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에서는 중세 후기 서일본 다이묘의 대외 통교, 그중에서도 오우치씨와 조선의 통교에 집중하여 당시 통교 주체자로서 서일본 지역 다이묘의 실태를 파악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주고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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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중세 후기 서일본 다이묘의 대외 통교, 그중에서도 오우치씨와 조선의 통교에 집중하여 당시 통교 주체자로서 서일본 지역 다이묘의 실태를 파악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주고쿠·...
본고에서는 중세 후기 서일본 다이묘의 대외 통교, 그중에서도 오우치씨와 조선의 통교에 집중하여 당시 통교 주체자로서 서일본 지역 다이묘의 실태를 파악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주고쿠·북규슈 일대를 근거로 하던 오우치씨는 하카타를 중심으로 북규슈 지역을 장악하고 막부 정치에 깊숙히 개입하여 이를 통한 일본 내의 세력 성장을 바탕으로 명·일 무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한편 특히나 조선과의 통교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오우치씨는 조선 건국 초기부터 왜구 금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조선과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고자 했다. 특히 백제 왕손 후계설을 인정받은 것은 오우치씨가 동계의식을 기반으로 대조선 통교권을 두고 경쟁하였던 타 세력과의 사이에서 우위를 확보할 수 있게 하였고, 오우치씨가 멸망하는 16세기 중반까지 조선과 긴밀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배경이 되었다.
대조선 통교를 두고 경쟁하던 쇼니씨를 제압한 오우치씨는 서일본의 패자로 부상하며 동아시아 무역권의 주요 세력이 되었다. 조선은 실력과 신뢰도 모두를 갖춘 오우치씨를 남방을 통제할 적임자로 간주하여 핵심 통교 세력으로 대우했다. 이를 통해 오우치씨는 조선으로부터 대장경을 입수함으로 국내의 정치·문화적 지위를 강화할 수 있었다.
이러한 양자 관계를 잘 반영해주는 것이 바로 오우치씨에게 지급된 통신부이다. 왜구 세력의 감소 이후 급증한 왜인 통교자들로 인해 조선의 경제적 부담이 증가했다. 이에 조선은 일본의 통교자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고자 일부 왜인에 한해 도서·문인·서계 등을 발부하였다. 그러나 막부 측과 오우치씨에게는 통신부라는 특별한 형태의 통교 수단을 지급하여 다른 통교자들과는 별도의 지위를 부여했다. 특히 여타의 유력 다이묘 세력들이 막부의 중개를 통해 지급받았던 상아제 통신부와는 달리 오우치씨의 통신부는 동제로 재질면에서도 차이가 났으며, 이러한 형태의 통신부는 오우치씨에게만 단일 지급되었다는 점에서 지금까지 일본의 대조선 교역의 주축이라 여겨졌던 쓰시마도 갖지 못한 특별한 지위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상술한 내용을 바탕으로 쓰시마의 통교 독점 시기로 이해되는 16세기 초반 이후 조선과 오우치·쓰시마 소씨 세 세력의 관계를 추찰해보면 쓰시마 소씨가 정말 조선과의 통교를 독점하였는지에 대한 의문을 갖게 한다. 삼포왜란 이후 통교의 단절과 재개가 반복되는 조선과 쓰시마 소씨의 관계와는 달리 오우치씨와 조선의 관계는 한 차례도 변한 적이 없었고 임신약조의 중개에 오우치씨가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은 당시 오우치씨에 대한 조선의 신뢰 뿐 아니라 오우치씨가 대조선 통교에서 점하고 있었던 위치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의 국내적 관점에서도 중개 무역지인 쓰시마는 오우치씨의 지배령인 하카타와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고 이에 따라 소씨는 오우치씨의 경제적 혹은 정치적 영향권 안에 있었다고도 볼 수 있다.
따라서 본고는 오우치씨의 조선 통교를 통해 한국 학계에서 다루어지지 않았던 서일본 다이묘 통교의 실상을 파악하는 것은 물론, 막부에 버금가는 통상 특권을 가졌던 통교 주체였던 오우치씨를 한일교역사의 장에 불러내었다. 이를 통해 쓰시마의 조·일 통교 독점론을 통해 중세 한일관계사를 평면적으로 바라보는 한·일 양국의 인식을 보다 입체적으로 전환시켜줄 수 있는 의의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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