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형분구는 영산강유역에서 가장 유행한 분형으로 대체로 3세기 전후에 출현하여 고총고분이 등장하기 이전인 5세기 중엽까지 조영된다. 제형분구에 대한 그간의 인식은 분구묘라는 큰 틀 ...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https://www.riss.kr/link?id=A101822812
2016
-
911
KCI등재
학술저널
43-73(31쪽)
4
0
상세조회0
다운로드제형분구는 영산강유역에서 가장 유행한 분형으로 대체로 3세기 전후에 출현하여 고총고분이 등장하기 이전인 5세기 중엽까지 조영된다. 제형분구에 대한 그간의 인식은 분구묘라는 큰 틀 ...
제형분구는 영산강유역에서 가장 유행한 분형으로 대체로 3세기 전후에 출현하여 고총고분이 등장하기 이전인 5세기 중엽까지 조영된다. 제형분구에 대한 그간의 인식은 분구묘라는 큰 틀 속에서 지상식의 지향 관념에 의해 조성된다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자료가 증가되면서 기왕의 인식과 다른 새로운 사실들이 확인됨에 따라 재고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이에 필자는 제형분구의 최초 피장자(중심매장시설)를 중심으로 축조공정을 파악하여 그간의 연구 성향에 대해 검토하였다. 주요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제형분구의 최초 피장자인 중심매장시설은 분구의‘동시성토를 통한 지하식 매장구조’였으며, 여기에 부가되어진 추가매장시설들만이 ‘先墳丘造成을 통한 지상식 매장구조’임을 알 수 있었다. 중심·추가매장시설간의 매장위치가 달랐던 매장풍습은 제형분구 출현 이후부터 5세기 전·중엽까지 이어지는 공통된 현상이었다. 특히 중심매장시설이 안치된 초축 분구 축조공정 내용에서 가장 주목되는 점은 주구의 굴착토를 분구로 퍼올리는 과정에서 분구 외연을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되어진 참호형상(분구 중앙이 빈 공간으로 남겨지는 형상)의 성토를 그대로 이용했던 소위 ‘막쌓기 방식’의 확인이었다. 참호형상을 이용함에 따라 중심매장시설의 안치 공간은 별도의 굴광 작업을 진행할 필요가 없이 내측 경사면을 다듬는 정도로 마무리된다. 또한 굴광의 마감면은 낮은 성토 높이에 연동하여 중심매장시설의 보호를 위해 정지층~기반층에 한정된 일부 층을 굴착한 지하식 구조임을 알 수 있었다. 따라서 성토층 내에서 묘광의 굴광선은 찾기가 쉽지 않는 반면, 바닥 윤곽은 선명하게 남게 되는 정황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축조공정을 간과한 채 그동안의 인식은 중심매장시설의 상단부위치가 성토층에 자리한다는 현상만으로 분구‘되파기’라고 오인해 왔던 것이다. 현행대로 분구묘의 개념을 적용할 시, 최초 분구를 조성하면서 진행된 현상과 의미를 희석해버릴 수 있다는 문제점이 확인되었다. 따라서 필자는 고분 자료에 대한 올바른 연구는 최초 피장자(중심매장시설)와 관련된 장법의 내용을 포함한 ‘과정적 의미’를 정리하는 것이 첫 번째이고, 최종 완성된 결과적 의미인‘다장’이라는 매장풍습의 제일성을 확인하는 것은 다음 작업이라 본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A trapezoidal burial mound is a style of a burial mound that was most prevalent in the Yeongsangang River basin. This trapezoidal burial mound originated in around the 3th century AD and lasted into the middle 5th century AD, before a type of ancient ...
A trapezoidal burial mound is a style of a burial mound that was most prevalent in the Yeongsangang River basin. This trapezoidal burial mound originated in around the 3th century AD and lasted into the middle 5th century AD, before a type of ancient huge tomb appeared. The conventional understanding has been predominant that a trapezoidal burial mound was constructed based on the concept of an orientation toward above-ground burial in a large frame of a mounded tomb. However, as new facts inconsistent with the conventional understanding have been found with an increase in relevant data, now is the time to reconsider the conventional understanding. In this sense, this study was conducted to review the tendency of existing studies by identifying the construction process centered on the first person buried in a trapezoidal mound as central burial facilities. The main contents are as follows: Central burial facilities first constructed inside a trapezoidal mound were an ‘underground burial structure based on concurrent banking of a mound’, and only extra burial facilities added to this structure were an ‘above-ground burial structure based on a first created mound’. In short, these two structures were different from each other in burial location. This burial customs was a common phenomenon that lasted from the time of appearance of a trapezoidal mound up to the early and middle 5th century AD. In particular, the construction process of central burial facilities was implemented not following a first created mound but using a method like what is called ‘random masonry’ that used a shape of a trench, which left the center of a mound vacant, naturally formed along the circumference of a mound in the process of scooping soils dug out from the creation of a circumferential ditch up on a mound. As the shape of a trench was used, a space for the placement of central burial facilities didn't need extra hole digging and was completely created only by finishing slopes inside the space. This space was an underground structure that had only a flattening stair to a base stair dug interlocking the finished surface of a hole with low embankment for the protection of central burial facilities. So, the line of a grave hole was not easy to find out, while the contour of the bottom was clearly left. With the negligence of this construction process, a trapezoidal burial mound has been misunderstood as ‘a redigging’ of a burial mound, based on the fact that the upper end of central burial facilities was placed on an embankment layer. The application of the conventional concept of a mounded tomb is found to pose a problem of undervaluing the phenomena and meaning of the first creation of a burial mound. Therefore, it is thought that, in the first place, the right approach to the data on ancient tombs is to identify ‘the meaning of processes’ including burial method related to the first person buried in central burial facilities and that it is the next thing to be considered to identify the uniformity of burial customs, ‘multiple burials’
목차 (Table of Contents)
참고문헌 (Reference)
1 동북아지석묘연구소, "화순용강리유적"
2 경기문화재단, "화성성역의궤건축용어집"
3 오동선, "호남지역제형분의변천, In 분구묘의신지평" 2011
4 최성락, "호남지역의철기시대–연구현황과과제–, In 호남지역의철기문화" 2000
5 이영철, "호남지역선사와고대의제사" 호남고고학회 2014
6 임영진, "호남지역삼국시대고고학연구의현황과과제, In 호남고고학회20년, 그회고와전망" 2013
7 최완규, "호남지역마한묘제유형과전개" 호남고고학회 11 : 2000
8 김영희, "호남지방 주구토광묘의 전개양상에 대한 고찰" 목포대학교 대학원 2004
9 호남문화재연구원, "함평향교고분"
10 전남대학교박물관, "함평예덕리만가촌고분군"
1 동북아지석묘연구소, "화순용강리유적"
2 경기문화재단, "화성성역의궤건축용어집"
3 오동선, "호남지역제형분의변천, In 분구묘의신지평" 2011
4 최성락, "호남지역의철기시대–연구현황과과제–, In 호남지역의철기문화" 2000
5 이영철, "호남지역선사와고대의제사" 호남고고학회 2014
6 임영진, "호남지역삼국시대고고학연구의현황과과제, In 호남고고학회20년, 그회고와전망" 2013
7 최완규, "호남지역마한묘제유형과전개" 호남고고학회 11 : 2000
8 김영희, "호남지방 주구토광묘의 전개양상에 대한 고찰" 목포대학교 대학원 2004
9 호남문화재연구원, "함평향교고분"
10 전남대학교박물관, "함평예덕리만가촌고분군"
11 임영진, "함평예덕리만가촌고분과영산강유역고분의주구" 한국고고학회 1996
12 이택구, "한반도 중서부지역의 馬韓 墳丘墓" 한국고고학회 (66) : 48-89, 2008
13 김승옥, "한국매장문화재조사연구방법론 5" 국립문화재연구소 2009
14 이주헌, "토론요지, In 분구묘·분구식고분의신자료와백제" 한국고고학회 2006
15 김승옥, "중서부지역마한계묘제의성격과발전, In 분구묘의신지평" 2011
16 이정호, "전남지역의옹관묘" 호남고고학회 6 : 1997
17 한옥민, "전남지역마한분구묘사회의연구성과와과제, In 한국고고학의신지평" 2014
18 임영진, "전남지역고분측량보고서 2" 전남대학교박물관 2000
19 한옥민, "전남지방토광묘성격에대한고찰" 호남고고학회 13 : 2001
20 윤효남, "전남지방의 3∼4세기 분구묘에 대한 연구" 전북대학교 대학원 2003
21 이정호, "전남의역사와문화" 목포대학교박물관 2003
22 최성락, "전남의역사와문화" 목포대학교박물관 2001
23 이정호, "전남의고대문화" 학연문화사 1999
24 최성락, "옹관"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2010
25 목포대학교박물관, "영암옥야리고분"
26 국립광주박물관, "영암만수리4호분"
27 국립광주박물관, "영암내동리초분골고분"
28 임영진, "영산강유역의이형분구고분소고" 호남고고학회 5 : 1997
29 이영철, "영산강유역권분구묘특징과몇가지논쟁점에대한토론요지, In 분구묘의신지평" 2011
30 임영진, "영산강유역권분구묘특징과몇가지논쟁점, In 분구묘의신지평" 2011
31 김영희, "영산강유역고분토목기술의여정과시간을찾아서" 대한문화재연구원 2014
32 김낙중, "영산강유역고분연구" 학연문화사 2009
33 성낙준, "영산강유역고대사회의새로운조명" 역사문화학회 2000
34 최성락, "영산강유역고대문화의성립과발전" 학연문화사 2007
35 박형열, "영산강유역3~5세기고분변천" 동국대학교 2014
36 최성락, "영산강유역 고분연구의 검토 -고분의 개념, 축조방법, 변천을 중심으로-" 호남고고학회 33 : 107-128, 2009
37 목포대학교박물관, "영광군동유적"
38 김용성, "소위분구묘·분구식고분의개념과관련된의문, In 분구묘·분구식고분의신자료와백제" 2006
39 이훈, "서산부장리고분과분구묘, In 분구묘·분구식고분의신자료와백제" 한국고고학회 2006
40 최성락, "삼국의 성립과 발전기의 영산강유역" 한국상고사학회 37 : 87-107, 2002
41 홍보식, "삼국시대고총고분축조기술" 대한문화재연구원 2013
42 신동조, "삼국시대고총고분축조기술" 대한문화재연구원 2013
43 권오영, "삼국시대고고학개론–도성과토목편–1" 대한문화재연구원 2014
44 이성주, "분구묘의인식" 한국상고사학보 32 : 2000
45 최성락, "분구묘의 인식에 대한 검토" 한국고고학회 (62) : 114-132, 2007
46 한옥민, "분구 축조에 동원된 노동력의 산출과 그 의미 - 영산강유역 옹관고분을 중심으로-" 호남고고학회 34 : 99-130, 2010
47 성정용, "백제 한성기 저분구분과 석실묘에 대한 일고찰" 호서고고학회 (3집) : 1-22, 2000
48 목포대학교박물관, "무안인평고분군"
49 김낙중, "마한분구묘의기원과발전" 마한연구원 2015
50 최병현, "동아시아의주구묘" 호남고고학회 2002
51 임영진, "동아시아의주구묘" 호남고고학회 2002
52 김낙중, "동아시아의고분문화" 서경문화사 2011
53 호남문화재연구원, "나주용호고분군"
54 전남대학교박물관, "나주복암리고분군"
55 김낙중, "나주복암리3호분"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2006
56 국립광주박물관, "나주반남고분군"
57 成洛俊, "榮山江流域의 甕棺墓 硏究" 전남대학교 대학원 1983
조선총독부 고적조사 사업에서 후지타 료사쿠(藤田亮策)의 역할
학술지 이력
|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
| 2026 | 평가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 2020-01-01 | 등재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 |
| 2017-01-01 | 등재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 |
| 2015-01-01 | 등재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
| 2011-01-01 | 등재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
| 2009-01-01 | 등재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
| 2007-01-01 | 등재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
| 2004-01-01 | 등재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 |
| 2003-01-01 | 등재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 |
| 2001-07-01 | 등재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 |
학술지 인용정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 2016 | 0.7 | 0.7 | 0.72 |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 0.72 | 0.89 | 1.572 | 0.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