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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CI등재

    무신란 피란 문인 시문을 통해 본 남한강 유역의 피세 공간 = River Basin in Namhan-gang as a Space of Avoiding the World through Literary Works of Literati who Fled from the Mooshin Revo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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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9102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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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본 연구는 무신란(戊申亂)이 일어나자 남한강 유역으로 피란을 온 문인들의 기록과 문학 작품을 통해 피란처로서의 남한강 유역의 이미지를 고찰한 연구이다.
    조선시대 문인들은 가거지(可居地)와 피세지(避世地)를 구분했다. 남한강 유역중 여주ㆍ충주ㆍ원주는 은거지로 인식되었으며, 지세가 험난하고 외진 단양ㆍ제천 등은 피란처로 인식되었다. 이러한 인식 속에서 무신란이 발발하자 노론계 문인들이 남한강 유역으로 피란했는데, 그 대표적인 문인으로 여주에서 은거하다 피란처를 찾아 단양으로 유람을 떠난 원경하와 충주에서 은거하다 제천으로 피란을 간 안중관, 제천으로 피란을 간 김신겸을 손꼽을 수 있다.
    세 문인은 자신의 처한 상황 및 은거처의 존재 유무, 목적 의식에 따라 남한강 유역에 머물렀다는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작품 속에서 형상화된 문학적 공간 인식에서 차이를 보인다. 은거처를 마련하지 못한 김신겸은 ‘피란’을‘은거’로 인식했다. 이와 달리 원경하와 안중관은 단양 및 제천을 언젠가는 떠나야 할 곳으로 여겼는데, 원경하는 유람으로 방문했기에 피란처를 찾기 위한 호기심 어린 태도를 보이지만 안중관은 피란민의 고통을 호소하며 제천을 벗어나고 싶은 공간으로 인식한 점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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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연구는 무신란(戊申亂)이 일어나자 남한강 유역으로 피란을 온 문인들의 기록과 문학 작품을 통해 피란처로서의 남한강 유역의 이미지를 고찰한 연구이다. 조선시대 문인들은 가거지(可...

    본 연구는 무신란(戊申亂)이 일어나자 남한강 유역으로 피란을 온 문인들의 기록과 문학 작품을 통해 피란처로서의 남한강 유역의 이미지를 고찰한 연구이다.
    조선시대 문인들은 가거지(可居地)와 피세지(避世地)를 구분했다. 남한강 유역중 여주ㆍ충주ㆍ원주는 은거지로 인식되었으며, 지세가 험난하고 외진 단양ㆍ제천 등은 피란처로 인식되었다. 이러한 인식 속에서 무신란이 발발하자 노론계 문인들이 남한강 유역으로 피란했는데, 그 대표적인 문인으로 여주에서 은거하다 피란처를 찾아 단양으로 유람을 떠난 원경하와 충주에서 은거하다 제천으로 피란을 간 안중관, 제천으로 피란을 간 김신겸을 손꼽을 수 있다.
    세 문인은 자신의 처한 상황 및 은거처의 존재 유무, 목적 의식에 따라 남한강 유역에 머물렀다는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작품 속에서 형상화된 문학적 공간 인식에서 차이를 보인다. 은거처를 마련하지 못한 김신겸은 ‘피란’을‘은거’로 인식했다. 이와 달리 원경하와 안중관은 단양 및 제천을 언젠가는 떠나야 할 곳으로 여겼는데, 원경하는 유람으로 방문했기에 피란처를 찾기 위한 호기심 어린 태도를 보이지만 안중관은 피란민의 고통을 호소하며 제천을 벗어나고 싶은 공간으로 인식한 점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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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Based on the records and literary works of the literati who came to harborage in the Namhan-gang river basin when the Mooshin Revolt (戊申亂) occurred, this study examined the image of the Namhan-gang river basin as a harborage site.
    The literati in the Joseon era distinguished between sites of temporary residence and of avoiding the world. In the Namhan-gang river basin, Yeoju-Chungju-Wonju were recognized as a seclusion site, and Dangyang-Jecheon, and so on, with its rugged terrain and remote location, were recognized as a harborage site. With this perception, when the Mooshin Revolt (戊申亂) broke out, the Noron-gye (political sect) literati harbored in the Namhan-gang river basin and secluded in Yeoju as the representative literati. Examples include Won Gyeong-ha, who went sightseeing to Dangyang in search of a harborage site, Ahn Jung-gwan, who went to harborage in Jecheon after seclusion in Chungju, and Kim Shin-gyeom, who went to harborage in Jecheon.
    Regarding the three literati, depending on the situation they were in, presence or absence of their own seclusion site, and sense of purpose, despite the commonality of staying in the Namhan-gang river basin, a difference exists in the spatial perception embodied in literature. Kim Shin-gyeom, who could not prepare a seclusion site, recognized “harborage” as “seclusion.” By contrast, Won Gyeongha and Ahn Jung-gwan viewed Dangyang and Jecheon as places they would have to leave someday. Furthermore, since Won Gyeong-ha visited for sightseeing, he displayed a curious attitude to find the harborage site, but Ahn Jung-gwan recognized Jecheon as a space from which he wanted to escape while complaining about the suffering of harborage refuge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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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ased on the records and literary works of the literati who came to harborage in the Namhan-gang river basin when the Mooshin Revolt (戊申亂) occurred, this study examined the image of the Namhan-gang river basin as a harborage site. The literati i...

    Based on the records and literary works of the literati who came to harborage in the Namhan-gang river basin when the Mooshin Revolt (戊申亂) occurred, this study examined the image of the Namhan-gang river basin as a harborage site.
    The literati in the Joseon era distinguished between sites of temporary residence and of avoiding the world. In the Namhan-gang river basin, Yeoju-Chungju-Wonju were recognized as a seclusion site, and Dangyang-Jecheon, and so on, with its rugged terrain and remote location, were recognized as a harborage site. With this perception, when the Mooshin Revolt (戊申亂) broke out, the Noron-gye (political sect) literati harbored in the Namhan-gang river basin and secluded in Yeoju as the representative literati. Examples include Won Gyeong-ha, who went sightseeing to Dangyang in search of a harborage site, Ahn Jung-gwan, who went to harborage in Jecheon after seclusion in Chungju, and Kim Shin-gyeom, who went to harborage in Jecheon.
    Regarding the three literati, depending on the situation they were in, presence or absence of their own seclusion site, and sense of purpose, despite the commonality of staying in the Namhan-gang river basin, a difference exists in the spatial perception embodied in literature. Kim Shin-gyeom, who could not prepare a seclusion site, recognized “harborage” as “seclusion.” By contrast, Won Gyeongha and Ahn Jung-gwan viewed Dangyang and Jecheon as places they would have to leave someday. Furthermore, since Won Gyeong-ha visited for sightseeing, he displayed a curious attitude to find the harborage site, but Ahn Jung-gwan recognized Jecheon as a space from which he wanted to escape while complaining about the suffering of harborage refuge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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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한종구, "충청지역 십승지지의 고찰" (45) : 2021

    2 권경록, "조선후기 한강유역의 文學地理 연구 : 楊根ㆍ驪州ㆍ廣州 지역을 중심으로" 동국대학교 2009

    3 양승목, "조선후기 십승지론의 전개와 ‘살 곳 찾기’의 향방" (63) : 2016

    4 양승목, "조선후기 살 곳 찾기 현상의 동인과 다층성: 십승지와 『택리지』 그리고 그 주변" (84) : 2022

    5 정치영, "조선시대 유토피아의 양상과 그 지리적 특성" 17 : 2005

    6 이상배, "조선시대 남한강 수운에 관한 연구" 5 : 2000

    7 이태희, "조선시대 四郡 관련 산문 기록에 나타난 도교 문화적 공간인식의 양상과 의미" 81 : 2017

    8 안대회, "조선 후기의 좋은 집터, 이상적 거주공간의 이론과 실제: 『임원경제지』 「상택지」를 중심으로" (83) : 2019

    9 이새롬, "조선 후기 은일 공간으로서의 충주" 1 : 2022

    10 김세호, "조선 후기 丹陽 舍人巖에 살았던 사람들" 2023

    1 한종구, "충청지역 십승지지의 고찰" (45) : 2021

    2 권경록, "조선후기 한강유역의 文學地理 연구 : 楊根ㆍ驪州ㆍ廣州 지역을 중심으로" 동국대학교 2009

    3 양승목, "조선후기 십승지론의 전개와 ‘살 곳 찾기’의 향방" (63) : 2016

    4 양승목, "조선후기 살 곳 찾기 현상의 동인과 다층성: 십승지와 『택리지』 그리고 그 주변" (84) : 2022

    5 정치영, "조선시대 유토피아의 양상과 그 지리적 특성" 17 : 2005

    6 이상배, "조선시대 남한강 수운에 관한 연구" 5 : 2000

    7 이태희, "조선시대 四郡 관련 산문 기록에 나타난 도교 문화적 공간인식의 양상과 의미" 81 : 2017

    8 안대회, "조선 후기의 좋은 집터, 이상적 거주공간의 이론과 실제: 『임원경제지』 「상택지」를 중심으로" (83) : 2019

    9 이새롬, "조선 후기 은일 공간으로서의 충주" 1 : 2022

    10 김세호, "조선 후기 丹陽 舍人巖에 살았던 사람들" 2023

    11 어강석, "조선 시대 문인들의 시문에 나타난 ‘충주(忠州)’에 대한 지역 인식" (82) : 2019

    12 박상석, "전란에 뒤흔들린 민간인의 일상 : 민간인의 戊申亂 체험 실기 연구" (54) : 2016

    13 이중환, "완역 정본 택리지" 휴머니스트 2018

    14 김윤조, "암벽에 이름 새기기 풍조의 유행과 단양 사인암에 새겨진 이름에 대한 고찰" (39) : 2020

    15 김주부, "식산 이만부의 산수기행문학 연구 : 『지행록』과 『누항록』을 중심으로"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2010

    16 허원기, "다산 정약용의 남한강 심상 지리" (59) : 2013

    17 김은정, "金昌翕의 丹丘유람과 문학적 형상화" (141) : 2018

    18 윤경희, "金昌翕의 丹丘日記 연구" (41) : 2004

    19 고연희, "金昌翕, 李秉淵의 山水詩와 鄭敾의 山水畵 비교 고찰" 20 : 1997

    20 閔遇洙, "貞菴集"

    21 元景夏, "蒼霞集"

    22 허태용, "英祖代 蕩平政局下 國家義理書 편찬과 戊申亂 해석: 『勘亂錄』, 『御製大訓』, 『闡義昭鑑』의 비교 검토" (116) : 2014

    23 李植, "澤堂集"

    24 윤지훈, "淸風의 山水를 素材로 한 漢文學 作品의 諸特徵: 龜潭과 玉筍峯 關聯 作品을 中心으로" (72) : 2017

    25 이대형, "洪直弼의 寧越 유람과 節義의 형상화" 8 : 2005

    26 金信謙, "橧巢集"

    27 이새롬, "橧巢 金信謙의 隱逸 의식과 시세계" (62) : 2022

    28 "東國輿地志"

    29 이태희, "朝鮮時代 四郡 山水遊記 硏究" 한국학중앙연구원 2015

    30 박은순, "朝鮮時代 南漢江 實景山水畵 硏究" (26) : 2010

    31 이새롬, "朝鮮 後期 文人의 南漢江 流域 空間 認識과 詩的 形象化" 한국학중앙연구원 2022

    32 吳瑗, "月谷集"

    33 李重煥, "擇里志"

    34 安重觀, "悔窩集"

    35 김은정, "安東 金門의 四郡 유람 연구" 34 : 2018

    36 "大東地志"

    37 李奎景, "五洲衍文長箋散稿"

    38 李胤永, "丹陵遺稿"

    39 최선혜, "丹陵 李胤永의 시문에 나타난 영남의 인상 : 1728년 戊申亂의 흔적을 중심으로" 27 : 2014

    40 고수연, "『戊申逆獄推案』에 기록된 戊申亂 叛亂軍의 성격" (82) : 2017

    41 변주승 ; 문경득, "18세기 전라도 지역 무신란의 전개과정: 「戊申逆獄推案」을 중심으로" (39) : 2013

    42 허태용, "1728년 戊申亂의 진압과 『戡亂錄』의 편찬" (166) : 2014

    43 황재문, "1728년 戊申亂 관련 문헌의 재검토" (49) :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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