로 살아올 수 있었던 고려인들의 민족 정체성이 형성되는 과정을 짚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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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In the late 1920s, the Russian revolutionary forces abolished the private land system and forcibly reorganized farmers into large-scale collective farms. At that time, Koreans who began to migrate to Russia in 1863 maintained their own identity of the Korean people, but collective farming due to coercive measures by the Soviet authorities acts as a big variable in the lives of migrants. Moreover, the collective farm system was recognized as a space directly connected to survival for Goryeo people who had to be forced to migrate in 1937 due to the power of the Soviet authorities. However, there is a difference in the Goryeo people's approach to collective farms before and after forced migration. If the collective farm during the Primorsky Period was formed by voluntary participation resulting from the desire of Koreans from poor farming to own land, the collective farm organized after forced migration can be said to be a space created without distinction between rich farming (toho) and poor farming.
    For this reason, collective farms organized after forced migration are often described as general labor sites that Soviet society idealizes rather than unique emotional aspects shared between the same ethnic group. However, with the lifting of restrictions on the movement of Stalin's post-residential area, Goryeo people adopt a strong production method that can lay a private economic foundation, leaving the group farm, Ggulhoz, which is the "Gobongil" of seasonal mobile agriculture.
    "Gobongil" can be evaluated as an important role in the formation of capitalism in Central Asia, although it acts as a pressure to dismantle family life in that it is highly speculative and has to be away for a long time. Therefore,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adaptation patterns of Goryeo people to collective farms in Primorsky and Central Asia, and to examine the nature of "Gobongil" a specialized agricultural management law, and the identity of Goryeo people revealed through th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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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 the late 1920s, the Russian revolutionary forces abolished the private land system and forcibly reorganized farmers into large-scale collective farms. At that time, Koreans who began to migrate to Russia in 1863 maintained their own identity of the...

    In the late 1920s, the Russian revolutionary forces abolished the private land system and forcibly reorganized farmers into large-scale collective farms. At that time, Koreans who began to migrate to Russia in 1863 maintained their own identity of the Korean people, but collective farming due to coercive measures by the Soviet authorities acts as a big variable in the lives of migrants. Moreover, the collective farm system was recognized as a space directly connected to survival for Goryeo people who had to be forced to migrate in 1937 due to the power of the Soviet authorities. However, there is a difference in the Goryeo people's approach to collective farms before and after forced migration. If the collective farm during the Primorsky Period was formed by voluntary participation resulting from the desire of Koreans from poor farming to own land, the collective farm organized after forced migration can be said to be a space created without distinction between rich farming (toho) and poor farming.
    For this reason, collective farms organized after forced migration are often described as general labor sites that Soviet society idealizes rather than unique emotional aspects shared between the same ethnic group. However, with the lifting of restrictions on the movement of Stalin's post-residential area, Goryeo people adopt a strong production method that can lay a private economic foundation, leaving the group farm, Ggulhoz, which is the "Gobongil" of seasonal mobile agriculture.
    "Gobongil" can be evaluated as an important role in the formation of capitalism in Central Asia, although it acts as a pressure to dismantle family life in that it is highly speculative and has to be away for a long time. Therefore,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adaptation patterns of Goryeo people to collective farms in Primorsky and Central Asia, and to examine the nature of "Gobongil" a specialized agricultural management law, and the identity of Goryeo people revealed through th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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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한상욱, "향촌의 불빛" 1960

    2 야산, "춘보와 그의 아들" 1963

    3 김문욱, "중앙아시아의 한국문화" 좋은땅 2014

    4 권희영, "중앙아시아 초원의 유랑농업 : 우즈베키스탄 고려사람의 고본지 연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4

    5 문중호, "중앙아시아 고려인의 정체성 연구" 서울교육대학교 교육대학원 2009

    6 백태현, "중앙아시아 고려인의 고본질" 6 (6): 2000

    7 이지은, "중앙아시아 고려인 사회 연구, 1938-1953 : 「레닌기치」의 기사를 중심으로"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2006

    8 이채문, "재외한인의 자영업에 관한 연구 카자흐스탄 고려인의 사례를 중심으로" 한국동북아학회 13 (13): 5-36, 2008

    9 조정봉, "재생" 1962

    10 한 예브게니, "의부어미" 1962

    1 한상욱, "향촌의 불빛" 1960

    2 야산, "춘보와 그의 아들" 1963

    3 김문욱, "중앙아시아의 한국문화" 좋은땅 2014

    4 권희영, "중앙아시아 초원의 유랑농업 : 우즈베키스탄 고려사람의 고본지 연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4

    5 문중호, "중앙아시아 고려인의 정체성 연구" 서울교육대학교 교육대학원 2009

    6 백태현, "중앙아시아 고려인의 고본질" 6 (6): 2000

    7 이지은, "중앙아시아 고려인 사회 연구, 1938-1953 : 「레닌기치」의 기사를 중심으로"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2006

    8 이채문, "재외한인의 자영업에 관한 연구 카자흐스탄 고려인의 사례를 중심으로" 한국동북아학회 13 (13): 5-36, 2008

    9 조정봉, "재생" 1962

    10 한 예브게니, "의부어미" 1962

    11 한진, "의부 어머니" 1963

    12 성동기, "우즈베키스탄 불멸의 고려인 영웅 김병화" 재외동포재단 2006

    13 최창록, "소비에트 중앙아시아 고려인 문학사" 1941

    14 양승조, "소련적 현상으로서의 중앙아시아 고려인 임차 농업 ‘고본지’" 49 : 2020

    15 박진환, "러시아의 집단농장제가 극복해야할 경영요인들 : 농장 규모, 분업화된 농업노동, 집안마을" 북방농업연구소 3 : 1997

    16 보리스 박 니콜라이 부가이, "러시아에서의 140년간" 시대정신 2004

    17 반병률, "러시아 한인(고려인)사회와 정체성의 변화 ―러시아원동 시기(1863~1937)를 중심으로―" 한국사연구회 (140) : 99-124, 2008

    18 리 와씰리, "뜨락또르 운전수" 1964

    19 김 게르만, "나는 고려사람이다" 국학자료원 2013

    20 한상욱, "꽃송이" 1968

    21 정동주, "까레이스끼 : 또 하나의 민족사" 우리문화사 1995

    22 신현준, "귀환 혹은 순환" 그린비 2013

    23 리동수, "구원자" 1962

    24 이희수, "구소련의 고려인사회" 4 : 1996

    25 이봄철, "고려인 농업형태인 고본질의 변화와 시설농업의 전망" 2007

    26 리은영, "갈밭에서" 1953

    27 부 뾰뜨르, "「니나의 재산」에서" 1963

    28 신명직, "‘다(多)공화국 인민’에서 ‘다(多)국가 시민’으로- 소비에트 공화국 연방의 해체와 고려인 -" 석당학술원 (59) : 65-109, 2014

    29 리게론, "‘고본지’ 조직과 그의 제자들" 32 :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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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7-07 학술지명변경 한글명 : 한국문예비평학회 -> 한국문예비평연구 KCI등재후보
    2006-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5-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3-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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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42 0.42 0.44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41 0.43 0.823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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