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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신라 부군(副君)과 월지궁(月池宮)

        홍승우 ( Hong Suengwoo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구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2018 東洋學 Vol.70 No.-

        이 논문은 신라 동궁이 왕위계승권자인 태자의 거처가 맞는지와 『三國史記』와 「鳳巖寺智證大師寂照塔碑文」에 등장하는 月池宮이 東宮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憲德王 14년에 興德王이 책봉된 副君에 대하여 고찰한 것이다. 부군은 태자의 이칭으로 널리 사용된 용어이지만, 헌덕왕대에 별도의 태자가 있었기에, 왕위계승권자인 태자와 동일한 실체가 아니라는 주장이 일찍부터 제기되었다. 이 주장을 근거로 동궁이 태자궁이 아니라거나, 월지궁과 동궁이 동일한 실체가 아니라는 주장들도 나오고 있다.우선 『三國遺事』 「溟州五臺山寶叱徒太子傳記」에 나오는 부군을 고찰하였다. 이 부군이 신라 당대에 사용된 용어인지를 확인하기는 힘들지만, 일반적인 왕자의 의미로 사용된 태자와 구분되는 지위였음을 알 수 있으므로, 그 의미는 왕위계승권자인 태자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다만 흥덕왕의 경우만 다른 『三國史記』의 태자 책봉기사들과 다르게 부군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는데, 이는 부군이 단순한 태자의 이칭이 아닐 가능성을 보여준다. 흥덕왕이 된 부군은 헌덕왕이 조카 애장왕을 죽이고 왕위를 빼앗은 사건과 관련하여 자칭한 것으로 보이는 부왕이라는 칭호와 동일한 것이다. 신라에서는 전왕과의 실제 가족 관계와 무관하게 왕위계승권자를 태자로 칭했지만, 이미 당에 널리 알려진 헌덕왕이 자신을 태자라 칭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대신 부왕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였고 그것이 흥덕왕이 된 부군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일시적이고 임시적인 호칭이었고, 그 실체는 태자였기에 곧 다시 태자 호칭이 사용되었다.흥덕왕이 된 부군은 헌덕왕대 부왕과 동일한 것이고 왕위계승권자를 의미하는 것인 만큼, 그가 부군이 된 후 들어간 월지궁이 태자의 거처 동궁과 동일한 실체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In order to confirm that Wolji-Gung, appearing in SamgukSaki and Inscriptions for Jijeung-Daesa, is the name of Shilla Dynasty’s East Palace which is the residence of royal successor Taeja, I researched the nature of Bugun which is the official position King HeungDeok became in 822.First, I analyze the official titles for royal family written on biography of Prince Bojildo contained in SamgukYusa. It revealed that Bugun is the title of the successor to the throne. But it is not just different name of Taeja but the Specific Nomenclature used by King HeonDeok.King HeonDeok robbed the throne from his nephew. But he did not notify the Tang Dynasty his self crowning. He just sent a envoy and informs he is legitimate royal successor. But he is already known as a uncle of previous king named Aejang, so he did not use the official title called Taeja. He used Buwang as a title of royal succesor, but it’s nature is same to Taeja. Later, he made his little brother King HeungDeok a royal succesor, and titled as Bugun.In conclusion, Bugun is the official title of a royal succesor of Shilla Dynasty used during the reign of King HeonDeok and it is clear that Wolji-Gung the residence of Bugun is the other name of palace of royal successor called East Palace.

      • KCI등재

        목간 자료로 본 백제의 籍帳 문서와 수취제도

        홍승우(Hong, suengwoo) 한국고대사학회 2015 韓國古代史硏究 Vol.0 No.80

        부여 궁남지와 나주 복암리에서 호적을 근거로 작성된 백제의 문서 목간 3점이 출토되어, 백제 율령에 의한 지배체제의 단면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백제 적장 문서 목간의 기재 형식과 내용을 볼 때, 백제는 남녀 구분 없이 정에 해당하는 인적 자원에게 일정액의 조세와 역역을 부담시키고, 중구에게는 조세만을 부과하는 수취제도를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 인적 자원과 호의 자산을 집계하여 호등을 산정하고 이를 수취에 활용하였던 사실도 확인할 수 있다. 사비 시기 백제의 적장 문서들에서 확인되는 서식은 비슷한 시기 중국 왕조들이 종이에 작성한 적장 문서들과 차이가 있으며, 오히려 진한대 목간에 작성된 적장 문서들과 형식적으로는 유사한 면이 많다. 이는 일차적으로 목간이라는 적장 문서의 재료 특성에 기인한 바로 보인다. 하지만 목간에 작성되었던 적장 문서의 형식이 일정했던 것을 보면, 백제 적장 문서 형식과 그것의 바탕이 된 백제 율령의 연원이 상당히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백제가 일찍부터 한반도 내에 존재했던 낙랑군과 같은 중군 군현을 통해 율령과 적장 문서에 대한 지식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활용하여 율령과 적장 문서를 마련했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적장 문서 목간에 기재된 연령 등급의 용어 등을 볼 때, 백제가 지속적으로 중국 왕조들과 교류하면서 율령과 적장 문서를 정비해갔음도 확인된다. 이러한 점은 백제 율령이 일시적이고 전면적으로 도입된 것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다양한 변형을 거치면서 자리잡아갔음을 보여준다. Three pieces of Baekje Dynasty’s household register related document written on wooden strip were found in Puyeo Gungnaji ruins and Naju Bokamri. We can find out Baekje Dynasty’s taxation system and get some information about Baekje’s YulRyeong which defines the taxation system through these wooden strips. The format of these documents is similar to Qin and Han Dynasty’s which written on wooden strips rather than those of the Chinese dynasties of the same period written on paper. It means that the origin of the format of the document and taxation system of Baekje can be up to Han Dynasty. Baekje Dynasty had relationship with Chinese commanderies especially NakrangGun. And through these experience, Baekje Dynasty’s ruling system based on YulRyeong such as household register and related documents form and taxation system were provided and established. And according to the terminologies written on the documents, Baekje had continuous relationship with the Chinese Dynasties of the same period and modified own YulRyeong by adopting their YulRyeong and ruling sys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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