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신학자들 가운데 그 누구보다도 폴 틸리히(Paul Tillich)는 ‘지성인들을 위한 사도’라고 불릴 만하다. 2세기의 기독교 변증가 저스틴 마터(Justin Martyr)를 회상케 하듯 그는 기독교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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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 호서대학교, 2010
학위논문(박사) -- 호서대학교 연합신학전문대학원 , 조직신학전공 , 2010
2010
한국어
231.1 판사항(5)
231.3 판사항(21)
충청남도
298 p. ; 26 cm
참고문헌: p. 277-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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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신학자들 가운데 그 누구보다도 폴 틸리히(Paul Tillich)는 ‘지성인들을 위한 사도’라고 불릴 만하다. 2세기의 기독교 변증가 저스틴 마터(Justin Martyr)를 회상케 하듯 그는 기독교 신앙의 본질적인 진리들을 당대의 지성인들에게 그들의 사고 형태로 전달하려고 했다.
존재와 신에 대한 전통적인 물음을 무의미하거나 무용한 것으로 포기하고 버린 시대에 틸리히는 이 물음들을 자신의 화두로 삼았을 뿐만 아니라, 그 상호 의존성을 긍정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우리 시대의 정서에 반하는 입장을 취했으며 그 과정에서 당대의 신학자들과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의 신학은 존재의 문제와 하나님의 문제를 철저하게 구별하기 원하는 철학자들과 철학적인 존재의 물음과 기독교 신학을 철저하게 구분하기를 원하는 신학자들에 대한 공격이었다. 그것은 틸리히의 존재이해를 통해서 더욱 구체화 되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그의 사상은 우리 시대의 가장 흥미롭고 의미 있는 신학적 기획 가운데 하나임에 분명하다.
본 논문은 철학과 신학을 연관 시킨 그의 독특한 상관관계법을 통하여 그가 어떻게 인간의 실존을 이해하고 있으며 실존의 문제를 어떻게 극복하는가를 포괄적으로 검토함으로써 철학적 신학에 입각한 그의 존재이해와 이를 위한 그의 신학적 접근방법을 중시하고자 한다. 따라서 본 논문의 목적은 현대 신학사에서 가장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폴 틸리히의 존재론적 신관에 나타난 “존재-자체로서의 신,” “신을 넘어선 신”이라는 핵심 개념의 의미를 밝히고, 그의 신학적 기획의 의미와 현대의 상황과 대화하는 인간실존의 의미를 해명하는데 있다. 그러므로 틸리히 신학이 현대에 남긴 의미와 공헌을 밝히고 비판적으로 수용하기 위해서 그의 사고 가운데 가장 논쟁을 불러 일으켰으며, 독특한 부분인 신론에 대한 연구로 시작하는 것이 그 지름길일 것이다.
틸리히는 “신학은 무엇보다 신론이다”라고 주장한다. 그의 신학에서 신론은 그가 다루는 모든 주제, 즉 문화신학, 상관방법, 신학과 철학의 관계 등의 주제를 통합하는 근거를 제시한다. 틸리히에게는 존재와 비존재 사이의 긴장과 대립이 가장 큰 철학적 물음이었다. 또한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추구할 때 신학이 절실하게 요구되었다. 이런 면에서 하나님이란 그러한 긴장과 대립을 초월하는 존재의 궁극성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틸리히는 하나님은 하나의 존재자가 아니라고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여러 존재자들 중의 하나인 상대적 존재가 아니라 존재 그 자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존재한다고 하면 그 존재 역시 비존재와 긴장과 대립의 상태에 놓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존재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틸리히에 의하면 심지어 하나님은 본질과 존재를 다 초월 한다. 본질이란 사물이 아직 현실화되지 않은 잠재적 완전의 모습으로 존재론적 현실성을 갖지만 아직 현실화되지 않은 존재를 말한다. 반면에 존재란 본질로부터 나온 현실이다. 존재는 계속적으로 본질에 의존하지만 본질에서 나왔기 때문에 본질 그 자체와 동일시 할 수 없다.
하나님이란 바로 이러한 가능성이나 현실성을 초월한 존재 그 자체 혹은 궁극적 관심 그 자체이다. 그러므로 전통적으로 하나님을 증명하려 했던 노력은 사실 하나님에 대해서 어떠한 것도 증명하지 못했다고 틸리히는 말한다. 단지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질문을 표현하는 것에 불과했다고 한다. 이렇게 하나님을 단지 어떤 한 존재가 아니라 존재 그 자체 혹은 궁극적 관심이라고 할 때는 인간에게 궁극적 관심이 되는 어떠한 것도 하나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모든 일반적 경험과 존재를 초월하지만 인간에게 궁극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차원에서 하나님은 인간과 특별한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무신론적 주장이 아니라 유신론적 주장을 틸리히가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구체적이고 보편적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하나님을 “하나님을 넘어선 하나님”으로 정의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존재 그 자체이지 하나의 존재가 아니다. 하나님의 존재는 실존적인 존재와의 관계성 속에서 이해될 수 없는 무한한 힘과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하나의 존재자가 되는 것을 거부한다. 이러한 면에서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틸리히의 주장은 모든 것들 안에 내재하는 하나님의 힘을 묘사하기 위한 강력하고도 역설적인 표현인 것이다. 무한하고도 무조건적인 힘과 의미가 최고의 존재에게 덧붙여질 때 그 존재는 존재가 되기를 멈추면서 존재 그 자체가 된다. 이 말의 의미는 최고의 존재가 무조건적인 권위와 의미를 지니게 될 경우에 그는 하나의 존재자이거나 최고의 존재가 되기를 거부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무조건적인 힘과 의미는 단순히 하나의 존재가 아닌 존재 그 자체로서의 하나님에게만 부여된다. 존재 그 자체는 만물 안에 본질적으로 내재하는 힘, 즉 비존재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을 소유한다.
틸리히의 신학의 공헌은 누가 뭐라고 해도 질문을 규정한데 있다고 하겠다. 그는 질문 없이는 대답을 줄 수 없다고 보았다. 그의 변증신학은 상황을 질문으로 하고 기독교 메시지에서 대답을 주려고 한다. 그에게 있어서 상황의 분석은 그의 신학의 과제 수행에 있어서 필수조건이다. 왜냐하면 그는 상황에서 질문을 규정하는 것이 그의 신학을 가능하게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상황은 질문이다. 상황이란 한 시대의 삶의 전체적 표현이다. 따라서 인간은 곧 질문이다. 틸리히의 신학에서 중요한 점은 인간, 상황은 질문이고 대답이 아니라는 것을 움직일 수 없이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질문으로서의, 인간을 분석하는 것은 조직신학이 대답을 주고자 하는 그의 신학의 전제조건이 된다.
틸리히에 있어서 존재론이라는 말은 한 존재가 자아의 생을 긍정하는 기본적 자아 긍정을 의미한다. 그러기 때문에 존재론이라는 말은 존재의 본질에 관한 철학적 분석을 의미하며, 나아가 존재에 대한 물음을 동반한다. 유한한 인간은 존재에 대한 물음을 물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묻지 않으면 안 된다. 인간은 묻는 행위로부터 결코 이탈할 수가 없다. 결국 인간은 물음을 물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유한하고 또한 유한한줄 알기 때문에 존재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것에 대한 존재론적 물음을 묻게 된다.
틸리히에 의하면 비존재에 의해서 제약된 존재는 유한하다. 그 안에서 비존재가 극복되지 않고 존재를 제한하는 존재와 비존재의 혼합을 틸리히는 “유한”이라고 불렀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기의 유한한 존재를 바라보아야 하며 어떤 점에서 유한존재를 넘어서야 한다. 유한한 자유자로서의 인간은 잠재적인 무한의 관점에서 자기 자신을 관찰해야 한다. 유한한 존재가 무한을 상상하고 그 자신을 초월하는 힘을 가지는 것은 유한성이 무한성과의 양극성에서 이해되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틸리히의 무한은 유한한 존재의 역동적이고 자유로운 자기초월성에 따라 규명된다. 무한은 구조적 개념(a constituting concept)이 아니고 지도적 개념(a directing concept)이다. 즉 무한은 마음으로 하여금 자신의 무한한 구조능력을 경험하도록 지도한다. 인간정신은 유한한 실재를 초월함으로써 대우주나 소우주의 방향으로 끝없이 갈 수 있다. 무한한 자기 초월의 힘은 인간이 비존재를 초월하고 있다는 것, 곧 존재자체에 속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제한이 없는 자기초월처럼 어떤 선험적 제한(a priori limit)없이 스스로를 초월하는 유한성이다. 그러나 마음 자체는 각자의 유한성에 얽매여 있고, 또한 유한한 것이 스스로를 넘어서려 할 때 존재 자체는 유한한 존재에 그 자신을 나타낸다. 즉 유한한 존재는 자기초월의 노력을 통해서 오히려 자기의 유한성을 깨닫게 된다. 틸리히는 이 같이 깨달아진 유한성을 불안(anxiety)이라 불렀다. 따라서 불안은 자신이 비존재가 될지 모른다는 가능성을 의식하는 것, 곧 비존재에 대한 실존적 의식을 의미한다. 스스로 자기의 유한성을 체험하는 이 같은 틸리히의 불안은 결국 무로부터 와서 무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의 죽음에 대한 불안의 쫓김이다. 다시 말하면 무에 대한 이러한 본질적 불안은 상실된 영원에 대한 고통스러운 인식과 죽음에 대한 공포로 나타나게 된다.
유한한 존재는 그 유한성을 극복할 수 없기 때문에 불안을 극복할 수 없다. 그러나 틸리히는 인간의 잠재적 무한의 관점을 통해 비존재의 위협과 제약을 뛰어넘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인간은 비존재의 위협을 통해 불안을 느끼고 유한을 경험하지만 무한의 관점에서 자기를 초월할 수 있다. 이 무한의 관점이 틸리히에 있어서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비존재의 위협을 막아주는 무한한 힘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인간은 하나님을 향해 눈을 뜨는 무한에로의 자각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인간의 유한성 문제에 대한 해답을 틸리히는 하나님에서 찾고 있다. 인간이 불안으로 경험하는 비존재의 위협이 비존재를 극복하는 존재의 물음과 불안을 극복하는 용기의 물음을 묻게 만들 때 하나님은 그 해답이 된다.
실존하는 모든 존재는 존재의 힘을 얻기 위해서는 존재 그 자체에 참여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비존재에 의해 파멸을 당하고 말게 된다. 모든 유한한 것들은 존재 그 자체와 존재 그 자체의 무한성에 참여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존재는 존재의 힘을 얻지 못한다. 결국 존재는 비존재에 의해 삼켜버리게 되거나 비존재의 위협에서 결코 헤어 나올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믿음은 존재 그 자체로서의 하나님에 대한 존재의 참여이다. 존재가 존재 그 자체인 하나님에 참여할 때 하나님은 존재에게 존재의 힘을 부여한다. 존재의 힘은 존재가 비존재에 대한 불안을 스스로 짊어지기 위해서 필요한 용기의 궁극적인 출처인 것이다. 존재 그 자체라는 용어는 틸리히가 하나님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한 은유적인 표현이다.
사실 존재 그 자체로서의 틸리히의 하나님은 삼위 일체 하나님이다. 성부 하나님은 창조적인 힘으로, 성자 예수 그리스도는 구원하시는 사랑으로, 성령은 황홀한 변형으로 명백하게 나타나게 된다. 삼위일체의 상징들은 하나님의 삶에 대한 논리, 즉 분리와 재결합의 운동을 보여준다. 삼위일체의 상징들은 존재의 근원인 하나님의 영원한 영성을 보여준다. 성부 하나님은 모든 존재가 그 기원을 두는 존재의 근원이다. 또한 성부 하나님은 비존재의 위협을 무한히 거부하는 존재의 힘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모든 실존하는 인간 존재들에게 존재의 힘을 공급한다. 이러한 면에서 성부 하나님은 위엄이 있고 장대하시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 현현이 없이는 혼돈이요 마성적이다. 존재 그 자체로서의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으로서 비존재의 위협에 대한 해답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실존적 존재의 곤궁한 상태, 존재의 유한성, 소외, 그리고 삶의 모호성에 대한 해결사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과 존재의 물음을 연결하면서 틸리히는 인간 존재를 존재론적으로 서술하고, 인간 존재의 종교적 성격을 해명하기 위한 실존론적 분석을 발전시켰다. 이 실존론적 분석을 통해 틸리히는 존재에 대한 물음과 하나님에 대한 물음의 의미를 발견한다. 이런 방식으로 그는 전통적 철학의 신학적 의미와 기독교 계시에 대한 그 의미의 연관성을 발견하는 해석학을 발전시킨다. 그는 실존론적 분석 안에서 밝혀진 의미에 대한 반응으로서 존재와 하나님 존재에 대한 그 자신의 존재론을 구성한다. 따라서 틸리히의 사유는 현대의 상황에서 존재-물음과 하나님-물음의 “회복”이다. “인간의 신관이 달라지고 변한다는 것은 인간의 자기이해, 인간의 실존 해석이 달려졌다는 뜻이다. 달라진 인간 상황에 내포된 심각하고도 진지한 물음에 의미 있는 대답을 줄 수 있는 신의 얼굴을 찾기를 갈망한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틸리히의 철학적 신학을 성경적 입장에서 판단하고 우리가 그의 신학을 과연 비판 없이 수용해도 좋은가하는 문제는 던져지고 있음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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