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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감부(統監府)가 파악한 한국의 계몽과 교육: 표손일(俵孫一)의 “한국교육(韓國敎育)” 훈시(訓示)와 당대 잡지의 관련 기사

        임상석(林相錫) ( Lim¸ Sang-seok ) 한국어문교육연구회 2020 어문연구(語文硏究) Vol.48 No.4

        1909년에서 1910년 초에 걸쳐 간행된 통감부 학부 차관 다와라 마고이치의 훈시, 『韓國敎育』, 『韓國敎育ノ旣往及將來』, 『韓國敎育ノ現狀』은 계몽운동과 의병투쟁에 대응하기 위한 일제 교육 정책의 전술과 태도를 보여주는 자료이다. 일본인 교육 관료와 교원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으나 1920년대에는 보통학교의 한국인 교원들에게까지 축약본이 보급되었다. 다와라는 한국의 교육과 문화전통을 무가치한 것으로 취급하나 한일(韓日)이 공유한 오륜과 오상의 봉건적 전통은 덕육(德育)의 가치로 강조한다. 반면 “신교육”이라 불리는 통감부의 제도권 교육은 조선의 기존 교육에 상대되는 것이라는 점만 강조할 뿐, 명확한 함의와 범위가 제시되지 않는다. 다와라의 훈시들은 당대 학교들의 연합운동회를 문명부강을 위한 실용교육에 무관한 것으로 극력 비판하는데, 특히 군대식 행진과 훈련 등을 주목하였다. 필자는 다와라가 지적한 행진과 훈련 등이 계몽운동을 고취하는 연설과 공연과 결합되어 일반인들의 큰 호응을 불러온 잡지 기사들을 제시했다. 계몽과 국문의 이념으로 고조된 개혁과 평등의 열기를 억누르는 다와라의 신교육이 강조하는 것은 일본어가 가진 장래의 실용성일 따름이다. 이 훈시들은 한일신협약 이후의 통감부 체제가 무단통치 식민정책을 예비한 것을 보여준다. Three instructions by the Residency General vice-minister Dawara Magoichi, Korean Education(1909), the Past and Future of Korean Education(1909) and the Condition of Korean Education(1910) are texts representing Japanese imperial tactics and attitudes against Enlightenment movement and Righteous Army. They are originally for Japanese educational bureaucrats and faculties but summary of them are provided to Korean faculties of primary school. Dawara regards Korean education and culture tradition as valueless for contemporary educations though Confucian idea such as Five Relations are emphasized as the basis of moral training. On the contrary, New Education, the slogan of Japanese education has not positive definition and range in his instructions. It is just relatively defined against pre-exist Korean Education. Discrimination toward contemporary Korea as colony or a protectorate is prolonged to historical Korean education and cultures. He severly criticizes jointed sports day of Korean schools composed by military fashioned parade and excercise as an unpractical event irrelevant to welfare and civilization of Korea. I represent large scale rally by schools at that time, showing parades, speeches and performances about enlightenment and education, brought great response from ordinary people. As Residency General bureaucrat, the direct threat is that sports days can be potentially related to the Righteous Army. At the same time, the increasing fever of enlightenment movement is also seditious for him. The ideal of enlightenment and national language is only oppressed by his New Education which has sole alternative for future, Japanese linguistic education for Japanese ruling system. His instructions demonstrate the policy of Residency General, after Japan-Korea Treaty of 1907, is the preparational process for 1910s Japanese Military Ru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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