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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다마 신이치(山田新一)의 재조선 시대—해제 : 야마다 신이치의 「현실의 조선 - 조선 재방문」

        하라다 마사토시,김경연,야마다 신이치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구 한국근대미술사학회) 2014 한국근현대미술사학 Vol.28 No.-

        먼저 이번에 소개하는 야마다 신이치의 「현실의 조선 - 조선 재방문」 및 재조선 관련 자료는 미야코노죠 시립미술관(都城市立美術館)이 2012년 미야자키(宮崎) 시의 아오키 오사무(靑木脩) 씨로부터 기증받은 모두 75점에 달하는 파일, 책, 노트 등으로서 아직 정리가 진행 중인 자료라는 점을 밝히고 싶다. 만년의 야마다는 아틀리에를 정리하면서 작품은 미야코노죠 시립미술관에, 자료는 아오키 화구점에 기탁하였는데 이 자료들은 야마다의 폭 넓은 교우관계를 보여준다. 인간관계를 생생하게 드러내는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일부는아틀리에에서 소각되었다. 또 그의 수기(手記) 「현실의 조선 - 조선 재방문(再渡鮮)」에 쓰여 있는 한국인의 이름은 공개되지 않도록 하였고 자신과의 관계 때문에 주변에 폐가 되지않게 신경을 썼던 듯했다. 그리고 경성에서 발송된 편지 종류가 매우 적은 데에는 같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니 편지를 주고받을 필요가 없었던 까닭도 있었겠지만 한편으로 조선미술전과 전쟁기록화의 제작에서부터 전쟁 이후의 수집에 이르기까지 시대에 농락당했다는야마다의 판단 때문이기도 하다. 전쟁이 끝날 무렵 일본인화가의 전쟁기록화를 소각 처분하라는 명령을 받은 야마다는 작품을 경성에 은닉하였다. 전후에 동료 화가들의 비난을 받으면서도 작품의 미술적인 가치를 호소하며 수집에 매달렸던 야마다였기에 일부분이긴 하지만 편지류를 소각한 것은 지금 생각하면 유감스러운 일이다. 또한 야마다의 막내 따님이신 산본유녕(山本瑠寧) 씨가 기증한 자료 68점, 그리고 야마다의 여동생이신 후지타 미치코(藤田道子) 씨와 그의 아들 요네하루(米春) 씨의 자료를 바탕으로 조선에서의 야마다 신이치와 그의 주변상황을 일부 소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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