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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인 朝鮮大學校 師範大學 國語敎育科 1975 國語敎育硏究 Vol.1 No.-
작가적 출발과 함께 6.25라는 참상을 겪었던 이른바 1950년대의 작가들은 이제까지의 순수파 작가들이 지닌 목가적 안온성에 만족할 수 없었다. 해방 후의 혼란과 전쟁을 겪으면서 인간이 처한 극한 상황을 의식하게 되고 그래서 그들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다분히 병적일 수밖에 없었다. <원형의 전설>의 이상이 자기의 출생의 비밀에 접한다는 정신적 외상에 의해 정신적 분열이 시작된 것처럼 이러한 실존의식에 눈을 뜬 사람들은 이제껏 보지 못했던 인간 존재의 우매성을 깨닫게 되며 그렇게 되어버린 근원을 추구하게 된다. 이에 <원형의 전설>에서는 그 근원은 인간의 언어-주문-헛된 이름의 병때문이라 규정짓는다. 이 이름이라는 것이 지어낸 모든 <인간적>인 것이 <인간>은 아니다라는 것이다. 주인공의 헛소리는 말의 비극을 고발하는 검사의 논고다.
김 종 朝鮮大學校 師範大學 國語敎育科 1981 國語敎育硏究 Vol.2 No.-
이상의 것들이 합일되면 형식에 구애된 많은 문제가 해소되고 시조의 시적 대상관은 보다 확대 심화될 것이다. 시조가 목표하는 철저한 체험의식이 때로 무산되어버리는 안타까움은 적어도 극복되어야 할 문제가 아닌가 보아진다. 시조는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형식 문제에서 당장 완벽한 결론이 주어지지 못한 상황이지만 어떻거나 그것을 목표하는 노력이 필요한 즈음이다. 반드시 어느 특정한 것만이 최선이라는 것보다는 각각의 주장이나 근거로서 상보적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수 없이 쏟아져 나오는 주장들이 어떤 형태로든 수렴되어 시조에 관한 형식문제 등은 어느 특정한 개인을 통하거나 힘으로가 아니라 공동의 관심속에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 자주 주장하는 기치에 반비례하여 왜소해져 가는 시조에 관심있는 이 모두 북을 돋고 물을 주어 발전하거나 움직이는 역동체로서 생동의 거대한 파고가 되게 해야 한다. 현대시는 도도한 장강의 수량을 이루어 흘러가는 데 시조의 물줄기만 유독 가뭄을 타는가에 조그마한 접근이라도 가능할까 싶어 감히 위의 졸견을 내놓는 것이다. 이제 시조는 언어적 황홀감을 실현하는 자리에서 존재하며 이 땅의 문학풍토를 풍부한 것으로 성장시키는 기대에 값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宋在周 朝鮮大學校 師範大學 國語敎育科 1981 國語敎育硏究 Vol.2 No.-
“오늘날 우리가 물려 받은 향가중에서 처용가만큼 조잡한 작품이 또 달리 있을 것 같지 않다. 「모죽지랑가」에서는 더욱 그러한 것이다. 「처용가」에서는 그런대로 일말의 humor나 eroticism이라도 발견할 수 있지마는, 「모죽지랑가」에서는 필부필부(匹夫匹婦)들이 늘어놓은 상청에서의 넋두리를 넘어서지 못한 조잡밖에 없기 때문이다”라고 하여 “일말의 humor나 eroticism의 인정으로서 ”처용가“의 문학성을 층정하는 요건중의 하나로 보아 아쉬운대로 무리하게 격상(?)시켜 보려고 한 듯하지만 삼국유사 ”처용랑, 망해사“ 조에 실려있는 이 처용가에 대한 연구 업적들과는 상당한 거리감을 느끼게 한다. 필자도 ”처용가의 형성연대에 대하여“(조선대학교 ”인문과연구“ 제3집 1681.2)에서 이삼국유사에 대한 문헌기록의 분석검토와 처용가 표기에 사용된 표기체계의 특징을 고찰한 바에 다라서, 아무래도 처용설화 및 처용가는 고려 광종후 충렬왕 이전에 형성되었으리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고 하였었다. 또한 향가 표기 중 우리의 주목을 끌게 하는 것은 “東京暝期月良” 이라고 표기된 데에서 “동경”이라는 어사라고 할 것이다. 이 “동경”이 경주를 가리킨다는 것은 아직 움직일 수 없는 정설처럼 알려지고 있는데, 필자와 같이 고려초기 형성설을 가지고 본다면 더욱 더 문제거니와 삼국유사의 기록을 그대로 존신하여 신라 헌강왕대 작품이라 하더라도 “동경”이라고 표기된 이 어사는 이 처용가를 “조잡한 지방문학”이라고만 일축하기에는, 그 지방이 수도에 대립된 지방인진댄, 곤란한 문제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동경”어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 내지 처용가 전체 해석에 의한 “동경”의 해석이 합리적으로 처리되어야 할 것임은 물론이다. 충분한 고증에 의해서라는 뜻도 될 것이다. 여상한 필자의 주장은 집단적인 원시 제례 의식의 무도에서 발생한 시률에서 시가가 나오고, 그 제례에서 민요와 서정시가 파생되며, 민요는 목축자나 농민의 사이에 전하여지고, 서정시는 도시의 귀족 하이에서 육성된다는 계보나 원리에 위배되는 것이 아니라 함을 부언하여 두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