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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자』의 비극미학적 사유방식

        탁양현 동양철학연구회 2010 東洋哲學硏究 Vol.64 No.-

        불가에서는 삶의 시공간을 ‘작고 큰 파도가 끊임없이 밀어닥치는 고통의 바다’ 혹은 ‘일체의 모든 것이 고통’이라고 표현한다. 이는 삶 자체에 내재된 각종의 한계성(비극성)에 관한 묘사이다. 그렇다면 이는 어떤 이유에서 실제적 삶은 고통의 비극으로서 규정될 수 있는가? 이에 대해 필자는 장자의 비극미학으로써 그 까닭을 해명코자 하며, 이러한 해명으로써 우리는 비극(삶)의 예술화를 통해 미학적(예술가적) 삶을 추구할 수 있게 된다. 장자의 비극성은 인간존재로서는 ‘어찌 할 수 없는’ 노동, 소유, 이동, 죽음 등의 비극적 상황 인식에서 기인한다. 장자는 이러한 비극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비극적으로 직시하고 사유함으로써 미학적으로 변화시킨다. 그것이 바로 장자의 비극미학이다. 그런데 장자미학은 여타의 미학들과는 달리 어떤 객관적 실체로서의 미적 대상이나 개념을 규정치 않는다. 때문에 가치나 현상으로서의 미나, 미적 체험과 실현 등을 대상으로 삼는 어떤 아름다움 자체로부터도 자유롭다. 장자가 말하는 ‘위대한 아름다움’이나 ‘지극한 아름다움’이 그러하다. 필자는 이러한 장자미학의 독특성은, 장자미학이 생시(生視), 불언(不言), 상망(相忘), 위일(爲一) 등의 비극미학적 사유방식으로써 정립되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한다. 이러한 사유방식들은 필연적으로 현실세계의 비극성을 사유케 한다. 현실세계의 비극적 상황들이 예술이 될 수 있음은 일종의 예술적 광기(狂氣)에 의해서다. 그러나 광기는 참되거나[眞] 선하거나[善] 아름다운[美] ‘무엇’도 될 수 없는 탓에, 도덕적이며 권력적인 이성(理性)과 성리(性理)로부터 배척되어 제거된 찌꺼기들의 검붉은 울혈(鬱血)이거나, 광기 자체의 자기 방어적인 염증(炎症)이다. 그런데 오히려 이로써 비극은 예술이 된다. 그러한 예술의 논리적 지평이 비극미학이며, 장자는 인간존재의 삶 자체의 비극을 비극적으로 직시하고 사유함으로써 예술화(미학화)하는데, 이는 바로 『장자』의 비극미학적 사유방식에 의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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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자(莊子)』의 감성적(感性的)사유방식

        탁양현 동양철학연구회 2010 東洋哲學硏究 Vol.62 No.-

        세계 내 이성의 영역 안에는 그 어디에도 감성의 자리는 이미 없다. 동서를 막론하고 인류의 역사는 이성(원리 혹은 진리)에의 지속적인 추구였으며, 그러는 동안 이성은 집단적 권력과의 결합을 통해 현실 세계 내에서 지배와 통치에 방해되는 거추장스런 것들을 감성(비이성 혹은 무의식)으로 규정하고 배척해버렸다. 배척의 가장 큰 이유는 권력적 기득권의 유지에 요구되는 질서와 안정에 반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러하다면 그러한 이성은 시대와 상황 안에서 집단 권력의 도구적 수단으로 이용되는 프로파간다나 이데올로기일 따름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필자는 이성의 대표적인 사유방식인 이분법 도식에 대하여, 『장자』의 사유방식을 통해 감성의 새로운 無待的영토의 단초를 모색코자 한다. 그렇지만 무의식이나 비이성이 감성과 동일시될 수 있지는 않으며, 때문에 우리는 새로이 정립될 감성에 대해 고뇌한다. 이는 인류가 역사 안에서 수천 년 동안 이성을 추구하였지만 결국 그러한 이성과 대응되는 실제적인 원리를 현실 세계 어디에서도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 실제적 체험탓이기도 하다. 역사 안에서 이성적 주류철학(유가철학 혹은 플라톤철학 등)에 따른다면 『장자』는 대표적인 이단의 철학서로 분류된다. 그 까닭은 시대와 상황 안에서 집단 권력적 현실원리로서 강제되는 이성적·도덕적 원리들의 절대주의나 객관주의의 이면에 은폐되어있는 가치와 권위의 불합리들을 일순간에 폭로해버리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러한 측면을 『장자』가 지닌 지극히 감성적인 사유방식에 의한 것으로 판단하여, 이를 ① 상상의 사유방식, ② 비판의 사유방식, ③ 차이의 사유방식, ④ 부득이의 사유방식, ⑤변화의 사유방식 등 이상 다섯 가지로 상정하고 이에 대해 고찰하였다. 感性之位沒有世界內理性領域. 縱觀古今中外, 人類歷史持續追求理性(原理或眞理), 這段時間以理性結合集團的權力, 現實世界內支配和統治妨碍累贅, 規定感性(非理性或無意識)排斥了. 排斥的最大原因, 是背離權力的旣得權的維持要求秩序和安定. 然則, 時代的狀況內, 權力利用以工具手段, 那樣理性只不過propaganda和Ideologie罷了. 筆者對于理性的代表思惟方式, 据此以『莊子』尋求事故的苗頭, 新感性的`無待的領土`. 但是非理性或無意識不同感性, 因此我們憂苦不堪新感性. 歷史內數千年人類的追究理性對應實際的原理, 나里現實世界不能發見. 歷史內据理性的主流哲學(儒家哲學或Platonism), 『莊子』是代表的異分端哲學書. 因爲時代的狀況內, 迫使集團權力的現實原理, 所以理性的·道德的原理(絶對主義或客觀主義)反面隱蔽, 暴露價値和權威的不合理. 有鑑于此, 筆者判斷極爲莊子的感性思惟方式, 深究①想像的思惟方式, ②批判的思惟方式, ③差異的思惟方式, ④不得已的思惟方式, ⑤變化的思惟方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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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철학 : 『장자』의 비극미학적 사유방식

        탁양현 동양철학연구회 2010 東洋哲學硏究 Vol.64 No.-

        불가에서는 삶의 시공간을 ``작고 큰 파도가 끊임없이 밀어닥치는 고통의 바다`` 혹은 ``일체의 모든 것이 고통``이라고 표현한다. 이는 삶 자체에 내재된 각종의 한계성(비극성)에 관한 묘사이다. 그렇다면 이는 어떤 이유에서 실제적 삶은 고통의 비극으로서 규정될 수 있는가? 이에 대해 필자는 장자의 비극미학으로써 그 까닭을 해명코자 하며, 이러한 해명으로써 우리는 비극(삶)의 예술화를 통해 미학적(예술가적) 삶을 추구할 수 있게 된다. 장자의 비극성은 인간존재로서는 ``어찌 할 수 없는`` 노동, 소유, 이동, 죽음 등의 비극적 상황 인식에서 기인한다. 장자는 이러한 비극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비극적으로 직시하고 사유함으로써 미학적으로 변화시킨다. 그것이 바로 장자의 비극미학이다. 그런데 장자미학은 여타의 미학들과는 달리 어떤 객관적 실체로서의 미적 대상이나 개념을 규정치 않는다. 때문에 가치나 현상으로서의 미나, 미적 체험과 실현 등을 대상으로 삼는 어떤 아름다움 자체로부터도 자유롭다. 장자가 말하는 ``위대한 아름다움``이나 ``지극한 아름다움``이 그러하다. 필자는 이러한 장자미학의 독특성은, 장자미학이 생시(生視), 불언(不言), 상망(相忘), 위일(爲一) 등의 비극미학적 사유방식으로써 정립되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한다. 이러한 사유방식들은 필연적으로 현실세계의 비극성을 사유케 한다. 현실세계의 비극적 상황들이 예술이 될 수 있음은 일종의 예술적 광기(狂氣)에 의해서다. 그러나 광기는 참되거나[眞] 선하거나[善] 아름다운[美] ``무엇``도 될 수 없는 탓에, 도덕적이며 권력적인 이성(理性)과 성리(性理)로부터 배척되어 제거된 찌꺼기들의 검붉은 울혈(鬱血)이거나, 광기 자체의 자기 방어적인 염증(炎症)이다. 그런데 오히려 이로써 비극은 예술이 된다. 그러한 예술의 논리적 지평이 비극미학이며, 장자는 인간존재의 삶 자체의 비극을 비극적으로 직시하고 사유함으로써 예술화(미학화)하는데, 이는 바로 『장자』의 비극미학적 사유방식에 의해서다. 佛家表達, 生的時空間是波瀾苦海與一切皆苦. 那個描寫, 生的本來自體內在限界性(悲劇性). 人類史內生的認識, 只不是福樂. 可是, 什마原因實際的生規定悲劇阿? 筆者對這事兒, 原因解明以莊子的悲劇美學原理. 這些以解明, 我們以悲劇的藝術化追究美學的(藝術家的)生. 『莊子』的悲劇性起因, 悲劇的狀況認識, 人間存在不得已勞動, 所有, 移動, 生死. 莊子美學的昇華, 對於悲劇狀況以悲劇的直視和思惟. 那就是莊子的悲劇美學. 莊子美學未規定客觀實體的美的對象. 因而超脫美的自體. 大部分美學風潮追究對象的美, 價値和現象的美, 美的體驗和實踐. 莊子說``大美``和``至美``超脫美的自體. 筆者判斷莊子美學的獨特性, 他的思想定立以悲劇美學的思惟方式. 這些思惟方式必然思考現實世界的悲劇性. 現實世界的實際悲劇狀況變化藝術, 以藝術的狂氣. 但狂氣不是眞善美, 所以排斥除去由道德的·權力的理性和性理. 雖然是悲劇的藝術化. 這些藝術化的論理地平, 莊子藝術化(美學化)人間存在生的自體本來的悲劇, 以悲劇的直視和思惟. 那就是莊子的悲劇美學的思惟方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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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자』에서 "현(玄)"자(字) 의미 연구

        탁양현 동양철학연구회 2009 東洋哲學硏究 Vol.60 No.-

        `玄`字가 본격적인 문자적 활용을 갖기 시작한 것은 『周易』과 『老子』로부터이다. 이후 玄은 대체로 `검다`, `가물하다, `현묘하다` 등 수식어의 의미로서 활용된다. 그런데 『노자』에서 이르는 `玄之又玄`의 의미는 다만 단어의 개념적 정의만으로 한정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玄은 玄學, 重玄學, 太玄, 老玄, 莊玄, 儒玄, 佛玄, 玄談, 玄風등을 통해 참으로 다양한 모습으로 역사안에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에 필자는 이러한 玄이 단지 이름(개념)이나 글자(언어)로서의 한정적 의미라기보다는 하나의 철학적 `이미지`(그림)라고 상정한다. 철학적 `이미지`는 이내 철학적 사유를 유발시키며 그것이 『노자』에서의 논리적 체계인 玄의 사유방식의 역할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필자는 『노자』철학의 玄의 사유방식이 `無의 논리`, `不의 논리`, `反의 논리`에 기반하고 있음을 살피고 이러한 논리적 체계가 『노자』 안에서 玄으로 귀결됨을 밝히고자 한다. 우선 `無의 논리`는 ① 同時性, ② 交叉性, ③ 無我性등의 논리적 속성에 바탕하고, `不의 논리`는 ① 言·意不完全性, ② 無所有性, ③ 自他平等性, ④ 知的無分別性등에 바탕하며, `反의 논리`는 ① 生成性, ② 對立性, ③ 反回性등에 바탕한다. 이러한 논리적 체계를 통한 玄의 사유법으로써, 『노자』는 어느 시대에든 인간의 삶이 지닌 본래적 혼돈을 깨닫게 한다. 그리고 통행본(왕필본) 『노자』에서 `玄`字는 총 12회 사용된다. 중복을 피한다면 ① `현묘함 또는 현묘하게`[玄], ② `현묘한 여성성`[玄牝], ③ `현묘히 바라보기`[玄覽], ④ `현묘히 통달함`[玄通], ⑤ `현묘하게 실천하기`[玄德], ⑥ `현묘히 함께하기`[玄同] 등으로 분류된다. 이러한 玄의 모습에 대한 고찰을 통해 『노자』 안에서 玄으로써의 실제적인 사유방법적 의미와 활용을 살펴보도록 한다. `玄`字正式文字的活用開始, 從『周易』和『老子』的. 以后大都玄的活用意味, 以修飾語黑與玄妙. 但『老子』中玄之又玄的意味, 不是單詞的槪念定義. 因爲玄的各種表現形狀, 玄學, 重玄學, 太玄, 老玄, 莊玄, 儒玄, 佛玄, 玄談, 玄風……. 對此筆者假定, 玄不是槪念與文字, 而是哲學的Image(畵). 哲學的Image引起哲學的思惟, 那是『老子』中論理體系是玄的思惟方式. 『老子』中玄的思惟方式的基礎, 無的論理, 不的論理, 反的論理. 這三種論理是玄的思惟方式土臺. 無的論理的基礎是①同時性, ②交叉性, ③無我性. 不的論理的基礎是①言·意不完全性, ②無所有性, ③自他平等性, ④知的無分別性. 反的論理的基礎是①生成性, ②對立性, ③反回性. 『老子』批評以這種玄的思惟方式, 深省人的本來混沌爲. 通行本(王弼本)『老子』使玄都12次. 避忌重復, 分辨①玄, ②玄牝, ③玄覽, ④玄通, ⑤玄德, ⑥玄同, 由此考察實際思惟方式的意義, 以『老子』的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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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늘과 그림자의 사유방식 — 三玄(易, 老, 莊)을 중심으로 —

        탁양현 동양철학연구회 2011 東洋哲學硏究 Vol.68 No.-

        일상의 언어현상 안에서 ‘그늘’과 ‘그림자’는 상호 유사한 근친적 의미로 사용된다. 예컨대, ‘그늘지다’와 ‘그림자지다’의 실제적인 현재적 활용은 혼용되어도 무방하다 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일상언어의 상황과 철학언어의 상황은 차이가 있다. 이는 동양철학적인 ‘볕과 그늘’의 사유방식 안에서의 ‘그늘’과 서양철학적인 ‘빛과 그림자’의 사유방식 안에서의 ‘그림자’ 개념이 지니는 함의의 상황과 내용이 서로 차이를 갖기 때문이다. 三玄철학 안에서 ‘볕과 그늘’의 사유방식은 주역철학이나 노자철학과 장자철학 그리고 위진현학 이후 현재까지 여전히 이어지는 동양철학의 독특한 사유방식이다. 따라서 三玄철학의 사유방식과 유가철학이나 서양철학의 사유방식적인 차이를 살핌으로써, ‘빛과 그림자’의 사유방식과 ‘볕과 그늘’의 사유방식의 차이는 밝혀진다. 또한 서양철학의 택일(擇一)의 이분법이나 택일의 변증법과 동양철학의 공거(共居)의 이분법이나 공거의 변증법의 차이 역시 드러난다. 이러한 사유방식의 차이를 살핌은 동서철학의 혼융이라는 21세기라는 현재적 상황 안에서 반드시 요구되는 시대적 필요인 것으로 판단된다.

      • KCI등재

        중국철학 : 그늘과 그림자의 사유방식 -삼현(三玄)(역(易), 노(老), 장(莊))을 중심으로-

        탁양현 동양철학연구회 2011 東洋哲學硏究 Vol.68 No.-

        일상의 언어현상 안에서 ``그늘``과 ``그림자``는 상호 유사한 근친적 의미로 사용된다. 예컨대, ``그늘지다``와 ``그림자지다``의 실제적인 현재적활용은 혼용되어도 무방하다 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일상언어의 상황과 철학언어의 상황은 차이가 있다. 이는 동양철학적인 ``볕과 그늘``의 사유방식 안에서의 ``그늘``과 서양철학적인 ``빛과 그림자``의 사유방식 안에서의 ``그림자`` 개념이 지니는 함의의 상황과 내용이 서로 차이를 갖기 때문이다. 三玄철학 안에서 ``볕과 그늘``의 사유방식은 주역철학이나 노자철학과 장자철학 그리고 위진현학 이후 현재까지 여전히 이어지는 동양철학의 독특한 사유방식이다. 따라서 三玄철학의 사유방식과 유가철학이나 서양철학의 사유방식적인 차이를 살핌으로써, ``빛과 그림자``의 사유방식과 ``볕과 그늘``의 사유방식의 차이는 밝혀진다. 또한 서양철학의 택일(擇一)의 이분법이나 택일의 변증법과 동양철학의 공거(共居)의 이분법이나 공거의 변증법의 차이 역시 드러난다. 이러한 사유방식의 차이를 살핌은 동서철학의 혼융이라는 21세기라는 현재적 상황 안에서 반드시 요구되는 시대적 필요인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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