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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당 정권에서의 정치테러 ‒ 1957년 장충단집회 방해사건을 중심으로 ‒ = A study on the Political Violence in Liberal Party of South Korea : a case study of the sabotaged Changchungdan rally by political gangs in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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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In the 1950s under the Syngman Rhee regime, the extreme anti-communism system was established through the division and the Korean War. In South Korean society, the left wing lost its political ground by being branded as ‘the Reds’. Moreover, Syngman Rhee and the Liberal party did not accept even the conservative opposition parties, which include the Democratic party, as the partner of government operation and tried to exclude them. The Liberal party incited the masses to suppress political opponents on one hand, and directly carried out political terrorism to restrict the act of opposition parties on the other.
    The sabotage on the Changchungdan rally, which happened in May 1957, is representative political terrorism in the late 1950s. The main force of the incident was the Liberal party and its cooperative politic gangs. Lee Chung-Jae, the gang leader, worked as the deputy head of the inspection department of the Liberal party. The ruling party instructed him to commit the terrorist act. The government and police obstructed the prosecution’s investigation on the terrorism, so the arrest on the culprits was belated. Overall, the Rhee regime maintained a cooperative relationship with political gangsters, and committed political terrorism on its opponents through that coll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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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 the 1950s under the Syngman Rhee regime, the extreme anti-communism system was established through the division and the Korean War. In South Korean society, the left wing lost its political ground by being branded as ‘the Reds’. Moreover, Syngm...

    In the 1950s under the Syngman Rhee regime, the extreme anti-communism system was established through the division and the Korean War. In South Korean society, the left wing lost its political ground by being branded as ‘the Reds’. Moreover, Syngman Rhee and the Liberal party did not accept even the conservative opposition parties, which include the Democratic party, as the partner of government operation and tried to exclude them. The Liberal party incited the masses to suppress political opponents on one hand, and directly carried out political terrorism to restrict the act of opposition parties on the other.
    The sabotage on the Changchungdan rally, which happened in May 1957, is representative political terrorism in the late 1950s. The main force of the incident was the Liberal party and its cooperative politic gangs. Lee Chung-Jae, the gang leader, worked as the deputy head of the inspection department of the Liberal party. The ruling party instructed him to commit the terrorist act. The government and police obstructed the prosecution’s investigation on the terrorism, so the arrest on the culprits was belated. Overall, the Rhee regime maintained a cooperative relationship with political gangsters, and committed political terrorism on its opponents through that coll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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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이승만이 집권했던 1950년대는 남북분단과 전쟁을 거치면서 극우반공체제가 성립한 시기이다. 남한 사회에서 좌익세력은 이른바 ‘빨갱이’로 낙인찍혀 활동할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을 잃어버렸다. 뿐만 아니라 이승만·자유당 정권은 민주당을 비롯한 보수야당 세력조차도 국정 운영의 파트너로서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이들을 배제하려 하였다. 자유당 정권은 정치적 경쟁자들을 억압하기 위해 대중을 동원하여 위세를 과시하는 한편, 직접적으로는 정치테러를 가함으로서 야당 세력의 활동을 제약하였다.
    1957년 5월에 발생한 장충단집회 방해사건은 1950년대 후반에 일어난 대표적인 정치테러사건이다. 장충단집회 방해사건을 일으킨 주체는 자유당과 그에 협력하는 정치깡패들이었다. 정치깡패들의 두목이었던 이정재는 자유당 감찰부차장으로 활동하였다. 그는 자유당 정권의 지시를 받아 테러를 자행했다. 반면 정부와 경찰은 테러를 일으킨 당사자들에 대한 검찰의 수사를 방해했으며, 뒤늦게 범인들을 구속하였다. 이처럼 이승만 정권은 정치깡패들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이를 통해 정적들에게 정치테러를 자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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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만이 집권했던 1950년대는 남북분단과 전쟁을 거치면서 극우반공체제가 성립한 시기이다. 남한 사회에서 좌익세력은 이른바 ‘빨갱이’로 낙인찍혀 활동할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을 잃어...

    이승만이 집권했던 1950년대는 남북분단과 전쟁을 거치면서 극우반공체제가 성립한 시기이다. 남한 사회에서 좌익세력은 이른바 ‘빨갱이’로 낙인찍혀 활동할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을 잃어버렸다. 뿐만 아니라 이승만·자유당 정권은 민주당을 비롯한 보수야당 세력조차도 국정 운영의 파트너로서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이들을 배제하려 하였다. 자유당 정권은 정치적 경쟁자들을 억압하기 위해 대중을 동원하여 위세를 과시하는 한편, 직접적으로는 정치테러를 가함으로서 야당 세력의 활동을 제약하였다.
    1957년 5월에 발생한 장충단집회 방해사건은 1950년대 후반에 일어난 대표적인 정치테러사건이다. 장충단집회 방해사건을 일으킨 주체는 자유당과 그에 협력하는 정치깡패들이었다. 정치깡패들의 두목이었던 이정재는 자유당 감찰부차장으로 활동하였다. 그는 자유당 정권의 지시를 받아 테러를 자행했다. 반면 정부와 경찰은 테러를 일으킨 당사자들에 대한 검찰의 수사를 방해했으며, 뒤늦게 범인들을 구속하였다. 이처럼 이승만 정권은 정치깡패들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이를 통해 정적들에게 정치테러를 자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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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이정숙, "혁명과 웃음" 앨피 2005

    2 이대근, "해방후·1950년대의 경제" 삼성경제연구소 2002

    3 이문창, "해방공간의 아나키스트" 이학사 2008

    4 조성권, "해방 후 우익청년단에서 활동한 폭력조직의 성격: 1945~1953" 1997

    5 서중석, "한국현대민족운동연구" 역사비평사 1996

    6 한국군사혁명사편찬위원회, "한국혁명재판기록사총서" 국학자료원 2001

    7 조성권, "한국조직범죄사: 조직범죄와 정치권력" 한성대학교 2006

    8 강인철, "한국전쟁과 사회구조의 변화" 백산서당 1999

    9 전갑생, "한국전쟁 직후 대한청년단의 지방조직과 활동" 한국제노사이드연구회 4 : 2008

    10 손봉숙, "한국의 정당 1" 한국일보사 1987

    1 이정숙, "혁명과 웃음" 앨피 2005

    2 이대근, "해방후·1950년대의 경제" 삼성경제연구소 2002

    3 이문창, "해방공간의 아나키스트" 이학사 2008

    4 조성권, "해방 후 우익청년단에서 활동한 폭력조직의 성격: 1945~1953" 1997

    5 서중석, "한국현대민족운동연구" 역사비평사 1996

    6 한국군사혁명사편찬위원회, "한국혁명재판기록사총서" 국학자료원 2001

    7 조성권, "한국조직범죄사: 조직범죄와 정치권력" 한성대학교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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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후지이 다케시, "죽엄으로써 나라를 지키자" 선인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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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후지이 다케시, "족청·족청계의 이념과 활동" 성균관대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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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조선일보"

    19 서중석, "조봉암과 1950년대" 역사비평사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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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7-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6-02-26 학술지명변경 외국어명 : The History of Seoul -> Seoul and History KCI등재
    2016-02-03 학술지명변경 한글명 : 鄕土서울 -> 서울과 역사
    외국어명 : The Hyangto Seoul -> The History of Seoul
    KCI등재
    2015-10-22 학회명변경 한글명 :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 서울역사편찬원
    영문명 : The City History Compilation Committee Of Seoul -> Seoul Historiography Institute
    KCI등재
    2013-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9-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7-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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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27 0.27 0.34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35 0.33 1.024 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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