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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0년대 조선총독부의 '窮民救濟土木事業'과 지역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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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이 논문은 식민지체제에서 ‘개발’의 의미를 구명하고 식민지배의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 1930년대 조선총독부가 실시한 ‘窮民救濟土木事業’(1931~36)과 그에 대한 지역사회의 동향을 분석한 것이다. 사업에는 공공근로 토목사업의 형태로 ‘지역개발’이 표방되었고, 여기에 식민지민들이 활발히 대응하였다. 사업의 전개과정에는 식민권력의 의도와 피지배민들의 다양한 요구가 작동하고 있었다. 양자의 관계를 파악하는 가운데 식민지체제의 성격과 한계를 구명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였다.
    세계대공황은 전 세계에 대량실업을 야기했고, 각국은 실업대책을 고안해 자본주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였다. 사업도 그 일환으로 볼 수 있는데, 식민 본국뿐만 아니라 식민지에서 본격적인 실업대책이 시행되었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것도 공공근로 토목공사 형태는 일본제국 내에서도 일본 본국과 조선에서만 실시되었다. 그 까닭은 일본이 인접 지역을 식민지로 만들면서 노동시장이 일본 본국과 연동되어 있었고, 조선은 지리적으로 일본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사업은 대공황으로 일본 내 실업난이 가중되자 渡日 조선인들을 막기 위한 일본제국의 요구에서 출발했다. 일본 내 조선인 노동자들을 차단하고 그들을 조선 내 노동시장에서 흡수시키고자 조선에서 토목공사를 일으킨 것이다. 여기에 조선 농촌의 과잉인구와 도시?농촌의 빈민층 증가는 사업의 또 다른 배경이었다. ‘궁민구제’가 전면에 표방된 이유는 조선총독부가 조선사회 안정화를 위한 가시적인 효과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 동시에 사업에는 산업개발을 위한 사회간접자본의 구축, 나아가 조선공업화의 기초를 쌓는다는 목표가 있었다. 요컨대 사업은 일본 내 실업문제를 해결하는 것에서 출발하여 조선 내 ‘궁민구제’와 ‘산업개발의 기초 제공’이라는 두 가지 목표 속에서 전개되었다.
    사업의 전개와 관련해서 주목할 점은 식민지민의 ‘아래로부터의 요구와 압력’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상품경제의 발달과 자본주의의 침투, 교육열과 같은 자기계발의 심리, 그리고 ‘문화통치’라는 이전보다 열린 공간 속에서 1920년대 이래로 각지에서는 지역개발의 욕구가 분출하고 있었다. 그 분출은 집합재에 대한 요구로 나타났고, 식민권력은 지역 ‘현안’을 해결하라는 요구들을 일정 부분 수렴할 필요가 있었다. 이를 위해 1920년대 후반의 면 재정 정비와 1930년 지방제도 개편이 이뤄졌다. 이로써 식민권력은 재정 부담을 줄이면서 지방 당국 차원에서 대규모 사업(지역개발)이 가능해졌고, 총독부는 지역민의 요구들을 유사 ‘지방자치’의 틀 속에 포섭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지역개발’을 둘러싼 지역사회 내 아래로부터의 요구는 계층별로 다양하게 표출되고 있었다. 유력자층은 지역사회의 이해를 대변하는 발언을 통해 자신들의 명망을 획득하고자 하였다. 여기에는 토목공사를 자신들의 지주제 경영이나 수리조합 운영, 상품유통망 확보에 이용하고자 하는 의도가 포함되어 있었다. 일반 주민들은 도로 개수 등으로 생산과 소비, 지역 간 소통이 확대되리라는 것, 하천 정리로 홍수 등 재해를 예방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심리를 갖고 있었다. 공사현장의 빈민노동자들은 비록 적은 임금이라도 생활의 안정을 찾고자 하였다. 하지만 공사현장의 구조적 문제 속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며 생존권 투쟁을 벌이기도 하였다. 이렇게 ‘지역개발’을 두고 다양한 요구들이 투영된 가운데 사업이 진행되었다. 사업을 향한 요구들은 ‘지역 발전’, ‘궁민 구제’라는 ‘공공성’의 형태를 띠고 표출되고 있었는데, 그 이면에는 경제적 이득 추구라든가 지역 내의 노동권 확보 등 사적 이해관계가 결부되어 있었다.
    지역사회는 공공재를 확보하기 위해 사업에 활발히 대응하였다. 실제 지역민들은 사회간접자본의 구축으로 인한 직간접적인 효과들을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공사 임금은 빈민의 생활비조차 감당하기 어려웠고, 구제는 일시적인 것이었다. 이에 반해 일본 자본은 청부업이나 공사 재료 납입 등에서 이윤을 추구하였고, 그 과정에서 조선인 자본은 배제되고 있었다. 동시에 총독부 등 식민권력은 빈민층이라는 ‘값싼’ 노동력을 동원하여 사회간접자본을 구축해나갈 수 있었다.
    이렇게 볼 때 사업은 총독부의 의도대로 진행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지역개발을 둘러싼 식민지 정치구도이다. 결론적으로 사업을 통한 총독부에 의한 지역사회 포섭과 통제는 완전할 수 없었다. 식민권력의 의도와 피지배민의 요구와 불일치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지역민은 생활 안정, 살림살이의 해결을 요구했지만, 식민권력의 산업개발을 위한 기초 구축, 일본인 중심의 수익 창출 구조는 그와 괴리가 있었다. 그 간극은 대의기구, 합의기구가 부재한 식민지에서는 좁혀지기 힘든 것이었다. 공공재를 둘러싼 각지의 경쟁과 갈등은 ‘빈민 구제’와 ‘지역 발전’이라는 ‘공익’을 표방하면서 발생하였다. 하지만 그 ‘공익’을 담아낼 시스템이 부재하였다. 그것이 바로 식민지 ‘공공성’의 최대치이자 한계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식민지민들도 잘 살고 싶은 욕구가 많았다. 하지만 그 욕구는 주권이 상실된 현실, 정치적 공간이 협소했던 상태, ‘식민독재’의 통치 상황 속에서 ‘개발’의 이득이 식민자들을 중심으로 향유되었다는 점에서 해소되기 어려웠다. 해소의 실마리는 식민지로부터 해방되고 주권국가가 성립된 이후에야 찾아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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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논문은 식민지체제에서 ‘개발’의 의미를 구명하고 식민지배의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 1930년대 조선총독부가 실시한 ‘窮民救濟土木事業’(1931~36)과 그에 대한 지역사회의 동향을 분석...

    이 논문은 식민지체제에서 ‘개발’의 의미를 구명하고 식민지배의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 1930년대 조선총독부가 실시한 ‘窮民救濟土木事業’(1931~36)과 그에 대한 지역사회의 동향을 분석한 것이다. 사업에는 공공근로 토목사업의 형태로 ‘지역개발’이 표방되었고, 여기에 식민지민들이 활발히 대응하였다. 사업의 전개과정에는 식민권력의 의도와 피지배민들의 다양한 요구가 작동하고 있었다. 양자의 관계를 파악하는 가운데 식민지체제의 성격과 한계를 구명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였다.
    세계대공황은 전 세계에 대량실업을 야기했고, 각국은 실업대책을 고안해 자본주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였다. 사업도 그 일환으로 볼 수 있는데, 식민 본국뿐만 아니라 식민지에서 본격적인 실업대책이 시행되었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것도 공공근로 토목공사 형태는 일본제국 내에서도 일본 본국과 조선에서만 실시되었다. 그 까닭은 일본이 인접 지역을 식민지로 만들면서 노동시장이 일본 본국과 연동되어 있었고, 조선은 지리적으로 일본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사업은 대공황으로 일본 내 실업난이 가중되자 渡日 조선인들을 막기 위한 일본제국의 요구에서 출발했다. 일본 내 조선인 노동자들을 차단하고 그들을 조선 내 노동시장에서 흡수시키고자 조선에서 토목공사를 일으킨 것이다. 여기에 조선 농촌의 과잉인구와 도시?농촌의 빈민층 증가는 사업의 또 다른 배경이었다. ‘궁민구제’가 전면에 표방된 이유는 조선총독부가 조선사회 안정화를 위한 가시적인 효과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 동시에 사업에는 산업개발을 위한 사회간접자본의 구축, 나아가 조선공업화의 기초를 쌓는다는 목표가 있었다. 요컨대 사업은 일본 내 실업문제를 해결하는 것에서 출발하여 조선 내 ‘궁민구제’와 ‘산업개발의 기초 제공’이라는 두 가지 목표 속에서 전개되었다.
    사업의 전개와 관련해서 주목할 점은 식민지민의 ‘아래로부터의 요구와 압력’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상품경제의 발달과 자본주의의 침투, 교육열과 같은 자기계발의 심리, 그리고 ‘문화통치’라는 이전보다 열린 공간 속에서 1920년대 이래로 각지에서는 지역개발의 욕구가 분출하고 있었다. 그 분출은 집합재에 대한 요구로 나타났고, 식민권력은 지역 ‘현안’을 해결하라는 요구들을 일정 부분 수렴할 필요가 있었다. 이를 위해 1920년대 후반의 면 재정 정비와 1930년 지방제도 개편이 이뤄졌다. 이로써 식민권력은 재정 부담을 줄이면서 지방 당국 차원에서 대규모 사업(지역개발)이 가능해졌고, 총독부는 지역민의 요구들을 유사 ‘지방자치’의 틀 속에 포섭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지역개발’을 둘러싼 지역사회 내 아래로부터의 요구는 계층별로 다양하게 표출되고 있었다. 유력자층은 지역사회의 이해를 대변하는 발언을 통해 자신들의 명망을 획득하고자 하였다. 여기에는 토목공사를 자신들의 지주제 경영이나 수리조합 운영, 상품유통망 확보에 이용하고자 하는 의도가 포함되어 있었다. 일반 주민들은 도로 개수 등으로 생산과 소비, 지역 간 소통이 확대되리라는 것, 하천 정리로 홍수 등 재해를 예방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심리를 갖고 있었다. 공사현장의 빈민노동자들은 비록 적은 임금이라도 생활의 안정을 찾고자 하였다. 하지만 공사현장의 구조적 문제 속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며 생존권 투쟁을 벌이기도 하였다. 이렇게 ‘지역개발’을 두고 다양한 요구들이 투영된 가운데 사업이 진행되었다. 사업을 향한 요구들은 ‘지역 발전’, ‘궁민 구제’라는 ‘공공성’의 형태를 띠고 표출되고 있었는데, 그 이면에는 경제적 이득 추구라든가 지역 내의 노동권 확보 등 사적 이해관계가 결부되어 있었다.
    지역사회는 공공재를 확보하기 위해 사업에 활발히 대응하였다. 실제 지역민들은 사회간접자본의 구축으로 인한 직간접적인 효과들을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공사 임금은 빈민의 생활비조차 감당하기 어려웠고, 구제는 일시적인 것이었다. 이에 반해 일본 자본은 청부업이나 공사 재료 납입 등에서 이윤을 추구하였고, 그 과정에서 조선인 자본은 배제되고 있었다. 동시에 총독부 등 식민권력은 빈민층이라는 ‘값싼’ 노동력을 동원하여 사회간접자본을 구축해나갈 수 있었다.
    이렇게 볼 때 사업은 총독부의 의도대로 진행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지역개발을 둘러싼 식민지 정치구도이다. 결론적으로 사업을 통한 총독부에 의한 지역사회 포섭과 통제는 완전할 수 없었다. 식민권력의 의도와 피지배민의 요구와 불일치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지역민은 생활 안정, 살림살이의 해결을 요구했지만, 식민권력의 산업개발을 위한 기초 구축, 일본인 중심의 수익 창출 구조는 그와 괴리가 있었다. 그 간극은 대의기구, 합의기구가 부재한 식민지에서는 좁혀지기 힘든 것이었다. 공공재를 둘러싼 각지의 경쟁과 갈등은 ‘빈민 구제’와 ‘지역 발전’이라는 ‘공익’을 표방하면서 발생하였다. 하지만 그 ‘공익’을 담아낼 시스템이 부재하였다. 그것이 바로 식민지 ‘공공성’의 최대치이자 한계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식민지민들도 잘 살고 싶은 욕구가 많았다. 하지만 그 욕구는 주권이 상실된 현실, 정치적 공간이 협소했던 상태, ‘식민독재’의 통치 상황 속에서 ‘개발’의 이득이 식민자들을 중심으로 향유되었다는 점에서 해소되기 어려웠다. 해소의 실마리는 식민지로부터 해방되고 주권국가가 성립된 이후에야 찾아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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