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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 바르트의 『로마서주석』 제2판에 나타나는 교회론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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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이상으로 바르트의 『로마서 주석』 7장과 9-11장에 나타나는 교회에 대한 바르트의 이론을 살펴보았다. 이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바르트는 대학에서 하르낙과 헤르만에게서 자유주의신학을 배웠다. 특히 역사-비평학적 성서연구의 방법을 초기 사상형성기에 이미 통달했다. 바르트는 이를 통해서 『로마서 주석』 에서 전통적인 영감설과 역사-비평학적 방법을 이용하여 새로운 성서해석을 시도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하였다. 그는 초창기에 자유주의 신학의 문제를 가치상대주의와 개인주의라는 문제를 통해서 인식하고 있었지만 꽤 오랫동안 자유주의신학 노선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자펜빌에서의 목회를 통해서 종교사회주의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는 종교사회주의자가 되어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인해서 인간적인 노력을 통한 방법을 상용했던 자유주의 신학과 종교사회주의에 대한 한계를 절감하게 되었고 특히 그의 스승들이 제1차 세계대전을 지지하는 상황과 사회주의자들도 민족이라는 이름 앞에 분열하고 전쟁에 동조하게 되면서 바르트는 자유주의신학과 종교사회주의의 길을 포기하게 되었다. 그는 모든 인간적인 노력을 통한 방법을 포기하고 매주 설교를 위해 읽게 되는 성서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시작하여 "하느님은 하느님이시다"라는 명제를 통해서 로마서를 새롭게 해석하기 시작하여 새로운 신학의 길을 시작하였다.
    둘째, 바르트는 키에르케고르의 영향으로 하느님과 인간의 무한한 질적 차이를 인식하여 "하느님은 하느님이고 인간은 인간이다. "라는 새로운 명제를 통해 교회를 다시 새롭게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바르트에 의하면 하느님과 인간의 무한한 질적 차이에서 구원의 방향이 인간에서 시작되어 하느님에게 이르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통해서 하느님이 인간을 만나시는 사건으로 정의하였다. 즉 바르트는 어거스틴에서 시작하여 종교개혁자들로 이어지는 신 중심 신학을 새롭게 해석하여 인간중심의 당시 교회를 개혁하는 하느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새로운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셋째, 바르트는 『로마서 주석』에서 교회의 의의를 인식 불가능한 신적인 것을 지시하고 비유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나 교회의 이러한 역할은 인간이 인식 불가능한 하느님을 찾는데 실패하고 스스로의 종교성으로 인해서 신적인 것을 인간적인 것으로 대체하는 종교의 한계성내에 존재한다는 것을 지적하였다. 그는 교회의 본래적 한계와 죄과를 지적한다. 이러한 하느님과 인간의 무한한 질적 차이로 인한 종교의 한계성이 교회의 곤경이며 이를 통해 교회의 죄과가 나타나게 된다고 파악하였다. 이러한 종교의 한계와 죄과는 인간의 피조성과 죄성에 기인하는 것으로 전적인 하느님의 자유에 의해서 교회는 하느님의 심판에 처하는 상황에 처했음을 지적하였다.
    넷째, 바르트는 『로마서 주석』 에서 인간은 하느님을 인식할 수 없지만 하느님의 은혜로 하느님은 인간을 만나주시고 스스로를 계시하시기 때문에 바로 교회의 죄과가 드러나고 인정되는 곳에 그리스도를 통해서 계시하신다고 말한다. 즉 교회의 한계와 죄과를 드러내시는 하느님에게서 다시 교회의 소망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하느님의 은혜 안에서 다시 갱신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인데 이 기회를 갖기 위해서 선행되어야 할 것이 바로 회개이다. 바르트는 이러한 교회의 상황을 "어둠 속에 항상 빛이 있었으니 문제는 교회가 이를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는가?"라는 것으로 정리한다.
    다섯째, 바르트는 믿음을 "믿음으로부터, 믿음을 통해서 믿음에 이르게 되는 것으로 모든 것 위에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사랑하는 것을 의미하니, 우리가 그를 파악할 수 있는 정도에 따라서가 아니라 그분 그대로의 그를 두려워하고 사람하는 것이다. 절대적으로 믿음은 하느님과 인간사이에 있는 일반적 정황을 의미하며 심판 아래 복종함을 의미한다"고 정의한다. 따라서 교회가 하느님의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고 기적이 일어날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으로 존재하기 위하여 필요한 필수조건을 이러한 믿음으로 제시하였다. 바르트는 루터와 칼빈의 이론의 영향을 받아서 하느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강조하면서 보이는 가시적인 교회 즉 제도화된 교회를 비판하면서 동시에 비가시적인 "야곱의 교회-가 되기 위해서 전적으로 하느님을 인정하고 그분 앞에 복종하는 믿음을 통해서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다는 것을 『로마서 주석』 에서 발견하였다. 바르트가 이야기한 믿음의 핵심은 하느님을 하느님으로 인정하는 것이고 인간이 스스로 구원에 다가갈 수 있다는 마음을 버리고 오직 하느님에게 의지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를 수 있다. 인간은 하느님을 만날 수 없으니 하느님을 만나기 위한 모든 인간적 노력은 의미가 없는 것이며 이는 오히려 인간을 죄로 인도한다. 그렇지만 하느님께서는 자신을 드러내시니 스스로를 감추는 방법으로 그의 자유와 은혜 안에서 그렇게 하신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느님은 하느님이시다"라는 것을 인정하고 그 분에게 온전하게 복종하는 것인 믿음을 통해서 그분에게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교회는 하느님의 기적이 일어나는 거룩한 장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이 하느님을 만나기 위한 노력이 교회를 채우게 될 때 인간의 종교성에 의해서 인간은 죄악에 빠지게 되는 상황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교회는 스스로 무엇을 하려는 자세를 버리고 바르트가 이야기 하는 것처럼 하느님을 올바로 지시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할 것이다. 또한 하느님의 뜻을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교만함을 버려야 할 것이다.
    오늘날의 한국 개신교회의 상황은 바르트가 비판한 그 교회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는 듯하다. 교회의 거룩함의 근원이요, 존재의 근원인 하느님과 하느님의 의는 사라지고 이러한 것들이 있어야 할 자리에 돈, 명예, 행복 등등 인간적 의가 가득 차 있다고 할 수 있다. 수많은 교파로 나뉘어 자신들만이 하느님의 뜻을 올바로 알고 있다고 하는 착각 속에서 서로 비방하고 서로를 이단이라고 너무 쉽게 정죄하고 있다. 바르트에 의하면 오히려 그들은 스스로의 죄과를 가지고 하느님의 심판 앞에 이미 나가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하느님으로 받은 계시의 불완전함을 깨닫지 못하고 스스로가 하느님인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결국 바르트가 지적한 것처럼 교회를 오히려 죄과로 몰아가게 되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바르트에게서 우리는 모두 죄인이고 하느님 앞에서 의로울 자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여야 하며 겸손이라는 교회의 전통적 미덕의 가치를 재고해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세상을 섬기고 나눔에 앞장을 서야 할 교회가 스스로의 존재를 유지하고 확장하는 데 몰두하여 교회가 스스로 목적화하는 죄과를 범하고 있다. 설교자들은 하느님의 뜻을 선포하여야 하는데 오히려 값싼 은혜를 통해서 가짜 교인들을 양산하고 이를 통해 교회를 살찌우느라 바쁘다. 서론에서 지적한 것처럼 교회에 성장주의가 도입되어 '성장하는 교회가 참교회'라는 이상한 판별법이 생겨나게 되었고 성장이라는 단어 앞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그러한 성장의 목적을 대부분의 교회가 스스로의 사명이라 칭하는 선교에 두고 있는데, 이 선교도 하느님의 뜻을 올바로 전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하기에는 교회를 세우고 확장시키려는 의도가 너무나도 크다. 하느님의 구원의 사역에 스스로의 힘을 더 할 수 있다는 이러한 태도는 매우 위험한 태도라 할 수 있다.
    한국교회는 다른 어느 곳의 교회보다 기도와 예배가 많이 드려진다고 하지만 여기에도 문제는 있다. 매일 새벽부터 밤 늦은 시간까지 교회에 수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기도하지만 과연 하느님의 뜻을 살피고 그것을 이루게 해달라는 기도는 얼마나 될까? 오히려 스스로의 복을 위해 하느님 앞에서 목청을 높이고 있지는 않은지 자문해보아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분명 이웃과 세상을 섬기라고 했는데 오늘날 한국의 교회에서 행해지는 기도는 이웃과 세상을 정복하고 스스로를 살찌우는 기원으로 가득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본 연구를 통해서 본인은 서론에서 밝힌 "왜 이 땅에 하느님 나라는 오지 않는가?", "이 땅에 하느님의 백성이 이렇게 많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변화는 어려운가?"라는 문제의 해결을 바르트의 『로마서 주석』에서 찾을 수 있었다. 즉 하느님은 그의 전적인 자유 안에서 그의 무한하며 절대적인 주권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계시하고 계신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하느님의 계시의 방식이 아니라 교회가 이를 볼 수 있는 눈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고찰을 통해서 답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왜 오늘날 한국교회가 위기에 처하게 되었는가? 오늘날 한국교회는 성장이라는 잘못된 목표 속에서 그 한계를 드러내고 죄과로 향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오히려 교회 역시 한계 상황 속에서 죄과를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을 망각하고 있다. 이제 바르트의 『로마서 주석』을 통해 우리는 다시겸손을 깨달아야 할 것이고 이를 통해 진정 이웃과 세상을 섬기고 하느님의 뜻을 지시하는 본래의 사명을 되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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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으로 바르트의 『로마서 주석』 7장과 9-11장에 나타나는 교회에 대한 바르트의 이론을 살펴보았다. 이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바르트는 대학에서 하르낙과 헤르만에게서 자...

    이상으로 바르트의 『로마서 주석』 7장과 9-11장에 나타나는 교회에 대한 바르트의 이론을 살펴보았다. 이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바르트는 대학에서 하르낙과 헤르만에게서 자유주의신학을 배웠다. 특히 역사-비평학적 성서연구의 방법을 초기 사상형성기에 이미 통달했다. 바르트는 이를 통해서 『로마서 주석』 에서 전통적인 영감설과 역사-비평학적 방법을 이용하여 새로운 성서해석을 시도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하였다. 그는 초창기에 자유주의 신학의 문제를 가치상대주의와 개인주의라는 문제를 통해서 인식하고 있었지만 꽤 오랫동안 자유주의신학 노선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자펜빌에서의 목회를 통해서 종교사회주의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는 종교사회주의자가 되어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인해서 인간적인 노력을 통한 방법을 상용했던 자유주의 신학과 종교사회주의에 대한 한계를 절감하게 되었고 특히 그의 스승들이 제1차 세계대전을 지지하는 상황과 사회주의자들도 민족이라는 이름 앞에 분열하고 전쟁에 동조하게 되면서 바르트는 자유주의신학과 종교사회주의의 길을 포기하게 되었다. 그는 모든 인간적인 노력을 통한 방법을 포기하고 매주 설교를 위해 읽게 되는 성서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시작하여 "하느님은 하느님이시다"라는 명제를 통해서 로마서를 새롭게 해석하기 시작하여 새로운 신학의 길을 시작하였다.
    둘째, 바르트는 키에르케고르의 영향으로 하느님과 인간의 무한한 질적 차이를 인식하여 "하느님은 하느님이고 인간은 인간이다. "라는 새로운 명제를 통해 교회를 다시 새롭게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바르트에 의하면 하느님과 인간의 무한한 질적 차이에서 구원의 방향이 인간에서 시작되어 하느님에게 이르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통해서 하느님이 인간을 만나시는 사건으로 정의하였다. 즉 바르트는 어거스틴에서 시작하여 종교개혁자들로 이어지는 신 중심 신학을 새롭게 해석하여 인간중심의 당시 교회를 개혁하는 하느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새로운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셋째, 바르트는 『로마서 주석』에서 교회의 의의를 인식 불가능한 신적인 것을 지시하고 비유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나 교회의 이러한 역할은 인간이 인식 불가능한 하느님을 찾는데 실패하고 스스로의 종교성으로 인해서 신적인 것을 인간적인 것으로 대체하는 종교의 한계성내에 존재한다는 것을 지적하였다. 그는 교회의 본래적 한계와 죄과를 지적한다. 이러한 하느님과 인간의 무한한 질적 차이로 인한 종교의 한계성이 교회의 곤경이며 이를 통해 교회의 죄과가 나타나게 된다고 파악하였다. 이러한 종교의 한계와 죄과는 인간의 피조성과 죄성에 기인하는 것으로 전적인 하느님의 자유에 의해서 교회는 하느님의 심판에 처하는 상황에 처했음을 지적하였다.
    넷째, 바르트는 『로마서 주석』 에서 인간은 하느님을 인식할 수 없지만 하느님의 은혜로 하느님은 인간을 만나주시고 스스로를 계시하시기 때문에 바로 교회의 죄과가 드러나고 인정되는 곳에 그리스도를 통해서 계시하신다고 말한다. 즉 교회의 한계와 죄과를 드러내시는 하느님에게서 다시 교회의 소망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하느님의 은혜 안에서 다시 갱신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인데 이 기회를 갖기 위해서 선행되어야 할 것이 바로 회개이다. 바르트는 이러한 교회의 상황을 "어둠 속에 항상 빛이 있었으니 문제는 교회가 이를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는가?"라는 것으로 정리한다.
    다섯째, 바르트는 믿음을 "믿음으로부터, 믿음을 통해서 믿음에 이르게 되는 것으로 모든 것 위에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사랑하는 것을 의미하니, 우리가 그를 파악할 수 있는 정도에 따라서가 아니라 그분 그대로의 그를 두려워하고 사람하는 것이다. 절대적으로 믿음은 하느님과 인간사이에 있는 일반적 정황을 의미하며 심판 아래 복종함을 의미한다"고 정의한다. 따라서 교회가 하느님의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고 기적이 일어날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으로 존재하기 위하여 필요한 필수조건을 이러한 믿음으로 제시하였다. 바르트는 루터와 칼빈의 이론의 영향을 받아서 하느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강조하면서 보이는 가시적인 교회 즉 제도화된 교회를 비판하면서 동시에 비가시적인 "야곱의 교회-가 되기 위해서 전적으로 하느님을 인정하고 그분 앞에 복종하는 믿음을 통해서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다는 것을 『로마서 주석』 에서 발견하였다. 바르트가 이야기한 믿음의 핵심은 하느님을 하느님으로 인정하는 것이고 인간이 스스로 구원에 다가갈 수 있다는 마음을 버리고 오직 하느님에게 의지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를 수 있다. 인간은 하느님을 만날 수 없으니 하느님을 만나기 위한 모든 인간적 노력은 의미가 없는 것이며 이는 오히려 인간을 죄로 인도한다. 그렇지만 하느님께서는 자신을 드러내시니 스스로를 감추는 방법으로 그의 자유와 은혜 안에서 그렇게 하신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느님은 하느님이시다"라는 것을 인정하고 그 분에게 온전하게 복종하는 것인 믿음을 통해서 그분에게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교회는 하느님의 기적이 일어나는 거룩한 장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이 하느님을 만나기 위한 노력이 교회를 채우게 될 때 인간의 종교성에 의해서 인간은 죄악에 빠지게 되는 상황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교회는 스스로 무엇을 하려는 자세를 버리고 바르트가 이야기 하는 것처럼 하느님을 올바로 지시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할 것이다. 또한 하느님의 뜻을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교만함을 버려야 할 것이다.
    오늘날의 한국 개신교회의 상황은 바르트가 비판한 그 교회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는 듯하다. 교회의 거룩함의 근원이요, 존재의 근원인 하느님과 하느님의 의는 사라지고 이러한 것들이 있어야 할 자리에 돈, 명예, 행복 등등 인간적 의가 가득 차 있다고 할 수 있다. 수많은 교파로 나뉘어 자신들만이 하느님의 뜻을 올바로 알고 있다고 하는 착각 속에서 서로 비방하고 서로를 이단이라고 너무 쉽게 정죄하고 있다. 바르트에 의하면 오히려 그들은 스스로의 죄과를 가지고 하느님의 심판 앞에 이미 나가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하느님으로 받은 계시의 불완전함을 깨닫지 못하고 스스로가 하느님인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결국 바르트가 지적한 것처럼 교회를 오히려 죄과로 몰아가게 되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바르트에게서 우리는 모두 죄인이고 하느님 앞에서 의로울 자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여야 하며 겸손이라는 교회의 전통적 미덕의 가치를 재고해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세상을 섬기고 나눔에 앞장을 서야 할 교회가 스스로의 존재를 유지하고 확장하는 데 몰두하여 교회가 스스로 목적화하는 죄과를 범하고 있다. 설교자들은 하느님의 뜻을 선포하여야 하는데 오히려 값싼 은혜를 통해서 가짜 교인들을 양산하고 이를 통해 교회를 살찌우느라 바쁘다. 서론에서 지적한 것처럼 교회에 성장주의가 도입되어 '성장하는 교회가 참교회'라는 이상한 판별법이 생겨나게 되었고 성장이라는 단어 앞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그러한 성장의 목적을 대부분의 교회가 스스로의 사명이라 칭하는 선교에 두고 있는데, 이 선교도 하느님의 뜻을 올바로 전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하기에는 교회를 세우고 확장시키려는 의도가 너무나도 크다. 하느님의 구원의 사역에 스스로의 힘을 더 할 수 있다는 이러한 태도는 매우 위험한 태도라 할 수 있다.
    한국교회는 다른 어느 곳의 교회보다 기도와 예배가 많이 드려진다고 하지만 여기에도 문제는 있다. 매일 새벽부터 밤 늦은 시간까지 교회에 수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기도하지만 과연 하느님의 뜻을 살피고 그것을 이루게 해달라는 기도는 얼마나 될까? 오히려 스스로의 복을 위해 하느님 앞에서 목청을 높이고 있지는 않은지 자문해보아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분명 이웃과 세상을 섬기라고 했는데 오늘날 한국의 교회에서 행해지는 기도는 이웃과 세상을 정복하고 스스로를 살찌우는 기원으로 가득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본 연구를 통해서 본인은 서론에서 밝힌 "왜 이 땅에 하느님 나라는 오지 않는가?", "이 땅에 하느님의 백성이 이렇게 많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변화는 어려운가?"라는 문제의 해결을 바르트의 『로마서 주석』에서 찾을 수 있었다. 즉 하느님은 그의 전적인 자유 안에서 그의 무한하며 절대적인 주권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계시하고 계신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하느님의 계시의 방식이 아니라 교회가 이를 볼 수 있는 눈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고찰을 통해서 답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왜 오늘날 한국교회가 위기에 처하게 되었는가? 오늘날 한국교회는 성장이라는 잘못된 목표 속에서 그 한계를 드러내고 죄과로 향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오히려 교회 역시 한계 상황 속에서 죄과를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을 망각하고 있다. 이제 바르트의 『로마서 주석』을 통해 우리는 다시겸손을 깨달아야 할 것이고 이를 통해 진정 이웃과 세상을 섬기고 하느님의 뜻을 지시하는 본래의 사명을 되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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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목차 = 1
    • 1. 서론 = 3
    • 1-1 연구의 목적 = 3
    • 1-2 연구의 범위와 연구방법 = 5
    • 2. 바르트와 『로마서 주석 』 = 7
    • 목차 = 1
    • 1. 서론 = 3
    • 1-1 연구의 목적 = 3
    • 1-2 연구의 범위와 연구방법 = 5
    • 2. 바르트와 『로마서 주석 』 = 7
    • 2-1『로마서 주석』 이전의 바르트의 생애(사상형성기) = 7
    • 2-2『로마서 주석』집필 이전 바르트의 사상에 영향을 준 신학사상들 = 8
    • 2-2-1 자유주의 신학 = 8
    • 2-2-2 종교사회주의 = 11
    • a 스위스의 종교사회주의 = 12
    • b 불룸하르트 부자(父子) = 14
    • 2-3 『로마서 주석』 의 집필 동기 = 16
    • 3.『로마서 주석』 제7장 "자유"에 나타나는 바르트의 종교 이해 = 21
    • 3-1 종교의 한계 = 21
    • 3-2 종교의 의미 = 26
    • 3-3 종교의 현실성 = 31
    • 4. 『로마서 주석』 제9-11장에 나타나는 바르트의 교회 이해 = 35
    • 4-1 교회의 곤경 = 35
    • 4-1-1 연대성 = 35
    • 4-1-2 야곱의 교회 = 37
    • 4-1-3 에서의 교회 = 41
    • 4-2 교회의 죄과 = 45
    • 4-2-1 인식의 위기 = 45
    • 4-2-2 어둠 가운데의 빛 = 50
    • 4-3 교회의 희망 = 54
    • 4-3-1 하느님의 통일성 = 54
    • 4-3-2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 57
    • 4-3-3 목표 = 60
    • 5. 결론 = 64
    • 참고 문헌 =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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