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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민지기 서대문형무소 주변의 옥바라지 = 이른바 ‘옥바라지 골목’의 역사성과 관련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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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지금의 무악동 45, 6번지를 가리키는 ‘옥바라지 골목’은 과거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자들의 가족과 지인들이 옥바라지를 위해 잠시 기거했던 곳이었다. 이렇게 독특한 역사성을 지녔던 ‘옥바라지 골목’은 2016년에 철거되었다. 그런데 이 공간을 중심으로 철거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현재성이 생겼다. 다시 말해 ‘옥바라지 골목’에는 국가, 사회, 도시, 감옥 등과 관련된 역사성과 현재성이 공존하게 되었다. 이 글은 이러한 역사성과 현재성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생각하기 위해 식민지 시기 서대문형무소 주변의 옥바라지 행위를 살펴보고자 했다.
    식민지 조선의 감옥 행정은 ‘항일’을 ‘범죄’로 취급하면서 시작되었다. 따라서 감옥은 통치에 저항하는 세력과 일반 사람들 사이를 가로막는 역할을 하였다. 서대문형무소의 기능 역시 이런 것이었다. 감옥은 수감자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통제하면서 사회와 격리시키고자 하였으며, 이는 수감자들과 일반 민들을 통치에 순응케 하기 위한 시도였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식민지 全기간 동안 성공한 적이 없었다. 옥바라지가 수감자들과 사회를 끊임없이 연결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옥바라지는 감옥의 통치가 늘 불안한 상태에 놓여 있게 하는 동력이었고, 이런 점에서 “감옥에 대한 근본적인 저항”이었다.
    서대문형무소 주변의 옥바라지는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졌다. 서대문형무소가 ‘미결수’와 ‘기결수’를 동시에 수감하던 감옥이었다는 점은 형무소 주변의 옥바라지에 큰 변수가 되었다. 형무소 주변에는 날마다 수감자들을 옥바라지하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수감자들은 이들의 옥바라지를 통해 감옥의 통제에 맞설 수 있었다. 수감자들이 증가할수록 서대문형무소 주변의 옥바라지는 일상적인 행위가 되어 갔으며, 이를 계기로 주변에 새로운 공간이 생겼다. 이것이 ‘옥바라지 골목’이다. 옥바라지는 “감옥에 대한 저항”이라는 점에서 역사성과 현재성을 동시에 지니는 행위이며, “철거된” ‘옥바라지 골목’은 그 행위자들이 모였던 사회적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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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의 무악동 45, 6번지를 가리키는 ‘옥바라지 골목’은 과거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자들의 가족과 지인들이 옥바라지를 위해 잠시 기거했던 곳이었다. 이렇게 독특한 역사성을 지녔...

    지금의 무악동 45, 6번지를 가리키는 ‘옥바라지 골목’은 과거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자들의 가족과 지인들이 옥바라지를 위해 잠시 기거했던 곳이었다. 이렇게 독특한 역사성을 지녔던 ‘옥바라지 골목’은 2016년에 철거되었다. 그런데 이 공간을 중심으로 철거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현재성이 생겼다. 다시 말해 ‘옥바라지 골목’에는 국가, 사회, 도시, 감옥 등과 관련된 역사성과 현재성이 공존하게 되었다. 이 글은 이러한 역사성과 현재성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생각하기 위해 식민지 시기 서대문형무소 주변의 옥바라지 행위를 살펴보고자 했다.
    식민지 조선의 감옥 행정은 ‘항일’을 ‘범죄’로 취급하면서 시작되었다. 따라서 감옥은 통치에 저항하는 세력과 일반 사람들 사이를 가로막는 역할을 하였다. 서대문형무소의 기능 역시 이런 것이었다. 감옥은 수감자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통제하면서 사회와 격리시키고자 하였으며, 이는 수감자들과 일반 민들을 통치에 순응케 하기 위한 시도였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식민지 全기간 동안 성공한 적이 없었다. 옥바라지가 수감자들과 사회를 끊임없이 연결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옥바라지는 감옥의 통치가 늘 불안한 상태에 놓여 있게 하는 동력이었고, 이런 점에서 “감옥에 대한 근본적인 저항”이었다.
    서대문형무소 주변의 옥바라지는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졌다. 서대문형무소가 ‘미결수’와 ‘기결수’를 동시에 수감하던 감옥이었다는 점은 형무소 주변의 옥바라지에 큰 변수가 되었다. 형무소 주변에는 날마다 수감자들을 옥바라지하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수감자들은 이들의 옥바라지를 통해 감옥의 통제에 맞설 수 있었다. 수감자들이 증가할수록 서대문형무소 주변의 옥바라지는 일상적인 행위가 되어 갔으며, 이를 계기로 주변에 새로운 공간이 생겼다. 이것이 ‘옥바라지 골목’이다. 옥바라지는 “감옥에 대한 저항”이라는 점에서 역사성과 현재성을 동시에 지니는 행위이며, “철거된” ‘옥바라지 골목’은 그 행위자들이 모였던 사회적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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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Okbaraji Alley,’ which is now 45 and 46, Moak-dong, was a place where people whose family members or friends were confined in ‘Seodaemun Prison’ to stay temporarily supporting them. ‘Okbaraji Alley’ with this unique historicity was demolished in 2016. However, those who were against demolition started to gather around the alley and they created a new form of presence. In other words, ‘Okbaraji Alley’ became a place in which the historicity and the sense of presence coexist with respect to country, society, city and prison. This article was intended to investigate Okbaraji around Seodaemun Prison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in order to review the meanings of such historicity and the sense of presence.
    Prison administration in Korea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started with a notion that regarded ‘resistance against Japan’ as ‘crimes.’ Thus, prisons served as a barrier between those who resisted against the Japanese colonialism and ordinary people. Seodaemun Prison also served this kind of roles. They controlled prisoners with a variety of means trying to isolate them from the society and that was intended to make prisoners and ordinary people accept and comply with their rules. However, they had never succeeded for a single time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It’s because Okbaraji continued to keep prisoners close to the society. Okbaraji had always caused instability of the rules within prisons and, for such reason, it was a “fundamental resistance against prisons.”
    Okbaraji around Seodaemun Prison was done in various forms. Seodaemun Prison took both “prisoners in trial” and “convicted ones” in custody and that became a huge variable to Okbaraji. A lot of people gathered around it to support prisoners every day and prisoners could stand against its control by the help of Okbaraji. As the number of prisoners increased, Okbaraji became a common thing around the prison, creating a new place called ‘Okbaraji Alley.’ Okbaraji is an action that contains both the historicity and the sense of presence with respect to “resistance against prisons” and the “demolished” ‘Okbaraji Alley’ was a social place in which people gathered for such a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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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kbaraji Alley,’ which is now 45 and 46, Moak-dong, was a place where people whose family members or friends were confined in ‘Seodaemun Prison’ to stay temporarily supporting them. ‘Okbaraji Alley’ with this unique historicity was demoli...

    ‘Okbaraji Alley,’ which is now 45 and 46, Moak-dong, was a place where people whose family members or friends were confined in ‘Seodaemun Prison’ to stay temporarily supporting them. ‘Okbaraji Alley’ with this unique historicity was demolished in 2016. However, those who were against demolition started to gather around the alley and they created a new form of presence. In other words, ‘Okbaraji Alley’ became a place in which the historicity and the sense of presence coexist with respect to country, society, city and prison. This article was intended to investigate Okbaraji around Seodaemun Prison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in order to review the meanings of such historicity and the sense of presence.
    Prison administration in Korea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started with a notion that regarded ‘resistance against Japan’ as ‘crimes.’ Thus, prisons served as a barrier between those who resisted against the Japanese colonialism and ordinary people. Seodaemun Prison also served this kind of roles. They controlled prisoners with a variety of means trying to isolate them from the society and that was intended to make prisoners and ordinary people accept and comply with their rules. However, they had never succeeded for a single time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It’s because Okbaraji continued to keep prisoners close to the society. Okbaraji had always caused instability of the rules within prisons and, for such reason, it was a “fundamental resistance against prisons.”
    Okbaraji around Seodaemun Prison was done in various forms. Seodaemun Prison took both “prisoners in trial” and “convicted ones” in custody and that became a huge variable to Okbaraji. A lot of people gathered around it to support prisoners every day and prisoners could stand against its control by the help of Okbaraji. As the number of prisoners increased, Okbaraji became a common thing around the prison, creating a new place called ‘Okbaraji Alley.’ Okbaraji is an action that contains both the historicity and the sense of presence with respect to “resistance against prisons” and the “demolished” ‘Okbaraji Alley’ was a social place in which people gathered for such a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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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Ⅰ. 2016년의 ‘옥바라지 골목’
    • Ⅱ. 통치와 감옥
    • Ⅲ. 저항과 옥바라지
    • Ⅳ. ‘옥바라지’와 새로운 주체의 형성
    • 참고문헌
    • Ⅰ. 2016년의 ‘옥바라지 골목’
    • Ⅱ. 통치와 감옥
    • Ⅲ. 저항과 옥바라지
    • Ⅳ. ‘옥바라지’와 새로운 주체의 형성
    • 참고문헌
    • 국문초록
    •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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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강성현, "한국 사상통제기제의 역사적 형성과 '보도연맹 사건', 1925-50" 서울대학교 대학원 2012

    2 "한겨레 21"

    3 "한겨레"

    4 "중외일보"

    5 "조선일보"

    6 박경목, "일제 강점기 서대문형무소 연구" 충남대 2015

    7 조연행, "옥바라지일기" 백산서당 2002

    8 후지이 다케시, "옥바라지 골목의 역사적 성격, In 옥바라지 골목으로 본 도시역사와 재개발의 문제" 2016

    9 "오마이뉴스"

    10 박완서, "엄마의 말뚝" 세계사 2016

    1 강성현, "한국 사상통제기제의 역사적 형성과 '보도연맹 사건', 1925-50" 서울대학교 대학원 2012

    2 "한겨레 21"

    3 "한겨레"

    4 "중외일보"

    5 "조선일보"

    6 박경목, "일제 강점기 서대문형무소 연구" 충남대 2015

    7 조연행, "옥바라지일기" 백산서당 2002

    8 후지이 다케시, "옥바라지 골목의 역사적 성격, In 옥바라지 골목으로 본 도시역사와 재개발의 문제" 2016

    9 "오마이뉴스"

    10 박완서, "엄마의 말뚝" 세계사 2016

    11 강명순, "양심범의 아내가 쓴 눈물의 수기"

    12 발레리 줄레조, "아파트 공화국: 프랑스 지리학자가 본 한국의 아파트" 후마니타스 2014

    13 이종민, "식민지하 근대감옥을 통한 통제 메카니즘 연구 : 일본의 형사처벌 체계와의 비교" 延世大學校 大學院 1999

    14 한인섭, "식민지 법정에서 독립을 변론하다: 허헌·김병로·이인과 항일 재판투쟁" 경인문화사 2012

    15 "시사인"

    16 문준영, "법원과 검찰의 탄생 ― 사법의 역사로 읽는 대한민국" 역사비평사 2010

    17 데이비드 하비, "반란의 도시: 도시에 대한 권리에서 점령운동까지" 에이도스 2016

    18 이선미, "박완서 소설의 ‘공모’ 의식과 마음의 정치—1987년 이후와 박완서 소설의 1970년대 서사" 반교어문학회 (37) : 371-400, 2014

    19 박현수, "문인-기자로서의 현진건" 반교어문학회 (42) : 281-311, 2016

    20 앤디 메리필드, "매혹의 도시, 맑스주의를 만나다" 이후 2005

    21 "매일신보"

    22 "동아일보"

    23 강현수, "도시에 대한 권리 ― 도시의 주인은 누구인가" 책세상 2010

    24 "뉴스엔조이"

    25 김광섭, "나의 獄中記" 창작과비평사 1976

    26 박완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세계사 2016

    27 사토 요시유키, "권력과 저항: 푸코, 들뢰즈, 데리다, 알튀세르" 난장 2012

    28 京城府, "국역 경성도시계획조사서" 2016

    29 "경향신문"

    30 미셸 푸코, "감시와 처벌" 나남출판 2003

    31 朝鮮總督府警察官講習所, "警察敎科書"

    32 김영범, "玄鼎健의 생애와 민족혁명운동" 한국민족운동사학회 (70) : 149-198, 2012

    33 朝鮮總督府, "朝鮮總督府統計年報(각년판)"

    34 朝鮮總督府, "朝鮮總督府司法統計年報(1919년판)"

    35 "朝鮮及滿洲"

    36 朝鮮總督府法務局行刑課, "朝鮮刑務提要" 朝鮮治刑協會 1927

    37 南基正, "日帝의 韓國司法府 侵略實話" 育法社 1978

    38 申東雲, "日帝下의 豫審制度에 관하여 ― 그 制度的 機能을 중심으로" 27 (27): 1986

    39 朴大熙, "日帝下獄中回顧錄 3: 운명을 딛고 선 의지" 정음사 1977

    40 朝鮮總督府, "施政三十年史" 1940

    41 京城府, "京城都市計劃資料調査書"

    42 京城府, "京城都市計劃資料調査書"

    43 陳內六助, "京城府官內地積目錄" 대림도서출판 1982

    44 陳內六助, "京城府官內地積目錄" 대림도서출판 1982

    45 京城府, "京城府勢一班"

    46 최우석, "『매일신보』가 그려낸 1919년 감옥의 풍경" 서울역사편찬원 (80) : 201-241, 2012

    47 염복규, "1910년대 일제의 태형제도 시행과 운용" 한국역사연구회 (53) : 187-219, 2004

    48 박완서, "(박완서 단편소설 전집 2)조그만 체험기" 문학동네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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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후보
    2014-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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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1.54 1.54 1.18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 0 1.726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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